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06화
처음 보았을 때 느낀 것은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평소와 달리 머릿속에선 그 어떤 것도 명확하게 풀리지 않았다.
마치 먹구름이 강하게 끼여 햇볕이 들지 않는 것처럼.
평소에 주변에서 그렇게 좋다 좋다 하던 잔머리도 완전히 굳어버린 것처럼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왜 이렇게 일찍 떠난 것이냐.
너무 소중해서 그 상실의 아픔이 도저히 익숙해지질 않았고 너무 뜬금없는 죽음이라 더욱 아파졌다.
“각하! 정신을 다잡으셔야 합니다!”
귀족들의 외침에 나는 조용히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가 말했다.
“경.”
“예?”
“그대가 바리스의 충신이 아니었으면 지금 머리통을 날려버렸을 거다.”
“…….”
“그러니…… 좀 다물어주겠나?”
휘청거리듯 바리스에게 다가가 녀석의 손을 잡는다.
이해할 수가 없다.
물론, 명상 중에 주화입마에 빠져서 죽는 이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바리스의 경우 좀 뜬금없었다.
아니 정말로 확률이 낮았다.
그보다 이렇게 갑작스레 급사할 이유가 없었다.
조사가 필요하다. 이건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타살일 가능성이 크다.
내 눈에 살기가 서리자 주변에서 깜짝 놀라 흠칫하는 게 보였다.
“가…… 각하?!”
“바리스가 죽던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보고해라 베스퍼스 시종장.”
과거 크리아네스 올 라운 국왕을 모셨던 시종장이자 이제는 바리스를 모시는 시종장 베스퍼스.
베르닐의 친족이기도 한 그는 조용히 그날 있었던 일을 모두 말해주었다.
정말 아무런 문제도 없는 평범한 하루였다.
“각하. 혹 타살을 염려하신 것입니까.”
베스퍼스 시종장의 질문에 나는 눈을 감았다.
“장례는 며칠 미루도록 하지. 다만 그 과정에서 국왕의 자리 따위 며칠간은 공석으로 두도록.”
그 말을 끝으로 바리스의 시신에 보존마법을 걸었다.
“향후 국정은 왕후께서 맡으십시오.”
“예?”
놀란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는 펠리스티 공녀. 아니 왕후의 눈은 이니 얼마나 울었는지 퉁퉁 부어있었다.
“바리스의 곁에서…… 바리스를 가장 가까이 봐온 왕후라면 국정을 다스릴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여성…….”
“그런 건 아무래도 좋습니다. 당신 이상으로 바리스의 정치를 잘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적법하지 않아요……. 적법한 혈통은…….”
“왕후. 당신이 바리스의 자리를 지켰다가 조카 녀석에게 물려주십시오.”
내 말에 왕후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자식이 물려받을 자리를 직접 지키되 바리스가 하려고 했던 선군으로서의 정치를 고스란히 보여주라는 소리였다.
“나는 국왕의 자리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각하!!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각하 말고는 적법한 이가 현재 없사옵니다!”
“이는 라운의 근간을 뒤흔드는…….”
“모두 그 입 닥쳐라.”
싸늘하게 내뱉자 모두의 몸이 바짝 굳었다.
“최소한…… 하루에서 이틀 정도만이라도……. 그 입을 닥쳐.”
억지로 뱉어내듯 한마디 한마디를 내뱉은 뒤 나는 공허한 얼굴로 바리스를 바라보았다.
이에 다른 귀족들은 서로 눈치를 살피고는 조용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뿌우우~~~
주기적으로 국왕의 승하를 알리는 뿔피리 소리가 울려 퍼진다.
라운의 수도가 놀라우리만치 고요한 데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니까.
왕후만 남은 고요한 침소 속에서 나는 바리스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힘을 방출했다.
“대…… 대공?!”
“확인해야 합니다. 바리스가 정말로 죽은 건지.”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는…….”
“아무래도 이해가 안 되는 구석이 너무 많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확률이 얼마라고 생각하십니까. 극히 천문학적인 확률입니다. 눈앞의 현실도 현실이지만…… 이건 알아봐야 합니다.”
내 말에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았다.
바리스의 육신에선 혼이 느껴지지 않았다.
망자가 되면 시간이 흘러 혼이 빠져나간 것 같은 현상과 같다.
독살이나 다른 타살의 흔적은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증언대로 주화입마의 방식으로 사망했다면 내부의 혈도가 꼬여있어야 하는데 그 또한 이렇다 할 흔적이 없었다.
“……저승아.”
나는 곧바로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저승이를 불러냈다.
“예.”
내 부름에 곧바로 나타난 저승이가 나를 똑바로 직시한다.
“영혼의 강으로 가서 바리스의 혼을 찾아.”
“찾으라 하심은…….”
“이 녀석은 여기서 이렇게 죽을 녀석이 아니야.”
“설마…… 소생시키기라도 하실 생각입니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소생의 술.
조건만 놓고 보면 불가능할 가능성이 크지만 초기와는 달리 조건 자체는 전보다 너그러운 편이었다.
수명이 깎여나가고…… 그로 인해 운명이 비틀릴지라도, 여기서 바리스를 잃을 순 없었다.
“혼의 종류가 너무 많습니다. 찾는 데에 시간이 조금 걸릴 가능성이 있습니다만.”
“상관없어.”
“알겠습니다.”
저승이는 고개를 숙인 뒤 그대로 흩어지듯 사라졌다.
이후 나는 멍하니 바리스의 곁을 지켰다.
어째서 이리 떠난 거냐. 정말로 죽은 것이냐. 난 아직 네 죽음을 받아들일 자신이 없다. 바리스.
정말로 네가 죽은 거라면…… 나는 어찌 해야 할까.
* * *
가장 먼저 도착했던 나를 제외하고도 속속들이 바리스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듣고 다른 이들도 찾아왔다.
바리스의 친누나이자 현재 달의 숲에서 엘프들과 사는 타냐.
중앙 마탑의 장로로서 최고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천재마법사.
율리스와 혼인했던 윈리.
마지막으로 삼촌의 죽음 소식에 하던 일도 다 내팽개치고 찾아온 하인스의 아이들까지.
그들 모두 반응은 달랐지만, 그 방향은 모두 같았다.
“안돼…… 안돼!! 이런 게 어딨어!!! 이런 게 어딨냐고오!! 누구 마음대로 죽어! 이 나쁜 새끼야!!”
가장 크게 오열하는 건 다름 아닌 같은 쌍둥이 윈리였다.
윈리는 바리스의 시신을 끌어안은 채 대성통곡을 했다.
매번 투덕거리며 싸우긴 했지만 가장 바리스와 친했던 윈리였기에 그 상실감은 감히 다른 이가 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닐 것이다.
한켠에 눈물을 훌쩍이고 있는 바리스의 생모이자 전 후궁 또한 보였다.
그녀는 바리스가 왕위를 물려받을 때 다른 이들을 따라 조용한 영지로 내려간 것으로 들었건만 아들의 죽음 소식에 한걸음에 달려온 모습이었다.
“데이비. 이게 어찌 된 게야.”
페르세르크는 이제 침대에서 관으로 자리를 옮긴 바리스의 시신을 보며 굳은 얼굴로 물었다.
“어째서 폐하가?”
“잘 모르겠다…….”
한숨을 절로 내쉰다.
일각에서 귀족들은 발리 비어있는 자리를 채워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물론, 펠리스티 공녀, 아니 바리스의 부인이자 이 나라의 국모인 그녀가 대리 통치하도록 맡겼지만, 일각에선 펠리스티 공국, 즉 외국의 출신인 그녀에게 이 나라의 실권을 맡기는걸 우려하는 이도 많았다.
“데이비. 우선 머리 좀 식혀. 표정이 너무 안 좋아.”
굳은 얼굴로 나를 걱정해주는 일리나의 말대로였다.
고작 이틀 정도였지만 나는 그 어떤 때보다 극심한 피로를 느끼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 잠깐 쉴게.”
그리 말한 뒤 나는 오래전 내가 머무르던 1왕자 궁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하인스로 내려간 이후부터 거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곳이지만 바리스가 주기적으로 관리를 해준 것인지 처음보다 오히려 상태가 좋아 보였다.
고요한 분위기 깨끗한 분위기. 내부로 들어서자 내가 과거 사용하던 물건들도 고스란히 남아있는 게 보였다.
아무리 형제라도 배다른 형제를 위해 이렇게까지 해주던 착한 동생의 온기가 느껴진다.
아무도 없는 공허한 공간 속에서 나는 조용히 침실 내부로 들어갔고 그 한켠에 놓인 바리스와 내가 있는 그림을 보고 그것에 손을 뻗었다.
손끝이 이상하리만치 크게 떨렸다.
감정 제어가 잘되지 않는다.
“크흐…… 흡…….”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새어 나오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조용히 그것을 붙잡았다.
“울고 싶으면 울어야지.”
어느새 따라온 것일까.
혼자 있게 해달라고 했는데.
쪼르르 날아온 페르세르크가 어느새 주저앉아있던 내 어깨를 두드리고 말했다.
“본녀는 그대의 모든 것을 보듬어줄 터이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한참을 울어야 했다.
마음을 어느 정도 추슬렀을 땐 이미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붉게 떨어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침대에 등을 기대어 앉아있던 나는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잠들어있는 페르세르크를 바라보았다.
겉보기엔 멀쩡해 보여도 그녀도 마음이 심란할 것이다.
아니 벌써 울었구나……
그녀의 눈가에 은은하게 촉촉해진 것들을 닦아준 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본다.
바리스의 빈자리는 생각보다 너무 거대했다.
그때 저승이가 허공을 열고 나타났다.
“확인했습니다.”
“바리스의 혼은?”
“그것이…….”
저승이는 조금 떨떠름한 얼굴로 답했다.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 짧은 한마디에 머릿속이 차갑게 식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경우는 두 가지뿐이었다.
아직 죽지 않았거나.
혹은 벌써 윤회의 고리에 완전히 올랐거나.
바리스의 선업은 상당하기에 그가 윤회의 고리에 오래 있을 이유는 없다. 확실히 찾기 전에 윤회의 고리를 순환했다면 이미 환생했어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나는 후자보다는 전자에 가능성을 두었다.
아니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상실감을 견딜 수가 없었다.
“마음을 다잡으셔야 합니다. 당신은 현재 이 세상의 기둥이나 다름없습니다. 마음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저승아.”
“예?”
“닥쳐라.”
“…….”
저승이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의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만큼은 아니었다.
“혹여 놓친 건 아닌가?”
“꼼꼼하게 확인했습니다. 덕분에 죽을 지경이지만요. 하지만 아직 죽지 않았을 거라는 판단은 안일합니다. 시신의 상태를 보면 아시겠지만, 영혼이 빠져나간 게 틀림없습니다. 그건 망자의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의 설명에 나는 이를 빠득 소리 나게 깨물었다.
“하지만…… 단순히 죽었다고 하기엔 너무 미심쩍은 구석이 많습니다. 어쩌면 인위적인 이유로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간 게 아닐까 가능성도…….”
“타살…….”
그 말과 동시에 내 전신에서 살기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고 저승이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물러났다.
“어떤 놈인지 몰라도 바리스를 죽인 놈이 있다면, 그놈은 절대 곱게 두지 않을 거다.”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하건대. 바리스의 혼을 빼내 나를 이렇게 고통스럽게 만든 놈은 반드시 지옥의 끝자락을 보게 되리라.
내 분노에 저승이가 씁쓸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 * *
삐릭!
-완전 각성까지 48시간 52분 21초.
“후우…… 이걸 어쩐다.”
슬픔에 완전히 빠져버린 왕성을 보는 한 영혼이 있었다.
-아니 그러니까. 멍청아. 하지 말라고 했잖아.“
그의 곁에는 성별을 알아보기 힘든 빛처럼 생긴 작은 요정 같은 것이 붕붕 뜬 채 그를 타박하고 있었다.
“아…… 아니. 나는 그냥 조금 쉬고 싶었다고 해야 하나. 이렇게 될 줄 몰랐지!”
-어휴 이 멍청한 자식. 너 때문에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이 혼란에 빠진 줄 알아?!
“나도 후회 중이다…….”
현재 이들이 있는 곳은 라운의 한 작은 영지였다.
그리고. 이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바리스. 네 형이라는 사람. 네 혼을 볼 수 있지 않아? 네가 돌아가기 전에 육체가 망가지면 그걸로 끝이야. 반드시 지켜야 해.
“그건 알고 있지만 너도 알다시피 우리 지금 여기 발이 묶였잖아.”
시작은 간단했다. 명상 중에 유체이탈을 통해 왕국의 상태를 몰래 보고 싶다는 이유로 시작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뭔가가 잘못되었는지 능력 각성 상태에 들어가면서 육체에 들어갈 수가 없게 되면서 이곳까지 퉁겨져 나와버렸다는 점이었다.
시간이 지나거나 누군가가 자신을 발견해주어야만 하건만.
이 작은 영지에서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미치겠네…….”
-그래도 혹시 몰라. 보통 사람이었으면 벌써 화장이라도 했겠지만…… 네 육신은 그래도 이 나라에서 가장 귀한 육체잖아.
국왕의 육신이기에 바로 화장하거나 매장하진 않을 터.
그렇게 생각하면 낙관적이지만…….
“나는 그것보다 형님이 이 사실을 알았을 때 나를 어떻게 찢어버릴지 그게 걱정이다…….”
데이비에게 바리스는 라운의 국왕 이전에 소중한 동생이었다.
죽었다고 제 형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는데 알고 보니 혼자 실수했다가 착각을 일으킨 것이었다?
사지를 가로 세로로 쭉쭉 찢겨도 할 말이 없었다.
“어쩌다가 너랑 계약을 해서…….”
-웃기는 소리 하네. 난 네게 힘을 빌려주는 것뿐이지만 사고를 일으킨 건 내가 아니라 너야. 네가 죽으면 나도 곤란해져 이 멍청아.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페어리의 흔적이 너 때문에 끊어진다고 생각하면 내 머리통이 아파질 지경이라고!
놀랍게도 바리스의 혼과 같이 있는 빛으로 된 유정은 다름 아닌 멸종한 것으로 알려진 페어리의 영령이었다.
“그래도…… 조금 궁금하다.”
-또 뭐가!
“내가 없으면…… 많은 사람이 슬퍼해 줄까?”
-그걸 말이라고…… 넌 사랑받고 있는 거야.
“하하…….”
데이비는 바리스가 저 지경이 된 원인을 반드시 응징하겠다 다짐했고.
그 사실을 모름에도 바리스는 오한에 몸을 떨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