제 1380화
시원하게 빅엿을 안겨주고 완전히 사라져버린 태초의 진조로 인해 내 표정은 콱 찡그려진 채로 풀리지 않았다.
“하. 세상에서 제일 거지 같은 게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첫 번째가 말을 하다 마는 거고…….”
이 망할 놈은 에이리아에 관한 중요한 단서를 침묵한 채 넘어가 버렸다.
보면 알 수 있다고?
태초의 진조가 남겨둔 마지막 잔재가 사라지면 레디미아 황비의 혼을 붙잡아놓을 수단이 사라진다.
팽팽하게 이루어지는 힘겨루기가 갑자기 사라지면 고무줄처럼 당겨진 그녀의 혼은 다시금 끌려가리라.
“그래서. 두 번째는 뭔데요.”
그때였다.
언제 돌아왔는지 요시아가 게슴츠레 뜬 눈으로 물어온다.
“시간 없다. 빨리 가자. 장모님의 혼이 올라가기 전에 붙잡아야 해.”
“아…… 아니 두 번째는 뭐냐고요!!”
일단 진조가 남겨놓은 아티펙트가 어떤 물건인지 알아보는 건 그 후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 어머니!!”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까운 곳에서 레디미아 황비의 비명과 당황한 에이리아의 외침이 들려왔다.
콰아아아아아!!!!
동시에 막대한 에너지가 퍼져나오며 나와 요시아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윽! 무슨 바람이……!”
“시작됐네.”
대체 무슨 방법으로 그녀의 혼을 무리 없이 십여 년간 묶어놓았는지 몰라도 반동이 굉장하다는 건 분명했다.
밀어내는 바람을 강제로 갈라버린 뒤 소리의 근원지로 향하자 당황한 에이리아와 그녀의 바로 앞에 떠오른 채 비명을 지르며 막대한 폭풍을 내뿜고 있는 레디미아 황비가 보였다.
그동안 정상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격리되어있던 혼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려 한다.
여기서 억지로 붙잡는다면 혼이 상하는 건 필수불가결했다.
하지만.
파아아앙!!
“으악!”
갑작스레 레디미아 황비에게 손을 뻗은 에이리아의 몸에서 빛이 터져 나오기 시작하며 모든 게 변한다.
“오…….”
“으으…… 눈이야…….”
요시아가 자신의 눈을 감싸 쥐고 끙끙거렸다.
반면 나는 그 상황을 모두 지켜보았다.
강제로 억류된 것이 풀리면서 순식간에 상흔이 생기던 레디미아 황비의 혼이 에이리아의 몸에 닿기가 무섭게 치유되며 그녀의 몸 안에 스며든다.
성모의 기적.
신격과는 다른 신을 품었던 여인의 모성애.
레디미아 황비는 피는 이어져 있지 않다고 해도 에이리아의 모친이니 반대로 생각해야 옳지만, 성모라는 개념은 그런 단순한 영역이 아닌 듯 보였다.
마치 신의 힘을 자신의 몸을 매개체로 발현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아마 그녀가 의도한 게 아닌 성모가 된 에이리아의 영혼이 그녀도 모르게 반응하는 것일 터다.
천천히 레디미아 황비의 혼을 자신의 품 안에 고스란히 보호한 에이리아는 떨떠름한 얼굴로 자신의 손에 꼭 쥐어진 작고 푸른 보석을 내려다보았다.
“이게 어떻게 된…….”
“선생님. 저거 대체 뭐에요?”
“뭐긴. 성모의 자애지.”
사실 나도 모르는 일이다.
* * *
최초 과제나 다름없던 레디미아 황비의 혼을 여기서 해방한 뒤 문제없이 유지한다는 문제는 해결되어버렸다.
조금 당혹스럽긴 하지만 태초의 진조가 했던 말 그대로 에이리아가 성모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에이리아의 몸에 노화가 멈춰버린 것도 저런 이유가 아닐까 싶었다.
처음엔 그저 노화가 느리겠거니 하는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다시 보니 완전히 느낌이 다르다.
성모가 된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지만 한 가지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세상 빛을 보지 못하고 유산되었던 아이.
홀로 품었던 그녀의 아이가 떠오른 것이다.
“우와…… 신기해라…….”
휴면상태에 든 레디미아 황비의 혼이 담긴 보석을 에이리아는 소중하다는 듯 품에 안았다.
“저게 가능한지는 처음 알았네요. 혼이 너무 망가져서 일반적으로는 안 될 텐데.”
그녀의 말대로였다.
“일단 잘 해결됐으니까. 그거 잘 가지고 있어.”
바사스 알 린디스가 어떻게 나오냐에 따라 그녀의 혼을 영혼의 강으로 인도할지. 레디미아 황비의 바람에 따라 두사람을 만나게 해줄지 정할 일이다.
태초의 진조가 남긴 잔념은 서서히 사라지더니 완전히 흩어져버렸다.
이후 나는 놈의 관이 있던 곳에서 이질적인 공간을 하나 더 찾아냈다.
제 딴에는 숨긴 모양인데. 내가 또 보물찾기는 기깔난 편이라.
다만 이번에 나온 것들은 단순 아티펙트나 보화가 아니었다.
시간이 동결된 것처럼 보관된 여러 가지 고급 영약들.
천중원의 무림인들이 봤다면 눈을 부릅뜨고 개처럼 헥헥 댔을 정도로 제법 고위 영약들이다.
기간은 제각각이지만 하나같이 굉장한 기술로 농축된 게 보였다.
아마 태초의 진조인 그의 힘으로 만들어낸 것이리라. 놈의 혼이 남아있었다면 게거품을 물었을 정도로 제법인 물건이다.
“이건…… 퍼지면 진짜 골치 아프겠네.”
단순 역사적 희소적 가치가 있는 보물과 달리 이건 하나하나가 전쟁까지 불사할 수 있는 위험품목이었다.
“이건 조용히 챙기자.”
언젠가 아벨이나 다리안이 크면 선물로 줘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린디스 제국 땅에서 나온 것이지만 내가 아니면 평생 묻혀있었을 보물. 좀 챙겨간다고 뭐가 문제가 될까.
“아니 그래서, 두 번째는 뭐냐고요. 아 진짜 말하다 끊는 거 진짜 엄청 화나거든요?”
“화나라고 그런 거야.”
요시아가 내가 했던 혼잣말을 아직도 마음속에 두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 * *
베르나르트 협곡의 안개와 산사태는 태초의 진조가 내뿜던 잔념의 힘이 사라지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아마 더 이상은 이곳에서 이유 모를 재해가 발생하거나 길을 잃는 경우가 발생하지 않으리라.
곧바로 린디스 제국으로 향하는 길로 방향을 잡은 나는 묵묵히 한가지 이야기를 떠올렸다.
에이리아가 어릴 적, 그녀와 함께 황실의 인원들을 대동하고 놀이를 떠났던 레디미아 황비는 이 협곡을 통해 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불미스러운 사고를 당하게 되었고…… 많은 사람이 토사에 휩쓸렸다.
생존자는 극소수였다.
그리고 휩쓸린 이들 중엔 레디미아 황비나 다수의 시종 시녀, 그리고.
에이리아도 있었다.
어찌 보면 천운이었을지도 모른다.
무너진 협곡의 지반이 약해져 싱크홀이 생긴 덕에 잠깐동안 버틸 공간을 얻을 수는 있었으니까.
산사태에 묻혀버린 이들을 구하기 위해 몇 날 며칠 동안 구조작업이 진행되었고, 시신이 되어 발견된 시종이나 시녀들이 하나둘 발견되었다.
깊게 파묻힌 싱크홀 아래로 그렇게 며칠간 수색대가 파헤치는 동안 아래쪽에 파묻혀 고립된 이들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을 대비해야 했다.
위쪽에서 수석대가 움직이는 건 본능적으로 알아낼 수 있었지만, 꽤 깊숙이 묻혀버린 게 큰 문제였다.
산소도 부족하고 물도, 식량도 부족했다.
그런 와중에 레디미아 황비는 날카로운 바위에 찔려 파상풍까지 걸리고 말았다.
그렇게 하나둘 죽어가던 찰나.
레디미아 황비는 자신의 몫이었던 여분의 식량이나 물까지 에이리아에게 먹였다.
폐소공포증의 전조증상인지 정신을 못 차리는 그녀는 그냥두면 반드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레디미아 황비는 마나와 자신의 육체를 믿고 악착같이 버티며 에이리아를 끝까지 살렸다.
그렇게 시종들이 하나둘 죽었고, 결국 에이리아와 레디미아만이 남았을 때.
레디미아 황비는 죽어가는 몸을 억지로 가눈 채 에이리아를 끌어안고 말했다.
“이 일은 재해이며 사고일뿐이다. 네 탓이 아니니 절대 스스로를 자책하지 말렴.”
레디미아 황비의 식량이나 물까지 먹고 버틴 에이리아는 그렇게, 레디미아 황비가 죽고 난 후에도 일주일을 더 버텼다.
다만 충격으로 그녀의 정신은 거의 무너지기 직전이었고, 그렇게 에이리아까지 레디미아 황비를 따라 서서히 죽어가던 그 순간.
기적처럼 수색대가 유일한 생존자인 에이리아를 구출해냈다.
그날. 에이리아는 수색대를 보고 그대로 기절했다. 그리고 사고의 충격으로 몇 달간 실어증을 앓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뒤늦게 이곳으로 왔던 데오르트 황제는 부인 중 한 사람이었던 레디미아 황비의 시신을 보고 의식을 놓아버렸고, 며칠간 쉬이 일어나지 못했다.
그렇게 충격적인 과거가 지나간 이후, 데오르트 황제는 아내였던 레디미아 황비의 유지를 받들어 에이리아를 탓하는 무리들을 단호하게 쳐냈다.
하지만 바사스 알 린디스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내 입장에선 이해가 되면서도 이해가 안 되는 놈이었다.
에이리아는 충격으로 그 당시의 기억을 잃었다고 하는데. 단순히 잃어버린 게 아니라 진조의 힘에 노출되어 그녀가 바랬던 대로 끔찍한 기억을 아예 지워버린 모양이었다.
조금 특이하긴 하지만 우연이라도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 후로는 보는 대로였다. 죽은 줄 알았던 레디미아 황비는 사망한 이들 중에서 유일하게 영혼이 묶여버렸고, 다른 이들과 달리 혼이 그곳에 묶여 십수 년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 과정에서 혼이 연결되면서 태초의 진조가 본 기억의 편린들이 그녀에게도 흘러 들어간 것이리라.
“아바마마께는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까요.”
십수 년 전 죽었던 레디미아 황비의 혼이 이곳에 있다. 대화라도 해볼 겁니까.
그렇게 물을 수 있을까.
“글쎄다…… 나도 잘 모르겠네.”
“근데 선생님, 고란 왕국이요. 일부러 이쪽에서 함정에 빠진 척 유도해서 방심한 틈에 증거를 수집하는 것도 좋은 방법 아닐까요?”
고란 왕국을 부숴버리는 건 기정사실이지만 혹여 증거도 없이 한나라에 선전포고를 했다간 괜히 문제가 생기지 않겠냐는 것이 요시아의 의견이었다.
그래. 확실히 그게 맞다.
정보처로써 확실한 미식연구회나 그림자를 이용한다면 분명 증거를 수집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럴 생각 없다.”
“선생님 조금만 진정하시는 게 어떨까요. 냉정하게 생각하면 이건 그냥 손해밖에 없는…….”
“요시아.”
“아니 생각해도 이상하잖아요. 지금 너무 감정에 휩쓸려서…….”
“요시아 프랑소스.”
“네…… 넵!”
내 부름에 그녀가 흠칫 놀라며 기합이 바짝 들어간 채 대답한다.
“조용히.”
“네에…….”
순식간에 격침당한 요시아가 양손으로 입을 가린 채 물러났다.
구구구구구!!
그때 마치 기다렸다는 듯 통신용 수정구가 반짝인다.
“유리아?”
-은공. 보고드릴 게 있어서요.
“네가?”
-그림자와 합동으로 움직이는 중이거든요, 현재 린디스 제국 내에 바사스 황자와 황손 벨류아드 둘 모두 없어졌다고 하더군요. 은공께서 하인스를 떠나신 날 사라진 거로 확인됐어요.“
“둘 다 이 일에 연관이 돼 있는 건가?”
-벨류아드 황손은 모르겠지만, 바사스 황자는 그를 따르던 충신이 누군가에게 살해당해서 그것을 추적하고 있는 모양이에요.
결국, 린디스 제국 내에 없는 놈들을 찾아가 봐야 빈자리만 나를 반길 거라는 뜻이었다.
이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은 벨류아드의 위치부터.”
벨류아드는 지금 자신이 한 짓이 들켰다는 사실에 패닉이 왔을 것이다. 제 아버지도 없는 상황에서 놈이 도망갈 곳은 그리 많지 않다.
-우선 그가 어디로 갔는지 정확하게 파악할 순 없지만 예측되는 곳이 몇 곳 있어요. 이미 륀느 양의 지시로 어벤저편대를 일부에 파견했으니 발견 즉시 소식이 갈 거예요.
“좋아.”
-그를 잡으시면 어떻게 할 건가요?
“고란은 고란이고, 벨류아드 그놈도 대가를 치르게 해야지.”
상대가 린디스라도. 선을 넘었으면 더는 용납할 수 없다.
툭…… 투둑…….
마치 하늘이 우는 것처럼 천천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 * *
“빌어먹을…… 빌어먹을!!”
어두운 지하 수로를 타고 그가 황급히 내달렸다. 그도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잘 알고 있었다.
이미 황실에서는 그가 에이리아를 죽이려 했다는 정황증거가 보내지기라도 했는지 근위병들이 그를 찾아 분주히 움직인다.
잡히면 죽지는 않더라도 엄청난 벌을 받을 터.
비록 출가외인이라 해도 가족을 죽이려 했다는 사실을 안 이상 데오르트 황제는 절대로 그를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특히나 자신에게 엄격했던 할아버지였으니 말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문제는 심각했다. 데이비 올 라운.
그자에 대한 소문은 들어 알고 있다. 볼티즈 왕가가 마약 관련으로 어떤 문제를 일으켰을 때 그는 대뜸 볼티즈로 쳐들어가 왕실을 붕괴시켰다.
고작 며칠 사이에 말이다.
그런 그인 만큼 이런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빌어먹을! 들키지 않을 거라 했잖아!!”
격하게 소리 지르며 코를 찌르는 악취가 가득한 지하 수로를 내달리던 그가 지쳐 숨을 헐떡거렸다.
무릎에 손을 얹은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천장에 달린 하수구 입구를 올려다보았다.
위대한 황손인 자신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된 것일까.
허망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던 그는 하수구 틈새로 흘러내리는 거센 빗방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콰르르르릉!!!!
거센 벼락 떨어지는 소리가 울려퍼지자 그가 흠칫 놀라며 몸을 떨었다.
이상하리만치 커다란 굉음은 이곳이 하수구라 더 격하게 울리는 것 때문일 것이다.
“젠장…… 젠장…….”
사실 도망친다고 해도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목숨을 보전하는 게 맞지 않을까. 속으로 그리 생각한 그가 천천히 몸을 돌리려던 참이었다.
“어?”
방금 무언가를 본 것 같은데…….
콰르르르르릉!!!
의아한 인기척을 느낀 벨류아드는 다시금 치는 벼락으로 인해 순간적으로 환해졌던 하수구 저편을 보며 멍한 얼굴을 했다.
저 멀리 똑같은 하수구 입구 근처에 서 있는 어떤 존재 때문이었다.
찰박…… 찰박…….
물길 위를 맨발로 걷는듯한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기이하면서도 섬뜩한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끼익…… 끼익…….
기괴한 소리와 발걸음 소리.
그대로 굳어버린 벨류아드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떨렸다. 그리고. 주춤주춤 물러나던 그가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아주 잠깐 반짝인 저편의 존재를 본 탓이었다.
새하얀 옷에 새빨간 것이 묻어있다.
그리고. 긴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리듯 흘러내려 있었고 그 머리카락 사이로 또렷이 뜬 눈동자가 그를 직시한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천천히 다가오던 여인은 이내 갑작스레 속도를 올리며 그에게 저벅저벅 다가오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악!!!!”
생전 처음 보는 존재에 극도의 공포를 느낀 벨류아드는 그대로 오줌을 지리며 기절해버렸다.
그리고, 기절한 그의 앞에 다가선 여인이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이내 무언가를 그에게 툭 하고 던졌다.
-같이 놀자.
라고 적힌 종이였다.
하지만 그녀가 종이를 툭 던져도 변하는 건 없었다.
“뭐야. 이곳에 있을 거 같더라니. 그새 잡은 거야?”
이윽고 뒤편에서 데이비가 저벅저벅 걸어오며 그녀에게 말을 걸자 여인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데이비를 직시한다.
“몸에 그 시뻘건 건 또 뭐야.”
[딸기잼. 에나벨이 높게 평가합니다.]
“……어우야. 네 비주얼은 가끔씩 볼때마다 공포스럽다…….”
벨류아드를 잡은 공신은 다름 아닌 에나벨이었다.
“생각보다 금방 잡았네요. 하긴 애들 머릿속이 다 거기서 거기지.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하실 거에요?”
“어쩌긴. 일단 확보해야지. 네 말마따나 증인이 되어줄 놈인데. 고란 왕국 다음에 처리할 거야.”
데이비가 서늘하게 말하며 기절한 벨류아드에게 손을 뻗으려던 그 순간이었다.
쉐에에에엑!! 카아아앙!!! 퍼엉!!
갑작스레 저 멀리서 날아든 칼날 같은 비늘이 벨류아드를 정확히 노리고 날아들었고 데이비는 맨손으로 그것들을 쳐내 하수구 물이 흐르는 곳으로 날려버렸다.
“선생님 저건…….”
“테이밍한 몬스터 같은데. 아무래도 우리가 여기 안 왔으면 벨류아드를 죽여서 자신들에게 남은 마지막 흔적도 지우려 한 것이겠지.”
벨류아드가 죽어버리면 린디스 제국 측에서도 들고 일어날 테니까.
꽤 용의주도하게 계획을 짠 셈이다.
에이리아를 유도했던 그 노령의 사내의 수작질이 제법이다.
스르륵…… 스르륵…… 크아아아아앙!!!!
이윽고 저편에서 파충류처럼 생긴 몬스터 한 마리가 천천히 기어오기 시작하는 게 보였다.
외향은 악어와 비슷하나 온몸에 칼날 같은 비늘이 돋아있었다.
“메라몽. 치워.”
슈르르르륵!!!
동시에 데이비의 곁에서 회색빛의 슬라임 같은 것이 빠르게 날아들었고 놈의 입안으로 쏙 들어갔다.
퍼어어엉!!!!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몬스터의 육신이 그대로 조각나듯 터져버렸고 그 안에서 어벤저편대의 생체 골렘 메라몽이 주르륵 흐르듯 기어 나왔다.
“먼저 가. 나는 테이머를 잡아 족치고 갈 테니.”
데이비가 발끝을 바닥에 툭툭 차며 말했다.
“죽이시면 안 돼요. 선생님. 아시겠죠?”
“그놈 하는 거 보고 당장은 살려두자고.”
섬뜩하게 웃는 데이비를 보며 요시아가 부르르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