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11화
파르투스 백작은 폐허가 되어버린 장소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백작님…….”
“…….”
“백작님!!”
“어…… 음…… 그래. 무슨 일인가.”
“저들은…….”
전쟁이 벌어질 거라 생각했다. 아마 이곳의 모두가 죽을 거라 생각했다.
적은 5만 명, 이쪽은 그 10분의 일은커녕 훨씬 적은 숫자였으니까.
무엇보다 수성 물자가 부족한 것도 한몫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끝났다.
5만에 달하던 병력. 강력한 기사들. 그리고 마스터 급 이상의 존재보다 위험해 보이던 이들.
마지막으로. 그들을 이끌던 직접 쳐다보기도 힘들 정도로 막대한 힘을 품고 있던 여인까지.
지금은 아무것도 없다. 여인을 제외한 모두 한 줌의 잿더미가 되어 사라져버렸고 여인은 어디론가로 황급히 도망쳐버렸다.
그럼에도 모습을 드러낸 다수의 남녀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쫓을 필요 없다는 듯 말이다.
“아차. 이럴 때가 아니지!”
뭐가 됐건 저들에게 감사를 표해야 했다. 인외의 힘을 휘두른다고 한들 그게 감사를 받지 않을 이유가 되진 않는다.
백작은 황급히 병력을 이끌고 성문을 열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영지를 다스리고 있는 파르투스 백작이라 합니다. 귀인들의 도움으로…….”
“함부로 성문을 여는 건 어리석은 행동이지.”
그때 덩치 큰 사내가 손에 쥔 거창을 땅에 꽂아 넣고 말했다.
“예?”
“우리가 적이었다면. 그대의 영지는 순식간에 성문이 뚫린 셈이라는 뜻이네.”
“그게 무슨…….”
“물론 지금 상황에 그런 건 의미가 없겠지만. 껄껄껄…….”
미친놈인가?
백작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정복왕 아스트레아를 바라보았다.
우스갯소리.
하지만 그의 말은 분명 일리가 있었다.
“의심할 리 없지요. 하늘에 뜬 저 비공정은 하인스에만 존재하는 대륙 유일의 귀물입니다.”
“쯧쯧 아직 배울 게 많은 작자로군.”
대체 뭐가 불만인 건지.
백작은 어이가 없었지만, 몸가짐에 최대한 조심을 가했다.
“하나…… 물어도 되겠습니까.”
“말해보시게.”
“당신들은…… 하인스의 데이비 올 라운 대공께서 보내신 이들이 맞습니까.”
그 말에 아스트레아가 뭐라 말하려던 참이었다.
“쓸데없는 소리하지 마. 근육 덩어리.”
지팡이를 짚고 무심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작은 소녀가 그를 제지한다.
그리고는 천천히 백작을 향해 다가온다.
어린아이의 걸음처럼 가볍다. 하지만 백작은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꼈다.
“그만두세요.”
“우리에 대한 기억은 지우는 게 맞아.”
“그건 결과론적인 이야기에요. 그리고 지금 이럴 때가 아니에요. 데이비를 속이는데에도 한계가 있으니 가세하지 않으면 일이 귀찮아질 테니까요.”
담담하게 고개를 저어 보인 한 여인이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이내 그들은 빛이 되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고, 마지막 남은 금발의 조그마한 소녀는 말없이 백작을 보다 고개를 돌리고 사라졌다.
마치 신이 강림하면 이런 느낌일까.
백작은 고고하게 떠 있던 거대한 비공정이 선수를 천천히 돌려 그녀의 머리 위를 지나쳐 저 멀리 날아가는 것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거대한 그림자로 인해 순간적으로 어두워진 느낌이었지만 어떻게 저런 속도가 나오는가 싶을 정도로 가속한 비공정은 순식간에 사라진 후였다.
그 모습이 웅장하기 그지없어 절로 탄성이 나올 정도였다.
“백작님!!”
뒤이어 병사들이 그녀를 향해 뛰어온다.
“……전후 뒤처리를 해야 하니 병력들을 차출해. 그리고…… 전쟁이 끝났음을 알려라.”
근심이 서린 그녀의 말에 병사들은 멍하니 서로를 바라본다.
* * *
“아아악!!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
“넬타리드, 당장 놔.”
“선배님. 일단 진정하세요. 그러다 죽으면 그걸로 끝입니다.”
“영악한 새끼…….”
바닥에 주저앉은 채 엉엉 우는 베스타 여신의 머리는 여신답지 않게 완전히 산발이 되어있었다.
풍파가 몰아쳐도 고고함을 잃지 않았어야 할 그녀의 머리카락이지만 같은 신. 아니 그녀보다 상위의 신에겐 아무런 소용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죽게 될 거야…… 죽게 될 거야!’
베스타는 덜덜 떨며 생전 처음 느끼는 공포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런 건 몰랐다. 전혀 몰랐다. 보는 것만으로도 두려운 여신이 손을 뻗을 때마다 온몸이 부서지는 듯한 아픔이 그녀의 전신을 지배했다.
“꺄아아악!!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
신의 체통? 유일 신?
그딴 건 지금 눈앞에 있는 존재들에겐 먹히지 않을 소리였다.
처음엔 몰랐으나 그녀를 끌고 온 소년과 소녀 둘은 베스타가 품고 있는 신력에 비하면 아득히 상위의 존재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거짓말! 내가 유일신인데. 어째서 더 상위의 존재가 있는 거야!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그녀는 필사적으로 목숨을 구걸했다.
그때였다.
조용히 앉아 눈을 감고 있던 푸른 머리의 여인이 천천히 다가와 베스타를 끌어안듯 감싼다.
“여신님. 막지 마세요.”
당장 막는 놈들을 다 부숴버릴 것처럼 구는 이 험악한 여신이 고작 사도에게 존칭을 사용한다?
베스타는 어안이 벙벙했다.
푸른 머리의 여인에게서 느껴지는 건 단순한 사도 정도의 힘. 이토록 상위의 존재가 예를 다할 존재처럼 보이지 않았다.
물론.
태생부터 오만했던 그녀는 여기서 또 한 번 실수를 저질렀다.
“그래! 어…… 어서 나를 감싸! 나를 보호해! 사도라면 나…… 나를 살리란 말이다!!”
그 외침에 비화와 넬타리드가 동시에 입을 떡 벌렸다.
“이…… 이 미친년이!!”
그리고 뒤이어 폭발한 것은 다름 아닌 소녀도 아닌 소년. 바로 넬타리드였다.
터엉!!!
무형의 힘이 베스타의 목을 틀어잡아 그녀를 끌어올린다.
“끅…… 끄륵…….”
숨을 쉬지 않아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여신이다. 하지만 베스타는 어째서인지 목이 졸릴수록 자신의 신력이 비명을 지르는 것을 느꼈다.
“한 번은 너그러이 넘어갈 수 있다만 두 번이나 감히 저분께 무례를 끼쳐?”
“야…… 야! 죽이면 안 된다며!”
“선배님. 그냥 죽입시다. 어차피 거품 차원이잖아요.”
서슬 퍼런 기세를 풍기며 넬타리드가 그녀를 죽여버리려 들었다.
하지만.
꼬옥…….
푸른 머리의 여신은 엉엉 우는 베스타의 몸에 휘감긴 넬타리드의 힘을 걷어낸 뒤 그녀를 품에 안고 고개를 저었다.
“하…….”
“아아…….”
동시에 비화와 넬타리드의 얼굴에 아연함이 서린다.
[그만두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이니.]
본래의 프리아 여신이라면 이런 건 전혀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여신은 달랐다.
감정이 생겨난 여신이었으니까.
“하…… 아니 모른다고…… 하…….”
비화는 속이 타는지 제 가슴을 두드렸다.
“여신님. 그거 계속 감쌀 거에요? 그거 맞아요?”
여신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지 말라는 그녀의 자애에 비화는 속이 타는 느낌이었다.
이에 비화가 물었다.
“대체. 저딴 년은 왜 만드신 거죠?”
비화로썬 그게 제일 이해가 안 됐다. 왜 이제 와서 갑자기 차원을 만들어내는지. 부모도 못 알아보는 저 싸가지를 태어나게 만든 것인지.
비화의 물음에 여신은 조용히 베스타를 품에 안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태블릿이 아닌 그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만물의 창조 이래로 모든 것은 순환할지니, 태어난 아이는 자신이 태어나길 바랄 수 없는 법이란다.]
그 한마디에 비화와 넬타리드는 근본적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으허허어엉…… 흐어엉!”
저 엉엉 울고 있는 베스타라는 이름의 여신은 스스로 원해서 태어난 게 아니다.
여신은 모종의 이유로 베스타가 있는 거품 차원을 만들어냈고. 급속도로 성장한 차원은 온전하게 자라지 못했기에 이토록 싸가지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넓은 마음으로 보듬어주는 것이다.
프리아 여신의 뜻은 그러했다.
“아무리 개념이 없어도 저 미친년이 저지른 짓은 여신으로썬 해선 안 될 짓이잖아요.”
베스타가 힘을 막무가내로 쓸수록 그녀를 태어나게 만든 차원의 수명이 급속도로 줄어든다.
모르긴 몰라도 거품 차원은 한참 늦게 태어났으나 그 미래가 다른 차원처럼 방대할 수 없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맞습니다. 여신님. 올바른 상태를 내고자 한다면 저 베스타라는 여신은 현재 존재해선 안 됩니다.”
넬타리드까지 단호하게 말한다.
이에 베스타는 자신이 살길은 오로지 프리아 여신에게 더욱 파고들어 그녀에게 동정을 유도하는 방법뿐이라는 것을 배웠다.
“잘못했어요! 제발 용서해주세요! 다시는 얼씬도 하지 않을게요!”
그녀의 필사적인 말에 프리아 여신은 담담한 얼굴로 베스타의 눈물 젖은 뺨을 쓸어주었다.
동시에.
“어…….”
엉엉 울던 베스타의 눈이 살짝 크게 뜨여진다.
지금껏 사도 정도로 여겼던 여신을 통해 그녀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무언가의 편린을 본 것이다.
그제야 일개 사도 따위가 아니라 자신은 감히 고개조차 들지 못할 존재라는 것을 깨달은 베스타는 딸꾹질까지 했다.
“대…… 대체…….”
“아오!!”
프리아 여신의 고집에 결국 비화와 넬타리드는 포기를 선언했다.
“여신님. 그래서 저년을 어쩔건데요.”
비화가 퉁명스레 말하자 여신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베스타를 다독일 뿐이었다.
그때였다.
짜드득…… 짜득…….
“오…… 여신님 맙소사. 조졌다…….”
“서…… 선배님!”
당황한 두 신이 황급히 막아보려 하지만.
쩌저저적!!!
금이 간 허공 속에서 두 손이 불쑥 튀어나오더니 마치 엘리베이터 문을 강제로 잡아 열 듯 공간을 부서뜨리고 틈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어두운 저 너머에서 새빨간 안광이 일렁인다.
“이 빌어먹을 년 어디 있어.”
한눈에 봐도 분노한 게 보일 정도로 화가 난 데이비가 공간을 부수며 성역에 나타났다.
프리아 여신은 말없이 베스타를 끌어안아 주었고 베스타는 비화나 넬타리드조차 보인 적 없는 흉포한 기류에 파랗게 질려 와들와들 떨었다.
“아빠. 진정해요.”
“비화야.”
“네?”
“조용히 해라.”
서늘한 한마디에 비화가 딸꾹질하며 물러난다.
이후 데이비는 성큼성큼 걸어가 그대로 기검을 뽑아냈다.
신력과 태초의 포식자의 힘까지 서린 지독하게 무거운 힘이었다.
베스타는 그 존재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자신을 보듬어주고 있는 이는 자신의 태생이나 다름없다. 감히 그녀가 쳐다보지도 못할 진짜 전능의 유일 신.
그런 그녀가 지켜주고 있으니…….
서걱!!!
일순간 베스타의 머리카락 몇 가닥이 잘려나갔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으면 그녀의 목은 프리아 여신에게 안긴 채로 떨어져 나갔으리라.
이 미친놈은 그딴 걸 가리지 않았다.
“꺄아아악!! 주…… 죽고 싶지 않아! 살려줘!!”
비명을 지르며 그녀가 발광을 한다.
회랑의 영웅들이 결국 그를 막지 못했다는 것이리라.
아니 막는다는 말이 조금 우습긴 하지만 결국 데이비는 이곳에 왔다.
“솔로모니아 놈 때문에 차원을 치유하려고 갔다만.”
시작부터 일이 이렇게 거지같이 굴러가네.
데이비의 말에 베스타는 데이비가 그녀의 차원에 찾아와 필두사도 말석을 죽여버린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였는지도 깨달았다.
“여신님. 그년 놓으세요.”
그 말에 여신이 짐짓 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다.
[그만해.]
그녀의 주변으로 태블릿이 떠오르며 글귀를 출력했다.
“다른 거 다 참아도 이건 아니죠. 그 미친 파괴나 타나토스도 이렇게 무식한 짓은 안 했습니다.”
데이비의 서늘한 미소에 여신은 뭔가 기분이 좋아진 듯 얼굴을 꿈틀했지만 이내 다시 엄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아무것도 몰랐던 아이야.]
“모르면 잘못이 사라집니까? 신격은 변하지 않아요. 저거 살려 보내면 또 염병할 겁니다.”
데이비의 말에 베스타가 엉엉 울며 소리쳤다.
“자…… 잘못했어요! 다신 그러지 않을게요!”
“그래. 잘못했지. 다신 안 그래야지.”
“그…… 그럼!”
“근데 그건 나중 일이지 않나? 물론 네게 나중이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어차피 곧 뒤져나갈 차원 지금 죽어도 문제는 없을 거다.”
데이비에게 프리아 여신은 복잡한 존재였다.
은인이며 웬수 같은 존재이기도 했고, 어머니 같은 존재이며 연인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데이비는 자신도 모르게 프리아 여신을 끔찍이도 따른다는 사실이었다.
비화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여신이 말리건 말리지 않건 데이비는 반드시 그녀를 찢어 죽여버린 뒤 영혼까지 갈아 마셔버릴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저…… 선배님. 저희는 뭘 할 수 있죠?”
“우린 쓸모가 없어. 그러니까 그냥 구경이나 해.”
비화는 그녀의 아공간을 열어 작은 사탕을 꺼내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는 넬타리드에게도 하나 건넨다.
“먹을래?”
“거…… 너무 태평하신 거 아닙니까?”
“말했잖아. 우린 쓸모가 없다고.”
그러거나 말거나 데이비의 기세는 더욱 흉포해져 갔다.
“여신님.”
[그만해.]
“아뇨. 못 그만둡니다.”
데이비의 단호한 대답에 여신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에 베스타는 엉엉 울며 프리아 여신을 올려다보았다. 제발 살려달라는 그 눈물 어린 시선에 여신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데이비.”
“윽?!”
“그만해.”
여신이 태블릿을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선 여러 의견이 있지만 사실 본질은 이것이었다.
태초 신의 목소리엔 너무도 많은 힘이 서려 있다는 사실.
지금처럼 태블릿으로 그만하라 말하는 것과 달리 그녀가 육성으로 내뱉은 한마디에 데이비의 표정이 왈칵 찌푸려진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데이비가 주먹을 꽉 쥐며 검을 부서뜨려버리자 베스타가 기겁을 했다.
“흐아악!!”
파편에 닿은 그녀의 신성이 뭉텅뭉텅 깎여나갔기 때문이었다.
“데이비.”
이윽고 여신의 입에서 청아하면서 신성하고, 아름다운 목소리가 다시 한번 나오자 데이비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하아…… 알겠습니다.”
그녀가 신령으로 묶어버린 이상 데이비가 어찌할 수단은 없었다.
“그래서. 저년 살려두시겠다는 겁니까?”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회복해야 하는 아이야. 아직 온전하지 못하니까.]
그 말인 즉 여신의 실수라는 소리였다.
감정이 생겼기에 생길 수 있는 작은 변수. 하지만 이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다.
변화에 성장통을 겪을 순 있지만 그 범위가 생각보다 컸다.
그럼에도 데이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여신을 이렇게 만든 건 그였으니 말이다.
[베스타]
“네…… 넵!”
바짝 군기가 든 신병마냥 바짝 얼어붙은 베스타가 대답하자 여신은 말없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미안하구나. 온전하지 못한 상태로 널 개화시켰구나.]
“…….”
무슨 이유였을까. 베스타는 자신이 이해도 못한 채로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는지 그녀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더니 엉엉 울기 시작했다.
“이상한데…… 왜…… 왜 자꾸…….”
스스로도 왜 눈물이 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그녀가 중얼거리기가 무섭게 그녀의 몸에서 검은 기류가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그 모습은 가히 신성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여신은 그녀를 다시 차원과 합일시킨 뒤 베스타가 있던 차원을 다시 회복기로 돌려 온전한 차원으로 다시 되돌리려는 것이었다.
과거라면 모르나 희생의 권능을 넘겨주며 일부가 깨어난 그녀에겐 어렵지 않은 듯했다.
그리고, 베스타는 좀 전처럼 살려달라 비는 것 대신 여신의 힘을 거부하지 않았다.
마치 본능처럼.
[잠깐.]
그때였다. 여신이 태블릿을 들어 올렸다.
[가기 전에 뭐라도 좀 먹고 가렴.]
“네? 아…… 저는…….”
[먹고 가렴.]
자애롭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 모습을 보며 데이비는 생각했다.
이 여신이 지금 또 요리를 시키려는 것일까.
하지만 모두가 생각한 것과는 달랐다.
여신은 손을 튕겼고 모두를 어딘가로 이동시켰다.
동시에 풍겨오는 고소한 향기가 모두의 후각을 자극한다.
하지만 뭔가 불안할 정도로 익숙한 향기가 난다.
여신은 베스타를 의자에 앉혔고 그녀의 앞에 빨간 떡볶이를 내려놓았다.
“이…… 이게 뭔가요? 어머니…….”
[맛있게 먹으렴. 남기지 말고.]
베스타는 비록 먹지 않아도 존재할 수 있지만 미각으로 인한 유희를 꽤 즐긴 만큼 맛있는 것에 대한 갈망도 제법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행동은 조심스러웠다.
“아빠 저거!!”
그때 비화가 흠칫 놀라며 소리치려 하자 데이비가 비화의 입을 틀어막는다.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것…….”
베스타.
오만하고 잔인한 성정의 여신은 어디에도 없었다.
본래라면 존재해선 안 되는 여신.
차원의 일부로써 존재해야 하나 차원이 싸가지가 없어지면서 만들어진 문제점이 바로 베스타였다.
즉 베스타는 차원이며 차원이 만들어낸 아바타가 베스타였다.
그러니 힘도 마음대로 끌어다 썼고 여신의 격도 현저히 낮았다.
여신의 권유에 베스타는 천천히 포크를 집어 떡볶이를 입안에 밀어 넣었다.
동시에…….
베스타의 눈이 부릅 뜨여지더니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다.
그녀의 눈동자가 쉴 새 없이 떨리지만, 여신은 태블릿을 들어 올린다.
[다 먹으렴.]
“으읍!! 으으읍!!”
바로 전에까지 정화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버둥거리지만, 그녀의 몸은 그녀의 의지를 배신한다.
그럴수록 베스타의 눈동자는 마치 안마기마냥 덜덜 떨렸다.
“성능 확실하네…….”
데이비가 파리해진 안색으로 중얼거리자 비화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저거…… 에반젤린의 요리 맞죠? 이 냄새 분명해요…….”
에반젤린의 요리는 이제 요리의 격을 넘어 서 있었다.
물리적으로도, 마법적으로도 이게 어떻게 되는지 궁금할 정도.
초단이가 과거 보여주었던 지옥의 세레나데처럼 무언가 톱니가 빠진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에반젤린의 요리 전부가 이런 것도 아니었다.
에반젤린이 만드는 특정 몇몇 요리는 그야말로 미스터리 그 자체였다.
“야, 야 넬타리드 저거 대체 원리가 뭐야?”
“아마…… 고대룡 이클립스의 영향이 아닐까요……. 그런데…… 여신님…….”
선대의 기억이었을까.
넬타리드는 온몸을 비틀며 괴로워하다 사라지는 베스타를 보며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이클립스?”
“선대의 기억에 따르면 그녀도 그랬던 거 같더군요.”
자애롭게 베스타를 보듬어주었지만, 여신의 마지막 복수가 사실 제일 크지 않았을까.
비록 반푼이라곤 해도 신격을 지닌 베스타를 저 지경으로 만드는 것을 보면 경이로운 모습이다.
같은 시각. 솔로모니아는 인도자인 코오나의 힘을 어떻게 끌어낼 수 있는가 고민했다.
첫 번째 차원 이외에도 데이비가 지금 빨리 해결해야 할 차원이 여럿 있는 만큼 시간은 필수였다.
문제는 설마 첫 번째 차원의 여신이 정신을 놓고 티오니스로 쳐들어갈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는 점일까.
그래도 데이비가 나섰으니 어떻게든 해결되겠거니 했건만.
“아…… 안돼!!”
극심하게 흔들리며 괴사해가는 차원을 보며 솔로모니아는 절규를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