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408화 (1,408/1,559)

제 1408화

이 세상의 화폐 가치가 어느 정도 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소매치기에게서 강탈한 돈주머니는 생각보다 양이 많진 않았다.

“3페온이유. 맛있게 드시구려.”

지구의 꼬치와 비교해도 그 가성비부터 남다른 고기를 보며 요시아가 눈을 찌푸렸다.

“지구 쪽도 참 너무 작다는 생각은 했는데…… 여긴 심하네요. 외부인에게 바가지를 씌운다는 건지.”

상상 초월로 작은 고기 꼬치를 오물거리며 그녀가 투정을 부린다.

“오면서 봤겠지만, 전체적으로 물가가 굉장히 높은 편이다.”

꼬치뿐만이 아니었다.

근본적으로 외부인을 등쳐먹는 것도 한몫하지만 기본물가가 상당했다.

“그럼…….”

“그래. 영지 전체가 이렇게까지 하는 데엔 이유는 하나뿐이지.”

지독한 세율.

“영지민들의 표정과 행색, 그리고 손에 든 것들이 보여?”

“표정이요?”

“그래. 저쪽은…….”

나는 사람들의 특징을 하나하나 들며 그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이에 요시아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선생님. 그런 건 대체 어디서 배웠어요?”

“내가 영주인 건 잊었냐.”

“보통 영주들은 그걸 모르는데요.”

“그놈들이 모른다고 나도 몰라야 되냐. 잘 들어. 한 번만 설명해줄 테니까.”

이후로도 나는 그들이 손에 들고 있는 것들에 하나하나 논리를 붙여가며 그들이 돈이 많이 필요해서 부업을 뛰고 있다는 추측을 내려주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요소로 화류계 여성이 많다든지. 부상을 입은 사내들이 많이 보인다든지 하는 모습도 예시로 들었다.

“그런 것치고는 치안이 좋지.”

영지를 빠져나오는 동안 제지는 없었다.

영지를 나와 지도에 표기된 던전으로 향하는 숲길에 오르기가 무섭게 허리춤에 채워져 있던 홍단이와 청단이가 공명하더니 아이의 모습으로 바뀐다.

“아빠아! 소…… 소…….”

“소풍?”

“응! 소풍 가아?”

“소풍이라…… 그래 소풍 간다.”

내 어깨에 목말을 탄 채 기쁜지 꺄르륵 웃어대는 홍단이와 내 품에 안긴 채 고개를 파묻는 청단이의 천진난만함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 그럼 도시락도 머거?”

도시락이라는 말에 나는 코오나가 만들어준 도시락이 아직 아공간에 남아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낸다.

“아. 그래. 도시락도 있지. 홍단이 청단이가 좋아하는 초밥이야.”

“우아!! 초…… 초바압!”

홍단이는 기쁜 듯 목말을 탄 채로 팔짝거렸고 청단이는 눈을 반짝이며 침을 삼켰다.

“선생님. 저희 지금 놀러 가는 거 아니지 않아요?”

“그럼 일 빨리 끝내고 돌아갈까? 앨리스 교수가 제대로 벼르고 있을 거 같은데?”

앨리스 교수와 술을 마실 때면 늘 나오는 말이 그 말이었다.

요시아는 정말 유능해서 굴리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물론, 겉으로는 굉장한 교수가 될 거라며 말했지만 속 내용을 까고 보면 결국 그 말이었다.

그걸 요시아가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다.

“아뇨. 저는 언제나 소풍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비굴하기 짝이 없네.

“호…… 홍다니랑 같이 소풍 시러?”

요시아가 탐탁잖은 반응을 보이자 홍단이가 울먹거리며 요시아에게 물었다.

당연히 요시아로썬 저 순진무구한 아이가 울게 두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무슨 소리야. 언니가 그걸 왜 싫어해. 청단이 홍단이랑 같이 소풍 가는 거 언니는 엄청 좋아.”

“헤헤! 홍다니도 쪼아!! 청다니도 그치?”

“응. 조아…….”

요시아는 두 아이의 애교에 정신이 빠진 듯 그대로 청단이를 끌어안고 얼굴을 비볐다.

“꺅! 귀여워!”

“으우아아…….”

마성의 매력 덕분인지 결국 청단이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요시아의 품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험준한 산길이지만 요시아의 몸은 겉보기와 달리 초월자 수준에 이르러있기 때문에 지치는 기색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산 나들이를 가는 게 좋은지 홍단이와 청단이는 꾀꼬리 같은 음색으로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노래는 오래가지 않아 끊어졌다.

“으…… 냄새!!”

“크으…….”

표정을 귀엽게 찌푸리며 두 아이 모두 양손으로 코를 움켜쥔다.

동시에 요시아도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어딘가를 가리켰다.

“아! 선생님 저거 같은데요?”

던전이라는 것은 정해진 외관 같은 것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멀찍이 보이는 동굴이 던전이라 확신하는 데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사기가 굉장한데요.”

“그래 보이네.”

“크으! 아빠! 냄새!”

아마 단순 시체 썩는 냄새가 문제는 아닐 것이다.

동굴 안에선 지독할 정도의 사기가 흘러나오고 있었으니 말이다.

“도시락은 미루고 확인해보자.”

“이런 냄새 맡고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갈 거 같진 않네요.”

운이 좋은 건지. 뭐가 되었건 첫 단추 자체는 잘 끼워진 셈이었다.

던전 안에는 이렇다 할 인기척은 없었다.

자연동굴이라고 하기엔 여기저기 누군가의 손길이 닿은 흔적들이 보였으며 시체 썩은 내가 갈수록 진동을 했다.

“아…… 더는 못 견디겠다.”

결국, 참다못한 요시아가 뱀파이어의 힘을 발현해 주변의 냄새를 강제로 흩어버리고 나서야 냄새가 사그라진다.

“그런데 시체 하나 안 보이는데 시체 썩는 냄새라니…….”

분명 듣기로는 내부에서 살아있는 시체들이 나타난다고 했던가.

이 세상에서는 좀비 같은 언데드 개념이 없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좀비가 없는 세계도 충분히 있다곤 하지만 사실 이게 정말 내가 찾던 부분이 맞는지 의문이 들긴 했다.

“지도에는 분명 이곳이 맞았죠?”

그녀의 물음에 나는 내부로 걸음을 옮기며 긍정했다.

“그렇겠지. 홍단아 청단아. 슬슬 변하자.”

내 말에 주변의 끈적끈적한 것들을 보며 몸을 부르르 떨던 홍단이와 청단이는 빠르게 검으로 변하며 내 손에 감기듯 쥐어졌다.

동시에.

그으으으…….

동굴 내부에서 일반 좀비와는 다른 조금 기이한 느낌을 풍기는 구울들이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나왔네.”

요시아가 지팡이를 꺼내 마나를 끌어 올렸다.

뱀파이어 로드라곤하지만 그녀는 마법사였다.

그렇기에 그녀에게 가장 익숙한 건 마법이나 다름없었다.

기본적으로 뱀파이어의 혈마법을 쓰는 놈들은 봤어도 일반 마법을 쓰는 뱀파이어는 본 기억이 없는 것 같은데.

그러거나 말거나 요시아는 그대로 캐스팅을 완료한 뒤 지팡이를 뻗는다.

그때였다.

“요시아 스탑.”

내가 그녀를 멈추게 한 뒤 뒤로 잡아당겼다.

“으앗?! 선생님?”

“일단 물러나.”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그녀는 의아해하는 듯했지만 토를 달진 않았다.

이후 나는 곧바로 신성력을 발현시킨 뒤 손에 구슬처럼 모아 방출했다.

파스스스스스!!

동시에 내가 퍼뜨린 신성력의 장벽에 닿은 구울들이 괴로운 듯 몸을 비틀더니 하나둘 재가 되어 흩어진다.

“제가 해도 되는데요.”

“따라와 보면 알아.”

구경꾼을 자극하면 어쩌자는 거야.

그렇게 한참을 밀어붙였을까.

나와 요시아는 동굴의 끝자락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렇다 할 보물도 없고, 탐사목표 따위도 없다.

있는 것이라곤 지독한 몰골의 구울과 정체 모를 살덩어리들이 전부였다.

“예전에도 비슷한걸 본 것 같은데.”

그렇게 중얼거리며 주변을 둘러보던 찰나.

요시아가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나를 부른다.

“선생님. 저거 맞죠?”

그녀가 가리킨 것은 거대한 살덩어리. 아니 정확히는 살덩어리 사이에 존재하는 거대한 알이었다.

“…….”

“그런데. 이게 괴사한 부위인가요?”

요시아는 괜히 손대기도 싫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알을 가리켰다.

“아무래도 코오나가 있어야겠네.”

“네?”

“이건 아니라고.”

겉보기엔 정체불명의 괴사한 피부 같아 보이지만 이건 그런 부분이 아니었다.

나는 일이 있는 벽면의 한쪽으로 다가갔고 신성력을 다시 끌어올려 벽면에 손을 올렸다.

그르르르르르릉…….

동시에 벽면이 스스로 열리기 시작한다.

“선생님…… 이건…….”

내부가 드러남과 동시에 요시아와 내 시야에 어두운 내부가 훤히 보였다.

애초에 빛이 없어도 앞을 볼 수 있는 그녀와 나였으니까.

동굴에 있는 숨겨진 방에 존재하는 것은 하나의 우리였다.

그것도 참혹한 우리.

사방에서 사기로 인해 만들어진 지독한 연기가 가득하다.

썩은 구덩이 속에 엄청난 수의 시체가 쌓여있고 그 안에 두 명의 인간이 인간의 형체조차 잃어버린 채 서로를 물어뜯고 있었다.

“선생님…… 이게 대체…….”

“천중원에 고독이라는 게 있다.”

“고독이요?”

“항아리에 독충 수백 마리를 넣어서 마지막 한 마리가 살아남을 때까지 격리시켜두는 거야.”

그렇게 살아남은 독충은 극한의 독을 품는다 하였던가.

한때 인간이었으나 끊임없는 독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싸운 자들은 점차 강한 괴물이 될 수밖에 없다.

인간의 형상까지 잃어버린 끔찍한 꼴이다.

이윽고 서로를 물어뜯던 인간 중 하나가 천천히 쓰러지고 유일하게 남은 자 또한 쓰러졌다.

쓰러진 사내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숨을 가쁘게 쉬며 나를 시야에 담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는 천천히 내게 입술을 뻐끔거렸고.

이내 갈라진 목소리를 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바라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제발, 죽여줘…….

“선생님!!”

[파이어볼]

그의 바람에 나는 곧바로 화염을 피워올렸고 그대로 구덩이 전체를 불태워버렸다.

그리고는 눈을 감은 채 읊조렸다.

“너희들의 혼을 내가 거두마.”

단순한 말이 아니었다.

내 신령에 따라 이곳에 얽매인 영혼들은 빠르게 흩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였다.

쌔애애앵…… 터업!!

요시아를 노리고 날아든 칼날을 내가 맨손으로 낚아챘다.

“이러면 안 되지. 안돼. 힘들게 만든 먹이를 그렇게 태워버리다니.”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전까지 나를 몰래 지켜보던 이가 직접 출두했다.

내가 구덩이를 태워버리기 전에 나섰어야 했으나 평소와 다른 속도로 구덩이 전체를 태워버린 탓에 그는 상당히 분노한 듯 보였다.

훤칠한 인상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낸다.

“저 사람은…….”

“필두사도라 했던가?”

“이거야 원…… 이제 완성되었는데 먹이를 먹이기만 하면 내 최강의 사역룡이 완성되던 참이었는데 말이야.”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며 투덜거리던 그의 눈이 섬뜩한 시선으로 변한다.

주변을 짓누르고 동굴 전체를 뒤흔들었다.

어지간해선 겁에 질릴 정도로 막대한 힘 속에서 나는 조용히 물었다.

“이봐. 어떻게 할 거야. 네가 태워버린 먹이가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모르는 건가?”

“그럼 내가 여기 오기 전에 막았어야지.”

내 반론에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인정하지. 너무 안일했어. 제법 괜찮아 보이는 먹이라고 생각해서 일부러 이곳에 오게 유도했건만. 설마 내가 모르는 수를 가지고 있었을 줄이야.”

“…….”

“여신의 이름 아래에 신을 배덕하는 악마에겐 단죄가 필요해.”

“이봐…….”

이에 듣다 못한 요시아가 화를 내려던 찰나.

그녀의 발밑으로 검은 가시들이 쏟아져나와 그녀를 포박하듯 휘감는다.

“…….”

“누가 말하는 걸 허락했지? 더러운 악마 따위가.”

“하는 짓만 보면 누가 악마인지 모르겠는데. 아니지. 악마도 너희처럼은 안 해.”

내가 사내를 똑바로 직시했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가 없네. 너희를 시작으로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보아하니 사제관계 같은데.”

그가 천천히 걸어온다.

“사제끼리 서로 죽이기 위해 싸우면 얼마나 독기가 쌓일까, 응?”

그가 스산한 기색을 내비치며 한 손을 들었다.

그러자 그의 뒤편으로 새하얀 빛의 형상이 거대한 낫을 들고 나타난다.

“나를 원망하지 말라고. 아, 그래도 스승이 유리할 수 있으니 팔 한쪽 정도는 잘라가도 되겠지?”

“누구 마음대로?”

내 물음에 그가 빙그레 웃었다.

“누구긴. 여신님의 힘을 내려받은 내 뜻대로지.”

그가 손을 휘젓는다.

동시에 그의 뒤편에 있던 새하얀 빛의 형상이 거대한 낫을 휘둘렀다.

단순한 물리력이나 신성력은 아니었다.

아마 저 형상에 닿으면 좋은 꼴은 못 보리라.

하지만.

콰직…….

새하얀 빛의 형상이 내게 닿기도 전에 멈추더니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마치 겁을 먹은 것처럼, 부들부들 떨리는 게 보인다.

“응?”

“네 뜻대로라…… 오만함이 정도를 넘은 미친놈이네.”

나를 공격하지 못하는 새하얀 형상을 짜증스레 보던 필두사도 말석은 손을 휘저어 형상을 흩어버렸다.

“꼴에 여신님의 힘의 잔재를 손에 넣었다는 건가? 그러니 여신님의 힘도 같은 힘을 지닌 존재를 죽이지 못하겠다는 거겠지.”

그는 형상이 나를 공격하려다가 멈췄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정확하게 보지 못한 듯 보였다.

“하나 물어보지.”

“어이. 이봐.”

콰아앙!!!

내 질문에 그가 짜증스레 발을 굴렀다.

그러자 대지가 뒤흔들리며 압력이 전해진다.

“지금 여기서 누구 마음대로 질문해도 된다고 허락했지?”

“됐고. 여신의 사도라는 놈이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거야.”

내 물음에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뭐야. 이것도 버텨? 제법인데? 이봐. 너 내 밑으로 들어와라. 죽이긴 아까워졌다.”

“대답이나 해. 왜 이런 걸 만드는 거야. 듣고 나서 결정할 테니.”

저 알은 용족의 알이다.

아마 고독의 방식으로 만든 인간을 알에 먹여 사룡을 만들려 했을 터다.

“여신께서는 흥미를 원하시거든.”

“흥미?”

“여신께서는 우리 사도들에게 주기적인 대인전을 요구하신다. 하지만 나는 조금 특수한 케이스라 다른 필두사도에 비해 힘이 강한 편은 아니거든.”

“그래서?”

“그래서 내 사역마를 만드는 거다. 일반 인간들은 이런 게 있는지조차 모르겠지만 우린 인간을 초월한 위대한 존재들이니까.”

즉. 자기 힘이 모자라기 때문에 다른 필두사도를 이기기 위해 이런 괴물을 만들었다는 모양이었다.

결국, 처음부터 괴사한 부위가 아니라 나를 유인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사역마를 만드는 데엔 강력한 집념이 필요하거든. 너희처럼 제법 쓸만한 인간들의 집념이.”

그가 양손을 펼쳤다.

“이것이 완성되면 다른 필두사도들을 짓밟고 여신의 가장 곁에 다가갈 수 있다. 더 많은 힘도 얻을 수 있지. 어때. 나를 모신다면 그 힘의 은혜를 조금 나눠줄 수 있는데.”

“여신이 시킨 거라 이거지?”

정확히 표현하면 여신은 사도끼리 싸우는 걸 즐기는 정신 나간 년일 뿐이다.

다만 그 과정이 이렇게 비틀려버린 것일 테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 차원은 구할 가치가 없어 보인다는 사실.

괴사한 부위를 찾겠다던 내 의지는 사라졌다.

“요시아.”

“네?”

“언제까지 장난칠 거냐. 나와.”

그 말에 요시아가 입술을 슬쩍 내밀며 힘으로 검은 구속을 부숴버렸다.

“음?”

“홍단이 청단이 미안한데. 도시락은 나중에 먹자고. 어이, 결정은 내렸다.”

“호오. 그래. 따르던지. 죽던지. 가능하면 따르는 쪽을 택하는 게 어때? 제법 마음에 들거든.”

그의 미소에 나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동시에.

스스스스스…….

그의 전신에 머무르고 있던 여신의 신력들이 마치 강제로 빨려 나가듯 내 안으로 스며든다.

이러면 차원에 내 존재를 들키게 되겠지만 이딴 차원 괴사하건 말건 무슨 상관이랴.

“커헉?! 무…… 무슨?!”

자신의 몸에서 여신의 힘이 대량으로 빠져나감을 깨달은 그가 황급히 다시 백색의 형상을 불러냈다.

“놈을 죽여!!!!”

하지만 형상은 응답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거대한 빛의 낫을 사내에게 걸었다.

“뭐…… 뭐야. 대체 왜 이러는 건데!”

“왜 이러긴. 네가 가진 힘의 지배권보다 내 지배권이 더 높았나 보지.”

차원이 나를 발견하고 쫓아낼 가능성이 존재하기에 일부러 신력의 사용은 아꼈지만 사용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지배력은 내 쪽이 더 효율이 높았다.

“이…… 이익!!”

자신의 힘을 빼앗긴 그가 황급히 나를 공격하려 한다.

하지만 요시아가 하품을 하며 손을 튕기자 그의 몸이 그대로 짓눌렸다.

“끄아아악!!!”

여신의 힘을 받았기에 강해진 그였지만 그 힘을 내가 압수해버린 탓에 그에게 남은 힘은 얼마 되지 않았다.

“죽여요?”

“내버려 둬.”

내가 손을 휘젓는다. 그러자 백색의 형상은 마치 그동안 자신을 부려먹은 필두사도를 향한 분노를 토해내듯 빛의 낫을 높이 들어 올렸다.

“너…… 너 대체 뭐야……. 너 뭐냐고!!!”

자신만만해 하던 힘은 하나도 먹히지 않고 오히려 빼앗겨버리기 까지 했다.

그는 겁에 질린 듯 소리 지르며 내게 정체를 종용했다.

이에 나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악마 이 새끼야.”

서걱!!!

빛의 낫은 가차 없이 그의 목을 날려버렸다.

그 후 그의 몸에서 빠져나가는 혼이 순환계에 올라가지 못하게 포획한 나는 그의 혼을 강제로 억류한 뒤 비틀었다.

에이리아처럼 영혼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건 힘들지만 어차피 레디미아 황비처럼 극단적인 케이스도 아니니까.

소리 없는 절규를 내뱉는 영혼을 움켜쥔 채 나는 차원의 흐름을 감지했다.

여신과는 별개로 차원 자체가 나의 존재를 거부하며 나를 쫓아내려 한다.

“선생님?!”

“나가자.”

괴사한 부위를 해결하고 차원을 살리려던 나는 그것을 포기했다.

그렇기에 더 이상 이 차원에 남아있을 이유가 사라졌다.

차원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상위의 존재인 나를 튕겨내려 온 힘을 다하기 시작했고, 내가 거부하지 않자 나와 요시아의 혼을 그대로 밖으로 쫓아내 버렸다.

“뭐야. 들어간 지 반나절밖에 안 됐는데. 벌써 나온 거야?”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내가 천천히 움직이며 접속장치를 풀고 눈을 뜨자 일리나가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비화야.”

“네?”

“이거. 지옥에 처박아.”

“그거 신력의 잔재가 느껴지는데…… 혹시…… 그 차원에서 만든 사도급 신격이에요?”

여신을 말하는 것일 터다.

“아니. 그 사도라는 놈이다.”

“괴사한 부위는요?”

“됐어. 이차원은 포기한다. 괴사해서 소멸하게 내버려 둬.”

“그래도…….”

“괴사 당하고 있는 차원은 이것뿐만이 아니야. 코오나를 데리고 다른 곳부터 해결한다.”

내 말에 비화가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결정에 반론하진 않았다.

그 말대로 처음 들어간 차원 이외에도 심각한 상태에 놓인 차원들은 많았기 때문이었다.

* * *

데이비가 괴사한 차원이라 불렀던 차원이 만들어낸 어린 신격.

여신은 새하얀 옷에 어떤 더러움의 침입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고고하게 걸어 나갔다.

그녀의 앞에는 한 사내가 조각이 난 시체가 되어있었다.

“필두사도는 나의 분신이라 말했거늘…….”

조용히 읊조리는 말투에 그것을 지켜보던 이들이 덜덜 떨었다.

감히 어떤 미친놈이 이 세계의 절대자이자 전능한 절대신의 심기를 거스른단 말인가.

외부의 악마들인가.

하지만 그들조차 절대 신인 여신에겐 미치지 않을진대.

“여신이시여. 미천한 제가 아뢰옵기를. 외부에서 온 악마는 감히 여신님의 신성을 의심하는 배덕자이옵니다.”

“…….”

“그를 단죄하실 힘을 보여주옵소서…….”

한 사내를 시작으로 여신의 분노를 두려워한 이들은 필사적으로 여신의 분노를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잘못하면 그녀의 분노가 이 땅 전체에 퍼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말석이라곤 하나 여신의 마음에 들어서 필두사도가 된 자였다.

그가 오랜 시간 여신에게 흥미로운 것을 보여드리겠다며 호언장담했으나 무뢰한에게 살해당한 것이었다.

여신은 소생할 수 있는 영향을 넘어 영혼째로 뽑혀나간 사내를 보며 싸늘하게 웃었다.

“그래…… 절대 신의 계시를 무시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줘야겠지.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는 찾았나?”

“예. 한데 정말로 외부에서 온 듯한 모양이었습니다.”

“외부라…….”

진짜로 외부의 존재가 찾아온 건 처음이지만 상관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절대 유일신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 말이다.

그것은 싸가지 없이 커버린 차원이 여신을 만들어내면서 생긴 폐해였다.

위풍당당하게 신의를 흩날리며 필두사도의 시체에서 흔적을 찾아낸 그녀는 곧바로 손을 휘저어 공간을 찢어냈다.

이 행동으로 차원의 수명이 대폭 줄어들었지만, 차원도, 그녀도 그것을 알지는 못했다.

[유일신이 친히 행차했음이니, 미천한 이 세계의 모든 존재들은 들어라. 절대적인 광휘 앞에 신을 배덕한 자들에게 단죄를 내리겠노라.]

그녀는 이어진 차원 너머로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했다.

단죄의 시간이 열렸음을 알린 그녀는 그녀를 모시는 수많은 성전을 위한 병력과 그녀의 힘의 상징인 필두사도들을 이끌고 차원을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행동은 차원을 관리하던 솔로모니아조차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여신이 겁도 없이 침공을 감행한 티오니스에서 이변을 눈치챈 비화가 스산한 미소를 지었다.

“이 x년이 지금 누가 유일 신이라고?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들어 와.”

아빠인 데이비가 이차원은 포기한다고 했을 때 굳이 그래야 하나 싶었던 그녀였지만 생각이 바뀌는 데엔 많은 시간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괴사 차원의 여신은 자신도 모른 채 범의 아가리로 머리를 들이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 본인은 그것을 몰랐고 더욱 미친 짓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차원을 넘기가 무섭게 여신이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생명력이 충만한 세계였다.

“호오. 이 세계는 생명력이 충만하구나. 저 달 때문인가? 마음에 들어.”

“여신님 모두 대기 중이옵니다.”

“그래, 그래. 저 달도, 이 세상도 마음에 드는구나. 내가 가져야겠다.”

그렇게 말하며 차원을 완전히 이어붙여 간섭하려 한다.

비록 그녀의 차원은 아니지만, 그녀는 자신이 유일 신이라는 것에 믿어 의심치 않았다.

우선 하늘의 빛부터 앗아가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그녀의 앞에 푸른 머리칼에 무표정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신의 눈에는 보잘것없는 사도처럼 보였다.

“이 차원을 지키는 사도인가? 감히 내게 머리를 조아리지 않다니.”

여인은 조용히 침묵한 채 눈을 감았다.

“건방지게 형체도 없이 나를 막아서려는 것인가. 꺼져라. 감히 내 심기를 거스른 대가는 치러야겠으니.”

여인은 조용히 태블릿을 들었다.

[돌아가.]

그녀의 말에 여신은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손을 휘저어 푸른 머리칼의 여인을 그어버렸다.

동시에 푸른 머리칼의 여인의 몸이 흩어진다.

“감히 일개 사도 따위가 누구에게 명령하는가. 내가 바로 전지전능의 절대 여신이니라.”

그녀는 방금 그녀를 다독이려던 여인이 누구인지 몰랐다.

그리고. 그 꼴을 보고 있던 성역의 영웅들이나 자신의 성역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넬타리드가 입을 쩍 벌렸다.

“저…… 저 미x년이…….”

그야말로 이런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