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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483화 (1,483/1,559)

제 1483화

톰 발렌시가 이끌던 제약회사가 그를 버리는 데엔 많은 시간도 필요하지 않았다.

물론 그와 관련된 이들 모두 줄줄이 굴비 엮이듯 끌려나갔고 연일 뉴스에 보도된 탓에 제약회사 또한 엄청난 주가 하락과 이미지의 폭락 등 손해를 감수해야 했지만, 존속 자체는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회사는 내가 없으면 안 됩니다.”

“그런 거치고는 잘 돌아가던데 말입니다.”

어두 컴컴한 취조실.

나는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은 채 눈앞의 초췌한 인상의 사내에게 말했다.

“당신은 정말 잔인한 사람이군…… 당신 정도 되는 존재라면 나를 이렇게까지 짓밟지 않아도 상관없지 않았소.”

“웃기는 양반이네, 그럼 내가 당신이 휘두른 따귀에 맞았어야 한다고 말하는 건가?”

“…….”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뭔가 착각하는듯한데 창고를 습격한 놈들을 제압하고 당신을 엮어 넣은 건 내가 아니라 신성이야.”

애초에 나는 이번에 나선 전적이 없었다.

“무슨…….”

“신성의 각성자를 너무 우습게 본 거 아닌가?”

내 물음에 그는 끌끌 웃더니 다시금 물었다.

“나는 어찌 되오?”

“모를 일이지. 사형이 선고되든 징역을 살든 그건 여기서 관할할 일이지. 나는 그저 잠깐 이야기하러 왔을 뿐이야.”

서로 간에 예의는 사실상 더는 필요하지 않았다.

“그래…… 뭘 묻고 싶어서 찾아오셨나…….”

“별건 아니고. 이카로스 프로젝트라고 했나? 특정 국가들이 작당해서 재밌는 걸 만들었던데.”

“하. 당신도 그 연구자료를 넘기라 말하고 싶은 거요?”

그가 코웃음을 쳤다.

“그래. 많은 국가에서 최종 연구자료를 내게 요구했지. 하지만 나는 건네지 않았소. 왜일 거 같나.”

“뻔하지. 그게 당신 유일한 목숨줄이니까.”

“그래…… 내 비서라는 놈이 그걸 들고 배신할 줄 몰랐다만…….”

놀랍게도 그가 가장 믿었던 비서는 살아남기 위해 그 기밀자료의 일부를 신성으로 넘기고 자신의 구명을 요청했다.

“끌끌…… 신성의 그 공주님이 가차 없이 쳐낸 걸 보면 정말 만족스럽지만 말이야.”

물론 살기 위해 주변 모두를, 자신이 모시던 이까지 배신한 이를 현아가 그냥 둘리가 없지만 말이다.

“나는 궁금해서 여기 온 게 아니야. 보아하니 마나의 밀도를 이용해 인간에게 인공적인 각성 능력을 부여하려 했던 모양이던데.”

“허허. 당신도 그것을 보았나?”

“시신의 상태만 봐도 알아. 특정 장기가 완전 파열되었던데. 그건 전투의 흔적이 아니거든.”

“크흐흐흐. 세상에서 떠받드는 성자가 그걸 알다니. 당신도 그 실험을 했었나? 징그러운 자로군.”

“결론만 말하자면 나는 굳이 그런 실험을 할 필요가 없어. 다만, 어느 세상을 가던 당신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거든.”

담담하게 말한 내가 다시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의 실험이 성공하려면 중요한 요소가 하나 필요하지.”

“중요한 것?”

“그래. 각성자가 선택되는 조건.”

내 말에 그의 눈이 순간 번뜩였다. 이 와중에도 자신의 연구가 어떻게 해야 완성되는지 궁금했던 것일까.

그가 나를 본다며 물었다.

“그게 무엇이오.”

그 눈가에 서린 열망을 보며 나는 비웃음을 던졌다.

“한낮 일개 생명체 따위가 신의 기적을 분석하려 드는 것도 웃기네.”

“세상에 분석 못 할 것 따위는 없소.”

그의 말에 나는 빙그레 웃으며 팔을 테이블에 걸쳤다.

그리고는 말했다.

“그래. 그럼 곧 있을 것도 한번 분석해봐.”

“뭐라?”

“업이라는 게 있다. 당신이 실험을 자행하기 위해 사용한 실험체들은 금기를 범한 것과 비슷한 존재가 되었어. 정말로 금기를 넘어설 뻔했지만, 그전에 박살 난 걸 다행이라 생각해.”

“…….”

“물론, 그렇다고 지금까지 벌어진 일이 아무런 대가 없이 끝날 거라 생각지 마라.”

지구의 사람들은 신의 존재를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 신들은 악인을 왜 단죄하지 않는가.

그 의문이 들것이다.

물론, 실제로 일부는 신벌을 받아 그대로 대가를 치르기도 하지만 죄를 저지르고도 살아있는 이는 분명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이 대부분이다.

“신이 당장 단죄하지 않는다 해서 아무 문제 없는 게 아니라는 거지. 솔직히 말하지. 당신은 곧 사형을 당할 거야. 그렇게 죽고 나면 육신을 떠난 당신의 혼은 영혼의 강으로 회수당하고 그 업을 청산하겠지.”

내 말에 그의 눈동자가 떨린다.

“후회해도 늦었고, 그 어떤 경우를 생각해도 당신의 상상 이상의 지옥이 당신을 기다릴 거다.”

“그런 오컬트적인 걸 말하러 왔소?”

“오컬트? 미안한데 이건 곧 있을 일이야. 사람이 돌부리에 걸리면 넘어지는 것처럼 말이야. 내가 여길 찾아온 건 당신이 겪을 일을 미리 말해주는 것뿐이고. 믿기 싫겠지만…… 영혼의 강은 나도 간섭이 가능하거든.”

빙그레 웃으며 그의 몸을 향해 손을 뻗었다.

간단한 환각 마법이지만 그가 겪을 일을 일부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했다.

영혼의 강에서 이루어지는 업의 청산은 나로서도 그리 달갑지 않다.

그것도 약한 것은 아니지만 더 강한 것을 필요로 할 때도 있으니까.

하지만 비화의 연옥은 달랐다. 그곳은 악업을 강제로 중화시키는 곳이니 말이다.

죽음은 하나의 도피일 뿐이다라고 말했던가.

그 마음은 변함없지만, 조율과 여신의 명에 의해 연옥을 만들어낸 비화 덕분에 죽음 안에서도 이런 특이 케이스가 나타나는 건 신기한 일이다.

닉스나 가르강티아가 떨어졌던 연옥 구역과는 조금 다르게 대부분의 악혼이 떨어지는 장소지만 연옥이 괜히 연옥은 아닐 터.

두근!!!

동시에 거대한 심장박동 소리와 함께 그의 눈이 부릅 뜨여지더니 숨이 미친 듯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으…… 으으으…….”

“잠깐 보여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알았을 거다.”

“자…… 잠깐!! 이…… 이런 건 듣도 보도 못했소! 해결책…… 해결책을 주시오! 뭐든 드리겠소!!”

창백하게 질린 얼굴 초점을 잡지 못하는 눈동자가 미친 듯이 떨린다.

“제발…… 제발! 그곳을 벗어나는 방법을 주시오!”

“방법…… 줄 수 있지.”

담담하게 말한 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신이 저지른 업을 모두 청산하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그만큼 많은 이들을 지키고 구하면 돼. 보통 당신 같은 인간들은 그러지 않기 때문에 의미 없는 구제방법이지.”

페르세르크처럼.

하지만.

“하지만 당신에겐 그런 기회가 없네?”

제대로 뉘우치고 참회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업의 청산에 도움이 되긴 하지만 정확히는 그가 쌓은 악업을 선업으로 중화시키는 게 중요했다.

“곧 죽을 테니.”

내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연옥에 떨어지는 이는 사실상 극소수나 다름없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든 적 없나?”

“무슨?”

“악인들이 생각보다 오래 버티지 못하는 이유.”

마약 조직이 이유 모를 것으로 붕괴하고 테러단체가 와해된다.

그게 단순히 재수 없어서가 아니었다.

“악행을 쌓을수록 신의 미움을 받게 돼. 당신들이 주로 하는 말 있잖아. 신의 가호가 있기를.”

그게 그냥 나오는 말은 아니라는 거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적당히 착하고 상식적이게 살아. 남을 짓밟고 영혼을 유린하는 건 시대를 불문하고, 차원을 불문하고 죄악이니까.”

나는 내 할 말을 끝내고 돌아섰다.

그으으아아아아아!!

뒤에서 환각을 통해 비화의 연옥을 보았던 그가 괴성을 내지르며 제발 살려달라 소리 질렀지만 나는 돌아서지 않고 취조실을 나섰다.

* * *

톰 발렌시를 떠나 취조실을 나온 나는 담담하게 서서 나를 기다리던 미국의 슈퍼히어로라 불리는 존재. 크리스 마텐을 발견했다.

“여기서 뭐 합니까?”

“미스터 데이비. 당신을 만나러 왔습니다.”

“아 귀화 안 해요.”

“하하. 나는 그런 거 요구 안 합니다. 중요한 이야기가 있는데. 잠깐 자리 좀…….”

그가 어색하게 웃으며 손짓했고 나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미스터 데이비? 혹시 신성 본부로 공간이동 됩니까?”

“안 그래도 돌아가려던 참이었는데. 혹시 돌아갈 셔틀 찾고 있었습니까?”

“아하하하하!”

유쾌하게 웃어 보인 그가 시선을 보낸다.

“눈치가 빠르시네.”

“어휴.”

가볍게 손을 휘저어 공간을 장악하고 확보한다.

그 후 순간적으로 공간을 접어 비틀어 뛰어넘었다.

“세상에. 몇 번을 겪어봐도 신기하군…….”

워프 마법이 새삼 신기한지 그는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둘러보다 주변을 보았다.

신성의 본사가 있는 곳. 그리고 크리스 마텐이 간간이 들르는 곳이기도 했다.

미국의 슈퍼히어로라곤 하지만 그는 신성과 계약 중이었고 어째서인지 그 계약을 쭉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 이유야 뻔하지만 말이다.

“실은 창고에 침입한 놈들을 잡는 임무에 나도 파견되었습니다…… 물론, 우리 프린세스가 날려버린 창고 속에서 살아나온 놈들을 때려눕힌 게 전부지만.”

그의 유쾌한 대답에 나는 쓰게 웃었다.

“말해봐요, 무슨 일인데요.”

“실은 말입니다. 미스터 데이비.”

그가 사뭇 심각한 얼굴로 주변을 살피더니 조용히 말했다.

“프린세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가 프린세스라고 부르는 존재는 세발낙지 현아의 이야기일 터.

미우나 고우나 일단은 동생이었기에 나도 표정이 굳었다.

“말씀하세요.”

“실은 말입니다…… 미스터 데이비. 내가 최근까지 신성과 계약 중인 이유를 압니까?”

실제로 미국 최고의 히어로이자 각성자라 불리는 그였지만 그는 국가와 계약하고 받을 수 있는 특수한 특권까지 버려가며 신성과 계약을 유지했다.

단순히 인의 때문이라고 하기보다는 다른 이유도 있으리라.

“글쎄요. 크리스도 생각하는 바가 있겠죠.”

내 말에 그가 우물쭈물하더니 조심스레 말했다.

“요란스러울 것도 없습니다. 나는 처음부터 국가와 계약할 생각이 없어요.”

국가와의 계약을 퇴짜 놓는데도 국가가 최고의 각성자라고 칭송해줄 정도로 실력 있는 양반이다.

그런 양반이 이런 생각을 품고 있는걸 보면 미국 상부에선 무슨 생각을 할까.

“신성에 그만한 정을 가지고 있습니까?”

내 물음에 그가 고개를 저었다.

“노노. 신성도 중요하긴 합니다만……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닙니다.”

“그럼요. 설마…… 아까 프린세스니 뭐니 하더니…… 현아와 관련된 이야기입니까?”

“그녀는 내게 구원이니까요.”

그가 말했다.

“병으로 죽어가던 나를 살려냈고, 마음이 무너지고 있던 나를 도와준 건 전문가도 아닌 저 어린 여성입니다.”

어리다곤 하지만 혼령기가 꽉 찬 여자일 뿐이지만.

이후 크리스는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가 병에 걸렸을 때. 그 사실을 공표하진 않았지만, 그의 주변을 지키던 이들이 그를 매몰차게 떠났다고 한다.

그의 힘과 위세에 몰려있던 이들이 그를 버린 셈이다.

친구라 믿었고 연인이라 믿었던 이들이 떠나가고 망가져 가던 그였기에 신성에서도 더는 그를 전력으로 쓰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버리려 할 것이다.

이미 수차례 배신을 당한 크리스였기에 신성도 국가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국가에서 난색을 표한 것과 달리 신성에서는, 아니 현아는 달랐다.

“조용히 하고 치료부터 받으세요. 나는 내 사람아 아프다고 해서 버리지 않아요.”

아마 현아가 그리 말한 건 신성과 계약 중인 각성자이기에 한 말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아마 오래전 내가 죽음으로써 받은 마음의 상처 때문일 터다.

아파서 고통받는 이를 함부로 내버리지 못하는.

기업을 이끄는 이로써는 약점이나 다름없는 인정이 그의 마음을 잡았다.

“그녀는 내게 구원입니다. 나는 국가와 신성. 그리고 그녀를 놓고 보면 그녀를 선택할 겁니다.”

처음 그를 봤을 땐 현아와 티격태격하며 거래 관계로 만나는 줄 알았던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생각해보면 그가 유별나게 현아에게 호의적이었던 것 같기도 했다.

“짐승도 은혜를 압니다. 나는 그녀에게 평생 은혜를 갚고자 합니다.”

“본심을 말하세요.”

“잡아서 약지에 반지 끼우고 키스하고 싶습니다. 체력 하나는 자신 있으니 날마다 천국으로 보내버릴…… 으아아아아악!!!”

뻔뻔한 인간.

내가 한 손으로 그의 얼굴을 붙잡아 압박하자 그가 비명을 지르며 버둥거렸다.

주변의 본사 소속 각성자들은 크리스와 내 모습을 보며 조금 놀란 듯했지만 이내 늘 있는 일이라는 듯 슬쩍슬쩍 지나가 버린다.

코오나는 멀리서 뭔가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미안합니다. 숨길 생각이 없어서 말입니다.”

“후우, 그래서요.”

“다만 그녀는 마음의 여유가 없는 건지 내 구애를 모른 체합니다.”

그게 정말로 바빠서일까.

내가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도와달라?”

“에스 썰!”

과장되게 경례를 취하며 그가 말해왔다.

현아를 단신으로 공격하기 힘드니 내 도움을 받겠다는 것이다.

지금 그는 전이라곤 하지만 그녀의 오빠였던 내게 동생을 꼬셔서 보쌈하고 손가락에 반지 끼워서 데려가 버리겠다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내 주변의 공기가 심상찮게 요동친다.

그그그그그그…….

파르르 떨리는 주변을 보며 그가 의아한 얼굴로 나를 본다.

“그녀를 행복하게 해줄 겁니다. 나는 그녀를 사랑합니다.”

그의 말에 내 주변의 공기가 더욱 크게 떨렸다.

그제야 크리스도 내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는지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미스터 데이비? 왜 그러는…… 홀리 쉣…….”

유형화된 공기가 비틀리는 것까지 보고 나서야 자신의 목숨이 극도로 위험해졌음을 깨달은 어리석은 존재였다.

그가 한발 두발 물러날 때마다 나 또한 한발 두발 내디뎠다.

그리고.

그가 도망치지 못하게 팔을 콱 잡았다.

“컥! 미스터 데이비! 그만!”

“잘 생각했습니다.”

일순간 무거운 공기가 흩어진다.

“예?”

“그 꼴통 좀 빨리 데려가세요. 어휴.”

반면 다른 생각도 든다.

어쩌다가 현아에게 빠져서…… 아니지 현아 같은 세발낙지에게 물려버린 그를 동정해야 하는 것일까. 그가 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것일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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