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90화
어떤 이유가 있었건 현재 데이비가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고 못을 박으며 절대 유출을 금했던 기술 일부가 유출되었다.
비록 온전하게 사용하는 건 불가능하다 할지라도 그 실마리조차 흘러나가는 것만큼은 데이비가 막아둔 셈이다.
조금만 생각이 깊다면 지금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모르지 않을 터.
툭하면 사고 치기 바쁜 미식연구회나 자신들은 아닌척하지만 크고 작은 사고를 만만찮게 몰고 오는 영지개발부라 해도 쉬이 접근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섣부른 판단을 내리지 않는 것일 터다.
과거 법관들이 하인스 영지에서 개 짓거리를 하다가 데이비에게 법전으로 맞아 죽은 적이 있고 하인스 아카데미에서 귀족들이 자신들의 위세를 이용해 약자를 억압하다 한번 크게 데인 적이 있다는 건 알만한 이들은 다 아는 사실.
하지만 사건은 잊을 만하면 터지는 모습을 보인다.
“돈이 그렇게 좋을까…….”
한숨을 푸욱 내쉬며 정보가 쓰인 서류들을 보던 비화는 고민에 빠졌다.
무리하게 들쑤시면 상대에게 빌미를 줄 수 있다고 말했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한다고 하면 결국 진행은 없는 법이다.
대부분의 그림자가 외부 정보를 수집하고 유출된 기술을 파괴하는 데에 모든 여지를 쏟고 있는 만큼 내부의 정보 수집력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었다.
“다리안. 넌 이 누나의 고충을 아니?”
아장아장 걸어 다니며 비화에게 팔을 뻗어 올리는 다리안을 안아 들고 품에 끌어안은 비화가 한숨을 내쉬었다.
“꺄우! 꺄아!”
“얌전히 좀 있어. 우리 동생 기운 좀 보충하자.”
비화가 그를 꼭 끌어안자 갑갑한 게 싫은지 다리안이 버둥거렸지만, 비화는 우울한 표정을 풀지 않은 채 다리안을 품에 안고 얼굴을 비볐다.
“정작 기술에 관련된 이들은 알리바이가 명확했지…….”
하인스 영지의 기밀인 만큼 그것에 대해 자세히 아는 이는 드물다. 실제로 관련 시설에 접근할 권한을 가진 이들은 이미 미식연구회 쪽에서 정보를 입수해 알려온 참이었다.
정작 관련된 이가 아니라면. 누가 하인스의 기밀이 담긴 곳에 침입해서 정보를 빼돌린 것일까.
솔직한 말로 말도 안 된다 생각하는 가설이었다.
그녀가 외부가 아닌 내부의 유출자를 의심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아우…… 꺄아!”
너무 집중한 탓일까. 결국, 싫다며 울먹거리는 다리안과 눈이 마주친 비화가 떨떠름하게 웃으며 그를 천천히 내려주었다.
“미안해. 다리안. 누나가 좀 심했지?”
“흐어어엉!!”
최대한 부드럽게 물어보지만, 다리안은 결국 울음을 터뜨리며 비화의 몸을 투덕투덕 때렸다.
그래 봤자 어린아이의 주먹이니 아플 리도 없지만 말이다.
다리안의 귀여운 투정을 받아주다 보니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을 받은 그녀는 천천히 그를 품에 안아 들었다.
“다리안. 누나랑 같이 까까 먹으러 갈까?”
“까…… 까까?”
“응. 까까.”
“응! 아…… 아니 시어!!”
제법 말문도 트였는지 자기 의사 표현도 제법이다.
“정말 싫어? 아벨도 저렇게 먹고 싶어 하는데?”
그 말에 고개를 돌린 다리안은 눈을 반짝이며 요람에서 팔을 허우적거리는 제 동생을 본다.
그러더니 울먹거리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인다.
“역시 우리 동생은 천재가 틀림없어.”
두세 살의 아이치고는 정말 판단이 빠르다며 대견해 하는 그녀였다.
“어휴…….”
그때 그녀의 귓가에 한숨 소리가 들려온다.
“응?”
갑작스러운 소리에 놀란 그녀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말똥말똥한 눈으로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는 다리안에 물었다.
“다…… 다리안. 방금 한숨 소리…… 네가 한 거 아니지?”
한창 장난감을 가지고 입에 물고 장난을 치던 다리안이 무구한 눈동자를 그녀에게 보내며 꺄르륵 웃었다.
“자! 자!”
그래. 잘못 들은 거겠지.
비화는 다리안을 품에 안은 채 저택의 주방으로 향했다.
이곳이 만들어진 직후 자리에 들어서서 지금까지 주방을 지탱해온 주방장의 터.
듣자 하니 고향으로 내려가기 위해 일을 그만둔다 하였던가. 그녀와 하인스 주방장 사이에 이렇다 할 인연은 없다지만 검으로 존재할 때부터 그가 어린 다리안이나 에반젤린을 위해 여러 간식을 만들어주거나 데이비가 어떤 이벤트를 준비할 때마다 물심양면 도와준 고마운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미묘하게 시원섭섭하네.”
담백한 향이 느껴지는 주방에 들어서자 새하얀 옷을 입은 덩치 큰 사내가 이리저리 소리치며 무언가를 준비하는 게 보였다.
“내가 곧 간다고 풀어지지 말고 똑바로 하라고! 어이 넬슨! 감자 표면을 누가 이따위로 두껍게 깎으랬나! 감자를 키운 이들에게 미안하지도 않나!!”
“죄…… 죄송합니다!!”
“이봐! 핀! 내가 수프를 그렇게 센 불에 조지지 말라고 했을 텐데?! 빌어먹을 네놈이 만든 이 닭고기는 무슨 피닉스라도 되나?! 불에 탄 채로 아주 살아 다니겠구나!!”
주방장 맥거프는 호통을 잘 치기로 꽤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만큼 실력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의 밑에 있는 사람들은 아마 죽을 맛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맥거프 씨.”
“음? 아아! 아가씨. 무슨 일이십니까?”
“다리안과 나눠 먹을 과자가 조금 있을까요?”
“아유, 당연히 있죠.”
조금 전 조수들에게 호통을 치던 이와 동일인물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살갑게 대해주며 미리 준비해둔 것으로 보이는 과자들을 꺼내는 그였다.
“조금 있다가 정리가 되는 대로 사람을 시켜 보내겠습니다.”
“그래 주면 고맙죠. 아 참.”
비화가 그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맥거프 씨. 일을 그만두신다고…….”
“아…… 네, 죄송합니다만…… 그렇게 되었습니다.”
“고향으로 가시는 거죠?”
“네. 가족들과 너무 오래 떨어져 지냈기 때문에 이제라도 가족의 곁을 지키려고 합니다. 작은 가게를 하나 열고 말이죠.”
그의 미소에 비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긴 해도 고마운 사람이다. 그가 결정한 것을 막는 것은 안 될 말이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하하. 감사합니다.”
영지의 영주가 악랄한 인간이라면 그의 사표를 수리해주지 않으려 하는 이도 제법 될 것이다.
실제로 그런 사례가 제법 있으니까.
하지만 데이비는 온전한 사유와 계약에 위배되지 않는 이상 일을 그만두는 건 전적으로 본인의 선택을 존중하라고 말했던 만큼 그의 퇴직 자체를 막는 이는 없었다.
“한데…… 고민이 있으십니까 아가씨?”
“네?”
“아뇨. 표정이 많이 심란해 보이셔서…….”
“별거 아니에요. 그냥, 도둑이 들어서요.”
“도둑이요?”
“네. 도둑.”
“세상에…… 대체 하인스 영지에 도둑이 들었다는 말씀입니까? 겁도 없지…….”
“뭐, 그렇게 됐네요.”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게 있을까요?”
“딱히 없는 거 같아요. 그래도 곧 떠나신다니까…… 아빠한테 잘 말씀드려볼게요.”
웃음 지으며 그에게 말하자 그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감사합니다. 아가씨.”
“저기…… 맥거프 씨.”
돌아서는 그를 잠시 불러세운 비화가 굳은 얼굴로 물었다.
“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다리안, 가자.”
꺄르륵 거리며 제 뺨을 잡아당기는 앙큼한 동생을 데리고 비화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그 과정에서 다리안이 실례를 하기라도 했는지 울먹거렸다.
그리고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다리안을 침대에 눕힌 후 미리 준비해둔 기저귀를 갈아주던 그녀가 중얼거렸다.
“신경 쓰이네.”
한숨을 포옥 내쉰 비화가 중얼거렸다.
“왜 거짓말을 하지?”
신의 눈이나 그런 건 필요하지도 않았다.
데이비는 이번 일에 일정 이상의 힘을 쓰지 말라는 조건을 붙였으니까.
하지만 보이는 걸 안 보인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물론, 사람이 거짓말하는 정도로 뭐라 할 생각은 없지만, 비화의 눈에 비친 그는 단순히 상황을 얼버무리기 위해 거짓말하는 것과 달랐다. 그보다 조금 더 깊고 어두운.
“다리안. 너는 어떻게 생각해? 누나가 과민반응한 거 같아?”
“꺄르르륵!”
기저귀의 감촉이 간지러운지 깔깔 웃는 동생을 두고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가족을 보러 간다면서. 왜 가족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영혼의 색이 그렇게 어두워지는 건지.
“륀느가 과자를 높게 평가.”
그때 문을 벌컥 열며 들어온 륀느가 한 손에 커다란 과자봉지를 안고 들어왔다.
무표정한 얼굴이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는 그녀는 정말 기회만 생기면 여기저길 쏘다니길 바쁜 인사다.
그래. 그게 무슨 상관이랴.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거짓일 수도 있지. 지금 신경 써야 하는 건 그게 아니었다.
륀느는 기저귀를 갈고 있는 다리안과 아벨이 눈을 반짝이며 그녀를 바라보자 흠칫 놀라 물러난다.
아이의 체력은 골렘, 아니 백익 세피로스조차 겁에 질리게 할 정도인 모양이다.
이후 비화와 눈을 마주친 륀느는 식은땀을 흘리며 무표정한 얼굴로 몸을 돌렸다.
“미식연구회 회의 일정 확인. 륀느가 빠른…….”
“륀느, 동작 그만.”
흠칫 놀라며 굳어버린 륀느를 향해 비화가 한 가지 요청을 했다.
“정보 조사 좀 가능하지? 하나만 알아봐 줘.”
“뤼…… 륀느의 인건비는 매우 비싸다고 보고.”
“지금 이런 일에 신경 쓸 게 아닌 건 아는데, 그냥 넘어가기엔 너무 찜찜해서. 부탁 좀 할게.”
비화의 부탁에 그녀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 * *
기본적으로 미식연구회는 조사를 하는 단체는 아니다.
하지만 그녀들은 미식에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한다. 라는 미치광이 심보를 지닌 이들인 만큼 생각 이상으로 다재다능한 편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정보수집 면에선 엄밀히 말해서 그림자에 비해 떨어지는 게 사실이나 그들은 정보단체가 아닌 만큼 그나마 정상적인 사안이기도 했다.
부장인 유리아는 아무렇지도 않게 스리슬쩍 스며들어 정보를 빼 오는 편이라면 륀느의 경우 조금 과격한 편에 속한다.
전자장치는 그녀가 공명할 수 있기에 유리아 이상으로 은밀함이 가능하다지만 전자장비가 없는 티오니스에서는 륀느의 힘이 상당히 억제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벌써?”
하지만 륀느의 정보수집능력은 비화의 예상을 아득히 넘어서고 있었다.
“정보 종합 완료. 륀느가 보고를 높게 평가.”
“부…… 부탁해…….”
륀느가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떠나고 하루가 지났을 무렵.
마치 마실이라도 갔다 온 양 순식간에 돌아온 륀느는 제법 폭탄 발언을 내뱉었다.
“주방장 맥거프의 가족, 맥거프의 아들, 그리고 동생이 존재.”
“음?”
“현재. 주방장 맥거프의 동생은 사망으로 판정 그 외에 맥거프 아들의 경우 행방불명 상태…….”
“잠깐만…… 이게 무슨 소리야. 행방불명?”
“륀느가 정보 수집능력을 높게 평가. 정보의 신빙성은 매우 높다고 분석…….”
유리아는 지금 상황에 맥거프의 조사를 하는 건 배가 산으로 가는 행동일수도 있다라고 말했지만 찜찜함을 피할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가 했던 거짓말과 마치 도망치듯 일을 그만두는 것에서 어떤 기시감을 느낀 것이다.
“행방불명이라고?”
“납치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
“납치라니…… 대체 누가. 뭐 때문에.”
그 질문에 륀느는 잠시 고민하더니 눈동자를 번쩍였다.
그녀의 눈에 정체 모를 숫자들이 빠르게 왔다 갔다 하며 움직이다가 이내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륀느의 눈에서 옅은 빛이 흘러나오며 저장된 영상이 흘러나왔다.
-지…… 진짜야! 난 그 맥거펜 놈에게 돈을 빌려준 게 전부라고! 그런데 그놈이 돈을 못 갚으니까…… 상부 쪽에 보고했는데…… 상부 쪽에서 그놈에게 뭘 봤는지 빌려준 돈을 탕감하는 것으로 어떤 일을 시킨 모양이야.
화면이 한번 전환된다.
-지…… 진짜 이 이상은 몰라! 맥거펜 놈이 제 형의 아들을 납치한 것까진 아는데 상부 쪽에서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도 모르고……. 응? 맥거펜은 이미 죽었어. 난 진짜 죽인 게 아니야! 상부 쪽이라고! 난 아무것도 모르는…… 으아아악!!!
영상은 륀느가 직접 보며 찍은 것들이었다.
“잠깐만. 주방장은 기밀 연구시설에 들어갈 수 있던가?”
“불가.”
“하지만 접근은 할 수 있지?”
“륀느가 그렇다고 보고.”
“……설마…… 이번 범인은…….”
“이유가 없다고 분석. 맥거프는 하인스의 충신.”
“아들이 잡혔다면서. 지금 네가 보여준 정보에 따르면 맥거프의 망나니 도박중독자 동생이 평소에 제 형이 하인스의 주방장이라면서 거드름을 피웠다고 했지.”
중간중간 영상에는 분명 그런 언급이 있었다.
“그럼 저 고리대금업체의 상부에서는 그 사실을 이용해 맥거프가 정보를 빼 오도록 아들을 납치한 거 아니야? 충신이기 때문에 그만큼 의심을 덜 받을 테고, 문제없이 정보를 빼낼수있다고 생각했겠지.”
“가능성은 충분. 하지만 정보의 불균형. 첫째. 맥거프가 기밀에 접근할 권한을 가진 존재라고 추측하기엔 무리수가 많다고 분석.”
그래. 그가 기밀 시설에 접근할 수 있는 것도 엄연히 데이비가 간식이라도 가끔 가져다주라고 권한을 준 것이지 본래라면 불가능하다.
즉. 상대는 이 사실을 알아야 이 모든 일이 성립되는 것이다.
“둘째. 정보를 빼돌릴 수 있다는 것을 안다고 해도 어지간한 조직에서 했다고 하기엔 무리수가 다분.”
“그건 어째서야?”
그 물음에 륀느가 짧게 숨을 내뱉었다.
“하인스와 적대하고 멀쩡할 수 없다는 걸 모르는 멍청이는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없다고 평가. 눈치가 빠른 조직의 경우 이득보다 위험 리스크가 큰 짓을 저지를 이유가 없다고 분석.”
그것도 그렇네.
그럼 대체 뭐야. 맥거프의 일은 이번 일과는 관련이 없는 것일까.
라고 하기엔 너무 아귀가 잘 들어맞았다.
“이렇게 된 이상 맥거프 본인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비화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때였다.
똑똑똑.
갑작스러운 노크 소리에 비화가 고개를 돌린다.
“아가씨. 주방장 맥거프입니다.”
맥거프의 등장에 서로 눈치를 보던 비화와 륀느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비화는 들어오라 말했고, 눈치를 살피듯 들어온 맥거프는 천천히 들어와 그녀를 본 뒤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았다.
현재 하인스 영지 내에 최고위 직급은 그녀였다.
데이비나 페르세르크. 일리나를 포함해 모두가 다른 곳에 있는 만큼 영지를 관리하는 최종 권한자는 그녀나 다름없었다.
“맥거프 씨? 이게 무슨?”
“죽여주십시오. 아가씨…… 아무리 그래도 해선 안 될 짓이었는데…… 더는 제 죄책감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무슨 말이죠?”
“소식을 들었습니다. 하인스 내부에 기밀을 유출한 자를 찾고 계시다고…….”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맞아요.”
“그 범인은…… 바로 접니다.”
그 말에 륀느와 비화가 살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정말로 맥거프가 이번 일과 관련이 있었던 것일까.
확실히 그가 범인이라면 여러 면에서 조금 이상하긴 해도 대부분이 아귀가 들어맞는다.
이에 비화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짓는 그 순간이었다.
“어휴…….”
어디선가 익숙한 한숨 소리가 또 들려왔다.
이에 깜짝 놀란 비화가 이리저리 고개를 돌린다.
눈에 보이는 것은 아벨을 꼭 끌어안은 채 잠든 다리안뿐인데.
이전에도 비슷한 한숨 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하고…….
복잡한 심경을 뒤로한 채 비화는 공사를 철저히 구분했다.
“주방장 맥거프. 지금 한 말에 책임질 수 있나요?”
“예. 본래는 도망치려 했습니다만…… 도저히 제게 신임을 주셨던 대공님과 대공비 마마. 그리고 공녀님들께 거짓을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부디, 죽여주십시오!”
그의 자수에 륀느가 입자를 뭉쳐 구속구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비화는 뭔가 다른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아니길 바랐는데…….”
“죄송합니다. 아가씨…….”
비화는 차가운 표정으로 맥거프를 보며 천천히 물었다.
“기밀 유출. 그것도 상위에 위치한 기밀인 만큼 그 죄가 얼마나 큰지는 모르는 건 아니겠지?”
“알고 있습니다. 죄는 달게받겠습니다. 하지만. 제 아이는 다릅니다…… 부디 제 말을 들어주실 수 있으신지요…….”
죄인의 입장이 된 상황에서 무언가를 들어줄 거라 생각한 것일까.
비화는 차가운 얼굴로 다리를 꼬고 말했다.
“들어는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