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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487화 (1,487/1,559)

제 1487화

“아으. 달달해라.”

사람이 없는 고요한 카페.

기분이 좋은 듯 한껏 해맑게 웃던 현아는 조금 전까지 크리스와 한바탕 싸운 것도 잊은 채 디저트 삼매경에 빠졌다.

지금 그녀가 먹고 있는 건 사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디저트류이기도 했다.

“평생 이런 것만 먹고 싶다…….”

물론, 자기 관리를 위해선 절대 해선 안 될 짓이기도 하지만 사람의 욕심이라는 게 으레 그런 법이었다.

“재밌냐?”

“…….”

물론 그 행복한 미소는 크리스가 잠시 자리를 비우자마자 차지한 한 청년 때문에 뭉개졌다.

“여긴 뭐하러 왔어.”

“뭐하러 오긴. 네가 성질 못 이겨서 그 양반 쥐어팼을까 봐 확인하러 왔지. 보아하니 별문제는 없어 보이는데.”

“…….”

뚱한 얼굴로 노려보던 그녀는 문득 생각난 듯 데이비를 향해 소리쳤다.

“야 이 개자식아. 너 대체 심해 체험 어트랙션에 무슨 짓을 해놓은 거야!!”

그녀가 화를 내는 건 나름대로 정당한 이유가 존재했다.

하지만. 데이비는 당황한 기색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진짜 심각하게 공황 오는 사람 있으면 어쩌려고!”

“그래서 팔찌 만들어놨잖아.”

“그럼 나는!”

그녀의 외침에 데이비는 귀를 후비적거리더니 피식 웃었다.

“덕분에 사이는 가까워졌지?”

“지랄도 병이다 딱 대!”

그녀가 손에 쥐고 있던 포크로 찍어버릴 것처럼 덤벼들었다.

“죽어. 죽어 이 새끼야 그냥!”

울분이 차올랐는지 그대로 데이비에게 덤벼들어 보지만 데이비는 낄낄거리며 순식간에 사라지듯 그 자리를 벗어날 뿐이었다.

“이…… 이거 완전 미친놈 아냐?! 잘못해서 사람 폐인 되면 어쩌려고 그랬어!”

주변에 보는 이가 없다고 그녀는 아주 망설임 없이 욕설을 토해냈다.

“설마, 내가 정말로 인간을 극한까지 몰아붙였으려고.”

데이비는 옷을 툭툭 털어냈다.

“안전장치 다 되어있었으니까 걱정하지 마. 아무리 미워도 내가 널 해치겠냐.”

“어 그럴 거 같은데.”

“하여튼 정신머리하고는, 단순한 착각이야. 지금 생각해 봐. 후유증 있어?”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 있어?”

“있지.”

데이비가 담담하게 말했다.

“미우나 고우나 일단 내 동생인데. 엄한 놈이 채가게 둘 거 같아?”

그 말에 현아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적어도 네 인생의 동반자잖아. 결정은 네가 하는 거지만 나도 봐야겠더라.”

데이비는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네. 난 그와 사귈 마음이 없…….”

“심장 소리부터 죽이고 말해라. 넌 옛날부터 쓸데없는 데에 고집을 부리더라.”

데이비는 관심 없다는 듯 일어났다.

“이제 확인할 건 다했으니 내가 간섭할 일은 없을 거다. 알아서 결정해. 다만 후회할 짓은 하지 마라. 자존심 버리고 마음이 가는 대로, 신중하게 생각해.”

그러더니 무언가 떠오른 듯 그녀에게 작은 박스 하나를 던져주었다.

“이건…….”

“피임은 꼭 하라고. 이 오빠 마음 같아선 가능하면 결혼 한 뒤면 좋겠다.”

“이 개x끼야!!!”

그녀의 사자후가 터져 나왔다.

* * *

겉으론 싫다 싫다 하더니 현아도 제법 마음에 들었던 건지 늦은 시각까지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어휴. 떡이 됐네.”

신성 본사 내에 있는 바 테이블에 추욱 늘어져 있는 현아와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는 크리스가 보인다.

“야. 야야. 정신 차려 임마.”

가볍게 그녀의 뺨을 두드려 의식이 있는지 확인해봤지만, 그녀는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얘가 겁이 없네. 집도 아니고 밖에서 술을 이렇게 처먹어?”

아무리 본사가 그녀의 집처럼 가까운 곳이라 해도 겁이 너무 없다.

내가 고개를 들어 크리스를 노려보자 그는 떨떠름한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그…… 일부러 그런 건 아닙니다만. 말릴 수가 없어서.”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으니까 현아가 부어라 마셔라 한 거겠지. 아마 오늘 있었던 일이 그녀의 계획과는 너무 무관하게 흘러가면서 마음이 복잡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봤으면 아주 난리가 났겠네. SNS에 사진도 한 장 떡하니 올라오고.”

내가 오니 크리스도 안심이 되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참 즐거웠다고 전해주세요.”

그의 말에 나는 손가락을 튕겨 집으로 향하는 전이 마법진을 만든 뒤 말했다.

“내일 직접 말해요. 이런저런 핑계 대면서 계속 만나야 정도 드는 거지.”

“그녀는 아직 내게 마음이 없어 보입니다.”

술이 좀 들어간 탓일까. 그도 조금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얘는 옛날부터 그랬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자주 해요. 뭐, 그래도 마음을 열면 그러진 않을 겁니다.”

내 대답에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나는 늘어진 현아를 부축하듯 둘러맸다.

“으으…… 나 안 취해써어……. 엉? 세발낙지잖아아. 오빠야아아. 헤헤헤. 우리 몬 쌩기고, 성질 드러운 우리 오빠야아아.”

“…….”

“오빠야…… 나 오늘 크…… 크…… 응? 저 새끼랑 술 마셔따?”

이미 혀는 꼬부라졌고, 남들 앞에선 잘 안 하는 평소의 말투도 나오고 있었다.

“홀리…… 이건 저장해야…….”

“나중에 해요. 나중에.”

“야!”

그때 비틀거리며 매달려있던 현아가 크리스에게 소리쳤다.

“너어! 한 번만 더 그런 무서운 거 타자고 하면 호오온나!”

“풉…….”

그녀가 눈을 게슴츠레 뜨고 소리치자 크리스는 곧바로 입을 틀어막고 고개를 필사적으로 돌렸다.

“크흡…… 큽……. 알았어. 공주님.”

“공주라고 부르지 마! 나…… 나느은…… 현아라고오오! 그렇게 부를 때마다 손발이 오그라든단마리야아아!!”

자신의 양손을 오므렸다 폈다 반복하며 그녀가 비명을 내질렀다.

“너어…… 지켜보고 있어어. 새끼…… 쓸데없이 몸 좋기는…… 츠릅…….”

그리 말하고는 추욱 늘어져 버리는 모습을 보며 크리스가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가능성이…… 있긴 한가 본데?”

그는 상당히 기분이 좋아졌는지 가벼운 발걸음으로 떠나갔다.

이후 나는 현아를 짐짝마냥 둘러매고는 그녀의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던져버렸다.

“끄욱!”

숙취를 없애줄 수는 있지만 나는 그냥 두기로 마음먹었다. 아니, 오히려 숙취를 강하게 만들어버렸다.

술을 과하게 마시면 안된다는 걸 직접 보여줘야 할 테니.

“끄으으…… 오빠야아…… 나 머리가 깨질 거같이 아파아…….”

내가 그녀를 집어던졌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뻗어있는 그녀였다.

“세상에…… 현아야. 대체 얼마나 마신 거야.”

내가 들어오는 걸 보고 뒤따라온 연희 누님과 삼촌이 보인다.

“얘가 미쳤어?! 밖에서 술이 떡이 되도록 마셔?! 여기 기다려. 일단 해장 약을…….”

“누님. 그냥 두세요.”

“응? 그게 무슨 소리야.”

“그냥 둬…….”

내 말에 의아한 기색을 내비치는 그녀였지만 삼촌도 나와 같은 생각인 듯 보였다.

“내버려 둬라. 술을 과하게 마시면 어떻게 되는지 직접 느껴봐야지.”

물론, 현아가 그런 것 하나 구분 못 하는 성격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외간남자와 늦은 시각까지 떡이 되도록 술을 마신 혐의가 있었다.

“후우…… 내일 쟤 일 빼놓을게요…….”

연희가 한숨을 내쉬며 나갔고 삼촌은 조용히 현아를 보다 끙끙대며 잠든 그녀의 뺨을 쓸어내렸다.

“현수야.”

“네. 삼촌.”

간간이 이렇게 부를 때면 진지한 이야기라는 소리일 것이다.

그에게 나는 데이비 올 라운이라는 이름보다는 현수라는 이름이 더 익숙할 것이다.

“그놈, 쓸만하더냐.”

“글쎄요. 적어도 제가 보기엔 믿고 맡길만한 인간입니다. 현아도 마음이 없진 않은 거 같아요.”

“그럼 됐다.”

그는 더 묻지 않았다.

삼촌이 나가기가 무섭게 아공간에서 청단이와 홍단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빠. 고모 아파아?”

“아니. 아픈 거 아니야.”

“그치만 고모 끙끙대!”

홍단이가 걱정스레 현아에게 다가갔다.

동시에.

“우리 홍다니!”

잠들어있던 현아가 섬광처럼 손을 뻗어 홍단이를 그대로 끌어안았다.

“으우!! 이상한 냄새!”

당연 술 냄새가 진동을 하는 현아의 거센 포옹에 홍단이는 비명을 내질렀다.

뒤늦게 다가가려던 청단이는 홍단이의 참상을 보고 기겁하며 뒤에 숨어버렸다.

“으으…… 냄새나! 시러어어!”

“헤헤헤헤 우리 홍다니 누구 닮아서 이렇게 귀여울까?”

조금 전까지 머리가 아프다면서 뻗어있던 게 거짓말인 것처럼 현아는 잠꼬대하듯 홍단이를 인형처럼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이…… 이거 놔아!”

홍단이가 현아를 찰싹찰싹 때리며 풀어달라 외쳤다.

당연히 현아가 그것을 받아들일 리 없었고 급기야 홍단이는 고개를 힘겹게 돌려 도움을 요청한다.

“아…… 아바아! 홍다니 살려져!”

“…….”

그냥 두면 절대 놓지 않을 낌새였기에 그대로 다가가 현아의 팔을 풀어냈다.

“으으…… 홍단아아아!”

“시러! 고모 시러!”

아마 평소처럼 아프다 하면 곁에 있어 주려고 했을 것이다.

이렇게 봉변을 당할 거라곤 생각 못 했는지 홍단이는 혀를 쏙 내밀며 그대로 내 뒤에 숨어버렸다.

“으으…… 홍단이 어디 갔서어어…….”

인사불성이 된 채 중얼거리는 그녀를 뒤로한 채 나는 홍단이와 청단이를 안아 들었다.

“홍단이 고모가 찾는데?”

“시러! 고모 시러!”

“그래 큭큭.”

* * *

이불이 비비적거리는 소리와 함께 현아가 깨질듯한 머리를 부여잡으며 일어났다.

“으윽…… 머리야……. 아이고 내 머리 깨진다…….”

아릿한 거부감에 그녀가 몸을 비척거렸다.

그러던 중 현아는 방문 사이로 애매하게 숨은 채 눈을 가늘게 뜨고 자신을 노려보는 홍단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아래엔 청단이가 맹한 얼굴로 고개만 내밀고 있다.

머리가 아픈 건 아픈 거고, 홍단이는 귀엽다.

그녀가 양손을 뻗자 홍단이가 기겁하며 물러났다.

“히익!! 고모 시러!!”

후다닥 도망가버리는 홍단이를 보며 청단이도 덩달아 당황하며 도망가버렸다.

“호…… 홍단아?”

마치 연인에게 버림받은 것처럼 손을 뻗은 그녀가 눈가를 꿈틀거리며 주변을 둘러본다.

평소와 같은 깨끗한 그녀의 방이다.

하지만 여기저기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동시에 지독한 숙취가 그녀의 전신을 갉아먹는다.

“으아아…… 나 죽는다……. 내가 미쳤지, 내가 미쳤어. 술을 얼마나 마셔가지고…….”

얼마나 심했는지 전날의 기억조차 모호했다.

그러던 중 그녀는 숙취 이상으로 머릿속을 강하게 때리는 섬뜩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아…… 설마. 나 실수한 건 아니겠지?”

분명 술은 크리스와 단둘이서 마셨다. 거기에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떡이 되게 마셨으니 설마 취해서 이상한 짓을 한 건 아니겠지 하는 그녀였다.

마치 무언가를 찾듯 허겁지겁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점검해본다.

“소…… 속옷은 그대로고.”

딱히 몸이 아프다거나 그런 느낌은 없었다.

“미쳤어 미쳤어. 진짜!! 내가 미쳐서 술을…….”

혹여 술을 마시고 추태를 부린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다시금 문틈으로 홍단이가 그녀를 째려보고 있는 게 보였다.

“홍단아?”

홍단이는 마치 포식자를 경계하는 초식동물처럼 그녀를 경계하다 조심스레 비적비적 걸어들어왔다.

그녀가 건네준 건 스마트폰이었다.

“크, 큰고모가 가따주래여!”

이에 현아는 그것을 받아 손을 가볍게 터치했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자알 하는 짓이다.”

뒤이어 연희의 목소리가 들려오기가 무섭게 그녀는 공허한 눈동자로 스마트폰과 연희를 번갈아 본다.

“꺅!!”

그리고는 마치 무서운걸 본 것처럼 기겁하며 던져버린 뒤 이불을 뒤집어썼다.

팡팡! 소리가 나게 이불을 걷어찬다.

“죽여줘! 날 제발 죽여줘!!”

스마트폰에 저장된 영상은 다름 아닌 전날 있었던 그녀의 엄청난 주사가 그대로 담겨있었다.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일어나. 너 오늘 할 일 많아.”

“해…… 해장국은?”

“뭐가 이쁘다고 해장국을 끓여줘. 쓸데없는 소리 말고 일어나. 홍단이랑 청단이는 아이스크림 먹으러 갈까?”

“아…… 아이스크림!”

“주세여! 주세여! 바나나 맛으로 주세여!”

눈에서 광채가 날 정도로 욕망을 드러내는 두 아이의 모습은 흡사 며칠 굶은 상황에서 먹이를 눈앞에 둔 맹수 같았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홍단이와 청단이를 데리고 가버렸다.

“어…… 언니! 제발 해장국!”

“어제 현수가 와서 너 둘러매고 돌아온 건 알지? 본사 바에서 인사불성이 돼서 진상짓하는 너를 데려온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그 와중에 토까지 하고.”

그 말에 현아의 몸이 바짝 굳었다.

“서…… 설마…… 남들 앞에서?”

“그게 아닌 걸 다행이라 여겨 이년아.”

“휴우…….”

알싸한 섬뜩함과 안도감에 그녀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끄응…… 죽겠네! 진짜. 누가 숙취를 다발로 때려 박은 기분이야.”

물론, 정말로 데이비가 때려 박아넣었지만 현아는 그 사실을 몰랐다.

“내가 다시 술 이렇게 될 때까지 마시면 개다 개.”

“현아야.”

“흡! 사, 삼촌?”

거실로 걸어 나오며 투덜거리던 현아는 소파에 앉아 태블릿을 조작하던 삼촌을 보자마자 바짝 얼어붙었다.

“너도 이제 다 컸으니 삼촌이 간섭할 일은 아니지만, 술은 자제하려무나. 크리스나 현수였으니 별문제 없었지. 만약 다른 인간이었으면…….”

말끝은 흐렸지만 무슨 뜻인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너도 알다시피 구설에 오르면 너도 피곤해진다. 네가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속도 위반하는 건 아무래도 좋다만, 자기 관리는 해야지.”

“죄송합니다아…….”

“내게 죄송할 건 없다. 다음에 현수에게나 사과하려무나.”

“네에…….”

아침부터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현아였다.

끔찍한 숙취에 시달린다곤 하나 이 모든 게 본인의 업보.

현아는 한숨을 내쉬면서도 부지런히 출근을 준비했다.

퀭해진 눈과 다크서클을 지우기 위해 평소에 많이 하지 않던 화장까지 손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반쯤 시체 몰골로 회사에 들어왔으나 할 일을 미룰 순 없다. 그녀는 자신의 업무 보고 자료들을 빠르게 훑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놈의 욕심들은…… 어휴.”

또 정부 측에서 뭔가를 잔뜩 요구해왔다는 걸 확인한다.

“이 인간들은 내가 한국인이라고 신성도 지들 거인 줄 아나…….”

한국 정부의 일부 정치인들이 신성에서 부당할 정도로 과한 독점이익을 얻고 있다는 점을 빌미로 물고 늘어지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애초에 국제기업인 신성이 다른 기업과 다른 점을 생각하면 이건 어리석은 판단이었다.

세계 유일의 실존하는 종교인 넬타리드 교단과 국제 연합기구와 협력 중인 신성은 사실상 어느 국가에도 함부로 소속되는 기업이 아니었다.

본사가 한국으로 자리를 잡았을 뿐 세계 각지에 지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크리스 마텐이 장기적으로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를 계속해서 내고 있었다.

S급 각성자는 사실상 전략 병기에 가까웠으니 말이다.

아무리 동맹국이라도 그런 전략 병기가 자신들의 눈 밖에서 활보하고 있는 게 고까웠던 모양이었다.

크리스를 포함한 코오나도 마찬가지.

물론, 코오나는 사실상 붕 뜬 입장이라 애매한 편이지만 크리스는 엄연히 미국의 각성자였다.

“그래도 이번 정부는 꽤 친화적이었는데. 아직도 이런 인간들이 있단 말이야.”

정부 측에선 필요하다면 여론전까지 불사할 작자들이 득시글거리니 귀찮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들이 정말로 원하는 바는 그런 생산적인 게 아니었다.

적당한 구실로 적당히 흉내 내고 물러나 줄 테니 대가를 내놓으라 강짜를 부리는 셈이었다.

한숨을 내쉬며 그녀는 곧바로 스마트폰을 들어 어디론가 전화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반가워요. 박 의원님. 명함보고 전화드렸어요. 저 신성의 현아입니다.”

정중하지만 노기를 숨기지 않는 현아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아아. 현아 양이군. 그래. 무슨 일로 전화했나?

무슨 일? 이 욕심만 그득그득한 인간이. 아직 먹이 사슬 구도도 파악 못 하고 날뛰기는.

현아는 들리지 않게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말했다.

“실은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저희 신성에 보낸 공문들을 확인해봤는데요.”

-아 그랬던가. 그래. 문제라도 있나?

“있죠.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문제죠. 이건 이미 정부와 협약이 된 거 아닌가요?”

-그게 말이네. 나도 그냥 눈감아주고는 싶지만 국민들 사이에 소문이 퍼져서 말이야. 일단은 하는 시늉이라도 좀 해야 하지 않겠나.

눈을 감아줘? 이게 장난하나.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지금 신성은 불법적인 일을 하는 바가 없었다.

하지만 이 겁 없는 인간은 자기 세력이 좀 생겼다고 신성을 대놓고 범죄자처럼 말하고 있었다.

“눈감아주고 싶다고 하셨나요? 저희가 어디가 문제라서 그러는 건지 전혀 모르겠는데요.”

-허허. 젊은이가 이리 꽉 막혀서 쓰나. 나도 돕고 싶네. 다만 미국의 최고위 각성자가 장기간 이렇게 한국에 체류하는 건 국민의 불안을 야기할 수 있네.

“하아…….”

-해서 말인데. 자네나 나나 서로 돕고 살 수 있지 않겠나. 이번에 관련 법안에 조금 손을 들어줄 테니…….

“손을 들어줄 테니 그 대가를 내놓으라 이 말씀이시죠?”

-커흠커흠! 거 사람 참. 자네 사회생활 경험이 아직 부족해서 잘 모르나 본데. 이런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올 수 있는지 모르는가? 허어.“

“그러네요. 죄송합니다. 그래요. 이런 거로 돈이 오가는 건 말이 안 되죠. 그래도 저희 쪽도 억울한 입장이니 부탁 좀 드릴게요. 크리스는 미국 각성자이긴 해도 저희 소속입니다.”

-자…… 자네?

“빙 돌려 말하지 마세요. 그리고, 함부로 무시하지도 마시고.”

-거참 사람 말을 왜 이렇게 못 알아듣나. 서로서로 돕자는 취지에서 그러는 거지, 자네는 향후에 크리스 마텐의 힘도 좀 빌려주고, 나는 신성이 활동하기 편하도록 좀 더 돕는 뭐 그런 뜻일세.

“돕기는 얼어 죽을. 아까부터 점잖게 말해주니까 이 양반이 밑도 끝도 없이 싸움을 거네?”

-자…… 자네?

“이봐요. 박 의원님. 사람이 어리니까 우습게 보였어요?”

-뭐…… 뭐라?!

“싸움을 봐가면서 걸어요. 미안한데. 신성은 한국 정부가 함부로 뒤집어엎을 권한 없는 거 아시죠?”

-지금…… 일개 기업이 국가에 싸움을 거는 건가?

“국가가 아니라 당신이겠지. 그리고, 한국이 국제기구에 가입되어있는 이상 특이사유 없이 강제퇴출 안 되는 거 아시죠? 국제기구 퇴출당하면 한국은 티오니스 거래 계약도 안 되는 거 알고 계실 테고?”

-자네…… 내가 마음만 먹으면…….

“해봐.”

현아의 목소리가 싸늘해졌다.

-자네!

“해보라고. 크리스는 우리 회사의 소중한 계약 각성자야. 당신이 무슨 깡으로 신성에 싸움을 걸었는지 모르겠는데. 필요하면 티오니스까지 물고 늘어져서라도 싸움에 응해줄게. 계속해봐?”

-자네!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이유라도 있는가! 크리스 마텐은 대단한 인력일세! 그를 조금만 빌려주는 게 그리 어려운가! 젊은 사람이 이리 인정머리가 없어서야 원……. 뭐 어떤가. 소중한 사람도 아니고.

“소중한 사람이야 이 개 같은 인간아!! 한 번만 더 내 귓가에 개소리 흘려보내면 정계 싸움 제대로 받아주겠어. 정계에 당신 편을 들어줄 사람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는데 싸움은 봐가면서 걸어야지.”

-후…… 후회할걸세!!

당황한 듯 연락을 끊어버린 그였지만 어차피 그가 할 수 있는 건 없으리라.

이번에 선거에 붙은 의원 중에 간간이 이런 짓을 하는 인간들이 있다는 건 피곤한 일이었다.

“하아…… 진짜 귀찮게.”

한숨을 내쉬던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눈을 부릅 떴다.

감동한 얼굴로 크리스가 그녀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 신이시여…… 저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크리스가 마치 승천할 것처럼 편안한 얼굴로 무릎을 꿇은 뒤 양팔을 Y자로 펼치자 현아는 새빨개진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이…… 이 인간이 왜 여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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