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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510화 (1,510/1,559)

제 1510화

눈치가 빠르면 애매한 단어 하나에도 그 사람의 진의를 파악한다.

바리스가 대놓고 실토한 것은 아니었지만 눈치가 빠른 데이비는 이상한 점을 이미 알아버렸다.

그의 말, 행동거지들을 자세히 보면 마치 이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는 듯한 모습이다.

물론 단순히 그것만으론 의심이 들뿐 확정할 수 없지만 큰 실수를 하나 저질렀다.

마치 현재 그녀가 처한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듯한 말투.

현재 왕후인 펠리스티 공녀가 나라를 유지하기 위해 데이비와 중혼을 해야 하는 입장이라는 점을 알고 있어선 안 되었다.

물론 사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번 케이스가 정말 극히 드무니 말이다.

즉, 살아 돌아왔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줄뻔했다는 미안함 정도까지는 이해할 수 있어도 형사취수제의 상황이라곤 생각지 못해야 정상이다.

“경들…… 잠시 자리를 비켜주게.”

바리스는 식은땀을 흘리며 귀족들을 내보내려 했다.

“폐하?”

“짐이 돌아왔으니 이 사실을…… 아…… 알려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어전 근처엔 아무도 들이지 말라 전하게.”

“하오나 폐하! 근위대까지 물리는 건…….”

“형님이 이곳에 있을진대. 감히 누가 짐을 해한단 말인가.”

“…….”

바리스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수는 이게 전부였다.

이후 귀족들이 나가기가 무섭게 차가운 얼굴로 그를 보던 윈리가 악귀처럼 그에게 달려들었다.

“나가 뒤져 이 개자식아!! 너 때문에! 어?! 너 때문에!!”

“으아악! 미쳤어?! 난 라운의 왕이라고!”

“내 알 바야?!”

유리아도 이 사실을 알기에 잽싸게 손절해버린 것이다.

“혀…… 형님!”

바리스가 다급히 데이비에게 도움을 요청해보지만…….

“유리아. 눈치가 빨라서 살려준다.”

“제가 은공을 배신할 리가 있나요.”

“그런 것치곤 전적이 화려하지?”

“으음…….”

“네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야. 그러니 아무 말 하지 않을게. 무슨 의도로 저 녀석에게 동조했는지도 알겠고.”

“눈치채셨나요?”

“너만 입을 다물고 있으면 단순 기적으로 치부할 수 있으니까. 바리스가 멍청이같이 털어놓는 바람에 허사가 됐지만.”

“죄송해요. 은공.”

“죄송하단 말은 잘못을 했을 때 하는 거 아닌가? 여긴 안 어울리는 거 같네.”

“의도를 잘 알겠어요.”

유리아가 쓰게 웃는다.

상황을 모르던 왕후만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상황을 지켜볼 뿐이었다.

물론, 그녀도 눈치가 없진 않았다.

“이후 바리스가 했던 말실수를 눈치채고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아버렸다.

“폐하…… 설마 저를 다 보고 계셨던 건가요?”

“부…… 부인!”

왕후가 울먹거리며 그를 보자 바리스의 얼굴이 검게 죽어간다.

“바리스. 그래도 목숨은 살려주마. 허리를 접어버릴까도 고민했다만, 왕후마마를 보니 차마 그럴 순 없겠다.”

이후 데이비가 서늘하게 말하자 바리스는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음을 직시했다.

유리아의 배신에 황당함이 감돌기도 했지만 애초에 실수는 그 본인이 저질렀고, 유리아는 그의 실수를 덮어주려 했던 것 뿐이었다.

“형님.”

“그래.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지금 다해.”

“살려주십시오.”

되겠냐 아우야.

* * *

어전의 천장에 이어진 밧줄로 꽁꽁 묶인 채 매달린 바리스와 그런 바리스를 스태프 끝자락으로 쿡쿡 찔러대는 윈리.

이 모든 사단이 바리스의 실수로 시작되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아 허탈하게 웃고 있는 왕후의 모습이 보인다.

“형님. 이제 내려주시면…….”

“폐하. 조용히 하세요.”

“저…… 그래도 국왕인데…….”

“국왕 이전에 내 소중한 동생이다. 소중한 동생이 가족들 가슴에 대못을 박을 짓을 저질렀는데 그냥 두라고?”

자기 잘못한 건 아는지 바리스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유리아.”

“넵!”

기가 바짝 들어간 유리아가 절도있게 서며 대답한다.

“나머지 둘은 어쩌고?”

“배신하려고 하기에 아가씨의 떡볶이를 먹였답니다.”

“너도 참 징하다…….”

“에린이의 떡볶이? 설마 그거…….”

“맞아. 그거.”

“유리아 생각보다 엄청 잔인하네요. 그보다 이 멍청아, 똑바로 설명해.”

윈리가 당장이라도 바리스를 갈아 마셔버릴 것처럼 으르렁대는 데엔 다 이유가 있었다.

바리스가 갑자기 서거했다는 소식에 하던 일도 다 내팽개치고 미친 사람처럼 뛰어와 오열하던 게 윈리였다.

정략혼, 가족을 도구로 보는 경우가 흔한 이런 시대에서 참 보기 드문 가족애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바리스가 실수해서 죽은 것도 아니고 죽은 것처럼 보였다?

윈리가 울고불고하며 슬퍼하던 모습을 그는 빤히 보고 있었다?

부끄러움 때문에라도 바리스를 용서할 수 없었으리라.

“네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깨달았을 거라 생각한다, 바리스.”

“예…… 알고 있습니다.”

바리스도 자신의 죽음이 고작 며칠 만에 얼마나 큰 파급을 가져올 수 있는지 알았을 것이다.

“게다가, 그렇게 시신이 되어버렸다가 네 시신이 훼손되기라도 하면 넌 돌아오지도 못해.”

“그…….”

“그리고. 네 부인, 왕후마마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남겼는지. 잘 생각해봐.”

“부인…….”

“저…… 전 괜찮아요. 돌아왔으면 그것보다 좋은 게 없는걸요.”

처음 펠리스티 공녀를 만났을 때 어떠했던가.

바리스의 어수룩하고 숙맥 같은 모습에 귀엽잖아요? 라며 받아치던 장난기 가득하던 소녀의 모습은 많이 사라지고 바리스를 깊게 사랑하는 여인만이 남았다.

“하지만…… 조금 서운하네요……. 당신이 잘못되면 내가 얼마나 슬퍼할지 조금 생각했다면…… 먼저 말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흐느끼는 그녀를 다독이며 윈리가 바리스를 째려보자 바리스의 표정이 검게 죽어간다.

“부, 부인……. 내가 미리 말하지 못해 너무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정말 미안해요.”

“미안하면…… 잘해요. 내가 그동안 흘린 눈물을 덮을 만큼 행복하게 해주지 않으면 정말 화를 낼 거에요.”

처음부터 바리스가 언질을 주고 이런 짓을 저질렀다면 이런 사태가 벌어지지도 않았으리라.

“그럼 이제 중요한 문제…… 아니다. 열 받아서 안 되겠다.”

곧바로 매달려있던 바리스를 염동력으로 빙빙 돌리자 그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윈리.”

“네. 오라버니.”

“이놈을 어떻게 해야 할까.”

“뭘 고민해요! 바닷물에 담가버려요!”

윈리가 씩씩대며 소리 질렀다.

“저 새끼 순 나쁜 새끼에요!”

“맞다! 순 나쁜 놈이지!”

“두 사람 다…….”

바리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페어리 나오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우연히 이 세상에 남은 마지막 페어리 나오의 봉인을 풀었고 그녀와 연을 맺고 계약을 맺어 유체이탈을 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 한다.

본래 그리 사용하는 힘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 페어리는 어디 있는데.”

그렇게 묻기가 무섭게 허공에서 황금빛을 내뿜으며 작디작은 요정 같은 형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 내가 바로 마지막 페어…… 꺄악?!”

그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기가 무섭게 염동력이 그녀의 전신을 휘감는다.

“바…… 바리스! 이…… 이 인간 좀 말려줘!”

“보다시피 내 꼴이 이래서…….”

꽁꽁 묶인 채 매달려있는 바리스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끄윽?! 이…… 이 인간 나를 죽이려고 하고 있어!”

고통스러운 듯 그녀가 몸을 비틀어대지만, 염동력은 점차 강해졌다.

“페어리라고?”

그 물음에 그녀가 움찔했다.

“그래! 나는 페어리야! 이 세상에 남은 마지막…….”

으드득…….

“끼야아아아악!!!”

고통스러운 비명이 울려 퍼졌다.

“오라버니?!”

“은공?”

“형님!!”

망설임 없이 힘을 가하자 다른 이들이 기겁하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조용히 허공에 뜬 형체를 노려본다.

“형님! 나오는 잘못이 없습니다! 이번 일은 제가 실수한 것뿐입니다! 그녀는 그저!”

“바리스. 조용히 해.”

담담하게 말하며 내가 물었다.

“페어리라고? 다시 묻는다. 똑바로 대답해.”

“끄윽…… 이 잔학무도한 인간! 대체 왜…….”

“페어리? 웃기는 소리. 넌 페어리가 아니잖아.”

그 말에 모두가 숨을 삼켰다.

“형님? 그게 무슨 말씀…….”

“속일 걸 속여야지. 나는 적어도 [악령]을 페어리라고 하지 않아.”

공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 * *

나오는 당황했다.

‘이 인간…… 대체 정체가?!’

페어리라는 종족이 멸종한 건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녀를 제외한 마지막 동족의 소멸을 직접 느꼈기에 그녀는 이 세상에 유일하게 남은 존재임을 분명 알고 있었다.

아니 페어리는 멸종한 게 맞다.

그녀는 페어리이면서 페어리가 아니었으니까.

“그게 무슨…….”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데이비의 싸늘한 시선에 나오는 몸을 부르르 떨어야 했다.

고작 인간이다.

그녀도 인간을 봐왔지만 이렇게 영혼 끝까지 까발려지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인간은 처음이었다.

아니, 인간이 맞는 것일까.

애초에 그는 모습을 숨기고 있던 그녀를 눈치채고 있었다.

하이 엘프도 아닌 순수인간이 몸을 숨기고 있는 그녀를 찾아낸 것도 황당한데 하이 엘프도, 아니 동족조차도 못 알아보는 본질을 꿰뚫어 볼 줄이야.

경악스러운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기세는 단순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크윽……믿기 어렵겠지만 나는 일반적인 악령과 달라!”

“그럴 수도 있지. 분노에 미쳐 날뛰는 악귀도 아니니까. 그런데 페어리라고 하기엔 어폐가 있지 않나?”

“끄윽…….”

“나오. 어떻게 된 거야!”

바리스가 근엄하게 소리쳤다.

물론,

“우와…… 매달려서 저러니까 진짜 깬다…….”

윈리의 말에 순식간에 격침되었다.

“소…… 속인 건 미안하지만…… 아니 애초에 난! 페어리가 맞아! 지금은 이 모양 이 꼴이지만……. 나도 분명 페어리였다고!”

그녀의 외침에 데이비가 차갑게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러니까 제발 좀 풀어줘! 나 진짜 쥐포가 될 거 같아!”

필사적인 외침이 울려 퍼졌다.

“나…… 난 아직 사명이 있다고! 내 마지막 동족의 소원을 이루어주기 전까지는 죽을 수 없어!”

데이비가 풀어줄 생각을 하지 않자 그녀는 다급히 다른 방법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청명하던 그녀의 황금빛 기류가 검게 변질되기 시작하더니 흉포하게 날뛰기 시작했고 강제로 데이비의 포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힘을 쓰기 시작했다.

물론, 거의 동시라 할 정도로 유리아의 정령들이 그녀를 에워싸 압박한다.

“이익!!”

“악령이라…… 한 방 먹은 기분이네요. 완전히 놀아났어요.”

생글생글 웃지만, 유리아의 기세는 심상찮았다.

“정말이라고 믿어줘!! 나…… 난! 일부러 종족을 벗어던지고 악령이 된 거란 말이야!!”

“무엇 때문에?”

그 질문에 그녀가 고통 속에서 소리 질렀다.

“아무튼! 나는 페어리가 맞아!!”

필사적인 외침이었다.

“…….”

고요해진 어전은 잠시동안 침묵을 구가했다.

“오라버니. 일단 이야기라도 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이에 윈리가 조심스레 입을 열자 데이비는 천천히 손을 휘저어 염동력을 해제했다.

“크하아…… 흐으…… 흐윽.”

짜부라뜨리는 듯한 압박에서 벗어난 그녀가 고통스럽게 신음했다.

“악령. 그중에서도 시급히 정화가 필요한 존재들이 있다.”

“…….”

“적어도 내 눈에 너는 당장 정화되어야 할 존재야.”

온전히 빛으로 이루어진 그녀였지만 어째서인지 노려보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네가…… 네가 무슨 권리로.”

그녀의 억울함이 서린 외침에 데이비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저승아.”

“예.”

허공을 찢으며 사자, 저승이가 나타난다.

“음? 악령이네요. 정화할까요?”

그 말에 나오의 입에서 기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꺄악!! 사신이잖아!? 어떻게 사신이 인간을 따르는 거야?!”

그녀의 외침에 저승이가 손을 뻗으려 들었다.

“악령 주제에 말이 많네. 너희들 때문에 내가 받은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말이 안 나온다.”

악령은 세상에 여럿 존재한다.

특히 일반적인 혼령과 달리 악귀가 된 혼령들 중엔 사고를 치는 존재들이 있고 저승이는 그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다.

그러니 눈앞에 악령이 있는걸 보고 그냥 넘어갈 그가 아니었다.

“형님! 우선 노여움을 거둬주세요! 그녀는 저를 해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바리스가 다급히 외쳤다.

“그래? 바리스, 화산에 매달아줄까?”

“저…… 적당히 혼내시고 목숨만 살려주세요…….”

바리스는 빛보다 빠른 배신을 택했다.

“야…… 야?!”

당황한 나오의 외침에도 바리스는 신음을 흘리며 시선을 돌렸다.

“크윽…… 미안하다. 나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서 윤회하기를.”

“이 배신자야!!!!”

바리스는 빠른 손절을 배웠다.

악을 쓰며 난동을 피우는 나오의 모습에 사방에서 한숨 소리가 나왔다.

“그래. 이야기해봐. 들어는 줄게.”

“정말?”

“들어만 줄 거야. 이루어준다곤 안 했다.”

“꺄아악!! 안돼!”

생각보다 치는 맛이 있는 악령, 아니 악령의 탈을 쓴 페어리였다.

“여명과 황혼의 정원!!”

그녀가 외친다.

“음?”

“그곳을 찾아야만 해! 그곳에 내 동족의 염원을 뿌려주기 전엔 절대 안 죽어! 아니 절대 못 죽어! 난 그걸 찾아줄 이를 찾다가 바리스와 만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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