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76화
프리아 여신은 가족회의를 개최한 데이비를 잠시 구경하다 신의 영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신의 영역에 모여 뭔가 작당 모의를 하고 있는 영웅들을 시야에 담았다.
“아. 여신님. 힘 좀 남으시죠?”
“…….”
“여기 축복 좀 걸어주세요. 아기 딸랑이.”
다프네가 키득거리며 딸랑거리는 육아용품을 보여 주었다.
이들에게는 진실 따윈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프리아 여신은 다프네가 건넨 딸랑이에 빛의 가루를 흘려보냈고 천천히 돌아섰다.
“그나저나 데이비 저러다가 큰일 안 벌여야 할 텐데…….”
다프네의 중얼거림에 프리아 여신은 태블릿을 들어 올렸다.
[절대 간섭하지 마.]
“알고 있어요.”
담담하게 대답하며 다프네는 다시 신이 난 듯 육아용품들에 마구잡이로 축복을 걸어 넣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신님.”
그러던 중 한 영웅의 질문이 그녀의 발목을 붙잡았다.
“임신한 상태에서 괜히 또 임신시키겠다고 무리하다가 잘못되는 건 아니겠죠?”
그 물음에 여신은 조용히 손가락으로 조용히 하라는 재스쳐를 취했다.
다만 무표정하던 그 얼굴에 서린 미소는 감정을 지닌 신이 내보인 즐거워 보이는 미소였다.
[재미있어 보이지 않니?]
“그게 재미있습니까?”
[조금만 지나면 어차피 확실해질 일인데. 조금 안달하는 그 아이도 참…….]
여신이 혀를 살짝 내밀며 입술을 핥았다.
[귀엽잖아.]
* * *
사람이 극도로 기뻐지면 완전히 텐션이 올라가는 걸 넘어 얼떨떨해진다.
“축하해요!”
제 품을 끌어안아 주며 축하해주는 현아와 연희를 보며 일리나는 입을 살짝 벌리고 탄성을 흘렸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마음 고생 했죠?”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기분이 싱숭생숭한 게…….”
급기야 울먹거리는 일리나를 다독이며 현아는 부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딱히 아이를 가지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일리나의 모습을 보면서 그 안에 서린 행복을 본 것이다.
“아가씨. 뭐부터 해야 할까요?”
“우선은 아기 용품부터 사는 게 좋지 않을까요?”
한창 텐션이 올라간 일리나의 질문에 대답한 것은 신연희였다.
그녀는 소파에 앉아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물론, 저도 아직은 모르지만요.”
“아이 용품이요? 하지만 다리안이나 아벨이 쓰던 게 있는데…….”
“아끼려고 한다면 물려주는 게 맞지만…… 저는 생각이 조금 달라요.”
이어서 현아가 그녀를 설득했다.
“처음 태어나서 받을 선물이잖아요. 물려받는 것보단 새것을 쓰는 게 좋지 않을까요?”
“하지만 그건 낭비…….”
“낭비일 순 있죠.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티오니스 성자의 자식인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세발…… 아니 오빠에게 그 정도는 낭비 축에 끼긴 해요?”
세간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데이비는 비공식적으로 지구에 모아둔 자산만 자산 랭킹에 들 정도로 엄청난 돈을 지니고 있다.
그런 마당에 아기 용품으로 전전긍긍하는 꼴은 어떤 면에서 보면 극한의 비틱질이나 다름없었다.
“지금 아껴놔야죠. 세상일이라는 건 모르는 건데…….”
“하다못해 그걸 나중에 되팔기만 해도 프리미엄은 붙을걸요?”
현아는 그럴 게 아니라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니. 나 새언니랑 쇼핑 다녀올게.”
“그래. 다녀와.”
부드럽게 웃어주는 연회를 보며 현아는 신이 난 듯 외출준비를 마치고 일리나의 손을 잡아 끌었다.
“그거 알아요. 새언니?”
“뭘 말인가요?”
“에린이가 어릴 때 썼던 육아용품들.”
“네?”
“그것 중 하나가 전에 경매로 나온 적이 있어요.”
그 발단은 간단했다. 에린이가 더는 쓰지 않게 된 아기 옷을 데이비가 지구에 가져다 놓았는데 현아가 혹시나 싶어 그걸 빼놓고 경매에 한 번 부쳐봤다는 것이었다.
“원래 부모라는 게 별별 미신을 다 믿는 법이에요.”
에린이는 외모 지성, 성격. 어느 것 하나 쉽게 모나지 않은 그야말로 전 세계에서 사랑을 받는 아이였다.
그런 만큼 그녀가 쓰던 육아용품을 자기 아이에게도 주고 에반젤린처럼 예쁘고 강하고 착하게 크길 바라는 부모들이 많다.
“얼마 나왔는지 알아요?”
“글쎄요?”
“200억.”
“네?”
비싸긴 해도 100만 원도 채 안 하던 육아용품들이 200억이 되었다는 말에 일리나의 얼굴이 벙쪘다.
“몇 해 전 있었던 대참사만 아니었어도, 그것보다 배는 올랐을 거예요. 아니지. 지금 같은 시기라 더 가치가 붙는 건가? 어쨌든. 마법적인 처리까지 된 옷이라는 것 때문에 아주 눈이 돌아가죠. 부모든 아니든. 혹…… 개 변태 같은 새끼들도 있고.”
물론, 정말로 팔 생각은 없었기에 현아는 경매를 내려버렸지만, 마지막으로 확인한 게 200억이었다는 사실은 한때 동영상 투고사이트를 돌아다니며 한창 시끌시끌했던 주제였다.
“입이 떡 벌어지는 부자들에게 200억은 사실 큰돈이 아니에요. 아 물론 적은 돈은 아니지만, 충분히 지불할 수 있는 돈이기도 하죠.”
“흐음…… 하긴 황실에서도 물려준다는 개념은 특수한 가보를 제외하면 없긴 하죠…….”
일리나의 중얼거림에 대부분 넘어왔음을 깨달은 현아는 그녀의 등을 떠밀었다.
“김 기사님! 유랑 백화점으로 가요!”
“모시겠습니다. 아가씨.”
나이 지긋한 운전기사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급 세단의 문을 열어주었다.
“새언니. 아이 임신 소식은 아직 아무한테도 말 안 한 거죠?”
“아…… 지구에는요.”
“그럼 내가 첫 번째로 들은 거네요? 아차 이럴 게 아니지. 그래도 모르니 이거라도 귀에 끼워요. 클래식 음악으로 틀어줄게요”
말하는 대로 다 따라주는 일리나가 귀엽다는 양 바라보던 현아는 그제야 자리에 느긋하게 앉았다.
“이히…… 이히힛…….”
저렇게 기쁠까.
하긴 아이가 생기면 기쁠 만도 하다. 자신도 아이가 생기면 저런 기분을 얻을 수 있을까.
아직 어린데. 지구에서는 한창 대학을 다니며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놀러 다닐 나이인데.
그런 면에서 보면 단순 나이는 숫자이며 주변의 환경이 사람을 성장시키는구나 싶었다.
현아는 창밖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오래전 부모님을 잃었던 그녀 남매는 참 어렵게 살았다.
어린 현아와 달리 연희는 동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쉬지 않고 아르바이트하러 다니며 고생했다.
그 와중에 오빠였던 현수, 즉 현재의 데이비가 불치병에 걸려 더 이상 학교는커녕 병원 밖으로도 나올 수 없는 삶을 살게 된 것이다.
때마침 해외에서 자신들을 찾은 삼촌의 원조 덕에 병원비와 당장 먹고살 돈은 마련했지만, 당시의 현아는 모든 게 원망스러웠었다.
그러면서도 매번 싸우던 오빠를 치료하고 싶다는 이유로 의대에 들어가려 했다.
그리고…… 시험을 치르던 그때. 그녀는 시험 때문에 오빠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하필 임종 직전 싸웠던 건 평생토록 그녀의 가슴에 대못이 박혔던 사건이다.
그 후 삼촌의 사업이 거대해지며 그녀는 더 이상 돈에 얽매이지 않는 건 물론 한국 최고 반열의 부잣집에서 살게 되었지만 그런 그녀가 거의 웃지 않는 존재가 되게 만드는데 한몫하지 않았던가.
사흘이면 가족의 이별의 슬픔을 잊는다더니 순 거짓말.
“키히힛. 이히히.”
클래식을 들으면서도 뭐가 저리 기쁜 것인지.
아직 예쁘장한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해맑게 웃는 일리나를 보니 현아는 미소가 나왔다.
두 번째 삶. 이제라도 되찾은 행복은 절대 놓고 싶지 않았다.
아마 그건 이어폰으로 클래식을 들으며 백화점의 유아용품 카테고리를 훑어보고 있는 일리나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아 참. 에린이도 데리고 가야지.”
* * *
“지금부터 미식연구회 823회 회의를 시작할게요.”
“얼마 전에 1200회 아니었어?”
“아무래도 좋아요. 이런 이유 저런 이유 핑계로 저희가 세고 있는 회의 개수만 20개가 넘어가니까.”
유리아는 아무 문제 없다는 듯 가볍게 손뼉을 쳤다.
“륀느. 점순 양. 노파심에 하는 말이지만 이번일 만큼은 배신할 생각을 접어두세요.”
살고 싶으면.
여기서 배신을 치고 기이한 짓을 저질렀다가 무슨 사태가 벌어질지 모르는 만큼 유리아도 선을 적절하게 그었다.
“자, 그럼 의논해보죠. 은공께서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고 말하지만 제가 보기에 임신의 진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게 제일 중요한 거 아니야?”
“은공이 말씀하셨죠? 진짜면 더없이 좋고, 아니더라도 확정 사실로 만들라고. 그러니까 여부는 중요하지 않아요.”
지금부터 10개월 후에 일리나는 막내를 출산한다.
그 사실은 반드시 진행되어야 할 선행과제나 다름없다.
“따라서 저희는 테마를 정해야 해요. 전능한 게 아니기 때문에 한쪽을 정해야 하죠.”
“흐음 확실히 그럴듯해.”
유리아는 산듯하게 웃었지만, 그 미소는 음산하기 그지없다.
“지금부터 저희가 가진 모든 데이터를 활용하여 가임기 여성이 한방에 골인할 수 있게 만드는 법을 찾아야 해요. 마침 가임 가능 기간이 금방 다가오니 그때 필요한 보물을 꺼낼 때가 되었군요. 륀느.”
륀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자신의 몸 안에서 보관 중이던 열쇠와 유리아가 보관 중이던 열쇠를 합친 뒤 작은 금고에서 금빛의 열쇠를 꺼내 마치 전설의 검마냥 높이 들어 올렸다.
“보물창고를 개방할 때가 되었어요. 아…… 이 서늘하고 묵직한 감각, 그동안 은공에게 수도 없이 매달려왔던 그 핍박과 모멸의 나날들.”
“그게 핍박이냐…… 멍청이들아…….”
“그 고통 속에서 모아온 우리의 보물을. 명심하세요. 우리는 영지개발부에게 밀려선 안 됩니다.”
그녀의 눈이 환하게 빛났다.
“그곳에 숨겨둔 발효 식재를 잘 써서 한 달 내도록 가임이 가능한 상태로 만들어보죠. 거사는 은공께서 할 일이지만. ”
물론 같은 시각 영지 개발부에선 에오니샤와 티아라, 그리고 에디손 기술고문을 포함한 다수의 드워프 엘프 장인들이 엄청난 양의 발표자료를 준비한 채 진지하게 회의에 임하고 있었다.
* * *
일리나는 정말로 평소 답지 않게 여기저기 자랑을 하러 다녔었다.
“축하드려요.”
“축하해요.”
한창 데이트를 즐기던 시우와 엘리시아는 말 그대로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었다.
“야. 승현. 임신은 배가 이렇게 되는 거 아니야?”
“꼬맹이는 몰라도 된다. 축하드립니다. 대공비님. 좋은 소식이네요.”
그 외에도 데이비의 제작 노예 마가나 포도맛 캣타워, 그리고 윤 씨 남매 등등. 지구의 인연은 물론 다른 세상의 인연들에게도 자랑을 할 정도로 일리나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의 임신 사실에 축하해주는 또 한 명.
바로 데이비의 친구였던 알하자드였다.
-축하합니다. 대공비. 정말 경사스러운 소식이네요. 이런 선물도 없이 말로 하는 건 안 될 일이죠. 조만간 큰 선물을 하나 준비해두겠습니다.
[아…… 아니, 그럴 필요까진…….]
-아뇨. 이건 단순한 선물이 아닙니다. 일종의 뇌물이죠. 후에 그 아이에게 잘 보이기 위한? 하하하.
조금 부담스럽긴 해도 알하자드는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해 준다. 뇌물이라곤 하지만 생각보다 참 정이 많은 인간이었다.
“아가. 엄마가 기다리고 있어. 튼튼히 자라서 엄마랑 꼭 만나자.”
아직 납작한 배를 쓸어내리며 그녀가 해맑게 웃었다.
“아 참…… 아이를 출산하면 예전으로 돌아갈 순 없을 텐데…….”
자신의 아랫배를 쓸어내리며 고민하던 일리나가 눈을 크게 떴다.
“아. 아이 태명은 뭘로 짓는 게 좋을까요.”
“음…… 아직은 조금 이르니까 우선 조금 기다려보는 게 어떨까요?”
“그렇겠죠?”
대기실에 앉아 카테고리를 훑어보며 육아용품을 고르던 일리나가 귀여운 아이 용품을 보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 귀여워…….”
“고객님. 괜찮으시면 시제품을 더 가져올까요?”
“네. 부탁할게요.”
“네.”
결국, 일리나는 마치 자신의 옷을 구매하는 것처럼 꼼꼼하게 하나하나 구매하고 나서야 만족한 듯 발걸음을 돌렸다.
다만 데이비가 가진 자산을 생각했을 때 과하게 저소비를 한 게 아닌가 하는 느낌도 분명히 있었다.
알뜰살뜰한 일리나를 여기까지 구슬려 물건을 판매한 직원을 칭찬해야 할지, 아니면 놀라울 정도로 절약을 잘한 그녀의 인내심에 칭찬을 해야 할지.
“저기 언니. 그래도 큰맘 먹고 온 건데 조금 더 써도 괜찮지 않았을까요?”
“차별은 좋지 않아요. 아가씨. 다른 아이들의 육아용품을 살 때도 그랬지만 나는 내 뱃속에서 나온 아이라고 특별 취급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참 착한 사람이다. 자신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현아는 쓴웃음이 나왔다.
양손 가득 종이가방을 들고 콧노래를 부르는 일리나는 티오니스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언니.”
“응?”
그리고 그 모습을 보던 현아가 연희를 불렀다.
“나도 결혼이나 할까? 오빠란 놈이 환생하고 나보다 더 빨리 아이를 가진 걸 보니까 내가 너무 노처녀가 된 기분이야.”
그녀의 나이를 생각하면 아직 젊디 젊은 나이였다.
툭…….
연희의 손에 들려져 있던 과일이 묵직한 소리와 함께 추락했다.
* * *
일리나가 워낙에 티를 낸 탓일까. 알게 모르게 소문이 퍼지면서 일리나의 소식이 퍼져나갔다.
본래라면 그렇구나 하며 넘길 소식이다.
하지만 한때 미국에서 굉장히 인기를 끌었던 일리나였던 만큼 그녀에겐 팬이 많았는데 그 때문에 여기저기서 시끌시끌하다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동안 일리나의 몸을 진찰하면서 기록해둔 것들을 모두 꺼냈다.
완전 기억능력이 있어 세세한 수치까지 기억하면서도 단 한 치의 오차도 허투루 넘길 수 없다는 이유였다.
“미치겠네. 정말 상상임신이면 분명 증세가 나올 텐데.”
자칫 일리나가 눈치를 채 버리면 그 후폭풍은 쉬이 감당할 문제가 아니다.
상상임신이 사실이건 아니건 중요한 건 한 달 안에 반드시 확정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은공. 여기 있어요. 이것을 차에 타서 먹으면 가임이 가능할 거에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넌 대체 뭘 만든 거야.”
“정말 어렵게 만들었답니다. 물론, 그만큼 재료가 비싸긴 하지만…….”
“좋다. 예산 책정해줄게. 효과는 확실해?”
“어디까지나 은공이기에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니 은공이 하기에 따라 다르겠지요?”
“그거면 됐어.”
나는 일리나에게 건네줄 차에 작은 역병의 액을 한 방울 투여했다.
“몸에 안 좋은 건 아니겠지?”
“음…… 조금 피로감이 있을 순 있지만요. 큰 문제가 있진 않을 거예요. 다만, 즉효약이 아니기에 시기가 조금 걸릴 수도 있어요.”
“만약 정말로 임신한 상황이라면?”
“오히려 문제없답니다. 아이가 자리 잡은 상태라면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요.”
세상엔 회임을 원하는 부부가 많다. 이걸 잘 이용하면 그들도 고통에서 해방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은 들었지만 오래가지 않아 접어치웠다.
내가 마법으로 그녀의 마나 흐름을 보조해야 가능하다면 사실상 무효과나 다름없으니까.
“고생했어.”
“은공. 그래도 혹시 모르니 최상의 상태로 임전하세요.”
“그래.”
유리아가 떠나간 뒤 나는 숨을 짧게 골랐다.
“페르세르크. 에이리아.”
“일단 축복 마법은 걸었다만 이런 효과를 보긴 힘들어.”
탈모에 검은 콩을 먹는 것마냥 효과가 있다고만 알려질 뿐 검증된바 없는 축복 마법진.
그리고.
“수인분들의 도움을 받아서 제사진을 설치해두었어요. 수인들의 고향에선 신혼부부가 초야를 치를 때 곡 사용해서 아이가 태어나길 바라는 미신이…….”
“그것도 충분해.”
뒤이어 비화가 힘이 서린 사탕 같은 것을 내 손에 내밀었다.
“아빠. 딸이 이런 말 하기 뭣하지만…… 이거 입에 머금고 있다가 넘겨줘요.”
그녀가 손에 내민 작은 알사탕을 보며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 고맙다.”
“행운을 빌게요.”
일리나만 모르는 모두의 작전이 거행되고 있었다.
“데이비! 나왔어!!”
문이 벌컥 열리며 양손에 종이가방을 잔뜩 들고 있는 일리나가 해맑게 웃었다.
“이히…… 이히히히!”
그녀는 경쾌한 걸음으로 다가온 뒤 손에 든 가방을 놓고 그 안에 든 육아용품들을 하나하나 보여 주며 자랑하기 시작했다.
“이건 우리 아가가 태어나면 씌울 손 싸개. 이건 양말. 그리고 꼬까옷.”
얼마나 고심했는지가 보일 정도로 꼼꼼하게 준비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일리나.”
“응?”
“늦었으니 피곤하지? 오늘은 달이나 볼까?”
내 은근한 신호에 그녀가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어…… 응? 하지만 나 배 속에 아가가 있는데…… 초기엔 자제해야 한다고 들었어.”
“괜찮아. 문제없이 보호할 수 있어. 그리고 오히려 신력으로 감싸서 더 몸에 좋을 거야.”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구라를 남발하지만, 그녀는 마법에 대해선 잘 모르기에 귀를 팔랑거리듯 넘어오기 시작했다.
“자자. 여기 차 마셔. 내가 준비한 거야.”
“뭐야…… 왜 이렇게 잘해줘?”
“왜 잘해주긴. 원래 산모는 여왕님이야. 넌 그동안 시중이나 받아.”
“헤헤. 이히히히.”
저렇게 헤픈 웃음을 던질 정도로 기뻐하는 그녀였다.
“그럼 잘 마실게?”
그런데 임실이 거짓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 그때 그녀는 얼마나 괴로워할까. 얼마나 슬퍼할까.
아이를 안 가져도 된다던 거짓말은 이제 믿지 않기로 했다. 그녀는 한때 아벨을 뱃속에 품었던 페르세르크만큼이나 기뻐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제발 뱃속에 정말로 아이가 있으면 싶지만,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흐아아…… 평소보다 더 맛있는 거 같아.”
발그레해진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는 그녀를 보며 내가 신호를 보내자 숨어서 상황을 지켜보던 페르세르크가 고개를 끄덕이고 스르륵 자리를 비켰다.
[데이비. 절대 다른 곳에 신경 쓰게 만들지 마. 일리나라면 예민하게 마법진의 정체를 눈치챌 수도 있으니.]
걱정 마시지요. 마님.
나는 그대로 일리나를 안아 들었고.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까지 이렇게 가슴을 졸여본 적이 있던가.
단기간 내에 정말로 사실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남은 것은 질척질척한 거짓말뿐일 테니 말이다.
“오늘 아주 죽었어, 너는.”
“이히히히.”
저 행복한 미소를 보고 있으면 속에서 비명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어! 뱃속에서 아이가 발차기를 했어!”
“야. 발차기는 무슨 발차기야. 헛소리할래?”
“에헤헤 착각했나 봐. 우리 아가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아 참, 데이비. 우리 아이 태명은 뭘로 지을까?”
내 품에 안긴 채 침대로 향하며 그녀가 애교를 부리듯 물어왔다.
이에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소원이]로 할까?”
“너무 여자아이 같은 태명이네. 딸을 원해?”
“원래 태명은 그런 거 안 따져.”
일생의 소원이니 제발 기적을 타고 태어나주려무나…….
현재 그녀의 몸에는 함부로 간섭을 할 수 없다. 정말로 아이가 있고 어느 정도 자랐다면 신력이든 마나를 이용하던 검사라도 되겠지만. 지금 일리나의 몸은 일리나가 무의식적으로 모든 것의 접근을 막고 있으니 말이다.
그 방어의 틈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들킬 수 있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자칫 들켰다간 아이를 해치려 했다라는 오해를 사거나 다른 의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만에 하나라도 정말로 임신상태일 수도 있기에 무리한 자극은 반드시 피해야 했다.
이런 일을 해본 적이 있어야지 원.
이후 나는 그녀가 다른 곳에 전혀 정신을 팔지 못하게 하기 위해선 반드시 한 마리의 짐승 새끼가 되어야 했다.
* * *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눈을 뜬 나는 잠에 빠져들었으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몸을 보호하듯 감싸고 있는 일리나를 뒤로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됐어?”
“잘 모르겠다. 작전은 성공했고, 중간중간에 틈이 생겨서 확인은 해봤지만…… 증세나 변화 자체는 가임 성공한 여성의 것과 동일해. 깊게는 확인할 수가 없어.”
만에 하나라도 자칫 정말로 임신인데 들쑤시듯 검사했다가 잘못되면 그땐 정말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질 것이다.
“하면…….”
“그래. 조금만 더 지켜보자. 원래 주기가 언제였지?”
내 질문에 시녀 중 하나가 조용히 말했다.
“마님의 주기는 이미 지나가셨습니다. 실제로 어떤 변화도 없었구요. 간간이 있는 일이라 딱히 의심하진 않으셨어요.”
“차라리 이 모든 행동이 부질없는 헛짓거리였으면 좋겠구나.”
일리나의 몸에 그동안 변화가 생겼고 기적적으로 아이를 가진 게 성공한 케이스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그녀였다.
이에 전날 일리나에게 집중하면서 얻은 단서를 토대로 나는 한가지 가설을 내렸다.
“어쩌면…… 진짜일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아직 몰라. 시간은 있으니까 지켜보자.”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다.
그때 동화책 그림을 보던 다리안이 아장아장 걸어와 내 품에 안긴다.
“아부아. 다리안 동생 생겨?”
“그래. 다리안. 그럴 거야.”
그말에 다리안의 눈동자에 호기심과 기쁨이 서렸다.
“동생! 다리안이 지켜주께!”
어눌하지만 이제는 말도 제법 할 줄 알게 된 다리안이 귀여워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자 녀석은 그대로 아벨에게 가서 자랑하기 시작한다.
적어도 동생이 생긴다고 질투하진 않겠네 라는 안도가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