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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422화 (1,422/1,559)

제 1422화

기억이라는 것은 특정 트리거가 충족되면 잊고 있던 것조차 떠오르는 법이다.

-누나가 구해줄게.

-사랑해. 내 동생.

복부와 왼쪽 허벅지. 그리고 어깨가 고목의 줄기에 관통당했으면서도 아픔 따위 느끼지 않는다는 듯 부드럽게 웃는다.

끝없는 저항에 한쪽 눈도 잃었으면서 미소를 잃지 않는다.

-나에 대해선 잊고 살아가.

발끝부터 먼지처럼 흩어지던 소녀의 모습은 절대 잊히지 않으리라.

그녀가 말한 것은 종언을 향한 말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녀가 살린 건 종언이 아닌 그녀의 첫 동생이나 다름없는 다리안이니까.

하지만 종언이라는 존재에게 있어서 비화가 누구를 향해 그런 말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스스로가 이토록 괴롭게 느껴지는 것은.

“으윽!! 이…… 이 개새끼가!”

상처를 입은 비화가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여신의 존재이기에 고작해야 육체의 부상 정도로 그녀를 해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녀는 쉬이 회복을 하지 못했다.

검은 양복을 입은 존재 솔로모니아는 그를 향해 화를 내는 비화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윽고 비화의 힘이 거칠게 증폭된다.

이미 비화는 배승우의 힘으로 증폭이 되며 그녀의 내면에 있던 힘을 깨운 참이었다.

이곳은 가상세계가 아닌 다리안의 의식 내부.

그렇기에 비화의 본체는 바깥에 있었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구나.”

철컥!!

종언이 맥동하는 목상을 뒤로하고 천천히 걸어서 다가온 비화가 화려한 머스캣의 총구를 그의 눈동자 바로 위 촉수에 들이밀었다.

“미안하지만 예전이라면 당했을지 몰라도 이제는 아니야.”

그녀가 든 머스킷의 총구에 막대한 신력이 모여든다.

이 총은 그녀의 힘을 방출하는 매개체.

탄환은 그녀의 힘 그 자체였다.

솔로모니아가 그것을 버텨낼 재간은 없었다.

한없이 차가운 얼굴로 그를 노려보는 비화를 똑바로 올려다보며 솔로모니아는 눈을 감았다.

‘종막의 시작입니다. 당신은 끝내 나를 당장 죽이지 않겠지요.’

그녀에게 말하지 않은 진실은 있지만 아직은 시기상조였다.

그럼에도 그는 묵묵히 기다렸다. 비화가 당장 그를 죽이지 않을 거라는 확고한 믿음 때문이었다.

우웅…….

“망할…….”

목상의 위에 위치한 종언이 더욱 크게 맥동하기 시작하며 정체 모를 괴이한 힘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러자 거대 목상이 그것들을 빨아들이며 변질되기 시작했다.

이윽고 마치 찰흙처럼 일렁이던 목상은 어떤 형태를 취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늑대의 형태.

비록 나무로 만들어진 존재라 강해 보이진 않지만, 비화나 솔로모니아나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저 나무로 만들어진듯한 늑대가 얼마나 위험해졌는지를.

솔로모니아가 비화를 제압하면서 반격을 가한 종언은 비화의 신격을 고스란히 복사했다.

단순한 신격도 아닌 여신의 신격을 말이다.

“저걸 저렇게 손쉽게 쓸 수 있다고? 말도 안 돼…….”

그녀의 중얼거림이 끝나기도 전에 거대한 늑대를 중심으로 원형태의 광원무리들이 나타나 그녀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이에 비화는 곧바로 빛으로 된 사슬을 만들어 솔로모니아를 지면에 구속시킨 뒤 몸을 날려 피했다.

쾅!!! 쾅쾅!!

다리안의 심층 내면이 엉망진창으로 변한다.

단 한발도 위협적이라는 것을 깨달은 비화는 날렵하게 사라졌다가 안전한 장소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머스캣의 총구를 목상의 늑대에게 들이밀곤 방아쇠를 당겼다.

터어엉!!!

일격이 적중한 종언은 크게 휘청거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이에 비화는 한 손으로 든 머스킷을 종언의 머리 쪽에 겨누고 두어 발 더 발사했다.

콰앙!!! 쾅!!

한 손에 쥐어진 총으론 불가하다 여긴 것일까.

비화는 묵묵히 남은 한 손에 또 한 자루의 머스킷을 구현해냈다.

터엉!! 텅!!!

왼손에 든 머스킷이 두 발의 빛을 내뿜기가 무섭게 그녀를 중심으로 사방에 썩은 고목들이 줄기를 뻗어 반격했다.

하지만 비화는 침착하게 한발을 부드럽게 뒤로 빼 물러난 뒤 오른손의 머스킷을 발사했다.

콰아앙!!!

막대한 신력이 그녀의 의지를 따라 방출되며 고목의 줄기들을 먼지 더미로 만드는 것을 넘어 고고하게 위압을 내뿜던 거대 늑대. 종언의 육신에도 폭발을 일으켰다.

-크아아아아아앙!!!

끔찍한 비명을 토해내며 휘청거리는 늑대가 섬뜩한 안광을 빛낸다.

제법 타격이 들어갔으리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않았다.

“이거론 안 먹힌다 이거지.”

터엉!!!!

사방에서 날아드는 고목의 줄기를 피하며 스르륵 사라졌다가 뒤쪽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 비화가 양손에 든 머스킷을 버렸다.

동시에 그녀의 손에 이전보다 두 배는 긴 머스킷이 나타났다.

“그럼 이것도 좀 먹어봐.”

철컥.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힘을 토해내는 머스킷의 총구에 종언이 급히 비화를 향해 파고들어 왔다.

수백 미터에 달하는 체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크기에 맞지 않게 엄청난 속도였지만 비화는 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고 침착하게 총구를 놈의 미간에 겨누었다.

동시에 숨을 짧게 들이켠 비화의 입에서 신비로운 음성이 터져 나온다.

마치 노래와 같은 언어는 그녀의 주변을 휘감으며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고. 이내 머스킷에 스며들었다.

파아앙!!!!

비화의 양 날개뼈에 빛으로 된 거대날개가 생겨나며 대지에 엄청난 바람을 일으켰다.

종언의 발톱은 지근거리까지 다가왔다. 조금만 늦어도 거대한 발톱이 그녀의 육신을 잘게 찢어버릴 정도라는 건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억제]

쩌어엉!!!!

그녀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기기가 무섭게 무색 무형의 충격파가 그녀의 총구로부터 발사되자 엄청난 반동으로 그녀의 손에 쥐어진 총구가 크게 하늘로 휘청거렸다.

당연히 엄청난 반동만큼의 경악스러운 충격파가 종언의 미간과 정확하게 충돌했다.

잠재된 힘을 깨워낸 비화의 힘은 기존의 힘과는 확연히 비교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조금 전까지 비화의 공격을 맞고도 버텨내던 종언이었지만 비화의 강화된 억제에 짓눌리듯 크게 휘청거렸다.

“한 번만 하면 정 없잖아. 한 번 더.”

터어어엉!!!

거대 늑대의 앞발이 황급히 다시 움직이지만, 비화의 머스킷이 놈의 머리를 겨누는 게 더 빨랐다.

[억제]

쩌어어엉!!!

무수의 충격파가 터져나가며 종언을 또다시 제약했다.

거대한 목상의 늑대 육신에는 빛으로 된 고리가 두 개 생겨났고, 그 고리들은 시시각각 좁혀지며 종언을 압박해 들어갔다.

계속되는 공격에 종언의 거대한 육체가 휘청거리며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녀석의 머리 위에 올라선 비화는 거대한 탄환을 계속해서 종언의 머리통에 처박아 넣었다.

[억제]

터어어엉!!!!

“많이 부족하지? 네가 튕겨 나가는 게 먼저일지. 내 힘이 떨어지는 게 먼저인지 한번 해보자고.”

비화는 본능적으로 종언을 처리할 힘이 자신에게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종언과 이곳에서 죽도록 싸워서 죽일 생각은 없었다.

비화는 그저 이놈을 다리안의 심층의식 속에서 쫓아내면 될 일이었으니까.

-크아아아아아앙!!!!

천지를 뒤흔드는 포효에 썩어들어가는 죽음의 숲 전체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콰앙!! 쾅!!!

비화는 자신의 힘을 아낌없이 사용하며 계속해서 종언을 억제했고, 한 발 한 발 탄환이 방출될 때마다 막대한 충격파와 녀석의 몸을 휘감는 빛의 고리들이 늘어났다.

종언의 저항은 거셌지만, 비화의 격노는 풀리지 않았다.

다만, 비화가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솔로모니아의 존재를 말이다.

쉬리리릭!!!!

“윽?! 분명히 구속했을 텐데?!”

순식간에 날아든 촉수가 비화의 몸을 휘감아 당겨버리자 그녀가 휘청거리며 그대로 솔로모니아 쪽으로 끌려들어 갔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방해를 당했다.

비화의 입장에서 격노할 수밖에 없기에 곧바로 솔로모니아를 처단하려던 그 순간.

비화는 그가 어떤 공격을 비화 대신 맞았음을 알아챘다.

“커헉!!”

“뭔…….”

조금 전 그녀를 휘감아 당긴 것이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서였음일까. 무언가에 크게 당한 듯 녀석은 그대로 털썩 쓰러진 뒤 몸을 경련했다. 그리고 비화는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녀석의 등엔 어떤 화염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떤 빛도 내뿜지 않았다.

완전한 무색. 완전한 무형.

화염이라는 건 보통 밝기와 색에 따라 온도가 변하곤 한다.

하지만 지금 솔로모니아의 육신을 태우는 화염은 어떤 빛도 내지 않았다.

마치 빛조차 삼키는 블랙홀처럼 말이다.

정확한 표현으로는 반사되는 빛까지 모조리 태워버려 보이지 않는 모양새였다.

“끄아아아아아악!!!!”

끔찍한 고통에 몸부림치는 녀석은 순식간에 육체가 붕괴하고 있었다.

그쯤 되어서야 비화는 솔로모니아가 그녀를 대신해 공격을 맞았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했다.

“너…… 대체 뭐야.”

“끄으윽!! 끄아아아악!!!”

배신을 해서 비화를 다치게 하고, 그녀의 신격을 놈에게 흡수시킨 주제에 이제 와서 그녀를 구했다는 사실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크아아아앙!!!!

뒤이어 종언의 포효소리가 울려 퍼지자 솔로모니아가 이를 악물었다. 처참하게 지르던 비명이 서서히 멎어 든다.

“끄으으윽!!!!”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그는 천천히 기어와 비화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말했다.

“당신은…….”

그가 씹어뱉듯 힘겹게 말을 이어나간다.

“……이곳에서 죽어선 안 됩니다.”

“뭔…….”

“그것이, 제가 바라는바.”

화르르륵!!!

솔로모니아의 육신에서 놀라운 힘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하자 비화의 눈에 놀라움이 서린다.

그만큼 솔로모니아의 힘이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 숲 전역에 깔린. 힘.

종언의 힘이었다.

“설마.”

“그것만을 위해 영원을 기다리며 힘을 모았습니다.”

투웅!!!

그 말을 끝으로 솔로모니아의 중심으로 붉은 벼락들이 미친 듯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케라우노스라고 하였던가.

차원과 차원 사이에 연결점을 만드는 힘.

그 힘과 동시에 썩어들어가는 고목의 숲들이 변질되기 시작했다.

막대한 힘이 숲을 휘감으며 죽은 숲에 생명의 싹을 틔운다.

“…….”

비화는 자신의 주변에 놓인 죽은 나무들에서 초록빛의 싹들이 돋아나는 것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인지 종언과 같은 힘을 지닌 솔로모니아가 종언의 힘으로 오염되고 썩어 문드러진 숲을 정화한 게 놀라웠던 탓이었다.

그리고. 그는 비화의 힘을 흡수하고 폭주하는 나무로 된 늑대. 종언의 바닥에 거대한 균열을 만들어냈다.

-크어어어어엉!!!

거대한 괴성을 내지르며 녀석이 빠져나가지 않으려 발버둥 치지만 솔로모니아는 상체만 남은 채로 양손을 강하게 부딪치며 생명이 가득한 나무줄기들을 방출해내 녀석을 휘감고 균열 속으로 밀어 넣었다.

“비화 누님.”

“…….”

누님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기에 비화는 침묵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 사실을 내뱉었다.

“너…… 종언이구나.”

“예, 하지만 저는 저기 폭주하는 존재와 달리 누군가의 희생으로 변화하였습니다. 엉망으로 뒤엉킨 시간 축의 기적 속에서 오늘만을 위해 시간을 순행하고, 역행하기를 반복한 타 시간 선의 존재. 그리고, 신의 은총으로 수태된 한 아이를 죽인 죄인.”

말도 안 된다고 소리치고 싶은지 비화가 입을 뻐끔거렸다.

그의 존재 자체가 너무 말이 안 되는 것투성이였다.

하지만 솔로모니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종언은 제 본체와 하나입니다. 그를 쫓아내는 건 사실상 제 본체를 죽이는 것과 같지요.”

그의 육신이 마치 노이즈가 낀 것처럼 지직거렸다.

하지만 비화는 다르게 보였다.

촉수로 된 머리가 서서히 변하며 환한 미소를 짓는 귀여운 소년의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기에 누님은 처음 녀석과 접촉한 뒤 그 사실을 알고 쫓아내는 걸 포기했습니다.”

솔로모니아가 비화를 휘감아 종언에게 반격을 당하게 만든 그때를 말하는 것이었다.

비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를 바라보았다.

“또한, 누님이 이곳에 진입하자마자 누님의 힘을 먹어치우고 폭주하기 시작한 종언을 막을 유일한 방법이 정화라는 것을 깨달았지요.”

단순한 권능이 아닌, 여신의 존재를 소멸시키며 발생시키는 기적.

즉. 비화가 이곳에 들어옴으로 인해 종언이 폭주하게 되었고, 종언을 쫓아내는 건 다리안의 죽음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깨달은 비화가 스스로를 불태워 종언을 정화해 버렸다고, 그는 말했다.

“녀석은 당신의 신격을 먹었고, 폭주했습니다. 이제 제가 그동안 모은 힘에 의해 본체에서 튕겨 나와 가상공간 너머로 밀려나겠지요.”

마치 비화가 가상공간을 만든 것까지 계획의 일부였다고 말하는듯한 모습이었다.

“녀석은 본체의 바깥. 여신께서 미리 안배해두신 가상세계로 쫓겨날 겁니다. 그리되면 제 본체는 죽음을 맞이하겠지요.”

“그럼 왜 쫓아낸 건데!!”

“잊지 마세요. 마지막 열쇠는 이미 저와 아벨 올 라운이 당신들의 손에 쥐여 드렸습니다.”

인도자라는 이름으로.

종언이 빠져나가고 붕괴하기 시작하는 다리안의 육신은 어지간한 권능으로도 돌릴 수 없다.

하지만 유일하게 하나.

“명심하세요, 인도자의 힘은 단순한 시간 역행이 아닙니다.”

소년이 너무도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뻐끔거렸다.

비화에게 작게 들릴 정도의 조용한 목소리.

그것을 끝으로 솔로모니아의 육신은 완전히 잿더미가 되어 흩어져 버렸고.

비화는 멍한 얼굴로 넋을 놓은 듯 주저앉아버렸다.

같은 시각.

비화의 힘과 같은 종언의 함정에 빠져 다리안에게서 튕겨 나온 종언은 여신이 만들어놓은 거품 세계로 스며들어 갔다.

존재 자체가 차원의 종말을 불러오는 죽음의 화신과도 같은 죽은 나무의 늑대는 폭발적인 위압을 토해내며 자신의 해방을 알렸다.

하지만 지금의 종언은 알지 못했다.

비화를 잃고 가장 슬퍼하고 죄책감을 느꼈을 누군가가 그를 지독하게 갈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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