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481화 (1,481/1,559)

제 1481화

각성자.

지구의 각성자는 주로 1세대와 2세대로 나뉜다. 과거 넬타리드가 만들어낸 알프 온라인을 통해 힘을 얻었던 1세대와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2세대 각성자.

현재 세간에 퍼져있는 각성자 병은 2세대 각성자에게 해당하는 병이기도 했다.

다만 그 발병빈도가 낮고 전염성이 거의 없는 수준에 이르러 있는 터라 지금까지 크게 사회화 되진 않았다.

하지만 언제부터 그 발병빈도가 우상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고. 몇몇 국가들이 이상을 눈치챘을 땐 이미 사태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게 보일 정도였다.

실제로 S급 각성자 하나가 무리한 던전 클리어 도중에 병으로 사망해버리면서 더는 숨기기 어려워진 상태였다.

“사실상 치료방법이 없었데요. 그 때문에 알만한 각성자들은 게이트 진입을 꺼리는 수준까지 왔고.”

현대에 이르러서 각성자와 게이트는 더 이상 지구의 삶에 없어선 안 될 요소가 되었다.

당연히 지구 차원의 입장에서도 마굴과의 연동은 차원 유지에 도움을 주고 있지만, 그 외에도 인간들은 게이트의 부산물과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에너지를 가공하여 실생활에 사용하고 있으니까.

“데이비. 그런 것치고 그대는 가볍게 치료하지 않았던가.”

그 말에 데이비는 조용히 침묵한 채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확실히. 지금 지구의 입장이면 힘들 법도 하네.”

“음?”

겉보기엔 정말로 많이 발전한 것 같지만 사실 지구의 마나학은 그리 발전한 편이 아니다.

오히려 외부문물을 받아들였기에 이 정도였지 그게 아니었다면 지금도 마나에 대한 정리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음은 물론 그 부산물조차 만들지 못했으리라.

“확실히…… 지구에서 마나에 대한 정의가 나온 건 예정보다 이르긴 했지…….”

솔직한 말로 부작용이나 다름없었다.

기반 지식은 아직 부족한데 무리하게 발전을 하려다 보니 이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그럼…… 저건 치료가 가능해?”

“생각보다 쉬워. 다만 내가 치료하기만 해선 근본적인 해답이 되진 않겠지.”

당장이야 치료할 수 있겠지만 그 후에 다시 발명하면? 또다시 도움의 손길을 요청해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이다.

티오니스 입장에선 그게 굉장한 이권과 돈을 불러올 수 있기에 이득이 되겠지만 적어도 사람 목숨으로 장난치는 걸 데이비가 허락할 리가 없었다.

에반젤린이 알려온 대로 남아공에서 대량발병한 각성자 병으로 인해 현재 발작 증세를 보이고 있는 각성자가 대거 출현한 만큼 그냥 두면 지구 역사상 상당한 대참사가 벌어지리라.

“어떻게 할 거야?”

“이 병은 마나에 익숙하지 않은 인간이 갑자기 마나를 얻으면서 생기는 열병 같은 거야, 티오니스 사람들은 자연스레 마나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거나 그 환경에 맞춰 진화해왔지만, 지구는 그게 아니거든.”

다만 지구도 근본적으로 마나라는 이형의 힘에 완전히 문외한이었던 건 아니었기에 퇴화하던 흔적 기관들이 다시 활성화될 가능성이 크다.

“그럼?”

“현아야. 신성 그룹에 의료 부서도 있어?”

“당연히 있지.”

“예방접종 준비하자. 다만 지구도 나름의 입장이 있으니 직접 보여주는 수밖에 없어.”

정체불명의 약을 투약한다 하면 사람을 마루타로 쓰냐며 말이 나온다.

그러니 우선적으로 지원자를 받아 치료할 필요가 있었다.

“명분은 충분하네. 티오니스에서는 별문제가 되지 않는 병이니까?”

“애초에 걸리질 않지. 티오니스에선 발병사례가 거의 없어. 루게릭병마냥 극히 드문 케이스로 발견되거든.”

다만 일부 세계에선 발병사례가 상당한 곳도 있다.

물론, 역사가 흐르면서 그곳에서도 흔히 치료가 가능한 병이 되었다지만 지구는 아직 이런 점에선 막내나 다름없다.

“치료법이 따로 존재하는 거야?”

“내가 한 치료는 특히 드물어. 티오니스에서도 이런 식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해.”

데이비이기에 가능한 무식한 치료법을 정식 치료법이라고 내놓는 건 멍청한 짓이다.

“그러니 약물치료가 제격이지.”

약을 써서 치료할 수 있다면 그걸로 접종하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다.

“애초에 바이러스 같은 게 아니기 때문에 접종 후에 열이 오른다거나 하는 것도 없어.”

“그럼 그 약재는 구할 수 있어?”

“아니. 우선은 티오니스에서 들여올 거야. 거기에 약재의 레시피 로열티를 조금 받는 거지.”

데이비의 설명에 현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결국, 돈이네…… 씁쓸하게.”

“마음 같아선 그냥 모종을 넘기고 싶지만. 하인스도 자금이 필요한 상황이라.”

실제로 이건 엄청난 메리트이기도 했다.

특히 최근 들어 하인스 아카데미 때문에 자금줄이 더 필요한 하인스 입장에선 상당히 중요한 활로가 되리라.

물론, 이번에 가르강티아 놈을 처리하면서 놈이 그동안 모아놓은 대량의 재화를 얻어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다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않는다.

“인간의 목숨과 돈을 저울질해야 하는 상황이라니 씁쓸하네.”

중요한 건 그것을 지구가 받아들이냐였다.

“그럼…… 뭐부터 도와줄까?”

“그 과정을 보여줘야 해. 우선은 남아공을 포함해 몇몇 국가가 병으로 씨름하고 있으니까. 그곳들을 무상으로 치료해줄 생각이야.”

당장은 그리할 생각이었다.

“최소한 의사로서의 양심만큼은 챙겨야겠지.”

“비행기 준비해둘게. 필요한 건?”

“간단한 응급처치가 아니라 약재 치료가 메인이 될 테니까. 의료 천막이라도 설치하게 해줘. 정치적인 입장은 귀찮으니까.”

어디까지나 의료봉사에 가깝게 시작할 생각이었다.

* * *

티오니스 성자에 대한 소식이 인터넷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각성자 병이 발병한 사람을 치료한 것을 기점으로 남아공에 대량으로 발생한 발병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직접 나섰다는 것을 말이다.

다만 남아공에서 발병한 각성자들의 병은 확률이 낮지만, 전염성이 있다고 알려져 있기에 발병 가능성이 있는 티오니스 성자의 행동에 많은 이들이 놀란 입장을 내비쳤다.

당연히 남아공의 현 대통령인 리포라사 대통령의 입장에선 십년감수한 입장이었다.

각성자의 수가 국가 규모에 비해 그리 많은 편이 아닌 나라다. 그런 마당에 대량의 병이 발병해버렸으니 발등에 불이 떨어진 기분이었으리라.

그런 마당에 세계 연합기구와 결탁하고 있는 국제 기업인 신성 그룹을 통해 티오니스 성자. 데이비 올 라운을 만났다.

그는 남아공에 임시 의료시설을 설치하고 상태가 심각한 발병자들을 치료해주겠다 말했다.

본래라면 신중하게 받아들여야 했을 일이다.

하지만 상황이 워낙에 급박했던 그는 어떻게든 사태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강박증에 빠져있었고 데이비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 빠르게 협약을 맺었다.

그 후로 약 일주일.

데이비는 그동안 신성 그룹에서 설치해준 의료시설에서 각성자 병에 걸린 각성자들을 빠르게 치료하기 시작했다.

다만 소식을 들었을 때와는 달리 그는 약물치료를 이용한 치료를 중시했다.

직접 치료는 가능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세간에선 그가 발병자들을 상대로 인체실험을 한다느니 뭐니 말이 많았다.

하지만, 50여 명이 첫 접종을 마친 뒤 모든 것이 변했다.

각성자 병에 걸리면 여러 증세가 나타나지만, 증세가 심각한 이들은 피거품을 물고 발작을 일으키기도 한다.

물론, 심각한 사태가 아닌 이들은 극심한 피로와 마나 운용에 장애를 겪는 게 대부분이지만 증상 자체는 알만한 사람들에겐 알려졌을 만큼 유명했다.

실제로 자신도 피거품을 물며 발작을 일으킬 것이라는 사실에 겁을 먹은 각성자들은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들었고.

고작 사흘 만에 거대한 차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증세가 완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피로가 서서히 풀리고 마나 운용이 본래대로 돌아온다. 들쭉날쭉 찾아오던 현기증과 고열이 사라졌고 이내 완전히 본래대로 돌아왔다.

그제야 사람들은 데이비가 접종해준 약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것인지를 깨달았다.

접종 부작용이 극도로 적은 병.

애초에 약이라는 것이 부작용이 없을 순 없다.

그렇기에 의학계에선 그동안 수많은 방법을 통해 그 부작용이 발생할 확률을 극단적으로 낮춰왔다.

다만 그게 단시간 안에 이루어진 사례는 그리 많지 않았기에 걱정하는 이들도 많았다.

약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문제가 발생하는 이는 없었다.

이후로부터는 사태가 빠르게 호전되기 시작했다.

심각한 이들도 치료가 끝나가며 사실상 남아공에서 발병한 각성자 병의 치료가 서서히 완료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국가에서는 질병 비상사태를 조기 해제하는 데에 성공했고 남아공의 대통령은 적은 대가만으로 수많은 각성자를 살려준 데이비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물론, 단기적인 치료였기에 향후 또 발병자가 나올 수도 있었다.

이에 데이비는 신성 그룹을 통해 티오니스에서 해당 약초를 수출하는 것으로 사태를 해결했다.

나쁜 마음을 먹었다면 얼마든지 폭리를 취할 수 있다.

한번 각성자 병으로 큰 사단을 겪었던 만큼 그 약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국가가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데이비는 적정한 가격에 약재를 공급하기로 약속했고 빠른 시간 안에 거래 계약을 체결하는 데에 성공했다.

각성자 병은 게이트의 마나에 노출되는 각성자에게 걸리는 병이다.

거기에 낮지만 전염성이 없는 것도 아니기에 각성자는 물론, 혹시나 하는 상황에 대비해 비각성자도 접종하는 게 좋다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남아공에서 체결된 계약을 지켜보던 국가들이 하나둘 움직이기 시작했다.

각성자 병은 지금껏 그 사태가 심각하지 않았지만, 근본적으로 그냥 방치해둘 수 없는 병이라는 건 대부분이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마당에 데이비가 공식적으로 지구에 제안을 내놓았다.

수많은 국가의 통치권자들이 모인 회의장. 그 중심에 올라선 데이비는 긴장 따윈 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고작해야 20대로 보이는 청년.

세계의 통수권자들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당당하게 올라선 데이비는 그를 찍고 있는 카메라도 무시한 채 곧바로 본제를 던졌다.

“복잡하게 이야기를 비비 꼬고 돌아갈 생각 없습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현재 지구 곳곳에서 각성자 병이라는 게 돌고 있는걸 확인했습니다.”

질문은 받지 않겠다는 듯 짧고 간략하게 설명을 이어나간다.

“지구 사람들은 마나가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밀도 높은 마나에 장시간 노출되거나 할 경우 흔히 각성자 병이 발병하기도 합니다.”

그는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치료 자체는 어렵지 않습니다. 당장 약 따위 없어도 직접 치료도 가능할 정도로요.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선 고위급 대마법사 정도가 아니면 사실상 불가합니다.”

그 말에 일부 통수권자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걱정 마세요. 지구에는 없지만 티오니스에서 들여온 약재를 이용해 투약형의 약을 만들고 두어 차례 접종하면 자체적인 면역이 생깁니다. 영구적인 것은 아니지만 일 년에 두 번씩만 접종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데이비는 숨을 조용히 고르고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의 눈동자가 바닥을 스윽 훑었다가 다시 들어 올려졌다.

“돕겠습니다. 무상으로 지급할 정도로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기에 최소 가격은 받겠지만 약의 제조법 또한 신성 그룹에 넘겨줄 생각입니다.”

데이비의 말에 웅성거림이 커졌다.

급기야 의문을 참지 못한 일부가 발언을 요청한다.

“말씀하세요.”

“호의에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 약의 안정성 같은 면에선 괜찮은 겁니까?”

“이미 남아공에서 사례를 보셨겠지만…….”

“그렇긴 합니다만 사례가 부족합니다.”

그의 말에 데이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죠. 지구에선 생소한 약일 테니까요.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도 모르는데 무리하게 할 순 없을 겁니다. 다만, 이건 알아두세요.”

데이비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더없이 진중한 얼굴이다.

“각성자 병은 티오니스를 포함한 다른 세상에서도 이미 흔히 보이는 병입니다. 아이의 열병처럼 흔하게 치료할 수 있습니다.”

“그건…….”

“지구인은 마나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세대를 거듭하면 약의 필요성이 줄어들겠지만 당장은 불가능합니다. 치명적이지만 예방할 수 있어요.”

데이비의 손이 단상을 짚었다.

“돕겠습니다. 다만 이쪽도 약재를 확보하기 위해선 자금이 필요한 만큼 최소한의 협약은 이루어져야 할 겁니다. 다만 사람의 목숨이 중요하니 정가 이상의 장난질을 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부작용의 문제는…….”

“지구에선 흔하지 않지만 타 세계에선 수백 수천 년간 사용된 약입니다. 부작용이 없을 순 없겠지만 그 확률은 극히 낮다고 말씀드리지요.”

“물량을…… 제공할 수 있습니까?”

“당장 대량의 물량을 옮기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다만, 다행히 발병자가 그리 많지 않기에 필요량을 제공한 뒤에 서서히 늘리는 식으로 추가하는 게 옳을 거라 생각됩니다.”

데이비의 말에 일부 국가는 생각이 많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일부는 그동안 쌓아온 게 많았기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듯 보였다.

“우리는 티오니스 성자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이윽고 가장 먼저 수혜를 봤던 남아공 측에서 의사를 밝혀왔다.

뒤이어 한국과 일본 측에서도 긍정적인 의사를 내비쳤다.

“자국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

대부분의 국가는 곧바로 결정하지 않았지만, 일부 국가는 늦게 받아들일수록 필요한 약의 확보가 늦어진다는 것을 가까운 과거에 한차례 겪어본 바 있다.

무엇보다. 일반적인 발병이 각성자에게 한한다는 건 큰 문제였다.

현시대에 와서 각성자는 하나의 국력이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각성자의 소모는 국가로썬 뼈아픈 지출이었다.

데이비가 발표를 마치고 떠나가려 하자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지만 그를 잡는 이는 없었다.

그저 빠르게 자국으로 돌아가 이 일에 대한 문제를 해결할 뿐.

이후 대부분의 국가에서 신성 그룹을 통해 백신의 구매를 요청해왔다.

일반인까지 감염되는 병과 다르게 각성자에 한했기에 대규모 팬데믹 선언 시에 유통되는 백신만큼 대량이 필요하지 않다는 게 그 중요한 이유였다.

데이비는 이후 빠르게 약초들을 구매해 왔고 적당한 이윤이 남는 선에서 그것들을 신성 그룹에 양도했다.

이후 신성 그룹에선 데이비가 알려준 순서대로 약을 배합했고 각국으로 빠르게 수출하기 시작했다.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각성자 병에 발병되어 있던 이들이 빠르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기 시작하자 그 효과가 빠르게 드러났다.

알아서 해결하라 말하던 데이비가 나선 이유는 간단했다.

약초가 현재 지구에서 자생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조율을 하는 비화의 입장에서 지구에 자생하도록 만들 순 있지만,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어 나갈지 알 수 없었기에 데이비가 나선 것이기도 했다.

물론, 약으로 치료하기엔 상황이 심각한 이들은 데이비가 직접 치료했다.

이후부터는 접종을 받은 이들이 대부분이기에 이런 사태까지 가진 않을 테지만 아직 접종을 받지 못한 채로 증세가 악화된 이들은 남아있었다.

데이비는 그들에 한해서 단 한 푼의 돈도 받지 않고 무상으로 치료를 하기 위해 움직였고 그가 가는 곳마다 많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았다.

그리고. 데이비가 그렇게 치료하는 모습을 일리나는 캠코더와 디지털카메라를 이용해 꼼꼼하게 담았다.

“뭘 담는 거예요?”

그런 데이비의 모습을 비화 또한 보고 있었기에 하계에 현신해있던 비화가 조심스레 묻자 일리나가 옅게 웃는다.

“네 아빠가 저렇게 사람들을 위해 힘쓰는 모습.”

“네?”

“저 모습에 반한 거야 나는. 한없이 자신만만하고 올곧고. 또x이 같지만 상식적이지.”

“…….”

“그리고. 언젠가 우리 아이가. 그리고 너희들이 그를 본받았으면 싶어서.”

그렇기에 그것들을 영상과 사진으로 남기는 것이라는 일리나의 말에 비화는 피식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일리나가 본능적으로 모든 접근을 차단하며 보호하고 있는 아이를 바라본다.

뱃속에서 아직 제대로 형체조차 완성되지 않았지만, 그 혼만큼은 눈부실 정도로 환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보였으면 좋을 텐데.

그때였다.

비화의 눈에 순간적인 편린이 보였다.

“어?”

아주 찰나의 순간. 화질이 흐린 무언가를 보듯 보며 그녀가 떨떠름한 탄식을 흘렸다.

“비화야?”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떨떠름하게 중얼거리며 비화가 한발 물러났다.

아주 잠깐이었다.

그 편린 속에서 본 것은 우아하고 예쁘며 가벼워 보이는 성녀 의복을 입은 작은 키를 지닌 소녀의 뒷모습이었다.

환한 금발을 길게 늘어뜨린 소녀의 뒷모습은 정말 성스러워 보였다.

양손에 든 피 묻은 책과 거대한 대검만 없다면 말이다.

그녀의 주변엔 몬스터들이 죄다 난자되어 쓰러져있었다. 그녀는 쓰러진 몬스터들의 앞에서 조용히 기도를 하고 있었다.

‘여…… 동생인가?’

그녀는 이 사실을 털어놓지 못한 채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 * *

데이비가 각국에 백신을 공유하면서 자연스럽게 그의 이름에 대한 칭송이 상당해졌다.

이득을 챙기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챙길 수 있음에도 싼 가격에 약을 넘기는 모습에 상당히 많은 이들의 호평을 끌어낸 것이다.

다만 일부는 다른 생각을 하기 마련이었다.

“반갑습니다. 레페일 제약회사를 이끄는 톰 발렌시라고 합니다.”

나이가 지긋한 사내가 명함을 내밀며 자신을 소개했다.

“티오니스에서 온 데이비 올 라운 대공입니다. 명망 높은 CEO를 만나 영광입니다.”

레페일 제약회사. 세계적으로 큰 지분을 지니고 있는 제약회사로써 한때 팬데믹으로 유명했던 시대에 대량의 백신을 제공한 공로로 큰 세력을 지닌 회사이기도 했다.

“사실 크게 기대하지 않았습니다만. 이렇게 응해주셔서 감사하군요.”

“마침 한 손 거들어주신다니 감사는 표해야겠지요.”

“지구의 일인데도 말입니까?”

“어느 세상이건 사람 목숨은 중요한 법입니다.”

데이비의 미소에 톰 발렌시는 묘한 표정으로 데이비를 바라보았다.

티오니스는 지구와 다르다. 역사부터 사상까지. 그렇기에 그의 사고패턴은 간간이 종잡을 수 없을 때가 많았다.

흔히 알려진 중세의 역사 사상관을 생각하면 보통 저런 인물이 존재하기 쉽지 않을 터인데 말이다.

“실은 좋은 제안을 가져왔습니다.”

그가 서류를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신성 그룹에서는 많은 양의 백신을 단기간에 공급할 역량이 없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신성 그룹은 보통 각성자 보조. 장비 제작, 그리고 최근에 와서는 가상공간 쪽으로 분야를 두고 있지, 의료 기반시설은 시원찮았기 때문이었다.

데이비가 톰 발렌시의 독대 요청을 받아들인 것도 그런 이유였다.

시간이 흐르면 신성에서도 이 효율적인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지만, 그 시간 안에 발병자들이 얼마나 죽어 나갈지 몰랐다.

실제로 지금까지 조용하던 발병률이 갑자기 급상승한 것도 원인이 있으리라.

“성자께서 원하는 계약대로 저희는 원하는 양의 백신을 제때에 공급할 수 있습니다.”

“그건 다행이네요.”

“다만…… 저희도 내부 검토를 한 결과 조항을 조금만 조율하는 건 어떨까 합니다.”

웃는 얼굴로 그가 말했다.

“이 부분을 말이지요.”

그가 내건 것은 다름 아닌 단가 쪽이었다.

“손해는 보지 않습니다만 이래서야 본전치기일 뿐입니다. 차익 마진이 거의 남지 않아요.”

“흐음…… 그럼 어떻게 하시겠다는 겁니까?”

“우선 단가는 이 정도로 올리심이 어떨는지요.”

순식간에 단위가 변하는 걸 보며 데이비의 미소짓는 얼굴에 순간 서슬 퍼런 기세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신성 그룹이 아니라 저희 회사와 계약하시지요. 필요 없는 잡음은 없애고 단가도 확실히 챙겨드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목숨에 돈을 아끼지 않습니다. 이 정도만 해도 크게 과하지 않는 선에서 충분히 지급할 겁니다.”

그의 말에 데이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하시죠.”

“그 외에도 국가와 계약을 맺어 특정 가격을 받고 납품을…….”

“회장님.”

그때였다 데이비가 묻는다.

“이렇게 될 경우 본래 제 약속을 어기는 셈이 됩니다. 그리고 백신의 독과점은 그리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진 않네요.”

“허어…… 세상을 너무 밝게만 보시는군요. 이런 기업적인 측면에선 아무래도 제가 좀 더 노련한듯합니다.”

그가 웃었다.

“현재 이 백신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입니다. 싼 가격에 넘긴다니 손해가 너무 크지 않습니까.”

“그들은 서민이 대부분입니다. 그들에게 비싼 돈을 주고 약을 구매하게 하라 이 말입니까? 의료보험이 잘되어있는 국가와 별개로 약값이 상당히 비싼 곳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그 물음에 그가 피식 웃었다.

“때로는 희생도 필요한 법입니다. 좀 더 넓은 시야를 지니고 생산적인 결과를 내야지요. 무작정 싸게 약을 넘긴다고 저들이 고마워할 거 같습니까? 조금만 지나면 당연한 권리로 여기게 될 겁니다.”

그가 설득하듯 말한다.

“이 세상의 이권은 스스로 챙기는 겁니다. 성자님의 뜻을 모르는 바는 아니며 성자님의 의도를 모르는 바도 아니지만, 이 가격에 백신을 유통하는 건…….”

톰 발렌시는 유통 인프라를 자신이 가지고 있음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적당히 윈윈하면 얼마든지 돕겠다. 하지만 그러지 않으면 우리도 도울 이유가 없다.

겉으로 드러낸 의도는 그것이지만 그 안에는 철저한 약자멸시가 깔려있었다.

“저희는 기업가입니다. 자선사업가가 아니지요. 그러니 믿고 맡겨주시지요.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실제로 원가를 잘만 숨기면 판매 마진을 이용해서…….”

“톰 발렌시 회장님.”

데이비가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는 등을 의자 등받이에 기대며 다리를 꼬았다.

“저들의 반발은 어찌하시려고요?”

“말씀하셨다시피 저들은 어차피 대부분이 서민입니다.”

“서민이라고 하여 그 목소리에 파급이 없는 건 아닙니다만.”

“맞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억누를 수 있지요. 쉬운 일입니다. 서로 이간질만 잘 시켜주면 서로 물어뜯다가 모든 게 끝날 겁니다. 어차피 민중이라는 건 금방 끓어오르고 금방 식는 법이니까요.”

저들끼리 싸움을 붙인 다음 필요한 정책과 인프라를 완성시키고 돈을 쓸어 담으면 된다.

그는 그리 말한다.

“듣자 하니 자금이 필요하신 모양입니다만. 이 방법대로라면…….”

“회장님.”

데이비가 웃는 얼굴로 다시 그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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