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32화
평소처럼 문을 열던 교회는 고요했다.
문도 굳게 잠겨 있었고 축복이 가득하던 이공간은 며칠간 슬픔으로 가득했다.
“아아…… 사제님…… 이렇게 가십니까…….”
“저희 마을을 위해 해주신 은혜를 어찌 갚으라고…….”
많은 사람이 오갔다.
마을 사람들은 사제의 죽음을 슬퍼하며 그의 관 위에 새하얀 꽃을 올려두었다.
사람의 수는 많지 않고 노사제의 연이 많지 않았기에 찾아오는 이는 적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맞이하는 엘리시아는 검은 수녀복을 입은 채 고요하게 자리를 지켰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엘리시아…… 괜찮니?”
“네…… 괜찮아요. 여신의 품으로 가신 거잖아요…… 슬퍼할 게 아니라 축복하며 보내주어야겠죠…….”
그렇게 말하지만, 엘리시아의 손은 더없이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본인도 인지하지 못한 채 크게 떨리고 있었다.
“괜찮아. 울어도 된단다. 여신님도 무심하시지. 이 어린아이를 두고 그를 데려가시다니…….”
“흐…… 흐으…….”
“괜찮아…… 울어도 돼…….”
풍만한 체격을 지닌 여성은 조용히 엘리시아를 품에 안고 그녀를 다독여주었다.
“울고 싶을 때는 우는 거란다. 그건 신관이라고 다르지 않을 거야. 소중한 아버지였잖니.”
“흐윽…… 흐흑…….”
결국, 그녀는 울음을 참지 못했고, 제 감정에 솔직하게 눈물을 쏟아냈다.
갑작스러운 오열이지만 그곳을 찾은 이들 중 그 누구도 엘리시아의 행동에 놀라 하지 않았다.
“흐아아…… 아빠…… 아빠! 왜 벌써 가는 거예요. 아빠…….”
마치 아이처럼 엉엉 우는 그녀의 등을 토닥여준 여성은 조용히 그녀를 품에 안고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다만 그녀는 몰랐다. 극한의 감정이 그녀의 본능을 자극하면서 그녀가 무심결에 내뿜던 페로몬을 억제하기 시작한 것을 말이다.
그와 동시에 이곳을 찾았던 젊은이들 몇 명의 표정에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그녀는 몰랐다.
또 며칠이 지났다.
신관의 육체는 마을 어귀에 있는 공동묘지에 조용히 안치되었다.
어떻게든 울음을 멈추고 참아보려던 엘리시아는 끝내 관이 땅속에 들어서는 것을 보며 오열했고 그대로 달려들어 관이 들어가지 못하게 막으려 했다.
그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이 마을에서 젊은 남성 상당수가 과거 마족과의 전쟁에서 희생되어 시신이 되어 돌아왔었으니 말이다.
당연히 이럴 줄 알았다며 장정 일부가 그녀의 팔을 옭아매고 막았지만 오열하며 안된다고 소리치던 그녀는 급기야 남성들의 팔을 뿌리치고 달려들었다.
생각지도 못한 강한 힘에 놀라 주저앉은 장정들은 멍하니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칠칠치 못하게 똑바로 잡았어야지. 몸도 튼튼한 녀석이.”
“아니요, 그게…….”
일부 남성들은 그녀의 생각지도 못한 힘에 당황한 듯했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관을 끌어안고 엉엉 우는 엘리시아의 치맛단 아래로 삐져나온 무언가를 보고 눈을 부릅 떴다.
“음? 보드. 표정이 왜 그래.”
엘리시아를 다독여주었던 풍만한 체격의 여성은 멍하니 앉아있는 체격이 좋은 사내에게 물었다.
그는 방금전 본것에 눈을 못 떼는 얼굴이었다.
“잠깐…… 머리 좀 식힐게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그곳을 벗어났다.
그리고 작게 중얼거렸다.
“그거…… 분명 몽마의 꼬리였지…….”
놀랍게도 보드는 전쟁에서 생환한 몇 안 되는 장정 중 하나였고 전쟁통에 하늘을 날아다니며 공습하던 몽마들을 본 적이 있는 인물이었다.
“마족…….”
그의 눈에 지독한 증오가 서리기 시작했다.
“마족이 감히 나를…… 우리 마을을 속여?”
그는 차라리 자신이 잘못 보았기를 바랐다.
그렇기에 확인을 해야 했다.
사제의 시신이 안치되고 첫 밤, 실의에 빠져 교회의 기도실에서 조용히 기도를 올리고 있는 엘리시아를 찾은 보드는 비장한 얼굴을 했다.
“보드 씨? 무슨 일이시죠?”
아름답다. 폭발적인 몸매는 감히 마을의 어떤 처녀들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왜 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한 번도 못해본 것일까.
지독한 위화감에 보드는 조용히 다가가 그녀에게 말했다.
“사제님이 돌아가시고 많이 힘드실 거 같아서 간식을 챙겨왔습니다.”
“이렇게 고마울 때가…….”
그녀는 축축하게 젖은 눈으로 보드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는 그가 내미는 상자를 받으려다 움찔했다.
장성한 남성과의 접촉은 그녀에게 굉장히 부담을 주었다.
오랜 시간 노력 끝에 대화 정도는 할 수 있다지만 아직 남성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용기를 내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언제까지고 이럴 순 없다.
그녀는 용기 내 그가 내민 상자를 받아들었다.
그때였다.
“엘리시아 사제님.”
“네?”
“당신은…… 혹시 몽마입니까?”
그 말에 엘리시아의 몸이 굳었다.
“무…… 무슨…….”
“잘못 본 것이라고 여기고 싶었습니다.”
그는 흉흉한 시선으로 엘리시아를 보며 말했다.
“무……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몽마 같은 게…….”
“아뇨.”
그가 거칠게 상자를 쳐낸다.
그러자 상자 안에서 웅웅 거리며 반응하는 마나석이 하나 튀어나왔다.
동시에 그녀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과거 마족과의 전쟁에서 몽마의 공습을 막기 위해 몽마를 구분하는 마나 석을 만든 바 있었다.
비록 실전에 사용되기도 전에 전쟁이 끝났지만 오래전 전쟁에 참전했었던 보드는 그의 인연을 통해 한 개의 마나 석을 부적 대신 보유하고 있었다.
“이게 뭔지 아십니까.”
그가 더없이 차가운 얼굴로 엘리시아를 노려보았다.
“이…… 이건…….”
“몽마의 힘에 반응하는 마나석입니다. 그리고. 당신과 접촉하자마자 반응했군요.”
지금까지는 그러지 않았다.
엘리시아 모르게 노사제가 그녀를 보호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가 죽음으로써 더 이상 보호가 불가하게 되었다.
스릉!!!
그가 검을 뽑아 들었다.
그의 얼굴엔 증오가 서려 있었다.
파앙!!!
동시에 거칠게 검을 휘두른 그였다.
“당신은 우리 마을의 은인입니다. 사제님의 딸이지요, 하지만. 나는 이런 생각이 드는군요.”
그는 분노로 제대로 된 판단을 못 하고 있었다.
“당신이 사제님을 현혹해서 이곳에 숨어들었다고.”
“아……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에요! 보드 씨! 제가 다 설명할…… 꺄악!!!”
그가 휘두른 검에 엘리시아의 팔에 상처가 났다.
동시에 놀랍게도 그녀의 팔에 난 상처가 빠르게 아문다.
“이래도 변명하실 겁니까?”
“이…… 이건…….”
“엘리시아 사제님.”
“…….”
“나는 마족을 평생 용서 못 합니다. 제 동생이 눈앞에서 몽마에게 찢겨 죽었습니다.”
“그…… 그것은…….”
“하지만 세상은 마족과 화해를 했더군요.”
그가 성큼성큼 걸어왔다.
“나는 그럼 제 동생의 죽음을 누구에게 토로해야 한단 말입니까.”
그는 울고 있었다.
몇 년간 꾹꾹 눌러온 슬픔이 폭발한 것이었다.
“당신은 정말 좋은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마족과 한 하늘 아래에서, 한 마을 안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가 검을 들이밀며 다가오자 엘리시아는 두려움에 가득 찬 눈빛으로 슬금슬금 기어 뒷걸음질을 쳤다.
“이…… 이러지 마세요. 보드 씨. 저는 그 누구도 해칠 생각이…….”
“제 동생이 어떻게 죽었는지 압니까?”
“…….”
“어린 마족이었습니다. 검을 들이밀자 눈물을 쏟으며 제발 살려달라 말하더군요. 이에 마음이 약했던 제 동생은 그를 살려주는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그 틈은 어린 마족이 다시금 뒤통수를 후려치게 만드는 암담한 미래를 만들었다.
“죽어가는 제 동생을 몇 번이고 난자하며 그녀가 말하더군요.”
-당신에게 원한은 없어! 하지만 죽어!!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그의 눈에 광기 서린 분노가 내비친다.
“마족이 눈에 띄면 절대 용서치 않겠다고.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조리…… 모조리 찢어 죽이겠다고!”
“이러지 마세요! 전쟁은 모두에게 아픈 일이었어요! 그……그리고 저는 보드 씨를 헤칠 생각이…….”
“마족이잖아요.”
그 말에 엘리시아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마족을 어떻게 믿습니까 제가.”
그가 검을 내리치자 굉음이 울려 퍼졌다.
이에 엘리시아는 조용히 그를 올려다보다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래요…… 당신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했군요…….”
그녀는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듯 손을 모았다.
“제 목을 치세요. 그것으로 당신의 아픔이 조금이라도 아물 수 있다면…… 제 한 목숨 바치겠어요.”
그 말에 보드는 손을 부들부들 떨며 검을 높게 들어 올렸다.
하지만 그의 검은 끝내 엘리시아를 치지 못했다.
“왜…… 왜 저항하지 않는 겁니까.”
“…….”
“왜 틈을 보지 않는 겁니까! 왜 자신이 죽이지 않았다! 왜 내가 죽어야 하냐! 한 마디 소리라도 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격하게 소리치는 그의 목소리엔 지독한 울분이 서려 있다.
하지만 그는 엘리시아의 슬픈 미소를 보고 거칠게 검을 던져버렸다.
챙그랑!!!!
“난 오늘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보드 씨?”
“마족은 평생을 증오합니다. 그건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겁니다.”
“…….”
“하지만 마족이 아닌 신관님을 해칠 순 없습니다. 더구나 우리 마을을 위해 평생을 힘써주신 신관님의 따님께는 더더욱.”
거짓된 핑계. 그는 결국 엘리시아를 베지 못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당신을 아프게 해서 죄송해요…….”
그렇게 검을 두고 떠나가는 그를 멍하니 지켜보던 엘리시아는 조용히 몸을 웅크리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대화를 몰래 엿들은 이가 하나 있었다.
그 인영은 상황을 지켜보다 조용히 그곳을 벗어났고 이내 근처에 있는 영주에게 이 사실을 고스란히 전했다.
그녀는 다름 아닌 보드의 친모이며 사제가 죽었을 때 가장 먼저 다가가 엘리시아를 다독여주고 함께 슬퍼해 주었던 풍만한 체격을 지닌 여성이었다.
“영주님…… 마족이…… 저희 마을에 있습니다.”
* * *
며칠 뒤.
작은 마을에 다량의 병사와 기사들, 그리고 신관이 들이닥쳤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몰고 온 영주. 남작은 거대한 체구를 이끌고 마을로 진입하며 말했다.
“이 마을에 마족이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모두 모으도록.”
비화는 말없이 마을의 모습과 상황을 지켜보았다.
역시나 그 누구도 그녀를 눈치채는 이는 없었다.
“과연 저들 중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동생을 잃고 증오를 품은 청년?
아들을 잃고 형보다 더한 슬픔을 가슴속에 박아온 여인?
딸아이를 지키지 못하고 먼저 세상을 뜬 사제?
태어나기를 몽마로 태어나 인간 틈 바구니 속에서 살아온 엘리시아?
저들 중 그 누구도 탓할 수는 없으리라.
하지만.
“개인적으론. 한 놈은 탓하고 싶네.”
마을에서 느껴지기 시작하는 역겨울 정도로 음습한 기류를 머금은 인물을 향해 그녀의 시선이 꽂혔다.
마치 건수가 잡히기를 기다렸다는 듯 허겁지겁 찾아온 영주, 남작이었다.
그는 말에서 내리기가 무섭게 거만한 표정으로 수염을 쓸어내리며 소리쳤다.
“당장 모두를 모으라 하지 않았더냐!!”
그의 외침에 작은 말의 주민들은 한시바삐 광장에 모였다.
그곳에는 엘리시아를 따스하게 다독여주었던 풍만한 체격을 지닌 여성도.
그녀의 아들이자 전쟁에서 동생을 잃은 보드도.
아버지를 여의고 힘들어하고 있는 엘리시아도 보였다.
순간 엘리시아를 시야에 담은 영주의 눈에 이채가 서린다.
“역시…… 사진으로 보던 대로군.”
그는 입맛을 다시며 소리쳤다.
“무…… 무슨 일이시온지요…….”
촌장은 덜덜 떨며 그에게 고개를 조이고 물었다.
“영주성에 밀서가 한 장 도착했다. 이 마을에 마족이 숨어들었다는 신고였다.
그 말에 사람들이 흠칫 놀란다.
그중 크게 동요한 것은 엘리시아와 보드였다.
엘리시아는 경악한 눈으로 보드를 흘끗 보았지만, 보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주변을 찾고 있었다.
그가 신고한 게 아니었으니까. 아무리 슬퍼도, 동생의 원수라도 엘리시아가 그런 잘못을 저지른 게 아님을 또 알고 있었기에 억지로 분노를 잠재운 그였다.
그런데 이렇게 들쑤셔지는 건 그의 예상이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자백한다면 내 선처해줄 것이다.”
그의 말에도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 눈치를 보며 의아해할 뿐이었다.
“영주님. 미천한 제가 아뢰옵기를 이 마을에 그런 사특한 종족은 있지 않…… 커헉!!”
그때였다.
영주가 그대로 촌장의 몸을 걷어차 버린 것이다.
“에잇! 더러운 놈. 내 말이 곧 이 영지의 법이거늘. 감히 내 말에 토를 다는 것이냐?”
“요…… 용서를…….”
“놔라! 이 천한 놈! 누가 마족인지 나오지 않으려는 것이더냐? 정년 잡아내야 대답을 할 터이냐?!”
그의 외침에 엘리시아는 고개를 숙이고 식은땀을 흘렸다.
마족이라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 끝까지 숨기고 있다간 마을 사람들이 피해를 볼 것 같았다.
그때 엘리시아의 시선에 안절부절못하는 여인이 담겼다.
그리고. 아주 본능적으로 그녀는 이 상황을 신고한 이가 누구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아주…… 머니?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배신감보다 이해할 수 없다는 감정이 앞섰다.
엘리시아의 시선을 받은 보드의 모친은 죄악감에 물든 얼굴로 엘리시아의 시선을 피했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허어? 네년이냐? 생긴 것도 인간보단 괴물에 가까울 정도로 비대하구나.”
끔찍한 비하 발언이었지만 그녀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숨을 들이켰다.
이윽고 그녀가 엘리시아를 고발하려던 순간.
보드가 벌떡 일어나 그대로 그녀의 팔을 잡아끌었다.
“죄송합니다. 영주님. 저희 어머니께서 몸이 많이 편찮으셔서…….”
“감히…… 나를 우롱하는 것이더냐!!!”
그가 분노한 듯 검을 빼 들었다.
그리고는 단칼에 베어버릴 것처럼 다가왔고 보드는 곧바로 몸을 납작 엎드렸다.
“부디 넓은 아량으로 자비를 베풀어주시옵소서! 저희 어머니께서는 심성이 유약하시어 아무래도 많이 놀란 듯싶습니다.”
“보드!!”
“어머니. 어서요!”
그가 화를 내듯 소리치자 여성은 부들부들 떨며 무언가 소리치려 했다.
“접니다.”
그때였다.
엘리시아는 체념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신고했습니다.”
“뭐?”
영주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그대는…… 사제로군.”
“예. 여신을 모시는 일개 사제입니다. 영주님께 마족을 신고한 것은 저입니다.”
갑작스런 엘리시아의 행동에 보드와 여성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그리고 제가 고발한 마족 또한…… 저입니다.”
그녀는 단호한 표정으로 자신이 마족임을 드러냈다.
주변에서 웅성거림이 커진다.
“허어? 이게 무슨 소리더냐.”
“엘리시아 사제님!!”
보드가 격하게 소리쳤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
“보드 씨. 편찮으신 어머니를 모시고 어서 돌아가세요. 언제까지 세워두실 참이신가요.”
그제야 보드는 눈치챘다.
엘리시아는 보드의 생모이자 엘리시아를 많이 챙겨주었던 여성이 그녀를 고발한 것을 눈치챘고, 혹여 그녀가 마을에서 고립될까 봐 스스로 모든 것을 밝히고 덮어썼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행동은 여성 또한 눈치챈 듯 입을 뻐끔거렸다.
“자수하겠습니다. 저를 감옥으로 이송해주세요.”
“호오…… 네년이란 말이구나. 좋다. 조사는 필요한 법이지.”
그의 얼굴에 음흉한 미소가 걸렸다.
“우선은 영주성으로 압송하라. 일이 쉽게 풀렸구나.”
애초에 그녀의 자백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을 텐데도 영주는 관심도 없는 모습이었다.
애초에 그는 마족이 있건 없건 상관없이 이번 기회를 삼아 엘리시아를 손에 넣을 생각뿐이었으니 말이다.
“내 꼼꼼하게 직접 조사를 해주마. 흐흐흐…….”
그의 섬뜩한 미소에 엘리시아는 두려움과 수치심에 몸을 부들부들 떨어야 했다.
“어…… 어째서…… 읍!”
다 알고 있음에도 자신을 감쌌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보드의 모친은 멍한 얼굴로 소리치려다 보드에게 차단당했다.
그는 곧바로 그의 모친의 몸을 납작 엎드리게 만들어 영주의 관심을 빼냈다.
‘제발…… 어머니. 지금은 조용히 계십시오. 부탁입니다…… 그녀의 희생을 헛되이 하실 겁니까.’
스스로가 희생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두 사람 이외에도 마을 사람들은 그녀가 마족이라는 사실에 경악한 듯했다.
일부는 극도의 분노를 드러냈고 일부는 그럴 리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일부는…….
마족이라도 그녀는 다르다 믿는 이들이었다.
그만큼 엘리시아가 수년간 이곳에서 쌓아온 이미지는 모두에게 소중한 기억이었다.
만약 보드의 모친이 엘리시아를 공개된 장소에서 지목했다면 그녀는 마을 내에서 굉장히 몰리게 되었으리라.
한솥밥을 먹던 마을 사람을. 그것도 수많은 이들을 도와온 착한 사제님을 팔아넘겼다고 여겨질 테니까.
아들의 죽음에 슬픔을 품던 그녀는 그제야 엘리시아의 희생에 담긴 무거운 현실들을 깨달았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꺅!!”
이윽고 신관들이 다가와 엘리시아의 몸에 구속구를 채우고 거칠게 끌어냈다.
“저항하면 네년의 목숨을 여기서 당장 끊어주마.”
“그러지 않아요. 조사는 받겠습니다.”
그 말에 영주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래야지. 다만 마족을 숨겨준 이 마을에 대해선 응당 벌을 내려야겠군.”
“그…… 그 무슨?! 이분들은 속았을 뿐입니다! 나쁜 것은 저입니다! 제게만 죄를 물으시면!”
그 말에 영주가 섬뜩하게 웃었다.
“속은 게 잘못이지.”
“그 무슨…….”
스르릉…….
병사들이 검을 빼 든다.
그제야 엘리시아는 영주의 목적을 깨달았다.
애초에 목적은 그녀였고, 그 과정에서 어떤 정보도 빠져나가지 않도록 마을 사람들을 모두 죽일 생각이었다.
과정이 어떻든 영주는 이 마을을 치워버릴 계획을 세웠다.
오로지 엘리시아를 손에 넣기 위해서.
“내 너의 사진을 본 뒤로 편히 자본 적이 없구나. 직접 만나면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평온해지곤 했지. 한데 지금은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구나. 그동안 잘도 수작을 부렸어.”
“제가 마족이라도요?”
“그게 무슨 상관이냐. 뭐. 마족을 증오하는 건 맞지만 포로로 잡은 마족을 어찌할지는 내 마음인 게지. 뭣들 하느냐. 빠르게 정리하고 이년을 끌고 오지 않고.”
“아, 안돼요!!! 제발…… 제발 이분들을 해치지 말아 주세요! 뭐든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제발!”
당황한 그녀의 외침에도 병사들은 실실 웃으며 검을 빼 들었다.
익숙한 행동거지였다.
아무리 마족을 미워하는 신관들이라도 지금 상황을 보면 분명 남작을 말릴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들에게선 일말의 신성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순 사이비들이었다.
엘리시아는 그제야 이 기사나 신관들도 다 한통속임을 깨달았다.
절망이 앞섰다.
노사제, 양아버지의 관을 안치한 지 고작 며칠 만에. 이런 절망스러운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다.
“으…… 으아악! 사…… 살려주십시오!”
겁에 질린 한 소녀가 검을 들이밀고 들어오는 청년을 보며 소리쳤다.
하지만 영주의 명대로 그들은 그들을 베어 죽이기 위해 검을 내뻗었다.
“아…… 안돼!!”
보드가 황급히 주변에 무기가 될만한 것을 찾기 위해 일어났지만 이미 검은 내리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검이 가장 먼저 희생당할 소녀의 몸에 닿으려는 그 순간.
병사의 검이 허공에서 튕겨 나갔다.
동시에 빛의 창이 쏟아지며 병사의 몸을 관통하듯 꽂혔다.
겉보기엔 몸이 꿰뚫려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달랐다.
빛에 묶인 것처럼 그는 살아있었다.
“커억?!”
동시에 마치 시간이 멈춘듯한 착각과 함께 날개옷을 입은 흑발의 여신이 천천히 지상에 발을 내디뎠다.
동시에 그녀의 등 뒤로 펼쳐진 반투명한 날개가 크게 한번 펄럭이더니 신성함이 가득 담긴 깃털들을 흩날리며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