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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482화 (1,482/1,559)

제 1482화

그는 뼛속까지 사업가였다.

말이 험하게 나온 점을 생각하면 딱히 이상할 것도 없었다.

거대기업을 이끄는 이들 중에 정신적인 프레셔에 짓눌려있는 사람도 종종 보이는 편이니까.

물론, 그런 점을 감안해도 그는 자신의 회사의 이윤을 모든 것의 최우선으로 두고 있지만 말이다.

“오늘 일은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는 일부러 정도 이상의 도발을 날렸다. 네가 정말로 대단한 수완을 지녔다고 생각한다면 이 정도 도발에 어떻게 나오는지 한번 보겠다는 건지.

아니면 도발을 해서라도 내가 원하는 대답을 내놓기를 원하는 건지.

어느 쪽이든 그는 정도의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나를 도발하고 있었다.

그의 말에 사실 또한 있었으니 말이다.

신성 그룹이 의료인프라 구축에 애를 먹고 있는 것은 사실.

정말로 환자들을 구하고 싶으면 빠르게 의약 백신을 생산해줄 수 있는 쪽과 손을 잡아야 했다.

일각에선 내가 신성을 밀어주기 위해 일부러 신성과 계약했다고 수군거리지만 그걸 물고 늘어질 간 큰 인간은 없었다.

“데이비 대공.”

“미스터 톰 발렌시. 나는 분명 말했습니다. 못 들은 것으로 하겠다고.”

그는 자신이 가진 패를 이용하여 협상을 시도했다.

어디까지나 내게는 손해가 없으면서 그의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

백신의 최종 단가를 올리는 것으로 말이다.

상당히 부담되는 가격이지만 살기 위해서 각성자들은 약을 구매하고 몸에 완전히 면역력이 생기기 전까지 주기적으로 접종을 받을 것이다.

이 가격대로라면 그의 제약회사는 그 기간 동안 압도적인 재화를 쓸어 담을 터.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이보다 더 지독한 인간들을 어디 한두 번 봤던가.

그렇기에 경고했다.

이 이상 선을 넘고 나를 기만하지 말라고.

내 미소에 그는 떨떠름한 미소를 애써 숨겼다.

“대공께서 생각하시는 바는 잘 압니다. 하지만 원하는 물량을 만들어내기 위해선 저희 회사의 시스템이 꼭 필요하다는 건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 과정에서 구매자들에게 폭리를 취하는 건 제 방침이 아닙니다.”

“대공! 아무리 성자라지만 이건 어리석은 판단입니다! 서로 윈윈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패배하지 않지요! 대공도, 나도, 그리고 구매자도.”

“가격을 비싸게 올렸는데 구매자는 피해가 없다고 말하는 겁니까?”

“그들은 살지 않습니까.”

그의 설득에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그걸 왜 당신이 결정합니까.”

“무슨…….”

“약을 제공하는 건 이쪽입니다. 당신이 아니라. 그리고, 지금 할만한 대화 주제는 아니네요.”

어리석은 욕심을 부리긴 했지만 내가 더 이상 나대지 말라는 경고가 한층 짙어진다.

“대공의 뜻은 알겠습니다. 당신은 제 뜻을 이해해주리라 믿었습니다.”

“미스터 톰 발렌시. 세상을 멋대로 조종하는 건 오만한 판단입니다.”

“당신은 그게 가능한 존재이지 않습니까. 세계 각국은 당신의 눈치를 보고 있어요. 당신이 지구를 지켜주고 있으니! 왜 모르시는 겁니까! 이것은 당신에게 주어진 운명이자 기회입니다! 당신은 세계를 이끌 자격이 있어요! 나는 그걸 도우려는 겁니다!”

“세상을 이끄는 건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이지 이방인이 아닙니다.”

“대공…….”

“그리고. 속내는 좀 숨기시는 게 좋겠군요. 뭐가 그리 조급한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당신의 회사와 협업은 어렵지 않습니다. 이런 괴악한 조건만 없다면요.”

“반드시 저희의 도움이 필요할 겁니다.”

“그거야 모를 일이지요.”

그는 조용히 한숨을 내쉰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쉽게 되었군요. 좋은 거래가 될 거라 생각했건만…….”

“멀리 안 나가겠습니다.”

그와 같은 인간들을 한두 번 본 것도 아니고 새삼스러울 건 없었다.

* * *

“현수야.”

오랜만에 삼촌을 만났다.

그는 내가 다른 이가 되어 환생했음을 알아도 현수라는 이름에 아직 미련이 남은 듯 보였다.

회사를 이끄느라 지친 기색이 가득해 보이는 그에게 신성 마법을 걸어 피로를 회복시키고 몸 안의 자잘한 병마를 확인한다.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이네요.”

“하하. 네 덕분이지. 본래 큰 회사를 이끄는 사람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살아가지만 네 덕에 이 삼촌은 주름이 자글자글해질 때까지 잘 살겠구나. 늙으면 빨리 죽어야 할 터인데.”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세발…… 아니지, 현아와 연희 누님을 지켜줄 수 있는 건 삼촌뿐이잖아요.”

“하하. 네가 있는데 뭐가 걱정일까.”

그리 말하지만, 그는 씁쓸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요즘 현아와 연희의 표정이 밝아 보여서 좋더구나, 네 덕분이다.”

“요즘 일은 어떠세요?”

그가 취미 삼아 마시는 고급 와인을 따라 건네주자 그것을 받아 마시고는 물었다.

“늘 그렇지. 적당히 잘 유지되고 있단다.”

현재 신성의 주가는 상당히 높을 수밖에 없다.

각성자 사업, 그리고 가상현실 사업의 압도적인 선두주자이며 사실상 경쟁자가 없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사람이 잘나면 주변에서 질시가 날아들기 마련이지.”

그는 허허 웃었다.

“그렇지않아도 최근에 제약회사와 미팅이 있었다고.”

“예. 신성의 의료 라인으로는 수요에 맞출 수 없을 테니 자신들과도 계약하자 하더군요.”

“네가 보는 그는 어떤 인물이더냐.”

태블릿을 조작하던 그가 고개를 돌려 물어왔다.

“글쎄요. 선민의식. 상당한 욕심. 뭐. 그리 달가운 인물은 아니네요.”

“요즘 같은 세상에 그런 인간은 흔한 법이지.”

그가 껄껄 웃었다.

“그는 욕심이 많은 자지. 하지만 그렇다고 선을 넘는 이는 아니었다.”

그렇게 단발적인 욕심에 넘어갈 한량이었다면 세계적인 제약회사를 만들 존재는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것 치고는 조급해 보이던데요.”

내 질문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가 이끄는 제약회사는 큰 회사지. 기밀이긴 하지만 현재 그는 사내에서 입지가 좋지 못해.”

무리한 승계 구도로 인한 무리수. 사업 확장 실패로 인한 반동.

“이대로라면 그는 자리를 빼앗기고 뒷방으로 밀려날 가능성도 크지. 충분히 돈을 벌었다면 굳이 의미가 있냐 하겠지만. 그에게 있어서 그 제약회사는 인생 전부일 테니까.”

“그럼 그가 움직인다는 겁니까?”

“영리한 자이니 아마 움직이진 않을 게다.”

그가 쓰게 웃었다.

“신성은 네가 말하는 백신을 수요에 맞춰 공급하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즉. 다른 제약회사와 손을 잡아야 한다는 소리인데. 톰 발렌시, 그가 이끄는 국제 제약회사만 한 곳이 없는 것도 사실이니까.”

즉. 가만히 두기만 해도 다시금 조건을 끌고 온다는 소리였다.

이에 나는 빙그레 웃어 보였다.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하면 어찌하려고 그러는 게냐.”

“삼촌, 벌써 잊었어요? 제가 제공한 백신이 어디에서 온 건지.”

미안하지만 기계를 다루는 건 지구만 해당하는 사항이 아니었다.

* * *

내가 각성자들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싼값에 백신을 제공하겠다고 말한 뒤로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

같은 제약회사 쪽에선 좋지 않은 시선을 보냈지만, 대부분은 우호적인 시선을 보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 층에선 신성을 몰아주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또한, 한쪽에선 신성의 의료인프라 시설이 필요한 양의 시설을 내줄지 애매하다는 입장을 보이는 이들도 많았다.

실제로 신성에서 보유하고 있는 기계설비. 사람들의 교육상태를 생각하면 절대 수요량을 맞추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 이도 많았다.

어디까지나 지구 내에서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조건을 걸 때나 가능한 일이지만 말이다.

신의 파편이자 천재 연금술사이기도 한 이바노프를 통해 다시 한번 유르기안 대륙과 접촉하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곳에서 나는 일정량의 백신을 대량주문하는 계약을 체결했고, 그 값을 신성 측에서 지불하도록 중간다리를 놓았다.

당연 신성 측에서 화폐 대신 필요한 물자를 보내주고 그곳에서 백신을 보내주는 것으로 초기물량 확보에 성공해버린 것이다.

가장 중요한 초기 물자 확보에 허무하게 성공해버린 이상 신성이 향후 기계를 통해 추가물량을 끌어낼 정도의 수준은 얼마든지 뽑아낼 수 있었다.

비록 톰 발렌시의 말대로 이 거래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을 많이 챙기지 못한 것도 사실이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사람을 살리려고 한 계획일뿐이며 사실 톰 발렌시처럼 급하게 돈이 필요한 게 아닌 이상 장기적으로 이득은 분명히 있을 수 있었다.

신성이 백신 공급으로 인원을 증축하고 대량의 백신을 풀기 시작하자 각국에선 발병한 각성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하나둘 거래를 트기 시작했고, 협의된 물량을 빠르게 제공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신성에서 수요량을 맞추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톰 발렌시의 입장에선 마른하늘의 날벼락 같은 상황이었으리라.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아직 백신을 처방받지 못했으나 상태가 심각한 이들을 찾아 치료했다.

비록 백신을 맞으면 해결할 수 있다지만 살릴 수 있는 환자를 방치하는 건 달갑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하나둘 순회하듯 치료를 하다 보니 어느새 신성에서 초기물량을 각국에 배포하기 시작한다.

개중엔 아직 안전성 검사가 되지 않았다며 거부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동안 내가 쌓아둔 이미지 때문인지. 아니면 직접 치료하러 다닌 덕분인지 대부분의 국가는 거래 자체를 받아들인 모습이었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발병자들이 줄어들기 시작하자 자연스레 신성의 주가와 나의 이미지가 상당히 상승되는 흐름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실제로 백신을 투약받은 이들은 하루 내지 이틀 안에 그 효과를 보기 시작했고 당장 어제만 해도 피로와 구토감을 호소하던 이가 쌩쌩한 얼굴로 돌아다니기 시작하자 그 분위기에 편승하듯 거대한 파도처럼 몰아쳤다.

한차례 순회를 돌고 나면 남은 것은 휴식이었다.

너른 풍경을 보며 의자에 앉아있는 내 다리 사이엔 일리나가 내 가슴에 등을 기댄 채 몸을 반쯤 눕히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녀의 포근함을 느끼며 양손을 그녀의 배 위에 놓고 아주 옅은 고동을 느껴보려 애쓰고 있었다.

그런 우리의 모습 때문일까.

누군가가 사진을 찍는 모습을 올린 듯 보였지만 굳이 신경 쓰진 않았다.

“아주 잘하는 짓이다. 해외에 나와도 깨를 볶는구나?”

그때 내 곁으로 현아와 코오나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세발낙지가 왔네.”

“뭐래 꼴뚜기가.”

현아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는 시선이다.

하지만 코오나는 우리의 모습을 보며 약간 우울한 기색을 내비쳤다.

“아…… 일어나야겠다.”

부끄러움에 어쩔 줄 몰라하던 일리나가 일어나려 하자 나는 손으로 그녀를 누르고 일어나지 못하게 막았다.

“그냥 있어.”

“시…… 싫어, 부끄럽다고.”

결국, 버둥거리던 그녀가 헛기침을 하며 일어나자 현아는 피식 웃어 보이며 그녀의 흐트러진 옷을 펴는 것을 도와주었다.

“저도 해주세요…….”

마치 아이가 투정을 부리듯 코오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음?”

“저도…… 저도 해주세요.”

그녀가 다가와 나를 똑바로 직시하며 요구해왔다.

“얌마. 그건 좋아하는 사람한테 해달라고 해.”

“좋아하는 사람 맞잖아요.”

그녀가 나를 가리키며 말하자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녀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고 페르세르크가 그녀를 더 이상 막지 않겠다곤 했지만 그게 내가 그녀를 받아들일 이유는 되지 않았다.

내가 거절의 의사를 내비치자 토라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그녀가 고개를 돌려버렸다.

“거참…… 애 딸린 유부남이 뭐가 좋다고 그러는 건지…….”

“나한텐 전부에요.”

“넌 아직 어려서 그래.”

“그래 봐야 나이 차이 얼마나 난다고…….”

“속 나이가 완전히 다르지.”

그렇게 치면 일리나와 내 나이 차이가 더 크게 다가오는 편이지만 애써 무시한다.

결국, 코오나는 울상을 지으면서도 더는 요구하지 않았다.

“어차피 시간은 많아요.”

“응?”

그녀의 혼잣말에 내가 그녀를 바라보자 시선을 돌려버린다.

“시간이 많기는 임마. 십 년은 금방 가. 너도 네 인생은 살아야지.”

“…….”

뭐가 그리 불만인지 퉁명스러운 얼굴로 나를 보던 그녀가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어? 몰랐어? 코오나 수명이 늘어났어.”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차원의 진주를 얻어 방대한 생명력을 얻을뻔했으나 그 기회를 포기했던 그녀가 아니었던가.

그렇기에 그녀의 수명이 인간을 초월할 수준으로 늘어날 순 없다고 생각했건만.

다른 무언가가 있었던 모양이다.

“음…… 설명이 애매한데…….”

“뭐가 됐건 그래 봐야 얼마나 늘어난다고.”

“정말…… 안 돼요?”

“안되지 임마.”

코오나의 이마에 가벼운 딱밤을 놔주자 그녀가 우울한 얼굴로 물어왔다.

“그럼, 나, 예뻐요?”

“그래. 예쁘네.”

“덮치고 싶지 않으세요? 신고 안 할게요. 천장에 문양만 세고 있으면 다 끝나요.”

“정신 차려 임마. 갈수록 애가 맹해지네.”

저 뻔뻔하면서도 뻣뻣한 유혹을 보니 현아가 쓸데없는 바람을 넣은 게 틀림없다.

“야. 애한테 이상한 거 가르치지 마.”

“뭐래. 나도 너 같은 놈한테 우리 코오나 주고 싶지 않아. 아 새언니가 잘못된다는 건 아니고요.”

현아는 화끈하게 가운뎃손가락을 올려 보이고는 다시 일리나에게 무언가를 건네준다.

태교에 좋은 물건들이라는데 그녀의 조카 사랑을 생각하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그리고, 코오나는 집념을 보이며 내게 다시 도전해왔다.

“시간은 많으니까 괜찮아요.”

“거참…….”

뻔뻔한 건지 낙천적인 건지 모를 일이다. 지금이야 이렇지만, 시간이 지나면 달라지겠지.

그렇게 자신의 볼일을 모두 끝낸 현아는 일리나와 코오나에게 부탁해 나와 독대하는 자리를 만들어냈다.

아쉬운 기색을 내비치는 코오나를 일리나가 데리고 가자 현아는 내 옆에 앉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요즘 분위기 좋더라?”

“분위기?”

“응, 오빠가 세계 각지 돌아다니면서 각성자들 가리지 않고 치료해주니까 지금 인식이 엄청 좋아. 덕분에 신성도 이득을 봐서 백신 거래에 순항 중이고.”

“별 문제는 없지?”

“없지. 이대로면 사망자를 극단적으로 줄일 수 있어. 잘하면 오빠 노벨 의학상도 받을지도 모르겠네.”

과학 분야에서 에오니샤가 받은 그거?

관심 없는 분야였다.

내 옆에 툭 앉아 음료수 캔을 건네주는 그녀였다.

“누가 방해만 안 하면 말이야.”

“톰 발렌시?”

“그래. 조용하긴 한데 삼촌 말마따나 분명 사고를 칠 거야. 절대 이번 백신을 그냥 무시할 정도로 여유로운 작자는 아니거든.”

“내가 있는데도?”

어지간해선 겁 없이 건드리지 않을 텐데.

그가 무슨 짓을 저지를까.

내 말에 그녀가 한숨을 내쉰다.

“궁지에 몰리면 무슨 짓이든 하는 인간이야. 예전에 만나본 그는 그런 인간이었어.”

“걱정 마. 그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뻔하니까.”

“뻔하다고?”

“정면으로 싸움을 거는 미친 짓을 할 리는 없지. 그렇다고 백신을 확보하려면 우선적으로 내가 티오니스에서 가져온 약초가 필요해.”

당연히 약초를 확보해야 그들도 백신을 만들 수 있게 된다.

“거기에 우리 신성이 보유한 약초들을 못 쓰게 만들어야겠지.”

“그렇겠지.”

“그거 알아? 그 제약회사. 흉흉한 소문이 돌아. 인체실험을 통해서 인간 병기를 만들고 있다는 소문이 돌더라. 다만 실험이 잘 안 돼서 대량의 자금을 끌어모으려 한다고 하던데.”

“그래? 재밌네.”

“아니 걱정도 안 돼? 동생의 앞길을 막으려 드는데?”

“뭔가 해결책이 있는 거 아니야?”

“그렇지.”

그녀가 독특한 장비를 꺼내 들었다.

“이게 뭐게?”

“뭔데.”

“기폭 관측기. 기폭장치가 발동하면 여기에 신호가 올 거야.”

이미 신호가 와있다는 건 이미 터졌다는 소리였다.

현재 내가 있는 이곳과 창고가 있는 곳의 시차는 상당히 차이가 크니 밤중일 것이다.

그녀의 스산한 미소에 나는 괜히 오한이 돋는 것을 느꼈다.

“물건 훔치러 온 놈들까지 내가 사정 봐줄 필요는 없지 안 그래?”

그 말과 함께 기다렸다는 듯 신호가 울렸고 그녀는 망설임 없이 버튼을 눌러버렸다.

“개x식들 아주 천국으로 훠이훠이 떠나라고 해. 아 참, 톰 발렌시 그 양반도 손대지 마. 내가 아주 작살을 내버릴 거니까. 신성이 세계 최대 규모의 각성자 보유 집단이라는걸 보여줄 거야.”

아직 증거는 없겠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

아무래도 현아는 가짜 창고를 만들어 그들을 유인한 후 그들이 진입하자마자 폭파시켜버린 모양이었다.

“대체 너 같은 싸이코를 누가 데려갈까 걱정이다…….”

내 중얼거림에 그녀는 말없이 나를 걷어차 버렸다.

“안 그래도 요즘 너 때문에 심란한데 그딴 소리 하지 마.”

그날 나는 타국으로 이동하지 않고 유럽지역에서 하루를 머물렀다.

내가 이곳에 있는 것으로 해당 국가의 정부 측에서 접촉하려 했지만 나는 그런 요청을 깡그리 거절하고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는 호텔 침대에 누워 뉴스를 확인했다.

내가 일리나를 품에 안은 채 절경을 구경하고 있는 모습이 인터넷 여기저기 올라오는 일이 있었지만 내 시선을 잡아끄는 다른 일도 있었다.

신성에서 보유 중인 한 물자창고에서 대규모 폭발이 일어났다는 소식이었다.

창고가 있는 곳에 들이닥친 경찰들은 그곳에서 폭발에 휘말린 채 의식을 잃은 각성자들을 찾아냈고, 그들이 이 물자창고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약초를 사보타주하려다가 대폭발이 일어났다고 보고했다.

물론, 그 약초는 그 창고에 없었지만 누군가가 신성의 백신 공급을 좋지 않게 보고 방해하려 한다라는 사실을 널리 화끈하게 퍼뜨린 셈이었다.

이후 신성에서 활동하는 계약직 각성자들이 일제히 움직였고, 그들과 톰 발렌시의 연관 점을 빠르게 확보. 그를 순식간에 나락으로 처넣는걸 보는 데엔 사흘도 걸리지 않았다.

새삼 신성이 지구에서 가진 힘이 얼마나 강한지 볼 수 있는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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