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23화
비화는 다리안의 의식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흐읍!!”
그리고는 황급히 일어났다.
그녀의 시야에 비친 것은 페르세르크와 코오나. 그리고 에이리아나 에반젤린뿐이었다.
일리나는 차원을 베어 가른 후 격리 중이었고, 데이비의 경우 원죄들을 처리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을 테니까.
휘청거리며 일어난 그녀는 곧바로 다리안의 상태를 확인했다.
다리안을 지탱하는 것은 두 기둥. 거대한 두 가능성이다.
하지만 하나는 극도로 미약해져 있고, 하나는 솔로모니아의 계략대로 다리안의 몸에서 쫓겨났다.
종언을 빼내는 건 계획대로였지만 그대로 두면 반드시 다리안은 죽는다.
‘생각해내자.’
비화가 침착하게 눈을 번뜩였다.
코오나. 즉 인도자의 힘이 열쇠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였다.
종언과 힘겨루기를 하던 가능성은 본래 저렇게 약하지 않았다.
“코오나 언니.”
비화는 다른 이들의 부축을 천천히 받은 채 일어나며 코오나에게 다가갔다.
“어…… 어, 응?”
“부탁이 있어요.”
그녀는 다시없을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다리안을 살릴 수 있는 건 언니뿐이에요.”
그녀의 힘이 다리안의 안에 남아있는 유일한 기둥인 가능성을 깨워주기를 바랄 수밖에.
“내…… 내가 살릴 수 있다니. 대체 무슨…….”
“윽…….”
그때 비화가 힘이 빠진 듯 비틀거리자 코오나가 황급히 그녀를 잡아 부축했다.
“비화야!”
놀란 페르세르크의 외침에도 비화는 고개를 젓는다.
“인도자의 힘. 복원. 아니 시간 역행과 흡사한 그 힘.”
그녀는 내부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하나하나 털어놓기 시작했다.
다리안을 유지하던 악성 기둥인 종언을 빼낸 현재.
기둥을 잃고 붕괴하고 있는 다리안을 다시 되살리기 위해선 종언과 쌍벽을 이루는 또 하나의 거대한 힘을 지닌 가능성을 본래 형태로 되돌려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사라진 기둥을 대신할 것이 필요했으니까.
“하…… 하지만 그건 비화 너 말고는 아무도 보지 못하고 감지하지 못하는…….”
“언니.”
비화가 코오나의 손을 잡았다.
“할 수 있어요. 인도자의 힘. 그게 우연히 각성한 건 아니니까.”
아벨을 보내 코오나의 각성 단초를 정립하고 두 세계선을 격리시킨 미래의 데이비는 비화의 죽음이 미래선과 이어져 현재의 비화까지 사라지는 사태를 막기 위해 아벨의 힘을 세계의 법칙에 회귀시켰다.
정말 그걸로 되는지는 의문이지만 비화는 현재 여신이 되어 이곳에 있다.
그리고 솔로모니아. 아니 비화가 자신을 희생하여 정화해준 종언이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워 만들어낸 기회였다.
자잘한 문제점 따위가 있을 리가.
* * *
원죄는 몰라도 종언은 어떤 변수를 품고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데이비만을 보낼 순 없었다.
그렇기에 비화는 자신이 회복되는 대로 곧바로 데이비가 있는 차원으로 넘어갔다.
“제가…… 할 수 있을까요.”
하지 않는다는 판단은 하지 않았다. 살릴 수 있다면 살리는 게 당연했으니까.
사랑하는 사람의 아들이고, 평소 다리안이 코오나를 많이 따르는 편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자신의 힘을 조금만 사용해 구하는 것에 이견 따위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자신이 없었다.
아직 그녀는 제힘을 온전히 다루지 못하고 있다.
힘의 총량은 차원의 진주를 얻으며 막대한 상승을 얻었지만, 비화만 볼 수 있는 다리안의 내면에 있는 가능성들을 그녀가 찾아내고 복원하는 게 가능할지 의문이었다.
“미안하구나. 이런 책임을 떠안게 해서.”
페르세르크의 말에 코오나는 자신의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겉보기엔 그녀를 배려하는 말이었지만 속 내용을 모를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페르세르크에게 있어서 코오나는 언제든지 남편을 유혹할 수 있는 불여우나 다름없었다.
그런 그녀가 이곳에 있을 수 있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페르세르크가 얼마나 참고 있는지는 잘 알았다.
과거의 페르세르크는 아이를 낳을 수 없었기에 다른 여인과의 사랑을 적극적으로 밀었지만,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된 시점부터는 그녀도 평범한 여인처럼 욕심을 부렸으니 말이다.
비록 티오니스 태생으로 일부다처제라는 개념에 마음이 넓은 편이라 곤하지만 알게 모르게 페르세르크는 데이비의 일부일처제 사상에 녹아 들어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일리나와 에이리아를 견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해볼게요. 꼭 하게 해주세요.”
그쯤 되니 코오나도 오기가 돋았다.
비록 그녀가 데이비의 부인이며 그녀에게 잘해주는 사람이라곤 해도.
코오나가 비록 일부일처제가 당연한 지구 출신이라고 해도.
지금 그녀가 품고 있는 마음이 그녀를 좋게 여겨주는 많은 이들에게 얼마나 몹쓸 짓인지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할 수 있어요. 제가 해야만 해요. 다리안을 살려야 하는 게 우선이잖아요.”
“코오나…….”
“미안해요. 저도 욕심 많아요. 마음 같아선 당장 후견인 같은 거 때려치우고 싶어요.”
후견인은 어떤 의미로는 코오나와 데이비 사이의 연결점이기도 하며 그 이상 다가가는 걸 막는 방파제이기도 했다.
“제가 구할 수 있어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땀을 뻘뻘 흘리는 다리안의 곁에 무릎을 가볍게 꿇고 앉은 그녀가 에이리아에게 말했다.
“수분이 많이 빠져나갔다고 했어요. 다리안의 몸 안에 있는 수분을 보충하고 순환시켜줄 수 있나요?”
“네.”
에이리아가 고개를 끄덕인 뒤 정령을 불러내 다리안을 휘감는다.
“저…… 저도 할 수 있는 거 없을까요.”
그때 에반젤린이 안절부절못하며 조심스레 물었다.
“다리안의 손을 잡아주지 않을래?”
에반젤린이 해줄 수 있는 건 거기까지였다.
이후 그녀는 자신의 안에 잠들어있는 힘을 공명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녀의 눈동자가 하늘빛으로 물들었다.
마치 춤을 추듯 차원을 정화했던 그녀였지만 이번엔 완전히 다른 방식이었다.
새로운 개척영역을 지도 없이 밝혀내는 셈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멈추지 않고 자신의 힘에 간절한 의지를 불어넣었다.
비록 이기적일지라도.
이번 일로 그와 조금이라도 가까워졌으면 하는 바람을 품으며.
* * *
사람이란 욕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코오나는 자신이, 오로지 자신만이 다리안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에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증거였으니까.
하지만, 그 안에 서린 감정은 그녀가 깜짝 놀랄 정도로 음습했다.
이걸 대가로 데이비에게 좀 더 가까워지고. 이걸 핑계로 그의 애정의 한편을 요구하고.
끝내 그의 품에 들어서는.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생각을 역겨워하면서도 그녀는 멈추지 못했다.
‘하…… 진짜 내가 싫다…….’
가장 화가 나는 것은 스스로가 싫다고 여기면서도 계속해서 이번 일을 기회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신이었다.
속으로 그런 고뇌하는 건 아는지 모르는지 페르세르크는 묵묵히 코오나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주었다.
벌써 다리안의 가슴에 손을 올려놓은 지 체감시간만 두 시간은 흐른 기분이었다.
실제로는 30분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그만큼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느낌까지 받았다.
비화는 벌써 데이비에게 합류하러 갔을 터.
이곳에 남은 그녀도 자신의 일에 집중해야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보이지 않아…….’
코오나는 잡념을 애써 털어내며 자신의 힘을 다리안으로 완전히 감쌌지만, 비화가 말한 내면은 도저히 감지할 수가 없었다.
다리안의 육신을 본래대로 되돌리는 건 가능할지 몰라도 자칫 빠져나간 종언의 힘이 다시 싹을 틔울 수도 있다는 비화의 말이 그녀를 무의식적으로 제동했다.
그녀의 힘은 극히 이질적이다.
만약 비화의 우려대로 자신이 막무가내로 다리안을 복원시켰다가 종언까지 복구가 되어버린다면.
그땐 정말 되돌릴 수 없을 테니까.
그쯤 생각이 미치자 코오나의 자신감이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자신이 이것을 정말로 해낼 수 있을까.
너무 큰 짐이 아니었을까.
두려움이 앞선다. 동시에 그녀의 두려움을 먹어치우듯 그녀의 힘이 그녀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우우웅…… 파아앙!!
“코오나!”
코오나의 신형이 튕겨 나간다.
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쉬며 인상을 찌푸렸다.
“괜찮은 게야?”
“네…… 괜찮아요. 하지만…….”
“찾기가 쉽지 않은 게지…… 너무 무리한 것을 요구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페르세르크의 얼굴에 서린 죄책감에 코오나는 씁쓸함을 느꼈다.
벽이 느껴진다. 가족이라면, 그녀와 같은 위치의 부인이었다면. 페르세르크에게서 이런 벽을 느끼진 않았을 것이다.
페르세르크에게 코오나는 가깝지만, 외부인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쯤 되니 오기가 생겼다.
“아직 기한이 조금 남아있으니 무리하지 말아, 본녀가 다른 방법을 찾아볼 터이니.”
“괜찮아요. 할 수 있어요.”
“지금 그대 얼굴이 어떤지나 알고 있는 게야? 완전히 시체처럼 창백…….”
“저 할 수 있어요!!”
코오나가 격하게 소리치자 페르세르크가 눈을 크게 떴다.
놀란 감정이 서린다.
다만 코오나도 스스로 소리치고 당황했는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 천천히 고개를 숙이고 웅얼거렸다.
“이, 이런 것쯤은 할 수 있다고요.”
“코오나.”
“그리고 다리안의 일은 남의 일 따위가 아니에요.”
말은 그리하지만, 코오나는 자신이 해내지 못했다는 좌절감과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슬픔. 그리고, 데이비와 그녀 사이에 있는 벽의 두께, 마지막으로 이일을 빌미로 어떻게 기회를 엿보려던 자신의 추악함에 진절머리가 났다.
그럼에도 그녀는 쉬이 포기할 수 없었다.
그녀가 그를 구할 수 있으니까.
“할 수 있어요. 내가 구해낼 수 있어요.”
단호하게 말한 그녀가 다시금 자신의 힘을 끌어낸다.
하늘빛의 기류가 스며들며 다리안과 공명하지만 사실 마땅한 방법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자신의 육체가 붕괴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그녀는 내몰려있었다.
그때. 그녀의 내면에 있던 또 다른 힘이 맥동하기 시작했다.
미래를 보는 선녀의 힘. 신수 해태의 힘이었다.
동시에 그녀의 앞에 해태가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백호와 닮은 존재의 형상.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고개가 숙어질 정도로 위압적인 모습이었다.
[코오나.]
“해태…….”
[선택해라.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그가 말했다.
“두 가지…… 라고요?”
[첫째. 네가 가진 차원의 진주를 깨뜨려 힘을 폭주시킨다면 네가 가진 힘의 숙련도를 무시하고 막대한 영향력을 얻을 수 있다.]
그 말에 페르세르크와 에이리아가 눈을 크게 떴다.
“그건…….”
[그래. 네 수명을 방대하게 늘려줄 유일한 기회를 날리는 것이지. 또한, 어떤 부작용이 따를지는 나도 알지 못한다.]
평소와 달리 근엄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해태는 코오나에게 선택을 종용했다.
“또…… 하나는요?”
[저 아이가 가진 가능성을 모두 포기하는 것이다. 내 존재를 걸고 네게 미래의 기억을 이전하겠다. 나는 규약의 신수. 막대한 숙련도와 대가를 지불하면 그 염원을 이룰 수 있다.]
비화는 어떻게든 살려만 달라고 했다.
방법에 대해선 그녀도 잘 모르기에 그런 말을 했으리라.
그보다, 신수 해태가 이런 것을 어떻게 알고 있을까.
해태가 특수한 신수이긴 하지만 지금 하는 말들은 전부 일개 신수의 영역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건…….”
[나는 네 선택을 존중한다.]
그 말에 코오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 상황을 보고 있는 페르세르크 또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리안의 가능성을 모두 잃게 만드는 건 절대적으로 피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해서 코오나가 얻은 수명을 늘릴 기회를 날리라는 건 억지에 가까웠다.
거기에 알 수 없는 부작용까지 떠안으라 어찌 말할까.
데이비에게 다가가고 싶어 하는 코오나에게 있어서 방대한 수명과 노화의 정지는 큰 의미를 지닌다.
그녀가 수명이 늘어나는 걸 굉장히 달가워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게다가 데이비와 관련된 일이 아니라 해도 방대한 수명과 노화의 정지는 생명체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요소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걸 포기하라 강요한다?
말도 되지 않았다.
애초에 지금 그녀가 힘을 보태주는 것만으로도 그녀에게 필요 이상을 요구하는 것이거늘.
아마 그녀라면 다리안의 가능성을 포기해서라도…….
우우웅…….
“코오나?”
그때였다. 코오나는 망설임 없이 제 몸 안에 보관하고 있던 빛의 진주를 빼냈다.
마치 스며들어있던 것이 빠져나오는 것처럼 코오나의 품 안에 서린다.
“…….”
그 행동이 뜻하는 바는 명확했다.
조금 전의 말과 행동, 생각과 달리 그녀는 편하면서 합리적이고, 냉철한 길을 포기한다는 뜻이었다.
[네 기회를 버릴 참이더냐. 부작용이 너를 죽음으로 내몰 수도 있다.]
그 말에 코오나는 제 상체만 한 진주를 끌어안고 몸을 가늘게 떨기 시작했다.
유일한 기회를 버리는 이가 품는 두려움의 반증이었다.
파르르 떠는 그녀의 떨림은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그녀는 짧게 오열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너무 무서워요.”
[코오나.]
“그런데 안 할 수도 없잖아요…….”
눈물을 뚝뚝 떨구며 그녀가 말한다.
“일찍 죽고 싶지 않아. 그 어떤 이유에서도 내가 늙고 추해지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요. 오래 살면서 조금이라도 더 행복한 모습을 보고 싶어요. 그렇기에 이번 일도 이기적으로 굴었잖아요. 애들 같은 치기…… 내가 하는 게 얼마나 못된 마음인지 모르는 것도 아닌데.”
그녀가 결국 흐느낀다.
“그런데,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도움을 받아서 기회를 얻은 주제에. 받기만 하고 주지는 않겠다니…… 그래도 이 상황이 서운한 건 어쩔 수가 없는 거잖아요.”
엉엉 울며 그녀가 몸을 웅크렸다.
파직! 소리와 함께 차원의 진주가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대진주를 품에 안은 채 힘을 줄수록 그 균열은 커져갔다.
[코오나! 난 네 감정을 가장 잘 알고 있다! 그걸 포기하는 건 네게 남은 마지막 기회조차 포기하는 것이라는걸 모르…….]
“그만 해요!!”
그녀가 울먹거리며 소리쳤다.
“수명은 중요해요. 내겐 많은 시간이 필요해요.”
하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역시 저는 그럴 수가 없어요……. 왜인 줄 알아요?”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품에 끌어안은 진주를 더욱 강하게 압박했다.
콰직!!!
“비록 피는 이어지지 않았어도…… 내게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사람들이잖아요. 비록 방법이 어떤 식이든 내가 서로 보듬는 가족을 얼마나 바랬는데!”
그녀가 악을 쓰며 소리쳤다.
“그러니까…… 내 욕심보다. 가족을 위해 먼저 움직일 거에요!!”
콰창!!!!
그 말과 함께 그녀의 품에 안겨진 진주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무수한 조각과 함께 비산했다.
그리고. 막대한 힘이 그녀의 안에 스며들고 순환하며 그녀의 힘을 순간적으로 증폭시키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짙은 하늘색으로 물든 눈동자를 빛내며 다리안의 몸에 자신의 힘을 불어넣기 시작했고.
다리안의 육체 내부의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씹어뱉듯 말한다.
“후회하겠죠. 미쳤다고 생각하며 이불도 걷어찰 거에요. 이런다고 달라질 게 없는 것도 알아요. 오히려 소중한 진주를 버림으로써 더 상황은 나빠지겠죠.”
그녀는 차원의 진주를 이용해 방대한 생명을 얻고 노화를 멈춰 긴 시간 동안 데이비를 공략할 계획까지 세웠다.
하지만 이제 그 계획들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그녀가 바란 것은 이기심으로 점칠 되어 비틀린 미래가 아니었다.
물론, 그녀를 탓할 이는 아무도 없겠지만. 코오나는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음습한 충동은 그녀를 부채질했지만, 그녀는 끝내 자신의 의지를 끝까지 고집해내는 데 성공했다.
그녀가 일으킨 기적이 다리안의 안에 있던 미약하게 맥동하던 가능성을 휘감는다.
동시에 다리안을 시시각각 죽이던 무너진 밸런스가 서서히 기둥의 존재를 받아들이며 회복하기 시작했다.
“언니…….”
그 모습을 보던 에이리아가 슬픈 표정으로 페르세르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페르세르크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 요망하기는…….”
“언니?”
“가족이라…….”
뭔가 복잡한 생각을 하는 페르세르크였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빚을 지운 셈인 게지.”
코오나는 자기가 내비친 의지와 그녀가 희생한 게 뭘 말하는지 본인도 모르는 듯했다.
“어떻게…… 하실래요?”
“본녀를 탓할 테냐.”
“아뇨. 하지 않아요.”
“그럼 우리는 손을 떼자꾸나.”
페르세르크의 말에 에이리아가 눈을 크게 떴다.
“본녀가 해줄 수 있는 보답은 그게 전부이니. 남은 건 남편인 데이비가 어련히 잘 하겠지.”
엄청나게 큰 것 같지만 사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었다.
데이비는 페르세르크 이상으로 외골수에 고집이 세다는 사실을.
“안타깝지만. 제대로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가 투정을 부리는 것 정도는…… 보듬어줄 수 있어야 안주인이라 할 수 있을 터.”
“그런가요.”
“다만 저 아이가 너무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페르세르크의 목소리엔 안타까움이 서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