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414화 (1,414/1,559)

제 1414화

하늘빛 눈동자가 반짝이며 검게 물든 대지에 스며든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녀의 내면에서 푸른빛을 지닌 정체 모를 에너지가 흘러나오며 검은 대지를 정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페르세르크는 본능적으로 그녀가 내뿜는 힘이 그 촉수 인간인 솔로모니아가 은연중에 풍기던 기류와 흡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코오나가 내뿜는 힘은 그보다 더 정순했다.

“아비트…….”

페르세르크는 코오나의 등 뒤로 마치 거대한 용의 향상이 나타난 것 같은 착각을 받았다.

‘붉은 공허 또한 본래 존재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었음이지.’

어찌 보면 붉은 공허는 지금 순회를 예정한 거품 세계의 상위호환에 해당하는 세계가 아닐까.

그곳을 조율해온 아비트가 건네준 힘이라면. 이 상황도 납득은 갔다.

페르세르크는 멍하니 코오나의 춤사위를 지켜보았다.

아마 그녀 본인도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모를 터였다.

그렇게 한참 동안 무아지경에 빠진 춤사위가 끝났을까.

땅을 오염시키던 검은 기류는 모조리 사라졌다.

“하아…… 하아…… 내…… 내가 뭘…….”

“대단하구나. 대지를 정화시키다니.”

단순 정화마법인 퓨리피케이션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차원의 괴사에 딱 맞는 힘을 발현한 것이다.

“하아…… 하아. 너…… 너무 힘들어요…….”

그리고는 털썩 쓰러져버리는 그녀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다며 울상을 지었다.

“요정님이 땅을 고쳤다!”

“대단하다! 대단하다! 이제 땅이 울지 않는다!”

쿵쿵쿵!!

이놈의 거인은 마냥 땅이 원래대로 돌아왔다는 사실만이 중요한지 바닥을 구르며 좋아라했다.

“이 자리! 내가 좋아하는 곳이다!”

“여기서 자면 어깨가 안 아프다!”

그 말에 페르세르크는 천천히 다가가 대지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령이…… 돌아왔어?”

이지가 없는 자연계 최하위 정령.

자연을 구성하는 일부.

그것들이 돌아와 있다.

조금 전의 검은 늪에 침식되어있었다면 분명 이곳에는 그 어떤 것도 남아 있지 않아야 했다.

“그러고 보니…… 풀과 꽃들이…….”

비록 짓눌리긴 했지만, 그녀의 시야에 비친 것은 커다란 꽃밭이었다.

마치…….

검은 늪이 잠식하기 이전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설마…….”

페르세르크는 아비트가 무슨 이름을 지니고 있었는지를 깨닫고 눈을 크게 떴다.

시간을…… 되돌려?

페르세르크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풀썩 쓰러져 있는 코오나를 바라본다.

“말도 안 돼. 과거처럼 차원의 벽이 극도로 두꺼운 것도 아닐진대…….”

차원의 벽이 약해졌다는 것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회랑과 지구, 티오니스는 물론 다른 세상의 모든 시간대가 제각각 달랐던 것도 그 예시였다.

실제로 시간의 정령 알타이르 또한 지금 같은 상황에선 시간의 흐름을 아주 옅게 비틀뿐 이런 식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할 순 없다.

이건 마치. 정화가 아니라. 오염되어 더 이상 못쓰게 되어버린 세상의 일부를 되감기 한 것 같지 않은가.

물론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평행선의 아벨이 좋은 예시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힘은 모든 평행선을 통틀어 세계의 법칙에 귀속되었고, 이제는 그 힘을 두를 수 없다. 무엇보다. 코오나의 복원과 아벨의 시간 이동은 그 범위가 달랐다.

애초에 이걸 시간과 관련이 있다고 집어낼 수 있을까.

“한 세상 내에서 일부 시간대만 비트는 건 더욱더 불가능할 터…….”

페르세르크도 마법사였기에 이 같은 현상이 얼마나 허황된 일인지 잘 알았다.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학회에 발표하면 소설은 다른 곳에다 쓰라며 몰매 맞을 정도의 어이없는 현상이었다.

정작 거인이나 이 일을 해낸 코오나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고 있는 듯했지만.

“코오나. 괜찮은 게야.”

“아…… 네. 조금 피곤하긴 한데…… 괜찮아요. 그런데 방금 제가 쓴 힘이 솔로모니아가 말했던 그것일까요.”

“아마 맞겠지.”

‘우선은 데이비에게 이야기를 해봐야겠구나…….’

데이비는 잠시 무언가를 확인하러 떠났다. 그동안 벌어진 이 현상을 그라면 쉽게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말해주는 게 옳으리라.

자신의 잠자리를 고쳐준 코오나에게 고마운지 거인은 자신이 잡은 사냥감 일부를 잘라 건네주거나 그녀의 부탁을 이리저리 들어주었다.

겉보기엔 정말로 위험해 보이지만 멍청한 만큼 순박한 건지 제법 말을 잘 따른다.

이에 페르세르크는 그동안 이 세상에 대한 정보를 여럿 수집했다.

바위에서 태어난 이 거인은 오랜 시간 이 땅을 지배하는 파충류나 날개왕이라 불리던 거대 드래곤 같은 존재와 싸워왔던 모양이었다.

타고난 폭군으로서 이 땅을 마구잡이로 헤집는 파충류들과 땅에서 태어난 거인은 태생부터가 앙숙으로 거인이 파충류형 거대 몬스터들과 죽도록 싸우는 데엔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검은 늪이 그를 힘들게 만들었다.

그의 힘을 앗아가고 그가 쉴 자리를 점점 침식했다.

오죽하면 파괴를 일삼던 파충류들 중 일부조차 그 검은 늪의 상태가 심각함을 깨닫고 거인과의 반목을 잠시 멈출 정도였을까.

일부 그렇지않은 포악한 종도 존재했지만, 결과적으로 처음처럼 끝없는 싸움이 벌어지진 않았다.

“꿈에서 봤다. 엄청 작고 예쁜 여신님이었다!”

“나도 봤다! 요정님이 올 거라고 했다. 우리 돕는다고 했다!”

대소를 터뜨리며 제 무릎을 찰싹찰싹 때리는 거인의 모습에 페르세르크는 차라리 잘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검은 늪지대가 괴사 부위라는 게 확실하다면 이 거인은 그 위치를 찾아줄 수 있을 테니까.

“하면 그 검은 수인족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는가.”

전신이 마치 검은 안개에 휩싸인 것처럼 일렁이던 검은 수인.

긴 귀를 지닌 존재는 페르세르크가 보기엔 너무 불길해 보였다.

무엇보다.

괴사 부위를 만들어 내는 건 그자가 분명하며. 그냥 두면 절대 안 된다는 불안함이 들었다.

“수인족? 그게 먼가? 먹는 건가?”

거인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본녀와 비슷한 크기에 이렇게 귀가 달렸다네.”

페르세르크가 마치 여우 귀를 흉내 내듯 머리 위에 손을 가져다 대자 거인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앓는 소리를 냈다.

“나 기억력 나쁘다! 그런 거 일일이 기억 못 한다!”

“하지만 본 적 없는 것 같다!”

그 존재를 본 건 페르세르크뿐이었던 모양이다. 코오나도 거인도 발견을 못 하다니. 웃긴 일이다.

“으!”

“어디 가는 게야?”

“요정님! 물을 너무 많이 마신 모양이다! 얼른 갔다 온다! 여기서 볼일 보면 냄새가 난다!”

그리고는 쿵쿵 걸어가 버리는 그의 뒷모습을 본다.

“코오나.”

“네?”

“그 힘. 아벨이 가지고 있던 시간과 흡사해.”

“시간이요? 정화가 아니고?”

“시간과 관련된 것인지 아니면 복원인지 본녀도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거 하나는 확실해 보이는구나.”

코오나가 지닌 힘도 기존의 상식을 뒤엎는다는 것을.

“설마 그 정도 일라고요.”

“시간을 비트는 문제가 아닌 게야. 네 힘이 만약 다른 곳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면.”

그녀가 잠시 침묵하자 코오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만약 그 힘에 한계가 없다면.”

그녀는 하늘에 뜬 녹빛의 달을 가리켰다.

“멸망의 신을 부활시키는 것도 가능할 테지.”

“무…… 무슨…….”

물론, 실질적으로 가능하진 않겠지만 이게 의미하는 바는 어마어마하게 거대했다.

“그러니 힘의 사용을 조심 또 조…….”

콰아아앙!!!

그때였다.

저 멀리서 굉음이 울려 퍼지자 코오나와 페르세르크는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곳은?”

“아까 그 거인이 간 곳이에요.”

“가보자꾸나.”

황급히 거인이 사라진 방향으로 뛰어간 두 여성은 곧 바닥에 쓰러져 끙끙대고 있는 거인과 그런 거인을 밟고 있는 데이비를 볼 수 있었다.

“데이비!”

“페르세르크?”

“으으…… 아프다…… 아프다…….”

“너무 아프다…….”

“페르세르크. 가까이 오지 마라. 금방 처리할게.”

“하아…….”

데이비에게 거인은 위험하게 보일 수 있다.

“데이비. 내려와.”

“응?”

“당장.”

데이비가 거인을 압박하던 힘을 거두고 말없이 거인의 몸에서 내려왔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이야.”

“저…… 저 거인은 저희를 도와준 착한 아이예요.”

“엉?”

데이비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서린다.

“거인이? 내가 아는 거인은 그렇지 않은데?”

“후우…… 그대가 아는 거인과 달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거인이니까.”

페르세르크의 설명에 그제야 이해한 듯 데이비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럼 뭐…….”

“으으…… 요정님 아프다.”

“나 너무 아프다…….”

끙끙대는 거인은 이미 여기저기 맞았는지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이에 코오나는 조심스레 거인에게 다가갔고 거인의 몸에 손을 올렸다.

“코오나?”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 말과 함께 눈을 감은 코오나가 집중한다.

이에 데이비가 그녀에게 말을 걸려 하자 페르세르크가 그를 뒤에서 끌어안듯 제지했다.

“음?”

“일단 지켜보게. 될지 안 될지는 본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말하기가 무섭게 코오나의 전신에 하늘빛 기류가 넘실거리더니 그녀의 눈동자가 하늘빛으로 변했다.

“코오나?”

놀란 데이비가 입을 떡 벌렸다.

“저거…….”

데이비도 금방 눈치챘는지 멍한 얼굴을 했다.

결과적으로 코오나는 거인을 치료하는 데에 성공했다.

물론, 무아지경에 빠져들었을 때와 달리 극히 일부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요정님 덕분에 이제 안 아프다!”

“요정님 이거 맛있다! 먹어봐라!”

거인과 대화하고 있는 코오나를 뒤로한 채 페르세르크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데이비에게 털어놓았다.

“데이비. 본녀의 생각이 맞다면 이건 시간…….”

“시간 역행. 그것도 특정 부분에 한정한 역행, 이라고 묻고 싶은 거지?”

정확하게 짚어낸 데이비의 대답에 페르세르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더 확인해봐야겠지만 다른 가능성도 생각해봐야지.”

“다른 가능성?”

“시간 역행과 흡사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도 아니고. 아무리 아비트라도…….”

곰곰이 생각하던 그가 물었다.

“그보다 수인족을 봤다고?”

“그래. 전신이 검은 안개처럼 덮인 존재. 하지만 수인족 특유의 귀는 분명히 보았음이야.”

“그런데. 코오나나 저 거인은 못 봤다고 했지?”

“본녀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둘은 못 봤는데 그녀 홀로 봤다면 그냥 잘못 본 것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정말 그런 놈이 있다면 반드시 흔적을 남길 거야. 내가 직접 확인해볼게.”

“잘못 본 것이면 좋으련만…….”

“오히려 발견하는 게 좋을 수도 있지.”

귀찮은 사태를 더 벌이지 못하게 될 테니까.

“데이비. 너무 안일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닌 게야.”

“알고 있습니다. 마님.”

* * *

페르세르크의 걱정이 기우였던 것일까.

그녀의 말마따나 차원을 괴사시키는 검은 늪이 있는 곳을 돌아보았지만 결국 그 수인족은 찾지 못했다.

그녀가 본 게 사실이라면 단순 우연으로 타이밍이 맞아떨어졌을 가능성도 충분히 검토해봐야 했다.

그녀가 거짓말을 할 가능성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래 봐야 그녀에게 이득이 될 게 없었으니 말이다.

다만 검은 늪은 내 입장에서도 굉장히 흥미로웠다.

어떻게 이런 현상이 벌어질 수 있는가.

포식의 힘을 이용해 조금 건드려보지만 내가 건드려도 될만한 분야가 아니라는 건 확실하다는 사실만을 깨달았다.

“신기하구나. 저 아이. 무아지경에 빠질 때마다 힘을 다루는 범위가 넓어지고 있어.”

한두 번은 그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코오나가 검은 늪을 복원시킬 때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힘을 다루는 법을 조금씩 익혀나가고 있었다.

처음엔 자신의 힘을 인지도 못 하던 그녀가 점점 그 힘을 크게 다루는 모습을 보며 나는 저 힘을 고스란히 각성시켜도 괜찮은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후우…… 으읏…….”

검은 늪을 모조리 복원시키기가 무섭게 철퍼덕 쓰러지는 그녀를 받쳐주자 그녀가 빨개진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업어주세요…….”

“일어날 수 있잖아.”

“업어주세요…….”

고집을 피우는 그녀의 말에 나는 한숨을 내쉬며 그녀를 등에 업으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무형의 힘이 그녀를 허공에 띄워 올린다.

“꺅!”

“그리 힘이 든다면 본녀가 띄워주마.”

“으윽…….”

“아직 미숙하다. 엉큼한 녀석.”

코오나의 의도를 순식간에 분해해버린 페르세르크는 그녀가 버둥거리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그녀를 둥둥 띄웠다.

“이 근방에는 더 없는 게야?”

“으음…… 여긴 없다!”

“더이상 소리는 안 들린다! 하지만 저 산 너머에 하나 있었던 것 같다!”

녀석은 놀라울 정도로 탐색능력이 뛰어났다.

중간중간에 날개왕의 졸개로 보이는 파충류들이 거인에게 덤벼들었지만, 거인과 충돌하기도 전에 데이비의 손에 곤죽이 되었다.

본능적으로 이 차원의 위기를 감지한 일부 생명체와 다르게 날개왕을 포함한 그의 졸개들은 세상이 어찌 되건 거인을 죽인다는 일념이 가득해 보였다.

‘나 저 요정님 무섭다…….’

‘나도 무섭다…….’

페르세르크나 코오나와 달리 데이비에게 잔뜩 겁을 집어먹은 거인은 그 이후로 며칠간 데이비의 눈치를 살피곤 했다.

그렇게 며칠 정도, 계속되는 검은 늪의 정화작업이 이어졌고 코오나는 급기야 이 세상에 남은 검은 늪의 흔적이 얼마나 남았는지 대략적이나마 알 수 있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성장 속도나 숙련도가 쌓이는 속도가 정상범주는 아니었다.

“그 어떤 힘도 이렇게 빨리 익숙해지기 어렵거늘.”

“코오나가 무아지경에 빠졌을 때. 기억해?”

“음?”

“정화를 지속해도 무아지경이 보여주는 힘의 차이는 크지 않잖아.”

“그 말인즉…….”

그랬다.

코오나는 늪을 정화시킬수록 무아지경에서 보여주었던 그 엄청난 힘을 점차 되찾아가는 느낌이었다.

이건 성장이 아닌 회귀…… 혹은 복원에 가깝다.

“성장 속도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 아니면…….”

뭐가 되었건 그녀가 이 늪을 정화함으로써 점차 성장한다면 그녀가 가진 힘은 사실상 일리나와 나를 제외한 최상의 수준에 이를 수도 있었다.

물론 다른 조건이 없이 대상을 복원시켜버리는 힘에 한한다면 말이다.

그 외 가능성만 놓고 보면 에반젤린이나 비화도 있지만, 에반젤린이 가진 헤라클래스의 특성이나 관심종자 같은 어그로는 그 속도가 상당히 더딘 편이다.

비화의 경우 제약이 많으니. 당장 예측해보자면 코오나의 힘은 압도적으로 강해질 수밖에 없다.

“좀 불공평하다고 느끼지?”

“본녀도 제법 열심히 마법을 익혔거늘.”

왜 모를까. 페르세르크의 마법 실력은 비교 대상이 잘못되었을 뿐, 마법 대륙 아트렐리아나 티오니스를 놓고 봐도 최상위. 단연 비교 대상이 없는 경지였다.

하지만 일리나가 차원을 찢는 검을 익히고 코오나가 이리 막대한 힘을 각성하기 시작하니 허탈감이 들 수밖에 없다.

“나도 마찬가지야. 수백 년 검을 휘둘렀더니 일리나는 나도 온전히 못 다루는 시공격검을 다루잖아.”

질투해본들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걱정 마. 너도 강하니까.”

“본녀가?”

“그래. 넌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 목숨줄을 쥐고 있으니.”

내 말에 그녀는 자신의 손에 끼워진 반지를 바라보았다.

그녀와 나의 생명을 공유하는 계약의 반지. 단순히 보면 페널티에 가까운 힘이지만 반대로 그녀의 생명력은 나를 죽일 수준이 아니면 함부로 죽일 수 없을 정도로 보호받고 있다.

또한, 그녀의 수명은 강제로 긴 쪽인 내 쪽에 맞춰지게 된다.

안 그래도 거의 없는 노화는 완전히 멈출 것이고 그녀의 육신이 쇠하는 일도 없으리라.

하지만 그녀가 마음만 먹는다면 나를 죽이는 것도 가능할 터.

“그러니 편하게 생각해.”

“본녀가 어찌 그대를 해할까. 그대가 바람을 피워 본녀가 이혼을 청구해도 이것만큼은 함부로 다루지 않을진대.”

“걱정하지 마. 이혼하자고 해도 절대 안 해줄 테니.”

그녀는 파리지옥에 빠진 작은 개구리.

옭아맬 대로 옭아매 어진 그녀는 내게서 벗어날 수 없다.

“그대 눈초리가 요상하기 그지없구나.”

“그냥. 절대 도망 못 간다고 나한테서.”

“본녀가 그대를 두고 어딜 도망가.”

“모르지. 시간이 아득히 흐르면 마음처럼 쉽게 되는 게 아니니까.”

나와 페르세르크가 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자 코오나가 다가왔다.

“……뭐 하세요?”

“크흠.”

다른 장소가 또 있는지 찾아본다며 거인이 떠나간 것일까.

코오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바라본다.

“왜?”

“……아니에요. 그보다 얼마나 머무르실 거에요?”

“정리가 끝나는 대로 다음 세상으로 넘어갈 거야. 방해꾼도 없고. 네가 힘을 빨리 찾으니까 찾기도 쉬워졌네.”

내 설명에 코오나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그냥…… 늦게 할 걸 그랬나…….”

홀로 중얼거린 그녀가 아쉬움을 내비쳤다.

“괴사 부위는 저게 마지막이에요. 아마.”

“아마?”

“저도 확신할 수는 없…….”

그때였다.

콰아아앙!!!

저 멀리서 검은 빛의 기둥이 마치 검은 불처럼 피어오르는 게 보인다.

동시에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뜨겁다!! 뜨겁다!!”

“으아아아 요정님!! 나 죽는다!! 나 죽는다!!”

끔찍한 녀석의 비명에 나는 곧바로 지친 코오나를 품에 안으며 날아올랐다.

페르세르크도 몸을 작게 만들어 내 어깨에 올라섰다.

“저건…….”

“검은 늪…….”

방금까지 없던 검은 늪이 다시금 생겨나고 있다.

그리고. 온몸에 검은 화염을 두른 채 고통스러워하며 바닥을 뒹구는 거인이 보였다.

녀석은 비명을 지르며 몸에 붙은 화염을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녀석의 몸에 붙은 화염이 숲에 닿을 때마다 숲 곳곳에 검은 늪들이 마구잡이로 퍼져나간다.

“세상에…….”

코오나는 조금 전 정화를 했던 탓에 지쳐서 당분간은 힘을 쓸 수 없는 상황.

그렇기에 당장 퍼져나가는 검은 늪을 처리할 수단이 없었다.

끼에에에에엑!!!!!

급기야 어디서 매복하고 있었는지 거대한 드래곤, 날개왕이 거인을 공격하며 녀석을 사방으로 굴리고 사태를 악화시켰다.

“저 도마뱀이!!”

페르세르크가 마법을 쓰기 위해 초월의 종언을 꺼내 들었다.

“데이비!!”

하지만 내 시야에는 다른 것이 보였다.

날개왕 따위가 아니라. 이 괴사 상태를 만들어 내는 원흉이 말이다.

검은 화염 같은 안개에 둘러싸인 새까만 수인.

붉은 안광을 일렁이며 검은 늪의 중앙에 홀로 서 있던 그가 천천히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 안광이 섬뜩하리만치 스산하다.

반대로 이상하리만치 익숙했다.

“코오나. 저거 보여?”

“……아뇨?”

코오나는 녀석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

페르세르크가 보았다던 그 수인족이 분명하다.

다만 녀석의 몸에서 느껴지는 힘은 이상하리만치 익숙한 느낌을 주면서도 생소하게 다가왔다.

“코오나. 멀리 떨어져 있어라.”

곧바로 그녀를 허공에 던지자 그녀가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무형의 힘이 그녀를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놓았다.

화르르륵!!!

이후 내 손에 홍단이가 쥐어지기가 무섭게 녀석의 선에 검은 화염으로 이루어진 검이 쥐어진다.

덤비게?

콰아아앙!!!

녀석과 검을 마주하는 건 한순간이었다.

“…….”

이거 생각보다 힘이 센데?

그대로 검을 마주한 녀석은 놀라우리만치 익숙한 힘을 내두르며 공격을 가해왔다.

카아앙!! 캉!!

내 말을 들어주지 않겠다는 듯 녀석의 힘은 계속해서 나를 향해 휘둘러져 왔고 검은 화염은 나를 집어삼킬 듯 휘감았다가 퍼지며 사방에 검은 늪지대를 만들어 냈다.

페르세르크는 날개왕을 포함해 난동을 부리는 다수의 파충류들을 정리하고, 나는 이 일의 원흉과 충돌한다. 코오나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는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더니 황급히 온몸에 불이 붙어 고통스러워하는 거인에게로 뛰어갔다.

녀석이 날뛰면서 조금만 잘못해도 그대로 쥐포가 되어버릴 텐데도 그녀는 멈추지 않는다.

쩌적!!

물론, 그녀에게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분명한데…….”

나는 작게 중얼거리며 홍단이에게 붙은 검은 화염을 포식의 힘으로 먹어치운 뒤 털어냈다.

내가 쓸 수 없는 힘이다.

강화해두지 않았다면 홍단이도 크게 휘청거렸을 정도로 위험한 화염이었다.

하지만.

“조금 미숙하다.”

쩌적!!!

페이크를 넣듯 녀석의 검을 빗겨 쳐낸 뒤 그대로 뿜어져 나오는 검은 화염을 포식으로 물어 뜯어버렸다.

비물질계 에너지를 그대로 먹어치운 뒤 내 것으로 만들거나 방출한다.

아무리 검은 화염이 대단해도 포식의 힘은 그 이상으로 악랄하고 깊은 힘이었다.

“…….”

그리고. 녀석의 얼굴을 뒤덮던 검은 화염을 걷어내 버리자 녀석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 잠깐의 텀 끝에 나는 반사적으로 멈칫했다.

녀석의 외관은 나와 흡사했다.

도플갱어처럼 같은 건 아니었다. 닮긴 했으나 다른 인물.

보통 이런 경우는 같은 인물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요소만이 나를 놀라게 만든 것은 아니었다.

검은 화염이 걷히며 드러난 녀석의 귀가 온전히 보인다.

에이리아와 같은 사막여우 귀.

다만 쿼터인 탓인지 그 귀가 하프인 에이리아 이상으로 짧다.

“다리안…… 이냐?”

내 물음에 녀석은 나를 그대로 박차듯 걷어차고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스산한 미소를 지은 뒤 양팔을 교차하고 손가락을 모두 펼쳤다.

동시에 녀석의 손에 기하학적인 문양이 그려진 새하얀 부적들이 수십 장 생겨난다.

주술!

반사적으로 녀석을 막아보려 힘을 끌어올린다.

내가 아는 다리안은 저렇게 크지 않다. 녀석은 미래에서, 혹은 평행선에서 온 것과는 확연히 다르게 선명한 느낌이었다.

이윽고 녀석의 부적들이 일제히 발광하며 사방을 메우기 시작했다.

우치나 나도 모르는 완전히 다른 하나의 술법이었다.

그리고.

녀석의 부적이 온전히 발현함과 동시에 하늘이 검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저런 주술은 본 적도 없다.

“다리안. 멈춰!!”

녀석이 무엇이건 이거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비화나 아벨처럼 어떤 사연이 있어서 적대하는 게 아니었다.

지독하게 뒤틀린 비행이었다.

“키히…… 키히히히!!”

기이하게 웃기 시작한 녀석은 곧이어 내게 충격적인 말을 했다.

“키히히히히! 꼰대 새끼! 죽어!”

그리고는 스르륵 사라짐과 동시에. 녀석이 발현했던 주술이 종말의 문을 비틀어 열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녀석이 사라진 곳을 보며 이를 까득 깨물었다.

“이 버릇없는 새끼가. 지금 아빠한테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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