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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496화 (1,496/1,559)

제 1496화

“조졌지?”

-ㅇㅇ 조짐.

-안녕. 잊지 못할 거야…….

-티오니스 성자 딸 사랑 오지는 거 알지? 님 이제 망함.

“아니 이건 나도 억울하지! 일부러 다 숨겨놨는데 그걸 왜 까뒤집어?!”

-응 그렇다고 해도 어린애한테 보여줄 만한 건 아니었죠?

-그냥 다른 서버 보여주자는 직원들 말 무시하고 여기 보여준 건 너죠?

-망했죠? 어린애한테 섹드립 씨게 박았으니 철컹철컹 이죠?

-처음에 이상한 거 전혀 없다고 못 박았죠? 이상한 거 있으면 책임진다고 했죠?

으득…… 으드득…….

“다 닥쳐! 이럴 게 아니야. 우선 사과라도 해야지.”

과정이 어떻건 에반젤린이 패닉에 빠져버렸으니 약소 스트리머인 자신은 어떻게든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그녀는 망설임 없이 캠을 켠 뒤 그대로 그랜절을 시도한다.

“이상한 거 보여줘서…… 죄송합니다아아아!!!”

빠른 사과를 박지만 이미 울음을 터뜨리며 도망가버린 에반젤린은 돌아오지 않았다.

물론, 단출하게 진행했던 방송은 그 안에서 벌어진 경이적인 타이밍과 악운을 타고 엄청난 양의 조회수를 뽑아내고야 말았다.

* * *

“으…… 머리야.”

마치 아직 받아들일 때가 아니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에반젤린은 당시 기억들을 모두 봉인해버린 채 정신을 차렸다.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던 에반젤린은 자신이 왜 잠들어있었는지도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 내가 방송 똑바로 끝냈던가?”

왜 기억이 안 날까. 갑자기 방송을 꺼버린 것처럼 기억이 너무 가물가물했다.

이런 적은 없었는데. 까먹는 건 불가능한데.

시계를 보니 하루를 꼬박 내리 잠든 모양이었다. 게다가 무엇 때문인지 머리가 둔기로 한 대 맞은 것처럼 띵하기 그지없다.

“아…… 내가 뭘 한 건지…….”

정신없이 몸을 일으킨 그녀는 곧 방송 시간임을 깨닫고 컴퓨터를 주섬주섬 켰다.

“오늘은 때려죽여도 가상현실 못하겠다.”

유도리 있게 두 가지를 잘 써먹곤 하지만 가상현실은 실제로 컴퓨터를 쓸 때보다 정신적 피로가 큰 감이 없잖아 있다.

“흐아암…… 여러분 반가워요.”

담담한 얼굴로 인사하자 물음표가 정신없이 올라온다.

-???

-??뭐임?

“뭐긴요. 방송 시작이지. 아 참. 내가 어제 방송 똑바로 끄긴 했죠? 기억이 없어서.”

-???

-기억을 잃어버릴 정도로 충격이었나…….

-쉿쉿.

-읍읍 판사님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의아한 시청자들의 태도에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저기. 무슨 일 있어요? 나 지금 머리가 많이 아파서 당장은 복잡한 건 못할 거 같아요. 가볍게 이야기나 좀 하다가 그림이나 그리죠.”

-방장. 머리 많이 아픔?

-ㅋㅋㅋㅋㅋ

-실제로 보긴 첨이네 ㅋㅋㅋ

-방장은 아가야…… 아가는 지켜줘야 해…….

“아니 이 사람들이 오글거리게 왜 이래…….”

아무런 기억도 안 난다는 표정으로 그녀가 인상을 찌푸렸다.

“됐고, 사실 오늘 합방요청이 있었거든요. 어제였나 오늘이었나…… 제가 기억 못 하는 거 보면 오늘인가 보네요.”

-???

-??

“스트리머 일몰 씨가 만든 광산 크래프트 맵에 초대받았어요. 엄청 예쁜 것들이 많다고 소개받았는데.”

-?????

-??? 네?

미친 듯이 올라가는 물음표를 보며 그녀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니…… 왜 그래요? 오늘이 아니었나? 이상하네. 아 어쨌든. 광산 크래프트를 내가 다운받아놨지.”

키득거리며 광산 크래프트 게임을 실행한다.

-지금 충격이 너무 커서 죄다 잊어버린 거임?

-미친 ㅋㅋㅋ

-합방 사실 없었던 것으로 ㅋㅋㅋㅋ

“엥? 무슨 소리예요. 나 일몰 님이랑 아직 방송한 적이 없는…… 아…… 아야야야…… 아이고 머리야. 왜 이렇게 아픈 거야.”

-방장! 잊어! 일단 그림 그려!

-게임 하자 게임!!

-그런 똥겜 집어치우고 다른 거나 하자!

“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예요.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지.”

그녀는 익숙하게 일몰의 음성채팅 아이디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곧바로 받는 일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하! 에반젤린 씨!

“안녕하세요! 일몰 씨! 오늘 합방날이죠?”

-아. 그게 말이죠오…….

스트리머 일몰. 그녀의 목소리가 떨린다.

-죄송해요. 집에 재난이 있어서 도저히 합방이 힘들 거 같아요.

“어? 네? 무슨 말씀이세요?”

-죄송합니다. 합방 엄청 기대했는데. 도저히 합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거 같아요. 제가 다음에 꼭 다시 초대해 드릴게요.

일몰의 대답에 에반젤린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흐음…… 그런가요. 그러면 어쩔 수 없죠…… 다음에 같이해요.”

-넵! 아 그리고 에린 씨! 건승하세요!

기다렸다는 듯 연락을 끊는 그녀를 보며 에반젤린은 입을 삐쭉였다.

“엄청 기대했는데…… 집에 안 좋은 일이 있다는데 어쩌겠어요. 다음에 해야지. 후우…… 이렇게 퇴짜맞아보긴 처음인데…….”

-차라리 잘됐음. 방장. 오늘 가챠쇼 고고?

-맞음 신캐 나옴. 픽업 주기인데 뽑아야지.

그야말로 일사불란 그 자체였다.

일몰은 순식간에 그랜절을 박는 영상. 에반젤린과 함께 했던 영상을 비공개로 돌렸고. 에반젤린의 채널 관리자도 그녀의 합방 방송을 지워버렸다.

엄청난 조회수를 얻은 영상이긴 했지만 에반젤린이 기억을 놔버렸다면 차라리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게 낫다는 판단하에서였다.

스트리머 일몰의 시점에선 엄청 아쉬운 일이지만 별수 없는 일이다.

-쉿. 쉿. 통제 들어가.

-여기서 괜한 말하는 놈은 역적이다.

시청자들의 이유 모를 소리에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그녀는 가챠 게임을 실행했다.

그리고는 픽업 주기를 보며 헤실거렸다.

“내가 이거 뽑으려고 몇 달을 버텼는데. 죄다 뽑아버릴 거야.”

흐흐흐 거리며 그녀가 손을 살살 비볐다.

-아니 다른 스트리머는 천장치는 맛에 보는데. 방장 운이 너무 좋아서 비틱으로밖에 안보임.

“그래서 내가 요즘 가챠 방송 안 하잖아요.”

익숙하게 가챠 화면을 켠 그녀는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이번엔 몇 연차 만에 뽑을지 한번 내기해볼까요?

-한번.

-두 번.

-한번

무수히 올라오는 숫자들이 있지만 대부분은 그녀가 4번 이내로 뽑을 거라 말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럴 수밖에.

그녀의 운은 주기적으로 가히 폭발적인 텐션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그녀는 기분이 좋으면서도 비틱질을 하듯 살살 시청자들을 긁으며 10연차를 개시했다.

“앗! 10연차 만에 뽑았는데 이거 좋은 건가요!”

익숙하게 놀리며 가챠를 돌리지만 늘 보던 무지갯빛은 보이지 않았다.

실패의 전조였다.

“음…….”

-편안.

-편안~

-이거지.

-이렇게라도 발악해야지.

“거참. 여러분, 나 못 믿어요? 다음엔 나온다니까~”

나오는 게 확정된 것처럼 다시 10연차를 돌린다.

하지만.

“어라?”

-개편안…….

-극락.

이번에도 뜨지 않았다.

“최근 운이 너무 좋았나? 뭐 3~40차 안에 나오면 되겠지~”

아직까진 여유가 있었다. 재화에도 충분한 여유가 있었다.

이에 에반젤린은 기계처럼 돌렸다.

“앗! 30연차만에 나왔는데 이거 좋은 건…… 어라?”

이번에도 뜨지 않았다.

에반젤린의 얼굴이 굳어버렸고 식은땀이 흐른다.

“이번엔 최저인가 봐요. 아쉽지만 40연차분들이 성공을…….”

퍼엉!!

40연차도 실패.

방송은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이윽고 에반젤린은 과거의 끔찍한 기억이 떠오른 듯 반사적으로 가챠를 진행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60, 70, 80, 200연차가 될 때까지 원하는 건 나오지 않았다.

“처…… 천장…….”

가챠를 천장쳐버린 에반젤린이 입을 뻐끔거렸다.

“내가 분명 다음다음 픽업 캐릭까지 생각해놓고 열심히 모은 재화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극락ㅋㅋㅋㅋ

-뭐죠? ㅋㅋㅋ 방장 폭사했죠?ㅋㅋㅋ

-뭔진 모르겠지만 축제다!!

“다…… 닥쳐요!”

당황한 그녀가 소리 질렀다.

“이럴 리가…… 이럴 리가 없어!”

그녀는 자신이 잘못 봤을 거라 생각하며 확률 공개 표로 들어갔다.

뽑을 확률 0.6%.

평소와 같다.

“어,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가! 이렇게 되면 다음다음 픽업들은 내 용돈으론 빠듯한데!”

허둥지둥거리며 그녀가 당황했다.

-아니 용돈이 그렇게 적음?

-쉿 전에 방장 핵과금하다가 걸려서 개 혼났잖음 ㅋㅋㅋㅋ

-팩트) 실제로 지금 방장 용돈도 저 나이대 생각하면 상당히 많은편이긴 하지만 성자 재력 생각하면 너무 짜다.

-세상에 세계 최고 부자(추정)의 딸도 얄짤 없구낰ㅋㅋㅋㅋ

-그래서 이 방송 보지 ㅋㅋ

“이럴 리가 없어…….”

이윽고 그녀는 견딜 수 없다는 듯 추가 가챠를 진행했다. 캐릭터를 제대로 굴리기 위해선 장비나 추가 캐릭터를 뽑아야만 했으니 말이다.

“이럴 리가 없다고!”

그리고는 필사적으로 눌러보지만, 가히 경악스러운 불운을 보여주며 그녀는 맹렬하게 폭사해버렸다.

에반젤린은 머리를 테이블에 박고는 침묵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울해하는 방장 졸귘ㅋㅋㅋ

-이 맛이지!

-크으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 카타르시스

시청자들은 에반젤린이 폭사한 사실 자체가 즐거운지 낄낄거리며 그녀를 조리돌림한다.

이미 시청자들의 관심은 전날 합방의 기억을 잃어버린 에반젤린의 놀라운 자기방어 기재 따위는 머릿속에서 날아간 후였다.

“이럴 리가 없어. 검둥아! 어떻게 된 거야!”

늘 그렇듯 방송할 땐 책상 한켠에 추욱 늘어져 있는 블랙 슬라임을 잡으며 그녀가 소리쳤다.

“어떻게…… 네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내가 간식도 많이 줬는데!”

-응. 파업이야~

-응. 일 안 해~

블랙 슬라임은 콩알 같은 눈을 꿈뻑꿈뻑거리며 에반젤린을 보더니 이내 꿀럭꿀럭거리며 경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퍼엉!!

터져버렸다.

“어?”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에반젤린은 굳어버렸고 그것을 보던 시청자들도 물음표를 미친 듯이 띄우기 시작했다.

“거. 검둥아?”

자신이 잘못 보았나 하는 심정으로 다시 불러보지만, 검둥이가 터진 곳엔 작은 보석 하나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안 돼!!!”

그제야 검둥이가 죽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에반젤린이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안 돼…… 안 돼!!”

그녀의 비명이 울음소리로 순식간에 번져나간다.

그녀의 반려동물이나 다름없던 검둥이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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