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04화
영지에서 하루 정도 떨어진 거리.
메가로드리아를 통해서 진입하면 극단적으로 짧은 시간으로 단축할 수 있다.
하지만 목적지까지 가는 데엔 문제가 있었다.
소규모도 아니고 대규모 유적지. 이곳을 관리 감독하는 영지의 영주는 갑작스레 나타난 유적지를 조사하기 위해 이미 수많은 탐굴가들과 조사단원들을 파견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 마당에 하인스에서는 흔하지만 다른 곳에선 공포의 대상이나 다름없는 메가로드리아가 떡하니 나타나면 혼란을 야기할 뿐이다.
다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괜히 민폐를 끼칠 생각은 없었다.
쿠웅!!!!
[뭔가 미묘한 느낌이 드는군. 처음 이 세상에 왔을 때 느낀 것과 흡사하다.]
“티오니스에 처음 왔을 때?”
[그렇군. 마치 이질적인 외지에 온 기분. 그 외엔 표현할 방법이 없다. 뭐, 실질적으로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방향은 저쪽이군. 이곳에서도 느껴질 정도면 그 영향력이 상당할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흐음…… 저는 잘 모르겠네요.”
유리아를 포함한 대부분은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아마 소환형식으로 나타나던 메가로드리아가 유별나게 민감한 것일지도 모른다.
[마음 같아선 이 이상 접근하고 싶지 않다. 조금 거슬리는군. 아니, 정확하게는 이 일대의 공기 자체가 나를 거부하는 느낌이 든다.]
“그래. 그럼 넌 여기서 돌아가. 고생했어.”
[조심해라. 계약자. 조금 나쁜 느낌이 들고 있으니.]
코웃음을 치고는 천천히 날아오르는 그를 뒤로한 채 나는 하인스에서 자주 사용하는 무인용 이동 마차를 활성화했다.
하인스에서 시제품이 나왔고 요즘엔 고위마법사들이 그것들을 보고 흉내, 모방하기 시작하면서 비슷한 것들이 생기고 있다.
말먹이를 먹이거나 그 외에 자잘한 걱정은 없지만 그만큼 유지비가 많이 드는 터라 사용하는 곳은 잘 없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은 하인스에서 만든 것.
바깥에서 흉내 낸 것과는 결부터가 다르다.
새삼 이런 게 나타난다고 문제가 될 일은 없겠지만 시선을 잡아끄는 건 피할 수 없으리라.
유적이 존재하는 숲으로 들어서는 길에 도착했을 때 나를 알아보고 다가오는 귀족이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대공. 하인스로부터 소식은 전해 들었습니다.”
“오랜만이군, 베르토 자작.”
“이거, 이거. 대공께서 저 같은 하급 귀족을 기억해주시다니…… 감읍할 따름입니다. 폐하께서 시급히 유적에 대해 조사하라는 명령을 내리셨지만, 진행이 시원찮아 곤란을 겪고 있던 참에 대공께서 와주신 게 어찌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그가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보고를 올려왔다.
“이미 조사대나 탐사대원들이 진입하지 않았나?”
“그것이…… 일이 생각보다 복잡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요. 자자. 이럴 게 아니라 드시지요. 자세한 건 안에서 설명드리겠습니다.”
그는 물 흐르듯 우리를 자신의 천막으로 초대했다.
“이곳에서 머무르는 건가?”
“예, 단순히 보고받기엔 왕실에서도 직접 관할하라는 명령이 내려와 말이지요.”
상당히 비굴한 면모를 보이는 이라지만 행정 자체는 생각보다 잘 굴리는 인간이라는 정보는 이미 있었다.
뭐 귀족들에게 큰 기대가 없는 만큼 이정도 인물이면 문제가 되진 않을 터다.
“자세한 설명을 부탁하지.”
“예. 본래 유적이 있던 숲은 몬스터들이 간혹 출몰하는 깊은 숲이었습니다만…… 얼마 전 붉은 벼락이 떨어지면서 모든 게 바뀌었습니다.”
그는 미리 준비해놓은 낡은 지도를 꺼내 펼쳤다.
“이것이 숲의 지도입니다. 과거 이 숲은 많은 약초꾼들이 노력을 통해서 만들어냈지요. 제 선선대의 일입니다.”
“흐음…….”
“하지만…… 지금 발견된 지도는…….”
그는 이번엔 새로운 재질로 된 지도를 꺼냈다.
“음?”
놀랍게도 같은 지형이지만 완전히 지도의 지형이 바뀌어있었다.
역변한 것은 아니지만 수천, 수만 년에 걸쳐 변화해야 할 지형이 완전히 변해있었다.
“일대 전체가 바뀐 겁니다.”
“이게 3일 만에 나타난 거라고?”
“으음……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폐하의 명에 따라 극비에 붙여지긴 했습니다만, 몇 달 된 일입니다.”
그가 우물쭈물 설명했다.
“실은 유적이 나타나게 된 주원인인 붉은 벼락은 이전에도 몇 차례 보고된 바가 있습니다. 워낙에…… 불길해 보이는 벼락이기도 해서 쉬쉬했습니다만…… 그로 인해 변하기 시작했더군요.”
숲의 지형이 바뀐 것은 이미 몇 달의 전의 일이다.
그리고.
유적이 나타난 것은…….
“그리고, 유적은 며칠 전 나타났습니다. 폐하께 보고를 올리니 우선은 비밀리에 조사를 하라는 명령이 내려와서…….”
“그럼 이게 몇 달간 조사된 곳인가? 유적은?”
“이곳으로 추정됩니다만. 아직 조사가 완벽한 것도 아니라서…….”
새로운 지도의 한켠에 있는 건물형태의 마크. 그 마크는 마치 오래된 석조건물처럼 표현되어있었다.
“붉은 벼락 이후 숲은 출입금지상태였습니다만. 완전히 생태계가 변했더군요. 처음 보는 동물에, 처음 보는 열매나 버섯. 얼마나 위험할지 몰라 출입을 막고 있었습니다만. 유적이 나오면서 모든 게 변했습니다.”
소문이 퍼진 것이다.
그 때문에 더 이상 정보를 억제하는 게 불가능해진 베르토 자작은 이렇게 된 거 차라리 공개조사를 하고자 했다.
“조사를 허가한 것은 유적이 나타난 직후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여 들어있지요. 다만 이 숲의 조사에 관해선 저도 많은 책임을 안고 있는지라 이리 나와 있는 참입니다.”
“저…… 은공?”
“음?”
“륀느 양과 저는 주변 안전지대를 돌며 이곳에 나타난 열매나 버섯들을 좀 봐도 될까요?”
애초에 유리아는 그런 의도로 따라온 셈이다.
륀느의 무력에 유리아 또한 일신의 몸을 지킬 정도는 될 테니…….
“괜히 들어가지 말고 적당히 돌면서 조사해. 위험하다 싶으면…….”
“걱정 마세요. 은공.”
“자작. 유적을 좀 확인해보려고 하는데.”
“실례지만 대공께서 조사를 원하시는 이유를 조금 들어봐도 괜찮겠습니까?”
그는 혹 내가 이곳에 오는 것으로 인해 생길 변화를 경계했다.
“확인해볼 게 있어서.”
“대공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야 힘없는 저로선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요.”
“자작. 내게 뭘 바라는 게 있나 보지?”
자리에 앉아 다리를 꼬며 스산하게 웃자 그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 그것이…….”
“혹. 내가 탐사하면서 이곳의 이점이 사라질까 염려하는가?”
그 물음에 자작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고개를 숙였다.
“대공께서 아시다시피 저희 영지는 이렇다 할 특산품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만년 자금문제를 겪을 수밖에 없지요. 그런 마당에 이런 기회가 생긴 겁니다.”
그로서는 많은 이들이 찾아오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아…… 물론 이게 정말 위험해서 제 욕심만 부리는 게 얼마나 위험한 판단인지도 알고 있습니다만…….”
내 표정이 살짝 싸늘해지자 그가 황급히 변명했다.
그리고 몸을 조아린다.
“제발……제발 살려주십시오. 지금 저희 영지는 며칠 전부터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사옵니다. 이게 얼마나 갈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지금의 기회를…….”
“그건 걱정 안 해도 될 거 같은 데 자작.”
“제발. 용서…… 예?”
그가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숲의 생태가 변했다고 했지.”
“그…… 그렇습니다만.”
“거기서 나는 샘플들을 조사해봐야 알겠지만 잘하면 대륙에서 유일하게 물건을 수출할 수 있는 영지가 될 테니 자금 사정은 이전보다 좋아지겠지. 자작이 너무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말이야.”
내 미소에 그는 떨떠름하게 나를 보다 겁을 먹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자…… 자비에 감사를!”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 조사하러 온 거야. 만약 자작이 거부한다면 나로선 조사할 권한이 없지.”
“무슨 말씀을! 대공께서 하고자 하신다면 이 자작 베르토. 목숨을 바쳐서라도 길을 열어드리겠나이다.”
“그건 국왕인 바리스에게나 해. 정당한 절차대로 나는 개인적인 조사만 할 테니.”
“아…… 알겠습니다!”
비굴한 인간상이지만 적어도 악인은 아니면 되었다.
* * *
“대체 라운의 귀족들은 왜 선생님만 보면 벌벌 떠는 거죠?”
요시아가 황당하다는 듯 말한다.
유리아와 륀느가 따로 움직이는 이상 내 곁에 있는 건 제자인 요시아와 코오나가 전부였다.
코오나를 데리고 간다고 하였을 때. 또 이곳을 조사한다 하였을 때 레이나가 굉장히 심기가 불편해 보였지만 내가 그녀에게 임무를 하나 맡기자 언제 그랬냐는 듯 생글생글 웃으며 떠나갔다.
단순한 건지 맹목적인 건지 모를 일이다.
물론, 내 입장에선 레이나도 문제이지만…….
“조금 떨어져 줄래?”
“아…… 죄송해요.”
가장 문제는 바로 코오나였다.
“저기…… 이런 데서 그렇게 붙어있으면 대처가 안 돼요. 여긴 미지라고요.”
보다 못한 요시아가 한마디 해주지만 코오나는 전혀 기분 상한 기색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기뻐하는 기색을 숨기고 있다.
생전 처음 보는 식물들과 빛을 내는 버섯들도 존재한다.
중원이나 유르기안, 페스리사. 그 외에도 많은 대륙들을 둘러보았지만 이런 식의 생태계는 처음이었다.
그럼에도 안정적이다.
그중 버섯 하나에 손을 대본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와. 이건 독을 제대로 품고 있네. 먹을 수 있는 건 아닌가 보다.”
내 말에 손을 대보려던 코오나가 흠칫 놀라며 물러난다.
설마. 이 상황에 미식연구회 그 또라이들은 이걸 먹겠다고 달려들진 않겠지.
알아서 잘하리라 믿는 나였다.
“선생님. 일단 위험한 동물은 없지만, 지도가 바뀐 건지 유적이 안 나오네요.”
“자작은 지도를 주면서도 자잘한 지형이 계속해서 바뀐다고 했었지.”
큰 지형은 그대로지만 방금까지 길이었던 곳에 나무가 가득 들어차는 경우도 보였다.
용케 지도를 만들었구나 싶을 정도로 엉망진창이 숲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숲의 엘프인 유리아를 데려왔어야 했나.”
놀랍게도 이곳엔 자연 정령이 존재하지 않아서 정령에게 길을 묻기도 애매했다.
그렇다면 하늘 쪽으로 올라가 봐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였다.
그때 요시아가 코를 킁킁거렸고, 인상을 찡그린 채 어디론가로 향한다.
“요시아?”
“피 냄새가 나요.”
그 말에 그녀를 따라 숲 안쪽으로 들어갔다. 자작이 건네준 지도에는 이곳에는 길이 없다 했지만 애초에 지금도 지도와 맞지 않는 길로 인해 헤매고 있던 참이었다.
마치 탐지 마법을 방해하는듯한 모습. 괜히 부수고 지나갔다가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에 우선은 주변을 조사하는 쪽이었다.
그런 마당에 혹여 조난을 당한 탐험가가 있다면 구해주는 게 맞는 일일 터.
하지만. 조난 같은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어? 들켰네?”
손에 피 묻은 단검을 든 다수의 인영이 나와 요시아. 그리고 코오나를 보며 기괴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해요?”
“뭘 어떻게 해. 장사 하루이틀 해?”
곁에 있던 한 사내가 묻자 장신의 사내는 어깨를 으쓱이며 혀를 날름거렸다.
바닥에 쓰러진 이들은 젊은 남녀로 차림새를 보아하니 탐험가 하나와 용병들인 듯 보였다.
그들은 이미 치명상을 입어 숨이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선생님? 아무래도 전리품 분배 때문에 싸움이 벌어진 모양인데요?”
요시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용병, 모험가들 사이에서 이런 일은 들어 알고 있다. 저들은 우리가 누구인지 모르는 듯했지만 하는 행동거지는 굉장히 익숙해 보인다.
“어떻게 할까요?”
요시아의 말에 코오나가 허리에 채워진 직검을 뽑아 들려 했다.
“제가…….”
“잠깐만. 확인해보자고.”
나는 살인범으로 추측되는 이들을 향해 말을 걸었다.
“혹시 유적에서 오는 길인가?”
“그걸 알아서 뭐하게. 아직 네 상황이 파악이 안 돼? 엉?”
위협하듯 한 사내가 칼을 들이민다.
“자자 됐어. 곧 죽을 것들한테 자비 정도야. 네 말대로다. 우리는 며칠간 헤매다 보니 우연히 유적을 찾아서 말이야. 그곳의 물건이 제법 비싸게 팔리니까 가져오던 참이었지.”
“용케 길을 찾았네.”
“뭐. 영주도 모르는듯하지만. 길이 바뀌는 데엔 어떤 법칙이 있거든.”
리더로 보이는 이가 능글거리며 말해준다.
그렇다면 이놈들이면 괜히 들쑤실 필요 없이 직통으로 길을 찾을 수 있다는 소리네.
이에 요시아에게 적당히 정리하라 말하려던 찰나였다.
“허허. 사내새끼가 계집 둘 끼고 아주 팔자 늘어졌네. 뭐 밤 시중을 드는 노예인가? 보아하니 반반한 게 아주 좋겠어? 그래도…… 빈약해 보이는 칼 든 년보다는 스태프를 든 계집이 더…….”
서걱…….
나를 향해 이죽거리던 사내의 양팔에 실선이 생긴다.
“어?”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 생긴 변화를 잠시 인지하지 못하는 듯하더니 이내 팔이 떨어져 나가자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오자 다른 이들이 극도로 경계하며 무기를 빼 들었다.
하지만 코오나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코오나?”
만년 한설처럼 차가운 얼굴로 직검에 묻은 피를 털어낸 코오나가 조용히 말했다.
“빈약해도 나름 매력 있어요.”
“…….”
코오나의 말에는 섬뜩할 정도로 강력한 박력이 서려 있었다.
“저 사람…… 원래 저랬어요?”
“나도 몰라…….”
“선생님이 망가뜨린 거네. 이전에 아벨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꼭 매를 버는 요시아의 정수리에 꿀밤을 먹인다.
“조용히 해라.”
* * *
“그거 잡아요!! 도망가는 솜씨가 잡으면 아주 맛이 있을 거예요!”
푸른빛과 맹독을 내뿜는 버섯이 마치 발이 달린 듯 도망가자 유리아가 소리를 질렀다.
그녀의 등에는 과일이 잔뜩 담긴 바구니가 있었고 양손에는 토끼와 흡사하지만 이빨이 나 있는 기괴한 토끼들이 벌벌 떨며 귀를 잡혀있었다.
척 봐도 공격적인 녀석들이 무슨 짓을 당해야 이리 겁에 질리는지 의문스러울 상황에서도 유리아는 태평하기 그지없다.
동시에 륀느가 묵빛의 크로우바를 들고 엄청난 속도로 파고들어 도망치는 버섯의 머리통을 뭉개버렸다.
콰직!!
기이한 소리를 내며 뻗어버린 버섯을 보며 유리아가 침을 흘렸다.
“유리아. 맹독을 품고 있다고 평가. 륀느가 이것을 먹지 못하는 것이라고 분석.”
“륀느. 잘 들어요. 복어의 독은 잘못 먹으면 사람을 죽여요.”
“…….”
“뱀술도 잘못하면 사람이 크게 다쳐요.”
유리아의 눈이 반짝인다.
“고작 이걸로? 도전정신이 없으면 극상의 맛은 찾을 수 없어요. 물론 외관상 끔찍하거나 너무 잔인한 요리는 달갑지 않지만요.”
데이비의 걱정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유리아의 가스라이팅에 륀느는 잠시 고민하는듯하더니 버섯의 머리 부분을 슬쩍 뜯어내 옴뇸뇸 삼켰다.
그리고는 눈을 반짝인다.
“륀느의 도감에 새로운 맛을 등록 완료. 극상의 맛, 륀느가 이것을 높게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