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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473화 (1,473/1,559)

제 1473화

“아아아아아악!!!”

“끄아아악!! 내 팔! 내 팔이!!”

“젠장! 정신 차려 맥스!! 죽지 말라고!”

“이미 늦었어!! 검을 들어!!”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사방이 아비규환의 난전이었다.

과거 언데드와 연합군의 전쟁에 참전한 적이 있던 장교 라푸르스 남작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전장을 내려다보았다.

“남작! 시간이 없습니다!!”

“아…… 마법사 병대!! 포격 개시!!”

동시에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동일한 영창이 터져 나오며 수십 발의 화염구가 전장에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야말로 끔찍한 난전이다. 아군의 오사, 적의 공격. 짧은 시간 안에 정말 너무 많은 이들이 죽어 나가고 있었다.

언데드와의 개전 이후 어림짐작으로 보이는 사상자만 수백 수천.

문제는 가르강티아라는 사령 마법을 다루는 드래곤은 죽은 연합의 아군까지 자신의 병력으로 삼았다.

“1군!!! 후퇴!!”

그때 거대한 뿔피리 소리와 함께 장교의 외침이 울려 퍼졌고, 병사들이 빠르게 후퇴하기가 무섭게 거대한 안개로 이루어진 파도가 연합을 스치듯 지나가며 언데드들을 휘감았다.

“세상에…… 콜드 미스트……. 수분이 부족한 이곳에서 이만한 양의…….”

경악한 라푸르스가 중얼거렸다.

그래. 지금도 엄청나게 압도적인 유리를 지니고 있다.

전장을 지휘하듯 높은 단상 위에서 압도적인 마법을 쏘아 보내는 저 아름다운 소녀만 아니라면 그 피해는 지금의 수배는 더 많았을 것이며, 연합의 승리를 점치기도 힘들었으리라…….

“남작…… 남작은…… 분명 과거 언데드 군단과 전쟁경험이 있었지 않소?”

“그랬습니다. 초반부는 보지 못했지만, 티오니스 성자가 전장에 잠깐 나타났을 때…… 그때 병력 중대를 이끌고 있었습니다.”

“그때도…… 이러했소?”

한 귀족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중얼거리자 라푸르스 남작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하긴…… 하인스의 대공비의 마법 능력이 압도적이긴 하지…….”

“아뇨. 정반대입니다.”

라푸르스의 말에 귀족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마나 도핑 약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꿀꺽! 그게 무슨 말이오? 정반대라니.”

“말 그대로입니다. 그때 당시 전쟁에선 병사들이 이토록 처참하게 죽지 않았습니다.”

“처참하게 죽지 않았다니?”

“예…… 저는 전쟁을 너무 쉽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군요…… 그 당시 성자가 걸어주었던 버프 마법은 단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수준이라 착각했습니다. 실제로 보니 다르군요. 그건 일개 인간이 흉내 낼 수 있는 영역의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페르세르크의 마법은 대단하지만, 근본적으로 전장에서 난전을 펼치는 병사들의 생명까지 지켜주진 못한다.

결국, 신관들의 버프 마법으로 버텨내야 하는데 신관들의 버프 마법은 과거 전쟁 당시에 병사들에게 걸렸던 버프 마법과는 아예 급이 달랐다.

마법사 병대 전원이 쏘는 마법보다 저기 단상 위에 서서 포격을 가하는 페르세르크의 마법이 압도적으로 강한 것처럼.

“제발…… 이 전쟁이 빨리 끝나 더는 죽는 이가 없기를…….”

라푸르스는 창백해진 얼굴로 양손을 모아 조용히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는 굳은 얼굴로 소리쳤다.

“제 2진!! 포격 준비!!”

기도는 기도고. 지금은 필사적으로 싸워야 할 때였다. 작전대로라면 자신들의 역할은 전진이 아닌 상황 고착화.

이 이상 언데드가 퍼져나가지 않게 억류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때였다.

“남작님!! 언데드의 공세가 약해지고 있습니다!!!”

도저히 일반 언데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힘을 내뿜던 가르강티아의 언데드들이 서서히 약해지고 있었다.

* * *

갑작스러운 변화.

데이비가 명명한 S-dos 공격에 제대로 노출된 가르강티아는 조금 전부터 전신의 감각을 칼로 찌르는듯한 이 기괴한 느낌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실시간으로 엄청난 양의 힘이 줄어든다.

“이 반쪽짜리 고철 덩어리가!”

카아아앙!!

엄청난 피어가 순간적으로 주변을 짓누름과 동시에 가르강티아의 단단한 주먹이 륀느를 향해 파고든다.

하지만 륀느는 한치도 물러나지 않고 세 쌍의 날개를 펄럭이며 빠루를 들어 그의 주먹을 막아냈다.

도저히 살과 살이 부딪혔다곤 여길 수 없는 굉음이 울려 퍼지며 륀느의 신형이 밀려났지만, 그녀는 담담한 표정이었다.

이에 더 마음에 안 든 것일까.

그가 륀느를 끝장내기 위해 다시금 파고들었지만, 순식간에 날아든 기검이 그의 움직임을 봉하고 일리나의 검기가 그의 몸을 또 한차례 베어버렸다.

“풀스윙. 륀느가 높게 평가.”

터어어엉!!!

또다시 륀느의 빠루가 그의 가랑이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반사적으로 가르강티아가 몸을 웅크려 방어해내지만 조금 전의 공격이 상당히 타격이었음을 입증하는 행동거지였다.

“이상해…… 이상하다고. 이 이질적인 느낌은 뭐지? 아픔? 괴로움? 모르겠다…… 모르겠다!”

본래라면 연합을 쓸어버렸어야 할 가르강티아였지만 하인스의 인원으로 채워진 타격대에 의해 그는 제대로 전장에 참여할 수가 없었다.

-치익…… 언데드가 약화되고 있으니 더 몰아붙이면 효과가 있을 게야. 슬슬 끝을 볼 때가 된 게지.

동시에 연합 측에서 마법을 난사하고 있던 페르세르크의 연락이 닿기가 무섭게 륀느가 빠루를 집어던지고 그녀의 고유의 창을 투창하듯 잡아들었다.

그녀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흡?!”

투콰아앙!!!!

가르강티아의 가랑이였다.

눈을 부릅 뜨며 반사적으로 피해낸 그가 스산한 시선으로 륀느를 바라보았다.

동시에 주변의 공기가 더욱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놈의 전신으로 대량의 힘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 놈의 힘의 원천은 두 가지 루트밖에 없었다.

그가 흩뿌려놓은 망자들에게서 회수하는 것이 첫째요. 둘째가 세상에 퍼진 사념파편을 빠르게 자신의 몸에 영화시켜 힘을 끌어모으는 것이다.

놈은 시간이 갈수록 강해지는 스타일이지만 단시간에 대량의 힘을 끌어모으는 건 구조상 불가능했다.

현재 그가 있는 곳은 전장에서 조금 떨어진 암 왕국의 수도 외곽지.

그를 중심으로 레이나와 에반젤린. 그리고 일리나, 마지막으로 륀느가 포위하고 있다.

이들 중 유일하게 몸에 검댕이가 묻어있는 것은 륀느였는데 대량의 적을 싸그리 처단하고 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륀느의 현재 무력은 초기 그녀의 각성 때와 비교하면 가히 경악할 수준의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아하…… 아하하……. 뭔가 신선해. 새로운 기분이야. 신기해…… 생소해……. 이게 진짜 감각이라는 건가?”

그는 이 상황에서도 뭔가 즐거운지 광기가 섞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동시에 그의 전신에서 힘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하며 천천히 녀석의 몸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변화의 징조.

엄청난 피어로 인해 짓눌리고 있지만 그를 포위하고 있는 모든 이들은 아쉽게도 일반적인 이들이 아니었다.

배신의 아이콘 미식연구회의 륀느.

방송으로 뒤통수를 맞고 때리기에 다져진 에반젤린.

고상함은 내던지고 데이비의 명령이라면 개처럼 달려들 준비가 되어있는 레이나.

마지막으로, 데이비에게 당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반적인 기사의 도덕적 관념이 파괴된 일리나.

이들 모두가 정할 움직임은 너무도 뻔했다.

“저게 지금 우리 앞에서 변신하는 거야?”

“미쳤네?”

일리나의 헛웃음에 에반젤린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 가장 먼저 파고든 륀느가 창을 바닥에 꽂아 공간 결계를 만들기가 무섭게 빠루를 들고 놈을 후려갈겼다.

-커헉?!

변화는 찰나였지만 그걸 두고 볼 이들이 아니었다.

네 사람은 가르강티아가 틈을 보이기가 무섭게 미친 듯이 두들겨 패기 시작했고 그럴수록 놈의 피어가 크게 흔들리며 마나까지 불안정해졌다.

비열함?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기사 출신이던 일리나나 레이나조차 이럴진대, 배신을 밥 먹듯이 하는 륀느와 에반젤린이 상황이 다를 리가 없었다.

갑작스레 포화되는 공격에 변화를 일으키던 가르강티아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커헉?!

“죽여! 죽여 이 자식!”

에반젤린이 으르렁거리며 테이크 다운하듯 그에게 덤벼들었다.

변화가 강제로 캔슬된 놈에게 올라탄 에반젤린은 망설임 없이 주먹을 들어 올렸고 이내 미친 듯이 난타하며 지속적인 타격을 가해 넣었다.

쾅쾅쾅!!!

한번 내리칠 때마다 지면에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길 정도로 강한 타격이 수차례 가해졌고 그의 저항에 힘이 빠질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파앙!!!

하지만 계속해서 당할 그도 아니었다.

수차례 공격에 정체 모를 감각.

가르강티아는 처음 느껴보는 생소하면서도 스산한 감각에 에반젤린을 밀치듯 떨쳐낸 뒤 황급히 거리를 벌리려 했다.

하지만 무리한 변화를 끌어내려다 한차례 다굴을 맞은 만큼 회복이 상당히 더뎌져 있었다.

아니. 조금 전부터 회복이 계속해서 느려지고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본체로 현신하는 게 좋은 선택이었을 텐데.

그는 휘청거리며 넷의 포위망을 뚫고 벗어난다.

경로에 있는 구조물을 닥치는 대로 부딪히며 깨부숴버린 그는 숨을 크게 몰아쉬고는 몸을 떨었다.

“이상해…… 아까부터…… 아까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이상한 게 아니야. 그게 정상인 거지.”

일리나의 말에 그가 눈을 살짝 크게 뜨고 일리나를 노려보았다.

“나의 사랑…… 무슨 말을…….”

“누가 네 사랑이야. 죽고 싶어?”

일리나가 인상을 찡그리며 살기를 피워올리자 에반젤린이 그녀를 말렸다.

“진정해요. 엄마. 함정일 수도 있잖아요.”

“…….”

“말 그대로 정상이라는 소리야. 멍청아.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는 건 자연스러운 생명의 본능이라고. 지금까지의 너는 생명체라기보다는 기계, 혹은 언데드에 가까웠잖아.”

그녀의 말에 가르강티아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조금 전부터 집중을 못하게 하고 웃음을 크게 짓지도 못하게 하는 이 이질적인 감각.

그건 그가 처음으로 느껴보는 두려움이라는 감각이었다.

그리고. 지금 느끼는 이 몸이 으슬으슬 떨리는 감각은…….

정말로 죽을 수 있으니 빨리 도망치라는 본능의 경고였다.

본래라면 기뻐했어야 할 감각이었다.

작은 자극하나에 눈이 돌아 나라 하나를 네크로폴리스화 시켜버릴 정도로 미쳐있던 그였지만 그런 그였기에 갑작스레 다가온 거대한 감각의 파도는 마치 오랜 시간 공복에 시달린 사람이 갑자기 폭식을 하고 죽어버리는 것과 같이 극독으로 작용했다.

“아…… 안 되겠어……. 일단 여기서 벗어나서…….”

그가 황급히 벗어나기 위해 움직였다.

그가 진정으로 원하던 것이 이루어진 셈이다. 무슨 방식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지금 제대로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 이 감각을 제대로 느껴보지도 못한 채 여기서 목이 잘려나가면 정말로 허무하게 모든 게 끝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그가 눈을 부릅떴다.

물러난다 해도 보내줄 이들이 아니다.

일리나를 소유하지 못한 건 아쉽지만 일리나라는 존재 이상으로 그는 자신이 느낀 이 감각이 중요했다.

-치익. 사령관입니다. 갑작스레 언데드의 힘이 대폭 약화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만…… 그대로 암 왕국의 지방 제후들을 선봉을 세우고 수도로 진군하겠습니다.

“아, 아하, 아하하. 그래…… 이거야, 이거라고. 아쉽지만 여기까지 해야겠어.”

그는 한 손을 들었다.

동시에 그의 손끝으로 엄청난 크기의 검은 구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저건?”

“사령 마법. 아무래도 퍼뜨려둔 힘을 전부 회수할 모양이로구나.”

언제 온 것일까.

플라이 마법을 해제하며 가볍게 지면에 내려선 페르세르크가 그를 보며 말했다.

“결국, 데이비가 절반은 해 먹었구나.”

그녀는 아쉬운 듯 손에 든 화살 세 발을 바라보았다.

“허나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

아무리 약화되었어도 방대하게 퍼뜨려둔 힘들을 전부 회수하면 그는 다시금 폭발적인 힘을 낼 것이다.

게다가 약화되고있다고 해도 목숨이 얼마나 더 남았을지 모르는 상황.

페르세르크는 자신이 만들어낸 이 프로토타입 불사파괴살이 과연 그의 목숨을 완전히 끊어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그거. 쓸 거죠?”

“써야겠지. 놈은 그냥은 죽지 않을 테니.”

“그럼 틈을 만들어줄게요. 그때 쏴요.”

일리나의 말에 페르세르크는 아공간을 열어 신목의 성지에서 만들어서 가져온 세계수가지 활을 꺼내 들었다.

데이비의 활인 신궁 브류나크에 비하면 한없이 미약한 활이지만 일반적인 명품이라 불리는 활과는 비교할 수 없는 탄성을 지니고 있었다.

빠르게 근력 강화 마법을 건 뒤 활시위를 당긴 그녀가 화살촉의 끝을 그에게 겨누었다.

3발의 불사파괴살은 각기 다른 능력을 지녔다.

그렇기에 순서는 반드시 지켜야 했다.

“아하하!!”

그러거나 말거나 가르강티아는 현재 자신의 상태에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기쁜 기묘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웃을 수가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운데 상황을 모두 이해하고 나니 절로 웃음이 터져 나오고 있다. 그는 지금 세상에 태어나 힘을 개화한 이후로 처음으로 격정적인 감각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스스로를 죽이고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로 말이다.

“오늘은 내가 졌어. 설마 갑자기 이런 상황이 될 거라곤 생각 못 했거든, 그러니 오늘은 너희 전부를 살려줄게. 이런 감각을 느끼게 해줬으니까.”

그는 마치 도망칠 수 있다고 선언하듯 말했다.

이에 륀느가 빠루를 어깨에 걸친 채 껄렁껄렁한 자세로 말했다.

“파충류의 혓바닥이 길어짐을 감지.”

“쟤는 여기서 도망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가?”

전이 마법도 페르세르크가 참전한 이상 틀어막힌 셈이다.

이성이 마비된다. 다 내팽개치고 어딘가에 처박혀 지금의 감각을 곱씹어보고 싶은 생각만 가득했다.

하지만 보아하니 이들은 그를 그냥 둘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다 죽이고 가는 수밖에.

일리나의 존재가 강렬한 자극의 실마리를 주었기에 그녀에게 집착한 것은 사실이나 감각을 느끼게 되었다면 이들에게 볼일은 없다.

그가 엄청난 속도로 본체현신을 하며 거대한 흑룡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브레스를 쏘아 보냈다.

이에 페르세르크가 손을 뻗어 방대한 크기의 배리어를 만들어냈지만 엄청난 폭발과 먼지구름이 일어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흠…… 뭐 됐어.

후속타를 가하려던 그는 온몸에 느껴지는 또 다른 기묘한 감각에 몸을 부르르 떨며 스산하게 웃었다.

거대한 폭발에 제대로 휘말린 탓인지 아직 반격이 날아오진 않는다.

이에 그는 그녀들을 두고 그대로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거대한 체격을 돌린 그가 가장 먼저 본 것은 작디작은 인간의 발이었다.

쩌어어어엉!!!!!!!!

엄청난 폭격음과 함께 거대한 가르강티아의 신형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커헉?! 쿨럭!”

끔찍한 격통. 몸을 가누기도 힘들고 시야가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쉽게 죽지 않았다.

천천히 고개를 든 그가 본 것은 거대한 해골의 머리만을 들고 서 있는 청년이었다.

“네가 가르강티아냐?”

담담한 그 질문. 하지만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류에 묘한 익숙함을 느꼈다.

데이비가 살포한 바이러스에 감염된 그였다. 그렇기에 현재 실시간으로 그의 모든 것을 잠식하는 건 데이비의 힘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익숙함을 느꼈다.

하지만 또 다른 익숙함도 느껴졌다.

그리고. 그는 그제야 그 익숙함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아…… 아버지?”

청년이 손에 들고 있는 거대한 해골의 두개골.

그것이 다름 아닌 가르강티아가 부활시키려 했던 닉스의 머리라는 것을 깨닫는 데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실체를 가지고 있다고 보기엔 미묘한 흐릿한 형체지만 그건 분명 닉스의 머리였다.

“아. 이거?”

가르강티아의 시선이 닉스에게 향해있는 것을 깨달았는지 데이비가 빙그레 웃었다.

“야, 네 아빠 쩔더라.”

-추악한 홀른 놈…….

닉스의 씹어뱉는 듯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데이비가 그리 미소지으며 가르강티아를 도발했다.

“그래서. 어딜 튀고 있었던 거야. 죽을 때가 되니까 겁이라도 나던가?”

“…….”

“미안한데 내가 좀 바쁘거든. 나는 가볼 테니, 조금 있다가 강에서 보자고. 부자 상봉도 그때하고.”

강?

뭘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듯 그가 천천히 거체를 일으켰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든 순간.

조금 전까지 미소를 지으며 방대한 기세를 내뿜고 있던 데이비는 사라지고 없었다.

마치 헛것이라도 본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런 찰나의 방심을 봐주지 않겠다는 듯 그의 등 뒤에서 에반젤린이.

정면에서 일리나가 마치 동시라고 할 타이밍에 날아들며 검을 휘두른다.

안돼…….

이제 진짜 제대로 된 감각. 자극을 되찾았는데. 이렇게 죽을 수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그는 상상을 초월하는 공격에 잠깐동안 의식이 날아갔다가 돌아왔다.

아무리 일리나의 공격이 매서워도 의식이 이렇게 날아간 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정신을 차린 그는 자신의 거체 비틀의 사이에 박힌 초록빛의 화살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그가 손을 대기도 전에 가루처럼 흩어지며 그의 몸 안으로 스며든다.

동시에 그의 힘이 마치 역류하듯 비틀리기 시작했다.

“두 발 남았구나.”

“커헉!!”

그가 휘청거리며 신음을 토해냈다.

불사파괴살. 그 첫 번째가 가르강티아의 드래곤 하트에 스며들며 죽음의 낙인을 새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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