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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428화 (1,428/1,559)

제 1428화

에반젤린이 한 발 한 발 다가올 때마다 비화와 넬타리드의 표정이 죽어간다.

감정이 풍부한 신이라는 건 이럴 때 참 서글픈 일이다.

비화와 넬타리드는 순간적으로 시선을 교환했다.

여기서 해야 할 일은 도망뿐이다.

기억을 건드리는 짓은 할 수 없었던 만큼 이들은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서로 손을 뻗어 허공을 그어냈다.

자신의 성역으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하지만 에반젤린이 환하게 웃으며 넬타리드의 손목을 잡아버리자 비화는 그 틈을 타 먼저 도망쳐버렸다.

“선배님!!! 도망가는 겁니까?!”

“하나라도 살아야지! 걱정 마! 네 후대는 내가 잘 보살펴줄게!”

지독한 배신에 넬타리드가 치를 떨었다.

이윽고 비화가 사라져버리고 넬타리드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이거 놓으세요.”

최대한 정중하게.

그가 말하지만, 에반젤린은 웃는 얼굴 그대로 한쪽을 가리켰다.

에반젤린이 그동안 손수 하나하나 가져다 놓으며 꾸며놓은 인형 선반이 엉망진창이었다.

“보내줘요? 내가 왜?”

표정은 웃지만 그 안에 서린 감정은 명백한 분노였다.

“냉정해지십시오! 나는 이곳에 오래 있으면 안 되는…….”

“그런 분이 날다람쥐 옷을 입고 팔을 펄럭거리면서 닭 소리를 냈어요?”

넬타리드의 표정이 한없이 어두워진다.

스팡!!!

뒤이어 넬타리드는 자신의 권능까지 발현하며 도망가버렸다.

남은 것은 난장판이 된 놀이방과 에반젤린뿐이었다.

“적어도 치우고 튀어야 할 거 아냐……. 세상에…… 내가 공들여 만든 것도 부서졌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방장ㅋㅋ딥빡 ㅋㅋㅋ]

에반젤린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언제 왔는지는 몰라도 제법 시간이 흘렀으리라. 방송에 집중하느라 둘이 와있는지도 몰랐던 참이다.

“방송 여기까지 할게요.”

결과는 빡종(열받아서 방송종료)이었다.

* * *

비화와 넬타리드의 기행은 이미 클립이 되어 여러 곳으로 팔려나갔다.

“음? 이게 뭔데요?”

동료 작가와 그림을 그리며 방송을 이어나가던 절제는 후원으로 도착한 영상을 보고 잠시 멍한 얼굴을 했다.

인간의 것이라고 보기 힘든 외모를 지닌 두 소년과 소녀가 화면 안에서 정체 모를 기행을 저지르고 있다.

“어…… 비화…… 잖아?”

그는 떨떠름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얘들 여기서 뭐 하는 거래요?”

[모름, 에린이 자기 비밀놀이방 자랑한다고 갔는데 안에서 저러고 있었음 ㅋㅋㅋ 본인도 둘 와있는지 몰랐던 모양인데 ㅋㅋㅋ]

“와…… 근데 정체 모를 기행이긴 한데 이게 참…….”

[잘생기고 예쁘니까 그것도 그림이 되는 매직…….]

[아니 근데 진짜 개귀엽넼ㅋㅋㅋㅋ]

[아이고 여신님…….]

[근데 저 남자는 누구임? 비화 남자친구임?]

“어허. 큰일 날 소리.”

소년의 정체가 무엇이건 괜한 소리였다.

절제는 쓴웃음을 지으며 영상을 종료했다.

그리고는 스마트폰을 들었다.

“님들 미안한데 나 전화 한 통화만 하고 올게.”

그리고는 익숙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어. 나야 너 이거 괜찮은 거 맞아? 벌써 클립 돌아다니는데.”

-어…… 아마 괜찮지 않을까요?

“진짜로?”

절제의 질문에 통화 상대는 잠시 침묵하다 단호하게 답했다.

-화나잖아요. 내가 얼마나 열심히 꾸며놨는데. 그걸 다 박살을 내놨으니…… 게다가 제가 보이고 싶지 않았던 수집품도 다 꺼내놔서…….

“그래도 비화가 달가워하진 않을 거 같은데…….”

-알겠어요. 지워달라고 요청할게요.

“그래. 착하다.”

-애 취급하지 말아요…….

“그래 미안하다.”

보아하니 에반젤린이 열심히 꾸며놓은 것까지 들쑤셔놔서 화가 난 건 알겠지만 마냥 좋은 일은 아니었다.

에반젤린과의 연락을 끊은 그는 만족스러운 듯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는 다시 방송 룸으로 들어간 뒤 말했다.

“자자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에린이 방송에서 나왔던 사고 아마 곧 지워질 거 같으니 여기저기 퍼 나르진 마요.”

[응 싫어 퍼 나를 거야 ㅋㅋㅋ]

[저렇게 귀엽고 웃긴 걸 그냥 잊으라고? 절대 못 해준다ㅋㅋㅋ]

“여러분.”

담담하게 말한 절제가 조용히 딜을 제시한다.

“대신 내가 여러분 취향에 맞는 그림 10장 그려준다.”

[콜]

[음…… 절제쉑 저러는 거 보면 확실히 방송사고긴 했지.]

[근데 방장은 별로 신경도 안 쓰고 오히려 영상각 뽑으려고 했잖아. 절제가 왈가왈부할만한 일인가?]

[눈치 챙겨~ 좀 전에 에린이랑 통화한 삘이잖어~]

[그럼 인정~]

평소에 또X이 같은 놈들이라도 이럴 땐 착한 인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시청자들은 참 어딜 내놔도 부끄럽다만, 상식은 있어서 다행이네.”

[뭐래~]

시청자들이 보이지 않게 에반젤린과 연이 있는 다른 스트리머인 시우 또한 절제와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됐겠지.”

별일 없겠거니 했던 그였지만 비화에게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을 한 명을 예상하지 못했다.

* * *

“신께 아뢰옵건대, 부디 가엾은 어린양들에게 은총을 주시옵고, 제게는 조금만 더 주시옵고…….”

넬타리드 교단의 성녀이자 데이비의 제자인 아가사는 늘 그렇듯 자신의 신을 향한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그녀가 있는 곳은 넬타리드 교단의 가장 성스러운 장소 중 하나이며, 넬타리드 신의 사도인 케인과 프레이아 님이 머무르는 장소이기도 했다.

익숙하게 기도를 마치자 충만한 신성력이 그녀의 몸 안에 남는 느낌이 들었다.

말없이 기도를 끝내고 일어선 그녀는 천천히 한쪽 눈만 실눈으로 뜨고 주변을 휙휙 둘러보았다.

아무리 성녀라고 해도 그녀는 아직 어린 소녀였다.

제 나잇대의 소년 소녀들은 신나게 뛰어다니며 놀러 다닐 시기임에도 그녀는 이곳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는 것이었다.

사실 마음에 들진 않았다. 막무가내식 헌신은 신이 바라는 게 아님을 스승인 데이비에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적당히 눈치를 살핀 뒤 몸을 낮추고는 조심스레 이동한 그녀는 성복의 안쪽에 숨겨놓은 스마트폰을 슬쩍 꺼냈다.

웃긴 영상과 동물들의 엉뚱한 영상을 보는 것. 최근 그녀가 얻은 소소한 취미였다.

그 외에도 어린 소녀답게 활기찬 마법소녀물 같은 만화를 시청하길 좋아하는 귀염성 있는 소녀였다.

“흐헤…… 흐헤헤…….”

사실 마음 같아선 고양이 한 마리라도 키워보고 싶은 그녀였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 32종 중 하나가 바로 고양이였으니 말이다.

“성녀.”

그때 그녀의 시선을 확 잡아끄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흐아악!!”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아버린 아가사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곳에는 뒷짐을 진 채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이 보였다.

“아…… 프레이아 님.”

“뭘 보고 있나요?”

“그…… 그게…….”

“걱정 마세요. 아가사가 타박하려는 게 아니에요.”

게다가 아가사를 너무 쥐잡듯이 잡는다며 데이비에게 한소리를 들은 만큼 발키리아 종족인 프레이아도 크게 아가사를 억압하지 않았다.

실제로 숨이 막히는 일과의 상당량을 쳐내버린 후 그녀가 넬타리드의 신성력을 더욱 잘 받아들이게 된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기도는 극한의 상황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곤 하지만 넬타리드의 뜻을 발키리아 종족이 쉽게 유추할 순 없었다.

“그나저나 귀여운 고양이로군요.”

아가사가 손에 쥔 스마트폰 안에선 고양이 두 마리가 서로를 노려보더니 신명 나게 앞발을 휘두르며 싸우는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요망한 동물. 고양이는 조금만 덜 귀여웠어도 멸종했을 거라는 몇몇 이들의 말은 깊이 공감하지요.”

“프레이아 님도 고양이를 좋아하시나요?”

“그럼요. 실은 제가 가끔씩 하인스로 가는 이유도 거기 있는 요망한 엔젤캣을 보기 위함이니까요.”

장난스레 웃어주는 그 모습에 아가사도 배시시 웃었다.

그때 영상이 끝나고 추천 영상이 나열된다.

웃는 얼굴로 설렁설렁 넘기는 그녀의 손짓은 익숙해 보였다.

“한데, 아가사. 좋아하는 동물 중에 순위가 가장 낮은 건 무엇인가요?”

“낮은 순위요? 으음…… 글쎄요. 솔직히 볼 기회가 잘 없어서…… 날다람쥐가 가장 낮은 순위에요.”

“날다람쥐라…… 생각보다 귀여운데 말이죠.”

“헤헤. 어차피 의미 없는 순위이니까요. 잘 보기도 힘들고.”

알고리즘의 매직은 언제봐도 신기하다. 마침 날다람쥐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영상에 날다람쥐 관련 영상들이 몇 개 올라왔다.

“혹시…… 이 스마트폰…… 제 목소리를 듣고 있는 건 아니겠죠?”

“그러진 않을 거예요. 그래도 신기하긴 하네요. 단순 우연일 텐데.”

“그렇겠죠?”

프레이아의 말에 익숙하게 스크롤을 내리던 찰나였다.

문득 아가사에게 익숙한 이의 얼굴이 보인다.

“어? 비화 언니?”

놀란 그녀가 영상을 멈추자 프레이아도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비화 여신님이요?”

“그…….”

섬네일부터가 파멸적인 영상이었다. 누가 퍼다 나른 건지 짧은 쇼츠 영상으로 나오고 있었다.

침을 꼴깍 삼키며 천천히 영상을 켠 그녀는 곧 에반젤린이 이야기를 하며 걸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카메라가 허공에 뜬 것처럼 그녀의 뒤를 따라 이동하고 이내 어딘가에서 멈춰섰다.

“여기가 바로 내 비밀 놀이바…….”

덜컹!!

[꼬…… 꼬끼오오!!]

날다람쥐 의상을 입은 한 소년이 닭 울음소리를 흉내 내고 있다.

본인은 원치 않았다는 듯 팔을 펄럭거리며 닭 흉내를 내는 신님과…….

[사랑의 전사 비화 등……!]

아가사와 프레이아는 한참이고 아무 말도 못 한 채 멍하니 그 꼴을 지켜보았다.

“프레이아 님…….”

“네.”

“저…… 마법 소녀랑 날다람쥐가 싫어질 거 같아요…….”

훌쩍거리며 흐느끼는 아가사를 프레이아는 조용히 다독여줄 뿐이었다.

지독한 신성모독임을 알면서도, 그녀는 아가사의 심리가 너무 절절하게 이해되었다.

지독한 신성모독에 프레이아는 정신이 아찔해지는 기분이었다.

“오…… 신이시여…….”

보아하니 그녀가 모시는 넬타리드 님과 비화 여신 사이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간 듯 보인다.

에반젤린에게 들키자마자 대뜸 도망가버리는 비화와 그런 그녀를 향해 배신자라며 소리치는 자신의 신님을 보며 그녀는 어찌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때였다.

“프레이아! 이 영상 좀!”

그때 뒷북을 치듯 케인이 날아와 그녀에게 영상을 들이민다.

하지만 곧 아가사와 프레이아가 절망하고 있는 것을 보며 눈치챈 듯 탄식을 흘렸다.

“이미…… 보았군…….”

우울한 기색을 내비치며 주저앉아버린 한 사도와 성녀의 곁에 또 한 명의 사도가 우울한 얼굴로 주저앉아버렸다.

“아아…… 신이시여. 저희는 이 비참한 진실을 어찌 받아들여야 하나이까…….”

그렇게 셋은 교단의 대주교가 와서 기겁하기 전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 * *

“으아아아아아악!!!”

신이라곤 해도 넬타리드는 아직 어렸다.

기본적인 생각이 아득히 초월의 위치에 있다고 해도 익숙하지 않은 것에는 상당히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넬타리드는 순간적으로 발작하듯 몸을 비틀었다.

“후우…… 진정해 멍청아. 뭐 하는 거야.”

“이게 다 선배님 때문입니다!”

“조용히 해라, 쪽팔리니까…….”

비화도 상태가 좋진 않았다.

수만 명 앞에서 마법 전사니 사랑의 전사니 외치며 애들이 가지고 놀 법한 요술봉이나 휘둘렀으니 부끄러움이 배가 되는 느낌이었다.

“그러게 네가 먼저 해야 했어. 괜히 서로 같이 하자고 했다가…….”

“그렇게 되면 저만 걸렸겠지요. 애초에, 왜 하필 거기서 했던 겁니까.”

“몰루~”

“빌어먹을!”

비화의 깐죽거림에 넬타리드의 얼굴이 격노로 가득 찼다.

“지금 그 망할 영상 때문에 아가사가…… 제 성녀가 날다람쥐와 닭이 싫어진다고 했습니다. 지금 지구의 신으로서 당장 뒈져버리고 싶을 정도로 쪽팔린단 말입니다!”

현재 지구의 최고신으로서의 위엄이 개 박살이 났다.

물론 그가 넬타리드 신이라는 사실을 아는 건 극소수지만 그 극소수에게만 알려진 사항으로도 그의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

“아. 실은 말이야. 에반젤린의 동료 스트리머 둘 있지? 절제랑 시우 아저씨.”

“하…… 예.”

“에반젤린 방송에서 딴 클립이 돌아다니자마자 유출 안 되게 막아줬다더라.”

그 말에 넬타리드와 비화가 눈빛을 마주한다.

그리고 동시에 말했다.

“이거, 은총이 필요하겠지?”

“그렇군요. 우리 성녀의 말마따나 따끈따끈한 신품 은총이 필요하겠네요.”

다른 이들 모두 신경도 안 쓸 때 가장 먼저 신들의 안위를 챙겨준 고마운 두 사람에게 두 명의 신이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어떤 거로 내줄까?”

“글쎄요. 기왕이면 가능한 선에서 뭐든 하나 정도는 주고 싶긴 한데…….”

“각성자의 힘 같은 게 의미가 있을까요?”

“글쎄. 두 사람 전부 이런저런 일에 엮이긴 했어도 각성자가 되고 싶진 않을걸? 방송도 소박하니 즐기는 거 같고.”

고민하던 비화가 손가락을 튕겼다.

“좋은 생각이 나셨습니까?”

“이럴 게 아니라 그냥 소원하나 들어준다고 할까?”

“그랬다가 감당하지 못할 걸 부탁하면요?”

“평온의 신님은 쫄려?”

“당장 합시다.”

넬타리드는 저도 모르게 사고뭉치인 비화에게 물들고 있었다.

차악!! 어디선가 회초리를 바닥에 내리치는듯한 소리가 들린 착각이 일었지만 둘 다 신경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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