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11화
결론만 놓고 볼 때 페어리라 자신을 주장하는 악령 나오는 목숨줄은 이어붙였다.
바리스를 향한 분노는 아직 풀리지 않았는지 윈리는 한참 동안 바리스를 째려보았지만 끝내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춘 듯 보였다.
이후 바리스는 자신이 기적으로 살아났음을 공표했고 우울하던 왕성의 분위기를 단번에 반전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나오는 내게서 풀려나자마자 도망쳐서 사라져버렸다.
“정화시킬까요.”
눈치를 보던 저승이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준비만 해놔. 일반적인 악령이랑 달라서 손만 댄다고 정화가 될 거 같진 않으니.”
“준비해두겠습니다.”
준비를 위해 저승이가 사라진 뒤 윈리가 바리스의 등을 후려쳤다.
“어이구 이 화상아…….”
“끄응…….”
“쟤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덥석 계약해? 너 이 나라의 국왕 맞아?”
“물론…… 그 정체가 악령이라는 건 생각지 못했지만…… 형님, 믿어주세요. 그녀는 그리 악한 존재가 아닙니다.”
“알아. 집념과 굴레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운 악령이 없는 건 아니니까. 그녀의 경우는 조금 특이한 케이스이지만.”
정말로 그녀가 집념과 굴레에 휩싸인 존재였다면 그 자리에서 소멸시켰을 것이다.
“바리스.”
“끄응…… 죽을뻔했네.”
“아직 끝난 거 아니다.”
“컥!”
바리스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래도 당장은 아니지 걱정 마.”
아직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 이들에게 전해야 할 말이 많을 테니 말이다.
어전에서 나온 이후 바리스의 생환 소식을 알리는 데엔 많은 시간도 필요하지 않았다.
물론, 바리스가 사고를 쳐서 이런 일이 벌어졌음을 굳이 알릴 필요는 없었기에 말을 아꼈던 만큼 대부분은 기적 같은 상황에 순순히 기뻐해 주는 모습이었다.
국왕의 서거 논란은 당연히 타국에서도 어느 정도 소식을 전해 듣고 있었던 만큼 어수선한 분위기였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라운은 빠르게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나오라는 악령의 존재가 조금 거슬리긴 했지만, 우선적으로 녀석의 움직임은 저승이가 도맡아 감시 중이니 방치할 생각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녀석을 바리스의 곁에 붙여두는 건 극히 우려스럽지만, 바리스의 의견을 마냥 무시할 순 없었다.
게다가 신경 쓰이는 다른 것도 존재했다.
“여명과 황혼의 정원?”
일리나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그게 뭐야?”
“들어 본 적은 없어?”
“응. 뭐야 여명하고 황혼이 공존이 가능한 것도 아니고 미묘한 말장난 같은데.”
“일반적으론 그렇겠지만.”
“여명과 황혼의 정원…… 들어본 적 있어요.”
그때였다.
조용히 있던 에이리아가 다리안을 품 안에서 내린 뒤 말했다.
“들어본 적이 있다고?”
“네. 수인족들이 살고 있는 대수림에서도 몇 없는 희소한 동화에요.”
그녀는 자신이 아는 것을 털어놓았다.
“동화?”
“낮과 밤이 공존하며 모든 요정들의 안식처. 요정 여왕이 통치하는 축복의 땅. 대부분은 거짓이겠지만 그 동화책에선 착하게 살던 한 토인족이 요정의 인도를 받아 그곳에 도달했다는 이야기였을 거에요. 삽화도 있었던 거 같은데…….”
“그 책 구할 수 있어?”
“아바마마께 연락을 드리면 대수림에 부탁해볼 수 있을지도 몰라요.”
“한번 물어봐 줄래?”
“도와주려구요?”
“아니, 정보는 알아놔야 할 거 같아서.”
그런 공간이 물리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지는 둘째치고 그녀의 목적에 대해선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에이리아는 그길로 바로 린디스 황실에 연락을 날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답신이 도착했다.
“그…… 오라버니가 구해주셨다고 해요.”
그 말에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황태자 알버스나 데오르트 황제를 제외하고 에이리아에 관한 것이라면 다른 것을 다 내팽개치고서라도 도와줄 이가 현재 린디스에 있으니까.
“그 양반도 참 극성이다.”
“후후. 여기 있어요.”
낡은 책 한 권을 받아든 나는 보존마법을 건 뒤 곧바로 책을 펼쳤다.
내용 자체는 간단했다.
남을 돕기를 좋아하던 어린 수인족이 역경과 고난을 딛고 요정의 인도를 받아 낙원에 도착했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딱히 얻을 정보는 없었다.
“그리고…… 이거.”
에이리아는 고서 한 권을 더 내밀었다.
“이건?”
“대수림에 요청해서 받아온 물건이래요. 고서라곤 하는데 여기에 동화의 삽화가 있어요. 유일하게 해석하는 데에 성공한 책장에 여명과 황혼의 정원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고 해요. 그래서 삽화를 넣은 거라고 해요.”
황혼과 여명의 정원.
“다만, 나머지 부분은 다른 언어로 되어있어 해석할 수가 없어서……. 그냥 방치되고 있던 책이래요.”
해석을 못한다라.
고서를 펼치기가 무섭게 아주 미약하게 보존마법의 흔적이 보였다.
“이 책. 얼마나 됐다고?”
“보존 기간만 보면 수천 년은 되었다고 하는데…….”
수천 년?
잘하면 이건 그보다 더 오래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고마워. 에이리아.”
“헤헤. 고…… 고마우시면…….”
그녀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고는 제 뺨을 살짝 내밀었다.
나름대로 발전한 것이긴 하지만 스스로도 부끄러운지 눈을 꼭 감는 게 귀엽게 그지없었다.
가볍게 그녀의 뺨에 입을 맞춰주자 그녀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품 안에 안겨 짧게 숨을 들이켰다.
“언제나 안정되는 향기……. 저는 그만 가볼게요. 무리하지 말아요. 서방님.”
“걱정 마.”
에이리아가 떠난 후 고서의 문자를 펼쳤다.
동시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재밌네.”
이게 얼마나 되었건 그게 중요한가. 해석할 존재는 세상에 차고 넘치거늘.
고서를 집어 들자 기다렸다는 듯 한켠에 앉아 독서를 하던 페르세르크가 몸을 줄이고는 내 어깨에 올라앉았다.
“굉장히 자연스럽네.”
“그렇더냐. 후후. 해서, 신목으로 가려고?”
“어. 거기 곰팡이 핀 것들이 많으니까.”
“누가 곰팡이가 펴 이 새끼야.”
그때 창문을 벌컥 열며 푸른 머리칼의 아름다운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 니가 거기서 왜 나와.”
“세계수가 네가 찾아올 거 같다고 하기에 그냥 우리가 왔어.”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아장아장 걸어오는 다리안을 품에 안았다.
“너무한 거 아니야? 대체 얼마 만에 보는 거야.”
“뭘 얼마 만에 봐.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우리 도움이 필요한 게 있다던데.”
“이거.”
내가 고서를 건네주자 그녀의 눈이 일순 이채를 띠었다.
“오래된 문자구나. 오랜만에 보는데.”
“오랜만에 본다고?”
“심연의 공주가 되기 전에 있던 문자.”
최소 1만 년은 된 책이라는 소리다.
“아니 1만 년은 된 책이 어찌 이리 허무하게 굴러다닌단 말인가.”
페르세르크도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을 흘렸다.
“원본은 아닐 거야. 아마 필사한 것에 불과하겠지.”
“해석은?”
“훼손된 문자가 많아. 원본의 문자가 뭐였는지 모르겠지만 이 고서를 필사한 자는 훼손된 문자를 고스란히 옮긴 거겠지.”
베르단데는 품에 안은 가죽표지의 책을 내려놓았다.
“가능한 것만 해석할 텐데, 또 필요한 건?”
“없어. 황혼과 여명의 정원에 관한 것만.”
“…….”
베르단데는 책을 들고 근처의 책상에 앉아버렸다. 동시에 비어있는 책에 멋대로 날아오른 만년필이 잉크를 흩뿌리며 글자를 빠르게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음…… 나는 뭘 하지?”
“뭘 하긴. 할 게 없으면 도와.”
“귀찮게. 쟤가 알아서 하겠지.”
이실디는 심드렁하게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는 내게 말했다.
“한판 붙자.”
“귀찮게 뭐하러.”
“쫄?”
“들어와.”
이실디가 연무장에 볼품없이 늘어졌을 때 즈음 베르단데로부터 해석이 끝났다는 소식이 전해져왔다.
* * *
베르단데가 해석하는 데에 성공한 건 그리 많지 않았다.
“고서의 내용은 자잘한 견문록이야. 다만, 그 원작자는 여행 중에 황혼과 여명의 정원에 대한 이야기와 단서를 남겨놓았어.”
“위치에 대한 정보는 없었나?”
“아쉽게도. 설명이 너무 두루뭉술해. 게다가 요정이 인도하는 곳? 이걸 다른 말로 해석하면 들어가는 열쇠가 있다는 뜻인데……. 이런 게 가능한 공간은 딱 하나밖에 없지.”
그녀는 똑바로 나를 직시했다.
“정령계나 신계.”
그녀의 말에 나는 황혼과 여명의 정원에 대한 수색을 깔끔하게 포기했다.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다는 건가?”
“그래. 아니 내 직감이지만 존재할 가능성은 커. 하지만…… 정말로 전설이나 구전에 내려오는 그런 공간일지는 모를 일이지.”
* * *
나오는 홀로 황혼과 여명의 정원을 찾을 여건이 되지 못한다.
그렇기에 바리스의 도움을 필연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는 안 돼……. 슬슬 힘이 부족해지고 있어.”
왕성의 높은 탑에 홀로 떠 있던 악령이자 페어리인 나오는 자신의 몸을 구성하는 일부분이 상당히 흩어져있는 것을 보고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반가워! 난 넨릴이라고해. 넌 이름이 뭐야?]
[지금부터 네 이름은 나오야. 다른 동족들은 널 이단자라 말하지만 이제 그들은 없어. 너와 나만 남은 거야. 그러니까 우리는 서로 돕고 살아야 해. 맞다. 넌 황혼과 여명의 정원을 알아?]
[그곳은 우리조차 발을 디디지 못한 구원의 고향.]
[반드시 찾아낼 수 있을 거야. 내 평생을 다해서라도.]
[끄윽…… 시간이…… 시간이 더 필요한데…….]
[부탁할게. 내가 죽고 나면 내 유품을 그곳에 뿌려줘.]
인적이라곤 하나도 없던 그 칠흑 같은 공동 속에서, 봉인되어있던 나오의 유일한 말벗이었던 존재.
봉인되어있던 그녀를 풀어준 동족은 그렇게 죽었다.
홀로 남겨졌던 나오에게 있어서 동족은 말 그대로 생의 모든 것이었다.
지독한 고독 속에서 홀로 고요하게 죽어가던 그녀의 앞에 나타난 페어리.
그녀의 존재는 처음 귀찮았지만, 서서히 나오의 안에서 큰 자리를 차지했다.
하루하루 대화를 나누고 그녀가 찾아오는 것만을 기대하는 자신이 있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동족을 전혀 믿지 못했고, 세상이야 어떻게 되든 알 바가 아닌 나오였다.
그녀는 페어리이면서도 페어리가 아닌 혼종이었으니까.
차갑게 굴고 밀어내도 넨릴은 바보같이 웃으며 다가왔다.
차가운 태도로 일관하던 그녀였지만 결국 넨릴의 따스한 느낌에 녹아버린 그녀였다.
그녀는 평생에 걸쳐 죽은 동족들의 염원을 묻어줄 곳을 찾아 헤맸다.
그녀가 찾아 헤맨 장소는 페어리의 낙원 황혼과 여명의 정원, 전설 속에 페어리 여왕이 존재한다는 장소였다.
물론, 페어리들 사이에서도 그런 공간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었던 만큼 존재하지 않는 낙원을 찾는 하잘 없는 짓이었다.
넨릴이 그녀의 봉인지에 돌아올 땐 자주 큰 상처를 입고 오곤 했다.
바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고통스러운 상처를 입으면서도 헤실거리며 웃어 보인 그녀는 말했다.
황혼과 여명의 정원에 동족의 혼을 뿌려주면 멸종에 처한 자신들의 동족의 혼을 받아들여 줄 존재들이 있을 거라고. 그리하면 새로이 봉오리에서 동족들이 태어날 수 있을 거라 말했다.
넨릴의 몸 상태는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어갔다.
그녀는 지독한 병을 앓고 있었는데 그것이 그녀의 몸을 시시각각 갉아 먹었기 때문이었다.
짙게 내려앉은 다크서클에 수시로 각혈을 하면서도 그녀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어차피 멸종했잖아. 너와 나밖에 없어. 그런데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야.]
그녀의 질문에 그녀는 대답했다.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 빛이 내릴 거야.]
미련한 말이지만 그 한마디에 나오의 생각이 바뀐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던 중 넨릴이 봉인지에 찾아오지 않게 되었다.
그저 마음이 바뀌었거나 낙원을 찾았겠거니 했지만 그게 몇 주가 지나고 몇 달이 지나자 그녀는 마음이 뒤틀리는 기분이 들었다.
지독한 고독 속에서 말 상대가 되어준 넨릴의 부재는 너무 컸다.
그때 그녀의 봉인지로 들어서는 문이 외부의 지진으로 붕괴하며 거의 죽어가는 요정 하나가 힘겹게 들어왔다.
[넨릴!!]
나오는 팔다리가 빛의 사슬에 묶인 채 다급히 외쳤다.
[나오…… 거기…… 있어? 나 눈이 안 보여…….]
하지만 그녀는 이미 눈조차 보이지 않는지 초점 없는 얼굴로 휘청거리듯 나오에게 다가왔다.
손으로 나오의 얼굴을 쓸어내린 그녀는 또 바보같이 웃으며 말했다.
[찾아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틀렸어. 몬스터를 만나서 눈을 다쳤거든……. 낙원을 찾기가 더 어려워졌네? 헤헤.]
노래 부르듯 낙원, 낙원 하던 그녀는 죽어가고 있었다.
[있잖아. 나오. 내 바보 같은 부탁이지만 들어줄래?]
[말하지 마! 회복하는 데 전념해!]
[난 틀렸어. 이제 오래 살지 못할 거야. 내가 죽으면 너만 남겠지.]
그녀는 자신의 날개 한 짝을 뜯어냈다.
넝마나 다름없는 날개였지만 그녀는 그 날개의 힘을 이용해 나오의 봉인 사슬 하나를 풀어냈다.
[너?!]
[오랜 시간 네 봉인을 풀 방법도 찾아 헤맸어. 그런데 방법이 이것뿐이더라. 히히. 나오. 내 부탁 들어줘.]
[난 낙원을 찾지 못했어. 실패했지. 하지만 내가 죽고 홀로 남을 네가 걱정되어서 견딜 수가 없어. 봉인을 풀어줄게. 너만은 온전한 마지막 페어리로써 살아줘.]
그 말을 끝으로 넨릴은 자신의 날개를 모두 뜯어내 나오의 봉인을 풀었다.
동족들의 욕심과 혐오 속에서 단단하게 고정되었던 봉인을 넨릴이 풀어냈다.
나오는 그날 마지막 동족인 넨릴의 죽음 앞에서 절규했다.
그리고.
[네가 찾으려 했던 그 낙원. 그 낙원에 내가 반드시 데려가 줄게.]
그녀는 넨릴의 혼의 파편과 그녀가 가지고 있던 동족들의 염원과 혼의 파편들을 모두 유품에 담았다.
[난 혼종이야. 그렇기에 일반적인 페어리보다 오래 살 수 있어. 그러니 얼마가 걸리건 반드시 찾아내 줄게.]
그녀는 그렇게 친구이자 가족이 되어준 넨릴을 대신하여 움직였다.
페어리의 수명이 다된 그녀는 반쪽이었던 망령의 힘까지 사용했고 악귀가 되어가면서까지 낙원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낙원은 도저히 찾을 수 없었고, 급기야 무리한 변화로 인해 망가지고 있었다.
지칠 대로 지친 그녀는 그렇게 어떤 공간에서 깊이 잠들었고.
바리스에 의해 다시 깨어났다.
두 번은 없다. 이번에 쓰러진다면 그녀 또한 염원을 이루지 못하고 소멸하리라.
“반드시 찾아내고 싶어. 그게 약속이잖아. 하지만 지금의 내 상태로는 혼자 돌아다니는 것도 불가능해.”
나오는 울먹거리는 목소리를 삼키며 조용히 다짐했다.
“나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뒤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바리스…….”
“약속했잖아. 도와주겠다고.”
“말이 그렇지 사실 난 네게 줄 수 있는 게 거의 없어.”
“그냥…… 돕고 싶어서 돕는 거야. 이유가 필요해?”
바리스의 말에 나오는 눈물을 삼켰다.
“형님이라면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몰라. 넌 잘 모르겠지만 데이비 형님은 모르는 게 없거든.”
“그 인간…… 말이야?”
“그래.”
“…….”
나오는 침묵했다.
사실 속으로나마 알고 있었다.
낙원이라는 게 얼마나 바보 같은 믿음인지 말이다.
정말로 그딴 낙원이 존재한다면 지금껏 낙원에 도달한 동족이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가 없었다.
넨릴이 죽어가면서까지 찾아 헤맨 것을 나오는 직접 봐왔으니 말이다.
“미안해…… 미안……. 흐윽…….”
결국, 눈물을 터뜨린 나오를 보며 바리스는 씁쓸하게 성벽에 몸을 기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