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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441화 (1,441/1,559)

제 1441화

경악스러운 상황이다.

상당수의 인물이 포위하고 있는 이 상황이 말이다.

“대체 어떻게 여길…… 아니. 승현이가 감염되었다고 했지…….”

이들이 이곳의 위치를 찾아낸 건 승현이 감염되었다면 얼마든지 노출될 수 있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기습적으로 올 수 있었던 것일까.

거대한 비행기에서 낙하한 이들은 마치 고도로 훈련된 특수부대원처럼 너무도 일사불란하게 이곳을 장악했다.

아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지금 상황은 극히 심각한 상황이다.

시우는 식은땀을 흘렸다.

오히려 섬이기에 도망갈 퇴로가 사라진 상황이다.

그나마 그들의 신변을 지켜주는 베헤모스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 상황.

헤엄쳐서 도망간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고 저들과 싸워 이기는 건 더더욱 불가능하다.

문제는 감염된 이들 중 고위 각성자도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이들이 차라리 이지 없이 본성대로 날뛰었으면 차라리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것들은 엄연히 이성을 지니고 있었다.

아무리 다곤 패러사이트가 변이를 일으켰다고 해도 감염자의 수가 너무 많아…….

일반인에 불과한 시우가 저들에게서 도망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떻게 해?”

“제압해?“

“제압해.”

그때였다.

시우의 눈에 뭔가 이상한 점이 비치기 시작했다.

‘뭐지 이건.’

시우는 오래전 눈을 잃었었다.

하지만 티오니스 성자 데이비 올 라운의 시술 후 그는 특수한 의안으로 눈을 대처했고, 그 덕분에 일반적인 시야 이상으로 예리하게 무언가가 보였다.

‘움직임에 딜레이가 있다.’

생명체라면 없어야 할 자연스러운 움직임.

하지만 이들은 살아있되 묘하게 딜레이가 존재했다.

찰나의 순간도 보는 프로게이머 출신에 눈까지 사기적인 시력을 지니고 있는 결과였다.

저벅.

“이런!”

“꺅!!”

문득 그들의 움직임에서 보인 묘한 모습에 집중하고 있던 시우가 반사적으로 엘리시아를 끌어안고 몸을 날렸다.

동시에 한 각성자의 검이 시우의 등을 크게 베었다.

촤악!!!

“시우 씨!!!”

깜짝 놀란 엘리시아의 눈이 부릅 뜨여진다.

“으…… 으으으…… 으으윽!”

전투라는 것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사람이 칼에 크게 베였을 때. 그때 그가 느끼는 고통이나 혼란, 두려움은 상상 이상으로 무겁다.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한 채 이를 악물고 침음성을 흘리는 시우는 마치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했다.

“움직이지 말아요! 지금 당장 치료할게요!”

엘리시아는 황급히 상처가 크게 벌어진 그의 등에 회복마법을 쏟아부었다.

“필요한건 저 둘이다. 나머지는 죽여도 돼.”

그때 한 사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최대한 신속하게. 놈들이 눈치채고 움직이고 있다. 빨리 이곳을 떠야 해.”

시간이 부족한 건 저쪽도 마찬가지.

시우는 승현이 슬슬 움직일 낌새를 보이자 곧바로 주머니에 손을 넣어 손에 잡히는 것을 가볍게 부러뜨렸다.

동시에 빠르게 공명하며 열을 발산하는 물건에 시오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윽고 사내 하나가 천천히 다가오더니 손바닥을 펼쳤다.

그러자 사내의 손바닥 피부 위로 보랏빛 기괴한 점액질 같은 것이 돋아난다.

굉장히 징그럽기 짝이 없다.

촤르르르륵…….

가느다란 촉수 같은 것들이 돋아난 그것이 이윽고 시우의 목을 휘감는다.

단번에 부러뜨리려는지 압력이 강해진다.

“시우 씨!!”

엘리시아가 황급히 소리쳐보지만 여성 각성자 두 명이 순식간에 엘리시아를 잡아 제압했다.

“망할! 왜 안 되는 거야!!”

반면 노아는 자신의 힘이 아직도 안 움직이는 것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때였다.

“끄륵…… 끅!!

칼에 한 번 베여서 겁을 먹고 덜덜 떨어도 될법하건만, 시우는 정신을 다잡고 크게 소리쳤다.

“노아! 엘리시아 씨!! 눈감아!!”

퍼어어엉!!!

그야말로 한순간이었다.

시우가 주머니에서 놓치듯 꺼내 던진 것이 크게 번쩍이더니 사방 일대를 휘감는다.

-매우 강렬한 섬광탄. 륀느가 모아놓은 데이비 님 표 군중 제어 시스템을 높게 평가. 낮은 확률이지만 륀느의 은신처를 공격하는 존재가 있을 시 사용할 것을 명시.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륀느는 이런 상황을 예측한 것일까. 아니면, 혹시나 하는 상황에 그를 배려해준 것일까.

무엇이 되었건 도망칠 곳은 없지만, 반격의 단초는 얼마든지 있는 곳이었다.

섬광탄의 효과는 확실했다.

“끄아아악!!!”

평소의 각성자였어도 크게 주춤했을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왔고, 시우는 그 혼란 속에서 목을 휘감던 촉수가 빠져나갔음을 깨닫고 엘리시아의 팔을 잡았다.

“노아!!

시우의 외침에 눈을 감고 끙끙대던 노아가 반사적으로 승현을 둘러멘다.

겉보기엔 참 가녀리기 짝이 없는 노아였지만 힘이 제법이었다.

‘어차피 멀리 도망은 못 간다…….’

시우는 우선 가장 먼저 가까운 은신처 중 한 곳으로 도망칠 생각이었다. 협회 측에서 지원을 오던지 이상을 느낀 베헤모스가 돌아오기까지 시간만 벌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생각 이상으로 버벅거리는 그들을 뒤로한 채 시우는 온몸에서 흐르는 식은땀을 닦을 생각도 못 한 채 숲속으로 내달렸다.

“쫓아!!”

이윽고 정신을 차린 일부가 엄청난 속도로 시우를 향해 쫓아오기 시작했고 시우는 곧바로 근처에 있는 돌탑의 머리 부분을 살짝 돌린 뒤 그대로 무너뜨렸다.

우우우웅!!!

동시에 밑에 숨겨진 마법진이 발현되었고.

투웅!! 퉁퉁퉁!!!!

바인드 웹 마법이 다량 추적자들을 향해 발사되며 그들을 모조리 휘감아버렸다.

“하악…… 하악…….”

거친 숨을 내쉬며 뒤따라오는 엘리시아를 보며 시우는 더는 안 되겠다 판단한 뒤 그녀를 안아 들었다.

“실례할게요. 엘리시아 씨!”

“꺅!”

아무리 가벼운 여성이라도 사람이 들고 뛰기엔 굉장히 무거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우는 어디서 나온 것인지 모를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며 그녀를 안아 들고 빠르게 내달렸다.

처음엔 당황한 엘리시아였지만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자신을 지키는 시우의 그 듬직한 모습에 눈을 크게 뜨고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여기서 멀지 않아요! 그곳까지만 가면 못해도 2시간 정도는 버틸 수 있습니다!

“시…… 시우 씨는 그걸 어떻게…….”

“이곳에 오기 전 륀느 양이 알려주고 간 것들이 몇 개 있습니다. 조심하라고 알려준 거겠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네요.”

뒤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질질 끌리듯 승현을 둘러메고 뒤따라오는 노아가 보인다.

“하아…… 하아…….”

노아의 상태도 좋진 않았다.

상당히 지친듯한 모습이었다.

“빨리!!”

이윽고 바위틈 너머의 작은 스위치를 건드린 그가 발을 동동 굴렀다.

이미 시시각각 그들을 압박하는 다곤 패러사이트들의 움직임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1초가 10년처럼 느껴지는 그 찰나의 순간 시우는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노아와 기절한 승현, 그리고 엘리시아를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마지막에 그도 몸을 던져 좁은 은신처에 몸을 숨겼고 그대로 문을 닫아버렸다.

쿠웅!!!

묵직한 소리와 함께 긴장의 끈이 툭! 하고 풀렸다.

그제야 욱신거리는 통증과 함께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거의 나뒹굴 듯 튕겨 들어온 네 사람인 만큼 상황은 엉망진창이었다.

“여긴…….”

“창고라고 들었어. 다만, 중요한 물건을 담아두는 곳이라 륀느 양이 신경 써서 방어시스템을 만들었다더라. 잘하면 여기서 버틸 수 있을지도 몰라.”

시우의 설명에 노아는 조용히 승현을 바라보았다.

감염 때문에 의식을 잃었던 만큼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억지로 이곳을 열려고 들면 방어시스템이 발동해. 특히 이 숲에는 그런 기믹들이 많으니까. 잘만 파악해두면 시간을 충분히 벌 수 있어.”

시우의 설명에 엘리시아는 곧바로 그를 벽면에 몰아붙였다.

“에…… 엘리시아 씨?!”

“가만히 있어요!”

순식간에 끌어안듯 그를 쓰러뜨린 엘리시아는 창백해진 얼굴로 시우의 등에 난 상처를 다시 치유했다.

일차적인 치유만으로 완벽하게 낫게 하는 건 데이비 정도나 가능하지만, 엘리시아의 회복마법이 그리 대단한 편은 아니었다.

촉촉하게 젖은 눈망울로 시우의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하지만 크게 효과가 없다.

“저기…… 이거 구급 상자 아냐? 이걸로 일단 약이라도 발라보자.”

“고마워요!”

엘리시아는 티오니스 제 구급상자를 받고 반색했고, 곧 익숙하게 시우의 상태를 치료했다.

“끄으윽…… 꽤…… 익숙하시네요…….”

“낫에 베여서 오시는 분들이나 장난치다가 날붙이에 크게 다친 사람들은 여럿 봤으니까요…….”

엘리시아는 특수한 약재 몇 개를 조합해 망설임 없이 으깬 뒤 손에 덕지덕지 발라 시우의 등에 발랐다.

“그런데…… 우리 언제까지 여기서 버텨?”

“당장은 안전할 테지만. 우선 협회가 지원을 오거나 베헤모스 씨가 돌아오길 기도해야…….”

“그나저나 정말 대단하시네요. 설마 각성자들을 상대로 그렇게 도망치실 줄이야.”

“저도 제가 어떻게 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엎드린 채 씨익 웃던 시우가 알싸한 통증에 인상을 찌푸렸다.

“끄응…….”

그때였다. 의식을 놓고 있던 승현이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으윽…… 머리야…… 여긴 또 어디야.”

“승현!!”

“노아?”

반사적으로 승현을 끌어안고 오열하는 노아를 보며 승현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큰 상처를 입고 치료받고 있는 시우를 보고 눈을 크게 뜬다.

“형. 설마…….”

“놈들이 이곳을 찾아냈고 지금 우린 갇히듯 숨어있다. 그게 전부야.”

15평 정도 되어 보이는 크기의 지하 공간.

물론, 은신처라 불리는 곳인 만큼 탈출로는 또 하나 있지만 적이 몇 명인지조차 모르는 상황에서는 신경 써야 했다.

쿠웅!!! 쿵!!

바깥에선 이미 은신처를 뚫으려는지 움직임이 보인다.

“괘…… 괜찮을까요…….”

“걱정 말아요. 저장소는 튼튼한 편이라 상위 각성자가 와도 못 열 테니.”

시우가 엘리시아를 안심시키는 동안 승현은 자신이 감염되어 모두를 위험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굉장히 우울해져 있었다.

“저기. 승현.”

“자…… 잠깐만. 떨어져, 노아.”

“왜!”

“가까이 오지 말아봐. 혹시 내 몸 안에 아직 그 기생충이 남아있을지도 모르니까.”

승현은 한번 당한 게 두 번은 당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괜찮아! 승현! 이제 나 구분할 수 있어! 숨어도 전부 구분할 수 있다고!”

“그거 제대로 다룰 수 있는 거 맞아?”

마치 육체가 본능을 되찾아가듯 노아는 승현의 안에 숨겨진 기생충을 찾을 수 있게 되었지만, 신뢰성은 떨어졌다.

자신의 힘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잠깐 거리를 두는 게 맞…….”

물론 그런 승현의 걱정은 노아에게 하등 의미 없는 짓이었다.

순식간에 승현의 다리를 잡고 늘어지며 노아가 소리 질렀다.

“닥쳐!”

“으억! 얌마!”

“없다고! 없으면 없는 줄 알아!”

“아니 저놈들이 노리는 게 너라는 건 알고 있는 거냐?”

“알아!”

“그러면 좀 떨어져 임마!”

“싫다!”

당당하게 외치며 그녀가 더욱 달라붙었다.

“이야기 들었어. 지구의 각성자는 생각보다 강한 사람이 많지 않아서 여긴 못 들어오잖아. 승현은 더 이상 감염되지 않았으니 괜찮아.”

“네 힘으로 저들을 어떻게 할 순 없어?”

“안돼…….”

노아가 기생충을 적출하던 힘을 다룰 수 있으면 문제가 없지만, 그녀는 그 힘을 꺼내는 법조차 몰랐다.

“우선 여기 먹을 게 있으니까 배라도 채워놔. 속이라도 든든하게 해놔야 어떤 상황에서든 움직이지.”

시우가 창고에 고이 보관된 비상식량들을 꺼내며 말하자 노아는 눈을 반짝였다.

“마침 뱃가죽이 등에 들러붙었는데 잘됐다!”

그리고는 쪼르르 뛰어가 시우가 건네주는 비상식량 박스를 빠르게 연 뒤 그 안에 든 통조림을 꺼냈다.

“으윽. 이거 왜 안 열려.”

“어휴…… 줘봐.”

통조림을 붙잡고 씨름하는 그녀를 뒤에서 끌어안듯 승현이 다가가 통조림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노아의 눈이 급격히 커지더니 그대로 굳어버렸다.

“어…… 어어?”

“됐다. 이제 먹어.”

승현이 아무렇지도 않게 물러나자 노아는 방금 전 느낀 묘한 감정에 얼굴을 붉혔다.

평소 먹는 거라면 환장을 하는 노아였지만 지금은 통조림이 입에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조차 모를 상황이었다.

“후…… 그런데 정말 이상하네…….”

“뭐가?”

“다곤 패러사이트. 애초에 알프랜드부터 너와 노아를 노리고 온 게 분명해 보였는데.”

“그런가?”

“이상하지 않아? 대체 어떻게 이런 정보를 얻었을까.”

“노아나 엘리시아 씨가 지구에 있는걸 알고 정체까지 알고 있는 사람 중 하나가 근본이 되는 숙주라는 건가? 설마…….”

순간적으로 현아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 외의 인물들은 감히 기생충 따위가 감염시키는 게 가능한가 의문스러운 존재들뿐이었으니까.

현아마저 감염된 상태였다면, 모두를 속이고 있는 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하지만 시우는 고개를 저었다.

“현아 씨는 아닐 거야. 감염자들의 움직임을 보면 한가지는 알 수 있거든.”

시우의 말에 모두 그에게 시선이 향했다.

“한가지?”

“다곤 패러사이트에 감염된 감염자들 말이야. 행동에 딜레이가 있어. 아주 미세하지만.”

“그게 보인다고?”

“내가 시력이 좀 많이 좋아.”

동체 시력이 괴물급에 가까운 시우였다.

“첫 번째 숙주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주 미세하게 행동에 딜레이가 있어. 아마 숙주가 되는 이가 죽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 괴리가 발생하는 거겠지.”

시우의 예측대로라면 첫 번째 숙주도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그 숙주가 죽은 게 아니라면 말이다.

“하지만 현아 씨는 그런 딜레이가 전혀 없었어.”

“그럼 대체 누가…….”

“또 한 명 있지. 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

그 말에 승현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설마 코오나…….”

“아니. 한국 각성자 협회 협회장.”

“말도 안 되는 소리. 각성자 협회 협회장은 게이트에 입장하는 게 안돼. 그 사람이 어디서 감염됐다는 거야. 처음부터 다곤 패러사이트가 외부에 있었던 게 아니라면…….”

“누군가에게 감염된 채로 나와서 옮겨졌을 가능성도 있지.”

그런 추측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그때였다.

“피해!!!”

갑자기 몸을 날린 승현이 노아를 밀쳐냈고, 날카롭게 파고든 촉수 다발들이 승현의 몸을 관통했다.

“끅…… 끄아아아아악?!”

끔찍한 격통에 그가 쓰러진다.

동시에 닫혀 있던 은신처가 강제로 개방되었다.

“어…… 어떻게?!”

“어떻게긴. 운이 좋았다네.”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흠칫 놀란 시우가 고개를 돌렸다.

사내의 얼굴은 알고 있는 인물의 외관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티비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각성자 협회장…….”

“생각보다 애를 먹이는군. 누가 도와주길 바라나? 미안하지만 저들도 내 손바닥 안이라서 말이네. 지원은 오지 않을 것이고 그 거대한 괴물은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있으니 자네들을 도울 사람은 여기 없네.”

“스…… 승현…….”

비명과 함께 다시 쓰러져버린 승현을 부릅 뜬 눈으로 시야에 담던 노아의 동공이 대번에 축소된다.

이번에도 못 지켰다.

이번에도 그를 다치게 했다.

-그의 곁을 지켜주고 그와 가족이 되어주렴. 그가 위험할 때 그를 지켜볼 수 있게.

시체처럼 추욱 늘어진 승현을 보며 노아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부들부들 떨렸다.

“너무 원망하지 말게. 나도 이렇게까지 무리수를 둘 생각은 없었지만, 자네는 우리 종족에게 너무 위험하거든. 이번 일이 끝나면 근본 숙주를 옮겨야겠지만 자네를 처리하는 거면 충분히 가치가 있지.”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각성자들이 어떻게 소리 없이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말이다.

협회 측에서 감염자를 검사한답시고 모았던 게 오히려 감염된 협회장의 병력을 확보할 기회를 준 셈이었다.

한국 각성자 협회장이면 탈것을 공수하는 건 마냥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다량의 각성자들을 대동한 채 다가온 협회장은 곧 승현을 부둥켜안은 채 덜덜 떨고 있는 노아에게 다가갔다.

동시에 그의 손에서 보랏빛 촉수들이 피부를 뚫고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미안하네만 자네는 여기서 죽어줘야겠네. 천적의 존재는 달갑지 않거든.”

그리고 그 촉수 중 일부가 노아의 목과 허리를 조여 부러뜨리기 위해 휘감긴다.

“노아 씨! 도망치세요!”

엘리시아가 황급히 소리쳤지만, 노아의 몸은 시시각각 떨릴 뿐이었다.

그렇다고 저들을 제압할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가끔씩 보여주던 위협적인 힘도 생각은 해둬야겠지.”

협회장은 노아가 자신들의 동족을 적출하는 것을 보았기에 더욱 신중하게 함정을 팠다.

이윽고 촉수가 노아의 목을 완전히 휘감고 점점 힘을 가하는 그 순간이었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노출된 노아의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했고.

이내 그녀의 입에서 무기질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경고, 트리거의 부상과 스트레스 수치가 일정 수치를 넘었으므로 자기방어 시스템에 들어갑니다. 가능성 있는 자기 방어시스템 계산. 1번 방어시스템 실패. 2번 방어시스템 실패…….]

놀라울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노아의 몸이 일렁였다.

노아는 1번부터 계속 실패만을 언급했다.

그리고 그 숫자가 무려 24번이 되었을 때.

노아의 눈동자가 반짝인다.

[24번째 최종방어 시스템. 의태를 개시. 개체의 각성을 촉구, 리미트를 모두 해제합니다.]

의태?

무언가로 변한다고?

동시에 노아의 육신이 마치 슬라임처럼 변했고 이내 무언가로 변하기 시작했다.

[단계적 의태 개시. 첫 번째 데이터를 활성화. 의태 개체 명.]

짧게 침묵한 노아의 입에서 충격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보팔 레빗. 재현율 20%]

* * *

“데이비 님. 승현의 생체 데이터가 안정화되었다고 보고.”

“륀느. 팝콘.”

“륀느가 팝콘을 높게 평가.”

륀느가 팝콘 박스를 가져와 들이민다.

“데이비 님. 굳이 구경할 필요가 있는가 의문.”

“노아에 대해 잘 모르는 시점에서 애초에 이건 이길 싸움이 아니거든. 됐고, 노아 기록이나 잘해. 솔직히 박승현이 여기서 노아를 버리고 도망칠 생각이었으면 그녀를 회수했을 거다.”

이건 지구의 자립심을 시험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반대로 승현과 시우를 시험하는 것이기도 했다.

비화는 별로 신경을 안 썼지만 적어도 책임을 끝까지 져야 하는 입장일 테니까.

“경고, 이 사실을 페르세르크 마님이 알면 데이비 님의 등짝이 걸레짝이 될 거라 판단.”

단순히 시험을 치른다고 데이비가 그 꼴이 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노아의 육신을 만들면서 데이비는 오랜만에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다.

덕분일까. 페르세르크가 영지 예산을 아껴가며 모아둔 재료 중 일부를 몰래 훔쳐다가 사용해버리고 말았다.

영지개발부와 미식연구회.

그들의 근본은 결국 데이비 올 라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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