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07화
“이거 보시겠습니까?”
“뭔데?”
“짜잔.”
솔로모니아의 눈이 가늘게 뜨여지는 듯하더니 이내 커다란 눈 안의 눈동자가 수십 수백 개로 분열한다.
“꺄악! 징그러워!”
요시아가 기겁하며 물러나자 솔로모니아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이상하군요. 저희 내에서는 굉장히 웃긴 개그였는데.”
“그게 어떻게 웃겨 미친놈이!”
“그렇군요. 저희는 그 어떤 생명체에게도 함부로 접촉할 수 없는 입장이니 모든 입장이 다른 것을 간과했네요.”
“저…… 제가 인도자가 되면 저들과 같이 변하는 건가요?”
“그러진 않을걸. 네 안에 남겨진 힘을 원하는 것뿐이니까.”
내 설명에 코오나는 눈에 띄게 안도했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네가 이 차원에 들어가는 건 반대다.”
“어째서죠? 아직, 제가 힘을 다루지 못해서인가요?”
“그런 것도 있고. 네가 이런 일을 할 필요도 없다고 본다.”
내 대답은 그녀의 결정에 근거했다. 그녀는 이것을 하고 싶지 않아 했고 나는 그녀를 지지할 뿐이다.
“그러니까 내가 다 해결할 테니, 넌 아무 걱정하지 말고 돌아갈 준비나 해.”
“은퇴하신다고 하셨잖아요.”
“그랬지. 대륙의 일은 거의 은퇴한 셈이지만 이쪽 일은 도저히 놔주질 않네.”
아마 여신의 의도일 것이다.
프리아 여신이 믿는 사도는 오로지 나뿐인 듯했으니까.
내 대답에 곰곰이 생각하던 코오나는 천천히 내 팔을 잡았다.
“저도 도울게요.”
“괜찮다니까. 네가 관여하면 널 이일에서 빼낼 수가 없어.”
“싫어요…….”
아니 얘가 왜 이리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거야.
내가 표정을 살짝 찌푸리자 그녀가 움찔했지만, 고집을 피운다.
마치 어린아이가 고집을 피우는 것처럼 답답하게 느껴졌다.
“저 때문에 홀로 고생하시는 건 절대 못 봐요. 설사 제가 휘말려도.”
단호한 답변에 그녀를 어떻게 설득할까 고민하던 찰나. 나는 머릿속에 번뜩이는 말을 내뱉었다.
“너 그 힘이라는 거 다룰 수 있어?”
내 물음에 그녀가 침묵한다.
“안되면 결국 내가 찾아내서 끄집어내야 하는데. 보여주고 싶지 않다면서.”
내 말에 그녀는 무언가 인지한 듯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대체 뭘 어쩌라는 거야. 네가 거기 따라가 본들 할 수 있는 게 없어.”
잔인한 말이지만 괜한 상황에 놓여 코오나가 위험해지는 것보단 좋으리라.
“진짜…….”
“음?”
“진짜…… 나빠요…….”
울먹거리며 뛰쳐 가버리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잘됐지. 괜히 끼어드는 것보다야 안전한 곳에 있는 게 나으리라.
고집임은 알지만.
“위대한 영혼이시여. 실은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데?”
“제가 건네드린 괴사한 차원은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만.”
“그건 들어서 알아.”
“저 차원 자체가 워낙에 이질적으로 만들어진 탓에 외부의 모든 연결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제한이 조금 있습니다.”
그가 눈동자를 내리깔았다.
“그러니 신속하게 차원 내에 괴사해버린 부분을 찾아 정화하고 차원이 만들어낸 신을 제압해야 합니다. 다만 이 어린 차원은 현재 외부의 어떤 간섭도 거부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혼이라도 그 규칙을 무시하긴 힘들 듯합니다.”
“시간제한 안에 싹 다 처리해야 한다?”
“아 물론 시간 안에 처리 못 한다 하여 문제가 발생하진 않습니다만. 쓸데없는 시간 낭비가 생기는 셈이지요.”
설명을 해주던 그가 촉수를 이리저리 돌렸다.
“한데…… 인도자께서는…….”
“코오나는 두고 간다. 그래도 널 완전히 믿는 건 아니니 차원에 진입하는 건 그 후야.”
내 대답에 그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렇게 하시지요. 저도 단번에 믿어주실 거라곤 생각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물어보자.”
“말씀하십시오.”
“이 괴사 차원에 문제없이 진입할 방법이 있나?”
“균열을 찢어내시면 진입은 가능하겠지만 문제가 생긴 차원에 그런 짓을 하면 문제가 발생할 겁니다.”
안 그래도 골골거리는 차원의 벽을 찢었다가 무슨 일이 벌어지려고.
이에 그는 명확한 해답을 내놓았다.
“조율의 여신께서 만드신 가상공간을 타고 진입하시면 될듯합니다.”
* * *
유리아와 륀느는 정말 엄청나게 만족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녀들이 채집한 식재료들은 모두 괴사한 차원에서 존재하는 것들로 곧 내가 들어가면 질리게 볼 것들이기도 했다.
“으흐흐흐. 당분간 아주 만족할 거에요. 가상공간에 등록할 식재와 직접 써먹을 식재를 나누는 것은 정말 완벽한 계획이네요.”
조금만 잘못 디뎌도 독 안개가 터져 나오는 위험지역도 존재했건만 이 광기의 싸이코들은 그딴 건 아무래도 좋다는 듯 밀고 들어가 재료들을 채취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륀느. 넌 따라와.”
괴사한 차원에 진입하는 건 수가 많을수록 좋지 않았다.
이에 륀느를 데리고 둘이서 다녀올 생각이었으나 륀느는 새로운 식재료로 인해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 듯 보였다.
“으음…….”
보기 드물게 침울해하는 모습에 유리아가 피식 웃는다.
“다녀오세요. 륀느. 그동안 저는 이것저것 실험해볼 테니.”
“륀느가 유리아를 낮게 평가.”
“……됐다. 그냥 남아.”
륀느를 끌고 가는 것보다 유리아가 깐족거리는 게 더 싫은 나는 큰마음 먹고 륀느를 방생했다.
“륀느가 데이비 님을 높게 평가.”
“어머, 아쉬워라.”
혼자서라도 갈까 했지만, 요시아가 눈을 반짝인다.
“선생님. 이런 기회면 나도 데려가요.”
“넌 임마 할 일도 많잖아.”
내 타박에 요시아는 파랗게 질린 채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진다.
“제발요!! 그 지옥으로 다시 끌려가기 싫어요!”
앨리스 교수가 얼마나 굴렸기에 사람이 이 지경이 되나.
절박해 보이는 요시아의 요청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갈게.”
“아니, 너랑 레이나는 여기 남아.”
“왜?!”
일리나가 입을 댓 발 내밀며 불만을 토로했다.
“솔로모니아를 완전히 믿는 게 아니니까 네가 있어야 해.”
놈이 만약 나를 속여서 나를 그곳에 가두려 한다든지 한다면 나를 바로 끄집어내 줄 이가 필요했다.
“솔로모니아 그놈의 말로는 기간은 약 사흘. 그 후에도 내가 나오지 않으면…….”
“문을 열어달라 이거지?”
“혹시 모르니까 페르세르크도 같이 남아주고. 코오나에게 혹여 무슨 짓을 벌일 수도 있으니 감시 잘 부탁한다.”
내 말에 페르세르크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애초에 솔로모니아를 믿을 수 있는가 없는가에 대해선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비화는 저들의 존재를 몰랐고 넬타리드 또한 마찬가지. 프리아 여신은 침묵했으니 모든 것은 내가 판단할 일이다.
“나도 돕고 싶지만…….”
여신급의 존재가 함부로 들어가면 어떻게 될지 모를 상황이었다.
그렇게 말한 후 나는 비화가 가져와 준 접속장치를 머리에 썼다.
“너무 약한 차원이라 이런 식으로 들어가는 것도 웃기네.”
우우우웅!!!
장치가 빛을 내뿜으며 의식이 공명한다.
그리고. 요시아와 나의 의식이 점멸했다.
* * *
여신이 만든 새로운 세계.
차원이 만들어낸 사도가 신이 되어 폭주를 일으키고 있는 괴사한 차원.
스스로 자멸하면서도 이런 짓을 하는 것은 새로운 변화를 끌어낸 차원의 부작용일 것이다.
“음…… 물 냄새…….”
바닷냄새가 짙게 나는 세상이다.
겉보기엔 변한 게 없어 보이는 형태였지만 이곳은 분명 비화가 만들어낸 가상공간을 타고 넘어온 괴사한 차원이었다.
이름조차 지어지지 못한 차원.
그럼에도 그 안에 느껴지는 기초 생명력은 분명 내가 퍼뜨린 것이 맞았다.
비화가 만든 가짜 가상공간과 다른 진짜 세상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선생님. 그런데 그 괴사한 부분을 찾아서 지우는 게 목적이잖아요.”
“일단은.”
그리고 이 세상의 문제를 계속해서 일으키고 있는 존재를 제압하는 게 목표지만 그쪽 문제보다 차원의 수명을 늘리는 쪽을 먼저 해야 했다.
“근데 그걸 어떻게 찾아요?”
그녀의 물음에 나는 침묵했다.
“선생님?”
“나도 몰라.”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이년아.
내 뻔뻔한 대답에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정화는 애초에 인도자의 힘 필요하다면서요. 근데 뭘 대책 없이 그냥 들어와요.”
“일단 찾아보자고. 하다가 안 되면. 이 차원의 신부터 찾던지.”
“진짜 대책 없네.”
그렇게 얼어가던 중 요시아가 엇! 소리를 냈다.
“저……저 새끼! 저 새끼 소매치기!”
생각지도 못한 채로 당했다는 듯 그녀가 소리친다.
그런 것 치고 그녀는 딱히 다급해 보이지 않았다.
“내놔.”
이에 내가 그녀에게 손을 내밀자 요시아가 피식 웃으며 손에 들고 있던 주머니를 내놓는다.
“여기 재화 없잖아요. 우리.”
그녀가 보여준 주머니 안에는 기존의 통화와 다른 이 세계의 통화가 다량 담겨있었다.
“멍청하긴. 잘 봐라.”
그렇게 말한 나는 저 멀리 사라져가는 조그마한 소년의 뒤통수를 노리고 그대로 요시아가 건네준 돈주머니를 투척했다.
빠아아악!!!
“커헉!!”
엄청난 소리와 함께 허공을 나른 소년은 그대로 로브의 자락이 벗겨지며 바닥을 굴렀다.
동시에 조금 전에 소매치기라는 외침에도 관심 없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여든다.
“소매치기를 하는 놈이 뭘 가져가게 두지 마.”
기절한 소년에게 천천히 다가간 나는 요시아의 돈주머니까지 회수한 뒤 걸어왔다.
“와…… 진짜 선생님은 볼수록 발전하시네요. 예전엔 상대 주머니만 털어오더니…….”
“됐고. 가자.”
뻔뻔하게 걸어가는 나를 뒤따라오는 요시아였다.
물론, 대로변에서 이런 사고를 쳤으니 그냥 조용히 넘어갈 리가 없었다.
“멈춰라.”
얼마 가지도 못해서 우리를 막아서는 병사들을 보며 요시아가 눈을 가늘게 뜬다.
“무슨 일이죠?”
언어의 축복은 적용이 되고 있는 모양이다.
“검문이다. 명패를 내밀어라.”
“미안하지만 명패 같은 건 없는데. 외부에서 와서.”
“뭐라? 지금 외국인이 이곳에 와서 사고를 쳤다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사고? 피해자는 이쪽인데요?”
요시아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하자 병사가 창대를 강하게 내리쳤다.
“닥쳐라!! 현재 이곳에는 필두 사도님께서 방문하셨다. 그 어떤 범죄도 용납할 수 없거늘. 감히 대낮에 대로에서 그런 사고를 치다니. 그것도 외국인 따위가.”
외국인 멸시라.
티오니스에서도 간간이 보이는 일이긴 하지만 그 느낌이 달랐다.
“그럼 시작부터 소매치기 같은 범죄가 일어나지 않게 했어야죠. 왜 당신들이 치안을 못 지킨 걸 우리 쪽에 떠넘기죠?”
“닥쳐라! 죽고 싶지 않다면!”
처저저저적!!
쇳소리를 내며 빠르게 나와 요시아를 포위하는 병사들은 외국인인 우리를 잡아 들이는 것으로 사태를 무마시키려는 게 훤히 보일 정도였다.
“구속에 불응하겠다면 거친 수를 쓰겠다. 당장 양손을 높이 들어 올리고 무릎을 꿇어라.”
“진정해라 요시아. 이런 거 하루 이틀 봐왔냐.”
이를 부득부득 가는 요시아를 말리고 한발 나선 내가 물었다.
“그럼 저기 쓰러져 있는 놈은?”
기절한 소매치기를 가리키자 병사 중 하나가 고갯짓을 했고, 일부가 소년을 향해 뛰어가더니 그를 구속했다.
겉보기엔 사고를 친 이들 모두를 잡아 들이겠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지만 나는 다르게 보였다.
“끄윽…… 내머리. X발…… 그러니까 저거 느낌 이상하다 했잖아요…….”
아주 작게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봐. 병사.”
나는 병사에게 말했다.
“저거 네 편이지?”
“무슨 소리지?”
“무슨 소리긴. 요시아. 이것들 싹 다 제압해.”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요시아의 주변으로 방대한 마나가 흘러나온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요시아와 내 표정이 찡그려졌다.
“뭐야 이거.”
마나의 분포가 너무 낮다.
마치 무언가가 마나의 분포를 억제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전원! 발검!!”
이후 병사들이 일제히 철검을 뽑아 들고 요시아와 나를 향해 빠르게 파고들기 시작하자 요시아는 한숨을 내쉬고 손뼉을 두어 번 쳤다.
그리고는 발을 통통 튕긴 뒤 등에 메고 있던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잘됐다. 스트레스 쌓여있었는데.”
“이게 무슨 상황이지?”
빛과 함께 누군가가 갑작스레 나타나 모두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피…… 필두사도님!!”
나와 요시아는 상대가 누군지 모르지만, 병사들은 아닌 듯 보였다.
그들은 겁에 질린 듯 벌벌 떨며 곧바로 사내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이게 무슨 상황이냐 묻지 않았나.”
“그…… 그것이…… 아무 일도 아니옵니다! 저희가 알아서 처리할…….”
“이봐. 나는 지금 무슨 상황이냐 물었지 네가 어떻게 할지 물은 게 아닌데.”
스산한 눈동자를 번뜩이는 젊은 청년의 질문에 병사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요…… 용서를!”
“팔 하나로 용서해주지.”
서걱!!!
끄아아아아악!!
끔찍한 비명이 울려 퍼진 건 그야말로 한순간이었다.
팔이 잘려나간 병사는 바닥을 뒹굴며 비명을 질렀다.
“시끄럽다.”
터엉!!!
무형의 힘이 터져나가며 사내의 입이 강제로 닫힌다.
“그쪽이 이야기해보겠나?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봐요. 지금 사람 팔을 그렇게 잘라놓고 한다는 소리가 그거에요?”
“당찬 아가씨로군. 내가 누군지 모르니 그럴 수 있지.”
“당신이 누군데요.”
요시아의 말에 사내는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여신의 필두사도의 말석. 이름은 굳이 필요한가?”
“사실 필요 없긴 했어요.”
요시아가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으쓱였다. 사내는 제법 높은 위치의 존재인 듯 보였다.
그렇기에 요시아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을 법도 하건만. 그는 자비로운 성격이라 말하고 싶은 것인지 딱히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그럼 설명해주겠나?”
“별거 없어요. 소매치기를 잡았더니 저들이 저희들을 구속하려 했을 뿐이에요.”
그녀의 설명에 필두사도는 병사를 보며 다시 질문했다.
“저 말이 사실인가?”
“그…… 그것이…….”
“거짓 없이 고하라.”
그의 말에 병사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 고개를 땅에 처박았다.
“그…… 그렇습니다! 소…… 소란을 피운 자들을 제압하기 위해…….”
“피해자를 제압하는 게 여신님의 가르침이었나?”
그의 물음에 병사가 움찔한다.
“대답하라.”
“요, 용서를!”
“용서는 죽고 나서 여신께 빌어라.”
서걱!!
또 한 명의 병사가 목이 날아간다.
기묘한 상황이지만 그는 익숙하다는 듯 요시아와 나를 향해 말했다.
“괜한 소란에 휘말리게 했군. 보아하니 외국인 같은데.”
“당신…….”
“간혹 병사들 중에 욕심을 부리는 자가 있다네. 일단 이곳은 내 관할이니 내가 대신 사과하지.”
빙그레 웃는 그 모습에 요시아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말이 통하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네요.”
그 말에 병사들이 흠칫 몸을 떨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요시아는 자기 페이스를 유지했다.
“선생님. 어떻게 해요?”
“뭘 어째. 귀찮은 건 사절이다. 그전에 하나만 확인해보자고.”
나는 사내를 향해 물었다.
“혹시. 최근 이 근방에서 정체불명의 괴현상이 벌어진 건 없나?”
내 물음에 허공에서 로브를 입은 사내 하나가 나타나 호통친다.
“네 이놈! 감히 필두사도님께 무슨 불경한 말버릇이냐!!”
“내가 가만히 있는데 지금 네놈이 나서는 것인가?”
“죄…… 죄송합니다! 필두 사도님!”
“닥치고 물러나 있어.”
“예…….”
“그래. 하던 이야기나 마저 하자고. 병사들의 잘못은 내가 책임져야 할 일이니 어디 아는 대로 이야기해주도록 하지. 괴현상이라…… 짐작 가는 곳은 있는데.”
“짐작 가는 곳?”
“실은 얼마 전 도시 외곽 쪽에서 던전이 하나 발견됐다더군.”
“던전이라……,”
“그곳에 시체들이 살아 움직인다는 말이 있었다네.”
“정보는 고맙게 받을게.”
“무얼. 보아하니 모험가 같은데. 그곳을 찾아가려는 건가?”
“굳이 말할 필요는 있나?”
“하하하! 당돌한 자로군. 그래. 그 말이 맞지. 길을 열어라.”
“하…… 하오나 필두 사도님.”
“여신님은 자비를 가르치셨다. 죄 없는 이들을 겁박한 죄는 가볍지 않다.”
그의 위압에 병사는 물론 로브를 입은 사내도 고개를 숙였다.
이윽고 가보라는 듯 그가 손짓하자 덜덜 떨던 병사들이 천천히 길을 비켰다.
“이해하시게. 외부에서 온 이들 중에 차원을 넘어 숨어들어온 악마들이 있을 거라는 여신님의 계시가 있었던 터라 분위기가 뒤숭숭하니.”
그를 뒤로한 채 가던 내가 돌아서서 그를 향해 물었다.
“그래. 외부에서 넘어온 자들. 존재할 수 없는 힘을 다루며 여신님의 힘을 흉내, 강탈한 배덕한 자들.”
마법을 말하는 것인가.
침묵하다가 천천히 물었다.
“그 외부에서 온 자들을 찾으면 어떻게 하지?”
“뭐. 당연한 질문이 아닌가. 당연히…….”
쿠우웅!!!
주변의 공기가 변한다.
“찢어 죽여야지.”
그렇게 말하며 빙그레 웃어 보인 그는 병사들을 대동한 채 다시 사라졌다.
“선생님 그 던전이라는 곳이 저희가 찾는 그 괴사 부위일까요?”
“가봐야 알겠지.”
“위치는요?”
“던전이라면서. 유명한 거 같은데. 모험가 조합 같은 데 가보면 답 나오겠지.”
나는 한쪽에 간판이 걸린 모험가 조합을 가리켰다.
언어의 축복이 이래서 편해.
“다행이긴 한데. 방금 그 남자. 조금 기분 나쁘네요.”
“그놈도 우리를 의심했을 거다.”
“네? 그런데 그냥 뒀어요?”
“요시아. 솔로모니아를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한쪽에 치우치는 건 미련한 짓이야.”
만에 하나의 확률이지만 이쪽 세계가 정상이고 솔로모니아가 잘못됐다면 괜히 저들과 반목할 이유는 없었다.
“정말 그것뿐이에요?”
“괜히 눈에 띄어서 좋을 게 없으니까.”
나는 망설임 없이 모험가 길드의 문을 열어젖혔다.
동시에 험악하게 생긴 이들 다수의 시선이 우리에게 꽂힌다.
고요한 침묵 속에서 나를 따라 들어오던 요시아가 기분 나쁘다는 듯 눈을 흘겼다.
“휘유~”
그러자 일부 사내들이 기분 나쁜 휘파람 소리를 냈다.
“무슨 일인가. 의뢰를 맡기러 왔소?”
“아니. 의뢰정보를 사러 왔는데.”
“정보?”
“최근 시체가 살아 움직이는 던전이 발견됐다고 들었는데.”
그 말에 조금이나마 웅성거리던 내부가 고요해졌다.
“지금…… 거기에 가겠다고?”
“문제가 되나? 위치가 필요한데. 얼마면 되지?”
“푸하하하하하!!!”
동시에 사방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뭐야…….”
이에 요시아가 짜증스레 투덜거렸다.
“아직 젊은 애송이들이 패기가 넘치는구만. 끌끌.”
“겁이 없을 때지 낄낄.”
마치 던전에 가면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전제하에 말하는듯한 모습이었다.
“그곳에는 보내줄 수 없소. 보아하니 어디 귀한 집 도련님 같은데. 애먼 짓 하지 말고 돌아가시오.”
“이봐. 지금 내가 필요한 건 위치야. 당신 판단이 아니고.”
내가 담담한 얼굴로 재차 물었다.
그럼에도 사내는 쉬이 대답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런 분위기는 티오니스에서도 자주 봤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를 해결할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어이. 도련님. 보아하니 겉멋이 잔뜩 든 모양인데. 이게 뭐야. 제법 좋은 칼인가?”
내 허리춤에 채워진 홍단이와 청단이의 검집에 한 용병이 손을 뻗었다.
척 봐도 덩치가 산만 한 사내였다.
예전에 에반젤린이 용사가 되겠답시고 용병 길드에 가서 똑같은 짓을 하다가 무시를 당했던가.
그때 에반젤린은 순수하게 투정을 부리며 용병 길드의 접수처 테이블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그게 잘한 짓은 아니었지만, 효과는 확실할 터다.
“이런 장난감 칼로 그런 곳에 가면…….”
비웃음을 던지며 내 검을 잡아채려던 그의 팔을 가볍게 낚아챈 뒤 으드득 소리 나게 꺾어버렸다.
“끄아아아아악!!!”
동시에 주변에 있던 용병들 다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일부는 무기를 뽑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뭐. 더 필요한가? 돈을 받고 정보만 팔면 되는 일일 텐데.”
“이…… 이 개자식이!!”
내게 팔을 꺾인 사내가 격하게 소리치며 공격하려 하지만 나는 손을 살짝 비트는 것으로 그를 땅에 다시 눕게 만들었다.
“끄아아악!! 내 팔!!”
덩치가 산만 한 사내가 힘에서 일방적으로 밀렸다는 사실에 쉬이 나서는 이가 없었다.
“당신…….”
“줄 거야 말 거야.”
“5페온, 본래라면 선수금도 받아야 하지만. 보아하니 소속된 이는 아닌듯하군.”
그의 말에 요시아가 소매치기에게서 털었던 주머니를 열었다.
“이거 다섯 개인가요?”
“맞소.”
긴장한 접수처 사내가 돈을 받고 종이를 건네주었다.
“생긴 것과 다르게 힘이 엄청나군. 마치 악마의 힘을 빌린 것처럼 말이야.”
“이놈이 운동 부족이겠지.”
의심 가득한 눈으로 묻는 사내를 뒤로한 채 나는 지도를 펼치고는 돌아섰다.
“가자 요시아.”
“네. 선생님.”
우리가 나가는 길을 다수의 인간들이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보았다.
그 시선은 조합을 나설 때까지도 사라지지 않았다.
* * *
“역시 수상한데.”
데이비와 요시아가 떠난 것을 지켜보는 한 시선이 있었다.
그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다 고개를 돌렸다.
“쫓아가서 제압할까요?”
“일단은 지켜보자고. 그가 악마인지. 개화자인지.”
여유로운 말투에 부하로 보이는 사내가 걱정스레 말한다.
“느낌이 심상찮습니다. 혹여 그가 위험하다면…….”
“어이.”
“흐읍?!”
“넌 내가 저런 조무래기에게 당할 정도로 여신께서 주신 권능이 우습게 보였나?”
“그…… 요…… 용서를!”
“두 번은 없어. 여신께서 주신 힘을 의심하지 마라.”
사내의 말에 부하로 보이는 자는 벌벌 떨며 고개를 처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