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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466화 (1,466/1,559)

제 1466화

혼란스러운 팔란의 황성은 다시금 본래 기능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완전히 기능을 되찾았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납치되었던 이들이 치료와 검사를 받기 위해 모여있던 건물 또한 그러했다.

폭마석의 발화를 시작으로 시작된 폭발은 미리 준비된 것들과 연쇄적으로 폭발을 일으켰다,

대처할 틈도 없이 거대한 화마가 건물 전체를 휘감았다.

그 폭발이 얼마나 거셌는지 마스터 급 존재도 제대로 휩쓸리면 사망에 이를 정도로 위험한 힘이었다.

당연히 어중간한 힘을 지닌 영식이나 영애들이 그런 폭발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은 없었다.

물론 그 폭발이 일어난 지점에서 벗어나 있는 이들은 상대적으로 폭발의 여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곤 하지만 밀폐된 공간 안의 화재는 순식간에 호흡곤란을 일으키고 매캐한 연기로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하기엔 충분할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이, 임무…… 완수.”

그리고, 그 폭발 속에서 휘청거리듯 걸어 나온 한 소년이 휘청거리며 중얼거렸다.

다만 그의 몰골은 도저히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보기 힘든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한쪽 팔은 뜯겨 나갔으나 피는 흐르지 않았고, 몸 곳곳이 마치 오랜 시간 동안 방치된 것처럼 부패해있었기 때문이었다.

“시체…… 언데드?”

타오르는 화염속에서 소년은 자신의 앞에 나타난 에반젤린을 시야에 담았다.

그리고 한쪽에 고개를 돌리니 다른 이가 새카맣게 탄 채 죽어있는 게 보였다.

동시에. 폭발을 일으킨 영식의 얼굴이 기괴하게 비틀리며 웃음 지어진다.

“분명 죽은 자의 느낌은 없었는데…….”

에반젤린이 굳은 얼굴로 중얼거리기가 무섭게 창문이 박살 나며 기사들이 진입했다.

“공녀님! 무사하십니까!”

다급한 외침 속에서 기사들은 미친 듯이 터져 나오는 화마에 소매를 들어 코와 입을 가린 뒤 말했다.

“다른 분들은…….”

“전부 휘말렸어요.”

에반젤린이나 페르세르크,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따로 빠졌던 일부를 제외하면 모두 휘말린 셈이다.

사실상 다 죽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빌어먹을!!”

기사들이 격노하며 소리 질렀다.

“조심해요! 그는 언데드에요! 아마 폭발사태의 원흉이었을 거에요!”

에반젤린의 외침에 기사들은 그제야 몸의 반절은 부패하고 몸의 반절은 타버린 소년을 직시했다.

“저자는…….”

“조심하세요.”

-그흐흐흐흐…….

이윽고 언데드가 된 소년의 입에서 기이한 웃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하자 기사들이 긴장한 듯 검을 빼 들었다.

하지만 놈이 움직이기도 전에 건물 내부로 진입한 누군가가 소년의 목을 그대로 베어버렸다.

“폐…… 폐하!!”

“뭣들 하나!! 이 건물은 연쇄 폭발이 계속된다! 살아있는 자들을 내보내! 어서!”

“하지만 내부에 아직 생존자가 있을 가능성이…….”

“내 명령을 못 들었나!! 이건 단순한 폭마석의 폭발이 아니다!!”

살리반의 외침과 생존한 인원들은 추가 폭발에서 신속하게 빠져나왔다.

콰아아앙!!!!!

이윽고 건물 전체가 완전히 폭발에 휘말리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허망하게 그 모습을 보던 기사 중 하나가 중얼거렸다.

“자랑스러운 팔란의 황국에서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기사들은 명을 받들라! 아직 내부에 배신자가 있을 수 있다!”

“언데드에요! 적의 수괴는 사령 마법을 다룰 수 있어요! 게다가 생자와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위장이 가능하니까 신관님들이 필요해요!”

에반젤린의 외침에 살리반 황제가 소리쳤다.

“신관들을 끌어모아라!”

살리반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에반젤린이 어렵게 모두를 살려 데려왔건만, 내부에 있던 테러분자가 아직도 남아있다니. 대체 얼마나 스며든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신관은 무엇하나!! 대체 언데드가 된 이가 있는데 어찌 그걸 몰라봐!!”

“죄…… 죄송하옵니다. 폐하! 저희들의 감지로는 언데드화를 감지할 수가…….”

“오라버니.”

혼란 속에서 일리나가 살리반을 불렀다.

“바쁘니 돌아가라. 어디에 누가 적인지 알 수 없다. 하다못해 대주교 이상급의 신관을 불러오지 않으면…….”

“됐으니까. 어전으로 돌아가세요. 오라버니가 현장에서 이러고 있는 것보다 향후의 문제를 대비하는 게 맞을 거예요.”

그 말에 살리반이 인상을 찡그렸다.

“앞날이 창창한 아이들이 대량으로 죽었다. 넌…….”

“냉정을 찾으라고 하던 건 오라버니 아니었나요?”

일리나의 차가운 물음에 살리반이 크게 움찔했다.

“폐하. 우선 드시지요. 이미 벌어진 일입니다. 향후의 문제를 대비하는 건 반드시 필요하옵니다.”

“……언데드화를 정밀 조사하라.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테러분자가 만들어낸 언데드는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구분하기 쉽지 않다.”

살리반은 피곤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며 명령을 내리고 어전 쪽으로 향했다.

* * *

일리나와 에반젤린은 살리반을 따라 어전으로 향했다.

“한데. 일리나. 괜찮은 것이냐.”

“뭘 말이죠?”

“페르세르크 대공비도 폭발에 휘말렸을 터인데…….”

사실 살리반이 가장 걱정하는 것이 그것이었다. 이미 데이비가 자기 가족을 건드린 존재를 어떻게 말살하는지 본적이 있는 만큼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직접적이라곤 할 수 없지만 황실 내부에서 이런 사고가 터졌으니 그가 어떻게 나올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왜 에반젤린과 일리나는 이토록 침착한 것일까.

에반젤린은 어머니가. 일리나는 잘 따르던 언니가 폭발에 휘말린 것이다.

사실상 생사여부를 따지는 게 힘들 정도의 폭발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건 말이 되지 않았다.

이에 일리나는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보다 말했다.

“살리반 오라버니.”

“무엇이냐.”

“잠깐 따라와 주세요.”

이후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살리반을 둘러멨다.

“으…… 읏?! 뭐…… 뭐 하는 것이냐, 일리나!”

“버둥거리지 마세요.”

파앙!!!

그리고는 빠르게 어딘가로 향했다.

그가 향한 곳은 어전이 아닌 어전이 있는 황성의 비밀통로였다.

“이…… 이곳은?!”

“조용히 따라와 주세요.”

일리나는 그를 내려놓고 에반젤린을 돌아보았다.

“에린이도.”

“네에.”

조금 전까지 당황해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대체 무슨…… 흡?!”

이윽고 통로의 끝에 도달한 살리반은 놀라운 광경을 보고 눈을 부릅 떴다.

“끄으윽…….”

여기저기 상처를 입은 아이들이 모여있다.

“엄살피우지 말거라.”

그리고, 그런 부상자들을 페르세르크가 치료하고 있었다.

“엄마!”

“왔구나. 어찌 되었어.”

“블러핑 던져놨어요. 엄마 말대로 언데드를 통해 보고 있었다면 다 전해졌을 거예요.”

“이게…… 어떻게 된…….”

혼란스러워하는 살리반 황자를 한번 본 페르세르크가 손뼉을 쳤다.

그러자 주변에 결계가 쳐졌다.

“우선은 가장 중요한 영애와 영식들을 구조해낸 거예요.”

“구조해냈다고? 여긴 대체 어디…… 게다가 어떻게 미리 알고?”

그의 물음에 일리나는 한숨을 내쉬며 설명해준다.

“여긴 뭐…… 제가 어릴 적에 황성을 들락날락하다가 우연스레 찾은 장소고요. 황실 지도에도 남아 있지 않아서 정말 우연스럽게 찾아낸 거지만. 가장 은밀한 장소인 건 틀림없죠.”

그랬다. 이미 영식들과 영애들을 빼돌려 이곳에 숨겨놓은 것이다.

그리고 건물에 남아있던 시신들은 대부분 페르세르크의 방비 이후 남은 환각 마법임을 알아차렸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살리반은 일리나로부터 일의 전말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가르강티아 네차흐. 놈의 사령 마법은 생자에 한없이 가까운 언데드를 부릴 수 있다는 점이다.

그 탓에 어지간한 신성 마법에도 티가 나지 않아 구분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에 페르세르크는 놈이 반드시 후속 조치를 해놓았을 거라 판단했고, 영식과 영애들 사이에 언데드화가 된 존재를 찾았다.

그 결과 두 명의 영애와 영식이 언데드화된 것을 확인했고, 그들을 제외한 모두에게 이중마법을 걸었다.

하나는 일리나가 미리 준비해둔 공간을 좌표로 이동되는 전이 마법을, 또 하나는 그 마법의 트리거가 되어줄 삼중 방어마법을 말이다.

단순 방어마법만 걸었다간 사망자가 나올 수도 있거니와 단순히 보호하는 것만으론 앞으로의 일을 대처할 수 없다는 게 페르세르크의 생각이었다.

“즉…… 그 드래곤은 아직 살아있고, 그놈이 어딘가에서 상황을 조종하고 있으니 영애와 영식들을 모두 죽은 것처럼 위장한 것이라는 소리군.”

“에린이까지 휘말렸다고 하면 믿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에 폭발 속에서 살아남은 것처럼 위장한 거예요. 언데드의 눈을 통해 상황을 본 놈이라면 실체에 가까운 시체들과 에린이의 행동을 보고 계획이 성공했다 판단하겠죠.”

적을 속이기 위해 아군부터 속인 셈이었다.

어디까지나 가르강티아에 대해 닉스가 페르세르크에게 많이 떠벌린 덕분이었다.

“한데 왜 이걸 이제 와서…….”

“마음 같아선 알리고 싶지만, 내부에 누가 배신자인지까지는 알 수 없어요. 그래서 우선 영애와 영식들중에 언데드를 제외한 존재만을 이동시킨 거죠.”

다른 말로 하면…….

“다른 말로 하면 언데드가 아닌 배신자가 이곳에 있을 수도 있다는 소리로군.”

“적어도 당장 그에게 연락할 수는 없겠죠. 완전히 밀폐된 공간이니.”

“후우…….”

그제야 긴장이 풀린 것일까. 살리반은 한숨을 내쉬며 휘청거렸다.

“정신 차려요. 오라버니. 오라버니는 이 나라의 황제예요.”

“페르세르크 대공비. 이 은혜는 잊지 않겠소.”

그녀가 아니었다면, 언데드화한 이에 의해 영식과 영애 모두가 죽었을 테니.

“그보다. 외부는 어찌 되었습니까.”

“언데드에 대한 정보를 자연스럽게 얻었으니 신관들이 정밀 검사를 시작했소.”

그의 말에 페르세르크는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 정보를 공론화하고, 상대의 눈을 속였다. 그러면서도 중요한 이들의 생명은 구해냈으니 사실상 문제는 해결된 셈이었다.

“아마 놈은 반드시 어떤 움직임을 보일 거예요. 그동안 팔란은 영식과 영애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명목으로 뭇매를 맞겠죠.”

놈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대륙을 전쟁통으로 몰아넣으려 들것이다.

“짐이 해야 할 일은 간단하군.”

“향후, 어떻게든 전쟁으로 번지는 사태만 막아주면 되는 겝니다.”

“다급해진 놈이 무리수를 두었을 때. 이들의 생존을 알리고, 상황을 무마. 그 후에 놈을 추적한다라.”

살리반이 눈에 이채를 띠었다.

적의 수괴. 가르강티아 네차흐가 어디에 적을 두고 있는지. 그의 세력이 어느 정도인지. 또 그가 얼마나 많은 이들을 조종하고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만큼 정보를 반드시 얻어야만 했다.

그리고 페르세르크를 보며 물었다.

“이 모든 게 대공비의 계획이오?”

“계획보다는 대처겠지요.”

“용의주도하군…… 소문으로만 들었다만, 대공비의 그 현명한 판단에는 감탄했소.”

“크흠…… 오라버니. 저도 한몫했는데요.”

“팔란의 위신을 떨어뜨릴 작정이냐. 오만은 파멸의 지름길이다. 일리나. 경거망동하지 마라.”

“진짜 데이비에게 다 일러버릴까…….”

짜증을 내듯 그녀가 투덜거렸다.

“하면. 이번 일에 하인스 대공은…….”

“그 사람은 이곳에 없어요.”

일리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결국 트로이에서 용사 아리스의 헬프콜이 데이비에게 날아든 것이다.

“이번 일에 그가 나서는 일은 없을 거예요.”

비록 가르강티아는 위험한 존재이긴 하지만 모든 것을 데이비에게 맡기는 게 얼마나 이기적인지 아는 이들이었다.

“다만, 죽지 않는 자라면…… 대체 그를 어떻게…….”

“자잘한 계략은 있지만, 준비가 필요합니다.”

페르세르크도 뾰족한 수단을 내놓진 않았다.

방어마법을 통해 보호했음에도 자잘한 상처를 입은 이들이 끙끙대는 걸 보며 살리반은 몸을 돌렸다.

“저들을 치료할 신관중에 믿을 수 있는 자들을 몇몇 선발하겠소. 그들을 확인해줄 수 있겠습니까.”

살리반의 제안에 페르세르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날이 밝고 폭발로 인한 혼란까지 어느 정도 수습되었다.

자신이 자리로 복귀한 살리반은 계속해서 날아오는 타국의 연통을 보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페르세르크의 말대로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성난 타국의 원성을 어떻게든 억눌러 상황이 악화하지 않게 막는 게 우선이었다.

팔란 내부에서도 연회를 위해 부른 이들이 대부분 사망해버린 탓에 이 꼬여버린 상황을 어찌 풀지 몰라 혼란스러워하는 상황 그 자체였다.

대부분의 귀족은 희생된 영애와 영식들이 살아있다는 걸 아직 모른다.

살리반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상황을 무마시키기 위한 조건으로 국제연합의 회의를 소집했고, 전례 없는 참석자를 이루며 고작 며칠 만에 국제연합의 회의를 개최했다.

본래라면 라운에선 데이비가 참석해야 했지만, 이번엔 불참을 선언했다.

영식과 영애 중 유일한 생존자는 에반젤린 올 라운 하나뿐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녀는 요양을 명목으로 하인스로 돌아갔다고 거짓 정보가 퍼졌다.

즉. 에반젤린이 이들 중 유일한 생존자인 셈이었다.

당연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한참을 물어 뜯길 수 있지만 그럼에도 그 누구도 에반젤린의 생존을 걸고넘어지는 쪽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폭발에 휘말려 하인스의 대공비 페르세르크가 휘말렸다고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하인스 대공, 데이비 올 라운의 부인사랑은 대륙에 소문이 자자한 편이다.

그런데 가장 사랑하는 부인이 죽었는데 네 딸은 왜 살아있냐? 라고 묻는듯한 태도를 보인다면 눈이 돌아간 그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아무도 장담할 수가 없었다.

에이리아 알 라운의 암살 혐의로 국가 하나가 하루아침에 증발해버렸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로썬 괜히 하인스를 들먹여서 독박을 쓸 바에 입을 다무는 쪽을 택했다.

첫 번째 회의에서 팔란은 조사 중이라는 명목으로 시간을 벌었다.

데이비가 본보기 선례를 남겨놓은 것이 이렇게 도움이 된 셈이었다.

“이제 이걸로 된 것입니까?”

처음과 다르게 굉장히 정중해진 말투였다.

간이침대에 앉아 서로 보드게임을 하는 영식들, 한쪽에서 신기한 듯 차를 음미하며 지구의 디저트를 음미하는 영애들.

고작 며칠만인데 영식과 영애들은 굉장히 느긋해 보였다.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이 답답한 상황에서도 말이다.

저들은 지금 바깥의 사태가 어떤지는 알고나 있을까.

“다음 국제연합 회의는 언제입니까?”

“못해도 나흘 정도 후에 열릴 것입니다.”

“따로 놈의 움직임으로 보이는 건 발견된 바가 없습니까?”

“따로 발견된 것도 없습니다. 아직 혼란스럽지만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국의 황제가 누군가에게 의견 자문을 구하고 그대로 따르는 건 여러 문제가 있다.

그럼에도 살리반은 페르세르크에게 조언을 구하기를 아끼지 않았다.

그만큼 그녀의 현명함을 존중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살리반의 대답에 페르세르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뜸 들이기는 이만하면 되었을 겁니다. 아마 놈은 예전과 달리 분위기가 전쟁으로 향하지 않는 것에 의문을 품었을 겁니다.”

그 말대로였다.

전쟁이 활발하던 과거였다면 이미 대륙적으로 전쟁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다.

실제로 콘타스와 린디스 쪽에서 강력한 항의가 들어오고 있는 정도.

당장 전쟁이 벌어지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국제연합. 그동안 삼제국이 여러 국가를 포섭해 만든 연합은 전쟁보단 화합과 평화를 내세웠기 때문이었다.

평화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이들은 과거 전쟁의 참혹함을 기억하는 만큼 추가적인 전쟁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조한다.

“아마 놈은 간을 보기 위해서든 초조했기 때문이건 움직임을 보일 겁니다.”

“한데 어떻게 움직일는지…….”

“예측대로라면 놈은 이미 여러 국가에 자신들의 수족을 만들어놨을 겝니다. 팔란의 황실 마법사단장처럼.”

황실 마법사단장 베르타스 공작.

마법사단장의 행동원리가 무엇이었건 그는 사실상 파멸이리라.

다만 이곳에 있는 베르타스 공작 영애는 아버지의 상황을 모르기에 제 추종자들을 데리고 제법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었다.

“아마 놈은 조만간 하인스를 은연중에 들먹이게 만들 겁니다.”

사실상 최고의 화약고이며 위험지대였으니까.

하인스를 자극해 이 상황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으려 들것이다.

페르세르크의 말에 살리반은 설마 놈이 그렇게까지 할까 싶었다.

* * *

영애들과 영식들이 머무르고 있는 황성 지하의 비밀의 방에서 조금 떨어진 공간.

페르세르크는 공간확장 주머니 속에 고이 보관해둔 상자를 꺼내 들었다.

"그 상자에 든 건 뭐예요? 그걸 가지러 잠시 갔던 거예요?"

영식과 영애들과 달리 페르세르크는 워프 마법을 홀로 사용할 수 있기에 황성에 머무는 기간 동안 하인스를 몰래 왔다 갔다 하며 무언가를 준비했다.

"그렇구나. 이걸 가져오게 될 줄 몰랐다만."

"그게…… 뭔데요?"

에반젤린은 문득 상자안에 든 것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제야 기억이 난 듯 손뼉을 쳤다.

"설마 그거!"

"맞아. 네 아빠가 애지중지하던 애장품이지."

에반젤린의 표정이 파랗게 질렸다.

"그거…… 쓰면 아빠가 화내지 않을까요?"

그 물음에 페르세르크는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화내겠지."

"그런데……."

"그런데 어쩌겠니. 네 아빠가 먼저 시작한 것을."

아직 소재를 훔쳐간 분노가 사라진 게 아니다.

"그거…… 아빠가 이번에 새로운 걸 만드는데 꼭 필요한 거라고 엄청 어렵게 구했다고 들었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것일까.

페르세르크가 꺼내 든 것을 보며 에반젤린은 괜히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리 걱정은 되지 않았다.

데이비가 무력은 강할지라도 페르세르크에게 먼저 잘못한 것도 있고, 그것이 아니더라도 꼼짝 못 하는 입장인 것도 사실이니 말이다.

무엇보다 그녀의 행동이 남이 아닌 에반젤린을 다치게 한 놈을 처단하기 위해서였던 만큼 괜히 마음이 뭉클해지는 기분이었다.

"그걸로 뭘 만드시게요?"

"불사파괴의 화살을 만들게야. 온전한 효과는 내기 힘들겠지만. 흉내는 낼 수 있겠지."

과거 수르트의 화살로 데이비가 닉스를 소멸시키듯 페르세르크는 가르강티아에게 걸맞은 무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불사파괴살이라…… 잘 될까요?”

에반젤린의 물음에 그녀는 쓰게 웃었다.

“미친놈에게는 그에 맞는 방법을 찾아야겠지.”

페르세르크의 표정이 스산하기 그지없었다.

“데이비에게 맡길 순 없어. 본녀가 알아서 할 터이니 에린이 너는 믿고 기다리려무나.”

* * *

같은 시각.

“발이 보인다. 슈네리아 레켄. 아리스 넌 자세 똑바로 안 해?”

지구에 있는 외딴 무인도.

그곳 해변에서 썬베드에 누운 채 음료수를 쪽쪽 빨며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데이비가 트로이의 어린 용사 아리스와 외곽차원의 데이비의 성녀 슈네리아 레켄을 불러놓고 한참 느긋하게 굴리며 농땡이를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요즘 젊은것들은 이렇게 체력이 없어서야 쓰나. 나 때는 말이야.”

“으아아아아!!”

비명을 지르면서 압도적인 중량이 서린 조끼를 입고 달리는 아리스가 해변에 철퍼덕 쓰러진다.

동시에 놀랍게도 그녀가 쓰러진 지형이 쿵!! 소리를 내며 크게 내려앉았다.

“데이비…… 이, 이걸로 강해질 수 있는 거 맞아?”

“안되지.”

“응?”

“거기서 중량 세배는 더 올려야 간에 기별이라도 가지.”

“그…… 그러면 죽을 거 같은데…….”

아리스가 울먹거린다.

그리고 아리스에 비해선 상당히 가벼운 중량조끼를 입고 달리던 데이비의 성녀, 슈네리아가 울먹거리며 소리쳤다.

“전 성녀라구요! 성녀가 무슨 육체단련이에요!”

“걱정 마. 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거니까.”

“대체 이런 무식한 수련방법을 누가…….”

“내가 했지.”

회랑에서 데이비가 처음 배운 것들.

아리스와 슈네리아는 데이비의 제자로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그렇기에.

데이비는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제대로 행하지 않은 회랑식 훈련법을 아낌없이 두 사람에게 전수했다.

“걱정하지 마. 단시간엔 몰라도 몇 년 지나면 전보다 수배는 대단해질 거다.”

“이거…… 훈련은 얼마나 해야 데이비만큼 강해지는데?”

아리스가 숨을 할딱거리며 물었다.

이에 데이비는 대답 따위 정해져 있다는 듯 대답했다.

“단순 육체 훈련만 놓고 보면 100년은 해야지.”

천년을 꼬라박아서 완성된 육체를 1~2년 만에 완성하려 들다니. 어리석다.

데이비는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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