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37화
마구잡이로 달린다.
승현과 노아는 더 이상 그들이 좇아오지 못할 거리까지 뛰고 나서야 숨을 골랐다.
“어휴.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뻔뻔하기도 하지.”
아무리 봐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거지였다.
굳이 새치기를 한 것 하며, 그녀와 시비가 걸리자마자 위협하려던 것까지.
“후우…… 후우…….”
노아는 승현보다는 제법 호흡이 괜찮아 보였지만 상당히 지친 기색이 가득했다.
“힘들어…… 너무 힘들어. 뭐 하는 거야 이게!”
“야. 넌 겁이 없냐? 그런 놈들이 널 공격하면 어쩌려고 덤벼들어 임마!”
“승현이 있잖아.”
“내가 뭐 각성자라도 되는 줄 알아? 후…… 아니다. 다친 곳은 없고?”
“엉. 나 튼튼해.”
몸이 튼튼한 것과 체력이 약한 것은 별개인 듯하다.
무엇이 되었건 결국 시우 커플이나 에반젤린을 놓쳐버렸다.
“나 그거 한 번 더 타고 싶은데.”
“후…… 다음부터는 그런 시비 걸리면 그냥 무시해버려.”
“혼내줘야지!”
“네가 혼나겠다. 임마!”
풀이 죽은 듯 추욱 늘어지는 녀석의 머리카락이 퍽 우스워 보인다.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노아는 신이 난 듯 또다시 눈에 끌리는 놀이기구를 찾아 후다닥 뛰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야, 같이…….”
퍼억!!
그때였다.
갑자기 승현의 뒷덜미를 낚아채며 묵직한 타격이 들어왔고 승현은 그대로 바닥을 뒹굴며 쓰러졌다.
“야. 이거 일 커지는 거 아냐?”
“무슨 상관이야. 이 새끼 우리 못 봤어. 그리고 지가 어쩔 거야.”
“느낌이 심상찮은데…….”
“됐고, 분이 안 풀리네! 이 개x끼.”
퍽!
승현은 자신에게 벌어진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몰라 몸을 움찔거릴 뿐 쉬이 일어나지 못했다.
각성자라고 하기엔 약하지만, 굉장히 악의적인 주먹질과 발길질이다.
“컥…… 컥…….”
고통에 신음하며 쓰러져 있지만, 하필 승현과 노아가 있던 곳은 인적이 드문 골목 안.
관리 직원이라도 오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여기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하리라.
순식간에 코피가 터지고 입술이 터져 나갔다.
그는 끙끙대며 멱살을 잡힌 채 들어 올려졌다.
“대체…… 너희 뭐야…….”
피가 섞인 입을 열며 그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단순 양아치가 사람을 이 지경이 될 때까지 팬다고? 그것도 새치기를 했다고 화를 낸 이유로?
애초에 처음부터 아귀가 들어맞지 않았다.
“뭔 헛소리야. 넌 그냥 분풀이야.”
씨익 웃으며 말하지만 그들의 말은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워낙에 큰 타격인 터라 승현은 제대로 판단도 서지 않았다.
마치 수면에 잠긴 것처럼 먹먹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슬슬 시작해볼까?
-숙주치곤 약한데.
-이 숙주의 기억을 종합해보면 이놈을 데리고 가서 그 꼬맹이를 유도하면…… 오오…… 잘됐네. 알아서 와주는구나.
그들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조금 전 놀이기구를 타러 간다면서 쪼르르 뛰어갔던 노아가 악귀같이 분노한 얼굴로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흐으…… 흐으…….”
입이 잘 열리지 않는다. 하지만 승현은 이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도 그럴 것이 두 남성의 말을 들어보면 이것들, 인간이라고 하기엔 뭔가 이상했다.
게이트에서 빠져나온 몬스터?
몬스터가 게이트에서 한두 마리씩 빠져나오는 건 들은 적이 있지만, 이곳은 티오니스 성자가 결계를 쳐두었다.
몬스터가 들어올 리도 없고 인간 형태의 몬스터는 들어본 적도 없다.
그렇다고 어디 원한을 산 것도 아닌데 무엇이 문제일까.
‘도망가.’
노아는 전투능력이 강하지 않다.
티오니스 성자 데이비 올 라운의 경호 대장이나 다름없는 륀느와는 달리 노아는 말 그대로 평범한 슬라임 호문클루스일 뿐이었다.
게다가 놈들이 노리는 건 승현이 아닌 노아.
‘내가 다시는 이 놀이공원 오나 봐라.’
몬스터가 출몰하고, 테러리스트가 나타나고…… 또 몬스터?
물론, 이 몬스터들은 외부에서 기어들어 온 것이겠지만 그래도 세 번은 너무하지 않나.
무엇보다 이 놀이공원은 데이비가 분명 결계를 쳐서 몬스터가 들어오지 못하게 했을 텐데.
아마 인간의 내부에 기생한 특수 생명체인 탓에 놓친 것일지도 모른다.
“살아…… 있는 거야?”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 쉰소리로 계속해서 도망치라 소리쳤다.
하지만 노아는 반짝거리는 금안으로 그들을 노려보며 성큼성큼 걸어들어왔다.
“너…… 너 이 개x끼야!!!”
승현의 만류에도 그녀는 이성이 날아간 것처럼 그대로 달려들었고 한 사내의 몸을 향해 그대로 점프했다.
동시에 그녀의 머리카락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사내에게 들러붙는다.
“으억! 이게 미쳤나!”
“젠장 떨쳐내!!”
슬라임은 감싸서 집어삼키는 생명체라고 했던가. 물론 노아가 완전 슬라임인 것은 아니지만 슬라임을 토대로 만들어진 만큼 육체의 변화가 자유롭다.
아마 노아는 본능적으로 몸에 새겨진 방법으로 공격하려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그건 부질없는 저항이었다.
“꺄악!”
노아의 힘은 남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육체가 아니었다.
바닥을 뒹굴며 그녀가 아픈 듯 신음을 토해냈다.
그렇게 만사가 귀찮다던 노아가 자신의 몰골을 보자마자 눈이 돌아가서 덤벼드는 모양새라니…….
승현은 헛웃음이 나왔다.
바닥에 쓰러진 노아가 고통스러운 듯 기침을 토해내자 사내들은 짜증을 부리며 그녀에게 다가간다.
퍽!!
“아악!!”
“애먹게 하고 있어. 개 같은 게!”
퍽퍽!!
그들은 노아를 가차 없이 걷어차 버렸다.
이에 승현은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초인적인 힘을 내며 그대로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당장 멈춰 이 개x끼들아!!”
만난 지 고작 며칠.
하지만 노아가 맞는 걸 보자마자 눈이 돌아간 것도 사실이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몸이 움직이고 있었다.
막무가내로 덤벼들어 그들을 떼어내려 하지만 기적은 벌어지지 않았다.
퍽!!
“컥!!”
“아이 씨…… 진짜 귀찮게 하네. 이거 여기 묻어버릴까.”
“애먼 짓 하지 말고 저것만 데리고 가자.”
그들은 곧 기괴하게 생긴 무언가를 손에서 꺼냈다.
그리고 노아에게 천천히 다가간다.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고. 이것도 다 일이라…….”
터엉!!!
섬뜩한 파열음이 울려 퍼진다.
묵직한 소리에 사내는 자신의 손의 뼈가 완전히 박날난것처럼 추욱 늘어진 팔을 바라보았다.
“나쁘게 생각 말아요. 이것도 일이라서.”
동시에 주변 공간이 마치 격리된 것처럼 검게 변하기 시작했다.
흠칫 놀란 사내들은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았고 이내 세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잔뜩 굳어있는 시우와 엘리시아.
그리고, 동공을 세로로 찢은 채 섬찟한 피어를 내뿜고 있는 에반젤린을 보았다.
“여기서 사고 한 번만 더 터지면 아빠가 많이 곤란해 할 거 같아서 조용히 끝낼 거에요.”
“이…… 이런 x?!”
놀란 사내가 황급히 벗어나려 한다.
하지만 눈 깜짝할 새에 파고든 에반젤린의 한 손이 사내의 얼굴을 낚아챈 뒤 바닥에 찍어버렸다.
“미…… 미친 괴물 년이!”
뒤이어 사내의 동료가 우악스럽게 주먹을 뻗어왔다.
텁!!
하지만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새하얀 근육질 덩어리가 그의 손을 잡고 있다.
쯧쯧.
거대한 토끼는 덩치가 큰 사내조차 한참을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컸고 터질듯한 근육을 지니고 있었다.
검지손가락을 까딱이며 혀를 차는 토끼가 그대로 팔을 당긴다.
터엉!!!
그리고 파괴적인 주먹을 내질러 그대로 사내를 침묵시켰다.
“승현아!!”
뒤이어 시우가 황급히 뛰어와 바닥에 쓰러진 승현을 부축한다.
“어…… 형…….”
“야 말하지 마! 상처가 너무 크잖아! 어떻게 된 거야!”
“나도 몰라…….”
승현은 쓰게 웃으며 힘겹게 손을 뻗었다.
“나…… 난 됐으니까 노아…… 노아를…….”
바닥에 쓰러진 채 끙끙거리고 있는 노아를 가리킨다.
그곳엔 이미 엘리시아와 에반젤린이 다가가 있었다.
“토끼 아저씨. 그 두 놈 보이지 않게 데리고 와주세요. 우선 치료부터 해야겠어요.”
“세상에…… 사람을 얼마나 팬 거야…… 이거 단순한 치료로 해결될 문제가 아닌데.”
시우의 말에 에반젤린이 뿌득 소리 나게 이를 갈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어딘가에 전화한다.
그리고는 최대한 울먹거리며 말한다.
“아빠, 흐윽…….”
대공의 업무 때문에 잠시 영지를 비웠던 데이비 올 라운이 나타나는 데엔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어떤 놈이야! 누가!”
데이비가 격노하며 소리치자 에반젤린은 언제 울었냐는 듯 손을 척! 하고 뻗었다.
“아빠 빨리! 치료!”
“어…… 어?”
* * *
생각지도 못한 우여곡절 끝에 승현과 노아는 데이비에게 치료를 받았다.
처음 당해보는 타격에 익숙하지 않아 쉽게 무력화되었던 노아는 금방 회복했지만, 승현이 당한 타격이 컸다.
“이게 일반인이 폭력을 휘둘러서 나올 부상은 아니야.”
육체는 치료했으나 데이비는 그의 마음까지 바로 치료하진 않았다.
“왜…… 왜 승현은 안 일어나?!”
노아가 데이비의 팔을 잡고 울먹거리며 소리쳤다.
“육체 치유는 문제가 없다만 정신적인 치유까지 건들면 오히려 안 좋아. 하루에서 이틀 정도 지켜봐. 큰 부상은 아니니까 금방 일어날 거다.”
고작 이런 일로 불렀음에 짜증이 날 법도 하다.
하지만 데이비는 에반젤린에게 다가가 그녀를 향해 옅게 웃어 주었다.
“아빠…… 미안해요. 많이 바쁠 텐데.”
“네가 부르면 무슨 일이든 던져 놓고 올 거야.”
“…….”
“어때. 아빠가 좀 더 달라 보이니?”
그 말에 에반젤린의 표정이 팍 찡그려졌다.
“가요! 가!”
“그래.”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투정이지만 데이비는 아주 만족한 듯했다.
“그런데 아빠. 그 놀이공원은 아빠가 결계를 쳐둔 거 아니었어요?”
“그랬지.”
“그런데…… 어떻게 몬스터가…….”
에반젤린이 제압한 두 사내는 몬스터였다.
하지만 몬스터라고 단정 짓기엔 또 이상했다.
“기생체 몬스터. 다곤 패러사이트.”
“다곤…… 패러사이트요?”
“그래. 연가시 알지? 곤충의 몸에 알을 까고 천천히 뇌를 지배해서 산란기가 오면 물가로 유인한 뒤 빠져나오는 기생충.”
데이비의 설명에 엘리시아와 시우의 표정이 파랗게 질렸다.
“여…… 연가시 같은 게 정말로 있다는 건가요?”
“비슷한 케이스이긴 한데…… 티오니스 몬스터가 아니라서. 다곤 패러사이트는 인간에게만 기생해서 숙주의 모든 것을 흡수하고 조종해. 연가시보다 악랄하다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사람의 몸속에 기생해 정신까지 지배한다는 뜻이 아닌가.
“그거…… 심각한 문제 아닌가요?”
“물론 밖으로 나오면 문제가 되겠지만 현재 다곤 패러사이트가 출몰하는 게이트들은 전부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어. 다만…….”
그곳에 들어갔던 이가 기생 사실을 숨긴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멍청이도 아니고 자기가 감염된 걸 아는데도 그 사실을 숨기겠어요?”
에반젤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시우와 데이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에린아. 영화 좋아하지?”
이후 시우가 말한다.
“영화요? 네 좋아해요.”
“거기 좀비 영화를 보면 말이야…… 좀비에게 물리고도 살고 싶어서 사실을 숨기고 안전구역에 들어가는 놈들이 왜 있을 거 같아?”
“아니 그게 말이 돼요? 치료가 불가능한 것도 아닌데.”
“모르지.”
시우의 말이 얼토당토않은 말이라 반박하고 싶지만 정작 이미 다곤 패러사이트의 영향에 들어있는 두 사람이 발견된 이상 가벼운 문제는 아니었다.
“이거…… 공표할 거에요?”
“하면, 어떻게 될 거 같아?”
어디서 감염된 건지 모른다.
이 둘은 일반인. 그렇기에 게이트에서 감염되었을 리가 없는 만큼 사실은 하나로 좁혀진다.
어떤 놈이 게이트에서 감염된 채로 몰래 빠져나왔고, 완전히 감염된 뒤 자신의 거점을 부화장으로 만들어버렸다.
이 사실이 밝혀지면 대혼란이 올 수밖에 없다.
감지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그 과정이 길어질 테니까.
“뭐……이런 인간들 있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런데 왜 쟤를 노린 건지…….”
“노아는 전투능력은 없지만, 신령이 깃들어있는데 저항력도 낮지. 다곤 패러사이트처럼 상위 존재에게 잠식하고 싶어 하는 놈들의 입장에선 그야말로 최고의 숙주겠지.”
데이비는 가볍게 허공을 그어 공간을 열었다.
“그래도 걱정 마. 다곤 패러사이트는 생각보다 숙주의 안전을 생각해서 목숨을 해치진 않으니까.”
대규모 참상으로 번지진 않을 거라는 뜻이기도 했다.
“제…… 제가 도울 수 있는 게 있을까요.”
누가 교단의 사제 아니랄까 봐 엘리시아는 자신의 미약한 신성력으로 어떻게든 해보려 했지만, 시우가 말렸다.
“안됩니다. 엘리시아 씨.”
“하지만 시우 씨. 저는 사제예요. 고통받는 이들을 치료해줄 수 있어요.”
아직 그녀는 그의 부친이 어떤 상황인지 정확하게 모른다. 비화가 영혼석에 그의 영혼을 담긴 했지만, 그는 엘리시아가 행복을 찾을 수 있을 때까지 그저 침묵하며 지켜볼 생각이었다는 모양이었다.
“아직 이 세상이 어떤 곳인지. 어떤 좋은 게 있는지조차 다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어두운 부분부터 보여드리고 싶지 않아요.”
시우의 말에 엘리시아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남성에 대한 면역은 거의 없다시피 하여 거부감까지 드러내지만, 비화가 말한 대로 붉은 실은 붉은 실인지 그녀는 자신의 현 상황을 뒤흔들어버릴 만큼 시우에게 첫눈에 반해있었다.
그건 시우 또한 마찬가지.
어쩌면 데이비 올 라운이라는 존재가 처음 회랑에서 페르세르크의 초상화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했던 게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아…….”
그때 엘리시아가 뭔가 생각난 듯 손뼉을 쳤다.
“왜 그러시죠?”
“저……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몰라요.”
* * *
“똑바로 말 안 해?!”
“흐아악! 죄…… 죄송합니다!!”
각성 범죄자를 심문하는 특수 심문소.
현재 그곳에선 노아와 승현에게 폭력을 휘둘렀던 두 사람이 취조를 받고 있었다.
험상궂은 인상의 강력계 형사의 윽박에 두 사내는 완전히 혼이 빠져나간 상태였다.
당연히 그들이 기억하는 건 거의 없었다.
그들은 다곤 패러사이트의 숙주가 된 존재에게 감염되었을 뿐이었으니까.
문제는 그 감염체를 처리한 뒤로 녀석들의 기억이 모호하다는 사실이었다.
“저…… 저희는 진짜 아무것도 모릅니다! 정말입니다!”
“마…… 맞아요! 늘 그렇듯이 회사에 출근한 것밖에…….”
“회사라…… 그러고 보니 너희 둘. 전부 각성자 길드인 발탄의 사원이던가?”
“그…… 그래요! 정말이에요! 발탄의 말단 잡무 사원…….”
각성자 길드라 하여 모두가 각성자인 것은 아니다. 외려 대부분은 일반인이며 실제로 활동하는 각성자의 비율은 낮았다.
“정말 저희가 어떤 상황인지 일반인인 터라 알 방법도 없고…….”
“흐음…… 그럼 그 발탄 길드에서 감염이 되었다는 건가?”
“제…… 제발 살려주십시오! 길드에 이 일이 알려지면 저희는 그날로 모가지입니다! 제발!”
“제발! 집에는 병든 노모가 있습니다!”
필사적으로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발버둥 쳐보지만, 기생형 몬스터의 존재는 이미 각성자 협회에서도 극히 위험 취급을 하고 있는 게 사실이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들의 취조실의 옆방. 매직미러를 통해 상황을 보고 있던 코오나나 현아는 침음성을 흘렸다.
“외부에서 감염이 되었다곤 해도 그 증상이 일반적인 경우와 달라요.”
코오나의 설명에 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 상황이 주는 답은 하나뿐이네.”
“하나…… 뿐이라 함은?”
“어떤 놈이 감염 사실을 숨기고 나왔고 그 후에 완전 동화된 뒤 저들을 감염시킨 거라고밖에 볼 수가 없겠네요.”
“이거…… 상황이 심각한데요. 대체 어떻게 나올 수 있었던 거지…….”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에요. 감염 사실을 본인도 알고는 있었을 겁니다.”
다곤 패러사이트가 가장 위험한 몬스터 취급을 받지 않는 것은 가볍게 기생하는 것에 비해 스스로도 감염 여부를 바로 알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대체 무슨 이유로…….”
“게이트에서 나온 이후. 감염 사실이 발각되면 감염 여부를 처리하기 위해 며칠간 발이 묶이게 되겠죠.”
“그렇다면……,”
“네. 최초 감염자는 그 발이 묶이는 것을 피하기 위해 거짓으로 감염 사실을 숨겼을 겁니다.”
“어리석은 판단입니다! 그렇게 방치하면 결국 스스로 완전히 감염된다는 뜻인데!”
“자신의 일이 끝난 후 개인적으로 감염을 제거하려 했을 거예요. 효과가 없는 건 아니겠죠.”
실제로 다곤 패러사이트의 감염을 제거하는 방법은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바보도 아니고 일부러 방치했을 리도 없으면 결국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우선 돌아가 볼게요.”
현아가 돌아서자 형사는 떨떠름한 얼굴로 현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조사실을 빠져나오던 현아는 담담한 얼굴로 뒤따라오는 코오나에게 말했다.
“아무 문제 없어야 하는 데 문제가 생겼다. 결과적으로 누군가 감염은 되었다는 건데 일반적으론 불가능하지만 딱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하지.”
“네임드 개체 말씀이시죠?”
“응.”
다만 발탄길드는 최근 다곤 패러사이트가 출몰하는 게이트에 간적이 없으니 결국 용의자의 범위가 너무도 넓었다.
“참…… 조용할 날이 없어. 이놈의 각성자 업계는.”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사고도 엄청 줄었으니까요. 역사가 짧은 만큼 반드시 매뉴얼의 확립에는 진통이 수반될 수밖에 없어요.”
담담하게 대답한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오빠는 이번 일에서 완전 손을 뗀다더라. 다만 에린이는 움직일 모양이던데.”
“제가 도울까요?”
“코오나 양도 바쁜 거 아니야? 그 세발낙지하고 조금이라도 같이 있으려고 그러더니.”
“그러네요. 요즘 제가 부담스러운가 봐요.”
“밀기만 하면 답 없는 법이야. 솔직히 세발낙지 여동생 입장에서 달갑진 않아.”
뭐가 아쉬워서 유부남에게 빠진 건지.
또 결혼도 환 유부남에게 이게 무슨 민폐인지.
미묘한 기분이다.
코오나가 옅게 웃었다.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번엔 권력 좀 쓸게. 당분간 노아와 박승현 씨. 경호 좀 해줘.”
뭐가 되었건 놈들은 노아를 노렸다. 넬타리드 교단과도 깊게 연관되어 있는 두 사람이 다치는 건 이쪽도 달갑진 않았다.
“우리는 우리의 발로 일어서야 해. 언제까지고 그 세발낙지에게 맡기는 건 너무 뻔뻔하니까.”
비화나 데이비의 도움을 받을 생각은 없다.
그렇기에 현아는 이번 일만큼은 자신들의 손으로 해결할 참이었다.
“오빠야도 그걸 바라는 거 같고.”
[지구의 일은 이제 스스로 해결할 줄도 알아야지. 의존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어. 노아랑 엘리시아는 이제 지구 소속이니까. 잘 한번 고민해봐. 혹시 알아? 슬라임이 열 받아서 각성이라도 할지.]
데이비가 그녀에게 보낸 문자는 심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