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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431화 (1,431/1,559)

제 1431화

감정을 지닌 신과 그렇지 못한 신의 가장 큰 차이점이 무엇일까.

여러 요소가 존재하겠지만 그중 하나는 실수의 존재 여부일 것이다.

“괜히 골랐나…….”

비화는 진지하게 그렇게 생각했다.

솔직히 시우나 절제, 박승현의 소원은 신에게 비는 소원치고 너무 소박한 점이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럴 거라 예상했기에 넬타리드나 비화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넬타리드에게 어려운 걸 떠넘기고 자기는 쉬운 일을 하려고 했다.

시우의 요청은 사실 굉장히 많이 요구하는 것 같지만 반대로 시우 또한 잘생기고 매너 좋으며 돈도 많고 명예도 제법이다.

한쪽이 잘났으니 다른 한쪽도 잘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했던가. 그의 개인적인 취향을 생각해서 비화는 제법 꼼꼼하게 시우와 붉은 실이 이어질 수 있는 존재들을 찾았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운명의 상대를 점지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금방 깨달은 탓이었다.

비화는 조율의 여신이지 사랑의 여신 같은 게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녀가 아무리 많은 것을 본다 해도 남녀 간에 사랑이 맺어질지. 맺어진다 하여 행복해질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그녀는 조금 꼼수를 부렸다.

데이비와 페르세르크 사이에 이어진 굵은 붉은 실을 기준으로 잡아 그 힘을 스리슬쩍 해서 시우에게 적용시킨 것이었다.

시우와 천생연분이며 데이비와 페르세르크처럼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존재.

운명이 점친 천생연분.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놀라운 결과가 일어났다.

지구에는 시우와 붉은 실이 굵게 이어지는 존재가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이었다.

처음엔 그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 이를 찾았다.

하지만 단 한 명도 나오지 않게 되자 그녀는 오기가 생겨서 나이 폭을 극단적으로 넓혔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애초에 데이비와 페르세르크 같은 천생연분은 극히 보기 힘든 조건의 궁합이라는 것을 비화는 아직 몰랐다.

실수가 분명하다.

대상이 없으면 소원을 들어주지 못하는데.

이렇게 된 이상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사도를 창조하여 그에게 맞춰야 할까.

스스로 생각하고도 어이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일단은 보류해둘 계획이었다.

결국, 그녀는 처음 말했던 대로 티오니스나 다른 차원까지 발품을 팔아가며 찾아다녔다.

그리고.

기적처럼 단 한 명을 찾아냈다.

나이는 인간에 비해 훨씬 많다.

그럴 수밖에. 그녀의 정체는 서큐버스, 즉 몽마였으니까.

물론 그 몽마가 하필 혼인을 하지 않는 수도원의 사제라는 게 문제였다.

프리아 여신의 교단 내엔 여러 분파가 존재하는데 간혹 이렇게 혼인을 하지 않는 사제들이 있는 분파도 존재했다.

몽마 서큐버스에겐 참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시우와 이어진 붉은 실은 두 사람이 맺어지기만 하면 충분히 행복한 천생연분이 될 수 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여신님 탐지기 성능은 확실한데…….”

다만 일반적으론 절대 만날 수 없는 사이라는 게 문제였다.

애초에 붉은 실이 이어진다고 무조건 만나는 것은 아니었다.

붉은 실이 이어지지 않아도 결혼하는 이는 많다.

두꺼운 붉은 실은 만났다고 했을 때 최대의 천생연분을 말하는 것일 뿐 그것이 확정이라는 뜻은 아니었으니까.

“고민이네. 이걸 어쩐다…….”

그래도 여신이 들어주는 소원인데. 약속인데 물러날 수도 없는 판국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했을까.

비화는 일단 그녀를 지켜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가 흐르고.

비화는 현 상황에 절망했다.

혼인을 하지 않는 독신 사제인 것도 장애물인데 문제는 엘리시아라는 이름의 이 몽마는 극도로 남성에 대한 면역이 없었다.

그게 얼마나 심하냐면 본능적으로 남성이 다가오는걸 꺼려하기 때문에 그들을 밀어내는 페로몬을 뿌린다는 사실이었다.

때문에 그녀에게 이성의 마음을 품고 접근하는 남성들은 그녀에게 얼마 접근도 못 하고 물러나곤 했다.

비화의 힘이라면 그걸 억제해줄 수 있지만 그렇게 해선 곤란했다.

지금 이건 두 사람을 이어주는 거지 사람을 물건마냥 집어서 시우에게 선물하는 게 아니었으니까.

시우의 의견도 중요하지만, 당연히 엘리시아라는 저 여성의 의사 또한 중요했다.

“아니, 내가 이런 걸 해봤어야 알지…….”

복잡하게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였다.

“고민이 있으신가요. 자매님?”

예쁘고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말을 거는 여성으로 인해 비화가 상념에서 빠져나온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나마 한둘 정도 있던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후였다.

너무 심하게 고민한 것일까. 일단 한발 물러나 지켜보려던 그녀는 낭패를 본 기색이었다.

“네?”

“후후. 고민이 많아 보이시네요. 외부에서 오셨나요?”

“아아. 여행객이랍니다.”

작은 마을이니 마을 인원들을 아는 이에게는 최고의 변명이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그 고민을 제가 들어드릴 수 있을까요?”

쉽게 말해서 고민 상담을 해주겠다는 뜻이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요.”

굳이 여신이라는 사실을 밝힐 필요는 없었다.

상대가 몽마라곤 해도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하급 몽마일 뿐이고. 그마저도 자신의 힘 대부분을 억누르고 있는 터라 비화를 알아보진 못했다.

“그런가요? 사실 제가 심심했던 참이거든요.”

단아하게 웃으며 그녀는 비화가 앉은 기다란 목제 의자의 옆에 걸터앉았다.

“이 교회엔 다른 사제분들이 거의 오지 않으세요. 유일하게 형제분이 한 분 계시지만 몸이 안 좋으시답니다.”

“어디 아픈가요?”

“이제 여신의 품으로 돌아갈 때가 다가오신 거죠.”

여사제 엘리시아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제 머리카락 끝을 씁쓸하게 손가락 끝으로 비볐다.

비화는 사제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대강 짐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기도실의 안쪽에서 아주 옅은 생명력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녀라면 조금 더 삶을 연명시켜줄 순 있겠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그건 그에 대한 모독이며 비화가 해선 안 될 일이었으니 말이다.

“많이 좋아했던 사람인가 보네요.”

비화는 원래 계획과는 다르게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좋아했다라…… 비록 피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제 아버지와 같은 분이시니까요.”

“실례가 안 된다면 이야기해줄 수 있나요?”

호기심도 동했지만, 비화는 이 기회에 그녀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다.

몽마고 성직자고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한 생명으로서 그녀가 어떤 인물인지는 직접 봐야 했다.

“후후. 고민 상담을 들어드리려고 했는데 반대로 제가 받게 되었네요.”

“괜찮아요. 저도 교단에 몸을 담고 있는 몸이라. 이렇게 된 거 서로 같이 고민 상담을 할까요?”

사실은 아니지만 틀린 말도 아니었다.

교단 자체가 여신을 따르는 존재.

비화는 비록 데이비와 비화의 손에서 태어났지만, 프리아 여신의 힘을 받은 여신의 딸이기도 했다.

“어머, 그건 몰랐네요. 혹, 어느 분파이신지…….”

“아…… 그게요.”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비화는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는 이내 웃으며 아는 대로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조율 분파에요.”

“조율이라…… 처음 듣는 분파네요. 하긴, 여신님을 모시는 분파는 본산을 제외하곤 규모가 작긴 해도 다양하니까요. 부끄럽지만 저도 아직 모든 분파의 이름을 알지는 못한답니다.”

옅게 웃어 보인 그녀가 말했다.

“사제님은 오래전 부모님을 잃고 세상을 방황하던 저를 거둬주신 분이에요. 비록 엄할 땐 엄하지만…… 세상 그 누구보다 따뜻하고 소중한 분이시죠.”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내리깔고 말했다.

“교리에선 죽은 이들은 여신님의 품으로 돌아간다고 하죠. 제 양부께서는 그렇게 자신의 사명을 다하고 여신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은 축복이라고 하셨어요.”

“축복이라…….”

“하지만…… 저는 잘 모르겠어요. 오랜 시간 여신님을 모셔왔지만. 아무리 여신님의 품으로 돌아간다곤 해도 그걸 웃으며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아아…… 여신이시여…… 어린양을 굽어살피소서…….”

교단의 사제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일을 완수하고 죽으면 여신의 품으로 돌아간다고 믿고 있다.

애석하지만 그건 대부분은 틀린 말이었다.

여신의 힘 아래에 죽은 혼은 영혼의 강에서 정화를 받고 윤회의 고리에 오르니까.

하지만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 리가 없다.

“힘들겠죠. 받아들이기는…….”

“그런가요?”

“여신님의 품에 돌아가는 건 모든 신관들의 꿈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내다 버려도 아무렇지 않고 그걸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기엔 인간은 너무 감정적이니까요.”

비화의 설명에 엘리시아는 옅게 웃었다.

“그렇군요. 이 또한 하나의 시련…….”

아니 이 여자야. 그런 건 시련이 아니라 그냥 받아들이기의 차이일 뿐이야.

대놓고 그런 이야기를 할 순 없었다.

비화도 간혹 여신의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으니까.

“그럼 이제 제 고민을 말씀드렸으니 자매님의 고민을 들어도 될까요?”

“제 지인이 결혼을 하려고 해요.”

“어머. 축하드려요.”

“문제는 결혼을 할 여성에 관한 이야기인데…… 제가 있던 곳에선 붉은 실이라는 게 있어요.”

비화는 담담하게 말했다.

“붉은 실이라…… 교단의 성서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죠. 최초의 인간 남녀에게 여신 프리아께서 붉은 실을 이어주어 백년해로했다 들었답니다.”

“예, 그렇죠. 실은 제가 붉은 실과 비슷한 것을 보는 눈이 있거든요.”

비화의 말에 그녀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라 여기면서도 엘리시아는 반박하지 않았다.

“그래서 물어보는 거예요. 결혼. 생각 있어요?”

그제야 엘리시아는 비화가 말하는 지인과 붉은 실이 이어진 대상이 누구인지 깨달았다.

“아…… 아하하하…….”

잠시 멍하니 있던 그녀는 어색한 웃음을 흘렸고

앞에 걸려있는 여신의 문양에 기도를 올렸다.

“자매님. 저는 여신께 귀의한 몸이랍니다.”

“알아요.”

“으음…… 제 무엇을 보고 그리 어려운 결정을 하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죄송스럽게도 받아들일 순 없을 거 같네요.”

“대충 예상은 했어요.”

“도움이 되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런 제의 몇 번 받아보셨어요?”

그 말에 그녀는 잠시 침묵하다 쓰게 웃었다.

“글쎄요. 이런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네요. 제가 머무르고 있는 분파에서는 혼인이 금지 시 되어있으니까요.”

비화의 눈에는 그녀에 대한 많은 것들이 보였다.

그녀를 이성으로 보는 남성을 본능적으로 밀어내는 페로몬에 혼인을 하지 않는 분파의 소속이니 그녀를 상대로 중매를 서려 하는 이는 없었을 것이다.

“참…… 많이 힘들겠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것도 보였다.

“무슨…… 말씀이신가요?”

엘리시아의 질문에 비화는 조용히 웃은 뒤 가볍게 치마를 털어내며 일어났다.

“그만 가볼게요. 대화상대가 되어줘서 고마워요.”

“아? 아, 네. 살펴 가세요.”

의미 모를 말만 남기고 떠난 비화를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 * *

처음 몽마라는 사실 때문에 괜찮을까 걱정한 게 무색할 정도로 엘리시아라는 이 여사제는 흔히 알려진 몽마의 이미지와는 너무 달랐다.

이 작은 마을에 있는 교회는 단 한 명의 신관이 관리한다.

비화는 어두운 밤 홀로 침대에 누워 기침을 하고 있는 늙은 노사제의 곁으로 다가갔다.

“아아…… 천사님이십니까. 저를 데려가러 오셨습니까.”

“틀린 말이지만 비슷하다곤 해줄게.”

비화는 복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가 이곳에 온 이유는 간단했다. 저승이가 노사제의 혼을 거둬가기 위해 이곳에 왔다가 비화에게 걸렸다.

그 정도의 이야기였다.

[안됩니다! 혼을 유예시키다니요! 그렇게 하면…….]

[그의 혼은 내가 인도할 테니까.]

비화는 어두운 방 안에 있던 의자를 침대 곁으로 가져와 앉았다.

“저는…… 이제 여신님의 곁으로 가는 것인가요.”

“……그래. 가게 될 거야. 다만 그전에 너와 한번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

비화의 전신에서 옅은 신력이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당신은…… 천사가 아니셨군요.”

“왜 그렇게 생각해?”

“너무도 신성한 분…… 천사님을 제대로 뵌 적은 없습니다만…… 당신이 내뿜는 힘은 다른 느낌입니다…….”

“맞아. 나는 조율의 여신 비화. 프리아 여신의 힘을 물려받은 하위 여신이야.”

“오오…… 이리 황송할 때가…… 제가 일어나서 모셔야…….”

“됐어. 누워있어. 그거면 돼. 오늘은 네 영혼을 인도하기 전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거든.”

그 말에 노사제는 옅게 웃어 보였다.

“경청하겠습니다.”

“엘리시아. 몽마라는 건 알고 있지?”

“예. 어찌 모르겠습니까. 그 아이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이 대륙에서 마족과 인간이 종전을 맺고 교류를 시작한 건 극히 최근이야. 이제야 마족과 인간이 연합도시에서 교류하며 같이 살아가기 시작했지. 그러니 대부분 왕국은 아직 마족에 대해 좋은 감정이 없을 거야.”

비화는 담담하게 말하던 중 그가 고통스러운 기침을 흘리자 손을 가볍게 휘저었다.

“놀랍군요…… 마치 새사람이 된 것처럼 몸이 가볍습니다.”

“가벼운 조치야. 말하기 힘들잖아?”

“이 은총을 어찌 갚아야 할지…….”

“됐어. 네 혼의 업은 너무 깨끗하니까. 이 정도는 문제없어.”

담담하게 말하며 비화는 다시 물었다.

“특히 이 나라는 마족에 대해 적대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 특히 네가 엘리시아를 거둔 것은 수년 전, 인간과 마족이 전쟁을 벌이기도 전이며, 인간에겐 마족은 두려운 존재라는 사실만 퍼져있었지. 그럼에도 두렵거나 밉지 않았어?”

그 질문에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짧은 고민 끝에 답했다.

“여신님. 책은 책일 뿐이고 구전되는 이야기는 동화일뿐입니다.”

“호오…….”

“제가 그때 본 엘리시아는 상처 입고 울고 있는 작고 가녀린 소녀일 뿐이었습니다. 껄껄 물론 나이는 엘리시아가 더 많을 수도 있겠지만요.”

그의 말에 비화는 눈을 감았다.

“그 아이는 상처가 많았습니다. 외상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컸지요. 저는 그 아이를 거두고 오랜 시간 그 아이가 빛을 볼 수 있도록 많은 시도를 했습니다.”

그 시도가 빛을 본 것일까.

엘리시아는 천천히 그에게 마음을 열었고, 조금씩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이 마을에 녹아들었다.

“하지만 후회되는 점도 있습니다.”

“그 아이를 사제로 만든 것이?”

“여신님은 역시 알고 계시는군요.”

그의 미소에 비화는 코웃음을 쳤다.

“알고 있는 게 아니야. 보이는 거지. 한번 맞춰볼까?”

“감히 여신님의 식견을 제가 어찌 판별하겠습니까…….”

“글쎄. 적어도 나는 프리아 여신님처럼 전지전능은 아니니까. 네가 몸을 담고 있는 교단은 평생을 바쳐 남을 위해 살지. 결혼도 하지 못해.”

그 말에 사제는 처음으로 씁쓸한 후회를 내비쳤다.

“적어도 네 양녀인 엘리시아는 그러지 않았으면 했던 거 아니야?”

잠시간의 침묵 후에 그는 조용히 천장을 바라보며 긍정했다.

“맞습니다. 저는 비록 여신께 귀의한 사제지만 엘리시아가 결혼도 못 하고 평생을 남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걸 원치 않습니다.”

“후후. 사제가 그런 말을 해도 돼?”

“아마…… 그것이 딸아이를 위하는 부모의 마음이 아닐까요.”

그는 분파 내에서도 독실한 인물이었지만 그런 그조차 딸아이로 받아들인 엘리시아만큼은 평범하게 살았으면 했던 모양이었다.

“여신님. 엘리시아는 남성에 대한 면역이 거의 없습니다. 그 두려움으로 인해 엘리시아는 알게 모르게 그녀를 이성적으로 보는 남성을 물리는 페로몬을 항시 흩날리지요.”

이런 작은 마을에서 보기 힘든. 아니 왕도 내에서도 보기 힘든 미인인 엘리시아에게 추파를 던지는 남성이 하나도 없는 이유였다.

“그 외에도 그 아이가 몸담은 이 교단 분파에 독신의 교리가 있다는 게 그 아이에게 새로운 만남을 오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는 처음 보는 비화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비화가 여신이고 그가 여신을 모시는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몽마입니다. 언제까지고 이렇게 살다간 언젠가 단명하게 될 겁니다.”

그녀는 애정, 즉 사랑과 정기가 필요하다.

먹지 않는다 하여 죽지는 않겠지만 그녀에게 좋을 리가 없었다.

하다못해 그녀가 평생의 배필을 골라두었다면 괜찮았을지 몰라도 엘리시아는 지금껏 남성의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한 숙맥이었다.

데이비의 표현대로라면 모태쏠로.

참 웃긴 표현이다.

“그리고, 본능 깊숙한 곳에 그 아이도 남성에 대한 면역을 거두고 멋진 만남을 이루고 싶어 하는 마음이 분명 있습니다.”

“엘리시아가 직접 말하진 않았을 텐데.”

“비록 피는 이어지지 않아도 저는 그 아이의 아버지입니다. 여신님.”

그의 미소에 비화는 쓰게 웃었다.

“신관. 하나 물어도 될까?”

“네. 말씀하십시오.”

“엘리시아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예.”

“하지만 사제로 남아있으면 영원히 변치 않겠지.”

“그 아이는 오래 살 겁니다. 지금이야 괜찮겠지요. 하지만…… 시간이 흘러 십수 년이 더 지났음에도 엘리시아가 지금의 모습을 유지한다면…… 더 나아가 본능이 이성을 잡아먹기 시작한다면…….”

기적처럼 이곳 왕국이 마족과 평화 스탠스를 취하는 게 아닌 이상 엘리시아는 반드시 마녀사냥의 대상이 된다.

“너무 원통합니다. 당장은 괜찮겠지만 언젠가 그 아이에게 닥칠 고난이 너무도…….”

그는 조용히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쿨럭! 쿨럭!!

권능으로도 막지 못한 끝이 다가온다.

“아아…… 이제 끝이 다가오는군요…….”

“정말 그걸로 돼?”

비화의 물음에 그가 멈칫했다.

“이렇게 투정만 부리고 끝이야? 이봐. 넌 정말 오랜 시간 여신을 모셔왔잖아. 마지막에 이르러서라도 여신께 제대로 된 투정 한 번 부리지도 못해?”

비화의 종용에 그는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여신께서 저를 보살펴주셨기에 저는 이곳까지 왔습니다. 행복했고, 소중한 딸을 만났지요. 어찌 더 요구하겠습니까.”

그 말을 하는 그의 안광이 점점 색채를 잃어간다.

“마지막이야. 여신으로써 명하는 거야. 더 이상의 거짓은 나도 용서 못 해.”

그 말에 그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의 손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제발…… 엘리시아가 아픈 일이 없도록.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여신님…… 비록 저를 따라 귀의하였고 스스로도 보람을 느낀다곤 하지만 엘리시아도 다른 행복을 찾을 자유가 있습니다.”

그의 말에 비화는 빙그레 웃었다.

“좋은 꿈 꿔.”

그 말을 끝으로 노사제의 몸은 힘을 잃었고, 비화는 그의 혼을 자신의 손에 올린 뒤 소중하게 품었다.

동시에 그녀의 품 안에 숨겨진 작은 영혼석이 반응하며 그의 혼을 담아낸다.

“영혼석이야. 무려 성모의 영혼석이라고, 네 혼을 잠시간 보관할 수 있어. 비록 임종을 지켜보게끔 유지해줄 순 없지만. 부녀가 마지막 대화를 나눌 시간 정도는 만들어줄게.”

눈시울을 붉힌 그녀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 양아버지가 숨을 거뒀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엘리시아는 행복한 꿈을 꾸듯 잠들어있었다.

그렇게 조용히 시간이 흘렀고, 다음날 양아버지의 식사를 준비하기 전 그를 깨우기 위해 방을 찾아온 엘리시아는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아무리 자연의 섭리라도, 여신의 품에 안기는 것이기에 신관으로선 축복일지라도.

엘리시아에겐 너무 가혹하며 갑작스런 이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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