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01화
현재의 넬타리드는 전대의 넬타리드와 달리 아직 미숙했다.
존재해온 시간이 극도로 짧은 것이야 전대의 기억을 흡수하여 어느 정도 커버를 할 수 있다지만 그는 전대와 달리 감정이 명확하게 존재하는 신이었다.
그것도 역대 어떤 신들보다 더 명확하게.
비화와 현재의 넬타리드는 그런 존재였다.
“이런 감정이 언젠가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그건 반대로 보아도 결국 똑같은 상황일 터.”
실제로 넬타리드의 입장에서 이러든 저러든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 비화가 꾸민 이 계획에도 어느 정도 찬동했다.
겉으로는 인간의 의식과 혼에 관한 조율을 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 외에도 여러 이유가 분명 존재할 터였다.
“신기한 세상이지.”
저 멀리 거대한 핵을 앞에 두고 공명하고 있는 선배, 비화를 보며 넬타리드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넬타리드 이상으로 감정이 풍부한 여신.
귀여운 외모에 장난기가 있어 보이는 입매를 보면 저건 여신이라고 하기보다는 생명체의 기준으로 놓고 볼 수 있는 정말 짜증 나는 누나를 보는 기분이었다.
그러던 중 문득 넬타리드는 미묘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소멸한 심연의 신 타나토스나 전대의 반쪽인 파괴는 굉장히 감정적인 존재가 아니었던가.
선대 넬타리드는 감정은 존재했으나 극히 희미한 존재였었다.
“선배님.”
의문이 생긴 넬타리드는 비화에게 물었다.
“왜. 나 집중 중이야. 바빠.”
“선배님은 데이비 올 라운과 함께 오랜 시간 함께해오셨지요.”
“그래서?”
“타나토스나 제 선대의 반쪽과도 보셨겠지요.”
“왜 아니겠어. 아빠가 나를 휘둘러서 그 둘을 작살냈는데.”
“선배님이 보신 그 두신은. 감정이 없었습니까?”
그 말에 손을 휘젓던 비화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받아들이기 나름 아닐까? 파괴는 파괴의 충동에 굉장히 충실했어. 그 중간중간에 좀 미묘할 정도로 감정적이긴 했지만…… 애초에 온전한 신이라고 하기엔 넬타리드의 파편 같은 반쪽이었으니까 다를 수도 있지.”
“그렇다면 타나토스는요?”
“타나토스는 외곽차원에서 인간들을 가엽게 여겨 그들을 살린 전적이 있어. 그 대가로 타락했고. 단순히 생명체를 위해 신격들을 희생시키는 당시의 신들을 생각하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효율적인 신들의 행동을 놓고 보면 이상한 게 많지?”
“그럼 그도……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는 뜻인가요?”
“진실은 본인만 알지 않을까? 미친 후에 감정이 생겨난 거라면 과거 그의 행적이 말이 안 되고. 그전부터 있었다면…….”
말 그대로 타나토스는 프리아 여신의 실험체였다는 소리인데.
그 당시의 여신을 생각하면 마냥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게 뭐가 중요해. 지금 와서 많이 변한 게 중요하지. 잘 들어. 너나 나나 타락할 거 같으면 후대를 만들고 안식에 들어. 그게 우리가 감정을 얻은 의무야.”
“저는 상관없습니다만 선배님이 걱정이군요.”
“뒤질래?”
비화가 입을 삐죽였다.
“그보다. 이 성인게임. 대체 왜 넣은 거야. 스토리 좋은 건 알겠는데. 꼭 이런 게 필요해?”
비화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말했다.
남녀 간의 관계를 인지는 하되 잘 이해하지 못했던 초단이와는 달랐다.
“선배님은 남녀 간의 관계에 굉장히 감정적이시네요.”
“난 초단이 그 멍청이랑 다르니까.”
“어쨌든 대답이나 해.”
“그거…… 잘 모릅니다. 그냥 있길래 넣었습니다. 선배님 말대로 참 굉장한 이야기였으니까요. 뭣보다. 이제 와서 깨달은 건데 그 게임도 정확하게 말하면 저기 있는 선명한 거품 세계와 동일한 겁니다.”
“프리아 여신님이 만들었다고 추정되는 것들?”
“일단은요.”
성인요소를 제하고 봐도 굉장히 만족스러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어휴. 너 때문에 내가 앓는다 앓아. 난 이제 좀 쉴 테니까 이거 관리 잘해줘.”
“알겠습니다. 선배님.”
“난 간다.”
“선배님.”
뒤돌아서서 가려는 비화에게 넬타리드가 낮은 음성으로 불렀다.
“왜.”
“선배님은 제가 그래도 말을 터놓을 수 있는 유일한 분입니다. 타락하지 마십시오. 타락해서 안식에 드시면 저는 데이비 올 라운 그를 막을 자신이 없습니다.”
“……뭐래 멍청이가.”
비화는 사라졌지만, 넬타리드는 선대의 기억 속에서 느낀 하나의 이질감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다른 미래. 완전히 독자적인 세계가 되었다고 하던. 데이비의 아들 아벨 올 라운이 넘어왔던 미래를 말이다.
애초에 평행세계라는 건 프리아 여신의 관할. 신인 그조차 아는 것이라곤 동전의 반대편이라는 사실밖에 모른다.
평행세계는 존재하지만, 그곳은 그만한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습니다만. 불안해서 말입니다……그리고, 또 한 명 그때 아벨이 말했던 이들 중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이도 하나 있었고요.”
넬타리드는 제발 자신이 생각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지지 않기를 프리아 여신에게 빌었다.
“제발. 다리안이…… 타락한 선배님을 죽이고 신성을 흡수한 게 아니기를…….”
매번 싸운다 해도 넬타리드에게 가장 가까운 이는 역시 비화였다.
씁쓸한 마음을 어찌할 바 몰라 혼란스러워하던 넬타리드였다.
그때였다.
-아아. 신이시여. 나의 신이시여. 당신의 어린양. 단팥빵 요구! 매우 요구! 신관들이 못 먹게 막으니 은총 좀 짱짱하게 내려주세요!
“후우…….”
아가사!!!
지구에 있는 데이비의 제자이자 넬타리드교의 성녀. 아가사의 끔찍한 기도에 넬타리드는 하던 생각을 멈추고 머리를 감싸 쥐었다.
* * *
비화가 다시 구현한 기술, 에반젤린의 의도하지 않은 광고 콘텐츠. 그 외에도 초단이가 선보인 굉장한 스토리 몰입력이 있던 게임까지.
많은 이들의 관심과 기대를 한몸에 받은 가상공간은 하루가 다르게 굉장한 인기를 끌었다.
한 번도 써보지 못했으나 다른 이들에게 듣기만 했던 이들이나 과거의 그 생생함과 자유로움을 잊지 못해 다시금 빠져들고 싶어 하는 이들까지.
그 인기는 다양성을 더하며 이전 이상으로 점점 인기를 부풀려 나갔다.
당연히 지구에선 과거에서도 들먹였던 여러 문제점을 들고 일어난 탓에 서비스가 불가능한 국가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국가는 과거 앓았던 성장통이 있었기에 어렵지 않게 다시 가상공간을 허용했다.
당연 그로 인해 신성 그룹과 알하자드의 개인 기업의 주가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건 당연한 결과였지만 말이다.
실제로 게이머 출신이었던 시우는 한창 가상현실에 빠져 살기 시작했고, 그림을 그리는 스트리머 절제도 가상공간 내부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게임을 즐기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가상현실이 개봉된 지 약 한 달.
평화와 번영이 있는 하인스 영지의 영주성 근처에 있는 미식연구회 부서의 건물에서는 영지 최고의 사고뭉치들이 작당을 하고 있었다.
“때가 왔답니다.”
“뭐가 왔는데?”
“비화 아가씨가 만들어낸 가상공간 말이죠!”
유리아는 접속장치로 추정되는 소형장치를 들어 보였다.
그동안 비화가 접속장치의 간소화를 위해 만든 장비로 아직 세간에 나오진 않았지만, 완성도는 이전보다 좋은 물건이었다.
“륀느가 신력을 높게 평가.”
“오늘은 게스트도 모셔왔답니다.”
유리아는 자신만만하게 말하며 로브를 입고 들어선 세 여성을 소개했다.
바로 주기적으로 놀러 오는 일본 출신 신성 그룹 소속 상위 각성자. 코오나.
그리고 데이비의 심복이라 스스로를 자처하는 천족 레이나였다.
“그 사람은요?”
레이나와 코오나가 동시에 한 사람을 지목한다.
“은공이 여기 없답니다.”
“그럼 돌아갈게요.”
“저도.”
사실 데이비 말곤 관심 없는 둘이었기에 유리아의 계략을 무시하고 돌아가려 했다.
“정말로 가시게요? 아주 좋은 기회라 생각한답니다.”
“어째서죠?”
“실은 비화 아가씨께 부탁해서 가상공간 하나를 할당받았거든요.”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듯 돌아서서 유리아를 바라보는 코오나와 레이나의 모습에 유리아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가늘게 뜬 시선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고 천천히 다가가 귓가에 무언가 속삭였다.
물론 그 소곤거림을 륀느나 점순이는 들은 모양이다.
“내가 장담하는데. 쟤 조만간 또 매달린다.”
“데이비 님은 생각보다 무르다고 분석. 유리아는 크게 혼나야 한다고 판단.”
“저 봐. 또 뱀처럼 요사스럽게 꼬드기는 거. 저 둘은 기회만 엿보는 거 같은데 안 넘어가고 배겨?”
처음엔 심드렁해 하던 두 사람이었으나 어느새 반쯤 넘어온 표정이다.
“정말 쓸데없다고 륀느가 분석.”
“그렇지 진짜 위험하고 쓸데없는 짓이지.”
“하지만 그렇기에 재밌다고 륀느가 분석. 륀느의 감정회로가 빠르게 순환. 이것을 흥미라고 평가.”
그렇기에 더욱더 재미있다.
점순이는 이제 와서 지금의 상황을 즐기는 수준에 이르렀다.
굿판은 유리아가 벌리고 륀느와 점순이는 적당히 즐기면 되는 일이다.
“뭐. 이전에 혼난 뒤로 쟤도 좀 자제하는 편이고. 적당히 끊겠지.”
한때 선을 넘을뻔한 일 때문에 페르세르크에게 혼나고 훌쩍거리던 유리아였지만 저 뻔뻔한 엘프는 금방 다시 자기 페이스를 되찾았다.
“그동안 저희가 요리 재료를 모으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던가요. 어렵게 구한 재료로 만든 요리를 한 번밖에 맛보지 못해 얼마나 고생했던가요! 이제는 아무 걱정 없답니다!”
그녀가 손뼉을 치자 륀느가 담담하게 일어나 어딘가로 향했고 제 키보다 큰 박스 더미를 가져와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이곳에 온 이들에게 전부 해당하는 접속장치였다.
“가상현실기기…….”
“맞아요. 다만 제가 할당받은 가상공간은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주기적으로 새로운 정보를 추가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공간은 아니에요.”
유리아가 익숙하게 장치를 머리에 쓴다.
이에 코오나와 레이나는 서로를 보다 익숙하게 그것들을 머리에 썼다.
두 사람 모두 지구에는 자주 가는 편이기에 익숙한 편이기도 했다.
이윽고 미리 준비된 거대한 주방 같은 공간에 소환된 네 사람은 먼저 들어온 유리아에게 물었다.
“그래서. 여기서 뭘 하면…….”
“이곳에는 평소 구하기 어려웠던 재료들을 무한정으로 공급받을 수 있답니다. 물론, 전부 허상에 불과하지만 맛 정도는 구현할 수 있지요.”
단점은 허상에 불과한 공간이기에 현실과는 어느 정도 괴리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유리아를 제외한 이들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눈앞의 이 미식 싸이코는 절대 이곳의 괴리감을 용납할 엘프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실제로 괴리감이야 최대한 줄일 수 있다지만 새로이 만들어내는 것이 제대로 맛을 구현할 수나 있을까. 구하기 힘든 음식 재료의 맛을 그녀가 납득할 것인가.
‘쟤,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거 같지?’
‘륀느가 점순이의 판단을 높게 평가.’
그러거나 말거나 코오나와 레이나는 유리아의 말을 제법 깊게 경청한다.
그녀들을 꼬드긴 미끼는 단순했다.
데이비에게 뭔가 맛있는 걸 대접해보고 싶냐고. 혹여 그렇다면 미숙한 솜씨로 만든걸 대접할 것이냐. 영지 최고의 미식가인 유리아의 도움을 받을 것이냐.
사실 륀느나 점순이의 입장에선 사달이 난 적이 있기에 조심스러웠지만, 유리아는 괜찮다는 듯 말했다.
“음…… 감촉이나 향이 살짝 괴리감이 들긴 하지만 큰 문제는 아닌 거 같네요. 연습하기 딱 좋겠어요.”
코오나의 말에 레이나도 식칼을 빙그르르 돌려보고는 견본으로 내어진 감자를 빠르게 채 써는 데에 집중한다.
“저기. 유리아. 이거 괜찮은 거 맞지?”
“그렇답니다. 오히려 은공께서 부탁하신 일이니까요. 전에 코오나 양이 무리하게 시도한 음식을 먹었다가 꽤 고생하셨다고.”
레이나의 경우 데이비를 향한 집착이 마냥 연정이라고 하긴 애매하지만 코오나는 말 그대로 소녀의 감성 그대로 데이비를 마음에 품었다.
그녀가 맺어질 사람은 다른 이라는 것을 알아도 어차피 다른 미래인 만큼 그렇게 되리란 보장도 없지만 말이다.
그런 코오나가 데이비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한 것 중에 하나가 간혹 도시락을 싸 들고 오는 것이다.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데이비가 마음을 줄 리가 없음을 알아도 그녀는 마치 자기 마음이 다 털어내자고 스스로 체념할 때까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은 알지만 괜한 희망 사항을 주기보다는 단호하게 쳐내는 게 맞지 않는가.
페르세르크는 그리 말했지만, 코오나는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다.
후견인이 되어준 데이비에게 이 정도 보답도 못 하냐며 오히려 뻔뻔하게 나오니 황당하면서도 그래, 어디 한 번 해봐라 라는 마인드가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코오나 본인이 다른 건 몰라도 제발 그러지 말아 달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데이비가 허락했다면야, 문제없지.
무표정의 륀느와 다르게 점순이는 마음속에 남아 있던 응어리가 한 번에 날아간 상쾌함을 느꼈다.
“유리아. 본래 목적을 공유할 것을 요청.”
륀느는 쉬이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음, 이거 보이시나요?”
유리아가 배시시 웃으며 손을 허공에 젓자 신기한 빛을 내뿜으며 반투명한 창이 드러났다.
“이번 연구 테마는 과연 음식에 사람의 감정이 영향을 미치는가. 그걸 연구해볼 거에요.”
“무슨 말이야 이게.”
“병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아나요?”
유리아의 뜬금없는 질문에 점순이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야밤에 근무 끝내고 와서 간간이 먹는 야식을 가장 맛있게 꼽는답니다. 즉, 먹는 장소, 상황. 그 사람의 감정에 따라 음식의 맛이 다르게 느껴지는 거죠. 제법 흔한 이야기죠?”
유리아의 말은 확실히 들어본 적 있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요리를 만드는 사람의 감정이 영향을 미치는지. 맛이 달라질 수 있는지. 한번 조사해보는 건 제법 흥미롭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구분…… 아 설마…….”
“네. 여긴 가상공간이죠. 상대의 감정 여파를 비화 아가씨의 도움으로 구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놓았어요.”
정확하게 분석할 순 없지만 제법 효과는 있을 것이다.
“집념 하나는 대단하네…….”
“그리고…….”
유리아는 바닥에 놓인 자루를 꺼내 들었다.
그 안에는 폭탄 열매가 들어있었다.
“그건…….”
“밖에서 사고 치면 매달리게 될 텐데. 이런 위험한 식재료를 밖에서 실험하기도 애매한 것도 있고요.”
겉보기엔 정말 아무 문제 없는 것 같다.
사고도 안 치고 간단한 조사만 하는 것. 피실험자에게도 이득이 되는 윈윈.
정말 아무 문제 없어 보이지만…….
어째서인지 이렇게 끝날 리가 없는데? 라는 의문이 들게 만든다.
지금까지 이런 적은 없었다.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반응하는 것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이후 유리아는 사고는 치더라도 영지 최대의 식문화 개발부장임을 여실히 드러내며 압도적인 역량을 보여주었다.
실제로 맥거프를 대신해 새로이 들어온 라운 왕실 출신의 주방장이 유리아의 연구 성과들을 보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는 소문이 괜히 나도는 게 아니었다.
허우적거리던 코오나나 레이나에게 제대로 된 조미료 사용법과 요리법을 가르쳤고. 처음엔 버벅거리던 코오나와 레이나가 제법 그럴듯한 음식을 내놓게 만들었다.
하지만 륀느와 점순이조차 광기로 가득 찼다고 증언할 유리아가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어…… 때요?”
우아하게 요리를 맛본 유리아가 냅킨으로 입을 닦았다.
그리고는 예쁘게 웃으며 말했다.
“두 분 다 5점 드리겠습니다.”
“10점 만점이요?”
“무슨 소리세요. 100점 만점이지. 어딜…….”
덜컹!!
“어?”
“갑자기 두 사람이 서 있는 바닥이 꺼지며 그대로 추락해버리는 것을 보며 유리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떨어지는 레이나가 황급히 날개를 펼치지만, 이곳은 현실이 아니다.
“꺄아아아아악!!”
결국, 그대로 낙하해버린 그녀를 유리아가 다시 끌어올리는 데에 걸린 시간은 약 5분이었다.
상당히 창백해진 얼굴로 올라온 두 사람은 몸을 파르르 떨며 유리아를 바라본다.
“이게 무슨…….”
“그런데. 이건 어떻게 할 거야. 다시 만들면 이건 누가 먹어. 아무리 가상이라도 음식을 버리는 건 네가 용납 못 하는 거 아니야?”
그러거나 말거나 유리아는 어딘가로 연락하는 듯하더니 누군가를 불러왔다.
미리 이야기가 되어있었는지 곧바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름 아닌 달의 숲의 꼬마 하프 엘프. 뮤우였다.
“언니!”
“뮤우. 어서 오세요. 자. 여기 뮤우가 먹고 싶어 하는 맛있는 요리니까요.”
“와! 나 먹어도 돼?!”
“그럼요. 원 없이 먹게 될 거에요.”
그 말에 뮤우가 양손에 식기를 들고 오물거리며 두 사람의 요리를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자. 다음 요리가 곧 나올 테니 기다리세요. 그동안 밥투정 많이 했죠? 여기선 먹고 싶은 거 원 없이 먹어도 된답니다.”
“진짜지?!”
“그럼요. 자. 어서 두 분은 다시 한번 요리를 해보세요. 최소 70점을 넘기면 합격점을 드릴게요.”
점순이와 륀느는 입을 모아 말했다.
“쟤는 사고 안 쳐도 광기가 철철 넘치네.”
“륀느가 애도를 높게 평가.”
한 시간 뒤.
바닥에 쓰러진 채 꿈틀거리는 뮤우와 마찬가지로 쓰러진 채 요리에 대한 극심한 트라우마를 드러내는 레이나와 코오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