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03화
결과만 놓고 말하자면 코오나는 실패도 이런 실패가 없을 정도로 대실패를 해버렸다.
“음…….”
“저…… 죄송해요. 다시 만들게요.”
“아니야. 잘 먹을게.”
데이비가 애써 빙그레 웃어준다.
코오나는 그의 얼굴에 서린 미소가 남녀를 향한 미소 따위가 아닌 아빠가 딸을 보는듯한 시선이라는 것을 깨닫고 마음이 쓰라렸다.
마음은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투정이 계속 흘러나온다.
‘그건 환각이 아니야.’
코오나는 조금 전 그녀의 신수가 보여준 미래를 다시금 되짚었다.
말짱한 기억 속에서 분명히 본 것은 누워있는 코오나와 그런 그녀의 입에 입을 맞추는 데이비였다.
“헤…… 흐헤헤…….”
“야…… 륀느, 얘…… 왜 이래.”
식기를 집어 들고 음식을 먹으려던 데이비가 떨떠름하게 중얼거렸지만, 그곳에 있는 그 누구도 코오나의 심리를 이해하는 이는 없었다.
‘나랑 입을 맞춰줬어…….’
소녀의 감성이 폭발하기라도 하듯 코오나는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코오나를 유심히 바라보던 륀느는 천천히 다가와 쪼그려 앉아 코오나의 숙인 얼굴을 올려다보았고. 푸른 눈동자를 아주 잠깐 반짝였다.
“얼굴의 혈액 순환상태 체크. 현재 특정 감정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고 분석.”
대놓고 사람 얼굴을 보며 심리를 파헤치는 짓을 하고 있다.
“해당 대상 정보 검색. 륀느가 이것을…….”
“그…… 그만!”
잠깐 동안 자신의 기억 속에 빠져있던 코오나는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륀느의 얼굴을 밀어내며 소리쳤다.
“뭐 하는 거예요!”
“륀느가 심층분석을 요청.”
“그…… 그만!”
“륀느의 정보데이터의 확충을…….”
“륀느, 그만해.”
“명령인수…….”
륀느는 결국 물러났다.
코오나는 뭔가 빨개진 듯한 얼굴로 데이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쉴 새 없이 떨리는 눈동자를 가누지 못한 채 허겁지겁 뛰쳐나갔다.
“자…… 잠깐 바람 좀 쐴게요! 불이 너무 세서!”
참고로, 코오나의 요리는 약한 불로 하는 요리였다.
* * *
“헤헤…… 헤헤헤…….”
하인스의 영주성 정원에 있는 정령이 관리하는 작고 예쁜 연못에 도달한 그녀는 계속해서 올라가는 입꼬리를 쉬이 주체하지 못했다.
해태의 미래는 과거와 달리. 엄청나게 미약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다른 미래가 오는 건 아니었다.
“해태…… 해태!”
코오나는 자신이 본 것을 확신하려는 듯 신수 해태를 급히 불러댔다.
“해태!”
하지만 해태는 대답하지 않았다.
늘 그러했다. 해태는 자기 좋을 때를 제외하곤 그녀에게 응답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으니 말이다.
“왜 이럴 때는 안 나타나는지…….”
괜히 심술이 났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다른 문제였다.
“꺄악!”
코오나는 발을 연못에 담그고 양손으로 뺨을 감싸 쥐며 새된 비명을 질렀다.
온 정신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절로 미소가 실실 흘러나오고 온몸을 배배 꼬게 되었다.
“으흠…… 큼! 이…… 이러면 안 돼…….”
평소 이상으로 고텐션에 좋아서 어쩔 줄 모르던 코오나는 자신의 상태가 평소답지 않으며 본래라면 절대 해선 안 될 일임을 다시 상기했다.
자신을 따스하게 대해주는 페르세르크나 에이리아. 일리나를 생각하면 그녀의 이런 생각은 배신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심장은 그녀의 이성을 배신하고 미친 듯이 뛰었다.
그저 본 것뿐인데.
이렇게 기쁠 수가 있을까.
“욕심…… 나네…….”
설사 그렇게 된다고 할지라도 그녀는 스스로를 절제해야 했다.
데이비가 그녀를 허락한다 해도 그녀는 그것을 포기하고 놓아야 했다.
실제로 그녀는 데이비를 연모하지만, 마지막 최후의 선을 넘는 상황이 정말로 왔을 때. 그것을 넘을 자신은 없었다.
그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데이비의 행복을 파괴하는 일이 될 테니까.
“그래도 조금 정도는…… 투정 부려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 입맞춤이 정말로 미래라면. 그 정도의 투정은 괜찮지 않을까. 스스로 생각하고도 역겹다고 느낄 정도의 욕심이 그녀에게 피어올랐다.
“살면서 이렇게 크게 무언가를 바라본 적이 없는데…….”
다급한 것과 깊게 원하는 것은 달랐다.
지금 그녀는 생에 처음으로 단 한 가지를 강하게 갈망했다.
피잉…….
그때였다.
찌잉 소리와 함께 그녀의 머리가 지잉 울리며 정신을 어지럽게 만든다.
“으읏…….”
정체 모를 고주파에 노출된 것처럼 머리가 순간적으로 찌잉 울리는 느낌이었다.
한 손으로 귀를 감싸며 인상을 찡그린다.
강한 소리에 순간적으로 노출되면 몸에 이상이 생긴다는 말은 들은 바 있다.
그 때문일까.
유독 하늘이 높고 붉어 보인다.
“슬슬 가을인데.”
왜 이렇게 하늘이 붉어 보이는지.
마치 거짓말처럼 사라진 소리.
천천히 걸음을 옮겨 영주성 쪽으로 가보자 그녀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요즘 몸이 허한가 봐. 하긴 미래시도 봤으니…… 피곤하겠지?”
미래를 보는 건 그녀의 의도가 아니지만 다른 빈도로 지치는 건 사실이었던 만큼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 * *
데이비에게 희생의 권능을 넘겨준 뒤로 자신의 성역에서 잘 나오지 않는 프리아 여신은 눈을 감고 무언가를 기다리듯 하다 천천히 손을 펼쳤다.
그러자 그녀의 손바닥 위로 푸른빛의 짙은 구체가 생겨났고 이내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후 입술을 달싹이며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낸 여신은 천천히 그것을 띄워 올렸고 그것은 그녀를 떠나 빠르게 흩어지며 사라졌다.
이후 짙은 푸른색의 구체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다름 아닌 넬타리드가 관리하고 있는 가상공간의 핵이었다.
스르륵 하며 가상공간의 핵 안에 스며든 그것은 마치 처음부터 존재했다는 것 마냥 마치 뉴런이 퍼져나가듯 가늘고 수많은 핏줄 같은 것들을 뻗어냈다.
이후 다른 것들과 똑같이 이어지며 공명했고 굉장히 안정적으로 변했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넬타리드가 핵에 간섭한다.
“음? 이건 처음 보는 세계일 텐데…… 여신님이 또 만드신 건가?”
가칭으로 무엇이 좋을까 이리저리 고민해보지만 역시 거품처럼 생긴 공간. 가상공간 안에서 존재할 수 있는 세계였기에 거품 세계라 부를 수밖에 없다.
그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토록 다양하면서 이토록 정교하며 독립된 세계라니…… 흠…… 선배님이 보셨으면 여신님이 꽤 심심하셨구나 했겠군…….”
* * *
코오나는 일단 대뜸 하인스에 눌러앉았다.
신성 그룹에 소속되어있는 그녀였지만 애초에 그녀의 계약은 다른 각성자와 달리 조금 특수한 케이스라 할 수 있었다.
물론 며칠간 코오나의 모든 관심은 대체 그 상황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후웅!!! 파악!!!
가드가 없는 직검을 부드럽고 날카롭게 휘두르며 연무장을 움직이는 그녀의 전신에는 그녀의 힘의 원천이 깃들어있었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겉보기엔 날카로워 보여도 굉장히 집중력이 떨어진 느낌이었다.
“어라? 여기서 뭐 하세요?”
커다란 서류뭉치를 들고 근방을 지나던 요시아가 말을 걸어오자 코오나가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아…….”
“평소보다 집중을 못하시는 거 같던데.”
“그게…… 잠을 잘 못 자서.”
“어디 몸이 안 좋은 거 아니에요? 흐음…… 체향은 오히려 너무 건강한데.”
킁킁거리며 다가오는 요시아의 행동에 코오나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물러났다.
“뭐…… 뭐하시는…….”
“아. 별거 아니에요. 사람이 내뿜는 체향으로 상태를 볼 수도 있어서. 겉보기엔 멀쩡한데…… 아니, 오히려 익숙한 게 아…….”
잠시 침묵한 요시아가 눈을 부릅 떴다.
“혹시…… 그…… 하…… 이게 좀 묻기 애매한데요.”
요시아의 복잡한 표정에 코오나가 조심스레 되묻는다.
“말씀해보세요.”
“혹시 신수와 계약하면 발정기가 오시나요? 수인족들 발정기가 오면 딱 이런 느낌인데.”
“미…… 미쳤어요?!”
대뜸 돌직구를 던지는 요시아의 말에 정곡을 찔린 것처럼 코오나가 화들짝 놀란다.
그 때문에 평소 잘하지 않는 격한 언사까지 나왔다.
물론, 그녀의 그런 행동은 요시아의 판단에 확신을 심어준다.
“맞는 거 같은데? 아. 그러고 보니 선생님 좋아하셨지 참.”
코오나가 데이비에게 마음이 있다는 걸 아는 이는 제법 되는 편이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눈치가 빠른 이들은 알아서들 눈치를 채니 말이다.
“솔직히 도와드릴 순 없지만…… 고민 정도는 들어드릴게요”
“괜찮거든요!”
평소답지 않게 화를 내며 돌아선 코오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요시아를 뒤로한 채 후다닥 뛰어갔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집중을 흩어놓았던 미래시를 떠올렸다.
그리고는 옅게 웃었다. 무슨 상황에 놓여도 그 생각만 떠올리면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헤헤…….”
스스로가 하고도 놀랄 정도로 헤픈 웃음이 나와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호오…….”
흠칫 놀라 고개를 돌리니 요시아가 쪼그려 앉은 채 가늘게 뜬 눈으로 실실 웃고 있는 게 보였다.
“뭘 생각하시길래 그렇게 행복해하는지 궁금한데요?”
“아니…… 왜…… 왜 자꾸!”
“그러지 말고. 좀 알려줘요. 요즘 뭐라도 재미있는 게 없으면 돌아버릴 거 같아요. 미드 놈도 요샌 수업에 푹 빠져서 놀리는 재미도 없고.”
호기심도 동하고 괜히 잘못했다가 데이비와 부인들 사이에 골이 생길까 걱정도 들었던 요시아는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자 그녀를 종용했다.
이게 대마법사라 불리는 이란 말인가.
푼수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때였다.
찌잉!!
또다시 고주파 음이 코오나의 머리를 지잉하고 울린다.
“읏…….”
머리가 지잉 울리는 소리에 인상을 찌푸린 코오나는 또 이런다 하는 마음에 요시아를 바라보았다.
이 이명은 그녀 말고는 들리지 않는 듯했다만…….
“…….”
놀랍게도 요시아 또한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이게 무슨 소리야…….”
짜증을 부린 요시아가 하늘을 올려다본다.
“괜찮아요?”
그리고는 시선을 하늘에 고정한 채 코오나에게 물었다.
“이 소리…… 당신에게도 들린 건가요?”
“당연히 들리죠, 특히 저는 사람보다 청각이 훨씬 예민…… 피해요!!”
요시아가 순식간에 긴 손톱을 뽑아내 허공을 그어 내렸다.
촤악!!
허공을 휘둘렀음에도 무언가가 찢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녀는 황급히 코오나를 끌어안고 몸을 날렸다.
쩌어어엉!!!
뒤이어 나타난 것은 거대한 낙뢰였다.
“이게 무슨…….”
이곳이 어딘가. 하인스 영지였다. 티오니스 대륙. 아니 전 차원을 놓고 봐도 이곳만큼 안전한 곳이 없건만.
대체 무엇이 그녀들을 공격했단 말인가.
놀라 고개를 들어본 그녀는 하늘이 붉어져 있음을 깨달았다.
“자연…… 재해?”
가능성은 하나뿐이었다.
하늘이 변하면서 떨어진 낙뢰가 하필 두 사람을 노렸다고.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황당하기 그지없지만, 요시아는 이 기괴한 자연현상이 본래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현상임을 깨달았다.
다른 영지라면 수백 년 만에 정말 희귀한 자연현상을 목격했다고 말하겠지만 하인스에선 불가능했다.
하인스는 모든 날씨를 적절한 배분 사이에서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하인스에 자연현상이 일어난다니.
“방금…… 번개…… 떨어진 거예요?”
“이명…… 후에 하늘일 붉어지고…… 일반적이지 못한 벼락이 낙하한다…….”
요시아는 바닥에 생긴 벼락의 잔상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굳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어디서 본 증상인데.”
뒤이어 벼락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걸 보며 요시아가 숨을 골랐다.
“전에도 이랬는데.”
“전에도 그랬다고요?”
“네…… 찌잉…… 하는 이명이 찾아왔었는데. 그땐 저 말곤 아무도 듣지 못했어요.”
그 말에 요시아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모르니 실내에 계세요. 아니, 가능하면 지하나 영주성에서 나오지 마세요.”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의 전조였다.
명확하게 그 벼락은 코오나에게 유도된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요시아. 코오나.”
“아. 오셨어요?”
뒤이어 찾아온 페르세르크에게 다가가며 요시아가 조심스레 말한다.
“꼭 드려야 할 말이 있어요.”
* * *
“이상이 현 상황에 대한 보고에요.”
데이비와 페르세르크는 서로를 바라본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인 게야?”
“나도 웃기네. 케라우노스 현상이라니.”
데이비의 말에 요시아는 벼락의 증세가 어디서 많이 본 것이라는 것이 어째서인지 깨달았다.
마법사가 이론을 배울 때 처음 배우는 자연 현상 중 하나이며, 수많은 뇌전 속성 마법사들이 흉내 내고 싶어 하는 마법 중 하나가…….
“신의 징벌…… 케라우노스…….”
“맞아. 다만 케라우노스는 그런 신력과 관련이 있는 현상이 아니야. 극히 드문 확률로 벌어지는 벼락이다.”
옆에 꽂힌 책장에서 페르세르크가 붉은 커버가 된 책을 꺼내왔다.
“이것이로구나. 자연재해 증상에 관한 전설이 담긴 책.”
마침 데이비의 집무실에 있는 책 중 그와 관련한 것이 서술된 적 있다.
“케라우노스는…… 수백 년 동안 보고된 사례가 없지 않나요? 단순한 학설이나 동화라고 생각했는데요.”
케라우노스, 즉 붉은 하늘과 함께 떨어지는 정체불명의 자연현상은 그만큼 알려진 정보가 극도로 적었다.
“그런데. 그 케라우노스가…… 코오나를 노리고 떨어졌다고?”
“데이비. 어쩌면 레이나 때와 같은 상황이 아닐까.”
자연현상이라 해도 결국은 이 세상에 속하는 것. 그렇다면 세계의 이물질로 취급받을 가능성이 있는 코오나를 노릴 가능성도 높다는 게 페르세르크의 추측이었다.
“비화야. 네가 생각하기엔 어때.”
한켠에 앉아 접속장치를 허공에 띄우고 신력을 불어넣고 있던 비화는 눈을 게슴츠레 떴다.
“아닐 거에요.”
그녀는 제법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 자연현상이 있으면 가장 먼저 제가 알았어야 해요. 조율의 권능이 먹히지 않는다면 케라우노스 같은 벼락이 계속 떨어지면 저도 손을 못 쓴다는 소리니까.”
그녀의 설명에 모두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무엇보다 벼락의 구조가…… 제가 아는 그 어떤 자연현상과도 맞물리지 않아요. 마치 완전히 다른 곳에서 만들어진 것처럼요.”
프리아 여신이 지키고자 했고, 그동안 데이비가 수차례 목숨을 걸어가며 지켜낸 모든 세상이 아닌 다른 곳에서 온 듯한 현상이다.
“프리아 여신에게 물어볼까.”
“여신님은 지금 누구도 만날 수 없어요. 아빠가 가도 별수 없을걸요?”
비화가 심드렁하게 말하자 데이비는 프리아 여신에게 향하는 균열을 천천히 열어보았다.
그때였다.
균열 너머에서 순간적으로 세상이 멈춘듯한 느낌이 퍼져나오며 주변을 장악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푸른빛의 머리를 가진 여신 프리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신님. 안 그래도 물어볼게…….”
그때였다.
프리아 여신은 감정이 없는 얼굴로 천천히 걸어왔고, 데이비의 옷을 살며시 건드린다.
파앙!!!
동시에 데이비의 옷이 깔끔한 칠흑빛의 정장으로 변했다.
툭…….
그리고 점잖아 보이는 페도라가 그의 머리에 씌워졌고 여신은 말없이 데이비를 보다 천천히 한 손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 나머지 한 손으로 엄지를 치켜세웠다.
[대가.]
만족한듯한 태블릿의 글귀가 모두의 시야에 똑똑히 박혀 들어가며 침묵을 강제유발시켰다.
스팡!!
그리고 돌돌 말린 작은 지도 같은 것을 건네준 뒤 사라졌다.
아주 짧은 침묵 끝에 비화의 씩씩거리는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데이비 그건?”
“유적지도?”
여신이 주고 간 것은 유적지도였다.
다만 외부의 지도가 아닌 내부의 지도에 가깝다.
“이건…….”
“데이비 님! 출장을 요청할게요!”
그때, 유리아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출장?”
“네! 라운 왕국 서부, 이곳에서 말을 타고 하루 정도 걸리는 오지에서 유적이 나타났다고 해요. 그곳에…… 처음 보는 과일들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답니다.”
국가기밀에 가까운 정보를 대뜸 확신하고 있는걸 보면 이미 확인한 모양이다. 대체 무슨 수로.
“그걸 어떻게 알았냐.”
“후후. 다 아는 수가 있답니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식재료에 대한 연구는 반드시 하고 싶어요.”
그녀의 말에 데이비는 한숨을 내쉬며 손을 휘저었다.
유적이 발굴되거나 새로운 종의 나무가 발견되는 건 흔하진 않아도 간혹 있는 일이니까.
그때 페르세르크가 데이비를 제지한다.
“데이비. 잠깐만.”
“응?”
“유리아. 그 유적. 어떻게 나타났는지 설명해줄 수 있겠는가.”
“음…… 약초꾼들이 허풍을 떤다며 대강 넘어간 정보들을 종합해보면…….”
유리아가 빙그레 웃는다.
“붉은 벼락이 떨어지고 난 뒤 나타났다더군요.”
케라우노스.
미스터리라 불리는 자연현상이다.
“기간은?”
“며칠 전이네요.”
“넌 그 며칠 전의 정보를 어떻게 알았는지 다시 물어도 될까?”
“흐흐. 인맥이 있다 보니.”
섬뜩할 정도의 정보 습득력에 데이비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너, 그림자 해볼 생각 없나?”
“에이. 그런 걸 하면 제 취미를 할 수가 없는데요.”
그때 이야기를 해주었던 요시아가 손을 들었다.
“저…… 그런데 선생님.”
“뭔데.”
“그…… 아니에요. 혹시 모르니까 코오나 양을 데려가시는 게…….”
케라우노스가 코오나를 향해 정확히 떨어졌다면, 그녀를 데리고 다니는 게 맞았다.
다만 그것을 페르세르크가 탐탁잖게 여길 가능성도 있다.
“본녀도 함께 가고 싶다만. 그대가 영지를 비우면 영지관리인 에이미 실란 외에 영지를 돌봐줄 사람이 부족해. 허니 본녀는 여기서 그대를 기다려야 할 터.”
“괜찮아?”
“그대를 믿는 게야.”
예쁘게 웃으며 페르세르크가 그의 뺨에 솔을 올렸다.
“요시아. 따라가서 감시라도 해주면 좋을 터인데.”
“뭐…… 그러죠.”
“은공! 그곳에 가시나요?”
“가봐야지. 조사할 게 있으니까.”
유적이라고 했던가. 방금 여신이 준 것은 유적의 내부지도였다.
어쩌면, 그녀가 준 이 지도는 그 유적의 지도가 아닐까.
모두 그렇게 판단했다.
그렇게 유적으로 떠나는 행렬이 빠르게 꾸려졌다.
미식연구회의 륀느와 유리아. 그리고 데이비와 요시아. 마지막으로 코오나였다.
“악마종도 그렇고 넌 여기저기 많이 엮이는 거 같은데.”
“…….”
코오나는 입을 삐쭉이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너무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