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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469화 (1,469/1,559)

제 1469화

-그아아아아!!

“으아앗!! 슈네리아 언니!”

“멍하니 있지 말고 빨리 좀 구해줄래?!”

일반적인 좀비나 구울과 달리 엄청난 속도와 힘으로 추격해오는 언데드들에게서 도망치는 슈네리아의 속도는 확실히 이전과 달라져 있었다.

스쾅!!!

이윽고 용사 아리스의 백광의 빛이 한차례 번뜩이자 언데드들의 목이 허공을 날랐다.

“하아…… 하아……. 진짜 죽겠네…….”

“괜찮아요? 다친 곳은…….”

“없어. 집중해. 또 온다.”

데이비가 그녀들에게 시킨 것은 계속해서 몰려오는 언데드를 뚫고 목적지까지 가는 것.

그 와중에 그는 언데드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지 묵묵하게 전방을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대체 뭘 보고 있는 걸까요.”

“그야 모르지. 앗! 온다!”

4족 보행을 하며 짐승 같은 속도로 덮쳐오는 언데드들을 보며 슈네리아가 소리치자 아리스가 섬광처럼 쏘아져 나갔다.

하지만 무리한 훈련 때문일까.

“꺅!”

결국, 실수를 해버린 아리스가 미끄러지며 틈을 만들어내 쏙, 그 틈을 타고 언데드 하나가 그녀의 몸에 공격을 가했다.

쩌어어어엉!!!!

하지만 타격은 가해지지 않았다.

공격은 성공했으나 아리스를 얇게 감싼 에너지는 놈들의 공격을 원천차단하고 있었다.

“아리스. 방금 한번 죽거나 그에 준하는 피해를 입었다.”

“윽…… 그, 그건…….”

“죽고 나서 변명할래?”

이상하게 조금 전보다 차가워진 듯한 말투에 아리스는 움찔하며 그녀의 몸을 동강 내려는 언데드를 베어 넘겼다.

“미안…….”

“집중해. 내가 널 가르치는 이유는 너에게 싸우게 하기위함이 아니야.”

그걸 왜 모를까. 그가 얼마나 많은 배려를 해주고 있는 건지.

그렇기에 아리스는 데이비가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아리스가 다시금 무기를 쥐고 집중하기 시작한다.

반면 데이비는 익숙한 기운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저승아.”

“네.”

이윽고 데이비가 영혼을 관장하는 저승사자. 저승이를 부르자 모습 대신 목소리만 들려온다.

“영혼 하나만 찾아봐라.”

“어떤 영혼을 찾아볼까요?”

“닉스. 거인족 리치. 닉스의 혼이다.”

데이비는 미련 없이 저승이와의 연결을 끊었고, 이내 결계 속에 숨겨진 거대한 에너지 체를 향해 손을 뻗었다.

[브레이크]

와장창!!!!

대지가 파헤쳐지고 정순하게 제련되고 있던 빛의 구슬 같은 것이 깨져나간다.

동시에 주변에 있던 언데드들도 힘을 잃고 무너져내렸다.

이에 아리스가 의아한 얼굴로 데이비를 바라보았다.

그의 성격대로라면 이렇게 끝낼 위인이 아니었으니까.

“응? 데이비?”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질문을 하고자 해도 데이비의 표정에 짜증이 서려 있었던 만큼 결국 묻지 못하는 그녀들이었다.

* * *

정체 모를 검은 비늘의 드래곤, 가르강티아 네차흐.

놈의 출현은 뜬금없었으나 놀라울 정도로 큰 피해를 일으킨 존재라 할 수 있다.

약소국 하나를 점령해버린 그가 정체를 드러냄과 동시에 그는 빠르게 왕국 전체를 잠식하듯 먹어치웠다.

검은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었고, 대지가 부글부글 끌어 오르듯 죽음의 땅으로 변한다.

왕국. 아니 정확히는 암 왕국의 수도가 완전히 잠식되는 데엔 많은 시간도 필요하지 않았다.

아무리 약소국이라고 해도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왕성이 넘어가 버린 셈이다.

과거 대륙이 마주한 어떤 언데드 군대 이상의 위기를 드러내는 느낌이다.

물론 불사왕의 경우 데이비에 의해 너무 손쉽게 처리되었기에 과소 평과 받긴 했지만, 9서클에 달하는 사령 술사가 흔한 위협은 아니리라.

네차흐가 점령한 왕국은 다름 아닌 암 왕국이었다.

다른 국가 또한 그의 마수가 뻗쳐졌다.

배신하여 그를 따르는 이도 존재하고 언데드가 되어 수족이 된 자도 존재했다.

암 왕국의 재상만 언데드가 된 것이 아니었다.

가르강티아는 암 왕국에 자신의 둥지를 틀기가 무섭게 그곳에 있는 왕족부터 모조리 찢어 죽였다.

운이 좋았던 것일까.

암 왕국의 왕자인 굴롬 왕자는 살아남았지만, 그 외에 왕실 귀족이나 왕족들이 모조리 참살당한 것은 피할 수 없는 결과이기도 했다.

“그가 원하는 건 너다. 일리나.”

“그래도 가야 해요. 놈이 자리 잡은 암 왕국은 더 이상 생존자가 없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에요. 따라서 타국의 인사가 못 들어가는 상황은 아닐 텐데요?”

“정치적으로는 그렇겠지 대륙에 이빨을 드러냈으나 자기 집에 불청객이 들어오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집주인이 죽어버린 이상 저 땅은 무주공산이나 다름없다.

물론, 암 왕국 자체가 무너진 것은 아니겠지만 혹시 모를 왕족이 나타난다 해도 엄청난 고행을 겪어야 하리라.

“지금 적의 아가리에 고기를 밀어 넣어주겠다는 것이냐!!”

“나는 일개 고깃덩어리가 아니에요!”

살리반과 일리나의 논쟁이 펼쳐지는 동안 페르세르크는 지도를 펼쳐놓고 분석 중인 두 사람을 스윽 훑었다.

륀느와 레이나였다.

본래 하인스가 전면에 나설 이유는 없지만, 가르강티아는 대부분의 국가에 자신의 심복을 숨겨놓았고 원하는 시간 내에 움직임을 보이지 않을 시 무차별적인 테러를 감행하겠다 협박하고 있었다.

상대는 9서클 마법사. 작정하고 난동을 부리면 어마어마한 인명피해를 낳을 수 있는 존재이리라.

때문에 라운의 입장에서도 그녀들의 합류를 막을 수단은 없었다.

때문에 일각에선 데이비의 참전을 요청해야 한다는 말이 많았지만, 페르세르크의 선에서 일축되었다.

그놈을 건드리지 말라곤 했지만, 데이비도 바보가 아닌 이상 움직이고 있을 터였다.

-놈이 숨겨둔 수는 모두 부숴놓을게. 정말로 힘들면 불러. 세상 끝에 있어도 바로 찾아갈 테니.

데이비만이 가능한 일을 하는 것이다.

“현재 각국은 다방면으로 진입 후 왕성의 포위섬멸을 진행하려 하고 있지.”

“상대는 사령술사잖아요.”

적의 수가 많을수록 강해지는 사령 술사. 그런 존재를 상대로 물량전은 사실 큰 의미가 없었다.

“그렇겠지. 그렇기에 본녀는 게릴라전을 요청했지만, 상대가 9서클 마법사라는 점이 좀 걸리는 모양이더구나.”

상대가 일개 사령 술사도 아니고 고위의 사령 술사.

게다가 놈은 이미 왕성 하나를 먹어치우며 그 안에 있는 모든 인간을 언데드화 시켰을 가능성이 컸다.

그 수가 소수정예로 파고들 수 있을 정도로 녹록하진 않으리라.

그렇기에 일리나는 놈이 가장 원하는 자신을 미끼로 진입하여 놈의 모가지를 따자는 계획을 내세웠지만, 살리반의 강력한 반대에 현재 부딪히고 있는 시점이었다.

물론 페르세르크도 낙관적으론 생각하지 않았다.

가르강티아는 뭐라 해도 뒤가 없는 미친놈이다. 놈에게 이제 인간들의 전쟁은 관심 밖이라곤 하지만 정말 그가 원하는 바가 그게 전부일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게다가 중요한 것은 놈의 토벌뿐만이 아니었다.

“분명 아직 그 네 사람 살아있을 거예요.”

그의 전이 마법에 휘말린 세 명의 영애와 한 명의 왕자.

크로네스와 베르타스 공작 영애, 라우라 후작 영애. 마지막으로 페트릭 가문의 이오샤까지.

이들을 구하기 위해 움직이는 데엔 에반젤린이 나서게 되었다.

아직 아이인 에반젤린이 나서는 건 안 된다며 반대하는 입장들이었지만 에반젤린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륀느와 보팔 레빗이 붙었기에 결국 완전히 반대하지 못했다.

문제는 이들이 공간 전이 된 게 어딘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유일하게 내부의 지리를 잘 아는 인간이 필요하다 판단.”

륀느의 의견제안에 에반젤린이 페르세르크를 본다.

“암 왕국에 대해 잘 아는 이라면 한 명이 있구나.”

“윽…… 굴롬 왕자…….”

곧바로 인상을 찌푸리며 혐오를 드러내는 그녀의 행동에 페르세르크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에게 지도를 제작해달라 부탁할 수도 없지 않으냐.”

그 말대로였다.

그가 제대로 된 지도를 만들어줄 가능성도, 시간도 없으니 길잡이꾼으로 그를 데려가야 하는 상황.

“하다못해 통신수정구로 연락을 하면요? 영상 통화하듯이 길을 그 자리에서 안내받을 수도 있잖아요.”

에반젤린의 의견도 타당했지만, 레이나가 고개를 저었다.

“상대가 9서클 사령 술사로 추정되는 존재라면 재밍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게 문제겠죠?”

“그러하겠지.”

결국, 직접 데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가 협조할까요?”

페르세르크는 한숨을 내쉬었다.

당연 4명의 구출조에 합류시키기 위해 굴롬 왕자를 찾았지만, 그는 비명을 지르며 거부했다.

굴롬은 이 와중에도 피해자의 명목으로 팔란의 황성에서 호의호식하고 있었다.

오만하게 앉은 채 시중을 받고 있던 그는 그를 찾아온 에반젤린의 용건에 질겁했다.

“우…… 웃기지 마라! 그 망자의 땅이 되어버린 곳에 이 몸을 데려가겠다는 것이냐!”

“당신밖에 없어요. 길 안내할 거에요, 말 거에요.”

“시…… 싫다! 나, 나는 죽을 생각이 없단 말이다!”

자존심은 강한 주제에 극도로 찌질한 행동거지에 에반젤린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당신의 가족들이 있는 곳인데?”

“…….”

“생각하니 열 받네. 야. 네가 저지른 일 때문에 지금 4명이 납치당한 거야. 판단이 안 돼?”

에반젤린이 주변을 스윽 둘러보고는 짜증스레 묻자 그가 다시 한번 움찔 몸을 떨었다.

“지켜준다잖아. 거지 같아도 일단 지켜는 준다잖아. 그런데 뭐가 문제야.”

“으…… 으으으……. 이…… 이 몸에게 감히 그런 불경한…….”

콰아앙!!!

에반젤린이 테이블을 내리치기가 무섭게 테이블이 조각나듯 박살 났다.

이윽고 에반젤린이 그의 멱살을 잡으려던 순간. 륀느가 그녀의 팔을 막으며 제지했다.

“여기선 륀느가 높은 협상 능력을 가동.”

“륀느?”

륀느는 무표정한 얼굴로 부서진 테이블 위에 올라섰다.

그리고는 한 손에 빠루를 만들어내더니 어깨에 걸치고 툭툭 두드렸다.

“따라올 건지 여기서 머리통이 터질 건지 택일할 것을 요청.”

“미…… 미친년이로구나! 감히 이 몸이 누군지 알고!”

“망국의 왕자. 현재 암 왕국은 가르강티아로 인해 무주공산. 따라서 왕족으로서의 모든 세력이 말살되었다고 분석.”

륀느는 한치도 동요하지 않는 얼굴로 빠루를 그의 얼굴 쪽으로 들이밀었다.

“흐아아악!!”

“여기서 그쪽의 트롤링을 핑계로 머리통을 쪼개놔도 그 누구도 호응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명시하길 바람.”

“…….”

어차피 이제 널 지켜줄 이가 없으니 여기서 죽을지. 아니면 길을 안내할지 선택하라는 말이었다.

륀느는 대답하지 않고 덜덜 떠는 굴롬 왕자를 보다 빠루를 높이 들었다.

“오. 사. 삼…….”

“아, 알았다! 주…… 죽이지 말아다오!”

겁쟁이인 그가 여기서 자존심을 내세울 리는 만무했다.

“우리가 할 일은 연합군이 암 왕국을 치면서 시간을 끄는 동안 몰래 잠입하여 인질을 구출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에반젤린의 말에 그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식은땀을 흘렸다.

“이…… 이 수모는…….”

콰앙!!

륀느의 빠루가 그의 옆을 후려쳤다.

“아이구. 손이 미끄러졌네, 라고 보고.”

륀느의 행각에 그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딸꾹질을 했다.

“그거 아빠가 하던 짓 아니야?”

“륀느가 데이비 님의 협박능력을 높게 평가.”

“…….”

륀느는 데이비에게서 참 많은 것을 배웠다.

작전 시작은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작전의 개요는 간단했다.

각국의 연합들이 일제히 점령당한 암 왕국의 수도로 진격하여 포위한다.

놈은 병력이 밀려오는 건 전혀 신경 쓰지 않았으니 놈이 위기를 느끼고 인질을 날려버릴 가능성은 사실상 낮았다.

당연히 놈의 어그로를 끌기 위하여 일리나가 참전했고 페르세르크 또한 참전했다.

일리나가 가까이 있다는 사실 때문일까.

가르강티아는 자신의 모든 일을 내팽개치고 일리나를 맞이하려는 듯 모습을 드러낼 정도였다.

당연히 일리나는 질색하며 인상을 찌푸렸지만 말이다.

가르강티아에게 자신이 패한다는 가정이나 일리나를 손에 넣지 못한다는 가정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당연히 싸움이 곧바로 벌어지진 않았다.

연합군은 인질을 구출하기 전까지 시간을 벌 작전이었기에 곧바로 진입하지 않고 정보를 수집했다.

가르강티아 또한 특유의 오만함으로 인해 연합군의 정체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페르세르크의 마법이 펼쳐지며 그의 기감을 방해하기 시작했고, 그 틈을 타 에반젤린은 굴롬 왕자의 길 안내를 따라 성 내부로 진입했다.

적어도 에반젤린이 완전히 현신하면 놈을 죽이진 못해도 지지도 않으리라.

“이…… 이곳이다.”

굴롬 왕자는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숨겨진 통로로 륀느와 레이나, 그리고 에반젤린을 안내했다.

그 외에 소드마스터나 마법사가 한 명 추가로 붙었지만, 그들은 조금 전부터 성내에 진동하는 알 수 없는 냄새로 인해 고통을 호소했다.

“마법을 쓰기가 어렵군요. 대체 이게 무슨…….”

“온몸의 마나가 꼬이는 느낌입니다.”

그나마 멀쩡한 건 륀느나 레이나 에반젤린이 전부였다.

반면 마나가 거의 없는 굴롬 왕자는 상대적으로 멀쩡한 모습이었다.

“히이익!!”

물론 그는 매 순간이 방해 그 자체였다.

복도를 걸어 다니는 반쯤 부패한 언데드 시녀들을 보며 그가 비명을 내지르자 륀느가 망설임 없이 그의 복부를 후려쳐 숨을 삼키게 만든다.

당연히 소리를 듣고 시녀들이 움직였지만, 언데드가 되었고 제대로 힘을 받지 못한 건지 인비져빌리티 마법을 뚫고 모두를 찾지 못했다.

“우웁…… 다행이군요. 인비져빌리티(5서클) 마법에는 먹히는 모양입니다.

“저 방해꾼 새끼, 진짜…….”

에반젤린이 대놓고 짜증을 드러내자 굴롬 왕자는 헛기침을 하려는 듯 자세를 곧게 폈다.

“하면 죽어요.”

이에 에반젤린이 소리죽여 협박하자 그는 헛기침을 하며 애써 내세우던 자존심도 내렸다.

진입 자체는 순조로웠다.

가르강티아는 무슨 생각인지 연합군이 도달하자마자 자신의 병력은 내버려 두고 일리나와 칼부림을 시작했다는 모양이었다.

당연히 놈이 백날 날뛰어봐야 일리나에게 이길리는 만무하지만 불사의 힘을 지닌 놈은 한번 목이 베어져 죽고 먼지화했음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성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그런 불사에 연합군의 사기가 흔들리긴 했지만 반대로 그를 압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일리나로 인해 그 사기가 유지되고 있었다.

반면 가르강티아는 자신에게 죽음에 가까운 자극을 주는 일리나에게 제대로 빠지기라도 한 듯 아주 황홀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모양이었다.

외부의 소식을 전해 들은 에반젤린은 질린 표정으로 지하로 통하는 비밀통로를 걸었다.

“함정은 없어요?”

“하, 함정은 없다. 이곳은 우리 암 왕국의 왕족들이 피신을 위해 만든 장소. 그러니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절대 함정이 발동될 리가…….”

강제로 앞서나가던 그가 바닥을 밟기가 무섭게 벽면이 열리더니 두꺼운 발리스타 한 발이 그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터엉!!!

기겁한 그의 온몸이 굳어버린 그 순간. 륀느가 손을 뻗어 제 손보다 큰 발리스타를 가볍게 낚아채 버렸다.

“무쓸모하다고 분석 중.”

“우…… 으아아아!”

그의 비명에 에반젤린은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싫다…….”

정말 마음 같아선 곤죽으로 만들어버리고 싶은데 길 안내가 되는 놈이 이놈뿐이라는 사실이 너무 짜증스러웠다.

“빨리 안내해요. 인내심 바닥나기 전에.”

에반젤린의 서슬 퍼런 경고에 그는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그들의 앞에 생각지 못한 이들이 내려섰다.

“…….”

그것은 암살자들이었다.

하지만.

“언데드가 아니야?”

그들은 명백히 생자였다.

“데이비 올 라운의 딸 에반젤린인가?”

“당신들은 뭐죠? 왜 그를 따르는 거죠?”

일부가 아니고 다수의 생자들.

그들은 살기를 품고 말했다.

“세상을 등지는 한이 있더라도 하인스를 증오하는 이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그들은 자발로 가르강티아의 휘하로 들어간 존재들이었다.

그 이유는 아직 불명이었다.

* * *

영혼의 강.

현재 회랑의 영웅 우치가 관리하고 있으며 그 휘하에 있는 저승이나 일부 영혼들이 강에 흘러들어오는 윤회의 영혼들을 정화하고 있다.

“여기 있습니다.”

다만 영혼의 강에 들어온 영혼들의 대부분은 정화되는 기간이 달랐다.

“어렵게 찾았습니다. 소멸한 줄 알았던 혼이 이 안에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군요. 아마 여신님이 회수하신 모양입니다만…….”

저승이의 말에 데이비는 손짓으로 그를 무마시켰다.

아리스와 슈네리아가 아직 숲에서 기다리고 있기에 이곳에서 오래 시간을 끌 생각은 없었다.

데이비는 영혼의 강에서 정화되고 있는 영혼을 거칠게 뜯어냈다.

정화 중에 끄집어낸 거라 영혼에 큰 타격이 갔겠지만 상관없었다.

그의 혼이 찢기든 말든 아무래도 좋았으니까.

그 후 에이리아가 힘을 응축시켜 만들어준 영혼석에 놈의 영혼을 처박아 넣은 뒤 중간계로 다시 돌아왔고 영혼석을 활성화시켰다.

막대한 에너지가 영혼석에서 흘러나오며 이내 데이비의 앞에 거대한 신체를 지닌 뼈다귀. 즉 리치가 서리를 내뿜으며 몸을 일으켰다.

-아아…… 역겨운 공기의 향이로군.

오랜만에 듣는 리치의 음성이었다.

“리치 닉스.”

-네놈은?!

당연히 초대 리치 닉스는 자신을 죽인 데이비의 존재를 보자마자 극대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데이비는 손가락을 튕긴 뒤 주변을 차단시키고 말했다.

“너나 나나 서로 좋은 사이는 아니잖아. 안 그래?”

-네놈!! 감히 네놈이 내 원대한…… 커헉?!

데이비의 주먹이 그의 영혼을 한차례 후려쳤다.

과거 데이비가 닉스와 싸울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힘이 그의 영혼에 부하를 건다.

-끄아아악?!! 이게 무슨?!

“너 자는 동안 내가 파밍을 좀 많이 했거든. 무슨 말인지 이해가 돼?”

-닥쳐라! 헬파…….

[디스펠]

와장창!!!

초대 리치 닉스가 황급히 마법을 끌어올린다.

영혼만이 남았으나 혼의 상태로 수차례 부활한 적이 있는 이단자 리치 닉스였기에 놀랍게도 그의 마법은 시전되었다.

다만 디스펠만 아니었다면.

-비…… 빌어먹을 디스펠!!

그는 과거 데이비와의 싸움이 기억난 듯 부들부들 떨며 악다구니를 썼다.

-대체 어떻게 디스펠을!

“됐고. 이번엔 소멸 안 되게 조심해라.”

-닥쳐라! 그 기이한 화살 때문에 죽음을 경험했으나 부활한 이상 나를 죽일 수 있는…… 크어어억!!!

가볍게 접근한 데이비의 주먹에 검은 기류가 휘감기고 휘둘러졌다.

동시에 리치 닉스는 자신의 불사 능력을 모조리 뭉개버리며 파고들어 오는 데미지에 안광을 미친 듯이 떨어야 했다.

“물어볼 게 몇 가지 있거든. 그래서 널 찾아서 부활시킨 거다.”

정확히는 영혼만 빼낸 것에 불과하지만 리치 닉스는 자신이 어떻게 된 건지 아직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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