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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448화 (1,448/1,559)

제 1448화

항상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맞이하는 존재.

속은 썩어 문드러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역할을 절대 잊지 않으려는 존재.

용사 아리스는 그런 존재였다.

용사 파티원은 총 4명이었다.

용사 아리스, 사제 발린, 전위인 오크 기르올,

마지막으로 페어리 마법사 마리.

변이 몬스터와 데몬이 세상을 유린하기 시작한 이후 용사로 아리스가 발탁된 이후로부터 1년 6개월.

넷은 서로 종족은 다르지만 서로가 서로의 등을 지켜주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뿌우우우…….

묵직한 나팔 소리와 함께 이번 조사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시신이 엄숙한 부위기 속에서 천천히 화장된다.

“흐으윽…… 흐아아앙!!”

참지 못한 페어리 마리는 사제 발린의 시신이 타오르는 것을 보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 오열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오크 기르올이 묵묵히 곁을 지켜준다.

“우리는 처음 만났을 땐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 종족도 다르고, 생각도 달랐으니까.”

용사 아리스는 새하얀 옷을 입은 채 굳은 얼굴로 말했다.

특히 사제 발린은 처음 만난 장소가 다름 아닌 노름판이었다고 한다.

실눈처럼 가늘게 뜬 눈으로 패를 까뒤집다가 대주교에게 걸려 뒷덜미를 잡힌 채 끌려 나오던 그를 처음 본 게 그 시작이었다.

“우리는 하나같이 문제가 많았어요. 발린은 고작 열세 살 남짓한 나이에 도박하다가 만났고, 페어리 마리는 페어리 여왕의 명에 따라 방구석에 처박혀 폐인처럼 지내던 그녀를 끄집어낸 게 첫 만남이었죠. 그리고 오크 기르올은…….”

그녀가 쓰게 웃었다.

“지하 격투장의 살귀였어요.”

하나같이 생각하는 것도 배경도 다른 이들이다.

“왜 그들을 골랐지?”

“그들만이 제 힘을 받아서 강해질 수 있으니까요.”

용사 아리스의 힘은 데몬과 변이 몬스터에게 치명적이지만 그것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그녀가 내뿜는 기세에 영향을 받아 재능이 개화하는 이들이 존재하는데 그게 발린과 마리, 그리고 기르올이었다.

“발린이 저를 처음 봤을 때 했던 말이 뭔지 알아요?”

‘뭘 봐, 안 그래도 꼴아서 개 꼴 받는데, 눈깔을 확 파버릴라.’

푸훕 소리를 내며 그녀는 발린이 들고 다니던 성경을 품에 꼭 안았다.

“저도 당시엔 엄청 화를 많이 냈어요. 하루가 멀다고 발린과 치고받고 싸웠죠.”

그럼에도 파티가 찢어지지 않은 건 세상의 정세가 심상찮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싸우다 보니 미운 정이라도 든 것일까.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발린과 용사 아리스는 서로에게 투덜거리면서도 서로의 실력을 믿는 상황에 이르렀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봤어요. 페어리 마리가 합류하고, 오크 기르올이 합류하고.”

넷은 비록 생각부터가 달랐지만 모두 하나의 일념 아래에 모였다.

바로 이 세상을 위협하고 있는 데몬과 변이된 몬스터를 몰아내겠다는 결심을 말이다.

“언젠가 죽을지도 모른다. 그날이 당장 내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직접 보는 죽음이라는 게 이렇게 낯설게 느껴지네요.”

그녀는 천천히 다가가며 타고 있는 시신 위에 성경을 올렸다.

“신을 믿는다면서…… 신께서 지켜줄 거라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눈 밑이 퉁퉁 부어있는 아리스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다른 이들은 그녀의 말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깝지 않았다.

“신을 너무 믿어서 먼저 신님의 곁으로 가버린 거야? 멍청해.”

발린의 시신을 내려다보며 아리스가 말했다.

사람들의 앞에선 괜찮은 척했지만 이곳에서, 발린의 마지막 모습을 두고서까지 그런 감정을 유지할 순 없었나 보다.

나는 그녀의 곁에서 발린의 시신을 보며 말했다.

“적어도 원 없이 떠났네.”

“원 없이 떠나? 발린이 죽을 때의 그 모습을 알기나 해?!”

그녀가 주먹을 부서질 듯 강하게 쥐며 소리쳤다.

정말로 내게 화가 나서 하는 외침은 아닐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분노가 그녀를 휘감는다.

이에 나는 천천히 다가가 그에게 놓인 성경책을 회수했다.

그리고는 그 책을 다시 아리스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봤거든.”

“봤…… 다고?”

“그래. 혼이 되어서야 볼 수 있는 것들을.”

내가 무슨 존재인지. 지금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내가 처음부터 나섰다면 자신이 죽을 일도 없었을 텐데. 라며 화를 내도 이상하지 않을 아이지만. 그는 자신의 목숨보다 아리스나 다른 동료들의 목숨을 잃는 게 더 싫었던 모양이다.

굳이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아리스는 내가 한 말을 다르게 받아들였다.

“그렇구나…… 발린은 신을 모시는 신자. 그는 자신의 평생 염원이었던 여신님을 본 거야…….”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고통스러운 삶을 지나 그가 진정으로 바랐던 것…….”

아리스는 발린이 여신의 품에 거둬졌다고 생각하는지 성경을 품에 꼭 안았다.

“뭐야…… 축하할 일이잖아…….”

말은 그리하지만 그녀는 다시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이윽고, 조사에서 희생된 이들의 합동 화장이 시작되었다.

* * *

용사 아리스는 다시 웃는 얼굴로 돌아왔다.

“비록…… 희생은 있었으나 용사파티와 기사들의 분전 덕분에 데몬의 우두머리 중 하나를 해치우는 데 성공했소.”

요새의 장군 페르무드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고작 한 명일 뿐이지. 발견된 우두머리 데몬만 해도 열에 가까우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기뻐해야 했다.

“하지만…… 처음으로 우두머리 데몬을 잡아낸 것은 큰 성과죠.”

“그렇지. 용사의 빛이 더욱 강해졌다는 뜻일 테니까.”

그동안 우두머리 데몬들은 거의 재앙의 상징에 가까웠다.

일반적인 마법사나 기사는 놈에게 제대로 타격조차 줄 수 없었고, 놈이 내뿜는 독기에 되레 당해 죽어 나가기만 했으니 말이다.

“이 이후가 문제군요…….”

“그렇지. 이미 외부에서도 들어오는 보고이지만 변이된 몬스터의 출몰이 잦아지고 있소, 사람들의 불안은 그만큼 커지고만 있지.”

시간이 부족한 것도 이쪽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하루라도 빨리 우두머리 데몬들을 죽여 변이의 확산을 막아야 하오. 다행히 이번에 용사가 데려온 이로 인해 베르울 저주를 해결할 방법은 찾았소만…….”

그의 말에 대성녀가 천천히 손을 들었다.

“불가해요.”

“불가하다?”

“조금 전 검성께서 놈들의 움직임에 대해 조사를 하고 왔어요. 우두머리 데몬들이 극지의 숲 내부로 모여들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 말과 함께 머리에 엄지손가락 한마디만 한 뿔이 달린 마족 사내가 천천히 일어났다.

“조금 전 들어온 각지 보고에 따르면 영역을 잡고 활동하던 우두머리 데몬들이 일제히 한 지점을 향해 모여들고 있었소.”

그는 넓게 펼쳐진 대삼림의 지도에서 한 부분을 가리켰다.

“운석이…… 떨어진 곳…….”

“예, 데몬 로드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요.”

그 말에 주변의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그 말인즉슨…….”

“데몬 로드의 각성이 멀지 않았다는 뜻이겠지.”

“시간이 부족합니다. 아직 우리들은 데몬 로드를 막아낼 전력이 없어요.”

아무리 용사가 데몬에 치명적인 힘을 지녔다고 해도 그녀의 힘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렇게 된다면…….”

“방법은 하나뿐이군…….”

페르무드가 침음성을 삼키며 말했다.

“원정대를 꾸리는 수밖에”

단순한 정찰, 조사에서 토벌을 목적으로 한 원정대가 꾸려져야 한다.

“하지만 숲의 내부 데몬 로드의 영역은 일반인들이 베르울 저주에 그대로 노출되게 됩니다. 그나마 버틸 수 있는 건 용사파티와 검성과 저, 마지막으로 상위급 기사 몇몇이 전부에요.”

대성녀의 말에 페르무드는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기다리기만 한다면 우리에겐 파멸만이 있을 뿐입니다. 마침 저 또한 움직일 수 있으니 직접 원정대에 참가하겠습니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걸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현재 베르울 저주를 해주할 수 있는…….”

“미안하지만 그건 면역이 아닙니다.”

“면역이 아니다?”

“내가 아무리 치료해도 그들은 다시 베르울 저주에 휘말릴 거라는 소리입니다.”

내 설명에 페르무드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결국, 대규모 원정은 불가하다는 뜻이로군.”

“우리가 갈게요.”

그때 용사 파티원의 리더이자 인류의 구심점, 용사 아리스가 결연한 얼굴로 말했다.

“용사…….”

“용사 파티원만 진입해서 놈들을 처리하고 데몬 로드가 각성하기 전에 죽일 수 있어요.”

그 말에 검성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안 될 말이네! 용사, 용사의 힘의 특수성은 이해하지만, 현재 데몬 로드의 숲은 변이 몬스터의 위험성도 그렇지만 우두머리급 데몬이 9마리나 포진해있네.”

한 마리를 잡는데 파티원 하나에 수많은 기사를 희생한 시점에서 9마리를 동시 토벌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페르무드는 생각이 달라 보였다.

“아니…… 어쩌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무슨 소립니까.”

“이전 우두머리 데몬의 각성을 한번 확인해본 적이 있습니다. 수많은 하위 데몬과 변이 몬스터들이 우두머리 데몬의 곁에 모여 죽은 것처럼 침묵하더군요. 누군가가 와서 칼로 찔러도 절대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그 말은…….”

페르무드의 표정이 굳는다.

“예, 어쩌면…… 저희 인류 연합에 있어서 데몬 로드와 우두머리 데몬들을 토벌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그곳을 지키는 병력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만큼 전력이 약화되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페르무드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것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 위험한 곳에. 확실치도 않은 정보 하나만 가지고 용사가 들어가야 한다는 소리였으니까.

“대성녀와 나는 직접 용사를 서포트하겠소. 비록 그녀의 힘을 받을 순 없겠지만 우리는 초월급 존재. 적어도 길을 열수는 있겠지.”

설사 일이 꼬이더라도, 두 사람은 자신들의 목숨을 불태워서라도 용사에게 길을 열 생각이었다.

“두 사람…… 죽을 작정입니까…… 용사 파티와 다르게 당신들은 심층부에서 얼마나 버틸지 알 수 없습니다.”

“미안하지만 용사 아리스는 아직 어립니다. 그런 어린아이조차 인류를 지키겠다고 목숨을 거는데 살 만큼 산 작자들이 겁을 먹고 뒤로 뺀다? 나는 절대 용납 못 하지.”

검성의 말에 대성녀도 동조한다.

“다행히 데이비 님 덕분에 급한 환자들은 치료를 마쳤습니다. 저도 따라가서 다른 분들을 보조하겠어요.”

“허면 저 또한…….”

“하지만 페르무드 장군. 당신은 안됩니다.”

그는 이곳의 지휘관이었다.

“혹시나 데몬과 변이 몬스터들이 외부로 나가는 걸 막아줄 최후의 보루가 바로 이곳이에요. 당신까지 빠지면 만약 상황이 잘못되었을 땐…….”

“그건 당신들도 마찬가지이지 않습니까!!”

페르무드의 외침에 검성은 고개를 저었다.

“초월급은 우리 둘을 제외하고도 넷이나 더 있소.”

결국, 회의 결과는 바로 나오지 않았지만, 결정 자체는 처음에 난 그대로였다.

인류 연합의 절호의 기회를 절대 놓칠 수 없는 만큼 데몬 로드가 각성하기 전에 용사파티와 두 명의 초월급 존재. 마지막으로 상위기사들이 원정에 따라나선다.

당연히 그 행렬엔 나도 포함되어있었다.

페르무드를 포함한 이들은 아직 내가 그곳에 들어가기엔 너무 위험하다고 말했지만 애초에 그들의 결정이 어떻건 나는 내부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변이를 일으키는 핵을 확인하는 게 첫 번째 목표이며, 페르세르크에게 줄 소재를 확보하는 게 두 번째 목표다.

그리고, 이 상황을 직접 보며 현재의 고민에 대한 답을 내놓는 게 세 번째 이유였다.

내가 참전한다는 의사를 밝히자 다른 이들은 말없이 내 어깨를 두드리고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확실하게 준비해라! 너희들이 한 준비가 완벽할수록 원정대의 생존율이 올라간다!”

성채에 남은 기사들과 일부 병사들은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원정을 준비한다.

이미 확인된 바에 따르면 우두머리 데몬이 각성하는데 들어가는 시간은 제법 있다.

각성이 확인된 게 하루 전이니 보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아니 이걸 여유라고 할 수 있을까.

말 그대로 초고속으로 진입해서 처리해야 하는 이 극한의 상황에서 사람들은 두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봐.”

부산스럽게 무기를 손질하고 장비를 손질하는 용사나 기르올과 다르게 나는 페어리 마리의 부름을 받았다.

“무슨 일이야.”

“잠깐 따라와 줘.”

페어리 마리는 심드렁한 얼굴로 쪼르르 날아오르며 나를 안내했다.

그녀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작은 공방이었다.

“여긴 내 공방이야. 그 꼴로 들어갈 거야? 넌 베르울 저주에 면역이 될 수 있지만 그게 널 무적으로 만들어주는 건 아니잖아.”

그녀는 안쪽의 창고를 부스럭거리더니 이내 제 몸만 한 아티펙트들을 꺼냈다.

“나는 장인들과 달라서 갑주를 만들어줄 순 없어. 하지만 적어도 네 목숨을 지켜줄 아티펙트정도는 만들 수 있어.”

그녀는 아티펙트들을 내 앞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너는…….”

“음?”

“너는 죽지 말았으면 해.”

마리는 슬픈 표정으로 그리 말한 뒤 말없이 브로치형 아티펙트 하나를 들어 내 가슴팍에 채워주었다.

묘한 마나의 흐름이 느껴지며 내 몸을 감싸는듯한 마나 장막이 둘린다.

“넌 전투능력이 그리 높지 않아. 그렇지?”

신성력이야 보여주었지만, 마리가 보기에 내 몸엔 마나가 한 줌도 느껴지지 않을 거다.

“솔직히 기르올이나 나는 자기 몸 하나는 건사할 수 있지만 넌 일반인이잖아. 아니 사제. 사제는 몸이 약해. 그런 만큼 우리가 널 지켜야 하지만 반대로 우리가 지켜주지 못할 때는 스스로 버텨내야 해.”

그런데도 들어가고 싶으냐고.

마리는 물었다.

이에 나는 천천히 손을 뻗어 작은 그녀의 뺨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아…….”

“나도 죽으려고 들어가는 건 아니야. 걱정 말고 너희 몸이나 챙겨.”

페어리는 몸이 작은 만큼 작은 충격에도 기분이 나쁠 수 있다.

그런 만큼 나는 페어리가 가장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행동을 한 것이다.

이것도 페르세르크 덕분에 익힌 기술들이지만 마리가 알지는 못했다.

“이건 나보다는 륀느에게 더 어울리겠네.”

내가 륀느를 부르자 주변을 구경하던 륀느가 쪼르르 다가왔다.

이후 나는 머리핀을 그녀의 머리에 채웠다.

“데이비 님. 확인되지 않은 마나가 움직인다고 보고.”

“좋은 거니까 차고 있어.”

“명령 확인.”

“자…… 잠깐! 그럼 그 꼬마도 데려간다고?!”

마리가 당황한 듯 소리쳤다.

이에 륀느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륀느, 매우 고성능의 존재. 데이비 님의 신변을 지키는 친위단장.”

“무…… 무슨 소리를…….”

“륀느는 일반적인 존재가 아니야. 베르울 저주에도 면역이고, 전투능력도 강하니까 걱정 마라.”

내 말에 마리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 그곳이 얼마나 위험한데!! 설마…… 그 작은 꼬마 둘도?”

“걱정 말래도. 홍단이나 청단이는 저래 보여도 검이니까 오히려 너희보다 안전해.”

마리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 아이들이, 검이라고? 이게 무슨…….”

“세상엔 별일이 다 있는 거니까. 그보다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묻고 싶은 거?”

“너희는 두렵지 않나?”

내 물음에 마리는 쓰게 웃었다.

“안 무서운 이가 어디 있어. 지금도 당장 무서워서 도망치고 싶어.”

“그런데?”

“하지만 우리가 도망치면. 아리스 홀로 이 일을 해내야 하잖아.”

마리도 눈치가 없지 않기에 용사 아리스가 얼마나 고통스러워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아리스는 소중한 친구이며 가족이야. 그리고 이곳의 사람들 모두가.”

그녀가 말한다.

“만약 내가 목숨을 바쳐 아리스를 구해야 한다면…… 나는 그럴 생각이야.”

“넌 아직 어린애인데? 그만큼 아리스가 중요해?”

내 물음에 그녀가 피식 웃었다.

“데몬이 어른, 아이 가리면서 물어뜯는 건 아니잖아? 그리고, 아리스는 이 대륙의 희망이야.”

자신이 나서지 않으면 모두가 죽는다. 그것이 용사의 신념이었다.

나는 아직 결정을 못 내렸다.

내가 신경을 써주지 못할 세계에 무리하게 간섭해서 성장의 발판을 엎는 건 좋은 현상이 아니니까.

마리는 이후로도 이것저것 챙겨준 뒤 몸에 보호 마법을 걸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났을 때.

초월급 존재인 대성녀와 검성. 그리고 용사 파티원 전원과 나. 마지막으로 일부 기사들을 대동한 원정대가 숲의 심층부를 향해 진입을 시작했다.

숲의 내부는 그야말로 변이로 심각하게 비틀려 있었다.

면역상태인 용사 파티원과 달리 기사들과 초월급 존재들은 상당히 이곳의 공기가 불쾌해 보였다.

“걱정 마세요.”

“네?”

내가 묵묵히 걸어가고 있자 대성녀가 조용히 말한다.

“당신들은 우리가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주겠습니다.”

그러니 너희는 너희의 일을 해라.

대성녀 정도 되면 자신의 생에 미련이 남을 법도 하건만.

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가벼이 여겼다.

“자기 목숨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내 말에 대성녀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살아서 나갈 수 있을 겁니다.”

이 세상엔 이 세상만의 성장이 존재한다. 그걸 외부에서 함부로 할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해도 이들이 부질없이 죽어가는걸 지켜보고 싶진 않았다.

어쩌면 나는 이 세상의 사람들의 숭고한 마음에 녹아든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세상은 잘 보기 힘들지.’

언젠가 바뀌더라도 지금 이들의 숭고한 신념은 존중받을 수 있으니까.

“당신들은 반드시 성공할 겁니다. 내가 그리되게 도와줄게요.”

내 말뜻을 다치면 치료해주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는지 대성녀는 믿겠다며 웃어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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