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438화 (1,438/1,559)

제 1438화

승현이 깨어난 건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였다.

“깼다! 깼어!”

손을 꽉 잡고 마구잡이로 흔드는 노아의 외침이 그의 귀를 때린다.

“으…… 머리야. 뭐야 여기 어디야.”

“병원이야.”

“병원…… 아! 너…… 넌 괜찮냐?!”

승현은 자신이 기절하기 전 두 놈이 자신이 아닌 노아를 노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황급히 물었다.

“지금 내가 문제야?! 그 개자식들이 널 노렸는데!”

“아니 살았으면 됐잖아.”

“웃기지 마! 네가 다치면 내 밥은 누가 해주는데! 누가 나랑 게임 해주는데! 누가 나랑…….”

말을 하던 노아의 표정이 거무죽죽하게 죽는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괜찮아 임마. 넌 여기 세상에 익숙하지 않잖아. 너를 내가 안 지켜주면 누가 지켜주냐.”

극심한 외로움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그것을 해결해준 존재에 대한 의존이 심해진다.

승현과 노아는 자신도 모르게 서로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다시는 그러지 마…… 약속해.”

“알았다. 알았어.”

승현이 피식 웃어 보였다.

그래도 많이 친해진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그였다.

“나쁜 놈들은 다 잡았어…….”

“다행이긴 하네. 그래서. 왜 노린 거래?”

“무슨 일인지는 잘 이야기 안 해줬어.”

“당사자에게도?”

“조사가 되는 대로 이야기해준다는데…….”

똑똑…….

그때 일인 병실 문이 열리며 익숙한 인영 세 사람이 들어온다.

그중 가장 키가 큰 시우가 능글맞게 웃으며 손에 든 과일바구니를 흔들었다.

“표정 보니 멀쩡하네.”

“그래도 찾아왔네.”

“와줘야지. 몸은?”

“괜찮아.”

“저…… 이거 몸에 도움이 되는 약이에요. 정식으로 등록된 레시피로 만든 거니까 몸에 좋을 거예요.”

“아. 감사합니다. 엘리시아 씨.”

“아뇨. 제가 할 수 있는 거라면…….”

엘리시아가 부끄러운 듯 말하자 승현의 시선이 그녀의 몸으로 향했다.

동시에 노아가 표정을 찡그리며 그의 옆구리를 머리카락을 뭉쳐 후려친다.

“켈룩!”

“아주 멀쩡한가 보다?”

“뭐 하는 짓이야, 임마.”

“됐거든?”

짜증을 부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에 비치된 소파에 드러누워 버리는 노아였다.

이후 시우와 승현의 사이에서 안절부절못하던 엘리시아가 조심스레 노아의 곁으로 다가간다.

“이야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좀 했어요.”

“이번 사건? 아니 그전에 좀 물어보자. 그 알프랜드는 뭐만 하면 사고가 터지냐?”

“그러게요. 액이 꼈나 봐.”

사람이 많으니 사고가 터질 수 있다지만 그런 논리라면 알프랜드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허구한 날 사고가 터져야 했다.

“아빠도 그것 때문에 머리가 아픈 모양이에요.”

아무리 직접 관리를 안 하려 해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으니까.

“그보다. 우선 오빠랑 노아를 노린 놈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에반젤린은 조금 굳은 얼굴로 말했다.

“게이트 사고가 터진 거 같아요.”

“게이트 사고…… 설마 몬스터가 나온 거라고?”

극히 드문 케이스는 아니지만 잘 보기 힘든 현상임에도 틀림없다.

모종의 이유로 게이트 속의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현상.

과거엔 규칙 없이 게이트가 나타나거나 마구잡이로 균열이 열리며 몬스터가 쏟아져 나왔지만, 데이비가 지구에 영역을 펼친 뒤로는 균열이 열리고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현상은 극히 드물게 변했다.

그나마 나오는 것들도 어느 정도 감지가 가능한 상황.

마굴이건 지구건 서로 공멸하지 않기 위해 적절한 밸런스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이렇게 갑자기 몬스터가 나타나는 일은 잘 보기 드물었다.

“그럼…… 그 두 놈이 몬스터였다는 거야? 애초에 알프랜드는…….”

“맞아요. 알프랜드는 아빠가 결계를 여기저기 쳐놔서 몬스터가 들어오기 어렵죠.”

다만, 결계라는 게 만능은 아니었다.

“사실 구멍이 없는 건 아니에요. 게다가 이번 놈들은 다곤 패러사이트. 사람의 몸 안 깊숙이 기생하는 녀석이죠.”

즉. 사람을 방패로 써서 결계를 뚫고 들어왔다는 소리였다.

“실제로 그 두 사람 몸 안에서 기생체의 알을 적출해 내기도 했어요.”

중요한 건 지금부터였다.

“다만 범인은 못 찾았죠. 협회가 조사에 나서긴 했는데, 신통찮은가 봐요. 그러니까 아직 그놈들은 건재해요. 문제는 노아를 노리고 있다는 건데…….”

노아를 노리기 시작하면 승현과 노아 모두가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있었다.

“우선은 협회 측에서 각성자를 파견해줄 거에요.”

“살면서 별일을 다 겪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어차피 지키는 건 각성자들의 일이니까.”

“넌?”

“본래라면 저도 나서야겠지만…….”

애석하게도 이번엔 과거 암흑신관 같은 케이스도 아니거니와 데이비로부터 절대 끼어들지 말라는 말을 들은 후였다.

“전 나설 수 없어요.”

“그래. 맡기기만 하는 것도 뻔뻔한 일이지.”

“그리고, 엘리시아 언니도 가능하면 여기 계세요. 그놈들이 노아를 노리는 게 어떤 면인지 모르겠지만 자칫 언니도 노려질 가능성이 있으니까.”

“저…… 그러면 너무 민폐가 아닐까요.”

“차라리 여기 있는 게 더 좋을 거예요.”

* * *

다곤 패러사이트가 유출되면 협회 측에서도 긴장할 수밖에 없다.

다만 사안이 사안인 만큼 함부로 세간에 공표하기 힘들었기에 동원할 수 있는 각성자의 수도 적은 편이었다.

승현의 병실에는 현재 소파에 드러누워 게임을 하며 과자를 까먹고 있는 노아와 그런 그녀의 곁에 앉아 구경하고 있는 엘리시아가 있다.

그리고 그 외에도 시우나 에반젤린 그리고 코오나까지 들어와 있었다.

“본래 절차대로라면 정보를 알려주면 안 되지만 저는 별로 그럴 생각이 없어요.”

코오나는 현재 협회가 파악한 정보를 털어놓았다.

“승현 씨를 습격했던 두 사람은 감염상태가 해제되자마자 전의 기억을 전혀 못 하고 있어요. 해서 협회 측에선 그들이 몸담은 발탄 길드부터 조사를 해봤는데 묘하게도 아무도 양성 반응을 보인 사람이 없네요.”

“발탄? 처음 듣는 길드네.”

“중소규모 길드에요. 제법 질이 나쁘다곤 알려져 있지만, 힘이 강한 편은 아니에요.”

코오나의 설명에 시우가 손을 들었다.

“저…… 코오나 양? 조사해 본 대로라면 다곤 패러사이트의 던전은 상당히 엄중하게 격리가 되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파괴하거나. 그래서 어지간한 길드는 절대 출입할 수 없다고…….”

“네, 하지만 실제로 유출된 만큼 다방면으로 조사해야 했죠. 그래서 나온 결론 중에 가장 신빙성 있는 게…….”

“일반 균열에서 다곤 패러사이트가 나온 건가?”

“그럴 가능성도 제법 크지만, 다곤 패러사이트에 감염된 외부인이 두 사람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도 있어요.”

가능하면 조용히 끝났으면 싶은 일이지만 말이다.

“저…… 이야기 중에 죄송한데요…….”

그때 엘리시아가 천천히 손을 든다.

“무슨 일이시죠?”

“제가 도울 수 있을 거 같아서…….”

“도울 수 있다고요?”

그녀가 조심스레 말했다.

“네. 그…… 이래 봬도 제가 몽마 출신이라…….”

“몽마?”

“네. 아직 연습 중이긴 한데. 상대를 매혹해서 심층의 진실을 자백하게 만들 수 있어요. 대상이 조금만 면역이 강해도 안 되긴 하지만…… 일반인이라면…….”

“안됩니다.”

그때였다.

시우가 단호하게 그녀의 말을 잘랐다.

“절대. 안됩니다.”

“시우 씨?”

“위험해요.”

위험한 게 이유가 아닌 것 같다.

에반젤린이나 코오나는 반사적으로 시우의 속내를 눈치챌 수 있었다.

첫눈에 반한 여자가 다른 남성을 매혹한다는 사실 자체가 굉장히 거슬렸으리라.

“뭐. 그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일반인에게 위험을 부담하게 할 생각은 없어요. 조사는 저희가 진행하고 있어요. 그동안 저는 혹여나 있을 습격에 대비해 여러분들을 지키는 게 목적이고요.”

“마음 같아선 도와주고 싶지만, 슬슬 손을 떼고 물러나야 해서요.”

에반젤린이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제 본분을 잊으면 안 되니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다곤 패러사이트는 감염 여부가 위험한 거지 단순 전투능력은 크게 위협적이지 않아요.”

게다가 상위 각성자나 특수한 힘을 지닌 이들에겐 기생조차 불가능하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왠지 불안한 기분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 * *

노아는 천성이 게으르다.

그리고 식욕이 엄청나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태어나면서 가장 우선순위로 생각하는 것들이 분명 존재한다.

‘아무것도 못 했지…….’

밤늦은 시각 곤히 잠든 승현의 곁에 앉아 그의 뺨을 쿡쿡 찌르던 노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를 노리고 온 몬스터라고 했던가.

그런 몬스터가 그녀를 노리기 위해 승현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 생각이 미치자 격노가 밀려왔다.

게으름을 넘어선 짜증과 분노.

승현이 그녀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기둥인 것은 맞지만 그 외에도 그녀의 마음을 뒤숭숭하게 만드는 이 기분 나쁜 감정은 어떻게든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힘이 별로 없지.’

잠들어있는 승현을 노릴지도 모른다.

느낌이 싸해진 그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조용히 걸어 병원 바깥에 있는 산책로로 향했다.

이렇게 걷는 것도 귀찮았는데. 자신이 병실에 있는 거로 승현이 위험해진다면 그게 더 싫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나오는 게 맞을까.

“혼자 있네.”

그때였다.

언제 온 것인지 코오나가 한숨을 내쉬며 그녀에게 다가온다.

“혼자 있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몰라?”

“알고 있어. 하지만 거기 있으면 승현이 휘말려.”

“그럴 수는 있지. 하지만 다곤 패러사이트에 감염될 수 있는 이들은 내가 막을 수 있어. 그러니 돌아가. 최대한 빨리 숙주를 찾아낼 테니.”

코오나의 단호한 대처에 노아는 표정을 찌푸렸다.

“나 바보 아니야. 인간은 영악해. 만약 나를 죽이는 게 목적이면 저 병원에 대고 폭탄만 터뜨려도 승현과 나는 둘 다 죽어.”

“그런 짓을 대놓고 할 정도로 우리가 못 미덥다는 뜻이야?”

“가능성을 없애는 거지. 내가 여기 있으면 그놈들이 굳이 승현을 노리진 않을 테니.”

그녀의 말에 코오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곤 패러사이트는 사람에게 기생한 뒤 그 사람의 지식을 흡수해. 그놈들도 목적이 있는 이상 멍청하게…….”

말을 하던 코오나가 반사적으로 검을 뽑아 든다.

“미안. 취소하자. 아무래도 이것들 제대로 미친 거 같네.”

동시에 그녀의 주변으로 다수의 사람이 모여들었다.

급수는 그리 높지 않다.

다곤 패러사이트에 감염될 정도면 사실상 높은 급의 각성자는 아니라 할 수 있다.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마치 섬뜩한 인형처럼 다가오는 그들은 딱히 이렇다 할 접점이 있는 이들이 아니었다.

“대체 노아를 왜 노리는 거야?

질문에 그들은 답하지 않았다.

“노아. 내 뒤로.”

“알고 있어…….”

노아는 자신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퍽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보였다.

파앙!!!!

이윽고 그들이 코오나를 향해 파고든다.

동시에 코오나는 검을 빼든 채로 작고 아름다운 음률을 노래했다.

촤악!! 서걱!!!

동시에 그녀의 검이 마치 은하수를 머금은 것처럼 요동치며 그들을 뒤흔들었다.

코오나가 각성한 인도자의 힘을 쓴다면 저들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복원에 가까운 힘이라면 저들의 상태를 감염되기 전으로 돌릴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차원의 진주를 잃어버린 뒤로 힘을 완전히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큰 효과를 보지 못할 수도 있었다.

괜한 부담을 질 바에는 직접 제압하는 게 빠르리라.

그녀는 자세를 살짝 낮춘 뒤 검을 강하게 틀어쥐었다.

상대의 수는 많지만, 제압에는 문제가 없었다.

[신수의 무곡]

[해태의 춤]

그녀의 몸이 잔상처럼 흐릿해진다.

동시에 은하수를 머금은 것 같은 검의 잔상이 순간적으로 사방에 터져 나갔다.

다곤 패러사이트는 숙주가 죽을 위기에 처하면 살기위해 반사적으로 몸 밖으로 빠져나간다.

코오나만이 할 수 있는 완벽한 제압법.

상대를 죽기 직전까지 몰아붙여 놈들을 빼낸 뒤 상대를 회복시킨다.

코오나가 그들을 모두 제압하는 데엔 많은 시간도 필요하지 않았다.

“후우…….”

순식간에 그들을 모두 제압한 상황에서 코오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대놓고 온다는 건 소모전으로 가겠다는 건지 그만큼 노아가 중요하다는 건지, 아무래도 증원을…….”

쌔애앵…… 카아아앙!!!

갑작스런 굉음과 함께 코오나의 신형이 밀려 나갔다.

“이게 무슨…….”

놀란 그녀가 아직 멀쩡한 적이 있다는 사실에 눈을 크게 떴다.

조금 전의 공격은 단순히 하급 각성자의 힘이 아니었다.

최소 각성자의 역량으로만 놓고 봐도 코오나와 비슷한 수준.

그녀의 얼굴에 긴장이 서렸다.

저벅…… 저벅…….

이윽고 어둠 속에서 검은 옷을 입은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당신은?!”

놀란 코오나가 흠칫 떨었다.

그녀의 시야에 비친 것은 S급 각성자.

그것도 코오나와 비슷한 1세대 각성자였다.

또한, 이런일을 할 정도로 성정이 나쁜 인물도 아니었다.

“S급 각성자가 감염됐다고? 이게 말이 돼?”

상위 각성자는 다곤 패러사이트에게 감염되지 않는다.

감염 자체를 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가 그녀를 노렸다면. 즉 저 남자는 현재 다곤 패러사이트 쪽과 한편이라는 소리인데.

감염이 아니라면…….

“설마…… 당신 알고서도 돕는 거야?”

코오나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소리쳤다.

하지만 사내는 담담하게 걸어온다.

‘아냐. 감염증세가 분명하다. 이거 빨리 알려야…….’

촤악!!!

“꺅!!”

코오나의 몸이 순식간에 튕겨 나갔다.

방심한 것도 있지만 방금 전 보여준 힘은 사내가 본래 가지고 있던 힘의 이상이었다.

마치 자신의 육체를 돌보지 않고 막무가내로 저력을 끌어내는 듯한 모습이었다.

상처는 깊지 않다. 하지만 치료는 필요했다.

상위 각성자가 감염될 리가 없기에 안일하게 생각한 게 문제였을까.

그녀가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사내는 곧바로 코오나를 걷어차 날려버린 뒤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온다.

평소 코오나를 지켜주던 보팔 레빗은 그녀가 떼어놓은 상황이기에 그 도움을 바랄 수도 없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코오나가 숨을 골랐다.

“앞뒤 가릴 때가 아니네…….”

코오나는 천천히 마음을 진정시키며 검을 내려 세웠다.

조금 전부터 노아의 상태가 좋지 않다.

습격을 당한 직후부터 극심한 스트레스에 노출되었는지 숨이 굉장히 거칠었다.

그렇다면 시간을 끌수록 안 좋은 상황.

빠르게 이 남자를 제압한 뒤 기생을 제거해야 했다.

“하압!!!”

이윽고 그녀가 움직이려던 찰나였다.

“흐으…… 흐으으으!! 하아으!!”

코오나의 귓가에 반사적으로 노아의 거친 숨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섬뜩한 기류와 함께 해태의 힘이 그녀에게 순간적인 미래를 보여준다.

그녀는 볼 수 있었다. 이대로 파고드는 순간 거대한 무언가에 당한다는 것을 말이다.

본능적으로 그녀의 몸이 바닥을 박차며 그 장소를 벗어난다.

마치 슬라임처럼 꿀렁거리던 노아의 눈이 희번덕거리기가 무섭게 폭주하듯 그녀의 머리카락이 길어졌고 마치 촉수 다발처럼 사내의 육신을 휘감는 것을 말이다.

순식간에 휘감겨 제압당한 그를 향해 노아가 빠르게 내달렸다.

그리고.

그녀의 손이 마치 거대한 액체처럼 변하더니 사내의 몸 안으로 빠르게 스며들기 시작했고 사내의 육신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노아!”

“흐으…… 흐으으……! 흐아아아!!”

코오나가 황급히 노아를 불렀음에도 노아는 괴성을 내질렀고.

뚜두둑!!

이내 사내의 입안에서 끔찍하게 생긴 무언가를 뜯어내 버렸다.

지금까지 기생체를 이렇게 온전하게 꺼낸 사례는 사실상 없었다.

하지만 노아는 자신의 육체를 사내의 몸 안에 밀어 넣은 뒤 장악하고 기생체를 찾아 뽑아버린 것이다.

노아는 슬라임이라고 했다.

하지만, 코오나가 아는 그 어떤 슬라임도 이런 힘을 내보인 적은 없었다.

[스트레스 유발대상을 제거…… 원작자 데이비 올 라운 표 자기 방어 모드 22번. 해제, 휴면 모드 가동. 본 개체의 스트레스에 주의 요망.]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트리거였을까. 노아는 감정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중얼거린 노아가 힘없이 철퍼덕 쓰러졌다.

노아가 뜯어내 버린 기생체는 그녀가 알고 있는 다곤 패러사이트보다 훨씬 거대했다.

녀석은 다음 숙주를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튀어 올랐다.

하지만 코오나의 손에 그대로 잡힌 뒤 추욱 늘어져 버렸다.

“22번? 대체…… 뭘 만든 거야…… 아니 그보다…….”

코오나는 쓰러진 노아를 부축하며 황급히 스마트폰으로 어딘가에 전화했다. 전화 대상은 현아였다.

“변종이 나타났어요. 아무래도 일반 다곤 패러사이트가 아닌 거 같아요.”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변종이라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

“S급 각성자가 감염됐어요.”

그 한마디에 현아의 입이 다물어진다.

-설마…… 극소수의 확률로 출몰하는 네임드 개체야?

“확인해봐야 할 거 같아요.”

* * *

같은 시각.

성역에서 안절부절못하며 노아를 지켜보던 넬타리드가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대체 애한테 뭘 넣어둔 겁니까!!”

유별나게 노아에 대한 집착을 내비치는 넬타리드의 분노는 상당했다.

그 외침에 데이비가 시선을 피한다.

“자기 방어는 하라고…….”

“당신의 개인 취향이 아니고요?”

“들켰네. 참고로 하나하나 신경 써서 만들어서……”

“22번은…….”

“에오니샤와 밀피유가 자체 방어 시스템에 이것저것 넣다 보니…….”

“…….”

“아 그래도 유용한 기능들도 많이 넣어놨어. 자가수복도 있고. 그…… 전파도 수신할 수 있고. 미식연구회의 괴식도 버틸 수 있는 튼튼한 미각에…….”

이 미치광이 좀 보게.

넬타리드는 그제야 노아가 왜 그의 생각과 다르게 태어났는지를 깨달았다.

이 인간에게 맡기면 안 됐는데.

애초에 데이비 올 라운이 페르세르크를 제외하고 육신을 만들면서 멀쩡하게 만든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넬타리드는 몰랐다.

“요즘은 이런 거 만들고 있으면 페르세르크가 등짝을 후려갈기거든. 쓸데없는데 예산 쓰지 말라고.”

데이비가 직접 제작한 존재 중 사실상 최후번대인 노아는 사실상 데이비의 제작품 중 가장 역대급의 걸작이라는 것을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