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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443화 (1,443/1,559)

제 1443화

베헤모스가 극적인 순간에 다곤 패러사이트를 먹어치우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놈이 무사히 바닷속으로 들어갔고, 그곳의 생명체에게 기생했다면?

심각한 문제는 다곤 패러사이트를 감지하는 기계가 녀석의 변이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회수한 개체를 조사한다면 새로운 감지 장비를 만들 수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얼마나 감염될지 감도 잡을 수가 없었다.

온몸의 피가 순식간에 냉각되는 것처럼 차갑게 느껴진다.

현아는 굳은 얼굴로 바닷가에 육체의 일부만 드러낸 채 인어와 함께 일광욕을 즐기는 베헤모스와 그런 그의 몸 위에 늘어져 있는 속 편한 인어를 보았다.

언제봐도 신기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으윽…… 죽겠다…….”

일반인인 주제에 치명상에 가까운 피해를 입어놓고도 살아남은 승현을 보며 현아가 다가갔다.

그리고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그런 행동에도 각성자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제가 좀 더 면밀히 조사했어야 했는데. 박승현 씨에게 위해가 가해진 점 사과드립니다.”

“고개 드세요. 각성자 협회장이 감염되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잖아요. 그리고 신성 측 대표가 사과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승현의 말대로 책임소재만 놓고 보면 각성자 협회가 두들겨 맞을 일이지 신성 그룹이 맞을 일은 아니었다.

“이건 사과드리는 게 맞아요. 각성자 협회는 일반인을 게이트의 재해로부터 보호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각성자 협회와 공조하고 있는 신성 또한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 기생충이 보통 기생충도 아니잖아요.”

“고마워요.”

“협회장님은 아직 의식을 못 찾았어요. 아무래도 깨어나고 전말을 들으면 엄청 화내시겠죠.”

“그렇겠지. 가족을 몬스터에게 잃었는데 그 몬스터에게 조종당했으니…….”

“노아 양. 현재로선 감염 여부를 확인할 방법은 당신뿐이니 조금 도와주세요.”

예의를 차려 현아가 요청한다. 이에 노아는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승현이 등을 살짝 떠밀었다.

“도와줘. 할 수 있지?”

“후우, 알았어.”

그녀가 나선 이상 감염 여부는 한순간이었다.

“엘리시아 씨. 다친 곳은 없으시죠?”

“지금 그게 중요해요?! 대체 아무런 힘도 없는 분이 왜 이렇게 겁이 없는 거예요!”

“하. 하하…… 그래도 운이 좋아서 크게 다치진 않았으니…….”

“말도 안 되는 소리 말아요! 시우 씨는 제 본능을 치료하기 전에 그 겁 없는 행동부터 고쳐야겠어요!”

반면 시우는 엘리시아에게 잔소리 폭탄을 인계받고 있었다.

과거 교단에서도 성인 남성에게 이렇게 화를 내본 적이 있었을까.

엘리시아는 시우라는 존재가 지금껏 다른 남성과 달리 이성적인 이유로 만나고 있음을 알면서도 이상하리만치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

유시르의 우려나 예상과 다르게 그녀의 정신적 문제는 시우에게서 급속도로 녹아내려 간다.

“그나저나 그 기생충을 삼켰는데, 저거 괜찮아요?”

“아마 괜찮을 거예요. 고작해야 기생충 따위가 감염시킬 정도로 가벼운 존재가 아니니까. 지금 중요한 건…….”

변이를 일으킨 다곤 패러사이트의 감지방법이었다.

“기존의 장비로는 감지가 쉽지 않았죠. 특히 오는 길에 들은 보고에 따르면 박승현 씨는 이 섬에 오기 전 감염되었다고 들었는데요.”

“네. 기생체의 샘플 채취해야겠습니다.”

“부탁할게요. 그리고 코오나…… 뭐야. 어딜 간 거야.”

이 상황에서 코오나가 보이지 않자 현아는 인상을 살짝 쓰며 무전기를 들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인어 소야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저기…… 그 사람 어디 갔어요?”

긴장한 얼굴로 베헤모스의 몸체 위에 늘어져 있는 소야에게 질문하는 그 모습에 현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음? 그 사람이요?”

“데이비 올 라운…… 그 사람 여기 있잖아요.”

“아. 조금 전까지는 계셨어요.”

“역시…… 그만한 부상을 입고도 사람이 죽지 않은 게 이상하긴 했어요. 그래서 어디를 갔나요?”

“그게…… 파랗게 질려서 도망쳐야 한다면서 어디론가 사라졌는데요?”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코오나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 * *

륀느의 은신처인 무인도에서 정리를 마친 각성자들은 수송선에 쓰러진 이들을 태우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 과정에서 이동식 침대에 누운 채 반쯤 묶인 채로 링겔을 맞고 있던 승현이 실없이 웃자 노아가 짜증스레 그의 머리를 툭 하고 때렸다.

“왜 웃어, 지금 상황이 웃겨?”

노아는 승현이 다쳤다는 사실만으로도 짜증이 나는 듯했다.

“웃기지. 처음으로 제주도 말고 비행기 타고 휴양온 건데.”

에반젤린의 레어는 균열을 탔으니 그런 게 아니라지만 처음으로 한국에서 멀리 벗어났는데 돌아가는 길이 우스꽝스럽다.

“아픈 곳은 없지? 무리했잖아.”

“뭐…… 온몸이 쑤시긴 해. 그래도 이제 힘을 좀 다루는 요령은 알겠어.”

“그 능력이 대체 뭐야. 흉내 내는 건가?”

“그냥 뭐랄까. 알아서 움직여 몸이. 별로 좋은 기분은 아니야.”

“그래. 다음부턴 변신하지 마.”

“왜?”

“네가 싫으면 안 하는 게 맞지.”

키득거리며 승현이 그녀의 머리에 손을 뻗으려 용을 썼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그녀의 손만 잡는다.

“돌아가면 치킨 시켜 먹자. 피자도.”

“약속이다? 나 많이 먹어.”

“걱정 마. 교단에 넘긴 신물 때문에 당분간 네 식비는 걱정 없어.”

물론 수십억이 있기에 걱정은 없겠지만 왠지 노아는 금방 거덜 낼 것 같은 불안함이 들었다.

“설마…… 수십억이 거덜 나겠어?”

“뭐라고?”

“아니야. 시켜먹고 싶은 맛 미리 골라 놔.”

“양념.”

“순살?”

“퍽퍽한 걸 어떻게 먹어, 뼈 있는 거로!”

“콜.”

가볍게 서로 손을 짝! 소리 나게 부딪힌다.

이후 승현은 한쪽에 서로 기댄 채 곤히 잠들어있는 시우와 엘리시아를 바라보았다.

둘은 이번 일로 상당히 가까워진 상황에 마음이 편해진 건지 서로에게 기대어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자고 있었다.

“저 두 사람. 참 신기하네.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십 년은 사귀어온 연인을 보는 기분이야.”

“넬타리드 님 말로는 붉은 실이라더라.”

“듣긴 했다만…… 실제로 보니 놀랍네.”

“승현도 붉은 실이 있어?”

“나야 모르지. 아직 결혼할 일도 없고. 심심한데 방송이나 볼까.”

승현은 익숙하게 방송 사이트로 들어갔다.

그리고 에반젤린의 방송 채널에 올라온 공지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이 지지배는 며칠 동안 휴방을 하는 거야. 개미도 신명 나게 털어대네.”

최근 에반젤린의 방송에서 분탕을 치는 놈들이 있다더라.

조용해지면 꼭 다시 고개를 드는 놈들이 있다.

“그런데 휴방 사유가…… 음?”

* * *

“아빠. 지금이라도 자수하고 광명 찾지 그래요?”

“안돼. 네 엄마 이렇게 화나면 정말 무섭다.”

“후…… 아빠는 말이죠. 미식연구회나 영지개발부한데 뭐라 말할 자격이 없어요.”

“그래. 미안하다 에린아. 아빠가 좀 바쁘거든? 잠깐이면 돼.”

“어휴…… 도와줄게요.”

한숨을 내쉬며 에반젤린은 자신의 보물고의 한켠 데이비의 비자금 창고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찾아 건네주었다.

“도망쳐서 해결이 돼요?”

“일단 너희 엄마 화 풀릴 때까지만. 그다음엔 다 방법이 있어.”

간혹 화가 잔뜩 난 페르세르크를 데리고 데이비가 어디론가 갔다가 돌아왔을 때, 간간이 페르세르크의 화가 풀려있는 것을 본 적은 있었다. 무엇을 했냐 물어보아도 대답은 들어본 적이 없지만.

“누구랑 가는데요?”

“아빠 혼자, 륀느는 내가 시킨 것만 한 것뿐이니까, 우선 방패로 세워서…….”

“데이비 님. 륀느가 미끼 작전을 낮게 평가. 륀느를 배신할 시 륀느가 데이비 님의 행적을 모조리 토설할 거라 명시.”

“그렇다는데요?”

“저건 요즘 들어 점점 겁이 없어지네.”

“데이비 님의 저열한 계략을 낮게 평가.”

륀느는 한마디도 지지 않았다.

“어쩔 수 없다. 그럼 거품 세계 쪽으로 도망쳐볼까?”

“엄마가 코오나 언니를 매수하면요?”

“그렇지않아도 프리아 여신님의 도움을 조금 받았지. 지금 써먹기에 딱 좋은 곳이 있어.”

“와…… 악질이네. 아니 그보다. 거품 세계는 비화 언니 접속장치로 갈 수 있는 거 아니었어요?”

“프리아 여신님이 알려준 일부 세계는 직접 이어져 있으니까.”

에반젤린은 혀를 내둘렀다.

“자. 그래도 모르니까 이건 아빠가 만든 수정구야.”

“통신용 수정구?”

“엄마한테 절대 들키지 말고. 간간이 연락할게.”

“얼마나 오래 숨으려고…….”

“한 며칠 정도? 네 엄마 화 풀어줄 물건도 좀 구할 겸.”

데이비는 심호흡을 한 뒤 검지와 중지만 펼쳐 허공을 그었다.

동시에 보랏빛 틈새가 드러난다.

“에린아, 아빠 배신하지 마.”

“하는 거 보고요.”

남자는 나이가 들어도, 위치가 어디에 있어도 애라더니. 에반젤린은 그녀보다 방대한 시간을 더 살았을 데이비가 왜 이렇게 철없는 아이처럼 보이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 올 때 선물.”

“그래. 네 것도 준비해볼게.”

처음엔 술 냄새만 나도 엄청 싫고 빨랫감이 근처에 널려있기만 해도 참 묘한 기분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게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고대룡의 반항기는 가히 상상을 초월하지만 유년기 시절의 온순하던 에반젤린의 본성은 그런 반항기를 뒤흔드는 것도 모자라 그 기간을 대폭 단축했다.

“조심히 갔다 와요.”

에반젤린은 소란스럽던 데이비가 륀느를 데리고 공간 너머로 사라져버리자 시큰둥한 얼굴로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당분간 방송도 안 할 거고 뭐하지…….”

그나마 자주 노는 절제 박승현이나 시우는 현재 다곤 패러사이트 일 때문에 바쁠 것이다.

결국, 홀로 남게 된 그녀였다.

그때 그녀의 가디언 하나가 작은 편지를 물고 들어왔다.

“뭐야 이건.”

편지는 티오니스에서 온 것이었다.

“연회 초대장? 어디서 보낸 거지…… 중부 제국…… 팔란?”

편지는 팔란에서 온 것으로 여러 국가에서 모이는 국가 연회라는 모양이었다.

표면적인 이유로는 젊은 세대끼리 모여 친목을 다지는 것이지만 에반젤린이 보기에 이건 단순히 어린애들끼리 모여 집안 기세 싸움을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음…… 그 팔란 황제님은 이런 거 별로 안 좋아할 텐데…….”

황권이 강한 팔란이라고 해도 이런 거 하나하나 다 틀어막지는 못하는 것일까.

그래도 재미는 있어 보였다. 영화 같은 데서 보면 이런 곳에서 꼭 젊은 혈기 넘치는 것들끼리 싸움이 터지니까.

“난 그걸 구경하고 걔들은 쇼를 보여주고. 최근 내가 티오니스의 일에 너무 소홀하긴 했어.”

에반젤린은 문득 자신이 티오니스에서 귀족으로서의 일을 행한 적이 있는가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쉬쉬해도 결국 아빠는 티오니스, 라운 왕국의 대공이고, 자신은 대공녀가 아니던가.

데이비는 원치 않는다면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말했지만 최근 들어 너무 지구에만 처박혀 산 것 같은 느낌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기왕 이리된 거 티오니스 핑계를 대고 휴방도 좀 더 길게 쉴 수 있을 테니 이참에 휴가나 다녀와야지. 라는 생각이 드는 그녀였다.

“팔란 제국 연회 음식이 그렇게 맛이 좋다고 평이 자자하던데.”

* * *

데이비가 륀느를 데리고 도망친 지 반나절 후.

에반젤린은 하인스 영주성을 찾아왔다.

“어머, 아가씨. 오랜만에 오셨네요.”

“오랜만이야. 알니스.”

“못 본 사이에 피부가 더 고와지셨어요.”

“그래? 따로 관리는 안 했는데.”

“어휴. 그 말 다른 곳에 가서 하시면 안 되세요. 질시를 엄청 받을 거예요.”

기본적인 고대룡의 패시브가 어딜 가는 건 아니었다.

“첫째 엄마는?”

“그렇지않아도 잔뜩 화가 나셔서 영지 집무를 보고 계세요. 사용인 전원이 지금 초긴장 상태이기도 하구요.”

“그럴 만도 하지…….”

당장 찾아 나서지 않는 건 정보가 부족해서일 것이다.

아마 그동안 데이비에게 당한 게 많은 미식연구회나 영지개발부가 데이비를 배신하고 팔아먹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음. 충분히 가능성 있어 그 양반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걸어간 그녀는 곧 집무실에서 무거운 공기를 풍기고 있는 페르세르크와 일리나, 그리고 에이리아를 볼 수 있었다.

“어라. 세 분 다 여기서 뭐 해요?”

“아. 에린이 왔니? 이리 오렴.”

에이리아가 천천히 손을 뻗자 그녀는 쪼르르 달려가 그대로 에이리아의 품에 안겨들었다.

그리고는 가볍게 스킨쉽을 나눈 뒤 일리나에게도 똑같이 했다.

이후 페르세르크에게 다가가려 하지만 일리나가 조용히 그녀의 어깨를 잡고 만류했다.

쾅!!

이윽고 서류에 집중하고 있던 페르세르크가 테이블을 내리치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데이비…… 잡히기만 해봐.”

화난 것치고는 오히려 서운해 보이는 목소리였다.

이에 일리나가 페르세르크의 눈치를 보며 조용히 말해주었다.

“언니가 그동안 준비한 연구 재료로 만들던 건데 이렇게 돼버려서 엄청 화났나 봐.”

“와…… 아빠 잡히면 곱게 안 끝나겠네요. 솔직히 이번엔 어떤 실드도 쳐줄 수가 없다.”

“아무리 비화를 도와주기 위해서라지만…….”

그러고 보니 데이비가 거품 세계로 도망치면서 페르세르크를 위한 물건을 찾으러 간다고 했던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페르세르크가 하려는 실험에 그 시약 재료로는 효과가 없으니까, 제대로 된 재료를 구해주려는 건 아닐까.

하지만 고개를 곧 저어 보인다.

‘아빠가 그럴 생각이었으면 그렇게 허둥거리지도 않았겠지.’

속닥거리며 대화를 나누던 에반젤린은 뒤늦게 자신의 본 목적을 위해 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내들었다.

“인장을 보니 팔란의 인장인데? 네게 온 거야?”

“아…… 별건 아니고요. 팔란에서 이번에 대륙적으로 젊은 세대들을 모아 연회를 열 모양이에요.”

“……아 그 거지 같은 연회…….”

“뭔가 알아요?”

“알지, 엄마가 팔란 출신인데. 뭐, 미래가 유망한 유망주들을 모아놓고 서로 안면을 트게 하자는 취지로 시작된 거긴 한데, 시간이 지나면서 집안 자랑, 자기 재능 자랑하는 곳이 되어버려서 말이야. 가능하면 가지 않는 걸 추천할게.”

일리나의 신랄한 평가에 에이리아는 아련한 미소를 지었다.

“제게도 오래전 온 적이 있어요. 하지만 그땐 갈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죠.”

“보통은 성년이 되지 못한 아이들만 오게 될 거야. 전에도 비슷한 거로 몇 번 개최되긴 했었는데. 뭐. 펠리스티에서 네 아빠를 처음 만난 연회도 그랬고.”

“그랬었던가요? 그래도 한번은 가볼게요. 그래야 휴방 사유도 되고.”

“기한은?”

“오늘 간다고 이야기를 보내면 시간이 얼추 맞을 거예요.”

“그래. 그럼 엄마가 도와줄게. 우리 딸…… 별로 좋진 않지만, 사교계에 나서는데 힘 좀 써봐야지.”

과거 윈리를 순식간에 연회의 주인공급으로 부상시킨 전적이 있는 일리나 다운 패기였다.

“페르 언니. 데이비는 잠깐 내버려 두고, 일단 에반젤린부터 돕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래. 그래야겠구나.”

페르세르크가 이를 부득 갈았다.

“데이비는 본녀가 화를 풀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만, 어림도 없다는 걸 보여줘야지.”

시간이 지나서도 그녀가 조용하면 알아서 기어 나올 것이다.

그때. 그 망할 남편을 잡아 척추를 비틀어버리리라.

페르세르크의 손에 쥐어진 깃펜이 마치 척추 부러지듯 우드득 부러졌다.

“아 참. 에반젤린.”

페르세르크가 에반젤린을 보며 옅게 웃는다.

부드럽지만 스산한 미소였다.

“본래 연회 초대장은 보름 정도 더 빨리 와야 하는 게야.”

“네? 왜요?”

“준비할 기간이 필요한 게지. 즉. 거기 관리자가…….”

“아녜요 언니. 아마 관리자가 일부러 에린이를 자극하진 않았을 거예요.”

“허면?”

“이게 좀 흔한 수법이긴 한데…… 아마 거기 참석하는 귀족 영애나 영식들의 파벌 중 하나가 은밀하게 저지른 장난질이겠죠.”

이런 거로 뒤엎기엔 너무 사소한 정도.

하지만 시간이 흘러 조용하니 새로운 놈들이 고개를 든다고, 겁이 없는 것들이 있다.

“가서 드레스나 한번 맞춰보자.”

“어…… 음…… 괜찮은 거 같은…….”

“쓰읍! 그래도 공식 데뷔나 다름없는데 제대로 꾸미고 가야지. 안 그래?”

일리나의 말에 페르세르크와 에이리아는 식은땀을 흘리며 시선을 피했다.

일리나가 이런 방면에선 놀라울 정도로 꼼꼼한 탓에 한 번 잡히면 어떻게 될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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