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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385화 (1,385/1,559)

제 1385화

린디스의 서부에 있는 영지 콘라드에서 발견된 유일한 흔적.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추측했을 때 이 모든 것이 그가 저지른 짓이라면 바사스 알 린디스도 제정신이 아닌 인간임에는 틀림없다.

온몸에 화상을 입은 바사스에게는 달리 선택권도 없었고 집념도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

아무리 뛰어난 회복능력일지라도 이 정도로 끔찍한 화상은 치료가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말하곤 한다.

아니 사는 게 힘들 정도로 치명상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그는 단 한 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은 것이다.

그가 오래전 삼킨 린디스의 황족을 보호하기 위한 인장도 뱉어내 버린 현 상황에서 그가 죽는다면 정말로 그의 존재가 미궁 속으로 빠져버리게 되겠지만 그는 과감하게 일을 저질렀다.

퍼억!!!

고란의 생존자인 특작부대원 오울이 거침없이 허공을 날아 벽에 처박혔다.

“내가 똑바로 감시하라고 했지. 뒤지고 싶어?!”

“쿨럭…… 죄…… 죄송합니다.”

단 한 방에 치명상을 입은 오울은 몸을 비틀거리면서도 머리를 납작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가 죽었으면 우리 모두 끝장이라는 걸 왜 몰라!!”

“죄송합니다.”

“하…… 그래서 의원은?”

“당장 신전으로 가야 한다고는 했습니다만…… 혹여 정보가 새거나 황자의 신변이 노출될까 데려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살릴 수 있나?”

“운이 좋았는지 아슬아슬하게 숨을 붙이는 정도로 그쳤습니다.”

“후우…… 그래. 저 정도 부상이면 더는 개수작을 부리지 못하겠지. 그래서 그자는?”

“현재 비밀리에 의원과 함께…….”

터엉!!!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에 흠칫 놀란 오울과 여인이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야!”

“크…… 큰일 났습니다. 대장님! 그…… 그자가!! 그자가 수갑을 풀고 도주를!”

퍼석!!

순식간에 한 사내의 머리통이 터져나간다.

“하…… 한번 사고를 친 것도 모자라 이번엔 놓쳤다고?! 그 다 죽어가는 반송장을?! 이 개X끼들이 지금 나랑 장난쳐?!!?”

“빠, 빨리 쫓아라! 정보가 더 퍼지기 전에!!”

“예…… 예!”

같이 온 이들이 겁에 질린 채 미친 듯이 뛰어나가는 것을 보며 오울이 초조한 얼굴로 손톱을 물어뜯었다.

“아아아악!! 이 쓸모없는 새끼들!!”

“제가 따라가겠습니다.”

“됐어! 빌어먹을. 내가 직접 간다. 너는 혹여라도 이 사실이 세어나가지 않도록 주변을 잘 틀어막아.”

“예.”

악을 쓰는 여인이 성큼성큼 나가버리자 오울은 복잡한 얼굴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선택의 기로로군…….”

여기서 그녀를 따른다 한들 그 결과가 좋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반면 여기서 황자의 정보를 린디스에게 팔아넘겨 그쪽으로 붙음으로써 목숨줄을 이어붙일 가능성도 염두해야 했다.

* * *

특작부대의 대장이기도 한 여인에게는 여러 코드의 이름이 존재한다. 그중 고란 왕국 내에서 그녀를 칭하는 명칭 중 가장 유명한 칭호는 다름 아닌 [문라이트] 라는 이름이었다.

달조차 비치지 않는 어두움 밤에 움직이며, 죽은 이들이 보는 것은 마치 달빛과도 같은 그녀의 금속 빛이 전부라는 소문에서 유래된 이름이었다.

대체 그만한 부상을 입고 어떻게 움직이는 것일까.

지독한 화상으로 인해 근육이 망가질 대로 망가졌음에도 그는 일반인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그들에게서 도망치고 있었다.

다만, 그가 향하는 방향은 이 서부 영지의 영주성이 아닌 영지의 바깥이었다.

어리석다고 말할 수 있지만, 어찌 보면 영리했다. 평범한 영지의 영주가 그들을 막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거니와 혹여 고란의 특작부대와 모종의 커넥션이 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허억…… 허억…….”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숲속을 움직이는 바사스는 당장 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는 버티고 또 버텼다.

몸은 이미 만신창이일지라도 저놈들이 절대 살아서 도망치게 두지 않겠다는 지독한 집념이 그의 정신을 강제로 각성시킨다.

하지만 부상은 그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그의 육신을 갉아먹었다. 평소와 달리 그의 몸 안에 있던 마나가 거의 흩어져버린 것도 한몫했으며 부상의 정도를 그가 정교하게 조절할 수 없다는 게 두 번째 이유였다.

“찾았다!! 놓치지 마!!”

이미 주변의 장악은 끝났으리라.

저들은 인간을 상대로는 가히 대륙 최고에 가까운 존재.

고란 왕국 내에서도 아주 비밀리에 양성된 실력가들이 있다고 들었지만, 그 정도가 지나쳤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문라이트는 가히 괴물이라 불러도 무방했다.

소드마스터라 불리던 바사스가 손도 쓰지 못하고 제압당할 정도로 그녀는 빠르고 날카로웠으며, 침착하고 섬뜩했다.

하지만 저지른 것에 비해 그가 가진 계획은 빈약했다.

‘이대로 도망가면 반드시 잡힌다. 그리되면 마지막 기회마저 놓치게 될 터.’

그는 빠르게 머리를 굴려 다음 수를 생각하려 했지만, 상대가 더 빨랐다.

부상이 심각한 상태로 도망치면서 최대한 어그로를 끈 대가였다.

“끄윽…… 끅…….”

“후우…… 빌어먹을 모두 포위해!!”

바사스는 린디스의 황자. 그것도 엄청난 위세를 지닌 귀족파의 수장이나 다름없다.

그런 바사스임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마치 갓 포획한 노예를 잡아넣듯 서서히 몰아세웠다.

여기서 직위를 내세운 위협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손에는 무기 한 자루 없다. 육신은 그의 움직임을 끊임없이 방해한다.

아무리 소드마스터라도 지금 상황에선 저들을 이길 수단이 보이지 않았다.

“애먹게 하고 있네 빌어먹을!”

퍼억!!

“끄윽!!”

한쪽 눈은 이미 실명한 지 오래였고 그나마 운이 좋아 한쪽 눈은 지켜냈다지만 그것은 현재 중요하지 않았다.

공기만 닿아도 끔찍한 고통이 전해지는 마당에 싸움이 될 턱이 있을까.

그는 당장이라도 날아가 버릴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며 숲을 뒹굴었다.

“후우…… 망할 그래도 소드마스터였다고 이만한 부상을 입고도 이렇게 빨리 움직일 줄 몰랐는데.”

“잡았나?”

“아. 네 문라이트 님. 이쪽으로.”

단순 특작부대원만 있었으면 덜했을 텐데 빌어먹을 괴물 같은 년까지 따라왔다.

문라이트는 차갑게 바사스를 노려보다 그의 복부를 걷어차 날려버렸다.

“커헉!”

“문라이트 님! 자칫하면 저놈이 죽을 수도…….”

“…….”

굉장히 거친 한방이었다.

바사스를 노려보던 그녀는 이내 천천히 다가오며 바사스에게 물었다.

“죽을 생각이었나? 우리를 잡기 위해?”

“…….”

“그런 것치곤 제법 열심히 도망치던데. 웃기지도 않는군.”

천천히 다가온 그녀는 바사스의 얼굴을 짓밟으며 말했다.

“설마 정말로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그것도 아니면, 네가 어떻게 될지 알기 때문에?”

문라이트는 차갑게 웃으며 일그러진 그의 피부를 짓이겼다.

“끄윽…… 끅!”

“우리 고란 왕국 내에서 바사스 알 린디스. 당신의 제거순위는 무려 2위야. 그만큼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인물이면서도 가장 경계대상이지.”

“그런데 왜 죽이지 않지?”

“여기서 네놈을 죽이면 우리 쪽도 계획이 어그러지니까.”

인권이니 뭐니해도 결국 티오니스는 힘의 논리로 돌아가는 세상이다.

“죽고 싶다면 얼마든지 죽게 해주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얌전히 따라온다면 고통 없이 죽여주지.”

그녀는 마치 짚단을 집어 올리듯 바사스의 목을 틀어잡아 올렸다.

저항해야 한다. 그는 어지러운 정신을 억지로 부여잡으며 필사적으로 버텼다.

하지만 고통은 점차 그의 의식을 심연 밑바닥으로 처박아버렸다.

그렇게 의지가 완전히 사라지려 할 무렵.

마치 주마등이 스쳐 지나가듯 그의 머릿속에 한 인물이 스쳐 지나갔다.

‘죄송합니다. 어머니. 당신의 아들은…… 그리 좋은 삶을 살지 못하고 가는군요.’

미련한 짓임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이대로 끌려간다면 더 이상 탈출도 못 한 채 미끼로 쓰이다가 마지막엔 잔혹하게 살해당할 터다.

이런 결말을 바라온 것은 아니었건만. 정작 이 상황에 누가 그를 구해준단 말인가.

흔적을 남기긴 했으나 아무리 빨라도 지금 순간에 그를 구하러 올 이가 있을 순 없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 지독하게 어머니가 보고 싶어지는 그였다.

다시 한번 기회가 있었다면, 아들놈을 그렇게 방치하듯 키우지 않았을 텐데.

아비가 못나 아들이 그 지경이 되었으니. 그에 따른 벌이 아닐까.

허탈한 웃음을 내비치며 그가 눈을 감으려던 그 순간.

누군가가 빠르게 달려오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 험준한 숲속에 대체 누가?

한쪽만 남은 눈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린 그는 그 발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확인할 수 있었고 그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힘으로 눈을 크게 떴다.

대체 네가 왜 이곳에…….

“오라버니!!!”

오라버니라 부르지 말아라 하였을 텐데. 볼때마다 원성 어린 외침을 토해냈고 그녀를 향해 저주를 쏟아냈다.

이유 없이 수인족들을 멸시하고 그녀의 동족들을 몰아넣었다.

하지만 넌 어째서 이 순간에.

어떻게 나를 찾아 이곳까지 온 것이더냐.

“피…… 피해…….”

뭐가 됐건 그녀가 도움이 될거라곤 생각지 않는다.

아무리 정령사라도 문라이트가 움직이는 순간 그녀의 목이 떨어져 나갈 터.

괜히 그녀의 어리석은 판단 때문에 데이비 올 라운 대공이 미쳐 날뛰면, 그 뒷감당은 누가 할 것이냐 이 멍청한 것아.

자신은 왜 그녀를 걱정하는 것일까.

아니 걱정이 아니라 이것은 앞날을 예측하지 못하고 멋대로 움직이는 멍청한 에이리아를 향한 타박이다.

스스로 그리 생각하지만, 그의 몸은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도 죽음을 목전에 둔 이 순간. 나를 구하러 온건 결국 너뿐이로구나.

에이리아가 달려오는 모습을 발견한 특작부대원들이 흠칫 놀라며 무기를 빼 든다.

그리고는 그녀를 제압하기 위해 움직인다.

이에 바사스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몸 안에 있던 진기를 끌어올렸다.

애초에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때의 일은 사고였고, 그가 에이리아를 미워할 이유는 없다는 것을.

그는 그저…… 원망할 대상이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어머니의 희생으로 살아난 주제에. 그 어머니의 마지막도 기억하지 못하는 바보 같은 동생을 향한.

단 한 번이면 된다.

저 멍청한 것의 목숨을 살려준다면, 아들을 잘못 키운 아비의 못난 업보도, 그동안 저 아이를 못되게 굴었던 죗값에 아주 조금 보탤 수 있겠지.

그는 자신의 생명력을 불태워 문라이트로부터 벗어나려 했다.

동시에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문라이트 또한 놀란 얼굴로 그를 제압하려 하지만 바사스 또한 소드마스터였다.

영혼을 불태우는 한 번의 기회였던 만큼 아무리 상위 경지라도 완벽히 대처할 순 없었다.

툭!!

바닥에 떨어진 그가 몸을 튕기기 위해 웅크렸다.

볼품없다 해도. 황족은 감히 누군가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는다.

황족은 감히 남에게 피해가 되어 발목을 잡지 않는다.

그것이 린디스 황족, 바사스 알 린디스의 신념이나 다름없었다.

네게 구해질 바에. 내가 널 구해주마.

바사스가 그렇게 몸을 날리려던 순간. 마치 시간이 느려지는 것처럼 세상이 느리게 변했다.

그를 향해 손을 뻗는 문라이트. 그 외에 달려오는 에이리아를 향해 무기를 내지르는 특작부대원들까지.

대체 저 멍청이는 어떻게 이곳을 알고 온 것인지.

그가 남겨놓은 모든 힘을 방출하려던 그 순간이었다.

슈르르륵!!

터업!!

달려오던 에이리아의 그림자에서 새하얀 것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뀨.

뀨.

기이한 소리를 내뱉는 터질듯한 근육질의 토끼들은 마치 증식하듯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고 이내 에이리아를 감싸듯 보호하며 주변에 다가온 특작부대들을 낚아채기 시작했다.

“어?”

몸을 날리려 했던 바사스는 멍한 얼굴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환각인가?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뀨.

우드득…….

환각이라 여겼건만. 새하얀 근육질의 토끼는 그 거대하고 억센 손아귀로 특작부대원들을 낚아챈 채 그대로 목을 꺾어버리기 시작했다.

“오라버니를 지켜주세요!”

에이리아의 외침이 그가 들은 마지막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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