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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471화 (1,471/1,559)

제 1471화

암 왕국의 생존자를 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크로네스 왕자를 포함한 네 사람이었다.

그들이 대륙에 중요한 이들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현재 암 왕국 내에 가르강티아에게 붙은 이들을 제외한 생존자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이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점령당한 암 왕국의 수도에는 수십만에 달하는 수도민이 있다.

그런 그들이 다 죽었다는 건 엄청난 대참사나 다름없었다.

“공녀님. 표정이 안 좋으신데. 혹시 다친 거 아닌가요?”

에반젤린을 따라 빠르게 걸어가던 이오샤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다리가 아프다며 칭얼거리는 두 영애와 달리 그녀는 힘든 기색 하나 내비치지 않았다.

“아니에요.”

왕궁의 지하통로를 타고 이동하며 에반젤린이 쓰게 웃었다.

“이제 여기서 지하 공동만 지나면 외부로 이어질 거에요.”

들어올 땐 굴롬 왕자의 안내를 받았다.

성격이 X랄 맞은 놈이긴 해도 이곳의 지리에 대해선 놈이 가장 잘 알았으니까.

하지만 놈은 혼자 살겠다고 함정을 건드렸고, 보기 좋게 벌레에게 뜯어먹혀 사망했다.

그를 구하지 않은 것은 잘한 짓일까.

아니. 구하려 했어도 늦었겠지만 조금 무리했으면 살릴 수 있었을 텐데.

이 일로 또 아파하는 사람이 나오는 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덜컥!! 그르르르르릉!!!

굳게 닫혀있던 석문이 열린다. 들키지 않고 빠져나가려면 10분 정도는 여기서 기다려야 했다.

“말해봐야. 공녀. 저와 공녀는 친구잖아요.”

이오샤가 에반젤린의 손을 꼭 잡고 웃어주자 에반젤린은 고민하는 얼굴로 시선을 떨궜다가 조심스레 말했다.

이곳에 오기 전 가르강티아에게 붙어 그의 힘을 받아 복수를 꾀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베르타스 공작 영애였다.

의외이기도 했으며, 네가 그러면 그렇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뭔가요. 그 나쁜 놈들은.”

“나쁘다고요?”

“죽이려 드는 놈들에게 뭐, 동정이라도 베풀 생각인가요?”

“그렇다고 해도 그들로썬 남은길이 그것뿐이었어요.”

“그럼 당신은 지금 당신의 부친이 잘못했다 말할 건가요? 당신은 보기보다 가족애가 형편없군요.”

“베르타스 공작 영애. 말이 지나치세요.”

기회를 잡은 양 말하는 베르타스 공작 영애를 보며 에반젤린은 혼란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녀와는 좋은 기억이 없다. 굴롬 왕자라는 희대의 트롤러가 있다곤 해도 연회장에서 충돌한 건 그녀였으니까.

레이나나 륀느는 묘한 시선이었다.

실제로 가르강티아의 힘을 이어받고 있던 그 흑의인들이 에반젤린에게 초대장을 보내지 않으려 했다고 말한 것을 보면 아마 베르타스 공작가의 힘을 이용해서 그녀를 쳐내려고 한 것을 눈치챘으니 말이다.

정작 그녀는 현재 제 아비가 국가전복, 즉 역모죄에 연루되어 잡혀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그녀의 말이 맞습니다. 공녀.”

그때 가만히 있던 크로네스가 베르타스 공작 영애의 말을 끊고 다가왔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자 에반젤린이 놀란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티오니스 성자, 당신의 부친께서는 선택을 했습니다. 많은 이들을 구하기 위해서요. 만약 마족과의 전쟁을 멈추지 않았다면 더 많은 이들이 죽었을 겁니다.”

“그게 피해자들에게는 의미 없는 말이라는 건 왕자께서도 잘 알고 계시잖아요.”

“그렇겠지요.”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천천히 열리는 석실의 벽면을 시야에 담았다.

“그럼 묻겠습니다. 공녀가 만약 그 상황이라면 전쟁을 계속하시겠습니까?”

그럴 리가. 이성적으론 아닌걸 알고 있지만, 감성적으로 씁쓸함이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아마…… 전쟁을 막았겠죠.”

“그럼 된 겁니다. 과거로 돌아가도 똑같은 결정을 내릴 거라면. 그에 관해서 더는 고민하지 마십시오.”

그의 말에 에반젤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 이상으로 그의 말이 와닿았기 때문일까.

그녀의 얼굴이 붉어진다.

반하기라도 한 것일까. 눈동자를 아래로 깔고 고개를 숙이고 잇던 그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기…… 그, 크로네스 왕자님…….”

“예. 말씀하십시오.”

“이런 말씀 죄송한데, 손 좀 놔요.”

“예?”

“놓으라고요.”

벙 찐 표정의 그에게서 물러난 에반젤린이 심드렁하게 돌아선다.

베르타스 공작 영애와 라우라 멜 후작 영애의 상당히 질투 섞인 시선이 날아왔지만, 에반젤린은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았다.

‘이 사람은 왜 갑자기 손을 잡고 난리야. 깜짝 놀랐네.’

그가 보내던 알 수 없는 뜨뜻미지근한 시선에 온몸이 두드러기가 돋는 기분이었다.

“탈출로 확보.”

이윽고 주변을 정찰하던 륀느와 레이나가 돌아왔다.

“으…… 찌뿌둥해. 빨리 돌아가서 그 나쁜 놈 때려잡고 돌아가요. 나 방송도 계속 못 하고 있으니까.”

기분 좋은 표정으로 몸을 이리저리 푼 그녀가 앞장서자 륀느와 레이나가 빠르게 선두를 점했고, 륀느가 후방을 틀어막았다.

“버…… 벌써 이동하는 건가요?! 저는 다리가 아파서 더는…….”

“맞아요…… 이동마법은…….”

“여긴 적진이에요. 두 사람 다 제정신이에요? 그리고 전이 마법이 무슨 애들 장난감인 줄 아나…….”

이오샤가 틱틱거리자 베르타스 공작 영애가 그녀를 노려본다.

“노려보면 어쩔건데요. 공작 영애. 당신 어리광 받아줄 상황이 아니란 걸 아직 몰라요?”

“이…… 이익……. 돌아가면 아버지께 이 무례를 전부 고하겠어요!”

“하, 좋을 대로.”

아직 상황의 전말을 잘 모르는 네 사람이기에 앞서가던 에반젤린은 씁쓸함이 앞섰다.

딸은 아비의 역모를 전혀 모르는 모양이다.

본래라면 베르타스 공작가는 멸문당할 것이다, 그리고 직계 혈육인 베르타스 공작 영애를 포함한 공작 부인 등등 식솔들까지 전부 처형대에 오르는 게 맞을 것이다.

역모는 삼족을 넘어 구족을 멸하는 국가도 있으니까.

물론, 국제연합이 출범한 이후 연좌제에 관한 토론이 깊이 있게 오가면서 연좌제를 폐지하는 국가도 여럿 나오고는 있지만, 국가전복을 꾀하는 역모는 그만큼 심각한 사안이 분명하다.

유일한 생환 구멍이라면 황실 마법사 단장 베르타스 공작이 가르강티아에게 조종당하고 있었다는 사실만 입증하면 될 일인데. 그건 팔란이 알아서 할 일이겠지.

앞장서서 뛰어나가던 에반젤린은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는 바깥의 빛을 보며 긴장을 끌어올렸다.

모든 것이 완성된 최후의 순간이 가장 방심하는 순간이라는 이야기는 데이비에게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던 이야기였으니까.

그리고 그런 섬뜩한 기분에 걸맞기라도 한 것일까.

“피해!”

앞장서서 뛰어가던 레이나의 외침과 동시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 검은 섬광이 모두를 노리고 출구 쪽에서 날아들었다.

물론, 가르강티아 본인도 아닌 이상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전방에 중급으로 보이는 리치 다수 발견.”

가르강티아가 배치한 것으로 보이는 리치들은 아직 내부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는지 그저 흑마법의 포화를 쏟아부을 뿐이었다.

선두에 서서 달리던 레이나의 말에 뒤따라오던 크로네스가 흠칫 놀라는 게 보였다.

“주, 중급 리치!”

흔히 불사왕이나 초대 리치 급의 리치들이 날뛴 탓에 리치에 대한 위기의식이 강해진 것은 사실이나 대륙에 알려진 중급 리치는 이성이 반쯤 날아가 마법만을 사용하는 파괴를 중시하는 괴물에 불과하다.

다만 마법을 쓸 수 있는 이성이 날아가 버린 존재라 해도 그 위험성은 가히 사이클롭스나 키클롭스 같은 거대 몬스터에 필적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실제로 과거 한 영지에서 중급 리치 하나가 발견된 적이 있었고 그 보고를 받은 기사단이 리치를 토벌하기 위해 도달했을 때 영지는 지옥도가 되어있었다는 사례도 분명 존재했다.

“먼저 가서 처리할게.”

다만 그건 일반적인 경우였다.

륀느와 에반젤린 그리고 레이나까지.

단 한 명도 고작 중급 리치에 고전할만한 이는 없었다.

츠츠츠츠츳!!

마치 빛이 응축되는 것처럼 빠르게 모여드는 빛의 기검들이 레이나의 주변에 모여들었고, 레이나의 신형이 살짝 낮아짐과 동시에 마치 섬광처럼 가속하며 쏘아져 나간다.

동시에 금빛의 섬광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번뜩이며 날아드는 마법들을 모조리 잘라 차단시켜버렸다.

그야말로 눈을 한번 깜빡이는 순간의 초고속 요격이었다.

거기에 레이나는 멈추지 않고 더욱 속도를 올리며 길을 뚫기 위해 출구 밖으로 향했다.

“저…… 저분은…….”

뒤따르던 이오샤가 놀란 얼굴로 말하자 에반젤린이 콧대를 세우며 자랑스레 대답했다.

“레이나 언니는 대단하죠. 한때 빛의 용사라 불렀었으니.”

“세상에…… 빛의 용사님이라고요?! 실제로 본건 처음인데…….”

“용사직을 내려놓고 은거했다는 말은 들었다만…… 저토록 젊은 여성이었다니…….”

한때 대륙에서 공인된 용사로서 활동했던 만큼 그 이름값은 대단한 모양이었다.

이윽고 엄청난 굉음이 수차례 울려 퍼졌고 모두가 통로를 빠져나와 숲을 시야에 담았을 땐 한때 리치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뼛조각만이 사방에 흩뿌려져 있었다.

“세상에…… 중급 리치가…… 그것도 다섯 이상은 되어 보였는데…….”

“이게 빛의 용사…….”

크로네스는 침음을 삼키며 중얼거렸다.

불세출의 천재라 불리던 그의 자존심이 또 한 번 곤두박질쳤다.

저토록 젊은 여성이 한순간에 상위급 몬스터로 분류되는 중급 리치들을 베어 갈라버렸으니 말이다.

“바로 이동할게. 전이 마법은 힘들지만 여기서 일직선으로 길을 뚫고 진입하면 될 거야.”

한 손에 든 기검을 털어내듯 지운 그녀가 말하지만, 에반젤린과 륀느를 제외한 네 사람은 중급 리치의 파편들을 보며 얼이 빠져있었다.

그중에서 충격이 가장 큰 건 당연히 크로네스였다.

새삼 고위귀족들이나 아버지인 스파르트 국왕이 절대 대적하지 말아야 할 세력으로 꼽은 게 아니라는 걸 명백히 깨닫는 느낌이었다.

‘이건 벽의 높이부터가 완전히 다르군…… 창 한 자루를 들고 수십만 대군을 맞서는 느낌이다…….’

에반젤린 공녀 때부터 느낀 것이지만 하인스의 전력은 그가 상상하는 수준을 이미 아득히 넘어서고 있었다.

조금 전에 본 바로는 후방을 주시하며 따라오고 있는 작은 체격을 지닌 무표정의 소녀 또한 기이한 힘을 쓰지 않았던가.

설마 여기서 또 뭔가가 나올까.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뒤쪽에 있던 륀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수의 사령 에너지 검출. 방어 모드 전개를 륀느가 높게 평가.”

그 말과 동시에 륀느의 청안 속에 정체 모를 숫자들이 빠르게 점멸했고 허공으로 입자들이 모여들며 방패와 같은 무언가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동시에 마치 매복이라도 한 것마냥 날아드는 엄청난 수의 마법들이 륀느의 방패에 충돌해 상쇄된다.

“매복? 쓰읍…… 감각이 엉망이야. 괜히 9서클 마법사가 아니라는 건가?”

“단순 9서클이 아니에요.”

페르세르크가 틈을 만들 정도로 마법의 조예가 높은 건 아닌데. 놈의 독특한 힘이 그 단점들을 상쇄시키고 기이한 장점을 내비친다.

“하긴. 아무리 9서클 마법사라도 이렇게 다양하게 힘을 분배하는 건 정상이 아니지.”

대체 가르강티아의 힘의 원천이 무엇인지 의문스러웠다.

이윽고 륀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레이나. 먼저 에반젤린과 인질들을 데리고 후퇴할 것을 권고.”

“남으시게요?”

정중한 물음에 륀느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뒤 머리 위에 뜬 헤일로, 즉 광륜을 한차례 일렁였다.

“대군전의 경우 륀느의 특기가 가장 효율적이라 판단. 에린이의 특성은 현재 숨겨두는 패로 두는 것이 좋을 것이라 분석. 륀느가 계략을 높게 평가.”

“좋아요.”

숲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수많은 스켈레톤 메이지와 워리어, 그리고 중급 리치들이 보인다.

륀느를 홀로 두고 가겠다는 말을 하는 레이나의 행동거지에 크로네스가 흠칫 놀라며 소리쳤다

“잠깐! 지금 여기 저 소녀를 홀로 두겠다는 말입니까?!”

“그래요.”

“안됩니다! 너무 위험해요! 게다가 이 포위망을 어떻게 뚫는다는 겁니까! 차라리 모두 힘을 합쳐서 일점을 돌파하는 것이…….”

크로네스의 말은 나름의 정당성이 존재했다.

조금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숫자로 들이미는 폭력이다.

인해전술, 거기에 포위상태이며 매복까지 되어있다면 홀로 감당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고 설사 된다 할지라도 길을 뚫는 것도 불가했다.

하지만.

그런 크로네스의 걱정에 공감해줄 에린이나 레이나가 아니었다.

“왕자님.”

“뭐…… 뭡니까.”

“륀느는 미식연구회 소속이에요.”

그말에 그의 표정이 찌푸려진다.

“미식연구회? 공녀. 지금 무슨 말을…….”

“하인스 최고의 사고뭉치 집단이라고요. 그런 데에 소속되어있는 이가 아빠한테서 얼마나 도망쳐본 경험이 많은지 모르죠?”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하지만 조금만 깊게 생각해보면 에반젤린의 말뜻을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대륙 최고의 강자. 단신으로 왕국을 하루도 채 되지 않아 잿더미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존재.

그런 데이비가 매번 잡으러 오는데 그걸 튀는 존재가 바로 미식연구회라 할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런 괴물 같은 데이비에서 매번 도망치는 상황을 연출할 정도로 괴물 같은 존재들이 모여있는 게 미식연구회이기도 했다.

부장 유리아 헬리샤나. 부원 륀느, 점순이.

분명한 것은 이 셋 모두 데이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또X이라는 사실이며…….

실제로 툭하면 데이비에게서 도망치는 데에 도가 튼 것들이라는 사실이다.

이윽고 륀느의 작은 신형이 등허리에 달린 작은 날개가 펄럭임과 동시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지금이라도 모두 힘을 합쳐서…….”

[세피로스화 가동]

크로네스의 외침은 이어지는 륀느의 무기질적이며 청명하게 울려 퍼지는 전자음에 완전히 묻혔다.

그를 포함한 네 사람은 멍하니 고개를 들어 하늘에 뜬 륀느를 바라보았다.

치이이이잉!!!!

기하학적인 문양을 지닌 형태로 광륜이 변한다.

동시에 단계적으로 나뉘어진 광륜들이 서로 엇나가듯 오른쪽 왼쪽으로 회전하기 시작하며 빛을 내뿜기 시작했고 륀느의 등허리에 달린 작은 날개가 공명하듯 크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거대한 빛에 휩싸이듯 엄청난 광원의 폭발을 일으켰다.

얼마나 그 빛이 강했는지 포위하듯 다가오던 스켈레톤과 리치들조차 크게 주춤하며 멈출 정도였다.

광원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언데드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윽고 빛이 사라졌을 때 하늘에 비친 것은 놀라운 것이었다.

마치 천사가 강림한 것이 저러할까.

새하얀 복장에 6쌍의 날개. 차갑지만 어딘가 공허해 보이는 눈동자였다.

그녀는 한 손에 그녀의 창을 쥐고 나머지 한 손을 높이 들고 있었다.

투웅!!! 퉁!! 퉁!!!

그녀를 중심으로 사방에서 빛의 기둥들이 낙하하며 그 안에서 빛으로 만들어진 존재들이 나타난다.

그녀의 종족이자 그녀의 원류 백익이었다.

고작해야 스켈레톤 워리어나 메이지, 그리고 중급 리치들을 상대로는 극히 과분한 힘이지만 륀느는 미련 없이 자신의 힘을 개방했다.

포위하며 몰려드는 숫자가 그녀의 눈에서 카운트된다.

어림잡아도 5만 이상.

수도민들을 죄다 언데드로 만들어버린 결과 중 하나였다.

이윽고 그녀의 손에 쥐어진 천칭을 녹여낸 창에 초고열의 에너지가 응집되기 시작했고, 그녀를 따라 생겨난 백익들은 일제히 거대한 에너지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비록 과거와 같이 완전한 종족 개화나 완전한 힘을 사용하는 데엔 지장이 있어 보이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애초에 골렘이 된 그녀가 계승할 수 있는 힘에는 한계가 있으니 말이다.

륀느는 미련 없이 명령을 하달했다.

“엘더브레인. 륀느 명령 하달. 일점 집중.”

지잉…… 쩌어어엉!!!

이윽고 그녀의 창이 향하는 곳으로 어마어마한 백광의 섬광이 날아든다.

그리고, 그녀의 섬광이 훑고 지나간 자리에 언데드들은 잿더미가 되어 불타올랐다.

“가요!”

“대체…… 대체 저 소녀의 정체가 뭡니까?!”

그 모습을 확인한 에반젤린은 레이나와 함께 곧바로 네 사람을 데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지금부터는 상황 못 봐줘요. 이오샤 영애. 달릴 수 있겠어요?”

그말에 이오샤가 강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에반젤린은 라우라 멜 후작 영애를 안아 들 듯 들고는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꺅!”

뒤이어 레이나가 빛의 날개를 이용해 륜 베르타스 공작 영애를 휘감아 들어 올리고는 빠르게 내달렸다.

“륀느가 누군지 궁금하다고 했나요?”

륀느가 만들어준 틈을 이용해 달려나가며 에반젤린이 답했다.

륀느가 자리에 남은 건 괜한 선택이 아니었다.

실제로 포위망을 뚫고 빠져나가는 에반젤린과 그 일행을 좇기 위해 엄청난 수의 언데드가 추가로 몰려오고 그 외에도 기이한 것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륀느는…….”

잠시 고민한 에반젤린이 피식 웃었다.

저기 있는 륀느는 1만 년 전의 넬타리드의 심복이자 신녀 프리아를 죽인 처단부대가 아니었다.

“하인스의 미식연구회 초기 멤버에요.”

참 간결한 대답에 앞장서서 달리던 레이나가 풉! 하고 웃음을 삼켰다.

콰아아앙!!!

마치 기다렸다는 듯 저 뒤쪽에서 엄청난 빛의 기둥들이 낙하한다.

과한 힘이긴 하지만 다음 작전을 위해서 충분한 시선을 끄는 것도 좋았다.

크로네스는 이제 반쯤 넋이나 간 얼굴이었다.

물론, 그의 행동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에반젤린이었다.

그렇게 포위망을 뚫고 빠져나온 이들은 결국 그 노력 끝에 연합군의 진지가 있는 곳까지 복귀하는 데에 성공했다.

“에린아!”

“엄마!”

양팔을 벌리는 페르세르크에게 그대로 안긴 에반젤린이 대답한다.

“전부 구해냈어요. 빌어먹을 트롤러는 못 구했지만요.”

그말에 고개를 돌려본 페르세르크가 굴롬 왕자의 부재를 눈치채고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굳이 타박하진 않았다.

“인질들은 다 구출한 겁니까?”

“그렇군요.”

연합군의 총사령관으로 보이는 사내에게 그녀가 답해주자 그가 검을 뽑아 든다.

“전군!! 기다리던 시간은 끝났다. 영원히 살 것도 아니지 않나! 검을 빼 들어라!!”

지금까지 대치 중이던 전 연합군 병력이 암 왕국의 수도 성을 향해 진격을 시작했다.

놈이 날뛸 상황을 대비해 일리나는 언제든 튀어나갈 준비를 했다.

하지만 놈은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수성전을 준비할 뿐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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