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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505화 (1,505/1,559)

제 1505화

비화와 에반젤린이 칼 같은 협동과 거침없는 진격, 깔끔한 연계 등등으로 유명하다면 데이비의 출현은 그야말로 불도저의 출현 그 자체였다.

-이게 왜 되냐?

-그저 티오니스 성자 ㅋㅋㅋ

-요즘 성자들은 다 저러고 다니는 게 정상인가 ㅋㅋ

-??? : 아픈 자를 치료하는 법은 그 원인을 제거하는 겁니다.

-ㅋㅋ 성자(물리)

-와 진짜 아무리 가상현실이라지만 저게 된다는 게 더 놀랍네.

-현직 육체계 각성자입니다. 저건 육체 능력 뛰어나다고 되는 문제가 아님 ㅋㅋㅋㅋ

단순히 반사신경만으로는 저렇게 할 수 없다. 근본적인 장악.

즉 데이비는 그 전장의 모든 정보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기에 가능한 짓이었다.

게임이라곤 하나 그만의 어떤 규칙은 반드시 존재한다.

총알이 초당 몇 발씩 얼마의 속도로 날아가며 어떤 궤적을 그리는지. 그 모든 정보를 단시간에 장악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비화와 에반젤린이 ‘오, 대단한데? 나도 한번 도전해봐야지’ 였다면.

데이비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미친, 저걸 어떻게 해? 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만드는 플레이가 사람들의 눈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단순히 힘으로 밀어붙이는 수준을 넘어 순식간에 한쪽 루트를 잡고 비화와 에반젤린이 빠르게 진입할 수 있게끔 방해되는 것들을 모두 치워버리고 어그로를 끄는 것만으로 게임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버렸다.

-???

-포격 지원 없이 저게 된다고요?

-팩트. 다른 기믹. 지형 이점은 1도 써먹지 않았다.

-아니 미니건 달고 있는 철댕댕이 쉐이들은 다 뭘 하고 있는데.

너무 일반적인 학살에 일부는 급기야 적을 응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그런 응원은 부질없는 저항에 불과했다. 악랄하기로 손꼽히는 미션, 최고 난도를 애들 장난 수준으로 만들어버린 범인인 데이비는 비화와 에반젤린의 짜게 식은 눈동자를 맞아야 했다.

“벌써 끝이야?”

“아빠랑 하면 너무 쉬워서 재미가 없어.”

“맞아.”

“얘들아…….”

데이비가 상처받은 양 말하지만 둘의 반응은 냉담했다.

-ㅋㅋㅋㅋ 그러니까 적당히 잘했어야지 ㅋㅋㅋ

-혼자 다 부수고 다니면 누구든 재미없어질 거임 ㅋㅋ

현실이 아닌 게임이다.

즐기는 게 목적인데 현실 특수작전마냥 쉽게 밀어붙인다고 즐거워할 리가 없었다.

결국, 두 딸의 원성 아닌 원성에 데이비는 결국 후방지원용 장비만을 챙겨야 했다.

물론, 독자적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두 사람과 떨어졌을 땐 그 실력을 어김없이 발휘했지만 말이다.

잠수함에 침투하여 내부를 초토화 시키고 위험 등급의 생화학 미사일을 무력화시키고 난 후에야 미션이 끝을 맺었다.

“아빠 고마워요.”

“무얼. 다음에도 도움이 필요하면 불러.”

그 말을 끝으로 데이비는 바쁘다는 듯 금방 사라졌고 비화 또한 자신의 일을 위해 성역으로 돌아갔다.

이후 에반젤린은 솔로 플레이로 미션을 조금씩 밀고 나서야 방송을 멈췄다.

“흐음…….”

방송이 끝난 시각. 에반젤린은 묘한 표정으로 붉은색의 보석을 바라보았다.

블랙 슬라임 검둥이가 남긴 유품. 아마 이 안에 에너지를 다 채운다 하여 녀석이 부활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검둥이가 남긴 유산이 무엇일지는 사실 여러 면에서 궁금하던 참이었다.

“넌 대체 이 안에 뭘 남겨놓은 거야.”

비화의 말대로라면 이런 방식으로는 반년에서 1년 정도가 걸린다고 했던가. 그건 사실 낙관적인 대답이었다.

그녀가 언제까지고 이 게임만 붙잡고 있을 순 없었으니 말이다.

비화가 만들어낸 이 게임은 에반젤린이 방송을 하지 않아도 조금씩은 에너지를 쌓을 수 있는 구조로 만들었지만 그렇게만 하면 1년이 아니라 10년은 더 걸릴 터였다.

방대한 시간을 살아가는 고대룡인 만큼 사실 에반젤린에게 있어서 10년은 우스운 정도의 수치라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에반젤린은 1분 1초가 아까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그렇게 고민해보지만 무리하게 욕심을 부리지 말라던 비화의 말 때문에 다른 계획을 수립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었다.

특대규모의 커다란 인형을 품에 꼭 안은 채 침대를 뒹굴뒹굴하던 그녀가 캄캄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이대로는 안 돼…….”

뭔가 큰 것이 필요하다. 에반젤린이 하는 것에 사람들이 크게 몰입해줄 만한 것.

“다만, 발을 잘못 삐끗하면 관심병사가 되고 말 거야.”

다만 이게 정말로 어렵다는 건 에반젤린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고민에 휩싸였다.

그렇게 몇 시간이고 고민했지만 결국 해답이 나오지 않게 된 에반젤린은 짜증스레 인형을 퍽퍽 후려치고는 잠에 빠져들었다.

* * *

에반젤린이 잠든 시각.

일리나는 슬슬 부풀어 오를 기미를 보이는 배를 사랑스럽다는 듯 내려다보다 데이비에게 고개를 돌렸다.

“왔어?”

“어.”

익숙하게 입을 맞춰준다.

“두 사람은?”

“피곤했는지 먼저 잠들었어. 나도 너 오는 것만 보고 자려고.”

최근 일리나는 묘하게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을 때가 많았다.

“표정이 안 좋은데. 무슨 일 있어?”

“응? 아무것도 아니야.”

담담하게 고개를 저어 보이지만 데이비의 눈을 속일 순 없었다.

“말해봐. 표정에 다 드러나고 있으니까.”

데이비의 설득에 일리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요즘…….”

“응.”

“요즘 욕구불만이 너무 세게 밀려와서…….”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데이비는 피식 웃더니 그대로 깔깔 웃었다.

“아하…… 아하하하!! 아하하하!!”

크게 웃어대며 데이비가 자지러지자 일리나는 볼에 바람을 빵빵하게 넣고는 하얗고 작은 발로 데이비를 퍽퍽 걷어찼다.

“야! 웃겨?! 웃기냐고!”

“아하하하하! 그게 어떻게 안 웃겨!”

“너 진짜…….”

“이리와.”

일리나를 품에 당긴 데이비는 몸을 살짝 낮추고는 그녀의 허벅지 쪽에 팔을 걸어 그녀를 들어 올렸다.

“으꺄앗?!”

놀란 그녀가 허둥지둥한다.

“별문제 없어. 아이에게 부담이 가는 절대 안정기라곤 하지만…… 솔직히 탄도미사일에 적중해도 지금 네 배에 충격을 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그 말에 일리나가 눈을 크게 떴다.

“그러고 보니…….”

“그래. 신력으로도 내부를 확인하지 못할 정도로 견고하게 보호받고 있잖아. 알아낸 거라곤 우리 아이가 딸아이라는 것뿐이고.”

아직 알려지진 않았지만, 극히 일부만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만큼 일리나의 뱃속에 자라고 있는 막내는 엄청난 보호 상태에 들어서 있었다.

데이비의 말뜻을 이해한 일리나는 빨개진 얼굴로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조심스레 말했다.

데이비의 말대로라면 별문제가 없다는 뜻이 아닐까.

보통 임산부들은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이런 기분이 들지 않는다고 하던데. 뭐라 해도 특이한 케이스가 아닐 수 없다.

아니. 정확히는 아이가 생겼으니 이 정도로 그치는 게 아닐까.

“나 요즘 배도 나오고…….”

“그게 뭐.”

“몸매가 예쁘지 않으니까.”

“누가 신경 쓴대?”

“헤헤. 그럼, 나 예뻐?”

원초적인 질문에 데이비는 그녀를 들어 올린 채 조용히 올려다보았고, 일리나는 슬쩍 몸을 비틀어 미끄러지듯 내려오며 그의 입에 입술을 맞췄다.

달뜬 신음과 함께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그 분위기 속에서 데이비가 일리나의 네글리제에 손을 대려던 그 순간.

“저하!! 저하!!!”

다급한 외침에 분위기가 일순간 박살 난다.

“무슨 일이야.”

놀란 데이비가 일리나를 내려놓고 고개를 돌렸다.

에이미 실란.

데이비의 충직한 신하이자 전속 시녀. 영지의 대리관리인.

본래라면 퇴근했어야 할 에이미가 이 시간에 찾아왔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어지간한 문제도 날이 어두워지면 이렇게 다급히 찾아오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었다.

문을 열기가 무섭게 정복을 입고 있는 에이미가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데이비를 바라보았다.

“속히…… 속히 라운의 왕실로 가셔야 할 거 같습니다.”

“뭐?”

“폐하께서…….”

잠시 말을 끊은 에이미가 말한다.

“바리스 올 라운 폐하께서……. 조금 전 급작스럽게 승하하셨다고 합니다.”

방 안의 공기가 일순간 영하로 떨어진 것처럼 차갑게 얼어붙었다.

* * *

바리스 올 라운.

데이비의 쌍둥이 동생인 윈리의 오빠이자 데이비를 가장 잘 따르는 남동생이며, 데이비를 대신해 계승권을 물려받고 라운의 국왕이 된 녀석.

나이는 아직 한참 어리다.

역사적으로 단명하는 국왕들이 많다곤 하지만 바리스는 자기 관리가 철저한 익스퍼트급 이상의 존재였다.

당연 그뿐만 아니라 바리스에겐 데이비가 보호 마법도 걸어두었기에 그를 암살하는 건 사실상 불가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개소리란 말인가.

곧바로 정복을 차려입고 라운의 왕실로 텔레포트 했다.

철컥!!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데이비가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오자 기사들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소리치자 그대로 얼어붙었다.

“비켜.”

“아…… 옙…….”

노련한 기사는 그대로 얼어붙은 채 데이비에게 길을 터주었다.

반면 이제 갓 기사단에 입단한 신입 기사는 제 선배의 행동에 당황한 듯 소리쳤다.

“선배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재상의…….”

“조용히 해라! 저분이 누군지 알고 그러는 거냐!”

“누구시길래…….”

“데이비 올 라운 대공. 하인스의 대공이시다.”

“헙?!”

아무리 신입 기사라도 이름을 모를 리가 없었다.

건드리면 죄다 부숴버릴 것 같은 섬뜩한 기류를 풍기며 왕성으로 들어가는 데이비는 성자라기보다는 파괴신에 가까운 두려움을 심어주었다.

“저…… 저분이 서…… 성자님이란 말입니까?”

“그러니까 조용히 해라. 네가 흔히 알고 있는 성자라는 이미지와 달리 저분의 손에 목이 날아간 귀족이 한둘이 아니니.”

물론, 그들은 모두 자기 명을 재촉한 꼴이지만 하급기사들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콰앙!!

이윽고 국왕의 어전에 쾅! 소리 내며 들이닥친 데이비는 여럿 모여있는 귀족들을 차갑게 바라보았다.

“데이비 대공 각하.”

오래전부터 데이비를 지지해준 소드마스터 중 일각.

페일트리스 후작이 데이비에게 고개를 숙였다.

“후작. 대체 무슨 일입니까. 내가…… 잘못 들은 겁니까?”

그 말에 페일트리스 후작은 통한스러운 표정으로 무릎을 꿇었다.

“죽여주시옵소서…… 크흐흑…….”

그 어떤 대답보다 절망적이었다.

데이비는 멍하니 침대로 다가갔고, 새하얀 천으로 얼굴을 덮은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조금 피로해 보여도 병환 하나 없이 튼튼하던 바리스였다.

천천히 손을 뻗으려 하자 일부 귀족이 그를 제지하려 든다.

“대공 각하! 그건…….”

“…….”

하지만 데이비와 시선을 마주하기가 무섭게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건 뭐지? 남루드 백작?”

“아…… 아닙니다…….”

차갑게 돌아선 데이비는 천천히 천을 걷어 바리스의 얼굴을 확인했다.

바리스가 맞았다.

하지만 숨은 쉬고 있지 않았다.

대체 왜?

데이비로서도 혼란스러웠다.

영혼이 완전히 빠져나갔는지 흔적 따윈 보이지 않았다.

방어마법도 작동하고 있고, 음독의 흔적도 없다. 마치 수명이 다된 이가 갑자기 죽어버린 것처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바리스…….”

데이비의 눈동자가 빠르게 흔들렸다.

“윈리 왕녀 저하께서도 지금 라운으로 오고 계시다고 연락을 보내주셨습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왕후마마.”

데이비는 넋이 나간 얼굴로 침대의 옆에 주저앉아있는 바리스의 부인. 펠리스티 공녀에게 물었다.

그렇게 금실이 좋았던 탓인지 그녀는 자신의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흑…… 흐흑.”

“왕비 마마.”

“각하. 왕비 마마는 지금 충격으로 대답하실 수 있는 상태가 아니십니다.”

“그럼 경이 말해봐.”

“그것이…….”

짧게 중얼거린 그가 말했다.

“폐하께서 평소와 다름없이 명상을 하시던 중에…….”

갑작스레 컥! 소리와 함께 사망해버렸다고 한다.

누군가의 암살이 아닌 경악스러운 이 현실에 데이비는 할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때였다.

“대공 각하. 그보다…… 폐하께서 승하하셨다면…… 현재 자리가 비게 됩니다.”

귀족이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말했다.

“현재. 왕자님께서는 너무 어리셔서 국정을 다스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데이비가 차갑게 고개를 돌렸다.

“각하. 제 충언을 곡해하지 말고 들어주십시오. 현재 승하하신 폐하를 대신하여 라운을 다스릴 수 있는 분은…… 오로지 각하뿐이십니다.”

바리스와 데이비를 제외한 두 왕자는 죽었다.

국왕은 바리스가 되었으나 바리스가 죽어버린 이상 계승권을 포기했다 해도 데이비만이 유일한 적통이었다.

아니. 혈육으로 따지면 데이비에게 결격 사유 따윈 없었다.

“여보시게! 지금 이 상황에서!!”

“저저 몰상식한 자를!”

사방에서 말이 쏟아져나오지만, 데이비는 그를 그저 노려본다.

말은 험하게 해도 바리스의 곁을 지키며 라운을 지탱해온 충신이다.

“각하…… 국왕의 부재는 국가의 혼란으로 이어집니다……. 이는 만백성의 혼란으로 이어질까 저어됩니다.”

그가 고개를 들었다.

“현재 승하하신 바리스 국왕 폐하를 대신하여 국정을 다스릴 수 있는 분은 오로지…… 오로지 각하…… 당신뿐입니다.”

그는 시뻘겋게 충혈된 얼굴로 데이비를 바라보았다.

“그러니…… 부디…… 폐하께서 지키려 노력하셨던 라운을 지켜주십시오.”

데이비는 바리스의 시신을 뒤로한 채 주먹이 부서질 듯 강하게 쥐었다.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

데이비는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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