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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520화 (1,520/1,559)

제 1520화

이 공간에서 나가기 위해 비화에게 신호를 보내기 직전. 바리스는 두 페어리에게 당부했다.

“혹시라도 다른 생각 품지 마. 너희들이 이상한 짓을 하면 계획이 전부 어그러지니까. 설마 굳이 피해를 보면서까지 그러진 않겠지?”

“자…… 잠깐! 무슨 소리를! 저는 시간이 별로…….”

“난 괜찮아.”

“나오!!”

“먼저가, 바리스. 실패해도 괜찮아. 무리하지 말고. 명심해.”

나오의 입장에선 아무래도 좋았다. 넨릴을 막기만 하면 혹여 잘못되어도 괜찮았으니까. 하지만 반대로 넨릴의 입장에선 바리스라는 존재를 믿을 수 있는가 아닌가는 별개의 문제였다.

“넨릴. 네가 뭘 걱정하는지 알고 있어. 하지만, 나는 형님을 믿는다. 현 상황을 알면 형님은 반드시 혜안을 내주실 거야.”

“그래 봐야 인간…… 대체 어떻게 그렇게 막연하게 믿을 수 있는 거죠?”

“막연한 게 믿는 게 아니지. 형님은 믿을만한 모습을 숨김없이 보여주셨으니까 믿을 수밖에 없는 거지. 형님은 예전부터 그래왔다. 난 형님을 단 한 번도 의심해본 바가 없어.”

바리스는 그렇게 말하며 비화에게 신호를 보냈고, 곧바로 바깥으로 튕겨 나가듯 사라졌다.

남은 것은 두 페어리뿐이었다.

이후 나오의 의식세계에서 빠져나온 바리스는 침착하게 내부의 상황을 모두 털어놓았고, 자신이 생각한 것을 이야기했다.

“가능할까요, 형님?”

“……야 임마. 그게 뭐 말처럼 쉬운 줄 알아? 애초에 여신님이 고작 이런 것도 생각 못 해서 지금까지 그냥 방치한 줄 아나 보지?”

물론, 지금의 여신님이라면 해결법을 알고 있을 가능성도 크겠지만.

“그, 그럼 방법이…… 없는 겁니까?”

바리스의 표정이 파랗게 질리자 베르단데가 말을 이었다.

“아니. 없었었다가 맞겠지. 방법은 분명 있어. 다만.”

그녀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요지는 시스템을 속이는 것. 다만 그걸 위해선 충족되어야 할 조건이 너무 많아.”

“많다는 말씀은?”

“응, 첫째. 무슨 수로 나오가 가진 자질을 녀석에게 온전히 양도할 수 있는지. 둘째, 이성을 얻은 현신체 녀석이 정말로 여왕의 대체가 될 수 있을지. 마지막으로.”

베르단데가 표정을 굳혔다.

“향후 문제가 없을지.”

“뒤의 일도…… 생각해야 하는 겁니까?”

“당장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하면 나오나 넨릴이라는 그 페어리는 해방될 수 있겠지. 어쩌면 페어리들이 다시 나타날 수도 있어.”

“…….”

“다만, 그 현신체가 미치지 않고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이지가 없을 때야 기계처럼 작동한다지만 지금의 경우는 달라, 만약 잘못되면, 그 페어리 중의 일부가 다시 이 굴레에 빠지지 말란 법 있어? 결국, 둘을 희생하지 않았을 뿐 시간이 지나면 결국 누군가가 희생하게 돼.”

“그…….”

“무엇보다 정상적인 페어리가 여왕이 된 게 아니니 그로 인해 생길 미지의 문제점은?”

현실을 깨달은 바리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럴 수가…….”

“삼촌의 말도 일리는 있어요. 시스템 자체가 효율적이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잘못되어있는 것도 사실이죠. 정확한 표현으로는 굉장히 구멍이 많이 나 있는 상태라고 할까요.”

종족의 번영 자체가 여왕의 위(位)가 존재할 때나 가능하다. 그 사실 자체가 미묘하기 그지없다.

본래라면 죽을 수가 없는 여왕이 죽어버렸으니 페어리는 쇠퇴했고, 멸종했다.

이것 자체로도 굉장히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시스템은 이게 여왕이 없어서 그런 것으로 판단했으니 차기 여왕을 더욱 불사의 존재로 만들어내려 하는 것이고. 여왕의 생각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법칙이 짜여진대로 희생을 강요한다.

“여왕의 자질을 지닌 페어리가 희생해서 종족이 번영한다라……. 이게 말이 돼요? 티오니스의 페어리만 이상한 거예요.”

“다른…… 세계의 페어리도 있는 건가?”

“극히 소수지만 이곳의 페어리와는 달라요. 정확히는 이곳의 페어리 시스템의 일부가 다른 세계에도 뿌리를 내리는 과정에서 바뀐 거지만요.”

“그거다!”

그때 바리스가 벌떡 일어났다.

“안 돼요. 티오니스와 타 차원은 규칙이 조금 달라요. 그쪽 시스템을 이쪽에 적용시키니 뭐니 하는 건 불가합니다. 삼촌~”

“이런…….”

“아빠.”

비화가 눈을 반짝인다.

“안돼.”

“저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뭐가 됐건 안돼.”

“그럼 어쩌시게요.”

“여신님이 침묵하는 걸 보면 방법은 분명 있어. 그런데 그게 뭔지를 모르겠네.”

세계의 법칙상 문제는 없고. 그렇다고 백날 옥좌를 부수고 여왕을 죽여본들, 시스템은 천천히 그걸 복구할 뿐이다.

영원히 선대여왕과 후대여왕인 나오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칫하면 둘만으로도 안된다고 판단하여 또 다른 페어리 희생양을 태어나게 할 수도 있으리라.

그렇다고 속이는 것도 여의찮으면…….

“그럼, 속일 필요 없이 이 시스템 자체가 조정이 필요하다고 받아들이게 하면…….”

“말이 쉽죠. 어떻게요?”

고민하던 찰나. 아공간이 열리며 홍단이와 청단이가 뛰쳐나왔다.

“아빠아!”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달려온 두 아이는 그대로 품 안에 안겨들었다.

“아이고 홍단이.”

폴짝 뛰어 안기는 홍단이의 등을 토닥거리자 녀석은 기분 좋은지 품 안에 안겨 고로롱거렸다.

반면 청단이는 바리스에게 쪼르르 다가가 그에게 안겼다.

“삼춘…… 어디 아파?”

“아…… 아니…….”

“왜 울어?”

바리스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이 걱정인지 청단이가 울먹거리자 홍단이가 소리쳤다.

“청다니! 울면 안대! 울면 납쁜 마왕이 잡아간다고 했서!”

마왕?

그 말에 청단이가 흠칫 놀란다.

“마…… 마왕……. 하지만 아빠가 마왕인데…….”

“아……. 그…… 그럼 아빠 말고 엄청 납쁜마왕이 잡아갈 거야! 예쁜 여신님이 그랬으니까 틀림없서!”

홍단이의 말에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홍단아. 그거 누가 말해준 거야?”

“예쁜 여신님이 그랬서!”

고개를 돌리자 비화가 한껏 미를 뽐내듯 자세를 잡는다.

쟤는 아니고. 그럼 남은 여신은 하나뿐인데.

“언제…… 들은 거야?”

“으음…….”

홍단이는 양쪽 검지로 관자놀이 부근을 쿡쿡 찌르며 눈을 감고 깊게 생각에 빠졌다.

“헤헤, 조금 전에 여신님이 홍다니한데 그랬서!”

조금 전?

프리아 여신이 계시를 내렸다는 뜻과 같다.

“마왕이라……. 마왕이라는 게 그런 존재가 아닌…… 가만.”

고민하던 찰나. 한 가지 사실이 번뜩였다.

“그러네. 그거면 되겠다. 시스템이 단순한 버그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를 인지하게 되면…….”

당연히 여신이 간섭하여 페어리의 시스템을 바꿀 수 있게 된다.

“중요한 건 방법인데.”

구조적 문제로 인지하게 만들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정교한 페어리 시스템에.

이물질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주입시키는 수밖에.

자, 일할 시간이다. 마기.

잠들어있던 마왕의 힘이 서서히 태동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내 시간이다!

녀석이 입이 있었다면 그리 말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활발한 움직임이었다.

물론, 얼마 가지 않아 가장 게으른 신성력이 움직여 그것을 찍어 눌러버렸지만 말이다.

-이거 놔라! 놓으란 말이다!

-가만히 있어. 짬도 낮은 게 어디서 나대.

그렇게 떠드는 것처럼 일방적인 폭거를 저지르는 신성력을 서서히 진정시키고 마기를 서서히 활성화시켰다.

마왕의 위계라는 건 사실 대적자가 존재할 뿐 다른 것은 없다.

하지만.

온전히 순수해야 할 여왕의 존재에게 마왕의 권능, 그중에서 낙원의 것과 상반되는 권능이 심어진다면…….

“그럼…….”

“안 그래도 처치 곤란인 권능이 하나 있긴 한데.”

부패의 권능.

마왕의 권능중 대부분은 흩어놓았지만, 일부는 내가 보유하고 제어 중이기도 하다.

이걸 옥좌를 포함한 황혼과 여명의 정원 시스템 전체에 녹여낸다면.

바이러스를 먹은 컴퓨터처럼 계속해서 문제가 발생하리라.

부패의 권능은 분명 낙원의 입장에선 이물질이나 다름없지만, 시스템은 그것을 지울 수 없다. 그 또한 세계의 법칙으로 보호받는 것이니까. 문제는 힘의 주체인 마왕이 직접 주입해버린 것이니 그걸 규칙상 빼낼 수도 없을 터.

“컴퓨터로 치면 방화벽이 꺼진 틈을 타서 제거가 불가능한 바이러스를 심어버린 셈이네요.”

“결정 났으면 됐다. 나도 처치 곤란인 권능이니 스리슬쩍 짬 시키고 오마. 바리스, 넌 여기서 기다려.”

그렇게 말한 뒤 청단이에게 손을 뻗자 녀석이 검으로 변하며 빠르게 손에 쥐어졌다.

쩌억!!!

그리고 망설임 없이 균열을 열고 진입한다.

이전엔 통행증이 있어야 했지만, 에반젤린이 가지고 있는 붉은 보석이 낙원을 보호하는 방화벽, 즉 힘의 격류를 전부 먹어치워 버린 터라 현재의 낙원은 말 그대로 무방비 그 자체였다.

갈라진 대지, 부서진 옥좌. 거대한 노이즈로 붕괴되고 있는 파괴된 낙원에 들어서자 베르단데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이런 방법이 정말 먹힐까? 먹히기만 하면 좋겠는데…….”

“해봐야지. 여신님이 괜히 그런 말을 하진 않았을 거야.”

애초에 마왕의 권능이라는 것도 정상은 아니었다.

저벅…… 저벅…….

내가 옥좌로 다가가자 나무줄기들이 뻗어져 나와 나를 막아서려 했지만 디버그 상태에 빠져있는지 제대로 된 타격은 없었다.

텁!

이윽고 내 손이 옥좌에 닿기가 무섭게. 나는 무방비상태의 옥좌에 미리 활성화시킨 부패의 권능을 고스란히 밀어 넣었다.

“자. 선물이다.”

* * *

“이게 참 기발하긴 한데. 황당하기 그지없네. 저걸로 정말 돼?”

신의 영역. 그곳에서 중간계를 내려다보던 초대 성녀 다프네가 질문을 던지자 마법사의 신이라 불리는 존재. 오딘이 한쪽 눈을 게슴츠레 떴다.

“되겠냐?”

“안돼?”

“모르지.”

“그런데 왜 아는 척이야?”

다프네의 비꼼에 오딘이 짜증을 부리듯 허공에 파이어볼을 만들어 날렸다.

퍼엉!!

[아놔 진짜!]

동시에 파이어볼을 맞은 데이비가 짜증을 내며 소리 지른다.

[뭔데 이건 또!]

“왜 애꿎은 애한테 화풀이고.”

뒤이어 수르트가 오딘을 타박하자 그녀는 코웃음을 치며 시선을 돌려버렸다.

“저거론 안돼.”

“음?”

“하지만. 시스템 안에 건의는 되겠지. 이래도 시스템이 완전해? 이래도 괜찮아? 손봐야 하지 않겠어? 그렇게 말이야.”

데이비는 부패의 권능으로 해결이 될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실상은 달랐다.

그런 거론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시스템에 정식으로 건의되는 건 분명했다.

그리고. 그런 건의를 받은 시스템은 완벽을 기하기 위해 또 하나의 존재이자 본체나 다름없는 프리아 여신의 권능을 요청할 것이다.

치이잉!!!

데이비가 권능을 밀어 넣기가 무섭게 막대한 빛이 옥좌로부터 뒤섞여 퍼져 나온다.

동시에 나오의 것으로 보이는 생자와 망자의 권능이 옥좌로 모조리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기다려온 여신님이 시스템을 바꿔버리겠지.”

그녀가 온전히 전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이 바로 세계의 법칙과 그녀의 의지가 일치했을 때다.

거대한 댐이 무너지는 것도 작은 실금에서 시작되는 법.

“그래도 누구 제자라고 눈치는 빨라서 좋네……잘했어. 데이비. 종종 지옥 불로 태워버린 게 도움이 되는 게 분명해.”

기다렸다는 듯 거대한 권능을 발현하여 정식으로 간섭하기 시작한 여신의 힘이 신의 영역 전체에 퍼져나간다.

시스템의 요청을 받아들인 그녀는 낡고 후진 여왕 시스템을 완전히 붕괴시켜버리고 바꿔나가리라.

“어떻게 바꾸는 거지?”

“어떻게긴. 좋은 예시가 있잖아. 신목의 성지라고.”

방대한 시간을 존재해왔으나 요정 여왕과 달리 정신이 붕괴하지 않은 존재.

세계수의 사례가.

극심한 고독과 방대한 시간을 죽지도 못하고 살아야 하는 요정 여왕과 달리 세계수는 둘로부터 자유롭다.

“이미 있는 사례를 이용하는 거라 세계의 법칙이 거부할 가능성도 사실상 낮을 테고.”

예상을 아득히 넘어서는 막대한 변화에 데이비와 베르단데가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만 진실을 전해 들은 영웅들은 그걸 그저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그럼 그 두 페어리는? 둘 중 하나가 여왕으로서 다시 부활하는건가?”

“아니, 그 두 아이는 한계야. 하나는 오랜 시간 영혼의 강에서 회복해야 하고 하나는 수명이 다했으니 곧 죽을 거야. 거기에 이변은 없어. 안타깝긴 하지만 어떤 의미로 보면 구원을 받는 셈이지.”

“게다가 이런 방식이면 나오라는 페어리에게 더는 남는 시간이 없을 거예요. 임종을 보고 바로 사망하겠죠.”

침묵하던 로 아이아스의 말에는 무게가 있었다.

모두를 살리고 모두가 웃는 결말까지 바라는 건 사치였다.

하지만 두 페어리가 평생을 고난의 길을 걸으며 쌓아온 기적의 발판은 미래를 변화시키리라.

“아마 다음 대의 페어리 여왕은 저기 옥좌를 지키다가 의지를 얻어버린 현신체가 될 가능성도 크다. 여신님도 정이 많은 편이니까.”

“흐음…….”

두 페어리가 만들어낸 기적은 언젠가 페어리라는 종족이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 과거와 다른 새로운 길을 개척하리라.

데이비의 토스를 받은 여신이 강렬한 스파이크를 꽂아 넣듯 황혼과 여명의 정원 전체가 불필요하다고 판단하여 붕괴하기 시작하자 데이비는 망설임 없이 베르단데의 뒷덜미를 낚아채고 빠르게 붕괴하는 공간을 빠져나가는 게 모두의 시선에 보였다.

그리고, 한쪽에는 모든 진실을 받아들였는지 빠르게 죽어가는 나오가 보였다.

의식불명 상태였던 그녀였지만 서서히 정신을 차렸는지 눈을 뜨며 바리스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근데 말입니다.”

그때. 한참 동안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던 님프 뮤트가 물었다.

남의 일에 별 관심 없는 그녀치고는 조금 의외의 질문이었다.

“저건 진짜 뭡니까.”

“저거?”

“저 붉은 보석.”

뮤트의 질문에 다른 영웅 모두가 침묵했다.

“저거. 내가 볼 때 살아있다는 것에 칩 전부 건다.”

“내기? 좋구만. 난 죽었다는 것에 이거 전부 걸지.”

순식간에 검신 하레스와 무왕 유르그의 내기가 시작되자 로 아이아스가 웃는 얼굴로 어딘가에서 숨겨놓은 듯한 커다란 자루를 쿵!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죽었다는 것에 걸게요. 쫄리면…….”

“뒈지라고?”

영웅들 사이에서 웃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잠깐의 침묵 끝에…….

“난 살아있다는 것에 건다. 로 아이아스가 거는 쪽의 반대쪽에 걸면 무조건 맞더라.”

“저렇게 매번 틀리는 것도 재능이지. 나도 살아있다는 것에 건다.”

“빌어먹을 나도, 살아있다는 것에 걸…… 커헉!”

천마 독고준의 팔을 낚아챈 로 아이아스가 화사하게 웃었다.

“천마님. 절 배신하는 건가요? 저만 믿으세요. 이번엔 확실해요.”

“에잉…… 텄네, 텄어.”

이들에게 도박은 소소한 재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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