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46화
베르울 저주. 변이된 망령형 몬스터 중에서 일부가 죽을 때 내뿜는 독 안개에 장시간 노출될 경우 생기는 저주로, 사실 이게 질병인지 저주인지조차 제대로 밝혀진 바가 없다.
깊게 파고들면 사실 트로이의 의술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다.
대부분을 신전의 사제들이 해결해주곤 했으니 말이다.
사람들의 놀라움은 상당했던 모양이다.
“세…… 세상에…… 자네!”
경악한 드워프 겔레손이 놀란 듯 나를 보며 중얼거렸다.
“이걸…… 치료한 건가 지금?”
“문제가 됩니까?”
“아…… 아니 그거야…….”
“육신이 많이 쇠약해져 있을 겁니다. 면역이 떨어질 수 있으니까 당분간은 꼭 당근과 양파를 섞은 죽을 해주세요. 고기가 들어가도 상관없습니다.”
“아…… 네.”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사내도 설마 세 사람이 이렇게 단시간에 치유될 거라곤 생각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가 조심스레 나를 부른다.
“저…… 은인님.”
“할 말 있습니까?”
“그…… 재발은 하지 않을까요…….”
“독 안개라고 했습니까? 다시 뒤집어쓰면 전보다는 내성이 있겠지만 똑같이 중독될 겁니다. 냉정하게 말해서 육체가 그걸 받아줄 만큼 튼튼하지 못하니 그곳에 가는 건 포기하세요.”
내 설명에 그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크게 소리친다.
“감사합니다!!”
의뢰도 안 되고 정보도 알려주지 않는다면 결국 남은 건 정보 길드를 터는 수밖에.
국가가 출입을 엄금하고 있다지만 힘을 크게 쓰지 않고도 파고들 방법이 있으리라.
홍단이 대신 이번엔 용기를 낸 청단이가 내 목에 올라탄 뒤 내 이마를 꼭 끌어안듯 잡았다.
“어…… 어디 가는가?”
“가봐야죠. 원하는 정보를 찾기는 힘들어 보이니.”
괜히 정보 길드 이야기를 꺼내본들 좋은 이야기는 듣기 힘들 테니.
“사…… 살펴 가시게.”
겔레손이 떨떠름하게 손을 흔든다.
내가 베르울 저주를 단시간에 치료해버렸다는 소문은 금방 퍼져나갔다.
혹여 이걸로 이득을 보는 게 있을까 싶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우웅…… 우웅…….
조금 전부터 페르세르크와 나누어 가진 반지에서 강력한 울림이 느껴지고 있다.
그녀가 나를 찾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는 착각이 일었다.
시간이 부족함을 절실히 깨달으며 나는 인적이 드문 뒷골목 쪽으로 향했다.
“홍단이 청단이. 검으로 돌아와.”
내 말에 두 아이는 서로를 살짝 바라보더니 아쉬운 표정으로 검의 형태를 했다.
그리고는 스스로 날아오르듯 내 허리춤에 채워졌다.
“데이비 님. 정보 길드의 은폐를 생각하면 시간이 필요…….”
“편법으로 간다.”
나는 땅에 손을 짚은 뒤 그대로 정령 술을 발현했다.
‘노움. 파동을 퍼뜨려. 지하 내부에 있는 공간이 보이면 전부 내게 보여라.’
내 의사를 깨달았는지 노움의 파장이 대지를 타고 지하로 내려간다.
도시에 설치된 하수구, 그리고, 본래 의도와 다르게 넓게 퍼진 어떤 시설의 형태까지.
나는 정리가 끝나는 대로 곧바로 정보 길드로 향했다.
덜컥…….
“장사는 저녁에 하오.”
“정보 사러 왔다.”
담담하게 말하자 그의 표정이 찡그려진다.
“별 미친 사람 다 보겠군. 여긴 술이나 파는 가게야. 술김에 나오는 게 정보가 된다면 정보를 파는 거긴 하다만, 정보만 종합해서 파는 그런 전문적인 기관은 여기 없어.”
“원하는 정보를 주면 이걸 내어주지.”
나는 용병조합에서 꺼내놨던 골드바를 그에게 내밀었다. 순간적으로 눈동자가 커진 점원의 동공이 크게 떨린다.
“다 알고 온 거니 선택 잘해.”
여기서 얕잡아 보이면 귀찮아지는 법이다.
정보 길드를 신뢰하는 방법은 상대를 짓눌러버리는 것.
저들의 입장에선 기가 찰 노릇이지만 확실한 방법이었다.
“그것도 싫으면 직접 열고 들어가는 수밖에.”
“이, 이 무슨…….”
당황한 그가 우물쭈물한다. 그때 그가 움찔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오만…… 그래. 원하는 정보가 극지에 대한 정보일 테지?”
극지. 변이 몬스터가 처음 출현한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
자세한 정보는 통제되어있다.
이에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하지만 그 정보는 팔 수 없소.”
“뭐?”
“정확히는 정보를 가지고 있지만, 더 좋은 방법을 제시하는 거외다.”
그가 고개를 까딱였다.
그곳에는 로브를 입은 네 명의 인영이 있었다.
덩치가 큰사람이 하나, 덩치가 작은 사람이 하나, 적당한 사이즈의 인영이 하나.
마지막으로 요정으로 추정되는 존재가 또 하나.
“극지에 관한 정보는 국가에서 기밀로 취급하고 있소. 괜히 위험부담을 할 바엔 차라리 좋은 제안을 하는 게 맞겠지.”
점원은 그리 말한 뒤 네 명의 인영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 주변을 비워드리겠습니다.”
“아~ 고마워요~”
정보 길드에서도 깍듯이 모시는 존재. 묘한 기시감에 나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래. 좋은 제안이 있으시다고.”
“맞아요. 우선 앉으시겠어요?”
리더로 보이는 작은 체구의 인간이 새하얀 손을 보여주며 테이블을 가리켰다.
이에 내가 천천히 자리에 앉자 소녀는 마음에 든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좋아요. 저는 아리스라고 해요.”
“그전에.”
짧게 그녀의 말을 끊은 나는 로브 너머로 잘 보이지 않는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직시했다.
“거래를 할게 아니면 얼굴이라도 보여줘야 하지 않나?”
“그렇구나! 나로 말할 거 같으면!”
검은 로브를 펄럭! 하며 벗어던지기가 무섭게 인식저해마법이 해제된다.
동시에 로브 안에서 푸른 사파이어색의 단발을 한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용사 아리스! 그게 내 직급이야!”
폭발적인 에너지가 넘친다.
용사라. 레이나 이후로 여신의 기운을 이리 짙게 받은 용사는 처음이다.
“후…… 이야기가 진행도 되기 전에…….”
보아하니 정체를 숨기고 이야기해야 했건만 머릿속이 활기로 가득 찬 이 꽃밭은 대뜸 정체를 밝힌 듯 보인다.
“이 사람, 굉장히 속이 맑아! 믿을 수 있어.”
“……정말인가요?”
“그럼! 내 눈은 정확하거든.”
마치 내게 동조를 구하듯 시선을 보내온다.
“너희들을 잡아서 팔면 노예상인이 얼마나 돈을 줄까.”
“으…… 으악!!”
비명을 지르며 물러나는 용사 아리스였다.
“장난이다.”
“조금 전까진 존대하더니?”
“애들인 줄 몰랐지.”
내 말에 용사가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어린애가 아닌데!”
“어린애 맞지. 보아하니 열다섯도 안 된 거 같은데. 틀렸나?”
“그…… 그것은…….”
“레이나도 이십 대 중후반에 용사가 됐는데. 어린애를 용사로 만들어? 여신님이 미치셨나 진짜……”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리자 페어리로 추정되는 이가 로브를 벗어넘겼다.
용사 아리스보다는 연한 하늘빛 머리카락이 길게 흩날리며 아름다우면서도 차가워 보이는 외모가 드러났다.
“이봐. 인간. 그녀는 명실상부 여신께서 정하신 용사가 맞아. 나이를 가지고…….”
“마법사로 보이는 페어리도 어리고.”
“뭐…… 뭐라고?!”
나는 담담하게 그녀의 등 뒤의 날개를 가리켰다.
“성체가 된 페어리는 3쌍의 날개가 되지만 한창 성장기인 페어리들은 2쌍이지? 딱히 날개가 뜯긴 비율도 아닌 걸 보니 아직 꼬맹이네.”
“당신…… 그걸 어떻게…….”
“됐고. 그래서. 용사님 일행이 무슨 용무로?”
그 말에 페어리가 이를 부득부득 갈았지만, 용사 아리스는 환하게 웃었다.
“실은 말이야. 이번에 이곳 근처에 조사를 하러 왔다가 용병조합에서 굉장한 걸 봤거든.”
“굉장한 거?”
“베르울 저주. 대성녀님을 제외하고 그걸 해주할 수 있는 사람은 처음 봤어. 우리에겐 효과가 없지만 다른 이들에겐 아니니까.”
“딱히 대단할 것도 없어. 방법을 몰라서 그런 것일 테니.”
오만하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실제로가 그러했다.
“너무 뻔뻔한 대답이긴 한데 실제로 치료했으니 틀린 말이라고 하기도 그렇네.”
한숨을 내쉰 페어리 마법사는 자신을 마리라고 소개했다.
“반가워. 인간. 나는 페어리 마법사 마리라고 해.”
“그래 반갑다. 나도 페어리를 직접 볼 줄 몰랐거든.”
“음? 무슨 뜻이야? 흔히 보이잖아. 페어리는.”
“그런 게 있다. 그래서. 하던 이야기 마저 해도 될까?”
“아. 그래!”
용사 아리스는 환하게 웃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혹시 베르울 저주를 추가로 치료할 수 있어?”
“어렵진 않다만 이쪽도 바빠서.”
“듣자 하니 극지로 가는 방법을 찾는다던데.”
용사 아리스의 질문에 나는 금방 상황을 눈치챘다.
“치료해주는 대신 데려가 주겠다?”
“우와! 이 사람 천재인가 봐!”
그녀가 손뼉을 치자 마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극지라…….”
듣기로는 용사는 자유자재로 출입이 가능하다 하였던가.
정보 길드를 이용해 왕국과 충돌하면서 잠입하는 동안 조금만 실수해도 페르세르크에게 이곳을 들킬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문제없이 진입할 수 있는 여건이 제일 최적의 조건이라는 소리였다.
물론, 그 외에도 신경 쓰이는 게 있었다.
“하나 물어보자.”
“응? 뭔데?”
“용사라고 했지. 네가 전열에 나서서 싸우는 건가?”
“당연하지! 나는 희망을 퍼뜨리는 용사잖아.”
용사라곤 하지만 내 시야에 비치는 그녀에겐 특수한 힘이 하나 있을 뿐 레이나처럼 특출난 무언가는 보이지 않았다.
“…….”
“내 힘은 변이된 몬스터들에게 치명적이거든!”
이 세계는 변이된 몬스터의 대적자로서 용사 아리스라는 존재를 만들어낸 모양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프리아 여신의 힘이 닿은 건 조금 의아했다.
“아리스는 명실상부한 용사야 인간, 그래서 우리가 하고 싶은 제안은 이거야.”
그녀가 말한다.
“당신이 찾는 극지에는 현재 기사단이 파견되어있어. 하지만 많은 사람이 베르울 저주 증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조사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지.”
즉, 그들을 어떻게 해야 용사라 불리는 아리스가 조사를 재개할 수 있다.
그런 마당에 베르울 저주를 단시간에 치료해버리는 존재가 나타났으니. 관심이 갈 수밖에.
나름대로 정체를 숨기고 나와 접촉한 것까지는 칭찬할만한 일이지만 내 눈에 이들은 아직 보호받아야 할 어린애들이었다.
“신관이나 오크 쪽은 잘 모르겠다만 너희 둘은 그런 목숨을 건 싸움을 하기엔 너무 어린데.”
“어리다고 무시하지 마.”
“불과 하루 전이야.”
담담하게 내가 말했다.
“초월급 용병이 되어보고 싶다면서 숲을 찾았다가 변이된 코볼트와 랫서 마우스에 사로잡혔고 산채로 파먹힌 아이들의 시신이 이 마을에 내려온 게.”
“…….”
아리스는 웃는 얼굴이지만 표정이 경직되었고 마리는 대놓고 인상을 찡그렸다.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에 상대가 어리다고 봐주는 게 있을 거 같아?”
“보자 보자 하니 못하는 말이 없네! 이봐! 우리는 이미 많은 역경을 헤쳐왔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위험하고 경험이 많고가 문제가 아니었다.
“적어도 이 세상 기준으로도 너희는 성년이 아니지 않나?”
“…….”
“어린애들이 전장의 선두에 서게 두는 이 나라가 미친 건지. 아니면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건지.”
내 중얼거림에 아리스는 웃는 얼굴을 살짝 풀었다.
“내가 해야 해.”
“너 말고도 해줄 사람은 많아.”
“난 용사야. 많은 사람을 구해야 하는 사명이 있는 용사.”
“그건 네 스스로 정하는 거지, 남이 정해주는 게 아니라. 용사의 운명을 타고났다고 해도 넌 지금 너무 어려.”
“내가 나서지 않으면 당신이 말한 괴로운 피해자가, 아니 그보다 더한 피해자가 계속해서 나올 거야.”
그녀의 미소와 목소리에서 어떤 감정이 느껴진다.
나는 그것을 광기라 표현했다.
“제정신은 아니네.”
“용사는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불합리해도 내가 나서야 해. 그게 해답이야.”
어린애를 전장의 선두에 밀어 넣는 어른들이라고 제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좋아. 나도 탈 없이 진입이 가능하면 도와주지.”
“걱정 마. 현재 우리가 조사하려는 곳까지는 당신을 지켜줄 수 있어. 이래 봬도 나 제법 강하거든.”
그녀의 말에 나는 눈을 감았다.
쾅!!!
그때였다.
“여기 있었군. 용사!!”
호통 같은 외침과 함께 비대한 체격을 지닌 한 귀족이 뒤뚱거리며 걸어들어왔다.
“으억…….”
얄밉게 자란 콧수염을 쓸어내리며 다가온 그는 용사를 노려보았다.
“그쪽은 누구?”
“이분은 이 영지의 영주다. 고개를 조아려라. 평민!”
그의 곁에 있던 기사가 소리치기가 무섭게 용사 아리스가 그를 말렸다.
“이 사람은 중요한 파티원이 될 사람이야. 그만둬.”
“흥! 용사라니 용사면 뭐든 용서가 될 거라 생각하는 건가?!”
“영주님.”
“미안하지만 나는 네년을 용사라고 인정할 수 없다!”
트집을 잡으려는 것인지 다가온 그가 소리쳤다.
표정부터 심술이 덕지덕지 묻어나왔다.
하지만. 그 생각이 틀렸음을 깨닫는 데엔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세상에 어떤 미친놈이 성년도 되지 못한 어린아이를 전장의 선두에 밀어 넣어!! 당장 발 닦고 검을 내려놔!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주변 친구들과 놀면서 지내란 말이다!”
사람은 외모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더니.
“그보다 그쪽 인간. 듣자 하니 베르울 저주를 해주 했다지?”
“그랬지요.”
“흥. 쓸데없는 짓을 했군. 받아라.”
그가 커다란 주머니를 내게 건넸다.
“이건?”
“보상금이다! 이 땅의 용병들을 지켜주었다면 그 하층민 놈들을 다스리는 이 몸이 보상을 하는 것뿐이다. 평생의 영광으로 여기도록!”
이 양반, 생긴 것과 말투와 다르게 굉장히 호감 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