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513화 (1,513/1,559)

제 1513화

목적지는 명확하다.

페어리의 낙원이라는 두루뭉술한 목적이 아닌 고대 선대 요정 여왕이 존재했던 장소를 찾는 것.

나는 그 단서가 이전에 베르단데가 해석했던 고서에 있다고 생각했다.

“황혼과 여명의 정원이 그런 의미였단 말이지.”

베르단데는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름 그대로가 아니라 의미하는 대로의 장소라면 납득할 수 있겠어. 그럼…….”

잠시 입을 다문 베르단데는 나를 바라보며 요청했다.

“고서를 다시 줘.”

“뭐? 전에 필사했잖아.”

“아니. 원본이 필요해. 해석 방식 자체가 완전히 다르니까.”

베르단데는 문자가 훼손되었다 말했지만 뭔가 짚이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문자가 죄다 훼손되지 않았나?”

확인과정이 필요해. 그리고, 만약 그게 정말로 맞다면, 단서를 찾을 수 있는 힌트가 있을지도 모르겠네.“

내가 고서의 원본을 다시 건네주자 베르단데는 빠르게 책장을 펼친 뒤 넘기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동자가 빠르게 글자를 훑고 해석하는 동안 나는 묵묵히 그녀를 기다렸다.

베르단데는 지식이 굉장히 해박한 편인가.

그런 궁금증을 뒤로한 채 기다리길 몇 시간.

베르단데는 조금 복잡한 표정으로 자신이 알아낸 것들을 말해왔다.

“예상대로 해석방식이 달라 팔라테스 해석법이 아니라 쿠타르 해석법을 쓰고 있었어.”

“알기 쉽게 설명해줄래?”

“고서 전체에 올바르게 적힌 문자가 몇 개 없다는 소리야. 그리고, 해석이 가능한 문자만을 해석하면 이 책이 가리키는 장소가 있지.”

“그게 황혼과 여명의 정원인가?”

“아니, 이건 열쇠야. 그리고 이 열쇠가 가리키는 건 다음 단서가 있는 곳이겠지. 겉보기엔 훼손된 문자와 멀쩡한 문자를 이용해서 마치 다른 책인 양 속였지만, 오히려 훼손된 문자만 모아놓고 배열하면 해석이 가능한 게 있어.”

그녀는 책을 건네주며 말했다.

“타르타로스 지하산맥.”

“엉?”

“그곳에 가야 해.”

타르타로스 지하산맥이라면 전대 성녀 니오가 머무르고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곳에 있어?”

“예측이 맞다면 그곳에 단서가 있을 거야.”

곧바로 바리스를 데리고 이동할 생각은 없었다.

이에 나는 메가로드리아를 불러들인 뒤 베르단데만을 데리고 녀석의 등위에 올라탔다.

[계약자. 바람이라도 피는 것인가?]

“죽고 싶어?”

[흥.]

메가로드리아가 심드렁하게 코웃음 치며 날아오른다.

“참 성격 나쁜 도마뱀이네.”

베르단데가 중얼거렸다.

그녀는 어느 정도 호의적이긴 하지만 그 선이 명확했다.

메가로드리아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르자 가죽표지의 책을 끌어안고 있던 베르단데는 눈을 감은 채 침묵했다.

이에 나는 궁금증이 일어 물었다.

“아들과는 잘 지내나?”

“그럭저럭. 너무 고생시키는 거 같아 미안하지만.”

일국의 국왕이었으나 베르단데를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진 국왕.

현재 그는 베르단데와 이웃인 이실디를 데리고 신목의 성지에서 머무르고 있다.

잠시간 서로 말이 사라졌다.

그녀나 나나 괜한 이야기를 할 만큼 친근한 사이냐고 묻는다면 애매하게 답을 회피할 자신은 있었다.

“네겐 언제나 고마워.”

“이제 와서 무슨.”

“그냥…… 그런 거지.”

끔찍할 정도로 지독한 어색함과 침묵이 감돈다.

그녀도 나도 인지는 하고 있으나 굳이 그것을 콕 짚어 언급하진 않았다.

불편하고 무거운 공기는 그리 달갑지 않다.

그러는 동안 메가로드리아는 엄청난 속도로 대륙을 가로질렀고 라운과 거의 정반대에 있는 타르타로스 지하산맥에 엄청난 속도로 도착했다.

“그런데, 자매들은.”

“그 녀석들 이야기는 하지 마.”

베르단데는 담담하게 말하며 메가로드리아가 지상에 착지하자마자 가볍게 내려섰다.

“어련히들 잘 살고 있을 테니 나는 소식을 전해 들은 바가 없어.”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거대한 동굴 입구로 걸어갔다.

“지하산맥은 넓어. 네가 뭘 찾으려는 건지 모르면 이곳은 그냥 생지옥일 거다.”

“네가 도와주면 되잖아? 그리고 이래 봬도 심연의 공주 출신이야. 이 땅에서 날 위험하게 만드는 건 없어.”

그래, 겉보기엔 참 연약해 보이는 소녀지만 그녀는 단신으로 대륙을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존재 중 하나라는 사실이 다시금 인지된다.

본래 해석방식대로라면 대수림쪽을 기웃거리게 하지만 다른 해석법은 이곳, 지하산맥을 가리킨다.

이 극단적인 이정표에 헛웃음을 흘리던 그즈음.

베르단데는 고서를 허공에 서서히 띄워 올리며 눈을 감았다.

“이 고서는 이정표이자 열쇠야. 이 고서에 페어리의 마법을 역산해보면…….”

그녀는 가죽표지의 책을 번뜩이며 페어리의 형상을 구현해냈다.

그녀가 기억하는 페어리의 마법이 흉내 내듯 발현된다.

그러자 낡은 고서에서 신기한 힘이 발현되었다.

“그게 페어리의 마법인가? 내가 아는 페어리의 마법과는 조금 다르네.”

“티오니스의 페어리는 다른 세계의 페어리와 조금 다른 존재니까. 이쪽…….”

베르단데는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고서는 마치 길을 알려주는 것처럼 지하산맥 깊숙한 곳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자연이 만들어낸 생지옥.

안전지대를 제외하면 극히 위험한 장소임에도 우리 둘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심층으로 한참을 들어가자 후끈한 열기와 함께 마그마가 흐르는 지하 공간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여기부턴 조심해.”

“조심하라고? 내가 누군지 알면서도 그런 말을 하는 거야?”

“그래.”

담담하게 대답하자 그녀는 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조금 신선한 걱정이네. 신경 쓰지 마. 이곳이 위험하다 해도 내 육신에 문제를 줄 정도는 되지 못하…… 꺄악?!”

순간 발을 헛디딘 그녀가 휘청거리기가 무섭게 나는 그녀의 팔을 잡아 내 쪽으로 당겼다.

“위험한 것과 발을 디딜 곳이 애매해서 넘어지는 건 별개지.”

“…….”

수치심으로 얼굴을 붉게 물들인 그녀는 입을 다물고는 내 품에서 빠져나왔다.

소녀처럼 여성스러운 비명을 내지른 것에 대한 수치심은 쉬이 떨쳐내기 힘든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숨을 짧게 고르더니 허공에 살짝 떠올랐다.

자존심 하나는 확실한 그녀였다.

이후 그녀는 빛으로 고서의 빛이 안내하는 곳으로 더욱 덕 깊숙이 밀고 들어갔다.

개중엔 위험한 화속성의 야생 몬스터도 대거 등장했지만 조금 전의 수치심 때문인지 그녀는 책을 한번 펼치는 것으로 몬스터들을 침묵시켜버렸다.

허구를 현실로 끌어내는 존재.

나비 여제 찬드라, 아니 점순이와 비슷하지만 명확하게 다른 힘이다.

퍼어어엉!!!

생명체가 살 수 없을 것 같은 마그마 속에서 거대한 화염 골렘이 모습을 드러내기가 무섭게 베르단데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힘이 거대한 골렘을 형상화했고 마그마 골렘을 순식간에 조각내버렸다.

“거 애꿎은 몬스터한테 화풀이하네.”

“조용히 해.”

그녀는 시선도 마주하지 않은 채 몬스터의 잔해를 넘어 숨겨진 공간에 도달했다.

“마그마의 폭포 뒤편에 이런 게 있었네.”

마그마의 뒤편 공간은 놀라울 정도로 공기가 차가웠다.

화끈하고 뜨거운 마그마 지대치고는 정말 독특한 공간이었다.

“여기다.”

그녀는 아무것도 없는 작은 동굴의 끝에 있는 기묘하게 생긴 벽의 틈에 고서를 정확하게 끼워 넣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고서가 꽂힌 틈을 중심으로 빛으로 된 회로 같은 것이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알고 꽂은 거야?”

“몰랐어. 그냥…… 그래야 할 거 같아서.”

“잘못됐으면 어쩌려고.”

“몰라.”

심드렁하게 말하지만 나는 반사적으로 깨달았다.

그녀는 현재 상당히 삐져있다!

생각 이외의 모습이 보여주는 갭에 조금 당황하던 찰나.

그녀가 갑자기 나를 째려보듯 올려다본다.

“무슨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당장 멈추는 게 좋을 거야.”

“내가 뭘 했나?”

“눈빛이 굉장히 불순하고 기분 나쁘거든.”

“그래. 그러세요. 아가씨.”

한번 건수 물었는데 그냥 둘 수야 있나. 내 놀림에 그녀가 이를 빠득 깨물며 내 다리를 걷어차지만, 어린애의 투정처럼 가냘플 뿐이었다.

“성격 진짜 안 좋네. 그러다간 아무도 좋아하지 않을걸?”

“그런 것 치고는 버젓이 가정도 있는 인간이라.”

“재수 없어.”

“너도 가정을 꾸리고 싶은 건가?”

“내가? 웃기는 소리.”

뭔가 짚이는 게 있는 것일까.

그녀는 짜증스레 투덜거렸다.

“난 그런 건 관심 없어.”

보아하니 신목의 성지에서 머무르면서 그녀에게 추파를 던진 이가 있긴 한 모양이었다.

“엘프들인가?”

“닥쳐.”

“뭐. 네 아들, 아니 국왕의 나이가 꽤 있긴 해도 그들 기준에선 어린아이나 다름없겠고, 네 외관도 뭐…… 솔직히 굉장히 아름다운 편이니.”

내 말에 그녀는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인 채 소리 질렀다.

“조용히 해!! 너도 이실디처럼 짜증 나게 할래?!”

뭐가 그리 부끄러운지.

그녀는 그대로 내게 달려들 것처럼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곧 벽면의 빛이 점멸하기 시작하자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린다.

“이제 돌아가 봐. 나머지는 내가 할게.”

“됐어. 탐구는 하나의 취미니까. 나도 여기까지 온 김에 끝을 봐야겠어.”

그녀는 그리 말하며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는 벽면으로 발을 디뎠다.

동시에. 기묘한 안개 같은 것이 그녀와 나를 휘감는다.

“이건?”

“환각의 안개…….”

베르단데는 경계하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마 시험을 위해서겠지.”

안개는 마치 나와 베르단데를 휘감듯 감쌌지만 이렇다 할 변화는 없었다.

다만 효과는 있었던 모양이었다.

“…….”

나는 멀찍이 보이는 소년의 형체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칼루스…… 올 라운.”

“아는 녀석이야?”

“내 이복동생. 그리고, 내 원수였고.”

“상당히 악질이네.”

녀석은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내게 서서히 다가왔다.

“천것은 천하게 살다가 죽는 거다. 네놈의 존재 자체가 이 라운에 해악이 된다.”

녀석은 마치 트라우마라도 건드리고 싶다는 듯 내게 도발해왔지만…….

“뭐라는 거야 등신이.”

터어엉!!!

순식간에 내가 퍼뜨린 마나에 휘감겨 형체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렸다.

“진부하기 짝이 없는 트랩 같으니.”

뒤이어 내게 가해진 환각의 안개를 신력으로 강제로 몰아내 버리자 다시금 주변에 떠오르던 것들이 모두 사라진 모양이었다.

“뭐해. 빨리 해제하지 않고.”

이후 아직 환각의 안개에 둘러싸인 베르단데를 보며 말하던 찰나.

나는 그녀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걸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아버……. 아빠…… 엄마.”

투명한 눈물을 한 방울 떨어뜨리며 울먹거리는 그녀를 보며 나는 강제로 환각의 안개를 풀어낼까 고민하다 멈췄다.

환각이라도 부모를 다시 보는 기회는 잘 없을 테니 말이다.

비록 피가 섞이진 않은 관계일지라도, 베르단데나 울드, 스쿨드 세 자매에게 있어서 헤라클래스나 이클립스는 나름대로 큰 영향을 차지한 존재일 것이다.

베르단데는 자신이 울고 있다는 것도 자각하지 못한 듯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효과 확실하네.”

그녀는 그대로 두고 나는 내부로 들어갔다.

책을 열쇠로 하여 들어온 이 작은 공간에는 이렇다 할 무언가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끝에 작은 제단과 부적같이 생긴 작은 종이 한 장, 그리고 얇고 낡은 서적 한 권이 놓여있는 게 보였다.

언어는 역시나 고서의 언어와 동일하다. 베르단데의 해석을 보면서 어느 정도 문자에 대해 이해하긴 했지만, 이것도 해석의 방식의 차이가 있다면 베르단데의 해석방법으로 알아낼 수 있으리라.

“그리고 이건…….”

잠시 고민하던 나는 부적같이 생긴 얇은 종이 한 장을 노려보았다.

페어리 나오가 은연중에 내뿜던 힘과 비슷한 무언가가 이 안에 서려 있다.

다만, 그 힘의 심도는 확실히 무겁고 깊었다.

“이건 어디다 쓰는 거지?”

털썩!!

그때였다.

멍하니 서 있던 베르단데가 갑자기 주저앉더니 숨을 몰아쉰다.

“왜…… 왜 안 꺼내준 거야.”

“좋은 재회를 방해할 거 같아서.”

“너!!”

나를 향해 화를 내듯 으르렁거리는 그녀였다.

하지만 그런 거치곤 얼굴이 붉다.

“그래서. 좋았냐?”

“…….”

“안에서 뭘 본 거야.”

“뭘 보긴. 부모님을 뵈었어. 환각의 안개가 가진 컨셉은 트라우마를 자극하거나 행복한 상상에 가두는 거겠지.”

나는 트라우마가 자극된 건가. 그래서 칼루스가 나온 것일 테고? 그놈의 화살에 나는 사경을 헤맸었으니까.

“그런 것 치고는 꽤 약하던데.”

“네가 특이한 케이스지. 보통 존재는 그 환각을 벗어나기 힘들어.”

그녀는 투정을 부리듯 나를 퍽퍽 때렸다.

“그래서, 헤라클래스와 이클립스를 만난 건가?”

“그래…… 그리고…….”

“그리고?”

내 말에 그녀는 잠시 침묵하더니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시끄러워!”

뭔가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있나 보다. 확실히 겉보기엔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하는 어엿한 숙녀 같은 그녀가 부모의 품에서 어리광을 피우는 모습 같은 게 보였다면 부끄러울 법도 하다.

그녀는 뭐가 불만인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계속해서 나를 때리더니 이내 물러났다.

“하아…… 하아……. 다른 건?”

“이 얇은 고서와 종이 한 장.”

내 말에 그녀는 내가 획득했던 두 물품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찾았다.”

“찾았다고?”

“그래. 선대 요정 여왕의 무덤. 그리고 페어리들의 도달할 수 없는 낙원. 이 얇은 종이는 그곳으로 진입할 수 있는 유일한 통행증이 분명해.”

“위치는?”

“이 낡은 고서에 있겠지. 다만 조사를 하는 동안 시간이 조금 걸려.”

“그럼 가져가서…….”

“아니, 여기서 해야 해. 이 고서는 이곳에서 나가는 순간 파손될 거야.”

“필사라도 하지?”

내 제안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안돼. 이 책 자체에 특수한 힘이 서려 있어. 그것까지 필사하는 건 불가능해. 그러니까 여기서 해석을 완성한 뒤에 나가야 해.”

“얼마나 걸리는데?”

“이틀 정도.”

생각보다 길었다.

“……너랑 여기서 이틀을 보내라고? 이 좁은 곳에서?”

“누…… 누군 뭐 좋아서 이러는 줄 알아?!”

베르단데가 가진 발작 버튼의 성능은 확실했다.

* * *

최근 여신님의 기분이 마냥 좋지 않은 느낌이다.

그녀의 성역은 그녀의 기분에 따라서 하늘의 빛이 조금 변하는 편인데 지금 그녀의 성역은 옅은 먹구름이 여기저기 보였으니 말이다.

“선배님. 여신님의 심기가 많이 좋지 않습니다.”

“알아. 괜히 자극해서 혼나지 말고 할 일이나 해.”

“저는 선배님이 걱정입니다만.”

“죽을래?”

짜증을 부린 비화가 한숨을 내쉬었다.

“야. 넬타리드.”

“예 선배님.”

“여신님이 이번에 그 페어리에 대해서 조금 소극적인 느낌이 들지 않았어?”

“맞아요. 저도 그리 느꼈습니다.”

“뭐 이유라도 있는 건가?”

“글쎄요. 그 의중을 눈치채긴 어렵지만…… 적어도 여신님이 현재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수가 아닌가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 페어리의 낙원인지 뭔지 하는 거, 굉장히 복잡한 이야기가 얽혀있다는 뜻이겠네?”

“그렇겠죠. 과거의 여신님이라면……. 어쩌면…… 생각 이상으로 잔인한 시스템일 수도 있지요.”

비화는 혀를 짧게 찼다.

“대의를 위한 공리주의라……. 잔인하다면 정말 잔인하지. 아니 그보다. 저 심연의 공주와 함께 있는 거, 조금 불안한 건 내 기분 탓인가?”

“그녀는 속내를 알기 힘든 존재이긴 합니다만. 적어도 제가 보기에 두 사람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를 것 같진 않네요.”

“그렇겠지. 에린이가 우리 아빠 딸인데. 베르단데가 그러면 구도가 이상해지잖아?”

“애초에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다만 그녀는 생각보다 어리광이 많은 존재일 수도 있겠죠.”

넬타리드는 데이비가 아공간에서 꺼내 마시기 시작하는 열반주를 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선배님. 저 술은…….”

“그래. 우리 아빠도 취하게 만드는 신주야.”

천마가 만든 영웅들을 취하게 만드는 술.

그 효과는 확실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