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02화
-적당히 먹여라. 애 체한다.
“그동안 뮤우가 얼마나 투정을 부렸는지 직접 보셨다면 절대 그런 말 못 하실걸요~”
유리아는 데이비와 연결된 통신을 통해 현 상황을 보고했다.
-휴…… 됐다. 뮤우가 요즘 반찬 투정이 심하다곤 계속 들어왔으니까. 그런데 보통 반찬 투정을 하면 굶기지 않나?
“음식을 먹지 못하는 건 끔찍한 일이에요. 은공. 혼내더라도 먹여서 혼낼 거랍니다.”
애초에 뮤우의 교육은 유리아의 소관. 그렇기에 데이비는 그 이상의 간섭은 하지 않았다.
다만 뮤우의 밥투정에 대한 이유 전반이 그녀의 괴랄한 미각 때문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후에 제2의 유리아가 나타나는 건 아닌지 조금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그보다 그 둘은 좀 잘 부탁한다. 후견인이 돼서 너무 신경 쓰지 않은 거 같아서 밥은 먹고 다니는지 걱정이었는데.
“걱정 마세요. 은공. 물론, 그 과정에서 데이터를 조금 뽑아내는 건 있지만 두 분 모두 어딜 내던져놔도 밥은 든든하게 먹고 다닐 수 있는 분으로 만들어 놓을 테니. 게다가 이전의 일도 있고…….”
-너무 신경 쓰지 마라. 네가 인지하고 있으면 나는 믿을 테니. 그보다. 혹시 사고 치는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여기서 사고가 터져봐야 바깥엔 영향이 갈 리가 없지 않나요? 저로선 버려지는 식재료가 없다는 게 너무 만족스럽답니다.”
제법 만족해하는 유리아를 보며 데이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광기 충만한 또라이에 이번 의뢰의 대가로 그녀들의 정신 감정 그래프를 측정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이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남에게 피해를 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거의 병적으로 편식하지 않을게요를 남발하는 뮤우나 잘 되지 않는 요리 때문에 점차 기이한 시도를 하기 시작하는 두 여인의 모습은 애써 무시한다.
-믿어도…… 되는 거겠지?
“실제로 두 분의 실력은 이제 어디 가서 맛없다는 소리를 듣는 정도까지 얼마 남지 않았고, 뮤우는 편식하면서 매번 골라 먹는 것들만 먹였으니 아마 트라우마 때문에라도 전보다는 확실히 적게 먹을 거예요…….”
방법이 너무 극단적인데.
“은공께서 그런 생각을 하시면 안 되죠. 그리고 뮤우가 맛있는걸 먹기 시작하면서 체형 밸런스가 약간 비틀렸으니 조절해주지 않으면 나중에 울고불고할 테니.”
유리아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모습에 데이비는 떨떠름한 신음을 내뱉었다.
-너무 무리시키지 말고 적당히 해. 아. 그리고.
“네?”
-조만간 네가 요청한 식재료. 구해줄 수 있을 거 같다.
“꺅! 정말이신가요?! 그거 기대되네요. 우후후후…….”
유리아에게 최고의 보상은 그녀가 본 적 없던, 그것도 정말 구하기 힘들었던 식재료였다.
극도로 구하기 힘들거나 하나밖에 없는 식재료를 써보지도 못하고 보관만 해야 하는 건 그녀에게 있어서 지옥과도 같은 고민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가상공간에 그녀가 가진 물건의 데이터를 대입시켜 가상공간 내부에서 복사할 수 있다는 건 굉장한 이점이었다.
실제로 과거와 달리 현재 지구에서는 요리 실습을 가상현실로 구현해달라는 요청이 신성 그룹 측에 들어오고 있다는 모양이다.
그 외에도 군사훈련 쪽도 관련이 있지만 그걸 정하는 건 이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알하자드와 현아이기에 데이비나 유리아가 신경 쓸 문제는 아니었다.
“아 참. 은공.”
-뭔데.
“하인스 아카데미 측에서 이걸로 교수직을 해볼 생각은 없냐고 앨리스 교수님이 요청서를 보내셨어요.”
-보긴 봤는데. 안돼.
가상공간을 마법으로 재현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게 가능한 건 극소수의 초고위 마법사뿐이다.
게다가 설사 구현한다 해도 비화의 가상공간 같은 현실감과는 확연히 동 떨어질 터였다.
“아쉽네요. 그럼 결과는 나중에 보고하겠습니다아. 그런 점에서 예산을 좀 더…….”
-수고하고.
“아앗! 은공!”
* * *
유리아의 보고를 마친 나는 반사적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유리아는 만족스러운듯하지만, 비화가 만들어낸 가상공간은 아직 불안정하다.
아마 유리아에게도 여러 부작용을 느끼게 할 터. 오래 쓰진 않겠지.
“이건 됐고.”
남은 사안은 이제 활성화되기 시작하는 가상공간의 여러 콘텐츠를 통해 마족이라는 존재에 대한 이미지를 조금 개선시켜두는 것이다.
비화의 말마따나 마족이 인간에게 문제없이 녹아들기 위해선 최우선으로 이미지의 개선이 필요했다.
그런 점에서 지구는 티오니스에 비해 여건이 좋은 점이 많다.
그 외에도. 비화가 만든 가상공간을 잘 이용한다면 인식을 바꾸는 것 정도야.
“데이비, 표정이 왜 이리 얄미운가.”
“페르세르크.”
내가 담담하게 말했다.
어차피 지구로 넘어올 수 있는 이들 중 대부분은 그녀가 마왕. 즉 마족이었다는 것을 아는 이가 대부분이다.
“또 무에 헛소리를 하려고.”
“티오니스를 제외하고, 네 정체를 밝힐 생각 없어?”
내 물음에 그녀는 잠시 침묵했다.
“비화가 만든 가상공간으로 마족의 인식을 어느 정도 인지시킨 다음에.”
“나쁘진 않은 방법일 테지.”
그녀가 옅게 웃으며 내 뺨을 쓸어내린다.
“비화가 가상공간을 만든 건 제 재미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널 위해서이기도 해. 이번에 맥거프 주방장의 일을 눈치챈 거 같더라.”
스스로에게 실망했겠지.
그러니 더더욱 노력하려 했을 것이다.
그 과정이 조금 급하긴 했지만, 비화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언젠가 기회가 생길 터.”
페르세르크는 두루뭉술하게 넘겼다.
어차피 그녀가 정체를 지구에 드러내는 건 한참 뒤의 일일 테니까.
“아 참. 깜빡 잊고 말을 안 했네.”
그제야 떠오른 사실을 내가 피식 웃으며 말한다.
“가상공간에 데이터를 복사하면 본래 식재료의 상태가 조금 안 좋아진다고 말했던가.”
유리아가 눈이 돌아가서 등록해둔 식재료 중엔 구하기 힘든 것들도 상당량 존재한다.
수를 늘리되 고점이 떨어지는가.
고점을 유지하되 수를 늘리는가. 그것은 본인의 선택일 터.
가상공간의 구조가 아직 완전하지 않으니까.
“다 기억하고 있어서 일부러 말해주지 않았을진대, 사기 치기는.”
* * *
약 며칠간의 고생 끝에 낙이 온다 하였던가.
첫날, 뮤우의 편식을 고치는데에도 성공하고 며칠간 코오나와 레이나의 요리 실력도 몰라보게 높아진 게 보인다.
처음엔 칼질도 전투적으로 하던 것에 비하면 제법 섬세한 손길이 닿는 것을 보며 유리아는 그동안 이 가상공간에 등록해둔 비싼 식재료를 손질했다.
아직 백지나 다름없던 가상공간인 만큼 정말 구하기 힘든 재료는 알아서 그 데이터를 등록해놓으라는 비화의 말에 조금 의문이 들었지만 상관없었다.
조금 질이 떨어져도 여러 번, 여러 방면으로 시도해볼 수 있다는 메리트는 유리아에게 굉장히 크게 다가왔으니 말이다.
실패하여 재료가 소실되는 디메리트를 완화 활 수 있다는 사실이 이리 즐거울 수가 있을까.
수차례의 연구 과정에서 식재료 본연의 맛이 살지 않는 괴리감은 분명 느껴지지만, 유리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노력 끝에 먹는 본 재료가 주는 극상의 맛이다.
그것만을 위해 유리아는 이 용납할 수 없는 괴리감조차 즐겁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흠흠…… 드디어 때가 왔어요.”
굉장한 향을 풍기며 완성된 요리를 보며 미식연구회원 전원이 눈을 반짝였다.
“륀느의 미각 데이터가 가열 중 이것을 군침이라 평가.”
“본래라면 절대 나올 수 없는 극상의 맛이지요. 가상공간에서 수없이 실패를 거듭해서 만들어낸 최고의 요리랍니다.”
요리의 전반은 채식이 대부분이지만 그건 상관없었다. 미식연구회에겐 맛있다면 채식 육식을 가리지 않으니까.
이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 무려 미식연구회에 할당된 예산의 상당량을 써야 할 정도로 어렵게 구한 것이었다.
고작 먹을 것에 이만한 예산이 든 것이 가히 충격적이지만 그걸 신경 쓰는 이는 없었다.
눈앞에 놓인 황금빛을 내뿜는 음식에 온 신경이 빠져있다.
“잊을 수가 없죠. 이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 그동안 저희가 한 고생을 생각해보는 거예요.”
끔찍한 기억들이 떠올랐는지 점순이와 륀느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우리는 그 역경을 이겨낸 거랍니다. 그리고 마지막 준비가 끝난 후의 결정체라 할 수 있죠.”
유리아가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포크를 집어 들었다.
동시에 륀느와 점순이도 눈을 반짝이며 자신들의 포크를 집어 들었고, 동시에 접시에 놓인 음식을 콕 찍었다.
그리고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입에 넣었다.
‘분명 괴리감이 극심한 그곳에서 느낀 맛도 상당했지요. 아쉬운 부분은 많았지만, 그곳의 괴리감을 예측해서 본래 재료의 향취를 끌어올리는 건 어렵지 않으니.’
분명 맛이 끝내줄 것이다.
“아아…… 이날을 위해 저는 살아온 게 틀림없어요.”
그리 말하며 유리아는 황금빛을 내뿜은 음식을 입안에 살며시 밀어 넣었다.
륀느와 점순이 또한 마찬가지로 그것을 한입에 삼켰다.
하지만…….
“우웁…….”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점순이였다.
유리아는 굳어버렸고, 륀느는 무표정한 얼굴로 주저앉은 채 기계 특유의 떨림이 섞인 목소리를 냈다.
“에러…… 에러…….”
“이…… 이럴 리가 없는데…….”
가장 충격받은 것은 유리아였다.
그녀는 자신의 혀를 끔찍하게 유린하는 이 지독한 맛의 요리를 직접 만들어냈는가에 대한 충격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분필을 먹는 기분이네.”
“맛이 느껴지지 않는 걸 넘어 끔찍한 심각이라고 평가. 륀느가 이것을 낮게 평가…….”
“마…… 말도 안 돼요! 훨씬 질이 떨어지는 재료를 써도 훨씬 맛이 좋을 거예요!”
유리아의 눈이 쉴 새 없이 떨렸다. 실수는 분명 없었다.
요리과정은 충분한 연구를 거쳤고, 조리 자체에도 문제는 없었다.
향도 확실하고 가상공간에서 맛도 분명히 차별이 있었건만. 마치 식재료 자체 본연의 모든 근본이 사라져버린 듯한 이 끔찍한 요리는 도저히 먹어치울 수가 없었다.
아무리 맛이 없어도 음식은 소중한 법이다.
어떻게든 먹어치우려 해도 먹을 수가 없었다.
“우웁…….”
결국, 처음으로 요리를 뱉어버리는 굴욕을 겪고 만 유리아의 표정이 어둡게 죽었다.
“저기…… 유리아. 괜찮아?”
물로 입을 헹궈낸 점순이가 조심스레 묻자 유리아의 눈에서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보다 더 현 상황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욱 분한 모양이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상공간 안에 들어가 있던 레이나와 코오나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뮤우는 첫날 한번 크게 덴 이후로 유리아의 근처에도 오지 않고 데이비를 방패 삼아 숨어버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왜들…….”
“그게…….”
잠시 고민하던 점순이가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모든 게 완벽했는데. 식재료가 갑자기 이상하게 변해버렸다는 사실이었다.
저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 유리아가 한 고생들은 책으로 내놔도 문제없을 정도였다고 하니 그 충격이 가히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그…… 그래도 가상공간 안에는 있으니까…….”
“그건…… 가짜에요. 제 혀는 그런 괴리감이 있는 음식으로 만족할 수 없어요!”
유리아가 구한 식재료는 비록 질이 아득히 떨어지는 비슷한 것이 있는 만큼 비슷한 맛은 낼 수 있다.
가상공간 내부의 그 식재료 또한 일반적인 재료보다는 압도적인 맛을 내지만 극상의 재료 효율을 내지는 못했다.
“잠시…….”
이에 레이나가 한 손으로 귀를 덮으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떴다.
“그 사람에게 물어봤어요.”
“무…… 뭐라고 하시던가요. 은공은!”
유리아가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힘겹게 묻자 레이나가 떨떠름한 얼굴로 사실을 알려주었다.
“가상공간은 아직 데이터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 식재료를 공명시켜서 데이터를 복사 전이시켰다고 했죠?”
“네.”
“그 과정에서 식재료 본연의 질이 많이 떨어지는 모양이에요.”
그 한마디에 유리아의 눈에 색채가 사라졌다.
즉. 다른 말로 하면 고급 식재료를 넣어 가상공간에 등록을 하는 순간 실제의 재료는 사용할 수 없게 된다는 소리였다.
당연히 지금 날려버린 이 고급 식재료 또한 못쓰게 되었다는 소리.
그렇다면 바깥의 식재료를 포기하고 양을 늘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과연 유리아가 납득할 것인가.
어림도 없는 소리.
“흐…… 흐흐흐흐…… 흐흐흐흐.”
주저앉아 눈을 공허하게 뜬 채 양손으로 뺨을 잡고 스산하게 웃기 시작하는 그녀의 광기에 섬찟함에 그녀를 제외한 모두가 흠칫 놀라며 한발 두발 물러난다.
“그…… 그렇단 말이죠? 저는 바보같이 그것도 모르고 이 귀한 식재료를 날려버렸다는 거네요오?”
유리아의 눈에 광기가 서린다.
“아하하하. 세계수 님 맙소사. 내가 이런 머저리였다니. 이런 상황도 경계하지 않았다니.”
그녀의 목소리에 점순이가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까딱였다.
야. 쟤 좀 어떻게 해봐.
하지만 점순이의 필사적인 몸짓에도 륀느는 초연하게 포기한 듯 고개를 저었다.
“용서 못 해…… 용서 못 해!!”
과거 달의 숲에서 보았던 콘 대장로에게도 이렇게 분노했을까 싶을 정도로 격분하며 그녀가 벌떡 일어났다.
“은공은 완전 기억능력자세요! 그런데 그걸 까먹었다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일부러 그러지 않았을까? 평소에 네가 한 짓이 있는데.”
“그것과 이건 달라요! 제 영혼이 뽑혀 나간 기분이랍니다!”
씩씩거리는 그녀는 눈물까지 흘리며 분해했다.
“이걸 얻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데…….”
“유리아. 데이비 님과 적대할 시 륀느 또한 유리아와 적대.”
륀느가 제법 단호하게 말하자 유리아의 서슬 퍼런 시선이 그녀에게 닿는다.
“적대요? 하. 무슨 소리예요. 은공은 은공이에요. 은공을 적대할 생각 따윈 없어요.”
그런데 그녀의 미소가 너무 서슬 퍼렇기 그지없다.
“그럼 대체 어떻게 하려고…….”
“따져야죠! 이건 아니죠! 아무리 은공이라도! 이걸 얻으려고 얼마나 고생했는…….”
덜컹…….
그때 문이 열리며 데이비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에 륀느와 점순이가 침을 꼴깍 삼켰고 유리아의 눈이 서슬 퍼렇게 번뜩였다.
“유리아.”
“네. 은공.”
“오다 주웠다.”
그렇게 말하며 데이비는 작은 상자를 그녀에게 가볍게 던져주었고 데이비를 흘겨보던 유리아는 상자를 열고 눈을 부릅 떴다.
“뭔데. 뭐길래…… 세상에.”
“오오…… 데이비 님 맙소사. 륀느가 데이비 님을 높게 평가.”
유리아는 방금 전까지 색채 없이 공허하던 눈 따위 집어치우고 눈을 반짝였다.
“은공…….”
“그리고, 이건 네가 요청했던 식재료. 이것도 오다 주웠다.”
“세상에!!”
유리아가 눈을 크게 뜨고 데이비를 똑바로 직시했다.
“사랑해요. 은공! 저와 결혼해주세요!! 평생 맛있는 걸 먹여드릴…… 아아아악!!”
그녀의 외침과 동시에 데이비가 그녀의 머리를 콱하고 압박하며 그녀의 비명을 자아냈다.
반면 코오나와 레이나의 표정이 팍 찡그려진다.
“안 그래도 틈이 안 보이는데…….”
“저 싸이코까지…….”
“네가 참아. 쟤 저러는 거 하루 이틀이야?”
가장 크게 경계하는 코오나를 점순이가 애써 말렸다.
“참을 수 없네요. 여기서 잠깐 기다리세요. 은공.”
“왜. 또 왜.”
“은공께서 저를 속이시는 바람에 날려 먹은 음식을 이번에야말로 완성할 테니까요.”
콧노래를 부르며 요리를 준비하는 유리아를 보며 데이비는 한숨을 내쉬고 돌아섰다.
그때 코오나가 데이비의 옷깃을 조심스레 잡았다.
“코오나?”
“그…… 저도 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는 그녀는 천상 요물에 가까웠다.
과거 감정표현이 굉장히 투박하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 사이에 또 뭘 겪은 것일까.
코오나의 이러한 행동에 데이비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잠시 침묵했다.
“아…… 안되나요?”
“……그래 먹고 가자…….”
후견인으로서 그녀를 마냥 멀리할 수도 없는 입장. 게다가 현재 코오나는 단순히 자신의 후견인을 향해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는 입장이다.
괜히 파고들면 자신만 이상해지는 이 미묘한 분위기가 떨떠름하다.
데이비는 자신이 호랑이를 들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미식연구회의 주방은 그야말로 철저하기 관리되는 장소라 할 수 있다.
스릉…….
코오나는 긴장한 얼굴로 손에 쥐어진 식칼을 내려다보았다.
이곳은 그녀의 고향인 지구와 다른 세상. 티오니스인 만큼 그녀에게 있어서 굉장히 익숙함과 거리가 있는 세상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있어서 이곳은 사실상 이제 고향이라 불러도 문제없을 만큼 마음이 편해지는 곳이기도 했다.
가문의 문제 이후 홀로 내던져진 그녀를 후견인으로서 보호해주기로 한 그 사람이 이곳에 있었으니까.
그동안 유리아의 하드코어란 교육 아래에 많은 것을 배운 그녀였다.
비록 유리아가 영지 최고의 사고뭉치이며, 미식에 환장한 광기의 또라이라곤 해도 그 실력을 의심하는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손에 쥐어진 채소들을 천천히 도마에 올려놓고 조심스레 칼질을 시작한 그녀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오래전 목숨이 걸릴 때 이외엔 감정이 잘 드러나지도 않던 그녀였으나 그 사람과 연관되면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고 있다.
언제부터였을까.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자신이 참 역겹다는 생각은 들었다.
데이비가 홑몸도 아니고 아이까지 있는 유부남인데 그런 남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말이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내가 원해서 이렇게 된 것도 아닌데…….”
괜히 억울하지 않는가.
그러거나 말거나 레이나도 데이비에게 무언가 해주고 싶다는 기색을 내비치며 부지런히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
레이나도 어떤 의미로는 그녀와 비슷하지만, 그녀와는 달랐다.
데이비를 남자로서 좋아하는 코오나와 달리 레이나는 연심보다는 집착에 가까웠으니까.
아마 남성 공포증을 옅게 앓고 있는 그녀가 유일하게 편히 대할 수 있는 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하는 그녀였다.
‘뭐가 되었건. 레이나 씨 보다는 더 관심을 받고 싶다.’
그녀는 자신의 생각이 음습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쉬이 그 괴리감을 눈치채지 못했다.
코오나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딱히 나이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닌데. 물론 그가 일반적인 나이 이상으로 정신 나이가 많은 건 알지만 코오나도 조금 특수한 케이스인 건 사실이었다.
그때였다.
코오나와 계약한 신수의 힘이 스며든다.
간간이 미래를 볼 때 느끼던 감각.
그 감각 속에서…….
“아…….”
그녀는 무언가를 보았고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치이이익…….
“괜찮아요? 그거 타는데?”
그때 레이나가 걱정스레 물어왔고 코오나는 황급히 불을 조절하며 물러났다.
“미…… 미안해요. 잠깐 놀라서…….”
아주 잠깐이었다.
붉은 하늘.
붉게 물든 거대한 호수가 늘어진 아름답지만 서글퍼 보이고 스산해 보이는 장소였다.
그곳에서 누워있는 코오나의 입에 입을 맞추는 데이비의 모습이 뇌리에 강하게 비친다.
데이비가 세 부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 그 과정에서 절대로 다른 여인을 마음에 들이지 않겠다고 했다는 건 그녀도 잘 알고 있다.
그녀가 품은 연심은 절대 보답받을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신수의 예지가 절대적으로 들어맞는 건 아니며 데이비 같은 초월자는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다지만 그래도 기대가 되며 부끄러웠다.
그녀는 괜히 화끈거리는 얼굴을 부채질하며 자리에 앉아 미식연구회와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는 데이비를 바라보았다.
괜히 얼굴이 더욱 붉어지는 기분이었다.
물론, 워낙에 충격이 큰 장면이었기에 정작 중요한 다른 것을 보지 못한 그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