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45화
원래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건 자신도 언젠가 참혹하게 죽을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으아아아아아악!!! 안돼…… 안돼!!”
하지만 세상이라는 게 본디 그렇다. 이러한 어두운 부분은 많이 알려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꿈만 키워온 아이들은 자신들이 그런 운명에 처할 거라곤 생각지 않는다.
그저 세상의 밝은 면만 보니까.
“데이비 님. 회수 완료.”
륀느는 기이한 마나를 내뿜는 작은 수정 같은 것을 내게 가져왔다.
“음…… 이건 원형이 아니네. 그래도 제법 강한 힘이 무언가에 변형되어서 변질된 건가.”
수정 자체의 힘은 변질되어있지만 내가 보기에 이것의 원형이 되는 것은 막대한 힘을 지녔으나 백지처럼 순수할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몬스터를 변이시키는 건 아마 무언가에 의해 방출된 에너지가 변질한 것 일터.
“바론.”
“안돼…… 안돼! 칼릭스! 안돼, 베라!!”
바론은 미쳐버리기라도 한 건지 절규를 멈추지 않았다.
이에 한숨을 내쉰 나는 바론에게 다가간 뒤 멱살을 잡아 들어 올렸다.
“바론.”
“놔…… 놔!”
버둥거리며 내 손을 털어낸 녀석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다시 엉금엉금 기어갔다.
“위대하신 초월 의지께 이 부덕한 자가 기도하옵나이다. 부디 가엾은 이들의 육체를 치료할 힘을 주옵소서…….”
하급 회복마법.
거기에 신성력은 있으나 그걸 다루는 실력이 너무 미숙했다.
신성 마법은 다른 마법과 달리 서클 개념이 없다.
그렇기에 상위 위계 마법도 숙련도와 신성력만 뒷받침된다면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으리라.
그렇기에 기적이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에겐 그런 것이 없었다.
“야. 그만해. 시신 능욕이라도 하려고?”
그의 멱살을 잡고 인상을 찡그리자 그는 오열하며 소리쳤다.
“그러면 어찌합니까! 친구가 죽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함께해온 가족 같은 녀석들이 죽었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냐고요!”
그리 소리치던 녀석은 이내 고개를 떨구고 작게 말했다.
“내가 조금만 더 두 사람을 제대로 말렸으면…….”
지독한 무력감. 죄책감.
어느 쪽이건 사제에게 좋은 감정은 아니었다.
다만 그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바도 아니었다. 과거의 나였다면 안타까워했겠지만, 아이의 부모가 된 지금에 이르러서 느끼는 감정은 씁쓸함과 알 수 없는 분노였다.
재능이 없는 아이들이다.
그래도 랫서 마우스 정도는 쉽게 토벌할 수 있는 수준이라 그냥 보낸 게 문제였을까.
아무런 면식이 없어도, 같이 밥도 먹은 사이이건만.
살짝만이라도 버프를 걸어줄 수 있었을 텐데.
“이미 죽었어. 저 두 명의 혼은 윤회의 강으로 올라갔으니 부질없는 짓이다.”
두 사람의 혼을 잠깐 불러올 순 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런다고 죽은 이들이 살아 돌아올 리도 없으니까.
“아직 늦지 않았을!”
퍼억!!
결국, 기절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 * *
세 용병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바론이 눈을 뜬 건 날이 밝아서였다.
“…….”
며칠간 물도 제대로 못 마신 것 같은 몰골로 기절해있던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기가 무섭게 갈라진 한숨을 내쉬었다.
“먹어라.”
“…….”
먹지 않겠다는 듯 침묵하는 걸 보니 정신이 박살 난 듯 보였다.
“두 사람의 시신은 저기 있다.”
버려진 마을 근처에 있던 낡은 수레에 두 구의 시신이 있고 그 위로 짚단이 덮여 있었다.
“두 사람은…… 죽은 거겠지요…….”
“죽었지.”
“제가…… 제가 두 사람을 더 제대로 말렸으면…….”
바론은 또다시 자괴감에 빠져들어 갔다.
보아하니 한창 기세가 오른 두 사람이 다음 등급의 토벌을 해보자고 무작정 들어온 것일 것이다.
“티오니스도 그렇고, 모험가 계통은 이게 문제야.”
왜 위험한 건지 그 위험성을 알려주지 않는다.
교육의 부재. 이런 세계에서 지구 같은 의무교육을 바랄 순 없다.
게다가 용병을 주로 이루는 하층민들에게 일일이 교육에 힘을 쓸 자도 없거니와 그걸 그대로 교육을 받는 용병도 드물 것이다.
“만용의 대가는 돌이킬 수 없는 법이야.”
“……그걸 왜…….”
왜 먼저 말해주지 않았느냐고?
내가 그런 의도의 시선을 보내자 그가 쓰게 웃었다.
“왜 조금만 더 일찍 눈치채지 못했던 걸까요. 저희가 몬스터를 베고 농락하듯, 저들 또한 그럴 수 있을진대.”
“아직 어린 너희들이 생각하기에 세상이 쉽진 않은 거지.”
그는 결국 다시 소리죽여 울음을 흘렸다.
바론은 그로부터 약 5시간 정도 후 두 사람의 시신이 담긴 수레를 끌고 산에서 내려갔다.
위험한 숲이라곤 하지만 몬스터가 없는 안전루트를 타고 가기에 습격의 걱정은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혹시나 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는 만큼 씁쓸함을 담아 그의 몸 안에 작은 방어마법 하나를 걸어놓았다.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두 사람의 시신을 수습할 수 있었어요.”
공허해진 눈동자로 그가 말했다.
“바론.”
“네?”
“넌 단순한 후위직 사제로는 재능이 없다.”
“……처음에도 그 말을 하셨죠.”
“그랬지. 그러니 다른 길을 찾아.”
“궁금했던 일이지만…… 당신은 대체 누구신가요.”
그가 물었다.
하지만 이내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
“하…… 사실 그게 무슨 상관일까요. 결국, 이리되었는데…….”
씁쓸한 표정, 공허한 얼굴로 천천히 그가 떠나가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본다.
“이 세상에는 저런 애들이 많겠지. 륀느, 출력 적당히 억제하고 근방을 좀 돌아봐. 네 힘도 이질적이라 크게 일을 벌이면 곧바로 들킬 테니 잘 조절하고.”
“명령확인.”
“그리고, 혹시나 하는 상황이지만 위험한 상황에 처하면 제한을 해제해도 좋아.”
“그리 될 경우 데이비 님이 곧바로 들킨다고 보고.”
“넌 저 애들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냐?”
바론이 수레를 끌고 내려간 방향을 가리키며 말하지만, 륀느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데이비 님. 이 세계에서 륀느의 육체를 해칠 수 있는 존재는 현재 없다고 분석.”
“역사적으로도 강자들은 방심하다 다 죽어 나자빠졌어. 특히 이런 걸 봤으니 내 쪽도 신경 쓰일 수밖에.”
“명령 확인.”
이해한 것인지 륀느는 등허리의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올랐다.
이 세계엔 대기의 마나를 변질시켜 몬스터들을 변이시키는 수정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것에 영향을 받은 일반수정이 변질되면서 거대한 랫서 마우스나 코볼트 같은 게 나왔으리라.
그렇게 약 두 시간 정도. 홍단이와 청단이를 데리고 놀아주고 있으니 륀느가 돌아왔다.
하지만 륀느에게서 들은 보고는 딱히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
“륀느가 임무 수행능력을 낮게 평가…….”
“후, 괜찮은 걸 찾아내면 당장이라도 찾아갈 텐데…….”
페르세르크에게서 도망치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녀가 화를 내고 있는 이 상황 자체가 달갑지는 않았다.
시간이 지난다 하여 그녀의 화가 풀리는 건 아닐 테니까.
냉정해지는 만큼 그만큼 더욱 서운해질 테니 그렇게 되기 전엔 반드시 찾아야 했다.
“안 되겠다. 륀느. 이동하자.”
“데이비 님. 이숲은 안전지역이라고 분석.”
단순히 이곳이 누군가와의 접촉이 적기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트로이 차원 곳곳에는 방해 파장이 짙은 곳이 존재하는데 바로 이 버려진 마을이 그런 장소이며, 데이비가 추가로 감지 방해 결계를 쳐놓기도 했다.
“생각을 좀 해봤는데.”
그 미소에 씁쓸함이 서린다.
“내가 이러고 있는 동안 페르세르크가 얼마나 서운할지 너무 안일했다.”
* * *
캠핑장비를 모조리 정리한 뒤 마을을 나섰다.
배웅하는 이 하나 없는 죽은 마을이지만 애초에 사람이 없는 곳이다.
조용히 산길을 걷는 동안 홍단이는 내 목 위에 올라타 목마를 탔고 청단이는 작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은 채 나란히 걸었다.
그리고 륀느의 경우 눈을 반짝이며 숲 전역에 있는 새로운 과일들을 하나하나 따서 입안에 넣어보기를 반복하며 잽싸게 움직였다.
“아빠. 저어기.”
그렇게 약 한 시간을 걸었을까.
이윽고 숲 저편에 크지는 않지만, 마냥 작지도 않은 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품하는 경비병들을 보아하니 이들을 위협하는 건 딱히 없었던 모양이었다.
놀라운 건 검문 자체도 굉장히 간소화되어있었는데 이들이 나태하기보다는 복잡한 절차를 생략한 느낌이었다.
“어서 오시오, 파랜든에.”
위병들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안내해준다.
지금까지 이렇게 호의적이었던 동네는 잘 보기 힘들었기에 조금 생소한 느낌이었다.
불과 하루 전에 그렇게 미래가 창창해 보이던 아이들이 끔찍하게 죽은 것치고는 상반되는 광경이다.
“오오…… 아바. 저기 저 사람 머리에 뿔 있서!”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렴.”
“네에…….”
그 외에도 놀라운 건 지금까지 봐온 그 어떤 대륙보다 이종족이 많다는 점이었다.
인간이 50퍼센트면 나머지 50퍼센트는 이종족이라고 할까.
근육질에 초록 피부를 지닌 오크, 짤막한 드워프나 숲의 종족인 엘프, 그 외에도 다른 대륙에선 본 적이 없는 사람 손바닥만 한 요정과 수인족, 그 외에도 용인이나 마족도 보였다.
다양한 종족이 모여있음에도 딱히 문제가 발생한 것 같진 않았다.
치안은 굉장히 좋아 보인다.
비록 방해 장막 밖으로 나왔지만 크게 힘을 발휘하는 일만 없다면, 들킬 염려도 없으리라.
치안이 좋아 보이는 걸 보니 굳이 문제가 되지도 않을 것이고. 시비를 걸어오는 이들이 있다고 해도 간단히 처리할 수준은 될 터.
나는 곧바로 두 아이와 륀느를 대동한 채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용병조합으로 걸어 들어갔다.
상당수의 사람이 모여있다.
“어서 오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깔끔한 옷을 입은 용병조합의 접수원이 환한 미소를 지어왔다.
“정보를 사려고 왔습니다.”
“정보 말씀이신가요?”
“네.”
“어…… 음. 저희 조합은 따로 정보를 판매하거나 하진 않아요. 다만 간단한 정보라면 말씀드리는 거야 어렵진 않죠, 혹시 필요하신 정보가 있으신가요?”
“혹시 변이된 몬스터가 출현한 첫 장소를 알 수 있을까요.”
그 말에 왁자지껄하던 주변의 목소리가 한 톤 작아졌다.
큰 차이는 없지만 미묘한 변화에 륀느도 귀를 쫑긋거렸다.
“음…… 그건, 말씀드리는 게 위배되는 질문이네요. 죄송합니다.”
“조건이 있습니까?”
“극지에 관해서는 고위급 용병에게 의뢰를 하시면 용병들이 그곳으로 가서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드리고 있어요.”
그 말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럴 거면 그냥 정보 길드 같은 곳을 털었어야 했나 싶었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여러 방법을 조사해둬서 나쁠 것은 없었다.
“그럼 의뢰로 바꾸죠. 그곳을 탐사할 고위 용병들을 모집하겠습니다.”
그 말에 술렁임이 인다.
“의뢰는 가능하신데…… 그만큼 자금이 많이 들어가요. 저희 조합에선 극지로 파견하는 의뢰의 경우 반드시 초월급, 혹은 그에 준하는 상위 용병 20명 이상을 대동하도록 명시되어있습니다.”
초월급. 이번에도 언급되었다. 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모험가, 혹은 용병들을 말한다고 하였던가.
“얼마나 듭니까?”
“음…… 저희 측에서 감당할 문제는 아닌듯합니다만, 전례를 보면 초월급 한 분이 의뢰를 받으셨을 때 50억 겔을 받으셨어요.”
50억 겔.
어느 정도의 가치인지 알지 못하기에 나는 아공간에서 꺼내둔 골드바 하나를 건넸다.
“이거면 어느 정도입니까?”
“세…… 세상에! 잠시만요!”
단순히 지구에서만 해도 가치가 7천만 원에 가까운 kg 단위의 골드바였다.
이 세계에서는 어느 정도 가치인지 모르겠지만 효과는 있을 터.
내 물음에 허둥지둥거리던 찰나. 한 드워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잠시 봐주지.”
“아. 겔레손 씨.”
“이보게. 이래 봬도 눈이 좋은 편이거든. 가치는 내가 책정해줄 테니 한번 보여주겠나.”
“그러시죠.”
그러자 그는 허리춤에 찬 주머니에서 소형 확대경을 꺼내 눈에 찼다.
그리고는 골드바를 손에 쥔 뒤 흐음……소리를 내며 이리저리 살폈다.
“이거…… 완전 순금이로군…….”
“어느 정도입니까?”
“5천만 겔 정도 하겠네.”
가치는 비슷했다. 화폐단위가 비슷한 건 편해서 좋은 법이다.
“그렇습니까?”
나는 조용히 그의 시선을 응시했다. 하지만 그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리 봐도 달라지진 않네. 5천만 겔. 그 정도. 솔직히 내 입장에선 이런걸 어디서 구했는지 묻고 싶을 정도로군. 접수원 아가씨의 말대로 초월급을 고용하려면 이런 골드바가 대략…… 100개 근사치로 필요하겠군.”
100개. 가히 경악스러운 가격임은 틀림없다.
“기회비용이 높네요.”
“아하하…… 초월급은 이 세계에서도 몇 없는 대단한 분들이니까요.”
“이보게. 청년. 뒤에 사람들도 기다리고 있으니 이쪽으로 오시게. 뭐 자세한 내용은 내가 알려줄 터이니.”
겔레손이라 불린 드워프는 나를 데리고 한적한 테이블로 갔다.
“식사는 했는가.”
괜히 말이 많으면 사기꾼이라는데. 내가 담담하게 거절하려 하자 홍단이가 눈을 반짝인다.
“홍다니는 저거 먹고 시퍼!”
한쪽에 앉아 고기를 먹고 있는 모험가의 요리를 가리키자 청단이와 륀느도 같은 모습을 비쳤다.
“저건 얼마나 합니까?”
“글쎄…… 자네가 들고 있는 골드바면 질릴 때까지 먹어도 한참 남겠지. 한데. 내가 보아하니 자네, 수중에 돈을 가진 게 있는가?”
“따로 화폐가 없네요.”
“그럼 내가 사도록 하지.”
그의 말에 내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왜 그리 보는가.”
“솔직히 아시겠지만 이유 없는 친절은 없습니다.”
“그래서 자네는 바론에게 음식을 나눠줬는가?”
바론.
그 이름을 언급하자 주변에서 다시 움찔하는 게 보였다.
“처음엔 반신반의했네. 하지만 인상착의와 복장. 그리고 눈에 띄는 저 세 아이를 보면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지.”
“아는 사입니까?”
“뭐. 친한 사이는 아니네. 이제 갓 용병이 된 아이들이니. 게다가 얼마 전엔 무리하다가 둘을 잃었다지…….”
그는 익숙하게 서빙하는 직원을 불러 요리를 주문했다.
“딱히 가까운 사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젊은 녀석들이 죽는 건 좋은 이야기는 아니지. 그리고 자네는 그런 그들을 구해주었다지. 보는 것과 달리 제법 실력도 있어 보이는데. 바론 녀석이 정신이 온전치 않아서 제대로 이야기해주진 않았네만.”
그가 기억하는 건 맛있는 치킨. 그리고 죽어버린 친구들의 모습뿐이었다는 모양이었다.
친구들의 시신을 데리고 돌아온 바론은 그대로 신전에 틀어박혔다고 한다.
바론은 내가 그들을 어떻게 구해주었는지는 말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미래가 있는 아이들이었네. 나는 대부분의 생을 용병질을 해서 아이가 없거든. 그래서 그 녀석들이 조금 애틋하게 보였던 것 같네.”
요리가 나오고 세 아이는 신이 난 듯 식사에 열중했다.
“보아하니 그곳에 있는 물건이 필요해서 의뢰를 하는 건 아닌 거 같군.”
“직접 봐야 아는 거라서요.”
“연구단체인가? 뭐,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가능하면 포기하게. 그곳은 너무 위험해. 초월급이 대단하다곤 하지만…… 마냥 초월급이 돈만 있다고 의뢰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국가에서도 초월급 본인들을 제외하곤 보내주지 않아. 그곳은 공기부터가 일반인이 견디기 힘들다고 하더군.”
그의 말에 나는 다시 질문을 했다.
“돈만 있으면 안 된다고요?”
“초월급 용병. 뭐. 용병이라곤 하지만 사실상 그들은 하나같이 걸어 다니는 전략 병기들일세. 실제로 대부분은 어딘가에 소속되어있거나 높으신 귀족이 되었지.”
즉, 단순히 돈을 준다고 의뢰를 받아들이는 급은 아니라는 모양이다.
“그럼 어쩔 수 없네요. 애초에 그만한 돈을 주고 의뢰하기도 참 애매하니…… 직접 찾아보는 수밖에요.”
“이보게 자네, 내가 한 말을 뭘로 들었는가, 입장도 불가하거니와 그곳에 몰래 들어가려면 국가의 추적을 받게 될걸세. 유일하게 자유로운 입장이 가능한 인물은 용사님이나 그 파티원뿐이지.”
위험하다고 말리려는 것일까.
애석하지만 그런 건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그때였다.
“이…… 이봐!! 의사! 의사 없어?! 의사나 신관이 필요해!”
다급한 외침이 들려오며 용병 길드 내부로 검게 변질된 피부를 지닌 남녀가 실려 들어왔다.
“세상에! 무슨?!”
“변이 몬스터가 출몰해서 조사를 갔다가 마나에 중독이 왰어! 빨리! 빨리 상위신관이나 실력 있는 의사를!”
이에 용인과 엘프, 그리고 페어리 신관들이 모여들었다.
“이런…… 베르울 저주네…….”
“세상에. 이건…….”
“늦었군…….”
그리고 세 신관은 동시에 침음성을 흘렸다.
“제발…… 제발 살려줘! 베르울 저주는……”
“베르울 저주?”
내 의문에 드워프 겔레손이 한숨을 내쉬었다.
“또 셋이나 가겠군…… 저건 베르울 저주라고, 변이된 몬스터 중에 망령형이 죽으면서 터지는 독 안개에 장시간 노출되면 생기는 저주일세. 병이라고 해야 할지…….”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엔 피부가 검게 변하고 의식을 잃지. 나중에 가면 끔찍한 고통을 호소하며 온몸의 피부가 불타듯이 일그러진 뒤에 썩어버린다고 하더군.”
“흔히 보이는 겁니까?”
“그럴 리가. 변이된 몬스터 중 일부에게서 나온다네. 전에 듣기로는 초월급이 주도하는 극지탐사에서 저거에 당해 많은 상위 용병이나 모험가들이 많이도 죽었다더군. 현실적으로 치료가 가능한 사람은 초월급 신관인 대성녀님뿐이지만 대성녀님의 힘으로도 한 명에서 두 명 정도가 한계라는 소문은 들은 적이 있네.”
휘말린 엘프와 인간, 오크의 상태는 좋아 보이지 않았다.
“누구 없어? 제발…… 제발 도와줘!”
“이건 늦었어. 살릴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신관들이 고개를 젓자 사내는 절규하며 고개를 숙였다.
“아빠?”
그때 홍단이가 내 손을 꼭 잡는다.
“홍단이가 아픈 거 날아가라 해주면 나아?”
잠시 침묵을 고수하던 나는 쓰게 웃었다.
“그래. 나을 거야.”
“그럼 홍다니가 해줄래.”
쪼르르 뛰어가는 홍단이의 행동에 사람들의 시선이 모인다.
“병균의 존재를 확인. 제거 가능하다 판단.”
“일반적인 신성 마법으론 지워지진 않겠지.”
저건 조금 정교한 회복마법이 필요하다. 이곳의 수준은 잘 모르겠지만 다프네표 정밀 회복까지 익힌 이는 없을 거라는 게 내 판단이었다.
이 정도 마법으론 들킬 걱정도 없으니.
내가 부상자들을 향해 다가가자 겔레손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곧 내가 부상자의 가슴에 손을 얹자 눈을 부릅 떴다.
[6급 성마법]
[역천]
[홀리 큐어]
차라랑!!!
새하얀 빛이 터져나가며 새하얀 빛이 그들의 몸 안으로 스며든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몸을 잠식하는 검은 저주들을 마치 백혈구마냥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들의 피부가 다시 본래의 형태를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이…… 이 무슨?!”
경악한 이들이 숨을 죽인다.
그리고, 이들의 귓가에는 홍단이의 아픈 거 날아가라~ 라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 * *
“아리스, 저건…….”
“신기하네…….”
검은 로브를 입은 소녀는 자신의 곁에 있는 마법사의 말을 들으며 눈을 반짝였다.
“신기한 사람이네…… 대성녀님도 저런 식으로 단기간에 치료는 못 하는데 말이야.”
그녀의 입에서 귀여운 미성이 흘러나왔다.
“나서려고? 네가 나서면 많은 사람들이 놀랄 거야. 시선도 모이겠지.”
“잘 알고 있어. 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