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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427화 (1,427/1,559)

제 1427화

막대한 빛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지만 데이비도 가면을 쓴 미래의 그도 굳이 입을 열지는 않았다.

그저 석상이 된 것처럼 묵묵히 그 자리에 앉아 기다릴 뿐이었다.

“전에도 그랬는데. 다시는 볼일 없겠지?”

“없어야지.”

“그래. 그쪽하고 연결돼서 좋은 일이 없으니.”

다시금 시작된 침묵.

살면서 이토록 지독한 침묵에 휩싸여 본 적이 있던가.

숨이 턱턱 막히는 이 느낌 속에서도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을 감고 기다렸다.

종언은 비화의 힘을 맞고 분열했다.

그중 일부가 남긴 했지만 사실상 데이비의 손에 처리될 정도로 약해져 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비화가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다리안을 포함한 모두를 지킨 것이리라.

이윽고 그는 가볍게 몸을 날려 그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고, 한참 동안 얼이 빠진 비화를 품에 안고 놓아주지 않던 에반젤린과 다리안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그리고는 마이 포댓자루를 질질 끌 듯 두 사람을 데리고 어디론가로 떠난다.

“아…… 아빠?!”

놀란 에반젤린이 질질 끌려가며 소리쳤다.

“갈 시간이다.”

“벌써요?!”

“그래.”

담담하게 말하는 그를 보며 에반젤린은 불만이 많은 듯 보였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 우리 가볼게.”

“누님. 건강히 지내십시오.”

따뜻한 말이었지만 데이비의 한 손에 한 명씩 질질 끌려가는 걸 보면 분위기가 팍 죽는 느낌이었다.

그때였다.

“아빠!!”

주저앉아 멍하니 있던 비화가 소리쳤다.

동시에 그의 발걸음이 멈춘다.

“아빠…… 맞죠?”

“…….”

그는 대답 대신 침묵했다.

“죄…… 죄송해요. 제가…….”

“비화야.”

그는 등을 돌린 채로 천천히 말했다.

“네?”

“다시는 그런 짓 하지 마라.”

담담하게 말하는데 언뜻 들으면 차가워 보이는 말투였다.

이에 비화는 우울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살아있어 주는 게 제일 큰 효도다.”

“…….”

“살아있어 줘서 고맙다.”

“아…….”

그는 그 말과 함께 넓은 공터로 향했고, 이내 다리안과 에반젤린을 잡고 있는 양손 대신 한쪽 발을 들어 허공을 걷어찼다.

콰창!!!!

동시에 허공이 깨지며 틈이 생겨났다.

시공축이 뒤틀려 있는 만큼 저 너머는 어쩌면 저들의 본래 시간대로 향하는 통로가 있으리라.

“아빠!!”

이윽고 비화가 벌떡 일어났다.

“고마워요. 아빠!”

“…….”

“에린이랑 다리안도…… 으음…….”

다시 보자는 말이 얼마나 덧없는지 알기에 비화는 굳이 다시 보자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입을 오물거리던 비화의 눈에 눈물이 어린다.

“흐윽…….”

이에 에반젤린은 질질 끌려가다 다리안과 시선을 마주했다.

그리고는 둘 다 동시다발 정도로 빠르게 손아귀에서 벗어나더니 그대로 비화에게 달려와 그녀를 안았다.

괜한 눈물바다가 된 그 모습을 보며 데이비는 말없이 셋을 지켜보다 입을 열었다.

“갈 때 가더라도. 잠깐은 괜찮잖아.”

“어휴 그래라…….”

사실 제일 비화의 곁에 있고 싶은 주제에.

* * *

결과적으로 에반젤린과 다리안은 자신들의 시간대로 돌아갔다.

애초에 그들이 진입하기 위해 종언을 유인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던 만큼 돌아가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될 게 없었다.

설사 문제가 있었다고 해도 그가 있으니 의미 없는 고민에 불과하지만.

“다리안은 잘 치료 됐을까요.”

“아마 그렇겠지.”

자신의 할 일을 마치고 붕괴하는 세계를 보며 비화는 젖은 눈동자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마 평생을 못 잊을 거예요.”

“평생 기억해. 그리고. 다시는 그런 위험한 생각 품지 마.”

비록 없었던 일이라곤 해도 솔로모니아가 막지 않았다면 비화는 똑같은 전철을 밟았을 것이다.

“아빠 가슴에 대못 박지 말라고.”

콩!!

비화의 머리에 알밤을 놓아주고 돌아서서 걸어 나가자 비화가 머리를 감싸 쥐고 나를 노려본다.

그러더니 피식 웃으며 후다닥 달려와 내 팔에 팔짱을 꼈다.

“아빠. 만약 내가 죽으면 많이 울어줄 거에요?”

그 말에 데이비는 말없이 걸어가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많이 울겠다.”

“헤헤. 그럼 절대 안 그럴게요.”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 해맑게 웃어 보였다.

* * *

그날 이후 3주가 흘렀다.

비틀려있던 톱니들은 본래 자리를 되찾았다.

솔로모니아가 있었던 붉은 세계는 여신이 안배한 다음 대의 존재가 나타났고, 티오니스에서 멀어졌다.

물론, 그가 끌고 오며 영향이 생긴 숲은 완전히 다른 생태를 유지하는 공간으로 바뀌었기에 돌아올 여지는 없었지만 말이다.

덕분에 미식연구회에서 또다시 그곳 영지로 탐사를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져왔다.

다리안의 안에 있던 문제가 되는 가능성은 모두 정리가 되었고 남은 가능성은 본체인 다리안을 안전하게 보호하려는지 아직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직 어린 다리안에게는 그들의 움직임조차 부담이 된다는 것을 그들도 잘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코오나가 복구해준 남은 기둥이 아직 활동할 정도로 힘을 비축한 게 아니라는 게 문제였지만.

“그래서, 선배님. 그거랑 이거랑 무슨 상관입니까?”

넬타리드의 물음에 비화는 에반젤린의 레어에 있는 컴퓨터 두 대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동안 제대로 놀지도 못했거든. 걱정 마. 나와 달리 넌 이곳에 내려와 있는 것 자체가 부담일지 몰라도 내 알 바 아니니까.”

“진짜 저걸 선배님이라고 두고 있는 제가 불쌍합니다.”

“뭐라고?”

“아 몰라 잠깐 정도는 괜찮잖아. 어차피 그거 아바타이기도 하고. 정 문제가 되면 힘 정도는 빌려줄게.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않는 이상 이곳 레어에서 잠깐 노는 것 정도야 어려울 것도 없어.”

“……알겠습니다.”

그리 말하며 넬타리드가 컴퓨터 앞에 앉았다.

“자. 넬타리드. 이게 마우스라는 거야. 그리고 이게 클릭…….”

“아니. 됐습니다. 그 정도는 다 압니다.”

“그럼 됐어.”

시크하게 물러난 비화가 옆에 놓인 의자에 앉은 뒤 마치 십수 년은 해온 것처럼 발가락으로 컴퓨터의 전원을 올렸다.

“그런데 선배님.”

“왜.”

비화와 달리 올곧은 자세로 컴퓨터를 이리저리 건드리던 넬타리드가 질문을 던졌다.

“에반젤린 양에겐 이야기했습니까?”

“여기 넓잖아. 걔 한창 방송 중이라 지금 상황도 모를걸?”

그리 말한 비화는 하늘거리는 평소의 옷을 내려다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편한 옷이라도 입자. 너도 괜히 그렇게 눈에 띄는 옷 입지 말고 이거나 입어.”

비화가 손가락을 튕기자 날다람쥐 잠옷이 그녀의 손에 쥐어졌다.

“절대…… 싫습니다.”

“그래? 그럼 별수 없지. 그래도 그냥 하면 재미없잖아. 우리 내기라도 하자고. 지는 사람은 한 번씩 시킬 권리를 얻는 거지.”

“그러시죠…….”

넬타리드는 의심 가득한 시선을 보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비화는 생각 이상으로 너무 밝다.

얼마 전에 다리안의 사건이 있었고, 아직 코오나 쪽은 제대로 해결된 것도 없을진대.

“하긴. 그걸 선배님이 신경 쓸 문제는 아니겠지요. 그래서? 뭘 하면 됩니까? 게다가 가상현실도 있는데 굳이 이걸 씁니까?”

“당분간은 가상현실 꼴도 보기 싫어. 게다가 아직 가상현실 이외에 이걸 쓰는 사람은 많으니까. 못해도 몇 달은 더 있어야 할걸?”

비화의 설명에 넬타리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편한 대로 하시죠.”

“시작은 이거다. 점당 명령권 하나. 오케이? 나는 모았다가 한 번에 터뜨릴 거야.”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비화가 꺼내 든 것은 다름 아닌 격투 게임이었다.

“약속했지? 지면 시키는 거 뭐든지 한다고.”

음산한 비화의 웃음에 넬타리드는 자신이 함정에 빠진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 *

에반젤린은 평소처럼 방송을 하고 있었다.

“고생하셨어요. 절제 오빠.”

늘 그렇듯 그림을 그리다가 절제가 연락이 오면 수다를 떨고 같이 게임하는 일상이다.

초단이는 다시 학교로 향했고, 비화는 성역으로 돌아갔으니 놀아줄 사람도 별로 없는 게 현실이었다.

게다가 조만간 티오니스에서는 큰 연회나 축제도 연달아 있을 예정이라 지금 양껏 놀아 두지 않으면 후회하리라.

[방장. 근데 이전에 놀이방 만든다고 하지 않음?]

“아. 놀이방. 그렇죠? 애초에 레어라곤 해도 제가 여기서 매일 틀어박혀 사는 건 아니니까요.”

에반젤린이 생각났다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반바지를 툭툭 털었다.

[치마가 아니라 바지라니! 사도다!!]

“너 밴.”

띠링!!

사수자리 님께서 밴 당하셨습니다.

“아니 이 사람은 진짜 빠지는 곳이 없네…….”

[ㅋㅋㅋ 투탑 회장님들 개드립 보는 게 또 이 방송의 묘미지 ㅋㅋㅋ]

어지간한 친목질은 별개지만 이미 상당수의 시청자들은 사수자리와 사자자리라는 닉네임의 존재들이 일반적인 인간이 아니며 에반젤린과도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지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고정게스트.

그렇기에 에반젤린이 그들을 강제퇴장하는 것도 일상이나 다름없다.

“말 나온 김에 보여줄게요. 실은 우리 매니저님이 꾸미는 걸 도와주셨거든요. 방안에 오락기랑 게임기도 잔뜩 가져다 놨는데. 어디더라…….”

복도로 나오자 사람들의 감탄이 흘러나온다.

관리가 가능한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큰 복도였기 때문이었다.

[방장. 근데 거기 혼자 살다 보면 안 심심함? 엄청 외로워 보일 듯.]

“그래서 내가 여기서 잘 안 있어요. 북적거리고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는 집이 최고지.”

에반젤린이 레어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곤 해도 정을 많이 타는 만큼 고요한 이곳에 홀로 지내는 게 마냥 달갑진 않았다.

“그래도 가끔씩 머리가 아프면 여기 와서 지내요. 조용한 게 장점이거든. 아. 여깄다.”

이윽고 그녀가 공을 들여 만든 놀이방에 도착한 그녀는 제 키보다 두 배는 커 보이는 문고리에 손을 가져다 댔다.

끼이익…….

동시에 내부의 광경이 드러난다.

고생해서 만들었고, 그동안 에반젤린이 기대심을 부추겨 놓았기에 시청자들은 에반젤린이 만든 놀이방이라는 곳을 굉장히 기다렸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눈앞에 보인 것은…….

“꼬…… 꼬끼오오오!!”

날다람쥐 옷을 입은 채 양팔을 펄럭거리며 닭울음 소리를 내고 있는 넬타리드와…….

“사랑의 전사 비화! 여기에 등…….”

시뻘게진 얼굴로 앙증맞은 드레스를 입은 비화가 현란한 포즈를 잡고 있었다.

여신은 여신이라고 휘황찬란한 변신 이펙트가 그녀를 휘감다가 그녀의 눈치를 살피듯 조용히 사라졌다.

“…….”

에반젤린은 공허한 눈으로 둘을 쳐다보았고, 갑작스런 소리에 별 지랄 발광을 떨던 두 신은 동시에 고개를 돌려 에반젤린을 보더니 굳어버렸다.

툭…….

비화의 손에서 어린이용 요술봉이 툭 하고 떨어졌다.

[????]

[여신님?]

[ㅋㅋㅋㅋㅋㅋㅋㅋ비홬ㅋㅋㅋㅋㅋㅋㅋ]

[거기서 뭐해 대쳌ㅋㅋㅋ]

[와 어지럽다.]

[뭐야 대체 왜 저러고 있는…….]

시청자들의 채팅창은 물음표가 미친 듯이 올라오고 고요한 침묵은 더더욱 힘을 발했다.

“……저…… 언니? 대체 뭔…… 아니 언제 온 거야?”

에반젤린은 자신의 레어임에도 둘이 와있다는 사실조차 몰랐기에 더욱 당황한 기색이었다.

“아니 그리고 대체 왜 그러고 계세요?”

에반젤린의 타겟이 넬타리드에게 향하자 그의 얼굴이 흙빛으로 죽어간다.

이윽고 넬타리드는 천천히 팔을 접어서 털썩 주저앉더니 자괴감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내…… 내 신도가…….”

반면 비화는 터질 것처럼 붉어진 얼굴로 주변을 미친 듯이 돌아보다 담요 쪽으로 공간이동을 하더니 그대로 덮어써 버렸다.

혼란한 상황에서 공허한 시선으로 그 몰골을 보던 에반젤린이 중얼거렸다.

“왜? 계속하지?”

조율의 여신과 평온의 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침묵을 지켰다.

[ㅋㅋㅋ 클립 땄다 ㅋㅋㅋㅋ 바로 올리러 감 ㅋㅋㅋ]

[마법 전사 비홬ㅋㅋㅋ]

[앜ㅋㅋㅋㅋ]

가장 신이 난 것은 시청자들이었다.

그리고 한심한 둘의 작태에 에반젤린이 쐐기를 박아넣었다.

“이렇게 된 김에 게스트 두 명 초빙해서 방송하죠…….”

이제는 본능적으로 영상 각을 잡는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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