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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497화 (1,497/1,559)

제 1497화

다급한 연락을 받고 찾아왔을 때 에반젤린은 블랙 슬라임 검둥이가 남겨놓은 보석만을 끌어안고 통곡을 하고 있었다.

“안돼애애애애!!”

어찌나 서럽게 우는지 몸을 웅크린 채 통곡하는 모습이 가슴을 저릿하게 만들 정도였다.

블랙 슬라임은 에반젤린에게 있어서 반려동물 같은 것이었을 테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아빠!! 아브아!!”

얼마나 울었는지 발음까지 뭉개지고 눈가는 얼마나 울었는지 퉁퉁 부어있었다.

갑작스러운 블랙 슬라임의 죽음으로 인해 방송은 파투가 나버렸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크게 끓어오르지 않았다.

방송 중에 반려동물이 죽어버렸다면 방송을 유지하는 것도 미친 짓일 테니까.

아직은 순수한 어린아이이니…….

“네가 없으면 난 다시 불행해진단 말이야!”

“저…… 저.”

한숨이 절로 나왔다.

교육을 새로 해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낀다.

서럽게 흐느끼는 그녀에게 다가가 등을 두드려주자 에반젤린은 평소와 달리 곧바로 품에 안겨들었다.

“아빠…… 아빠! 검둥이가!”

“그래. 보고 있어. 아빠가 확인해볼 테니까 잠시 그것 좀 줘볼래?”

훌쩍거리며 보석을 내미는 그녀였다.

붉게 달아오른 보석은 어떤 움직임도 보이진 않았지만, 생명력 자체는 느껴지고 있었다.

다만, 그 양이 너무 미약하다.

“너 애 밥도 안 준 건 아니지?”

“아니거든요! 지가 알아서 잘 먹고 다니고 있었거든요!”

확실히 블랙 슬라임은 불운을 먹거나 자기 스스로 배를 채우고는 돌아오는 영리한 녀석이었으니 아사 같은 것을 했을 리 없다.

그렇다면…….

나는 컴퓨터 화면에 켜져 있는 가챠 게임을 보며 황당한 가설을 내놓았다.

“설마…… 불운이 너무 강해서 배 터져 죽은 건가?”

“흐아아앙!!”

무려 신적인 존재의 힘도 먹어치우던 검둥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건 이례적인 일이다.

어찌나 서럽게 우는지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을 듯싶었다.

물론, 지금 와서 어떻게 할 수 있는 수단은 없었다.

블랙 슬라임은 형태만 저렇지 사실상 특수한 신수에 가까운 무언가.

아니 유니콘이나 페가수스 같은 그런 신수와도 비교할 수 없는 상위의 개체가 분명하다.

그렇기에 이 녀석에 대해서 아는 존재라고 해봐야 극히 드물 뿐이었다.

그냥 두면 몇 날 며칠이고 펑펑 울어댈 기세였기에 우선 블랙 슬라임이 변해버린 보석만을 회수한 채 녀석을 영주성으로 데려와야 했다.

“전혀 전조 없이 이렇게 변해버렸는데 이걸 어째야 할까.”

“그런데 특이하네…… 죽고 나서 보석이 되어버리다니.”

“아직 죽은 게 아니지 않을까요?”

일리나와 에이리아의 의견은 모두 타당했다.

“확실히 보석이 된 것도 이해가 안 되고, 죽었다고 확정 내기도 어렵긴 하지.”

“반대로 블랙 슬라임이 생에 마지막에 이렇게 진화하는 것일 수도 있는 거지.”

조금 어둡긴 하지만 이 또한 맞는 말이었다.

다만 이 모든 게 너무 갑작스레 벌어진 일이라는 게 문제였다.

“본녀가 보기엔 조금 미묘한 느낌이 드는구나.”

당장은 어떻게 할 수단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분명 녀석이 변한 것이라면 어떤 능력이 서려 있을 게야. 그걸 우선 확인해봐야겠지.”

어떻게 변한 건지 우선 확인이 되어야 흐름을 이해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 * *

운이 나빠진다느니 뭐니 말했지만, 에반젤린의 상심은 거짓이 아니었다.

반려동물이나 다름없던 블랙 슬라임이 사라져버린 뒤로 침울해하던 그녀가 정신을 차린 건 나흘 정도 후였다.

슬퍼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언제까지고 자신이 그렇게 있으면 다른 이들이 걱정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조금 침체된 목소리로 인사하는 에반젤린이 쓰게 웃자 시청자들이 빠르게 반응했다.

-어떻게 된 거임?

“우리 검둥이…… 무지개다리 건넌 거 같아요. 아빠도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시고…….”

-아…….

-ㅠㅠㅠ

-반려동물하고 이별하는 건 많이 슬프지.

-오래 안됐어도 그래도 정 많이 들었을 텐데.

블랙 슬라임을 키운 지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그동안 매번 같이 행동하며 정이 많이 들었던 에반젤린이었다.

-그럼 검둥이 없어지면 이제 방장 운은 없어지는 거임?

-넌 나가라.

-여기서 그걸 묻고 있네.

“아녜요. 언제까지고 이런 거로 여러분들이 신경 쓰게 할 순 없죠. 말 그대로예요. 검둥이가 떠나고 레인보우 슬라임들도 다들 어디론가 사라져버렸고…….”

그녀는 장난스레 있는 재화를 이용해 가챠를 돌렸다.

놀라우리만치 망해버리는 가챠를 보여주며 그녀가 쓰게 웃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더니…… 검둥이가 없어지자마자 이러네요.”

웃는 얼굴이지만 에반젤린의 표정에는 슬픔을 숨길 수가 없었다.

-ㅋㅋㅋ 그동안 블랙 슬라임으로 꿀 빨았죠? 이제 업보 청산 지대로 받죠?

“……나가요.”

단순한 조롱을 넘어 그녀와 블랙 슬라임 사이의 정까지 비웃어버리는 악질 시청자를 영구 밴한 에반젤린이 차갑게 채팅창을 노려보았다.

“검둥이가 있어서 그동안 운이 좋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선은 넘지 말아 주세요.”

-저건 선 넘었지.

-겁도 없넼ㅋㅋㅋ

-잘했음, 꼭 저런 놈들 있지.

“자. 오늘도 게임 한번 하고 전에 하려다가 못했던 게임 스토리 진행할게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캔버스를 부스럭거리며 꺼내 들었다.

“오늘 그림 주제도 신청받을까 하는데. 어때요?”

-좋음.

-ㄱㄱㄱ

-준비 중.

그녀가 신청란을 열기가 무섭게 엄청나게 많은 신청서 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중 에반젤린은 5개를 추려 랜덤으로 집어낸 뒤 투표를 진행했다.

그리고.

가장 높게 집계된 주제는 다름 아닌…….

“어…… 음……. 이게 걸렸네요.”

1등으로 선별된 주제는 다름 아닌 검둥이였다. 본래 그림방송은 대개 여러 사람들이 원하는 바를 요청하곤 한다.

하지만 에반젤린의 방송에서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건 에반젤린의 감정이 가장 짙게 묻어나는 그림을 가장 좋아했다.

정신계 드래곤.

그녀가 그리는 그림의 원본은 영상을 통해서도 그녀의 감정이 절절하게 전달되는 신기한 그림이니 말이다.

“생각해보니 검둥이 그림을 제대로 그려본 적이 없었네…….”

그렇게 말하며 에반젤린은 고민했다. 방송 중에 눈물이나 보이다간 보는 사람도 씁쓸할 터.

그렇기에 그녀는 레어에 머무르면서 블랙 슬라임과 가장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렸다.

“음. 그러네요. 조금 지루한 그림이 될 수도 있는데 한번 그려볼게요.”

-고고, 뭐든 좋음.

-방장 그림은 고리타분한 주제인데도 감정 전달이 확실해서 일부러 보게 됨.

주로 생방에서나 볼 수 있는 하나의 명물이며 아이텐티티이기도했다.

이윽고 그녀가 그리는 그림은 바닷가의 모습이었다.

여기저기 퍼진 캠핑세트와 커다란 불판 위에 놓인 고기들을 굽고 있는 에반젤린이 보인다.

그리고 다 구워진 그녀의 고기를 블랙 슬라임이 아무렇지도 않게 흡입하다가 그녀에게 걸려 혼나는 장면이었다.

즐거움, 분노, 허탈함.

종류는 다양했지만 가장 큰 것은 즐거움이었다.

-아…… 치유된다.

-일하고 받은 스트레스 그림 보고 푸는 거 이것도 진짜 중독이다 ㅋㅋㅋㅋ

-ㄹㅇ ㅋㅋ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이들은 그게 뭐가 좋다고 방송을 보냐 하는 이들도 있지만, 굉장히 많은 수의 시청자들은 에반젤린의 다른 방송은 넘겨도 그림방송만큼은 생방으로 챙겨보는 이들이 생길 정도였다.

“흑…….”

그때였다.

그림을 다 그리고 채색까지 금방 끝낸 에반젤린은 씁쓸한 웃음을 흘렸다.

-방장. 괜찮음?

-또 울겠다. 얘…….

“괜찮아요. 많이 울었어요. 이제 보내줘야죠.”

씁쓸하게 웃어 보인 그녀는 그림을 치웠다.

-그 그림은 혹시 내놓을 건가요?

“네?”

-그림을 보고 있으니까 오래전에 잊었던 감정 같은 게 다시 살아나는 기분입니다. 그림 한 장에 이렇게 구원받는 느낌은 처음이에요. 실은 전시회를 계획 중입니다만. 괜찮으시다면 당분간만이라도 그림을 대여해줄 수 없습니까?

단순 그림의 거래를 넘어 이제는 에반젤린이 그린 감정이 느껴지는 그림들을 전시하고 싶다는 이들도 나왔다.

“글쎄요……. 파는 게 아니라면야……. 생각은 해볼게요. 다만 거래 이야기는 여기서 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림을 보고 절대 놓치면 안 될 거 같아서요.

그 후 그녀는 익숙하게 방송을 마친 뒤 채널에 들어갔다.

제법 그녀의 방송에 큰돈을 지원해주던 사람이었다.

정체를 알지는 못하지만 주로 그녀가 그림을 그릴 때마다 크게 반응을 해주던 사람이기도 했다.

다만 이번 그림에 뭔가 크게 느끼는 바가 있었는지 그녀의 채널에 요청 글까지 남겨놓은 모습이었다.

“아저씨 아저씨.”

이에 에반젤린은 자신의 채널을 관리해주는 알하자드의 비서 안토니오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 에린아.

“어라? 알하자드 삼촌?”

-그래. 안 그래도 네가 연락을 할 거 같아서 기다리고 있었어.

부드러운 어조로 전화를 받은 이는 비서인 안토니오가 아닌 알하자드였다.

-그래도 조금 서운한데? 이런 건 내게 연락해줄 줄 알았는데.

“삼촌은 많이 바쁘잖아요. 전에 뉴스 봤어요. 타국에 사업 관련으로 갈 때마다 뉴스에도 뜨고 그러는 거. 사실 절 돕는 것도 무리하시는 게 아닌가 싶어서.”

-하하. 바빠도 네게 도움을 주는 정도야. 그리고, 네 방송을 챙겨보면서 그림으로 느낌을 받는 건 사실이니까 아무 걱정 말렴. 그보다. 검둥이는…… 안타깝게 되었다.

“흐흑…… 삼촌…….”

-반려동물과 이별하는 건 슬픈 일이지. 이번 일로 네가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깨달았으면 검둥이도 가는 길 슬프진 않았을 거다.

그의 방식대로의 위로는 그녀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래 연락한 이유는 전시회 때문이지?

“네? 아…… 네. 알고 계셨네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알하자드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사람, 오래전부터 네 그림에 한창 빠져있었으니까. 유명한 화가였는데. 지금은 전시회를 여는 사업을 하고 있거든. 이번에 프랑스의 박물관 쪽에서 진행하고 있었는데, 네 그림이 꼭 있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더구나.

“제 그림이요? 전 한다고 한 적 없는데…….”

-원래 유명한 예술가 중에 또X이들이 많아. 그 사람에 대해서 잘 모르지?

“유명한 사람이에요?”

에반젤린의 질문에 그가 껄껄 웃었다.

-유명하지. 한때 천재라 불리면서 그림 한 장 내놓았다 하면 수십 수백억에 경매되던 사람인데. 빈덴 카푸하 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었는데. 들어 본 적은 없니?

“글쎄요…….”

-하하하 그 사람이 들었으면 꽤 슬퍼했겠구나. 빈덴 카푸하. 유명한 화가야. 실제로 저쪽 업계에선 이름만 말해도 인정받는 수준의 사람이기도 하고.

“그런 대단한 사람이 제 그림을 꼭 원한다고요?”

-그래. 제자들에게도 엄격하기 그지없는 재규어 상이지. 실제로 그의 만족을 모르는 엄격함에 질려서 떠나간 제자들도 제법 있기도 하고, 다른 화가들의 그림에 혹평을 가차 없이 남기는 사람이기도 해.

그런 그가, 에반젤린의 그림을 보자마자 극찬을 남겼다.

표현기법 같은 문제가 아니었다.

근본적으로 에반젤린의 그림은 그림을 그리는 근본적인 이유가 짙게 담겨있다는 이유였다.

“흐음…….”

정신계 드래곤이기에 치트키를 쓴 것 같은 느낌이지만 사실 그녀도 크게 신경 쓰진 않았다.

-게다가 이번 전시회는 영국 왕실에서도 찾아온다는 말이 있어서 더 힘을 주는 것 같더구나.

“흐음…… 하지만 저는 그런 대단한 그림을 그렸다곤 생각지 않는데요.”

-자신감을 가져. 네 그림은 비록 주제는 모두 다르지만, 세계 어느 거장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으니까.

그의 말에 에반젤린은 그림을 완전히 넘기는 것도 아니고 뭐 잠깐 정도 빌려주는 게 문제인가 싶었다.

“그럼 알겠어요. 한번 해볼게요.”

-그래. 자잘한 건 삼촌이 다 해줄 테니. 그림 20개 정도만 추려두렴. 아 그리고 오늘 그린 것도 꼭 보내고. 그 양반이 이번 그림에 완전히 꽂힌 모양이더라.

“헤헤.”

-게다가 상당히 큰 금액을 대가로 내걸었으니 그 점에 대해선 네 아빠에게 꼭 말하고.

“굳이 돈을 받아야 할까요?”

-그래야지. 자칫하면 에린이 네 행동에 많은 화백들이 좋지 않은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단다.

“네에.”

에반젤린의 그림은 크리처나 다른 것도 있지만 상당수가 그녀의 기억에 있는 일상. 그녀의 상상 속에 있는 것들을 담고 있다.

통화를 마친 뒤 그림을 모아둔 캔버스가 있는 방에 들어선 그녀는 깔끔하게 보존되고 있는 그림들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이야기 들었어. 전시회에 잠시 기증한다면서?”

언제 온 것일까.

비화가 고개를 쏙 내민다.

“아…… 언니…….”

“검둥이 소식 듣고 걱정돼서 찾아왔어. 보아하니 그래도 많이 딛고 일어섰나 보네.”

“검둥이…… 정말로 죽은 거야?”

“글쎄…… 나도 처음 보는 경우라.”

아직 어린 신에게 많은 진리를 기대하는 건 어려워 보였다.

“그림 고를 거지? 내가 도와줄게.”

“그럼…… 부탁할게.”

그동안 방송 중에 틈틈이 그렸던 수십 수백 개의 그림 중 일부를 골라내며 비화가 탄성을 흘렸다.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네. 너 정말 대단하긴 한가 보다.”

“그런가?”

“그래. 대단한 거지. 그만큼 진심으로 그린 거니까.”

그리 말하며 비화는 그림 한 장을 꺼냈다.

“이것도 내놓을 거야?”

그녀가 내놓은 그림 두 장은 다름 아닌 용의 모습과 코즈믹 호러를 담고 있는듯한 괴이한 크리처의 모습이었다.

크리처의 경우 정말로 에반젤린이 무섭다고 강하게 느낀 감정이 묻어있었기에 일반인이 봤다가 패닉에 빠질 수도 있는 그림이 있었다.

“그거…… 엄청 문제 되지 않을까?”

“그래도. 한 장 정도야 뭐.”

* * *

시간이 흐르면 고이기 마련이다.

에반젤린의 그림이 유명한 박물관의 그림 전시실에 일정 기간 전시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반응을 보였지만 좋지 않게 보는 이도 있었다.

“흥. 아직 그래 봐야 어린아이 아닙니까. 이쪽 업계의 심사도 통과한 적도 없고, 이렇다 할 수상경력도 없는데 말이죠.”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 그림보다 제 예술적 감각이 가미된 제 그림이 더 좋겠습니다.”

한 사내가 꺼낸 그림은 새하얀 캔버스에 붉은 원이 그려진 그림이었다.

“오오…… 백버드 화백의 그림은 언제봐도 많은 의미와 통찰을 담고 있군요.”

“허허. 그림을 알아보시다니 역시 보는 눈이 있으시군요.”

“대중들은 이런 예술의 극치를 이해하지 못하다니 참 아쉬울 따름입니다.”

“이럴 게 아니라 이쪽에서도 입장을 내놓도록 하죠. 가서 직접 보고 그림을 비평해준다면야 그쪽에서 뭐라 할 순 없을 겁니다.”

“재능 좀 있다고 으스대는 건 지양해야 할 덕목이거늘.”

“쯧. 전설의 화백이니 뭐니 하더니 빈덴 카푸하 그 양반도 다 늙었나 봅니다.”

“그러고 보니 그쪽은 그의 제자로 있다가 나오지 않았습니까?”

“예, 그가 제 예술을 알아봐 주지 못하는 걸 보고 떠나왔지요. 허허.”

“뭐. 직접 보면 알겠지요. 그렇게 치켜세워주는 천재라곤 해도 예술적 감각이라곤 전혀 없는 아이일 뿐이니.”

“너무 혹평하면 아이가 울진 않을까 걱정이군요. 끌끌…….”

자신의 그림을 전시하려다가 퇴짜를 맞은 이들에게 에반젤린은 그야말로 굴러들어온 돌이었다.

그렇기에 에반젤린이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네놈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냐, 물감을 찍어놓고 그림이라고 우기는 것이냐? 집어치워라. 네가 하는 건 예술이 아니라 정치일 뿐이다.

백버드 화백은 자신의 스승이었던 빈덴 카푸하가 자신의 그림이 아닌 아직 새파랗게 어린아이의 그림을 채택했다는 사실에 이를 짧게 갈았다.

“영감탱이가 노망이 난 게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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