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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415화 (1,415/1,559)

제 1415화

페르세르크는 드래곤을 포함한 다수의 강력한 힘을 지닌 파충류들을 마법으로 쫓아낸다.

하나하나는 페르세르크에게 비할 바 못 되지만 검은 늪이 퍼뜨리는 디버프를 피하며 그들을 모조리 쫓아내기엔 수가 워낙에 많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데이비는 어떤 존재와 싸우고 있으니 코오나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야 했다.

계속되는 굉음에 순간적으로 자세가 비틀려도 그녀는 우선적으로 몸에 검은 화염이 붙은 거인을 향해 달려갔다.

현 상황에서 가장 상황이 심각한 건 그였으니까.

온몸을 비틀며 괴로워하는 그가 날뛰고 있는 탓에 가까운 거리까지 근접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녀의 힘은 단순히 이번에 새로이 깨달은 힘만 있는 게 아니었다.

[해태]

코오나의 의지에 공명하듯 그녀의 안에 있던 해태의 힘이 그녀의 전신을 휘감는다.

파앙!!!

마치 허공을 유영하는 나비처럼 하늘거리며 날아오른 코오나는 마구잡이로 휘둘러지는 거인의 거대한 팔을 피해 그에게 날아들었다.

막대한 방어력을 지닌 거인의 피부가 엉망진창이다. 이대로 불을 꺼도 검은 늪을 만들어내는 화염으로 인해 화상이 극심했다.

“으아아아!!!”

“아프다! 아프다! 요정님! 살려줘라! 너무 아프다!!”

“꺅!”

그녀가 가진 신수의 힘이나 본래 가진 힘은 전혀 먹히지 않았다. 아니 조금 전 정화에 사용한 힘 때문에 심적으로, 육체적으로 모두 지쳐 제대로 힘을 쓰기도 힘들었다.

아니 오히려 그녀의 힘을 먹어치우듯 마구잡이로 날뛰며 그녀조차 집어삼키려 들었다.

“어떻게 해야…….”

바보같이 눈앞의 심각한 상황 속에서 발만 동동 구를 생각은 없었다.

억지로라도 힘을 끌어내기 위해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집중력을 발휘했다.

‘힘을 쓸 수만 있어도…….’

어느 정도 성장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쳐있는 현재 그녀가 낼 수 있는 힘엔 한계가 있었다.

데이비의 설명대로라면 아직 그녀가 무아지경에 빠져들 때와 같은 대량의 힘을 끌어내진 못한다고 했으니까.

‘움직여.’

그게 무슨 상관인가. 결국, 그 힘은 그녀의 것이거늘.

다만 몇 가지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었다.

일반적으로 그녀가 힘을 발현하는 데엔 시간도 필요하고 범위도 좁았다.

몸을 엎드린 채 버둥거리는 그를 제압하여 움직이지 못하게 막는 것도 문제였다.

-네 힘은 성장하는 게 아니야. 돌아가는 거에 가깝지. 깊게 파고들면 다른 방향이지만 일단 그렇게 이해해.

데이비가 알려주었던 말이 사실이라면.

무아지경에 빠져들지 않더라도. 그녀의 힘으로 되돌릴 수 있어야 하리라.

‘움직여.’

이 힘은 마법 같은 것과 달리 그녀의 의지력에 바탕이 될 터.

그렇다면 움직이지 않는 힘을 쥐어 짜내는 건 그녀의 의지에 달렸다.

‘움직여,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안 돼.’

하지만 힘은 그녀의 의지를 따라주지 않았다.

파아앙!!!!

그때 버둥거리던 거인의 거대한 주먹이 그녀를 향해 공기를 찢고 날아들었다.

쩌어어엉!!

반사적으로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신수의 힘이 발현되었지만 튕겨 나가는 것까지 막지는 못했다.

“아윽!!”

수차례 뒹군 그녀의 팔은 만신창이였다. 지쳐버린 탓에 본래 힘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상황.

그럼에도 그녀는 이를 악물고 일어나 걸어 나갔다.

‘움직여.’

뭐라도 해야 한다. 고작 힘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해서야 어찌 곁에 있을까.

그렇지 않다.

이런 것조차 제대로 못 하면 그가 그녀를 똑바로 돌아보기나 할까.

사실 의미는 없다.

여기서 잘 해결하면, 그는 그녀를 더욱더 필요로 할 터. 그렇다면 어떤 이유에서건 그녀는 그의 곁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다.

그 또한 모를 일이다.

코오나의 뺨이 부끄러움으로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에게 그녀가 필요하고. 그렇게 가까이 있다 보니 점점 알게 모르게 가까워진다면.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그녀가 이곳에서 전전긍긍하며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고 결국 데이비의 도움만 받는다면?

그녀는 영원히 후견인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에게 더 가까이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나자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느낌이 들었다.

따끔거리는 바늘 수천 개가 온몸을 찌르는듯한 불안함이 들었다.

‘절대 안 돼!’

그녀의 표정이 변했다.

“움직여!!”

그녀가 격하게 외친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녀의 의지가 힘을 강제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거 잘못되면 네가 책임질 거야?! 당장 움직여!!”

다른 모든 일은 제쳐놓고 데이비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그의 곁에 다가갈 수 없다는 사실이 그 무엇보다 두려웠던 코오나의 잠재의식이 그녀의 의지를 더욱더 강하게 만들었다.

화아아아아악!!

이윽고, 그녀의 눈동자가 하늘빛으로 물들며 그녀를 중심으로 사방에 하늘빛의 잔상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녀의 안에 잠든 힘은 그녀의 의지가 강해질수록 강대한 힘을 발휘한다.

그녀의 상황을 아는 이가 보았다면, 데이비에게 더 이상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게 그렇게 무서우냐, 미친년. 이라며 중얼거릴 정도로 그녀의 힘은 막대한 권한을 행사했다.

“어…… 으어…….”

“꺼…… 꺼진다…….”

거인은 자신의 몸에 붙은 검은 화염과 피부를 침식하는 검은 늪이 사라지고 본래의 피부로 돌아오는 것을 보며 멍한 얼굴을 했다.

“요…… 요정님이 불을 꺼줬다!”

“이…… 이제 안 아프다!”

타고난 체력은 있는지 녀석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주변을 보며 놀라워하기 시작했다.

마치 춤을 추듯 힘을 발산하는 코오나를 중심으로 사방에 퍼져나가며 잠식하던 검은 화염과 늪들이 모조리 흩어지듯 사라지기 시작한다.

* * *

-크아아앙!!!

엄청난 위압. 드래곤 피어를 내뿜으며 페르세르크를 압박하던 날개왕이 페르세르크가 만든 거대한 마기의 창에 꿰뚫려 바닥에 처박혔다.

“후우…… 본녀도 몸이 많이 녹슬긴 했구나.”

8서클 이상의 마법을 난사한 것치고는 굉장히 여유로워 보였지만 초월의 종언의 서포트를 받으면서도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사실이 기분 나쁜지 손을 폈다 오므렸다 하며 투덜거렸다.

날개왕이 쓰러진 탓에 공격해오던 파충류들은 서서히 도망치기 시작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사방에 퍼진 검은 늪과 화염들. 그리고. 하늘에 뜬…… 종말을 부르는듯한 현상.

쿠우웅!!!!

이윽고 하늘에서 떨어진 거대한 운석 하나가 저 멀리 산등성이 너머로 날아들어 충돌한다.

“사태가 심각하구나. 일단 이 검은 늪부터 어찌해야…….”

그리 말하며 코오나를 바라본 페르세르크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세상에…….”

코오나를 중심으로 퍼져나간 하늘빛의 잔상들이 마치 일대 숲 전체를 정화하듯 서서히 뻗어 나간다.

마치 기적을 보는 기분이 이러할까.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숲은 검은 지옥에서 다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시간 역행? 혹은 기억의 복원?

어느 쪽이건 코오나가 아비트에게서 양도받았던 힘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아니…… 코오나이기에 가능했겠지.”

아비트가 이만한 힘을 자유자재로 다뤘다면 그가 방대한 시간을 붉은 공허에서 보낼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끝도 없이 잠식하며 퍼져나가던 검은 늪이었지만 코오나의 정화는 점차 빨라졌고, 이내 주변 일대 전체를 휘감고 나서야 천천히 사그라졌다.

하지만. 하늘에 뜬 종말은 변치 않았다.

“데이비!”

이에 그녀는 멍하니 허공에 떠 있는 데이비를 향해 날아갔다.

“데이비. 하늘이 어찌…….”

“주술이야. 방식은 나도 몰라. 직접 분석해보기 전까지는.”

“그대가 모르는 주술이 있다는 겐가?”

“그러게 말이다.”

“그 적은?”

“그놈.”

한숨을 내쉰 데이비가 페르세르크를 천천히 바라본다.

“우선…… 저것부터 막자. 기껏 정화 다 해놨는데 종말의 문이 열려버리면 그동안 고생한 게 모조리 날아가는 셈이니.”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된 건지.

잠시 생각하던 페르세르크가 이를 악물었다.

“데이비. 본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더 이상 그대가 신경 쓸 일이 아닌 것 같아.”

“음?”

“그대에게 이런 짐을 짊어지게 하는 것부터가 말이 되지 않았던 게지. 본녀가 그 솔로모니아에게 다시 말할 터이니…….”

“아니. 계속 가자.”

이 일을 하는 것 자체가 떨떠름했던 데이비가 강하게 나오자 그녀가 눈을 크게 뜬다.

“데이비? 설마 코오나 때문에 그러는 게야? 그녀가 혹여 다칠까 봐…….”

“아니. 코오나의 문제뿐만이 아니야.”

하늘이 찢어지고 운석들이 하나둘 낙하하는 것을 보며 그가 충격적인 말을 내뱉었다.

“네가 말했지. 검은 늪을 만드는 존재가 있다고.”

“그러했지.”

불안한 낌새를 눈치챈 그녀가 주춤거리자 데이비는 한숨을 깊게 내쉬며 조용히, 그리고 낮게 말했다.

“다리안이야. 절대로 잘못 본 게 아니야. 확실하다.”

페르세르크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 * *

하늘이 찢어지고 대규모 운석이 떨어진다.

운석을 부르는 주술 같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 단순한 메커니즘이라면 우치나 내가 처음 보는 계통일 리 없었으니까.

다리안이 벌여놓은 주술은 이 차원의 창공에 존재하는 규칙을 비틀어버리는 주술로썬 손대선 안 되는 금기나 다름없었다.

“하늘이…… 하늘에서 불이 떨어진다!”

“저거 엄청 뜨거워 보인다! 잘못하면 내가 살 곳이 사라진다!”

아직까지는 작은 운석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거대한 운석이 떨어질 것이고, 이차원의 창공을 보호하는 요소가 모조리 엉망진창이 되면서 대기. 대지. 그 외에 이 차원을 유지하는 모든 요소가 붕괴하리라.

“하아…… 하아…….”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주저앉아버린 코오나는 얼굴이 파랗게 질려있었다.

아무리 의지가 뛰어나도 그녀가 손댈 수 있는 범위는 좁았으니까.

“저…… 저…… 잘했어요?”

그런 와중에도 자신이 잘 해냈는지 물어오는 그 모습에 페르세르크는 한숨을 내쉬었고 나는 그대로 그녀의 이마에 딱밤을 날렸다.

“꺅!”

“잘하긴 뭘 잘해 임마! 마나 고갈로 죽고 싶어?!”

마나 고갈은 아니지만, 의지가 바닥을 드러낼 정도로 그녀는 스스로를 혹사시켰다.

“그…… 그래도 저…… 해냈어요. 이제 힘을 어느 정도 다룰 수 있어요.”

말은 그리하지만, 다시 하라고 하면 아마 못할 가능성이 클 것이다.

한번 성공했다고 능숙해지는 것은 아닐 테니까.

“우선 저 망할 주술부터 분석해서 파훼할 거다. 그때까지 떨어지는 운석들만 막아줘.”

“수가 너무 많아. 그대도 이 차원에 크게 간섭할 수 없으니 본녀 혼자선 힘에 부칠 터…….”

페르세르크가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마나를 많이 사용한 것도 있지만 주술의 범위가 너무 넓었다.

주술은 문일 뿐. 쏟아지는 재앙은 힘을 소모하지 않는다.

즉, 페르세르크 쪽이 압도적으로 연비가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뒤가 없는 공격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요정님. 우리도 돕는다!”

“박살 낸다!”

그때 거인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어딘가로 뛰어갔다.

그리고는 거대한 바위 앞에 섰다.

“이번엔 협력해라!”

“나도 안다! 우리 집 날아가면 안 된다!”

툭하면 싸우던 두 머리는 서로 협력이라도 하듯 숨을 동시에 크게 들이쉰다.

꾸드드득!!

동시에 거인의 피부에 막대한 핏줄이 돋아났고 그는 제 몸집만 한 바위를 집어 들고는 거대한 기합성을 내질렀다.

“으랴라라라라!!!”

쩌어엉!!!!

평소 거인이 내보이던 힘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힘이 서린 바위가 창공으로 날아들며 거대한 운석과 충돌한다.

상반되는 막대한 힘이 충돌한 운석과 바위는 그대로 조각조각 흩어지며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쏟아지는 걸 완전히 막을 순 없지만, 그 피해를 극도로 줄일 수 있다.

“나를 돕는 놈들! 있다! 그놈들한테 도움 요청해본다!”

녀석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말했다.

“얼마나 걸리겠어?”

“완전히 처음부터 분석해야 해.”

내 대답에 페르세르크가 굳은 얼굴을 했다.

“하면 며칠이고…….”

“한 시간.”

“응?”

놀란 그녀가 벙찐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페르세르크. 나는 세계 최고의 주술사가 가르친 인간이야. 한 시간 이상 붙잡고 있는 건 자존심이 상하는 짓이고.”

내 말에 그녀가 멍하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구나…… 그대는 그런 사람이었지.”

키득거리며 웃는 그녀였다.

“코오나. 내가 주술을 파훼하는 동안은 다른 곳에 신경을 쓸 수가 없어.”

“네.”

“네 힘이 정확히 어떤 건진 모르겠지만. 네 힘을 잘 이용하면 페르세르크의 마나를 다시 채워줄 수 있을 거다.”

“최선을 다해볼게요.”

“명심해.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할 건 네 안위야. 무리하게 힘을 쓰려다가 문제가 생기는 건 절대 안 된다.”

이렇게까지 빡세게 파고들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이 일을 저지른 놈이 다리안이고. 다리안 이놈이 그런 말을 한 이상. 반드시 녀석을 잡아 종아리에 불이 나도록 때려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든다.

촤르르르르륵!!!

내 손을 떠난 수십 수백, 수천 장의 부적들이 마치 결계를 형성하듯 회전하며 주변 전체에 공명하듯 스파크를 일으켰다.

동시에 마치 문양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수많은 형태로 이루어지며 허공을 유영한다.

그렇구나.

이건 내가 만든 주술과 우치가 만든 주술에 자신의 색을 덧입힌 것이다.

주술이라는 게 으레 그렇듯 만들고 싶다고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다리안은 그것을 해낸 모양이다.

아니. 그게 정말 다리안이 맞는지는 모른다. 다리안은 아직 어리디어린 아이였다. 말조차 제대로 못 하는 다리안과 지금 내가 만난 다리안은 동일존재라고 하기 모호했다.

그렇다면, 녀석 또한 아벨처럼, 미래에서 온 존재, 혹은 평행선의 다리안이라고 보는 게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우선은. 저 망할 주술부터 부순다.

나는 막대한 에너지를 일으키며 다리안이 펼쳐놓고 간 주술을 해킹하기 시작했다.

녀석의 주술은 어떻게든 저항하기 위해 난동을 부렸지만…….

그래 봐야 손바닥 안이지.

청출어람은 아직 멀었다, 이놈아.

* * *

데이비가 거품 세계로 떠난 시각.

다리안은 아장아장 걸어 데이비의 방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장비를 머리에 쓰고 잠들어있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코오나를 보며 천천히 손을 뻗었다.

“아부아. 아부아.”

약간 어눌하지만, 녀석은 데이비의 뺨을 콕콕 찌르더니 뭐가 그리 좋은지 꺄르륵 웃었다.

그리고는 침대 위를 엉금엉금 기어가 페르세르크의 품 안에 꼭 안겨들었다.

“으움…….”

그렇게 잠시 고민했을까.

녀석은 이내 데이비와 페르세르크의 품을 잡아당겨 마치 자신을 끌어안게끔 했다.

그리고는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마치 새끼고양이가 어미 고양이에게 파고들 듯 파고들며 꼬물거리던 다리안의 시야에 무언가가 비친다.

그것은 비화가 만들어놓은 가상세계접속 장비였다.

말없이 그것을 보던 다리안은 엉금엉금 기어 침대에서 내려온 뒤 아장아장 걸어가 그것을 손에 쥐었다.

동시에 그의 눈동자가 한순간 일렁이더니 그것을 천천히 쓴다.

털썩 주저앉은 다리안은 마구잡이로 이것저것 누르기 시작했고.

이내 장비를 가동했다.

스팡!!!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다리안의 안에서 검은 무언가가 스르륵 하며 빠져나와 가상세계 속으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

정작 다리안은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도 모르는지 꺄르륵 거리며 장비의 버튼을 꾹꾹 눌러댔고. 이내 이전처럼 빨려 들어가지 않자 싫증이 났는지 거칠게 그것을 벗어던져 버렸다.

“으우…… 왜 안대…… 재미 없서…….”

그리고는 다시금 침대로 아장아장 걸어가 데이비와 페르세르크의 품 안에 파고들었다.

그리고는 곤히 잠든다.

고요해진 방안.

곤히 잠든 다리안은 자신을 마주하는 수많은 희끄무리한 형체들을 볼 수 있었다.

“교만에 이어 분노도 쫓아내는 데엔 성공했는데…… 그 과정에서 자선도 같이 튕겨 나갔다.”

“분노를 털어내기 위해 방법은 그것뿐이었으니까.”

“시간이 없어 나머지 놈들도 빨리 털어내지 않으면. 종언이 깨어난다.”

“종언이 깨어나면 우리는 다 사라질 테지.”

“그러니까 우리가 깨어난 거잖아. 그러지 못하게.”

다리안은 희끄무리한 형체들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우뚱했다.

“엄므아…… 아빠 어디써?”

그저 왜 자신이 이곳에 있는지 이해를 못 할 뿐이다.

이에 희끄무리한 형체 중 하나가 천천히 다가와 그를 끌어안았다.

여인의 형체였다.

포근한 느낌이 다리안을 감싼다.

“성녀님. 본체에 간섭하지 마라.”

“조금 정도만 용서해주세요.”

“가장 확률이 낮은 가능성 중 하나니까.”

“크흐흐흐…… 하긴. 사내아이가 계집아이가 되고, 저렇게 자애로운 성녀가 될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어.”

“놀리지 마세요. 확률이 낮을 뿐 불가능한 건 아니니까. 어쩌면 최후에 가장 큰 힘을 얻을 가능성은 제가 될 수도 있답니다.”

“아버지가 잘도 이해하시겠군.”

“글쎄요. 딱히 남아 여아를 가려서 사랑하시는 분은 아닌걸요. 아 물론, 여신께 귀의하는 걸 보면 속 터져 하시겠지만.”

그녀는 다리안을 품에서 내려놓은 뒤 기도하는 자세를 품으며 말했다.

“운 좋은 줄 아세요. 넬타리드 신께서 저희 가능성에 의지를 부여해 주지 않았다면 어어? 하는 사이에 우리 모든 가능성이 뒤섞여서 어떻게 됐을지 모르니까.”

“문제 많은 가능성을 쫓아낼 가상공간이 생긴 건 운이 좋았지.”

“그래. 최악의 가능성은 피할 수 있겠어.”

“반대로 그쪽에선 우리가 방해라고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었기에 종언의 가능성이 큰 힘을 얻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걸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해요.”

그 말에 형체들이 더욱 흐릿해졌다.

다리안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울먹거린다.

“어…… 엄므아…… 엄므아!!”

“이런! 본체를 빨리 돌려보내야겠네요.”

“그것보다 색욕을 빨리 좀 쳐내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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