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29화
에반젤린의 동료 스트리머이자 친구나 다름없는 시우와 절제 박승현은 사실 서로 그리 잘 아는 사이는 아니었다.
한 명은 유명한 프로게이머였고, 한 명은 골수부터 방송인이었으니까.
그나마 시우가 프로게이머를 은퇴한 뒤 방송인으로서 유유자적하게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둘의 인연이 짙어진 셈이었다.
게다가 둘 다 생각보다 코드가 잘 맞았던 것도 친해지는 데에 크게 한몫했다.
덕분에 형, 동생 하며 호칭만 형, 동생일 뿐 실질적으로 사석에서는 말을 놓는 정도에 이르렀다.
“형, 오늘 방송물 제대로 올랐더라?”
“웃기고 있네. 넌 임마. 실질적으로 버는 돈은 지가 더 많으면서.”
“그거야 수상할 정도로 돈이 많은 이상 취향들이 문제인 거고.”
“됐고, 조만간 한턱 쏴라. 에린이랑 너랑 나랑 셋이서 뱃속에 기름칠 좀 하자.”
“아…… 에린이 끼면 지갑 거덜 나는 거 한순간인데…….”
“부족하면 내가 보태줄게, 일단 오늘은 위장에 알코올 좀 쏟아 넣자.”
절제 박승현은 그림 스트리머였고 시우는 종합게임 스트리머였기에 둘 다 함께 방송하는 일은 잘 없는 편이었다.
하지만 서로 사이에 상당히 친하다는 이야기 덕분인지 여러 소식들을 물어다 나르는 참새들이 많았다.
방송이 끝나면 절제 박승현과 시우는 간간이 이렇게 모여 술을 마시는 편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편의점 앞에 앉아서 노가리까며 마시는 것만큼의 풍취는 없지만, 박승현이 머무르고 있는 집의 옥상에서 별을 보며 마시는 것도 느낌은 좋았다.
“안주도 적당하고, 자 받아라.”
“아이고 고맙습니데이. 행님.”
“x랄도 병이다 크크큭.”
낄낄거리며 소주잔을 가볍게 부딪친 박승현이 크으! 소리를 냈다.
“방송하면서 힘든 일은 없어? 솔직히 나도 이 바닥 오래 굴러먹었지만, 진짜 별별 일이 다 터져서 말이야. 얼마 전엔 특정 단체가 신고해서 어휴…….”
“글쎄다. 종겜 스트리머가 뭐 그런 게 있겠냐. 잘나간다고 물어 뜯는 건 프로게이머 시설이 더했지.”
“하기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어묵 국물을 후루룩 마시던 시우가 복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슬슬 결혼도 해야 하는데.”
“벌써? 너무 이르지 않나?”
“사실 은퇴한 이유가 이런저런 몸의 이유도 있다만, 슬슬 정착하고 싶어서. 알다시피 내가 일에 관련돼서 미친놈처럼 살아왔잖아.”
“인생의 무덤이라더니.”
“야야, 이번에 내가 있던 구단에서 2군에 있던 여자애 하나가 은퇴했거든.”
“음?”
“이유가 속도위반으로 사고 쳤다더라. 처음에 감독님이 노발대발하긴 했다는데. 막상 애들 태어나고 간간이 인사하러 오는 거 보더니 헛웃음을 흘리면서 사탕 하나 쥐여줬다고 그러더라. 뭐, 그 애가 기본적으로 성격이 워낙에 싹싹했던 것도 있지만.”
어차피 은퇴한 사람에게 더 화를 내기도 뭣하고, 행복해 보이는 부모자식을 보니 화낼 마음도 사라져버렸다는 것이었다.
“뭐, 프로의식이 부족하니 뭐니 하는 말도 있긴 했는데. 내가 보기엔 아들을 그렇게 안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정말로 예뻐 보이더라.”
“형. 내가 궁금한 건데.”
절제 박승현이 소주잔을 비우며 은근한 눈치를 보낸다.
“솔직히 말해봐. 형, 유부녀 취향이야?”
“뭐…… 뭐 이 미친놈아?!”
놀란 시우가 허둥거린다.
“솔직히 형 그 일리나 씨하고도 친했잖아. 뭐 게임 같이하는 사이긴 해도 형이 유별나게 친근하게 군것도 있지 않나? 내가 에린이 아빠였으면 별로 좋게는 못 봤을걸?”
“야. 말이라도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예쁘고 참한 건 사실이지만 난 일리나 씨에게 이렇다 할 감정 같은 게 있는 건 아니야.”
시우가 피식 웃는다.
“진짜로?”
“아니라니까.”
“그럼 유부녀 취향인 건…….”
“누가 들을까 겁난다. 난 애초에 연상이 취향이야. 날 보듬어줄 수 있는.”
“위험한 새끼네 이거…….”
“위험하긴 뭘 위험해 임마! 내가 뭐 엄한데 손을 뻗기라도 했어 뭘 했어.”
박승현이 혀를 내둘렀다.
“그래 뭐. 개개인 취향은 차이가 있지. 난 연하 취향이지만, 형은 연상 취향일 수 있고.”
“선 넘는 짓은 안 해 임마 나도, 그리고 이상형이니 취향이니 하는 건 개인의 자유 아니야?”
“그렇긴 한데.”
“그런데 연하는 풋풋하잖아. 그것도 좋지 않아?”
“네가 아직 어려서 모르는 모양인데. 완숙한 여성의 우아함은 실로 하늘의 은혜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말에 승현이 낄낄거리며 바닥을 굴렀다.
“아하하하학! 미친 새끼, 진짜. 크크큭.”
“그 외에 취향은 없어요?”
“음…… 글쎄? 가능하면 주말에 조용한 거실에서 와이프에게 다리 베개를 해주면서 같이 영화나 볼 수 있는 사이? 아, 그리고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네.”
말을 하던 시우는 문득 방금 전 질문을 던진 이가 다른 이라는 것을 깨닫고 흠칫 놀랐다.
친한 박승현이야 이런 이야기를 하지 다른 이들에겐 남사스러워서라도 하지 못할 이야기였다.
“이야기 잘 들었어요. 저도 한 잔 주세요.”
이윽고 굳어버린 시우와 절제의 곁으로 한 소녀가 다가온다.
비화.
데이비의 장녀이자 사람들이 단순히 착각이니 컨셉이니 하지만 진짜 여신이다.
“비…… 비화야?”
완전히 굳어버린 표정이다. 어색하게 웃으며 시우가 비화에게 말하자 비화는 그들이 앉은 평상 위에 걸터앉은 뒤 절제가 들고 있던 소주병을 집으려 들었다.
“어허. 어디, 술을 마셔. 성인 되고 마셔 임마.”
절제가 순식간에 술병을 빼앗자 그녀는 입을 댓발 내밀더니 허공을 두드려 그 안에서 음료수 하나를 꺼냈다.
탁! 치이익!!
탄산 소리와 함께 그것을 벌컥벌컥 들이킨 비화가 두 사람을 바라본다.
마치 그녀의 감정을 대변하듯 그녀의 날개옷 위쪽의 하늘거리는 천이 더욱 유려하게 움직인다.
“그…… 그런데 비화야? 여긴 어쩐 일로…….”
“에린이 방송에서 유출된 그 영상.”
두 사람이 흠칫 놀란다.
“보답하려고요. 나는 상관없는데. 그놈은 아마 충격이 클 거에요. 이쪽이든 저쪽이든.”
비화가 한숨을 내쉬었다.
“두 사람 덕분에 크게 퍼지기 전에 막았어요. 그래서 뭐라도 해줄까 해요. 이런 기회 잘 없어요.”
비화의 말에 시우가 소주잔을 비우며 손사래를 쳤다.
“됐어. 됐어. 뭐 그런 거로. 다 돕고 사는 거지.”
“안 돼요.”
비화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보답은 반드시 해야 해요…….”
“아니 이런 막무가내가 어딨어.”
“부자가 되게 해달라는 소원도 들어줄 수 있는데.”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그런 게 쉽게 불가능한 건 딱 봐도 알겠구만.”
“신의 기적을 너무 우습게 보시네. 조건만 갖춰지면 얼마든지 가능한데.”
실은 여기서 물러나 버리면 넬타리드가 어떤 비웃음을 던질지 모른다는 이유였지만 말이다.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난 비화가 손가락을 튕긴다.
그러자 주변 공간이 변하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아니, 착각이 아니었다. 시우와 박승현은 평상에 앉은 채로 주변이 변하는 것을 멍하니 지켜보았고 이내 자신들이 어느 공간으로 이동되었음을 깨달았다.
“비…… 비화야? 여긴 어디…….”
“환영해요. 넬타리드 교단 본산의 성역에 온 것을.”
비화의 말과 함께 하늘에서 빛으로 이루어진 고양이들이 사뿐사뿐 내려서더니 빛으로 된 천사의 형상을 띠었다.
* * *
얼떨결에 건물 옥상에서 넬타리드 교단 본산의 가장 신성한 영역까지 초대되어버린 두 사람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비화를 바라보았다.
“저기…… 비화야? 우리 그런 거 필요 없으니까 슬슬 돌려보내 주지 않을래?”
“그러게…… 엄청 부담되거든.”
“안됩니다.”
대답을 한 것은 다른 이였다.
새하얀 휘광과 함께 한 소년이 모습을 드러낸다.
절제와 시우도 본적이 있는 소년이었다.
“아…….”
소년의 몸에서 풍기는 막대한 영향력에 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리려던 그들이 멈칫한다.
“그러지 마세요. 당신들은 제 손님으로 온 것입니다.”
넬타리드가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손짓을 하자 허공에 테이블과 의자가 나타났다.
“앉으시겠습니까?”
“어…… 음…… 네.”
떨떠름하게 자리에 앉은 시우와 승현이 빠르게 눈치를 교환했다.
실존하는 신.
지구의 신이라 불리는 넬타리드.
그 존재를 눈앞에 담았다.
솔직히 영상에서 본 소년의 모습은 저게 신이 맞는지 의심스러웠지만, 지금의 그를 보면 영상 따위는 역시 믿을게 못 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 정도로 성스러웠다.
“박시우 씨, 박승현 씨.”
“마…… 말 편하게 하세요.”
“아뇨. 저는 아직 어린 신입니다. 선대와 다르게 아직 배워야 할 게 많지요.”
“그렇다고 해도…….”
“적어도 데이비 올 라운, 그의 지인인 당신들에게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네요. 무엇보다 비화 선배님께 평대하시는데 제게 존대하시면 제가 곤란합니다.”
담담하게 말한다.
신과의 대화라는 게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인지 뼈저리게 실감하는 두 사람이었다.
그는 정중하게 대해주지만, 숨이 턱턱 막혔으니까.
“자자 두 사람 좀 편하게 대해요. 야, 너도 당장 기운 거둬.”
“알겠습니다.”
넬타리드가 기류를 거둬들이기가 무섭게 시우와 승현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흐읍…….”
“실례를 끼쳤군요.”
“저…… 그런데 여긴 무슨 일로…….”
“선배님께서 이미 전달하신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신으로서 하계 생명체에게 도움을 받은 시점에서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론 보답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저…… 그건 편애가 아닐까요?”
시우가 한 손을 들고 조심스레 말하자 그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당신 덕분에 큰 도움을 받은 것도 사실이니까요. 원하시면 성흔이라도 찍어드릴까요?”
애초에 성흔도 편애의 상징이 아니던가.
넬타리드의 제안에 시우는 몸을 부르르 떨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괜찮습니다!”
“그래요. 그나저나 선배님.”
“시우 오빠는 결혼하고 싶다고 하네.”
“결혼이라…… 태초의 여신께서 허락하신 가장 신성하며 축복받은 것이지요. 종족을 불문하고 결혼이란 그런 것이니.”
넬타리드가 물었다.
“그럼 결혼하고 싶은 이를 만나고 싶으십니까?”
“저…… 이렇게까지 안 해주셔도…….”
“소원을 들어드리는 겁니다. 그게 싫으시면 다른 거로.”
“저…… 죄송한데 질문 하나 드려도 될까요?”
그때 절제가 조심스레 물었다.
“제가 미천하여 신께서 생각하시는 바를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리석은 인간이 과한 소원을 요구하면 어찌하시려고…….”
그 말에 넬타리드가 짧게 움찔했고 비화는 시선을 돌렸다.
동시에 눈치 빠른 절제는 상황을 파악했다.
이것들 뒷일은 생각 안 하고 저질렀구나 하는 생각을 말이다.
얘들 정말로 세계를 유지하는 신이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조금 전의 위압처럼 지금의 모습과 신으로서의 모습은 다르다는 것을 인지한 후였다.
“당신의 혼은 맑고 투명합니다. 조금……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음란한 구석이 보이긴 하지만 저는 당신들을 믿겠습니다.”
넬타리드의 말에 절제 박승현은 자신의 속내가 까발려졌다는 느낌이 들어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팍 숙였다.
“신의 약속은 지엄합니다. 소원을 들어주고자 한 이상 무엇이든 들어줄 것입니다만…… 한가지 반드시 인지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무엇을 고르건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지는 것. 그것은 절대 불변의 법칙입니다. 제가 감당해준다 할지라도요.”
무엇이든 이룰 수 있으나 감당 못 할 소원을 빌지는 말라는 소리였다.
넬타리드는 스스로 생각해도 굉장한 제어책이었다며 속으로 자축했다.
비화가 뭐 이딴 비열한 놈이 다 있냐는 시선을 보내왔지만, 넬타리드로썬 필사적이었다.
비화의 도발에 넘어가긴 했어도 그는 중립을 지켜야 하는 평온의 신. 조금의 편애는 가능해도 정도를 넘어서면 곤란했다.
“그런데 조금 신기하긴 하네요. 보트 이런 건 신의 사도나 천사들이 나와서 대리로 할 줄 알았는데.”
그 말에 비화와 넬타리드의 표정이 굳었다.
무언가 사정이 있어 보인다.
“그…… 그게 제 사도들이…… 크흠.”
“사도나 성녀가 마음의 상처가 큰가 봐요. 그리고 이건 비공식적인 대면이에요. 직접 마주하는 거죠.”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는지만 알겠다는 듯 박승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는 나중에. 우선은 시우형부터 해줄 수 있을까?”
박승현의 말에 시우는 잠시 고민하듯 입을 다물었다.
“생각하기 어렵다면 잠깐 이곳 교단에서 머무르시는…….”
“아뇨. 이 기회 놓치기 싫네요.”
시우가 고개를 들었다.
“말씀하세요. 신에게 은혜를 입힌 자여.”
“결혼하고 싶습니다.”
“그렇군요. 하지만 남의 마음을 마음대로 바꾸는 건 가능할지라도 반드시 업이 뒤따르게 됩니다. 가능은 하겠지만 한 가정이 박살 날 수도 있는…….”
“아니 그러니까 임자 있는 유부녀는 안 건드린다니까요?!”
시우가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그렇군요. 제 눈에 비친 당신의 혼의 이상형은…… 명백히 임자가 있는 여인…….”
“아니 그러니까!”
씩씩거리며 그가 말했다.
“좋아요. 소원이랬죠? 그럼 제가 어디 이상형을 늘어놓을 테니 그대로 이뤄주세요.”
시우의 분노에 불을 지펴버린 셈이지만 넬타리드나 비화나 당황한 표정은 짓지 않았다.
“이제야 진실이 나오네.”
오히려 미소지을 뿐이었다.
“이미 다 아시니 사실대로 말하겠습니다. 저는 완숙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풋풋한 것과 다르게 우아하고 저를 보듬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을요. 말하기 애매하긴 하지만, 아무튼 그래요. 연상도 좋고 연하도 좋습니다.”
“흐음…… 세상을 넓고 그저 끈을 이어주는 것이라면 어려울 게 없지요. 그 외에는 없습니까?”
“예쁘면 좋겠네요. 기왕 욕심부리는 거 몸매가 좋아도 더 좋겠습니다. 돈은 제가 많습니다. 제가 먹여 살리면 돼요. 절대 한눈팔지 않고 저만 바라봐주고, 저와 잘 맞으면 좋겠습니다. 그 사람의 인지를 바꿔 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 사람에게 정당하게 마음을 살 겁니다. 제가 바라는 건 그 기회와 확정할 수 있는 서포트입니다.”
“흐음?”
“제 소원은 결혼이었죠? 그러니 그 사람과 이어질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와주십시오. 제가 영 숙맥이라서요.”
뻔뻔할 정도로 당당하지만 그렇기에 마음에 든다.
시우의 조건에 비화와 넬타리드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쩔 겁니까?
-인지 변화면 문제가 많겠지만 저런 조건이면 사실 엄청 쉬운 거지. 티오니스 쪽도 알아봐야 하니 내가 이래저래 알아볼게. 넌 절제 오빠 소원을 들어줘.
그 말에 넬타리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우의 소원을 듣고 나니 인간에 대한 믿음이 굳건해지는 느낌이었다.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될 수 있는 소원권이다. 당장 그가 삼천 명을 첩실로 들이고 싶다 해도 어떻게든 들어줘야 하는 게 이들의 입장.
물론 정말로 그런 소원을 요구한다면 머리가 아프겠지만 넬타리드가 보기에 시우는 그런 소원을 빌 인간상이 아니었다.
“자 그럼 박승현 씨. 당신의 소원을…….”
“안드로이드요.”
“……네?”
넬타리드가 잠시 멍한 얼굴을 했다.
“1:1 등신대 사이즈면 좋겠습니다. 저랑 말도 할 수 있고, 스스로 생각하고 감정이 있으며 외관도 정말 사람 같으며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는 외모면 좋겠습니다. 딱딱하지 않고 부드러우면 좋겠네요…… 기왕이면 저처럼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이면 좋겠네요. 오타쿠 중엔 이런걸 바라는 사람도 있거든요. 제가 집안 가사가 좀 파멸적이라 그걸 도와줄 수 있는 안드로이드면 더 좋겠네요.”
“그건 그냥 전속 메이드…….”
“아뇨 안드로이드요. 왜냐하면, 제가 사람하고 직접 대면하는 게 좀 서툽니다. 안드로이드는 다르잖아요.”
단호하다.
“아예 그냥 당신을 평생 모시는 사람을 만들어달라고 하시지요? 그리고 외관을 바꾸는 건 뭡니까.”
“에이 그거랑 다르죠. 그리고 외관은 뭐라고 해야 하지…… 다시 얻기 힘들 안드로이드인데 항상 같은 모습은 너무 아쉽잖아요. 안드로이드의 취향이건 제 취향이건 여러 모습을 기록으로 남겨 두고 싶기도 하고. 아. 기왕이면 제게 호의적이면 좋겠습니다. 그…… 에린이 집에 있는 그 형태를 자유자재로 바꾸는 생체 골렘? 그런 느낌이요.”
메라몽은 형태가 굉장히 자유롭게 바뀌긴 했다. 하지만 그런 메라몽이 인간처럼 감정이 있거나 말을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근본적으로 불가했으니까.
그야말로 욕심의 끝판왕. 조금 전 시우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어디 한번 해볼 수 있으면 해봐라 라는 듯 말하는 모습을 보니 얄미워 죽을 지경이다.
비화는 이미 눈치를 챘는지 넬타리드를 향해 귀엽게 혀를 쏙 내밀며 놀리고 있었다.
넬타리드는 인간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