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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388화 (1,388/1,559)

제 1388화

바사스 알 린디스는 꿈을 꾸었다.

그 꿈은 아주 오래전 아무런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았던 과거의 모습이었다.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 주던 부인과 어머니가 있고, 귀여운 동생이 있던 그 시절.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때의 그 시절 말이다.

본래 닿을 수 없고 더는 볼 수 없기에 그리운 것이 추억이고 과거가 아니던가.

바사스의 삶은 레디미아 황비의 죽음 이후 완전히 뒤틀렸고 부서져 내렸다.

오랜 시간 그는 제대로 편히 잠든 적이 없었다.

거기에 최근 지독한 일을 겪으며 마스터급의 육체조차 한계에 달할 정도로 지쳐 버린 것이 직격타로 다가온 셈이었다.

수술이 끝나 그를 고통스럽게 하던 아픔도 사라지고 오랜 시간 수면을 방해하던 지병조차 사라진 그에게 남은 것은 편안한 수면뿐이었다.

-오라버니!!!

-제가 만든 거예요!

-오라버니가 세상에서 제일 재밌어요!

해맑게 웃으며 귀를 쫑긋거리던 동생과, 그런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기억.

그놈의 다이어트 때문에 먹지도 못할 음식을 앞에 두고 울상 짓던 그녀를 귀엽게 여겨 과자를 나누어 주던 레디미아 황비를 발견하고 불호령을 떨어뜨리던 그.

울먹거리던 에이리아를 몰래 데리고 나가 황족조차 쉽게 먹기 힘들다는 별미를 선물하며 쭈뼛쭈뼛 사과하던 자신의 모습.

그 외에도 수업을 피해 도망치던 에이리아와 함께 황궁을 쏘다니며 도망치다 레디미아 황비에게 걸려 혼났던 기억까지.

그 당시의 그의 나이는 적은 편은 아니었지만 린디스 황성 내에서도 굉장히 서글서글하고 장난기가 많은 편이었다.

꿈조차 꾸지 못하던 그에게 있어서 이 같은 꿈은 평소와 완전히 다르게 다가왔다.

어쩌다가 이지경이 된 것일까.

어쩌다가 상황이 이리 비틀려 버린 것일까.

어쩌다가…… 모두가 서로 어긋나 버린 것일까.

이유는 알고 있었다.

사고 때문이라곤 하나 어머니를 너무 사랑했던 아들의 갈 곳 잃은 증오가 향해선 안 될 방향을 향해 버린 게 그 시작이리라.

“으음…….”

아릿하게 남는 고통에 눈을 찌푸리며 천천히 정신을 차린 그는 손끝에서 느껴지는 포근한 감촉에 눈을 부릅 떴다.

기절하기 전의 기억이 다시 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기적이었을지도 모른다.

꿈에서 깨면 그 모든게 거짓이라 말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꿈에서 깨기 두려웠다.

하지만, 멈출 순 없었다. 아주 가느다란 실 같은 희망일지라도 그토록 그리워했던 어머니의 모습을 다시 볼 가능성이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는 그였다.

데이비는 그에게 지독한 마마보이라 말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아…….”

-바사스…….

눈을 온전히 뜨고 손을 잡고 있는 이를 보았을 때. 바사스는 본인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히며 그녀의 존재를 입에 담았다.

“어머니…… 정말…… 어머니이십니까.”

-내 아들…… 내 하나뿐인 보물…… 바사스…… 이 엄마가 미안해…….

영혼으로나마 그를 향해 눈물을 흘려 주는 그녀의 눈물은 뜨거웠다. 이게 어떻게 거짓이고, 현혹이며 꿈이겠는가.

그는 손에서 느껴지는 따스한 감촉을 잊지 않기 위해 손을 꼭 붙잡았다.

“어떻게…….”

괜히 말을 꺼내면 이 모든 게 허상처럼 사라질 것 같지만 그는 물어야 했다.

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이에 레디미아 황비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천천히 털어놓았다.

그녀가 그곳에서 죽은 뒤 영혼이 어떤 존재에게 묶여 있었고, 그동안어떤 일이 있었으며 그녀를 누가 찾아내서 구원했는지를.

이야기를 전해 듣는 동안 바사스는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경청했다.

* * *

십수 년 만에 만난 모자는 정말로 할 말이 많았던 모양이다.

데오르트 황제는 초조해 할 법도 하건만 조용히 기다렸다.

그가 대화를 미리 나눈 것도 있지만 아들을 향한 배려이기도 했다.

“장모님의 혼에 연결된 끈이 서서히 옅어집니다. 곧 에이리아의 힘으로도 붙잡지 못할 텐데. 그래도 괜찮습니까?”

내 물음에 데오르트 황제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오랜 시간 함께해 온 부부란 가끔 백 마디 말보다 눈빛 한 번에 많은 것을 교환하기도 한다.”

“그거 솔직히 있어 보이려고 하는소리인 건 아시죠?”

“몹쓸 놈…….”

한마디를 안 진다는 듯 째려보는 그였지만 내 눈을 속일 순 없었다.

그도 레디미아 황비와 못다한 이야기가 많다는 건 척 봐도 알 수 있었다.

“어쩌겠느냐. 저리 행복해 보이는데.”

“오라버니가 저리 웃는 얼굴…….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일지도 몰라요.”

그날 그 사고 이후 그는 단 한 번도 웃는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인 적이 없다고 한다.

집념이라면 무서울 정도이며, 그게 아니면 지지리도 궁상맞은 모습이다.

“그걸 그렇게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네놈도 안타까울 지경이로구나.”

“그냥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저도 이해는 해요.”

“서방님. 그리고 아바마마와 오라버니. 이것 좀 드세요”

어디서 가져왔는지 지구산 고급 과자를 쟁반에 담아 가져온 에이리아의 말에 알버스가 흥미롭다는 듯 과자를 집어 들었다.

“호오…… 신기한 모양의 과자구나. 이건 어디서 만든 것이니?”

“지구 쪽에서 가져왔어요.”

“지구?”

“이방인들의 고향.”

그 말에 데오르트 황제와 알버스 황태자는 조용히 과자를 입에 넣어 보았다.

그러고는 눈을 살짝 크게 뜨더니 하나하나 집어 먹기 시작한다.

“허허. 지구의 기술력이 대단하긴 하네요.”

“그렇구나. 가능하면 어느 정도 외교를 해 보고 싶다만 불가능 하겠지.”

“현재로선 방법이 없지요. 데이비 대공이 도와준다면 모르겠지만…….”

“필요한 물자는 거래를 할 수 있게 도와드리겠습니다만 문명 레벨 단위로 심각한 오류가 생길 수도 있으니 가능하면 직접적인 외교는 삼가 부탁드립니다.”

“아쉽군.”

그리 말하던 차에 두사람의 손이 마지막 남은 과자에 닿았다.

“허허. 이 나라의 모든 것이 짐의 것이거늘. 어찌 짐의 물건에 손을 댄단 말이더냐.”

“하하하 제가 누굽니까 황태자 아닙니까.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런 사소한 거 양보 못 하십니까?”

“끌끌. 이 빌어먹을 놈이 혓바닥을 놀리는구나.”

“폐하. 폐하의 나이에 단 음식을 너무 먹으면 병에 걸리옵니다.”

“닥치거라 이 불효막심한 놈아.”

급기야 서로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리는 두 부자의 모습에 에이리아가 부끄러운 듯 얼굴을 감싸쥔다.

전에는 이것보단 격식이 있는 양반들이었는데.

“왜들 이러십니까. 더 있으니까 싸우지 좀 마세요. 딸 앞에서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보다 못한 내 제지에 두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내게 향한다.

“이건 과자 따위로 인해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맞네. 이건 폐하와 나의 자존심…….”

“그만하세요들!”

결국 에이리아가 빼액 소리를 치고 나서야 멈추는 두 사람이었다.

레디미아 황비와 이야기를 마친 것일까. 약간 붉어진 뺨을 한 채 나를 기다리고 있던 바사스 황자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레디미아 황비는 곧 데오르트 황제와 에이리아에게 작별 인사를 준비하고 떠날 터.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 전 그는 현재 내게 진찰을 받고 있었다.

“내가 밉지 않은가.”

“밉지. 근데 환자를 치료하는 입장에서 그런 거 하나하나 신경 쓸 정도로 아마추어는 아니라서.”

의원으로서 살리고자 한다면 사심은 뺀다.

“그런 것 치고는 수술 중에 굉장히 사심이 담긴 것 같다만.”

“그거야 가벼운 투정이고.”

내 대답에 바사스 황자는 피식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킨 뒤 내게 고개를 숙였다.

“아들로 인해 네게 폐를 끼쳤다.”

“…….”

“벨류아드가 그렇게 된 건 전적으로 내 탓이 크다. 어리석게 어머니를 잃게 만든 원망의 대상을 찾지 못해 에이리아에게 모진 짓을 해 온 내 행동에 대해 사죄한다.”

“말로만?”

“아니. 말로 사과한다고 해서 에이리아의 십수 년간의 삶이 돌아오진 않겠지. 그 대가를 치르려 한다.”

“말해 봐.”

“황족으로서의 권한을 반납하겠다. 벨류아드와 같이 평민이 될 것이다. 그리고, 홀로 남겨진 벨류아드를 지금이라도 가르치고 바꿔 볼까 한다.”

“…….”

“네 자비로 살아난 아이다. 어렵게 얻은 두 번째 삶을 허무하게 날리게 둘 수 없다. 그것이 에이리아를 향한 사죄이며, 아버지로서 제대로 의무를 다하지 못한 못난 자가 아들에게 하는 사죄가 될 거다.”

그의 말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 좋은데. 그렇게 되면 멀쩡할 거 같아?”

“뭐?”

“정적들, 많잖아. 평민으로 떨어지면, 그때는 어쩔 건데. 그놈들이 당신을 그냥 둘 거 같냐고.”

“그것은…… 내 업…….”

“그 업보 청산하다가 죽으면, 아들내미는 누가 신경 써 주고. 약속이 다르잖아, 약속이.”

무엇보다 에이리아는 그가 죽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죽으면 안 되지. 누구 마음대로 편해지려고.”

내가 그를 향해 선언했다.

“지금까지 당신이 해 온 걸 그 자리에서 바로잡아. 만약 벨류아드를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면, 그놈에게 내려진 처분은 관대하게 모른 척 해 주지.”

“뭐? 괜찮은 건가?”

“내 사랑하는 와이프의 부탁인데 어쩔까. 져 주는 게 남편인데.”

벨류아드는 공식적으론 죽은 것으로 되어 있는 만큼 다시는 벨류아드의 이름을 쓸 순 없겠지만. 그가 정말로 바뀌고자 한다면 오히려 그 이름은 그에게 방해만 될 것이다.

“중요한 건 당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 이유 없이 박해 받는 수인족들을 이제 당신이 지키는 거야. 그 외에도 당신이 해 온 모든 것을 바로잡아.”

그게 레디미아 황비가 그와 만날 수 있는 조건이었고, 그녀가 바라는것이며, 에이리아가 바라는 것이다.

“그녀의 혼은 곧 떠날 거다. 여기서 이러지 말고 나가서 작별이나 해.”

“당신은?”

“아무리 부인이라고 해도 황실 내부의 일에 더 이상 관여하는 건 영 껄끄러워서.”

나는 망설임 없이 공간을 넘었다. 에이리아는 못해도 며칠 정도 더 머무를 테니 보팔레빗만 호위로 붙여 두고 며칠 뒤에 데리러 가면 될 터다.

* * *

“슬슬 계절도 변하네…….”

하인스 영지로 돌아온 나는 고란왕국의 사후처리로 정신이 없었다.

유일하게 살아 남은 문라이트라는 존재가 있지만 그녀는 이제 살아도 산 것이 아닐 것이다.

“비화야.”

“네.”

“여기서 뭐 하냐.”

내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홀로그램처럼 일렁이는 체스판을 놓고 고민하는 비화에게 물었다.

조율의 여신 비화, 그녀의 상대가 되는 이는 아마 지구의 신인 두 번째 넬타리드이리라.

마주 보면서 붙으면 자꾸 수작질을 부리니 그가 비화를 쫓아낸 느낌이었다.

덕분에 비화가 자리에 앉아 홀로그램 같은 체스말을 건드리면 저쪽에서 자동으로 말이 움직이고 있었다.

단순한 체스라고 하기 보다는 그 안에 신들만의 여러 규칙이 있는 듯하지만 겉보기엔 일반 체스와 다를 바가 없다.

한창 밀리고 있는지 비화의 표정이 좋지 않다.

“저 바빠요 아빠.”

조금만 건드리면 곧바로 넬타리드의 성역으로 넘어가서 놈의 머리통을 뽑아 버릴 것처럼 분위기가 무겁다.

“어쩔 수 없지. 이번 일은 네게 맡기려고 했는데.”

파악!!!

그때였다.

세상 누구보다 진지하게 체스를 두고 있던 비화는 망설임 없이 체스판을 엎어 버렸다.

“그걸 진작에 말했어야죠!!”

그녀의 두 눈은 초롱초롱 빛나고 있다.

그동안 심심한 만큼 재미있는 것을 찾아 헤맨 느낌이 강했다.

“……할 수 있겠냐?”

“아빠. 나 못 믿어요? 나 비화야. 아빠 딸 비화.”

“……오냐 ……실은 하인스 영지내에 기술을 유출한 개자식이 있다.”

내 말에 그녀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신의 힘으로 사기치지 말고 네 재치로 찾아 봐. 에반젤린이나 청단이 홍단이랑 함께 해도 좋다.”

내 말에 비화는 손가락을 가볍게 꺾으며 씨익 웃었다.

“잡으면 어떻게 해요?”

“일단 끌고 오면 돼.”

잘 맡긴 건지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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