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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418화 (1,418/1,559)

제 1418화

피떡이 된 채 경찰에게 잡혀가는 그의 몰골은 절대 좋다고는 못할 수준이었다.

평생 죽을 먹어야 하는 운명은 물론이오, 일리나가 가차 없이 날려버린 탓에 턱 또한 비틀어졌다.

끔찍한 몰골로 끌려가는 그를 보며 일리나는 자신이 조금 성급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다 보니 별 일을 다 겪네요…….”

자신이 사이코패스 살인마에게 노려졌다는 사실이 어이가 없는지 그녀가 한숨을 내쉰다.

“이놈의 범죄는 줄어드는가 싶더니 또 늘어나고…… 그보다. 새언니. 다친 곳은 없어요?”

“걱정 말아요. 이 정도에 다칠 정도는 아니니까.”

“그래도…… 위험한 놈인데…….”

“사람 좀 찔러봤다는 저런 놈들도 대부분 초짜에 불과하니까요.”

일리나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살인이 극한범죄로 치부되는 이곳과 다르게 티오니스의 왕실이나 황실에서는 암살시도가 자주 일어나는 편이다.

[좋은 예시로, 오래전 라운의 왕자였던 칼루스 올 라운이 저지른 암살시도처럼.

일면식 없는 외부인도 아닌 그래도 피의 반이 같은 가족끼리도 서로 죽이려 드는 것을 보면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뭐. 그건 지구도 결국 별다를 바가 없긴 하지만.”

“새언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보다 이상한 말을 하더군요.”

“이상한 말?”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고.”

일리나가 현아를 바라본다.

단순히 넘기기엔 걸리는 게 많은 말이었다.

“우선 진술을 좀 해달라고 하니 협조해주고 올게요. 그때까지 기다리고 계세요. 아가씨. 아 참. 데이비에게도.”

* * *

데이비는 사이코패스가 일리나를 노렸다는 사실만 듣고 그 외에건 듣지도 않았지만, 곧바로 집으로 넘어왔다.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무슨 짓을 해도 그녀를 이길 수 없음은 알지만, 와이프가 살인범에게 노렸다는데 가만히 있을 남편이 어디 있을까.

“다친 곳은.”

진술을 마치고 현아의 집으로 돌아온 일리나를 보자마자 데이비가 벌떡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

“나 튼튼한 거 알잖아. 마나를 두르고 있으면 날붙이로는 내 강기를 못 뚫어.”

“그것과는 별개로 걱정되는 건 어쩔 수가 없는 거야. 괜찮은 거 맞지?”

“아무 문제 없어.”

피식 웃으며 데이비에게 격한 애정 공세를 내보인 그녀는 염장질이 짜증 난다는 얼굴로 앉아있는 현아에게 다가갔다.

“아가씨도 요즘 만나고 있는 사람 있지 않나요?”

“크리스 그 인간은 그냥 회사 계약문제로 만나는 거예요.”

“그쪽은 당신에게 꽤 관심이 많아 보이던데.”

“어휴…….”

동생이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하길 바라는 건 오빠의 마음일 것이다.

그렇기에 크리스 마텐이라는 미국의 각성자를 몇 번이고 확인해온 데이비는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실은 신경 쓰이는 게 있어서.”

“신경 쓰인다라…….”

“데이비. 최근 지구에서 일어난 이유 모를 범죄들을 알고 있지?”

“그렇지.”

“그것들 전부 같은 진술을 했을 거야.”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실제로 가해자 대부분은 놀라울 정도로 같은 진술을 했다.

자신이 왜 그랬는지 모르겠고. 갑자기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고.

“실제로 벌어진 살인사건은 많지 않아. 운이 좋은 건지.”

일리나가 잡아낸 인간은 예전에도 사람을 죽인 전례가 있는 놈이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저 진술은 밖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어. 대부분 조사하고 있지. 하지만…….”

“이상하게 모두가 같은 말을 했다?”

“각성자 범죄가 아닐까?”

현아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대상의 감정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거지.”

“가능성은 있지 않을까 해서. 확실히. 최근 벌어진 범죄. 각성자 범죄가 아닌가 해서 나도 조사를 하고는 있었거든.”

현아의 의심은 타당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데이비.”

“알고 있어.”

“뭐…… 뭐야. 뭔데. 내가 모르는 뭔가 있는 거야?”

현아가 눈을 번뜩였다. 이 일을 잘 해결하면 회사의 주가를 회복하는 데 큰 역할을 해줄 테니까.

“현아야.”

“……소름 돋게 왜 이래. 미친놈이.”

“아가리 좀 닥쳐.”

“아오 이 세발낙지가!”

“응, 어깨걸이극락조.”

“야!!”

열이 뻗친 그녀가 씩씩거리며 데이비를 퍽퍽 걷어찼다.

나이가 들어도 남매는 남매인 건지.

인터넷에서 흔한 말투를 써가며 투덕거리는 저 두 사람은 피가 달라졌어도 남매가 맞았다.

일리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다만 그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데이비. 실은 이 사람들 전원 가상현실 사용자야.”

“…….”

그 말에 서로 머리채와 뺨을 잡아당기며 투덕거리던 것이 거짓말처럼 멈춘다.

“뭐라고?”

“이게 억측인 건 아는데…… 그때. 그 아이. 놓쳤다고 했지.”

“…….”

“그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 알다시피 비화의 가상세계는…….”

“억측이야.”

데이비가 짧게 끊었다.

“아직 확정된 건 없어.”

“뭐야…… 뭔데. 설마 진짜 가상현실과 관련이 있는 거야? 아니라고 해줘…… 진짜 여기서 더 논란 터지면 진짜 머리 아파질 거야.”

“넌 신경 쓰지 마라.”

직접 처리해야 할 일이다.

만약 다리안이 저지른 일이 맞다면…….

그 아이를 어찌 해야 할까…….

한번 아이를 잃었던 에이리아가 또다시 다리안을 잃는 경험을 하게 둘 수 있는가.

어느 쪽이든 머리가 아파질 뿐이다.

“하나같이 제 부모 속이나 썩이다니…….”

현아가 듣지 못하게 데이비가 중얼거렸고 일리나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오빠야…… 무슨 일인데. 말해봐라…….”

현아도 장난칠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본래 말투가 나오며 데이비를 종용했다.

“현아야.”

“……말해봐.”

“그 범인들. 한번 만나야겠다. 자리 좀 만들어줘.”

그 말에 현아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엮여서 몰매를 맞고 있으니까 조사 명목으로 만나보는 건 어렵지 않을 거야.”

* * *

“821. 면회 중에 허튼짓은 하지 마라. 구속은 풀어줄 수 없다. 뭐…… 그러진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만…….”

엄격한 말투지만 측은함이 서린 간수의 말과 함께 멍한 얼굴로 앉아있는 사내가 보인다.

그는 나를 보고 순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최근 지구에서 공개활동을 잘 안 했다곤 해도 워낙에 유명한 얼굴이니 말이다.

“티오니스…… 성자…….”

“박우성 씨 되십니까.”

“……네.”

서류로 본 것 이상으로 그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아직 어린 청년이다.

평생 누군가에게 해를 끼친 적도 없고. 절친을 죽이려 들 이유도 없는 그런 사람.

그가 대체 무슨 이유로 이렇게 잡혀있어야 하는 것일까.

“박우성 씨. 친구분은 처벌을 원치 않는다 하셨는데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제 안에 뭔가 이상한 게 있는 건 여지없이 느낄 수 있습니다.”

그가 복잡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자칫 또다시…….”

자신이 또다시 이상한 짓을 저지를까. 그는 일부러 이곳에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티오니스 성자님이 왜 저를…….”

“박우성 씨. 현 상황이 정상이 아닌 건 알고 계시겠죠.”

“맞아요!”

쾅!!

그가 벌떡 일어나자 간수가 흠칫 놀란다.

“저는 정말로 그럴 생각이 없었는데 갑자기 제가 마치 제가 아닌 것처럼…….”

“그런 의미에서 잠깐 확인을 해봐야 합니다. 손목을 좀 빌려주세요.”

내 제안에 그는 떨리는 손으로 구속구를 찬 자신의 손을 내밀었다.

수갑도 아닌 두터운 구속구.

애초에 이곳은 각성 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수감하는 곳이다.

박우성은 각성자가 아니었지만, 그의 행보에 각성자가 연관되어 있을지도 몰랐고, 현아의 신성 그룹을 견제하기 위한 일부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논리를 내세우며 신성 그룹을 압박하기 위해 그를 각성 범죄자처럼 몰아가고 있었다.

어디를 가나 정치하는 것들은 목적을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마치 맥을 짚듯 나는 그의 손목에 검지와 중지를 대고 눈을 감았다.

그동안 내 곁에 앉아있던 현아가 테이블에 손을 올리며 물었다.

“박우성 씨?”

그녀는 그에게 각성자와 엮인 적이 있는지. 가상현실을 이용하면서 생긴 문제가 있는지 질문을 던졌다.

그녀로서도 정보가 필요했으리라.

그보다 중요한 건 그의 내면이었다.

피부부터 의식까지. 나는 그의 전체를 빠르게 분석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어?’

그럴 리가.

내가 느끼지 못하는 게 있나. 싶은 기분이었다.

이미 박우성을 만나기 전 관련 범죄를 저지른 이들 모두를 만나 확인한 참이었다.

그 또한 마찬가지.

역시나 나오는 건 없었다.

대부분 검사한 이들이 평범한 인간이었고 그들의 정신은 오염의 여부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뭘 놓치고 있는가.

복잡한 심경으로 침묵하고 있자 현아가 옆구리를 찔러온다.

“오빠야. 문제없지?”

“……일단은.”

“휴우…… 십년감수했네 진짜…….”

이제 궤도에 올라가기 시작하는데 만약 가상현실이 인간의 정신을 폭주시켰다는 말이 나오면 그것으로 끝이다. 현아는 회사 내에서 상당히 입지를 잃을 것이고 많은 책임을 져야 하리라.

비록 시작은 비화가 했지만, 비화가 만든 시스템을 이용해 거대하게 부풀린 것은 현아의 실력이었으니까.

“컴퓨터와 달라서 누군가가 침입하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누가 관여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저…… 저는 괜찮은 겁니까?”

그때 박우성이 긴장한 얼굴로 물어왔다.

“하나 물어볼게요.”

“네. 말씀하세요.”

“지금도 충동이 일고 그럽니까?”

내 물음에 그가 고민하듯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네. 아주 가끔…… 제가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화가 납니다. 그리고 충동을 이길 수가 없어요. 닥치는 대로 부수고 파괴하지 않으면 참을 수 없을 만큼요. 이곳에서는 제 상황을 알고 있는 만큼 제가 발작 증세를 보이면 곧바로 부술 수 있는 것들을 가져다줍니다만…….”

그가 연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이건 어떤 영향을 받은 게 분명하다.

잠시 자리를 비운 뒤 일리나와 나. 그리고 현아는 서로를 마주 본다.

“아무것도 느껴지는 게 없는 것치고는 너무 이상해.”

“나도 같은 생각이다.”

“접점이 없던 사람들이야. 하지만 증세는 모두 비슷해. 마치…… 전염병처럼.”

그들이 엮인 것이라곤 모두 가상현실을 경험해본 적이 있다는 사실뿐이다.

“잠깐만. 그럼 가상현실을 통해 어떤 질병이 넘어왔을 수도 있는 거 아니야?”

세상엔 가상현실로 알려졌지만 현아나 알하자드는 알고 있다. 그게 단순한 가상현실이 아니라. 비화가 만들어낸 또 다른 만들어진 세계라는 것을.

이용자들은 자신들의 의식을 통해 그곳을 즐기는 게 아니라 영혼을 공명시키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비화가 지구를 포함한 많은 세계의 인간들을 지키기 위해 만든 하나의 시스템. 절대 잃어버리게 둘 수 없었다.

“그렇다면 가상현실에 가능성이 있다는 거야?”

“확실한 건 없어. 그런 거로 치면 쌀밥을 먹었다는 이유로 걸고넘어져도 모두 해당하는 사항이니까.”

즉 가상현실을 물고 늘어지는 건 엄연히 가상현실 시스템으로 이득을 보는 신성 그룹이 아니꼬운 이들의 질시나 다름없었다.

가질 수 없다면 부숴버린다는 마인드와 다를 바가 없다.

“그리고 설사 가상현실이 문제라고 해도 절대 가상현실을 부수게 두면 안 돼.”

다만, 억측이라곤 하나 상당히 가능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실제로 나는 가상공간 안에 있는 거품 세계에서 다리안으로 추정되는 녀석을 놓쳤으니까.

“그래도 죽은 사람이 없는 건 다행이네요. 살인범이야. 이유야 어떻든 결국 본래부터 가 사람을 죽이는 살인귀였으니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리라.

다만 신경은 쓰였다.

내가 뭘 놓치고 있는가. 뭘 놓치고 있는 것일까.

“발작상황을 직접 봐야겠는데…….”

“그걸 직접 본다고?”

“적어도 발작이 벌어졌을 때 어떤 변화가 있겠지.”

지금 내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박우성이 곧바로 발작 증세를 일으켜 분노에 몸을 맡기고 미쳐 날뛸 때도 아무것도 확인할 수가 없었다.

“세상에…….”

현아는 괴성을 지르며 마구잡이로 주변에 있는 것을 걷어차고 부수는 박우성을 보며 입을 틀어막았다.

반면 일리나는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본다.

“일리나?”

이에 내가 의아함을 품고 일리나를 본 그 순간이었다.

차악!!!!

일리나가 갑자기 내 손을 거칠게 쳐냈다.

“새…… 언니?”

“아…….”

일리나는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은 듯 눈을 크게 떴다.

“데…… 데이비. 내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괜찮아.”

“아…… 아냐. 지금 나 좀 피곤한가 봐. 먼저 돌아가도 될까? 집에서 봐.”

창백한 얼굴로 돌아서는 그녀였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팔을 휘감듯 잡았다.

그리고 물었다.

“너…… 그 살인범 잡을 때 무슨 일 있었는지 나한테 숨긴 거 있지.”

내 말에 그녀의 눈동자에 분노가 차오르기 시작한다.

그녀의 시선에서 느껴진 기이함은 조금 전 박우성이 괴성을 지르며 난동을 부리는 것과 같아 보였다.

하지만 일리나의 정신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

“으윽!!”

이를 갑자기 악문 그녀가 벽면에 자기 머리를 강하게 부딪친다.

쿠우웅…….

파스스스…….

건물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강한 박치기에 현아는 멍한 얼굴로 일리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곧바로 일리나를 부축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미…… 미안해 데이비. 나 뭔가 이상해…… 머릿속에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어…….”

굳은 얼굴로 말하는 그녀를 안아 든 채 나는 황급히 허공에 손을 그었다.

동시에 균열이 찢어졌고 나는 그녀를 안아 들고 곧바로 몸을 날렸다.

뒤이어 당황한 현아가 따라 들어오는 게 보인다.

“엄마?!”

가상현실 접속장치를 손대고 있던 비화는 내게 안겨 들어오는 일리나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일리나가 지친 기색이 가득한 얼굴로 숨을 몰아쉬며 내 품에 안겨 왔다.

그토록 강한 존재이며 하인스의 정예 기사단들을 훈련시키는 주축이나 다름없는 일리나가 이렇게 된 걸 본 적이 있던가.

“아빠. 어떻게 된…….”

급히 말하던 비화의 눈이 크게 뜨여진다.

“뭐야 이거!!!”

그녀의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고 그녀는 일리나가 눕기가 무섭게 그녀의 머리맡 허공에서 무언가를 잡아 뜯어냈다.

파스스스…….

그것은 검은 안개 같은 것이었다.

“…….”

“비화야?”

그녀의 행동과 동시에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고 있던 일리나가 숨을 크게 몰아쉬더니 추욱 늘어졌다.

“하아…… 하아…….”

반면 비화는 손으로 잡아 뜯어낸 무언가를 노려보았다.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저건…….”

“다리안…….”

뒤늦게 다가왔으나 상황을 보았는지 페르세르크도 같은 말을 했다.

“저기…… 뭘 말하는 거야? 비화가 뭘 들고 있는데?”

정작 나를 따라 하인스까지 온 현아는 비화가 손에서 잡아 뜯어낸 게 뭔지 보지도 못하는 듯 보였다.

“비화야. 그게 보여?”

“신안에는 보여요. 엄마의 감정에 기생하면서 극도로 분노를 일으키는 거 같아요.”

“…….”

처음엔 보이지도 느끼지도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페르세르크와 내 눈에도 보인다.

이건 마치, 처음 다리안을 발견했을 때. 페르세르크와 나를 제외한 다른 이가 그를 보지 못한 것과 비슷해 보였다.

“분명 아무것도 안 보였었는데.”

“안보일 수밖에요. 신격이 높을수록 한 번에 볼 수 있고, 신격이 없을수록 볼 수 없으니까.”

페르세르크와 나는 반신과 온전한 신격 정도.

반면 비화는 완전한 여신이다.

그녀와 나 사이에 볼 수 있고 느끼는 것에 차이가 있어 보였다.

물론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버렸기 때문이었다.

거품 세계에서 본 다리안.

그 녀석과 매우 흡사하지만 다른 무언가가 거품 세계를 넘어 지구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다리안은 지금…….”

“이미 다리안에게서 빠져나간 힘이 멋대로 움직일 수도 있지.”

제발 아니길 빌었다만.

아무래도 이번 일은 다리안이 저지른 게 분명해 보였다.

“데이비. 그럼 어떻게…….”

“……봉인해야지.”

데이비가 중얼거렸다.

지금 그는 아들을 봉인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안돼!!”

일리나가 손을 뻗어 데이비를 막아선다.

“봉인이라니! 지금 장난해?!”

“그럼 다리안이 더 큰 사고를 치게 두자고?”

“다리안이라는 보장은 어디 있는데!”

“적어도 나는 내가 본 게 거짓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

차라리 착각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 * *

비화는 다리안이 곤히 잠든 침대를 복잡하게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정말 네가 그런 거니?”

누나의 입장에서 다리안은 각별하면서도 소중한 남동생이었다.

비록 남매는 싸우면서 큰다지만 비화에게 있어서 다리안은 언제나 지켜줘야 하는 귀여운 동생일 뿐이었다.

언젠가 박 터지게 싸울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데이비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다리안이 사고를 쳐서 돌이킬 수 없게 되기 전에 반드시 해결법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다리안이 어떤 힘을 품고 있는지 확인이 안 된 현 상황에서 무작정 다리안을 그냥 둘 순 없었다.

아마 봉인은 시간을 벌기 위한 그의 수단이었으리라.

그래도 용납 못 한다.

비화는 천천히 잠든 다리안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다리안의 내면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평소엔 별것 없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지금만큼은 다리안이 숨겨놓은 것들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만약 다리안이 위험한 힘을 품고 있는 게 사실이고 함정을 파놨다면 비화조차 위험할 수 있었다.

그만큼 다리안이 품고 있는 힘은 여신인 그녀에게도 이질적이면서 격이 높았으니까.

태어나자마자 온전한 신격에 버금가는 잠재력을 지녔다는 건 상식적으로 완전한 신이 아닌 이상 말이 되지 않았다.

이윽고 다리안의 내면으로 공명한 비화는 천천히 그 심층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의식의 심해 괴층에 도달했을 때.

섬뜩한 무언가를 느끼고 흠칫 놀랐다.

“방금…… 내가 뭘…….”

방금 다리안의 심해에서 느낀 것은 완전한 여신인 그녀조차 두려움을 느끼게 만드는 무언가였다.

그것은 천천히 눈을 떠 비화를 바라보았고. 극심한 두려움을 유발했다.

반대로 따스하고 밝은 것도 느껴졌지만 비화가 보기에 그것은 너무도 미약해 보였다.

이게 대체 뭐야.

그제야 비화에게 다리안의 내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리안의 혼으로 보이는 거대한 핵을 기준으로 수를 헤아리기 힘든 수백 수천 수만의 빛의 가닥들이 뻗어져 있다.

“이게…… 생명체의 심해라고?”

일반적인 생명체의 혼과는 너무 많은 것이 달랐다.

“다리안…… 너 대체 정체가 뭐야…….”

혼란스러워하는 그녀는 자신을 향해 스멀스멀 뻗어오는 심해 속의 촉수들을 볼 생각조차 못 했다.

그때였다.

“종언이 반응한다! 어서 당겨!!!”

누군가의 황급한 외침과 함께 비화의 의식이 누군가에게 잡아끌리듯 끌어올려 졌다.

“어?”

그녀가 마주한 것은 다수의 인영이었다.

“너희들은?”

“반갑습니다. 누님.”

그들이 내민 첫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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