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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509화 (1,509/1,559)

제 1509화

유리아 헬리샤나. 달의 숲의 수장이자 하이 엘프이며 상위정령도 다룰 수 있는 재능있는 존재이기도 했다.

물론, 그녀의 주 관심사는 오로지 미식과 몸에 좋은 재료를 이용한 새로운 시도였기에 다른 점이 상당히 묻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 그녀의 내력에 대해 읊는 이유는 간단했다.

‘둘은 반드시 배신할 거에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수시로 배신을 밥 먹듯이 하는 미식연구부가 아닌가.

유리아가 괜히 부서의 장으로써 있는 것은 단순한 땅따먹기나 가위바위보가 아니었다.

이미 둘의 계략 따위는 순식간에 간파할 정도의 눈치가 있다는 뜻이었다.

‘문제는 제 무력으로 둘을 제압하는 건 힘들다는 점인데…….’

그렇다고 영혼 상태인 바리스나 조력자의 수준으론 어림도 없었다.

본래대로라면 지금 당장 돌아가서 바리스에 대한 진실을 전하는 게 맞았다.

그녀는 데이비의 수하였으니까.

하지만 바리스의 간곡한 부탁을 마냥 무시할 수도 없었다.

이대로라면 바리스는 데이비에게 척추가 접힐지도 모르고 그 외의 다른 이들에게도 좋은 꼴은 못 볼 것이다.

국왕이라 할지라도 윈리라면 바리스의 머리털을 잡아 뜯으려 들것이고 펠리스티 공녀, 즉 라운의 왕후는 아마 한동안 그에게 삐져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가엽지 않는가.

기왕이면 기적처럼 모두가 웃는 결말을 만드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싶었다.

‘미식으로 사람이 행복을 느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걸요.’

바리스가 의도한 게 아니었기에 유리아는 이번 작전을 기적으로 바꾸기로 했다.

데이비를 속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데이비가 온전한 신격이라 할지라도 세상사 모든 것을 아는 건 아닐 테니 말이다.

즉, 세인트 디어를 포획해서 가져간 뒤 죽은 바리스를 애도하고 그의 영혼에 축복을 내려주기 위해 잠시 시간 정지를 풀어달라고 부탁한다.

비록 육신에서 혼은 떠났지만, 혼과 하나였던 육신을 통해 축복을 내린다는 사실상 조금 얼토당토않은 미신을 들이밀 셈이었다.

데이비도 다 알면서도 아무 말 하지 않을 만한 일이긴 했다.

미신이고 효과가 없음을 알면서도 그 마음 씀씀이를 거부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데이비가 시간 정지를 잠깐 해제하는 그 순간이 틈이다.

다만 그전에 방해꾼을 치워야 했다.

이번 작전은 기밀이 최우선이다.

일이 성공한 후에도 절대 이 사실이 알려져선 곤란했다.

문제는 둘의 낌새가 심상찮다는 점이었다.

선택지는 두 가지.

둘과 협상하거나, 둘을 제압하거나.

후자의 경우는 가능성이 낮은 만큼 유리아는 전자를 택해야 하는 확률이 높다.

하지만. 그게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후 유리아는 식사를 제안하며 음식을 꺼내 준비했다.

“일단 일을 정리하기 전에 잠시 이야기 좀 나눌게요.”

유리아는 바리스의 혼을 뒤로한 채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는 륀느와 점순이에게 다가갔다.

“두 분. 긴히 할 이야기가 있어요.”

“난 빠지련다.”

“륀느도 목숨줄은 아깝다고 보고.”

“잘 들어요. 두 사람이 저를 배신하면 저뿐만 아니라 미식연구회가 박살 날 거예요.”

유리아는 태연하게 거짓말을 섞어 넣었다.

물론, 거짓말이 아닌 진실이 상당수 섞여 있지만 말이다.

“전제가 틀려먹었잖아. 네가 이런 짓을 안 하면 문제없는 거 아니야? 이전의 일 잊었어? 괜한 선 넘지 마.”

“예리하시네요. 맞아요. 하지만 잘 생각해봐요. 모두가 기적으로 여기고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 있고, 누군가가 아작나는 미래가 있어요. 당신들은 후자를 택할 건가요? 선을 넘는다라…… 틀린 말은 아니죠. 하지만 정치적으로 봤을 때도 그렇고, 이 사실이 알려지면 폐하와 함께 있는 저 페어리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시작은 바리스가 했지만, 근본적으로 그에게 힘을 빌려주면서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은 건 페어리였다.

“데이비 님이 속을 거 같진 않다고 보고.”

“게다가 이 사단의 전말이 단순히 폐하의 실수에서 시작된 일임을 알면…… 좀 슬프지 않을까요?”

륀느와 점순이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유리아의 말도 일리는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배신을 밥 먹듯이 하시는 두 분이라도 이번만큼은 협력해주었으면 해요. 이번 일은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하니까요.”

“물론, 네 말도 일리는 있어. 하지만 우리가 그동안 그 인간에게 해온 짓 때문에 아슬아슬한 건 알지? 만에 하나라도 비밀이 새나가면 우린 끝장이야.”

“그렇다고 당장 진실을 말해 저를 팔아넘기신들 달라지는 게 있을까요?”

“왕위를 계승한다고 명시.”

륀느가 미식연구부의 부장만이 쓸 수 있는 배지를 높이 들며 눈을 반짝였다.

“결국…… 협상은 결렬이네요.”

“아무리 그래도 너무 위험한 모험이…… 커헉?!”

그때였다.

가만히 있던 점순이가 각혈을 하며 무너져내렸고 륀느가 흠칫 놀라 라이트 세이버를 뽑아 들었지만, 그녀 또한 얼마 가지 않아 무너져내렸다.

“이 끔찍한 미각 데이터……. 에반젤린의 떡볶이로 추정……. 에러…… 에러…… 에러.”

점차 힘없는 목소리로 에러만을 반복하며 추욱 늘어진다.

“대체 뭘 먹였길래…….”

바리스는 륀느와 점순이가 박살 나버린 것을 보며 멍한 얼굴을 했다.

“이렇게 된 이상 돌이킬 수 없어요. 폐하 저는 왕성의 평화. 쓸데없는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정말 위험한 강을 건넜답니다. 부디 제 노력을 잊지 말아 주세요.”

“당연히 그리하겠습니다. 만에 하나 잘못되더라도 당신은 잘못이 없으니까요.”

“그거면 충분해요.”

유리아는 품 안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 둘을 포박했고 적당한 곳에 숨겨놓았다.

이후 바리스와 함께 있던 빛의 존재. 페어리 나오의 도움을 받아 세인트 디어를 포획하는 데에 성공했다.

위치만 찾아낸다면 잡는 거야 어려울 것도 없었으니까.

버둥거리는 세인트 디어는 흉포하게 난동을 부렸지만, 유리아는 고통 없이 숨을 거두는 것으로 녀석을 갈무리했다.

“미안합니다. 유리아 양.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건만…….”

“후훗. 저는 좋은 시나리오가 있다면 그걸 믿어주고 싶을 뿐이에요.”

그녀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해체한 고기들을 챙겼다.

“굳이 여기서 해체해야 하는 거야?”

그때 조용히 있던 페어리 나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계획을 위해선 심장에 있는 마핵은 반드시 필요해요. 하지만 확률이 100퍼센트가 아닌 만큼 여기서 마무리를 짓지 않으면 그곳에서 실패했을 경우도 무시할 수 없죠. 게다가 왕성의 분위기가 그리 좋지 않은 것도 있구요.”

이후 유리아는 그녀들을 태워주었던 데이비의 사신수 주작 불닭이가 합류하자 곧바로 올라탔다.

-끼이익!

녀석은 륀느와 점순이가 보이지 않자 의아한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두 사람은 후에 따라올 거에요. 둘 다 부유 능력이 있으니 걱정 마세요.”

이에 불닭이는 크게 포효한 뒤 빠르게 날아올랐다.

“폐하. 제가 시간 정지를 해제하는 찰나의 순간에 반드시 돌아오셔야 합니다.”

바리스의 혼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남은 것은 근처의 동굴에 숨겨진 기절한 륀느와 점순이뿐이었다.

“에반젤린 아가씨의 떡볶이는 정말 성능 확실하네요.”

그녀가 추구하는 미식에는 극한으로 반하는 물건이지만 말이다.

* * *

초상집이나 다름없는 왕성은 주기적으로 국왕의 서거를 알리는 뿔피리가 울려 퍼진다.

우울한 분위기가 곳곳에 보인다.

국왕의 죽음이 알려지고 꽤 시간이 흘렀는데. 분위기는 상당히 침체되어있었다.

그만큼 바리스가 인망이 두터웠다는 소리이리라.

본래 초기 계획은 고기의 맛을 좀 본 뒤 이동하려 했지만 두 사람의 배신을 확인한 시점에서 시간이 생명이었다.

‘두 사람이 오기 전에 상황을 종료시켜야 설득이 가능해요.’

굳이 들쑤실 필요 없다는 식으로 말이다.

세인트 디어의 축복이 서린 마핵을 소중하게 보관한 채 데이비를 찾아낸 그녀가 말했다.

“은공.”

“유리아. 미안한데 나중에 이야기하자.”

침체된 목소리만 들어도 그 슬픔이 느껴진다.

유리아는 그래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이 슬픔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그녀가 가져왔으니 말이다.

“은공…… 많이 슬프신가요…….”

“그러네…….”

담담하게 답하는 모습에 유리아는 말없이 그의 뒷모습을 보다 천천히 걸어갔다.

“은공. 제가 세인트 디어의 마핵을 가져왔어요.”

“세인트 디어?”

“네. 미신이긴 하지만…… 오래전 세인트 디어의 마핵은 영혼에 축복을 준다고 알려져 있지요. 먹을 수도 없고, 이미 승하하신 폐하에게 소용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

“이걸로 애도를 할 수 있을까요?”

유리아는 침착하게 밑밥을 깔았다.

이에 데이비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제 나름의 애도 방법을 생각해보았지만…… 역시 이것 말고는 없었던 것 같아요.”

“고마워. 유리아. 늘 이렇게 신경 써줘서.”

“그런 소리 말아요. 은공은 제 모든 것을 구원해주신 분이세요. 제 평생을 당신께 은혜를 갚을 수 있게 해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답니다.”

유리아의 미소에 데이비는 쓰게 웃어 보였다.

“오라버니?”

그때 한켠에 있는 의자에 기대어 잠들어있던 윈리가 초로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윈리. 들어가서 쉬어.”

“어떻게 그래요……. 이 멍청이가 이렇게 허무하게 가버렸는데…… 아직 작별도 다 못했는데…….”

훌쩍거리며 흐느끼는 그녀의 모습에 데이비는 쓴 표정을 지으며 윈리를 품에 안아주었다.

“미안하다 윈리. 내가 좀 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

“그게 어떻게 오라버니의 탓인가요……. 멋대로 죽어버린…… 흐흑……. 그 나쁜 놈의 잘못인데…….”

결국, 울음을 참지 못하고 다시 데이비의 품에서 흐느끼는 윈리였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유리아는 그저 말없이 기다렸다.

한참을 울었을까 눈이 퉁퉁 부은 채로 그녀가 유리아의 손에 쥐어진 마핵을 바라본다.

“그게…… 세인트 디어의 마핵인가요?”

“네. 부인, 효과가 있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마음의 짐을 조금 덜었으면 해요.”

“고마워요……. 흐흑…… 이 은혜…… 잊지 않을게요.”

흐느끼는 윈리를 보며 자책감이 들긴 했지만, 유리아는 마음을 다잡았다. 성공하면 모두가 기뻐할 수 있다.

물론, 바리스가 실수했다는 사실을 알려도 상관은 없다. 이래저래 소동이 있긴 하겠지만 결국 바리스가 돌아왔다는 사실에 기뻐할 이들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 없다면 과감하게 제하는 것도 방법이리라.

이윽고 유리아는 마핵에 정령 마나를 감싼 뒤 데이비에게 말했다.

“은공. 외람되지만 폐하의 육신에 걸린 시간 정지를 잠시 풀 수 있을까요?”

“그게 필요해?”

“네. 미신이라곤 해도…… 정성은 필요하니까요.”

“그렇게 해요 오라버니. 녀석의 육신을 언제까지 붙잡고 있어도 결국 바뀌는 건 없으니까요…….”

윈리의 말에 데이비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끄덕인 뒤 시간 정령 알타이르를 소환했다.

그리고 바리스의 육신에 걸린 시간 정지를 해제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이후 그녀는 정령 마나를 이용해 마핵을 바리스의 육신 위쪽 허공에 띄우고는 양손을 모아 전설 속에 남겨진 노래의 구절을 노래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마핵이 바리스의 육신에 스며든다.

그럴 수밖에. 축복이 거짓이 아니라면 죽은 게 아닌 유체이탈 상태의 바리스에겐 직빵으로 먹히는 효과였으니까.

신기하기 그지없는 그 광경을 말없이 지켜보기를 한참.

유리아는 피가 마르는 기분이 들었다.

‘왜 돌아오지 않죠? 지금쯤이면 뭔가 변화가 있어야 할 텐데.’

설마 또 문제가 생긴 것일까. 시간을 끌고는 있지만 지금 데이비의 모습을 생각하면 의식이 끝나는 대로 다시 시간을 정지시켜 애도 기간 동안 바리스의 육신이 썩지 않게 둘 것이 틀림없었다.

식은땀이 흐르고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되면 별수 없이 폐하를 팔아먹어야 하는데 말이죠…… 괜히 잘못 말했다가 저도 싸잡아서 아작날 수 있으니…….’

순간 오만가지 생각을 하던 그녀가 돌아오지 않는 바리스를 향해 투덜거리던 찰나였다.

말없이 바리스에게 애도를 보내던 윈리가 눈을 크게 떴다.

“오라버니?”

동시에 유리아가 눈치채고 빠르게 물러났고 데이비는 바리스의 손목을 잡아 맥을 빠르게 진단했다.

“바리스…… 바리스!!”

그리고는 다급히 바리스를 부르며 그의 몸에 막대한 생명력을 부여하기 시작했고, 죽은 듯 침묵하고 있던 바리스가 이내 하지 않아도 될 기침 소리를 내며 벌떡 일어났다.

“커헉! 쿨럭! 쿨럭!”

그는 마치 죽었다가 기적처럼 되살아난 사람마냥 고통스러운 기침을 계속 토해냈고 그런 그를 보는 데이비와 윈리는 놀란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바리스!! 오 세상에 정말로 일어난 거야?! 오라버니! 바리스가!”

“바리스의 혼이 맞아. 언데드도 아니고, 이런 경우는 처음인데…….”

데이비는 이상함을 눈치챈듯했지만, 바리스가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이 그것을 덮었는지 다른 소리는 하지 않았다.

곧바로 윈리가 바리스에게 안겨들었고 데이비는 긴장이 풀렸는지 헛웃음을 흘리며 한발 두발 물러났다.

“너 살아난 거야?! 정말로?! 진짜지?! 거짓말 아니고 살아난 거지?!”

“그…… 그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는데…… 일단 좀 떨어져. 임마…….”

바리스는 당황한척하며 윈리를 떼어내려 했다.

“멍창아! 어쩌다가 갑자기 죽어서 이 사달을 일으켜!”

엉엉 우는 윈리의 모습에 바리스는 찔리는 게 있는지 결국 입을 다물었다.

“근위병! 가서 어전에 전해. 바리스가 깨어났다.”

“예? 그게 무슨…… 헙?! 폐…… 폐하!”

소란을 듣고 들어온 근위기사들은 바리스가 깨어있는 모습을 보고 놀란 듯 소리쳤다.

“미안하다. 짐이 부덕하여 그대들에게 짐을 지웠구나.”

“폐하! 신들의 불충을 용서치 마시옵소서!”

기사들은 곧바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

그제야 바리스는 자신의 부재가 얼마나 큰 문제를 일으켰는지 직감한 듯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조용히 침묵하고 있는 유리아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짐이 얼마 만에 깨어난 거지?”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되었습니다. 폐하.”

데이비가 담담하게 존대하자 그는 씁쓸한 얼굴로 근위기사들의 눈치를 살폈다.

“근위대. 가서 전하라. 짐이 돌아왔다고.”

“명 받들겠습니다!”

흐느끼던 기사들은 바리스의 명령에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뛰어나갔다.

본인들이 생각하기에도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상황이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혼란의 중심이었던 바리스가 죽음에서 돌아왔으니 말이다.

“간간이 그런 경우가 있다더라. 죽은 사람이 기적처럼 다시 살아나는 경우가. 다만 이렇게 장기간 죽어있다가 살아난 적은 없는데…….”

그가 유리아를 흘끗 보자 유리아도 의아한 듯 박자를 맞춘다.

“세인트 디어에 그런 효능이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어요. 은공. 어쩌면…… 축복을 내리면서 기적이 생긴 건 아닐까요?”

“그래?”

묘한 표정으로 바리스와 유리아를 보던 데이비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지금은 바리스가 깨어난 게 중요하니까.”

국왕의 죽음으로 슬픔에 잠겨있던 라운의 왕성은 바리스의 부활 소식으로 분주해졌다.

그 시작은 어전이었다.

펠리스티 공녀. 즉 이 나라의 왕후였던 그녀는 자신이 국왕의 자리를 유지하기에 너무도 부족함을 잘 알고 있었다.

사랑하던 남편이 지켜온 이 나라가 자신의 손에 무너진다는 건 끔찍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죽은 바리스를 배신할 순 없었다.

바리스가 남겨놓은 이 나라를 위해서라면 귀족들의 제안을 받아들여야 하지만 마음으로는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못을 박고 있었다.

데이비 올 라운. 못난 이인가 하면 그건 아니었다. 잘생기고 착하고, 능력이 있으니까.

차라리 데이비에게 왕위를 넘겨버릴 수 있다면. 이리 고통스럽진 않았을 것이다.

왕위를 포기한 데이비가 절대 왕위에 오르지 않겠다 선언한 현 상황에서 그녀는 어떻게든 나라를 이끌어나가야 했다.

갖은 고민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아이를 떠올렸다.

‘왜 이렇게 먼저 떠나서 나를 이렇게 괴롭게 하는 건가요. 이 나쁜 사람…….’

화가 나고 서러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아도 눈물을 흘릴 수 없었다.

“마마. 불충한 신을 용서치 마시옵소서…….”

“경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 뜻을 모르지 않아요.”

조용히 중얼거린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결단을 내리기 위해 주먹을 꽉 쥐었다.

‘미안해요……. 죽고 나서 당신의 앞에 섰을 때. 아니, 당신의 앞에 설 자격도 없겠지만. 지금 제가 저지르는 죄를 고하고 벌을 받을게요……. 당신과 저의 아이를 위해서. 그리고 이 나라를 위해서…….’

속으로 그리 생각했다.

“후우…… 폐하께서 기적처럼 살아 돌아오셨으면 정말 좋으련만…….”

귀족의 중얼거림에 그녀도 말했다.

“맞아요…… 저렇게 버젓이 살아있는 모습을 보기만…… 어?”

그러던 중 그녀가 굳어버리고 그녀의 이상행동에 귀족도 고개를 돌렸다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폐…… 폐하?”

“미안하게 되었소. 내 그대들에게 너무 큰 짐을 지웠어.”

“폐하!!!”

옥좌에 앉아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던 그녀는 섭정을 상징하는 관과 장대를 냅다 던져버리고는 체통도 잊은 채 그대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그대로 바리스의 품에 안겼다.

“세상에…… 폐하! 제가…… 제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요?!”

울먹거리며 소리치자 바리스는 말없이 그녀를 끌어안았다.

“미안합니다. 부인, 내가 당신을 너무 힘들게 만들었어요.”

“폐하!”

“이제 괜찮습니다. 내가 왔어요. 기적이 내려 부활했습니다.”

자세한 내막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뒤따라오는 데이비에게 고개를 돌리자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언데드 같은 게 아닌 진짜 부활임을 입증받는 순간이었다.

“세상에…… 폐하!”

이윽고 귀족들은 무릎을 꿇어 예를 표했고 그녀는 바리스의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품에 안은 바리스는 말없이 그녀의 등을 쓸어내리며 다독여주었다.

“정말, 보고 싶었습니다. 나도 마음이 편치않았어요. 하지만 약속할게요. 언제까지고 당신은 내가 지켜줄 겁니다.”

그의 말에 왕후는 그저 다 괜찮다며 울었다.

하지만.

“어? 폐하. 지금 뭐라고 했어?”

반말이 섞인 윈리의 중얼거림.

“바리스. 방금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을 들은 거 같은데.”

당장 예법에 굉장히 문제가 많은 발언이었지만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윈리와 데이비의 표정이 심상찮게 변했기 때문이었다.

그 분위기가 어찌나 살벌한지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어…… 음……. 혀…… 형님 제가 뭐라 말했나요?”

“내 눈 똑바로 봐 바리스. 너 마치 지금 상황을 굉장히 잘 아는 것처럼 보인다?”

그 말에 바리스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여기서 말을 잘해야 한다! 자칫하면 끝장이다!

속으로 그리 생각하고 있지만, 데이비의 의심은 더욱 짙어졌다.

“묘하게 상황이 딱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은 있었는데.”

반쯤은 확신한듯한 말투였다.

그때였다.

“은공! 저는 폐하께서 시키셔서 어쩔 수 없이 따를 수밖에 없었어요. 흐흑…….”

바리스가 말실수했음을 깨달은 유리아가 빛보다 빠른 배신을 시전했다.

흔히 말하는 선즙필승의 공격에 바리스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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