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19화
찌르르 울리는 머리. 지독한 신력이 비화의 정신을 어지럽게 만든다.
이건 단순한 반신. 혹은 데이비의 온전한 신격 같은 수준의 영역이 아니었다.
그보다 깊은. 비화와 비교했을 때 비슷한 무언가였다.
다리안이 완전한 신이었던 것일까.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비화는 복잡한 심경으로 이 신력의 주인이 누구인지 파악하고자 했다.
타나토스나 선대 넬타리드가 죽고 지금 남은 온전한 신은 프리아 여신과 비화. 그리고 후대 넬타리드가 전부였다.
거품 세계의 가짜 여신은 차원의 힘으로 빚어낸 존재일 뿐 비화와 달랐다.
“누님.”
그때 그녀를 상념에서 꺼내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새하얀 존재들이었다.
이목구비조차 보이지 않지만, 목소리는 확연히 들려왔다.
그제야 주변의 풍경이 고스란히 보였다.
신기한 장소였다.
거대한 원형의 세계. 그 원형태의 세계는 4개의 영역으로 정확한 사이즈로 구분되어있었다.
꽃으로 가득한 세계와 불타는 세계. 그리고 황무지가 되어버린 세계와 완전히 얼어붙은 세계였다.
각각 세계의 경계선은 놀라울 정도로 예리하게 분단되어있었다.
“너희는…… 대체 뭐야.”
비화는 대체 다리안의 안에 왜 이렇게 많은 존재들이 있는가 의문을 품었다.
그녀는 데이비 이상으로 많은 것들을. 더 자세히 볼 수 있는 눈을 지녔다.
그렇기에 그녀가 보는 이들은 영혼 같은 게 아닌 다른 것임을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이 신력의 정체 중 일부가 선대 넬타리드의 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선대 넬타리드가 심어놓은 건가?”
비화가 경계심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어쩌면 가상세계에서 데이비가 만난 존재가 이들과 같은 것들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이놈들의 정체는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 적의는 없어 보인다는 사실이다.
그때 새하얀 소녀의 형상을 한 존재가 다가와 그녀를 품에 안았다.
“언니. 반가워요.”
아름다운 미성이었다.
“누군데 나한테 언니라고 하는 거야. 너 대체…….”
“이미 저희가 누군지 알고 계시잖아요.”
그녀를 포함한 모두가 입을 모아 동시에 말한다.
마치 주변 전체가 울리는 듯한 기이함이 들었다.
“저흰. 당신의 동생. 다리안의 가능성.”
“가능성…….”
“본체가 될 수 있는 무수한 중간지점과 끝의 종착점입니다. 그리고. 그의 힘이며 족쇄이기도 하고요.”
* * *
비화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의지는 곧바로 상황을 분석해 들어갔다.
간혹 느끼던 다리안의 이질적인 느낌은 이 녀석들이었구나.
이 녀석들은 단순한 가능성, 혹은 재능 같은 게 아니다. 그보다 더 깊고 무거운.
또 강대한 영향력을 지닌 것들이다.
“본래 저희에게 의지 같은 건 없습니다. 하나의 가능성이며 우리 모두 피아 구분 없이 서로를 간섭하니까요. 상충하는 가능성은 서로 충돌하여 없어지고. 새롭게 진화하죠.”
하지만 선대 넬타리드는 그런 가능성에게 의지를 심어 그 혼란에 다른 방향의 불을 지펴놓았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라는 생각보다 더 경악스러웠다.
“말도 안 돼…… 이건 단순히 재능 수준이 아니잖아…….”
이들의 존재는 허상이 아니다.
가능성.
하지만 비화의 눈에 비친 이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리안과 공명하는 숨겨진 힘이나 다름없었다.
“그러고 보니…… 거품 세계에서 만난 다리안은 아빠의 주술을 개조한 힘을 썼다고 했지…….”
아무리 불안정한 세계라도 고작 한 번의 주술로 차원을 붕괴시킬뻔한 초고위 주술.
그 뿌리는 데이비에게 있었다.
미래에 기록된 다리안이 얻어낼 모든 것들. 그것들이 가능성이 되어 과거에서 현현하고 있다.
만약 이것들이 점진적으로 다리안에게 영향을 주기 시작한다면…….
“하…….”
다리안 올 라운이라는 이 괴물 같은 동생은 수련 한 번 하지 않고 데이비에게 버금가거나 그보다 더 강한 수준까지 강해질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게 말이 돼?”
데이비 올 라운.
비록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엄연히 선대 넬타리드와 파괴. 그리고 타나토스까지.
세 명의 신을 영면에 들게 만든 존재.
그런 데이비조차 천년에 가까운 시간을 들여 스스로를 단련했고, 수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겼으며, 프리아 여신조차 당혹스럽게만 들 정도의 대가를 몸에 짊어지고 나서야 오른 수준이었다.
“그래…… 아빠 수준까지는 힘들겠지…….”
실제로 눈앞에 보이는 가능성은 하나같이 막대한 힘을 품고있지만 유일하게 하나가 없었다.
그토록 말도안되는 재능을 품고 있으면서도 뭔가 하나빠진 느낌이었다.
다만 그것보다 비화에게 먼저 든 생각이 있었다.
“역시 내 동생…….”
이 끝을 알 수 없는 자랑스러움!
동생을 향한 대견함!
뭐가 되었건 다리안은 굉장한 동생이 아닌가!
“흐…… 흐헤헤…….”
저도 모르게 헤픈 웃음을 띤 비화가 화들짝 놀라며 입을 가렸다.
“저…… 누님?”
“크흠. 흠!”
그래.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대충 알겠어. 하지만 그것보다 확인할 게 있어. 너희……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데이비가 말했던 그 검은 화염에 휩싸인 다리안.
그 녀석도 어쩌면 이 녀석들과 같은 케이스가 아닐까.
-히히. 꼰대 새끼! 죽어!!
녀석이 아빠에게 했던 말이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녀석들이 그런 성격인 것 같진 않지만,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불안한 가설을 반드시 확인 해야 했다.
* * *
다리안의 몸 안에서 비화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
원래 열리지 않는 문을 억지로 연 것인 만큼 비화는 지친 얼굴로 털썩 주저앉았다.
“……7죄악…….”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 다리안의 가능성은 그를 연습하지 않아도 절대자로 만들어줄 정도로 강렬했다.
하지만 그게 오로지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 가능성이 품은 업은 극도로 깊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겪는다.
교만과 분노.
비화는 이제야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천천히 일어난 비화는 다리안의 봉인에 관해 고민하고 있을 데이비를 찾아갔다.
봉인은 오히려 절대 선택해선 안 될 악수라는 것을 알려야 했다.
“아빠!!!”
덜컹!!
문을 격하게 열고 들어가자 가족의 일이라고 모두가 모여 고민하고 있는 게 보였다.
한켠엔 코오나도 제 몸통만 한 가볍고 환한 구슬을 품에 안고 있다.
“절대 안 돼요!”
“뭔 소리야. 비화.”
“봉인! 절대 안 된다고!”
비화는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는. 온전한 여신인 그녀만이 볼 수 있는 것을 통해 본 진실을 털어놓기 위해 입을 열었다.
* * *
다리안의 가능성은 비화를 제외하곤 온전히 보거나 느낄 수 없다.
아마 후대 넬타리드도 가능은 하겠지만 비화에 비해 그 수준이 낮으리라.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러니까…… 다리안의 내면에 막대한 양의 가능성이 잠들어있고, 선대 넬타리드가 그것들 중 문제가 되는 가능성…….”
“네. 7죄 같은 극악의 가능성을 모조리 소거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거예요. 아빠가 만난 그 다리안. 그 녀석은 아마 교만이겠죠.”
그 말에 데이비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구나. 어쩐지. 다리안이 내게 꼰대 새끼라니 죽으라니 그런 말을 할 리가 없지…….”
듣고도 어이가 없는 사실인데 그걸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고 믿어주는 데이비의 모습에 비화는 감동이 밀려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굳이 이 사태를 만들어야 했던 게야? 교만은 거품 세계 하나를 박살 낼뻔했고, 그 뒤에 쫓겨난 분노는 지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거늘.”
“실은 저도 그 이야기를 했었어요.”
비화가 한숨을 내쉰다.
“가능성끼리 힘의 한계가 달라요. 교만이나 분노. 정확히 말해서 교만의 경우는 덜하지만, 분노같이 막대한 힘을 지닌 가능성은 그냥 남겨놓으면 다리안에게 어떤 악영향을 끼칠지 몰라요. 그들은 다리안의 힘이지만 반대로 족쇄이기도 하니까.”
비화가 한숨을 내쉬었다.
“가능성을 모두 버리는 한이 있어도 처리해야 하는 녀석이 있어요.”
“처리?”
“종언.”
그녀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다리안이 가진 가장 잔인하고 어두운 가능성. 아빠가 겨우 지켜낸 이 세상을 지워버릴 수 있는 가능성이요. 더 크기 전에 막아내지 않으면 다리안은 그 종언의 가능성에 크게 휘말릴 거에요.”
그 말에 내부의 공기가 차갑게 식었다.
“제게 모든 것을 설명해준 녀석들이 한 말에 따르면 종언을 억제할 수 있는 가능성이 현재 극도로 약해져 있다고 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본래 균형을 유지해야 할 두 가능성 중에 종언이 압도적으로 강해지면서 다리안의 미래가 어둡게 변한 거죠.”
“운명을 바꿀 유일한 기회…….”
“녀석들은 비록 다양한 가능성이 있지만, 모두가 같은 뜻을 품고 있어요. 본체. 즉 다리안의 안전. 하지만 그것조차 안중에 없는 종언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녀석을 바깥으로 끌어내야 한다고 판단한 거죠.”
“그게…… 거품 세계냐?”
“네. 불안정한 차원. 여신께서 만드신 특수한 신생 차원들.
제가 만든 가상현실접속장치는 인간의 의식과 영혼과 공명하는 통로죠. 다리안의 내면에 있는 녀석들은 그것을 통해 교만과 분노를 쫓아내는 데에 성공했어요.“
“흐음…….”
“그리고. 아빠도 보셨으면 아시다시피 현재 다리안의 내면을 분석하고 파악할 수 있는 건 저뿐이죠.”
하지만 거품 세계에선 페르세르크와 데이비 모두가 교만의 다리안을 확인했다.
“거품 세계에서만큼은…… 데이비나 본녀도 그것을 인지할 수 있다는 뜻이로구나.”
“네. 반신의 위계 이상을 지닌 존재에게도 똑똑히 인지되죠.”
즉. 다리안의 내면에 있는 가능성은 단순히 자신들끼리 일을 처리하는 게 아니라…….
가족인 데이비를 포함한 모두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더 늦어지기 전에.
“문제가 되는 가능성은?”
“그 기준이 애매한 것도 사실이지만 다리안을 근본적으로 비틀어버릴 수 있는 가능성은 총 8개.”
교만, 인색, 질투, 분노, 색욕, 탐욕, 나태.
마지막으로. 종언.
“현재 교만과 분노는 어떻게든 쫓아냈지만, 아직 다리안의 안에는 인색, 질투, 색욕, 탐욕, 나태가 남아있어요. 그리고 그 녀석들이 있는 한 종언을 손대기 쉽지 않죠.”
여러 가능성 중 강한 힘을 지니고 있되, 그만큼 다리안을 망가뜨릴 수 있는 가능성이다.
7죄에 해당하는 가능성이 만들어진 배경은 간단했다.
세상은 무수한 변수를 품고 있다. 그리고 가능성은 그런 변수 속에서 다리안이 도달할 수 있는 중간지점, 혹은 종점이다.
분노의 가능성을 예로 들었을 때. 다리안이 그 힘을 얻기 위해 겪어야 할 문제 같은 것들도 같이 따라오게 된다.
극심한 분노조절 장애. 막대한 힘을 얻었지만, 그 과정에서 잘못된 일로 인해 뒤틀린 다리안의 결말이다.
본체, 즉 다리안의 일신조차 신경 쓰지 않는 가능성. 좋고 나쁜 수많은 가능성이 입을 모아 절대 불가를 외치는 다리안에게 직접적으로 해가 되는 가능성.
그것이 비화가 말한 8가지의 가능성이었다.
모든 생명체는 살아가며 경험을 하고 탑을 쌓아 올린다.
보통은 그것을 두고 운명, 혹은 흐름이라고 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다리안이 가진 운명은 그 계열이 달랐다. 보통은 하나를 가지는 운명이 방대한 수를 가지는 것도 황당한데 그 운명이 도달한 극의의 경지를 실시간으로 치트키를 쓰듯 과거로 가져와 다리안에게 적용시킨다.
“세상에…… 내가 이해 똑바로 하고 있는 거 맞아? 그럼 만약 다리안의 검의 극의를 깨닫는 가능성이 있다면…….”
“네. 다리안은 검술연습 따위 하지 않아도 검의 극의를 깨달을 수 있다는 거죠. 다만, 문제점이 있어요. 그 과정에서 변화가 일수 있다는 거죠.”
다리안의 재능은 지금껏 본 적이 없는 방대한 재능이다.
“검의 극의를 깨달은 가능성이 다리안의 안에서 살아 숨 쉬면서 끝없는 재능을 건네준다면, 좋기야 하겠지.”
“그럼 좋은 거잖아.”
데이비의 설명에 페르세르크가 부연설명을 했다.
“그렇지 않은 게야. 반드시 좋은 것만 딸려온다는 보장은 없다는 게지. 이를테면, 만약 다리안이 그 가능성이 지닌 문제점까지 이어받는다면, 겪지 않은 미래의 부상을 갑자기 얻을 수도 있다는 뜻이니까.”
“그건…….”
일리나는 그제야 다리안의 재능이 마냥 좋지는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대부분의 가능성은 다리안에게 곧바로 힘을 링크하지 않아요. 서서히 그가 강해지게 만들면서 그들이 가진 문제점을 희석시키죠.”
한쪽 눈을 잃은 검의 극의 가능성이 있다고 쳤을 때. 그 가능성은 본체인 다리안에게 자신의 검의 극의를 기존보다 조금 느리게 링크하면서 한쪽 눈을 잃는 페널티를 중화, 혹은 상쇄시킨다.
즉, 그러한 업을 쌓지 않고 가능성이 지닌 결과물만을 얻어낼 수 있다.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닌 방대한 양의 결과물을.
“그들의 주체는 결국 다리안이에요, 다리안이 다치거나 비틀리는 건 절대 원치 않죠. 풉…… 뭐 가능성 중에 자애로운 성녀 아가씨가 된 가능성이나 어린 소년이 되는 가능성도 있긴 하던데.”
푸웁!!!
심각한 표정으로 차를 마시며 마음을 졸이던 에이리아가 그대로 차를 뿜었다.
“어차피 그것도 천천히 진행하면.”
“그건 잘 몰라요. 애초에 가능성들에게 다리안이 여성화가 되거나 아이가 되거나 하는 건 신변의 위협은 아니니까요. 노화는 별개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어차피 극도로 낮은 가능성일 뿐이며 얼마든지 대처가 가능하다.
다만. 8개의 가능성은 그렇지않았다.
본체의 안전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가능성.
그들은 다른 가능성과 달리 다리안에게 자신의 힘을 곧바로 밀어 넣어 그 페널티도 고스란히 떠넘기는 데에 아무런 망설임도 없는 것들이었다.
이를테면 분노의 경우 자신의 힘을 고스란히 넘기는 것도 모자라 치료할 수 없는 극도의 분노조절 장애까지 함께 넘겨버릴 것이다.
7죄는 다른 가능성과 다르게 다리안이 갓난아기 때부터 막대한 힘을 다룰 수 있게 해주겠지만 다리안을 순식간에 미쳐버리게 만들리라.
“네 말대로라면 내부에서 다리안이 쫓아내는 가능성을 우리 쪽에서 처리해줘야 한다는 말로 들리는데.”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거품 세계로 끌어낸 뒤 소멸시키는 거로 다리안과 그 가능성의 연결고리를 끊는 거죠. 다리안의 가능성이 서로 충돌하며 내야 할 결과를 우리가 대신 해주는 거예요.”
다리안이 혼자서 한다면 어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비화의 주장은 확고했다.
“하지만 그것들을 어떻게 끄집어내지?”
“우선 다리안에게 접속장치를 씌울 거에요.”
“그리고?”
“음…….”
비화가 침묵했다.
“그 7죄라는 것들을 쫓아낼 방법이 그놈들에게 있는 건가?”
재차 이어지는 물음에 비화는 고개를 끄덕인다.
“가상세계의 주인이 누구인지 잊었어요?”
그곳을 관리하는 것은 다름 아닌 조율의 여신, 비화였다.
“아빠 딸, 능력 좋아요.”
비화의 환한 미소에 데이비는 헛웃음을 흘렸다.
7죄는 막대한 힘을 지녔지만 아직은 불안정한 것들이다.
“아무리 강한 힘이니 미친 정신이니 해도 녀석들은 진짜 생명체가 아니에요. 하지만 위험한 것도 사실이죠.”
“그래서?”
“녀석들을 속이는 거죠. 쫓겨난 녀석들이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도록.”
“싸우게 한다고?”
“녀석들은 다리안의 육체나 정신이 어찌 되건 자신의 가능성을 그에게 적용하려 들어요. 그러니 다리안에게 돌아갈 수 있다면 다른 걸 다 버리고 그것을 최우선으로 삼겠죠.”
마치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함정임을 알아도 녀석들은 절대 포기하지 못한다.
7죄는 서로 돕는 존재가 아니다. 서로 간에도 혐오가 만연해있는 만큼 만약 둘 중에 하나만 돌아갈 수 있는 통로가 생기면, 곧바로 서로를 물어 뜯을 거예요.“
비화는 접속장치를 다리안의 머리에 씌웠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음에도 다리안은 정말로 강력한 힘을 품고 있다.
이 일이 끝나면, 다리안이 품고 있는 힘의 총량이 상당히 줄어들겠지만. 적어도 다리안이 미쳐버리거나 비틀리는 미래라면 없는 것이 나으리라.
“우리가 싸워줄 필요는 없죠. 지금부터 싸워라.”
7죄끼리 싸움판을 열겠다는 비화의 계략에 데이비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당연히 내부에서 7죄를 쫓아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비화는 가상공간의 주인이자 조율의 여신이다.
그 첫 번째 희생양은 7죄 중 탐욕이었다.
넬타리드의 힘을 받아 의지를 가진 가능성은 서로 연합하여 다리안의 육신을 붕괴시킬지 모르는 탐욕을 그대로 쫓아냈다.
그냥 두면 다시 다리안에게 스며들 수도 있기 때문에 다리안과 가상공간의 접속을 끊어야 한다.
하지만 비화는 가상공간을 비틀어 밖에 있는 교만과 분노, 그리고 탐욕 중 단 한 놈만이 들어올 수 있도록 꾸며냈다.
정작 이겨낸다고 한들 그것은 사기에 불과하지만.
간혹 비화도 참 요망하다는 생각이 드는 데이비였다.
* * *
이미 먼저 쫓겨나 있던 분노는 자신의 영역에 들어온 탐욕의 존재와. 다리안과 이어진 통로를 동시에 느꼈다.
극심한 분노로 이어지는 모든 것을 부수고 파괴하던 그였지만 마치 본능이 가르치는 것처럼 다리안에게 돌아가는 것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하지만.
다리안에게 돌아갈 수 있는 통로는 둘 이상이 갈 수 없었다.
한번 지나가면 사라질 옅은 통로.
문제는…….
“아야야…… 빌어먹을…….”
경쟁자가 있다.
분노는 판단이 서기가 무섭게 그대로 탐욕의 목을 휘어잡았고.
“컥?!”
그대로 꺾어버린 뒤 몸을 날렸다.
다리안에게 돌아가기 위해서.
하지만, 그는 오래가지 못했다.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분노의 신형이 바닥에 처박혀버린 탓이었다.
비화의 계획대로 되고 있다는 걸 그 둘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