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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486화 (1,486/1,559)

제 1486화

“후…….”

저 속 편하게 보조석에서 늘어져 자는 크리스를 보고 있자니 속이 싱숭생숭해진다.

현아는 얄미운 꼬마를 보듯 크리스를 째려보았다.

뭐가 미국의 슈퍼 히어로인가.

뭐가 국가 최고의 각성자인가.

그가 S급으로써 각성자 중엔 최상위 실력을 지닌 건 사실이지만 현아의 입장에서 또X이도 이런 상 또X이가 없었다.

지금도 신이 나서 깐족거리더니 10분도 채 되지 않아 곯아떨어지지 않았던가.

크리스가 현아를 믿기에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겠지만 미숙한 현아는 그런 걸 눈치채지 못했다.

“미친 새끼…….”

잠들어있는 그를 보고 있자니 그가 기습적으로 맞췄던 키스가 떠올랐고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아 진짜!”

고개를 세차게 돌리며 애써 잊어보려 한다.

“잊자…… 잊어. 수차례 고개를 강하게 흔들며 상념을 털어낸 그녀였다.

“아씨. 왜 신호등은 자꾸 걸리고 난리야…….”

애꿎은 신호등에 시비를 걸며 그녀는 당장이라도 신호가 바뀌면 튀어나갈 것처럼 으르렁거렸다.

운전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뭔가 굉장히 중독되는 기분인데…….’

자신도 모르게 잠들어있는 크리스의 얼굴을 보던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손을 뻗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빵빵!!!

경적 소리에 화들짝 놀라지만 않았다면 자신도 모르게 손을 대지 않았을까.

신호는 이미 바뀌어있었다.

“미쳤지…… 미쳤어, 내가 지금 정신이 나간 게 틀림없어, 신현아 정신 차려!”

자신의 뺨을 착착! 소리 나게 때린 그녀는 이내 이 모든 원흉이 크리스임을 깨닫고 성질을 부리듯 가속했다.

“드르렁…… 푸우, 으억! 무…… 무슨 일이야!”

게슴츠레 뜬 눈으로 어리바리를 타는 그녀를 한 대 걷어차고 싶은 현아였다.

* * *

“일은 다 끝난 건가?”

“원래 다른 곳도 들려야 하는데. 이미 삼촌이 사람을 보내서 다 정리했다고 하네요.”

아싸 퇴근~ 거리며 신나 하는 현아의 모습에 크리스는 낄낄 웃으며 그녀의 팔을 잡았다.

“어딜 가.”

“어디 가긴요. 집에 가야지. 이런 날이 흔한 줄 알았나.”

“나는 어쩌고?”

“본사까진 데려다줄 테니 퇴근해요.”

현아의 말에 크리스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이렇게 나올 거야?”

“아니 또 왜.”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간다고? 데이트는.”

“데이트는 무슨.”

현아가 코웃음 치며 돌아가려 하자 크리스는 더는 못 참겠다며 소리를 내질렀다.

“아! 저거!”

“응?”

갑작스러운 그의 태도에 놀라 고개를 돌린 현아는 크리스가 엄청난 속도로 접근하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꺅! 뭐 하는 거야, 이 미친 새끼야!!”

“기왕 왔으면 놀아야지!”

현아를 어깨에 둘러멘 뒤 그가 소리쳤다.

“죄송한데 자유 이용권 두 장 빌릴게요!”

그리고는 미리 준비되어있던 자유 이용권 팔찌를 두 개 챙긴 뒤 빠르게 튀어나갔다.

현아의 입장에선 부끄러워서 미칠 지경이었지만 크리스는 뭐가 그리 신나는지 낄낄 웃으며 그녀를 데리고 나가버렸다.

크리스가 현아를 내려놓은 곳은 다름 아닌 알프랜드의 입구였다.

현아를 둘러멘 채 나타난 탓에 수많은 시선이 몰려들었지만, 크리스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괜한 시선을 피하고자 데이비에게서 빌려둔 인식저해 아티펙트를 두 개나 챙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쳤어?!”

크리스가 내려주기가 무섭게 주먹과 발로 미친 듯이 크리스를 때려대는 그녀였지만 괜히 미국 출신 최고의 각성자가 아니었다.

“아야야…….”

때리고 오히려 본인이 더 아파하는 그녀였다.

“자자, 화내지 말고, 이런 기회도 잘 없잖아. 우선 이거 받고.

크리스는 현아에게 자유 이용권 팔찌를 걸어준 뒤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

“어차피 퇴근이잖아. 오늘은 나한테 투자 좀 하는 게 어때.”

“…….”

뾰로통한 표정으로 크리스를 노려보지만, 그의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후우…… 알았어요. 알았어. 가자. 신나게 놀던지. 하루 정도야. 그래서? 어떻게 놀 건데요.”

“어쩌긴. 놀이공원에 왔으면 기구 타고 놀아야지. 우선 워밍업부터 가볍게 해보자고.”

결국, 포기해버린 그녀는 크리스의 주도 아래에 그를 따라 걸어 들어갔다.

물론 그러면서도 화를 내는 건 잊지 않았다.

“한 번만 더 사람 많은 데서 짐짝마냥 둘러메고 돌아다니면 진짜 죽여버릴 거야.”

“하하 알았어. 조심할게. 그보다 뭐부터 타볼까. 공주님. 혹시 무서워서 못 타는 거 있어?”

“없거든?”

“그럼 우선…… 저것부터 조져볼까?”

그가 가리킨 것은 다름 아닌 알프랜드에서 가장 유명한 스릴을 자랑하는 급강하 롤러코스터였다.

“어…….”

동시에 현아의 얼굴이 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이는 크리스가 노린 바였다.

그도 그럴 게 현아가 가지고 있던 팸플릿에서 유성 매직으로 강하게 엑스자를 쳐둔 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그런 체크를 해둔 이유는 뻔할 것이다.

무서우니까.

어지간한 스릴은 적당히 즐기지만, 그녀가 탈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것 또한 분명 존재했다.

“저…… 크리스? 시작부터 그런 거 타지 말고 저거나 타지?”

현아가 우물쭈물하다가 적당한 스릴을 즐길 수 있는 바이킹을 가리켰다.

“아니지 지옥 급강하 롤코지. 여기 올 일이 거의 없어서 꼭 타고 싶었거든.”

이대로라면 그대로 끌려갈 것 같은 불안함에 현아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그러던 중 길게 이어진 대기 줄이 눈에 띄었고 그녀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소리쳤다.

“하, 하! 수, 순서를 그렇게 마구잡이로 잡으면 안 되지! 잘 보라고 저기 줄 서 있는 거 안 보여?! 지금 시간대엔 이걸 타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야. 그러니까 마지막에 타는 거로 하자고.”

시간을 벌면 어떻게든 탈출할 방법이 보이는 만큼 현아는 필사적으로 그의 마음을 돌리려 했다.

하지만.

크리스는 현아에 대해 참 잘 아는 인물이었다.

“쫄?”

“이 망할. 타! 타자고 이 xx끼야!”

눈이 뒤집힌 그녀가 후회하는 데엔 많은 시간도 필요하지 않았다.

바짝 얼어붙은 얼굴로 롤러코스터에 올라탄 그녀는 바로 옆자리에 앉아 신이 난 듯 킥킥거리는 크리스에게 말했다.

“저…… 저기 크리스.”

“응?”

“나 속이 안 좋은 거 같아요. 일단 내리고…….”

“무서운가 봐?”

“아…… 아니거든?! 그냥 속이 안 좋…… 꺅!”

안전바가 내려오는 걸 보며 그녀의 표정이 파랗다 못해 하얗게 질렸다.

-기구, 출발합니다.

덜컹!!

이윽고 묵직한 소리와 함께 전신에 가해지는 듯한 부유감.

현아의 얼굴에서 핏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인간이란 시각적인 효과로 공포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

천천히 레일을 타고 올라가는 롤러코스터를 보며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손을 바들바들 떨었다.

그때 그녀의 손을 잡아주는 온기가 느껴진다.

“어?”

“많이 무서우면 지금이라도 멈춰줄 수 있어.”

“우…… 웃기는 소리 하네? 내, 내가 언제 무섭다고.”

덜컹!!!

“꺅!”

최고점까지 올라간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이윽고 소리가 멈춘듯하더니 이내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녀는 그대로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얼어붙어 버렸다.

반면 크리스는 신이 난 듯 환호성을 지르며 즐길 뿐이었다.

이런 인간을 대체 어딜 보고 좋아해야 하는 건데.

현아는 속에서 천불이 일었다.

* * *

1초가 지옥 같은 시간이 끝나고 끝나버린 현아는 식은땀으로 절어버린 몸을 억지로 일으키며 어색하게 웃었다.

“벼, 별거 아니네!”

“한 번 더 탈까?”

“한번 탔으면 다른 걸 타야지 이 인간아.”

차마 무서워서 다시 못 타겠다고, 어떻게 인간이 이럴 수 있느냐고 화를 내지도 못하는 그녀였다.

“솔직히 무서우면서 센척하기는.”

“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

“미안. 이 정도로 무서워할 줄 몰랐네. 그럼 우리 이제 저거 탈까? 우리 공주님 무서워하는 게 많지만 저건 괜찮지?”

그녀가 한쪽에서 음악과 함께 돌아가고 있는 회전목마를 가리키자 그녀는 분한 마음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됐어 이 개자식아! 따라오기나 해!”

당하고는 못 배긴다.

그녀는 크리스가 이곳에서 절대 하지 않을법한 것을 빠르게 궁리한 뒤 움직였다.

하지만 평소 행동이 극한 스릴이나 다름없는 움직임을 보이는 크리스에게 어지간한 어트랙션은 사실상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죽어!! 죽어 이 새끼야!”

쾅!! 쾅!!

“아하하하하하! 실력이 제법이네! 그럼 나도 간다!!”

범퍼카에서 죽도록 서로를 노리며 처박아댔고.

“앗싸 득점!!”

“제법인데? 그럼 피지컬 좀 선보여볼까?”

“꺅! 이 사기꾼 새끼야!”

“아하하하! 공주님. 공주님을 지키려면 이 정도는 할 수 있어야지 안 그래?”

“조…… 조용히 안 해?! 누…… 누가 보면 남자친구라도 되는 줄 알겠네!”

“언젠가 될 거니까 괜찮지 않나?”

“누구 마음대로!”

오락기기가 가득한 곳에서 서로 대전형 게임을 한참 동안 즐기기도 했다.

“푸훕…… 아하하하하!”

“홀리 쉣…… 분홍색이라니 견딜 수가 없구만!!”

분홍빛이 가득한 액세서리들을 강제로 착용하게 만들기도 했다.

물론, 그 대가로 현아 또한 자신이 전혀 원하지 않던 귀여운 액세서리들을 잔뜩 몸에 채워야 했다.

가히 상처만 남는 전쟁이었다.

한참 동안 크리스가 싫어할 만한 것을 찾기 위해 갖은 수단을 쓴 그녀였지만 생각보다 크리스의 방어는 견고했다.

퍼레이드. 연극. 지루하기 그지없는 어드밴처까지.

하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얻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그 순간.

현아의 시야에 어떤 것이 비쳤다.

“크리스. 따라와.”

“응? 공주님. 이제 포기한 거 아니었어? 우리 즐기자고. 이렇게 서로 물어뜯는 건 좋지 않아.”

“웃기고 있네. 따라오기나 해.”

“아하하. 그래 뭐 나는 재밌으니까. 그래도 꽤 즐겁지 않아? 일 같은 거 다 내버려 두고 이렇게 사적으로 같이 노는 것도 좋지?”

“나, 나쁘진 않네. 헛소리 말고 따라와!”

그녀가 그를 끌고 간 곳은 다름 아닌 귀신의 집 어트랙션이었다.

물론, 기괴하게 생긴 괴물들과 싸우는 크리스에게 이런 게 효과를 줄 수 있을 리 만무하다고 생각은 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지금의 데이트에 녹아들어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어…… 음. 저기 미안한데 이건 안 하면 안 될까?”

외진 구역에 있는 거대한 스릴러 어트랙션을 보며 크리스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웃기고 있네. 언데드하고도 싸워서 이기는 인간이 뭐가 무섭다고.”

“저…… 괴물은 문제가 안 되는데…… 내가 저건 진짜 약하거든? 정말 아무것도 못 하는 건 아닌데 심리적으로 엄청 피곤한…….”

“쫄았어?”

“웟…… 드루 와. 덤벼.”

크리스가 뭘 보고 약하다고 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물론, 두 사람은 생각보다 비슷한 점이 많았다.

안 들어가려고 버티는 크리스를 끌고 들어가려 하지만 자리를 잡고 버티는 크리스를 보며 현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세발낙지한테 이른다?”

“쉣…….”

그녀가 늘 말하는 세발낙지가 데이비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크리스는 죽을상을 쓰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귀신의 집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이번 컨셉은 심해 공포증이라네. 진짜 물이 아니고 환각이라니까. 쭉쭉 내려가다가 정말 안 되겠다 싶으면 탈출장치를 써서 나오면 되기도 하고.”

내용 자체는 간단했다. 건물 안에는 마치 블루홀처럼 생긴 거대한 바다 웅덩이가 존재하는데 그 내부로 들어가는 것이다.

물론 물처럼 보여도 저기 들어가는 순간 환각에 빠지기에 진짜 물에 들어가는 건 아니지만 놀라울 정도로 심해를 잘 구현해놓은 꼴이라 여러 곳에서 극찬을 받기도 했다.

정확히는…… 데이비의 작품이었다.

평소의 능글거리는 미소는 집어치운 채 창백해진 얼굴로 새까만 웅덩이를 보며 크리스가 한발 두발 물러났다.

“저기…… 진짜 미안한데 내가 지금 배가 너무 고파. 우리 밥이나 먹으러 나갈까?”

“그러네! 배도 고프긴 하네.”

“그렇지? 그럼 지금이라도 나갈…….”

“크리스.”

현아가 뒷짐을 진 채 물가로 다가가며 돌아섰다.

행복해 보이는 미소였다.

다만 저게 단순히 행복해 보이는 미소라고 착각하기엔 그녀가 내뿜는 음산한 기운은 크리스를 절망으로 빠뜨렸다.

“개수작 부리지 말고 들어와.”

그리고는 크리스의 손을 꽉 잡은 뒤 그대로 물속으로 뛰어내려 버렸다.

풍덩!!!!

마치 물속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이다.

수면에 가까울 땐 빛이 아직 들어온다.

하지만 저 아래엔 바닥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

“망할…….”

환각에 빠져들며 그의 몸을 감싼 잠수복이 보인다. 현아도 이곳에 올 때 입고 있던 오피스룩이 아닌 새까만 잠수부의 장비를 입고 있었다.

-산소는 걱정 마. 어차피 환각이라 숨 쉬는 건 문제없어. 정 무서워서 안 되겠으면 여기 팔찌에 이스케이프를 누르면 된다는데……. 설마 나 여기 버리고 가는 건 아니겠지?

무전기에서 들려오는 듯한 목소리와 함께 현아는 겁도 없는지 몸을 아래로 움직인 뒤 심해 저편으로 빠르게 내려갔다.

심해가 두려운 이유는 무엇인가.

압도적인 수압? 어두컴컴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

틀린 말은 아니지만, 미지의 공포를 자극하는 무언가가 가장 큰 요소일 것이다.

문제는 아무리 환각이라도 이토록 실감 나는 환각이라는 사실이다.

당연 어트랙션의 컨셉에 맞게 제작 당시 미지의 공포를 상당히 많이 넣어두었다.

-여기 기록이 400m라고 해. 그 이상 내려간 사람이 없다는데.

단순한 깊이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려갈수록 알 수 없는 생명체의 기척이 강하게 느껴진다.

크리스는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느껴지는 이 오싹한 기분에 몸을 부르르 떨어야 했다.

감각이 예민할수록 더 두려움을 자극한다.

스르륵…….

그때 크리스의 다리에 무언가 거대한 게 스치듯 지나간다.

보이는 것이라곤 밝은 램프를 켜고 내려가고 있는 현아만이 보이기에 주변의 다른 것들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언제 여기까지 내려온 거지.

기록을 보니 정신없이 현아를 따라오다 보니 200m를 넘은 시점이었다.

크리스의 전신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심해 공포증.

극심한 수준까진 아니지만, 상당히 거부감을 드러내는 크리스에게 이건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이스케이프를 눌러서 탈출하자니 현아를 홀로 둘 수 없다는 생각도 강하게 들었다.

-이봐 공주님! 정말 미안한데 멈추자! 나 진짜 안 되겠다!

-뭐? 얼마나 내려왔다고 그래. 나는 이거 진짜 해보고 싶었단 말이야.

-미안…… 마음 같아선 당장 도망치고 싶은데 공주님을 혼자 둘 순 없잖아. 안 그래? 그러니까…… 어. 음. 내가 졌어. 그러니까 나가자.

그 말에 현아는 아쉬운 듯 거품을 부르르 냈다.

-별것도 아닌 게 까불고 있어. 다음부터 덤비지 마. 알았어?

현아가 예쁜 미소를 지으며 브이 자를 만들자 크리스는 쓰게 웃어 보였다.

-자 그럼 여기 이스케이프가…… 어?

그때였다.

현아의 눈이 동그랗게 뜨여졌다.

-크리스.

-응? 오, 제발 문제없다고 해줘.

-미안한데…… 버튼이 비활성화돼있는데?

환각에 문제가 생겼다.

크리스의 얼굴이 하얗기 질렸고 덩달아 현아의 표정도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본래 활성화되어있어야 할 버튼이 활성화되지 않았다는 건 중도 포기가 안 되고 완주를 해야 한다는 소리다.

하지만 어지간한 인간은 절대 완주가 불가능한 어트랙션이며 완주 기록이 단 한 명. 데이비를 제외하고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건 사실상 중간에 포기해야 하는 어트랙션이기도 했다.

실제로 관리하는 아르바이트생이 명심하라며 말했던 것이기도 했다.

-오…… 지져스 퍼킹……. 제발.

크리스의 죽어가는 목소리에 현아도 주변을 둘러보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어…… 이러면 나가리인데……. 나도 많이는 못 들어가는데…….

다만 크리스 이상으로 현아도 상당히 패닉이 온 듯 보였다.

구르르륵!!!

동시에 심해 바닥 쪽에서 모종의 힘이 두 사람을 빠르게 당기기 시작한다.

-꺄아아악!!

이에 현아가 비명을 지르며 빨려 들어가자 크리스는 반사적으로 몸을 아래쪽으로 향했다.

-기다려!!!

방금 현아가 보였던 겁에 질린 표정을 본 크리스는 자신도 모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빌어먹을 어트랙션! 당장 부숴버리든지 해야지!

어디서 이런 용기가 나온 것일까.

그는 주변에서 시시각각 느껴지는 섬뜩한 기척을 느끼면서도 미친 듯이 헤엄쳐서 빨려 들어가는 현아에게 닿았다.

그리고는 와들와들 떠는 그녀를 그대로 끌어안은 뒤 그녀의 팔을 바라보았다.

불이 꺼져있던 탈출 버튼이 보인다.

“망할! 망할!”

현아도 크리스도 장비가 말을 듣지 않는 상황.

그 어둠 속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스치듯 지나간다.

동시에 현아는 바짝 얼어붙어 버렸고 크리스는 심도계를 보며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심해…… 2000m…… 대체 언제 여기까지…….

기록이 400여 미터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건 버그가 분명했다.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다. 단순한 어트랙션의 공포 유발 정도가 심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크리스는 어떻게든 패닉에 빠진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괜찮아! 내가 있어! 두려울 건 없어!

심해 공포증에 S급 히어로라 불리던 그도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았지만 현아의 패닉을 보자마자 그는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래도 둘이니 버티는 정도였다.

혼자였으면 이걸 버틸 수나 있을까.

대체 그 또X이같은 티오니스 성자. 하인스의 대공은 어떻게 이걸 끝까지 갈 생각을 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제작자이니 뭐가 있는지 알기 때문일까.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실감 나서 알아도 두렵게만 느껴진다.

삑!!

그때였다.

크리스의 손목에 채워져 있던 탈출장치에 빛이 들어왔다.

현아의 장치는 빛이 아직 나지 않는다.

창백하게 질려있던 크리스는 이내 현아의 상태를 확인했다.

상황이 심상찮게 돌아가면서 겁에 질린 그녀가 어쩔 줄 몰라 하는그 순간. 그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팔찌를 풀어 그녀의 손목에 채웠다.

그리고 그녀의 팔찌를 빼내서 그대로 자신의 손목에 채웠다.

-크리스?!

-먼저 나가. 난 버틸 수 있으니까.

-무슨 헛소리를!?

당황한 현아가 소리친 그 순간 크리스는 파랗게 질린 얼굴로 그대로 현아의 손목에 장착한 탈출 버튼을 눌러버렸다.

스팡!!

동시에 현아의 신형이 사라져버렸고 크리스는 홀로 남겨졌다.

끔찍한 두려움이 느껴진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게 있다고? 이 정도로 무시무시한 환각이면 사람 하나를 완전히 망가뜨리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그리 생각하며 크리스가 몸을 웅크렸다.

홀로 남겨진 새까만 심해는 가히 두려움의 극치였다.

-그으으으으…….

이윽고 그의 귓가에 섬뜩한 울음소리까지 들려오자 그의 몸에 힘이 풀렸다.

그때였다.

차가운 수온의 감촉. 섬뜩한 기류. 기이한 소리.

모든 것이 멈춘다.

동시에 주변의 풍경이 완전히 변하더니 환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린 그가 고개를 돌리기가 무섭게 하얗게 질린 얼굴로 현아가 그의 품에 안겨들었다.

“괜찮아…… 괜찮아요. 이제 괜찮아.”

“아…….”

그가 멍하니 침음성을 내뱉었다.

아무래도 먼저 나간 현아가 그를 빼낸 모양이었다.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되긴. 심리적으로 일정이상 두려움을 느끼면 강제로 쫓겨나게 돼 있는 모양이에요. 당신은 임계점을 넘어서 강제 로그아웃된 거고.”

“그럼…….”

“세발낙지 이 미친 새끼가 내가 올 때 이런 일이 벌어지도록 수작을 부려놨던 거 같아요.”

현아의 말에 크리스는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다.

현아가 매번 세발낙지 세발낙지 하더니 이번만큼은 그도 맹렬하게 공감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지저스 홀리 크레이지 맨…….”

수차례 또X이같은 인간이라며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번엔 좀…… 멋있었기도 하고…….”

그때 현아가 빨개진 얼굴로 중얼거리자 조금 전의 두려움이 마치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어? 다시 말해봐. 뭐라고?”

“아…… 아무 말도 안 했거든?!”

“아…… 그러고 보니…….”

그러고 보니 현아는 현재 그를 꽉 끌어안고 있었다.

현아도 그것을 눈치챘는지 재빨리 물러나려 했지만 그걸 지켜볼 크리스가 아니었다.

“꺅?! 이…… 이거 놔!”

“댓츠 노노. 절대 안 되지.”

그는 그대로 그녀를 품에 꽉 끌어안은 채 말했다.

“그는 신이야!”

조금 전까지 데이비를 향해 미친놈이라 말하던 크리스는 순식간에 태세를 변환해 데이비를 칭송했다.

단 한방에 현아의 마음을 크게 흔들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실제로 그의 품에 안겨있던 현아는 심해 속에서 그가 보여줬던 모습 때문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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