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457화 (1,457/1,559)

제 1457화

“륜 베르타스 영애. 또 뵙는군요.”

“오호호. 그러게 말이죠. 아. 스파르트 국왕께서는 잘 계신가요? 전에 찾아뵈었을 때 제대로 인사를 드리지 못해서 송구하네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곱상하게 웃으며 부채로 입을 가리는 그녀에 이어 이번엔 린디스 제국풍의 드레스를 입은 사파이어색 머리칼의 아름다운 소녀가 다가간다.

나잇대는 륜 베르타스와 비슷해 보인다.

“크로네스 님, 반가워요. 절 기억하시나요?”

“물론입니다. 라우라 멜 후작 영애.”

두 소녀는 서로 곱상한 말투로 크로네스와 대화를 마친 뒤 서로를 은근히 째려보며 견제하기 시작했다.

에반젤린은 이 자리에 당장 팝콘이 없는 게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지. 이게 사교계의 볼거리지.”

사실 이게 진짜 그녀가 노린 볼거리지 않았던가.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에서나 본 사교계의 연애 전선이 정말로 사실인지 궁금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라우라 멜 영애. 지금 제가 크로네스 왕자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거 안 보이시나요?”

“죄송하지만 크로네스 왕자님은 당신의 소유물이 아니에요. 베르타스 공작 영애.”

“오호호호, 그렇다고 해도 크로네스 님과 먼저 말을 하고 있던 건 제가 아닐까요?”

“향후 약혼자가 될 수 있는 관계인데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지요. 그 정도도 배려를 못 해주시나요?”

“뭐…… 뭐라고요?”

흔히 볼법한 공작가와 후작가 영애의 알력다툼이다.

라우라 멜 후작 영애는 린디스, 한쪽은 륜 베르타스 영애 쪽은 팔란.

에반젤린은 저 소년도 참 범국가적으로 소녀들을 꼬시는구나 싶은 생각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때였다.

“역시 따분하네. 이런 연회는. 강한 놈도 안 보이고.”

느긋한 말투로 크로네스 왕자의 곁에 있던 소년이 중얼거렸다.

“시끄럽다. 라티우스 보르네. 왕자께서 대화를 나누고 계시지 않나.”

뒤이어 크로네스 왕자의 곁에 있던 친구로 보이는 두 소년의 말다툼이 이어지자 에반젤린이 다시 한번 눈을 반짝이며 손에 든 접시의 케이크를 전투적으로 흡입했다.

“와…… 어떻게 이렇게 빼다 박은 꿀잼 상황이…….”

“이봐. 크로네스, 참 바쁘겠어. 이렇게 영애들에게 둘러 쌓여있으니 말이야.”

“라티우스, 그런 게 아니다.”

라티우스라는 경박한 유쾌한 인상의 미남은 크로네스의 어깨를 두드린 뒤 걸어 나갔다.

그리고는 근처에 있던 작은 영애 한 명에게 익숙하게 작업을 걸기 시작했고 그녀 또한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호응한다.

반면 안경을 쓰고 이지적이며 차가운 인상을 풍기고 있던 소년은 다 관심 없다는 듯 그저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세상에…… 신랑감 후보 1위로 유명한 세 영식분이 모두 모이는걸 볼 줄이야. 정말 이곳에 오길 잘한 것 같아요.”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주변의 두 영애가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에반젤린은 흥미진진하게 두 영애의 사랑싸움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정작 소년은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이는지 담담한 표정이었다.

“슬슬 질리네.”

다만 저런 푸닥거리도 잠깐이야 즐거울 뿐, 계속 보면 흥미가 떨어지는 법이다.

소설에서 빼 온 것처럼 보이는 미소년 셋에 우아한 소녀 둘의 연애 사정은 딱 거기까지만 관심거리였다.

에반젤린은 손에 든 접시의 케이크가 사라지기가 무섭게 세 소년에 대한 흥미가 끊어진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와중 크로네스의 시선이 그녀에게 닿은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

그때 약혼자와 잠시 자리를 비웠던 이오샤가 돌아왔다.

“연회는 즐거우신가요. 공녀님?”

“재미는 있는데. 계속 보니 조금 질리네요.”

“호호 그런가요? 보아하니 저 스파르트 왕자님을 보고 계셨던 거 같은데. 혹시 흥미가 있으신가요?”

너도 저 소년이 관심 가냐 라는 질문이었다.

이에 에반젤린은 질린 표정으로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뇨. 별로.”

잘생기고 매력적인 외관에 절제된 움직임을 보여주는 건 점수를 줄 수 있으나 본능적으로 에반젤린에겐 거부감이 드는 인상이었다.

“대단한 재능아들이죠. 크로네스 왕자는 익스퍼터 상급에 3서클 마법사예요. 대륙에서 극히 보기 드문 체질이죠. 그리고 곁에 있는 녹발의 영식은 라티우스 보르네. 팔란의 보르네 가문의 영식이에요. 그리고 그 곁에 있는 차가운 인상의…… 음 뭐라더라 냉미남? 저 사람은 크로네스 왕자와 어릴 때부터 함께 지내온 친구인 크라마 린덴 공작 영식이죠. 라티우스 영식은 경박해 보이지만 제국 내에서도 유명한 천재 무투가에요.”

이오샤는 하나하나 꼼꼼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그리고 크라마 린덴 공작 영식은 어린 나이에 마나에 축복받았다고 말할 정도로 천재마법사죠.”

“그런가요?”

“스파르트 왕자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가 있는데 들어보시겠어요?”

“딱히 남의 이야기를 가십거리로 삼을 기분은 아닌 거 같아요.”

에반젤린이 거부하자 이오샤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공녀님은 정말 좋은 분이시네요. 제가 사람을 잘 봤나 봐요. 아 참, 내 정신 좀 봐. 제 약혼자를 소개시켜드릴…….”

그때였다.

쾅!!!

갑작스런 소음에 둘은 고개를 돌렸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에 놀란 두 사람이 고개를 돌렸을 때.

에반젤린은 놀란 표정을 지었고 이오샤의 얼굴은 차갑게 굳었다.

“결투는 양측의 싸움이 돼야 성립하는 거야. 머저리야. 괜한데 나서지 말고 물러나.”

“끄으윽…….”

테이블에 처박힌 사내가 다름 아닌 이오샤의 약혼자였던 서글서글한 인상의 소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뒤통수를 붙잡아 테이블에 처박아버린 것은 크로네스 왕자의 팔란 제국 친구, 무투가의 천재라던 라티우스 보르네 후작 영식이었다.

소년은 방금 전의 충격으로 코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꺅!”

“세상에…….”

놀란 얼굴로 소리치는 영애와 영식들을 뒤로하고 이오샤가 황급히 뛰어갔다.

“무슨 일이죠?! 세상에! 발리드! 정신 차려요!”

이오샤는 창백해진 얼굴로 피를 흘리는 자신의 약혼자를 부축했다.

“크으…… 이오샤 영애…… 물러나세요…….”

소년은 고통에 표정을 찡그리면서도 물러나지 않았다.

“사과하세요. 보르네 후작 영식. 그녀가 하지 않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아무 잘못도 안 해? 지금 장난해? 넌 지금 내 눈이 옹이구멍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냐?”

어린아이들만 있는 곳이니 당연히 생기는 부작용.

바로 혈기 왕성한 것들끼리 충돌이 생긴다는 사실이다.

이오샤의 약혼자 발리드는 바닥에 주저앉아 울먹거리며 오들오들 떠는 소동물 같은 영애를 가렸다.

“미안하지만 그녀는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닙니다.”

“그럼, 지금 베르타스 륜 공작 영애께서 거짓말이라도 했다는 건가?”

“그것은…….”

“흑…… 흐흑. 이런 수모를 겪다니 정말 슬프네요.”

울먹거리며 말하는 베르타스 륜 공작 영애의 드레스 자락에는 과일음료가 쏟아진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묻어있었다.

“무슨 일이죠?! 무슨 일이기에 제 약혼자를 이렇게 때리신 건가요!”

이오샤가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표정으로 서늘하게 묻자 라티우스가 뻔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때려? 이건 그냥 제압일뿐이야. 영애.”

“그걸 말이라고!”

“그리고 시작은 저놈이 했어. 저기 주저앉아있는 무례한 영애가 베르타스 공작 영애의 치마에 음료를 쏟았다고, 사과하라고 하는데 하지 않고 자신은 하지 않았다고 버티고 있는데 저놈이 끼어든 것뿐이야.”

그 말에 이오샤의 시선이 주저앉아있는 영애에게 향했다.

“영애. 정말인가요?”

“아……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전 음료를 쏟지 않았다고요…….”

아무도 그녀를 믿어주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요. 영애가 이런 일로 거짓말할 분은 아니죠.”

이오샤가 베르타스 공작 영애를 바라보았다.

“공작 영애. 정말로 저 영애가 당신의 드레스에 음료를 쏟은 게 맞나요?”

“흑…… 흐흑. 그럼 제가 거짓말을 한다는 건가요? 저는 억울해요!”

서글프다는 듯 흐느끼며 말하는 그 모습에 이오샤가 이를 뿌득 갈았다.

표정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보일 정도였다.

“무슨 일이지? 라티우스.”

“그와 시비가 붙었다, 그뿐이야.”

라티우스가 별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이에 크로네스 왕자와 크라마가 다가오더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공작 영애. 괜찮습니까?”

“네…… 네. 왕자님…….”

“다친 곳은 없으니 다행이군요.”

크로네스는 감정이 읽히지 않는 얼굴로 말했다.

“자세히 설명해라. 라티우스.”

“저 영애가 공작 영애에게 음료를 쏟았다. 그런 주제에 적반하장으로 나오길래 내가 한마디 했을 뿐이야. 그런데 저놈이 와서 시비가 붙은 거고.”

그의 말에 크로네스는 침묵했고 크라마는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이라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군, 라티우스.”

“뭐, 불만이면 한판 붙던가.”

“됐다. 머릿속이 근육으로 가득 찬 네놈과 푸닥거리하는 것도 지쳤어.”

손을 놓고 물러나는 크라마의 행동에 라티우스는 피식 웃으며 이오샤를 도발했다.

“그래. 페트릭 영애. 이제 궁금한 게 풀렸나?”

“예 풀렸네요. 당신이 얼마나 단순한 인간인지도 깨달았고.”

“뭐라고?”

“애초에 진위여부를 가려내기가 어려운 상황을 유도한 거겠죠. 하루 이틀 봐온 것도 아니고.”

“뭐…… 뭐라고요?”

베르타스 공작 영애가 발끈하지만, 이오샤는 차가운 표정 그대로 라티우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손에 낀 장갑을 벗어 그에게 던졌다.

팍!!!

“어? 이게 뭐 하는 짓이지? 페트릭 영애.”

라티우스가 스산한 미소를 지으며 노려본다.

“뭐긴요. 결투를 신청하는 거지. 당신은 내 약혼자를 때렸고, 나는 정당한 항의를 하는 겁니다. 결투가 성사된 것도 아니고, 진위여부가 가려지지도 않았는데 화가 난다고, 제 약혼자가 약해 보인다고 그를 공격한 건 명백히 선을 넘은 행동입니다.”

그녀의 말에 라티우스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꼴에 끼리끼리 만난다더니, 별의별 약골들이 다 덤벼드네. 뭐 좋아. 페트릭 영애. 안 그래도 페트릭 가문은 참 마음에 안 들었어. 사사건건 우리 가문하고 충돌하곤 했지.”

“그건 상관없어요.”

이오샤의 차가운 발언에 그가 이오샤를 비웃었다.

“하지만 결투는 거절하지. 나는 나와 싸울 정도의 수준도 안 되는 것들하고 결투를 할 생각이 없거든.”

“뭐라고요?”

“그리고, 이 상황에서 내가 영애를 때리면 그건 그것대로 보기 흉하잖아. 안 그래? 그러니까 대신할 기사를 데려와. 네가 이기면 얼마든지 사과해주지.”

그의 말에 이오샤가 이를 뿌득 갈았다.

“당신은 대체 어디까지 오만하려고!”

“오만? 미안한데 논점을 흐리지 마. 피해자는 베르타스 공작 영애고, 나는 그녀를 돕는 것뿐이야. 그리고 오만이라…… 충분히 능력이 있으면 그건 오만이 아니야. 당연한 거지. 그리고 지금 상황에 잘못된 게 과연 나일까, 아니면 약혼자가 맞았다고 눈이 돌아간 네 잘못일까.”

그의 말에 이오샤가 허탈하게 웃었다.

“당신의 배려 따위 필요 없어요. 제가 나서서 당신을 묵사발 내버릴 테니.”

이오샤는 이를 뿌득 소리 나게 갈며 말했다.

“아…… 안돼, 이오샤.”

바닥에 주저앉아있던 이오샤의 약혼자 발리드가 황급히 그녀를 말리려 했다.

그때였다.

“굳이 싸울 필요 있어요?”

에반젤린이 나섰다.

“무슨 뜻이죠?”

에반젤린의 발언에 모두의 시선이 모여들었고 베르타스 공작 영애는 갑자기 끼어든 불청객인 에반젤린을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근본적인 원인은 결국 음료를 쏟았냐 안 쏟았냐, 아닌가요?”

“그…… 그렇죠?”

“그럼 그 사실 여부만 가리면 되겠네요.”

에반젤린의 말에 라티우스가 무어라 말하려 하자 크로네스가 제지했다.

“그만해. 라티우스 보기 흉하다. 에반젤린 공녀, 방법이 있습니까?”

“방법이야 여럿 있지만요.”

에반젤린은 자신의 귀걸이에 걸린 연녹빛 장신구를 하나 뺐다.

[실프. 잠깐 나와봐.]

정령이 깃든 귀걸이. 다만 이렇게 부른다고 나올 수 있는 정령은 없다.

하다못해 정령사라면 가능하겠지만 에반젤린은 정령술을 쓸 줄 모른다.

그럼에도 그녀가 부르기가 무섭게 옅은 바람이 불며 연녹빛의 새가 나타났다.

용언. 다른 이들은 모르는 듯했지만 에반젤린은 정령술이 아니라, 용언으로 정령을 강제로 불러낸 것이다.

정령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에반젤린을 올려다보았다.

“여기서 있었던 기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에반젤린의 말에 정령은 두려운 듯 파르르 떨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모두의 앞에 어떤 영상이 드러났다.

잔뜩 기가 질린 채 서 있는 소녀,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다가가는 베르타스 공작 영애가 보인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손엔 음료 잔이 쥐어져 있었다.

“이…… 이건 조작이에요!”

당황한 베르타스 공작 영애가 외치기가 무섭게 영상 속의 공작 영애는 기가 질린 소녀에게 다가가 일부러 부딪히며 자신이 들고 있던 잔을 옷자락에 쏟아냈다.

“어…….”

당황한 라티우스가 떨떠름한 얼굴을 한 채 침묵한다.

“범인 나왔네요.”

“이건 조작이에요! 정령술도 아닌데 정령이 나와서 기억을 보여준다고요?! 말 같지도 않은 소리!”

“그럼 다른 증거를 내보시는 건 어떨까요. 이쪽은 정령의 기억을 보였고, 그쪽은 증언만 했는데.”

“이…… 이익! 에반젤린 공녀. 이러고도 무사할 거 같나요?! 제 아버지가 하인스 아카데미에 기부하는 금액이 얼만지는 알고…….”

“무사? 미안한데. 당신이 내게 물을 말은 아닌 거 같네요. 그리고 나는 딱히 베르타스 공작 영애를 공격하는 게 아니에요. 그저 진상을 보여주었을 뿐. 당신이 내게 화를 낼 일은 아니지 않나?”

“이익!!”

베르타스 공작 영애는 씩씩거리더니 부채를 촥 펼치며 시선을 돌려버렸다.

동시에 이오샤가 차갑게 웃으며 라티우스에게 으르렁거렸다.

“라티우스, 이제 할 말이 있어요?”

“어…… 그…… 그게.”

파악!!

자신의 생각과 상황이 다르게 돌아가자 우물쭈물하는 라티우스와 달리 륜 베르타스 공작 영애는 씩씩거리며 에반젤린을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하얀 장갑을 빼 에반젤린에게 던졌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에반젤린은 다 알면서 싸늘하게 물었다.

“결투를 신청하겠어요! 제 명예를 실추시킨 당신에게 결투를 신청한다고요!”

그녀의 외침에 에반젤린이 인상을 찌푸렸다.

“미안하지만 영애는 결투할만한 재목으론 보이지 않는데요.”

“제 결투 대리인은 라티우스 영식입니다!”

그녀가 소리치자 라티우스가 벙 찐 얼굴로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베르타스 영애. 나 말입니까?”

“그래요. 영식. 당신이 제 대신 나서주세요.”

“그건 좀…….”

방금 전 오만하게 말하긴 했지만, 잘잘못을 따져보니 애매한 입장이 된 라티우스가 거절하려 했다.

하지만 륜 베르타스는 그의 도망을 놓지 않았다.

“영식. 당신의 가문과 우리 공작가가 깊은 사업 파트너라는 걸 잊지 마세요.”

그 말에 라티우스는 완전히 얼굴을 굳히고는 말했다.

“내가 사람을 잘못 봤네. 좋아. 응해주지.”

그렇게 말한 그는 에반젤린에게 말했다.

“공녀, 공녀도 대리인을 불러야 하지 않을까?”

“후…… 후후. 공녀의 결투를 대신해줄 대리인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있다고 하면…….”

“내가 하지.”

그때였다.

가만히 있던 크로네스 왕자가 나서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한다.

“어…… 크로네스?”

“내가 하겠다고 했다. 불만은 없겠지?”

그 말에 베르타스 공작 영애는 굳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와, 왕자님……”

“공작 영애. 보기 추합니다.”

“이익!!”

“뭐. 좋아. 크로네스 너 정도면 제법 치고받을 맛은…….”

“미안한데 왜 멋대로 이야기를 진행해요.”

에반젤린이 심드렁하게 말한다.

“예?”

이에 크로네스가 벙 찐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

“결투. 대리인 없어도 할 수 있을 텐데요. 본인이 직접 나서면.”

“그…… 그게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마…… 맞아, 공녀님. 나는 결투가 벌어지면 상대를 봐주지 못해. 공녀를 때린다니 그건 좀…….”

“때려요? 그쪽이? 나를?”

에반젤린이 피식 웃었다.

“누구 마음대로?”

에반젤린은 진심으로 의문을 표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