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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521화 (1,521/1,559)

제 1521화

마치 온몸이 물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나오는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눈을 떴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혼령 옆에 앉아 손을 꼭 쥐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넨릴의 혼이었다.

다만, 그녀의 혼은 이제 대부분이 흩어져있었다.

시간이 없다는 뜻이겠지.

“기적이야.”

“…….”

“후회는 없어?”

“없어.”

“우리가 다시 만날 가능성은 사실상 없을 거야.”

“그래도 괜찮아.”

나오는 답했다.

“내 목숨보다 중요한 게 너야. 넨릴. 나는 이걸로 되었다고 생각해.”

더는 희생하는 사람 없고, 더는 아파하는 이가 없고. 고통받았던 넨릴이 드디어 해방되었으니까.

두려운 여왕의 자리에 오를 필요도 없다.

“언젠가…… 우리가 다시 태어나면…… 지금의 일을 모두 기억하지 못할 거야. 그래도 괜찮아. 우리가 밟고 지나온 험난한 길이 앞으로의 미래에 변화를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고통만이 가득했던 두 페어리의 영혼에 구원이 될 수 있다면.

“나는 수천 번이고 더 웃으며 죽을 수 있어.”

“나오…….”

“그리고. 말이야. 넨릴.”

본능적으로 나오는 넨릴과의 대화가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깨달았다.

실제로 넨릴의 영혼은 이제 형체를 잃고 작은 빛무리가 되어있었다.

“너와 함께 죽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 말에 넨릴의 목소리에 울음이 섞였다.

“여기서 헤어지지만…… 나오. 행복해야 해.”

“넨릴, 너도 다음 생엔 잘 지내야 해.”

“지금까지 정말 고마웠어. 넌 내 버팀목이었어.”

“내게도 너는 빛이었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봉인되어있던 그곳에서 본 유일한 빛.”

두 페어리는 서로를 바라본다.

넨릴은 이미 형체를 잃었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다시 말할게. 내생에 가장 큰 축복은 너를 만나 친구가 되었다는 거야.”

“조금 낯간지럽긴 하지만…… 고마웠어. 행복해.”

넨릴의 혼이 흩어졌다.

울음이 나올 것 같았지만 나오는 멈추지 않았다.

기적 아닌 기적이 일어난 대가로 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이제 5분도 남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버틸 수 있다 했지만, 황혼과 여명의 정원 그 비틀린 구조를 해소하는 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그것으로 후회는 없었다.

이윽고 비화의 인도에 따라 그녀의 혼이 육신에 온전히 안착한다.

눈을 떴을 때 본 것은 걱정스레 내려다보고 있는 바리스였다.

“바리스…….”

“나오…….”

바리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그녀를 불렀다.

나오는 고개를 돌려 한족에 무릎 꿇고 양팔을 든 채 혼나고 있는 에반젤린과 비화를 보았다.

그리고 그런 둘을 혼내는 데이비가 보인다.

마지막으로 홍단이 청단이를 품에 안고 담담하게 그 풍경을 보는 베르단데도 보였다.

자신이 해준 것은 없는데. 이렇게까지 자신을 도와준 그들에게 너무 고마움이 느껴졌다.

“바리스…… 몇 번이고 말했지만 정말 고마워.”

“내가 한 건 거의 없어.”

“아니. 네가 날 깨워주었기에 우리는 이렇게 웃으면서 떠날 수 있게 된 거야.”

“……이렇게 가야만 하는 건가?”

바리스가 슬픔과 아쉬움을 애써 억누르며 물었다.

“그래…… 욕심은 적당히 부려야 하는 거니까. 이제 쉬고 싶어. 편히 쉬고 다음 생을 살고 싶어.”

굴레에 얽매이지 않은 해방된 다음 생.

제대로 된 윤회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어두운 그녀의 미래에 흑운이 걷히는 느낌이었다.

“이봐…….”

힘없는 목소리로 데이비를 불러보지만,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갈 거면 얼른 가.”

“그래도 감사는…….”

“감사는 내가 아니라 바리스와 여신님에게 해라. 둘이 아니었다면 내가 널 도울 이유가 어디 있냐.”

“아하하…….”

허탈하게 웃어 보인 그녀가 말했다.

“그래? 그럼 선물로 주려 했던 보물의 장소는.”

“크흐흐흑. 이렇게 떠나다니! 나는 너무 슬프다!”

순식간에 다가와 눈물을 글썽거리는 데이비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나오였다.

“저런 게 온전한 신격이라는 게 너무 처참하게 느껴진다…….”

베르단데의 중얼거림이 바로 나오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나오는 조용히 품에 간직하고 있던 작디작은 세공된 보석을 꺼냈다.

“내가 봉인되어있던 장소…… 그 아래에 보물이 있어. 내게는 필요 없지만…… 페어리들의 세공기술이 집약된 물건들이지……. 그리고…… 그 끝에 비밀의 방엔…… 우리 시대에 살던 이들의 보물이 묻혀있을 거야.”

“대체 이런걸 왜 네 봉인지에다가?”

“원래 내가 봉인되어있던 곳은 보고였으니까. 나를 봉인했던 이들 중 마지막으로 남았던 이가 하던 말을 들었어. 페어리가 쇠퇴하면서…… 그는 푸념하듯 말했거든. 어떤 보물이 있는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쁘진 않을 거야.”

“잘 쓰마.”

“크후훗. 이제 갈 시간인 거 같아. 넨릴이 기다리고 있어.”

그 말과 동시에 허공에서 저승이가 나타났다.

“인도하겠습니다.”

“그래. 잘 데려가. 혼의 상태가 많이 안 좋으니까.”

“저기…… 가기 전에 하나 물어봐도 돼?”

그때 나오가 데이비에게 질문을 던졌다.

“물면 아픈데.”

“…….”

“농담이다.”

“다시는 하지 마, 그딴 거. 내가 죽고 나서…… 페어리가 다시 나타날 수 있을까?”

일반생명체와 달리 페어리는 태초의 봉오리라는 곳에서 태어난다.

태초의 봉오리는 당연히 세계수처럼 하나가 아닌 세계 어디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 것인 만큼 시스템이 정비가 되면 페어리가 다시 나타날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아니. 페어리는 이제 없을 거야.”

“그래?”

“확신은 못 하겠지만. 여신님이라면 더 이상 같은 일을 반복하진 않을 거라 생각한다.”

“후후. 그건 추측이네?”

“그래. 추측이지.”

힘없이 웃어 보인 나오는 다시 바리스를 보며 말했다.

“내 육신을 라운 왕국에 묻어줄 수 있어? 영혼은 떠났겠지만 죽어서라도 그곳에서 너와 함께 할게.”

“조심히 가.”

그 말을 끝으로 저승이가 손을 천천히 뻗자 나오의 몸에서 푸르스름한 빛덩어리들이 빠져나왔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이후 저승이는 나오의 혼을 조심스레 갈무리한 뒤 데이비에게 고개를 숙이고 떠나갔다.

이 세계에 남아있던 마지막 페어리의 흔적과 페어리의 영혼이.

여기서 마침표를 찍었다.

* * *

영혼이 떠나 숨을 거둔 나오의 육신은 바리스가 라운으로 데리고 와서 고이 묻어주었다.

물론, 개인적인 일이었기에 요란스러운 장례를 치러줄 순 없는 노릇이지만 어차피 페어리에겐 페어리만의 장례 절차가 존재했다.

“바리스.”

천천히 다가가 말없이 작은 묘를 내려다보는 바리스의 어깨를 두드리자 녀석이 고개를 돌렸다.

“형님.”

“그래.”

“형님은 갑자기 사라지지 않으실 거죠?”

“내 걱정을 하지 말고 네 걱정이나 해라.”

거칠게 녀석의 머리를 짓누른다.

“이번 일의 발단이 네 사망 소식이었다는걸 잊었나 본데. 아직 그거 전부 해결이 안되지 않았나?”

“컥…… 그거어어어어억!!”

순식간에 녀석의 두피를 빡세게 마사지해주자 녀석이 비명을 지르며 무너져내렸다.

“끄윽…… 형님……. 이거 반역입니다…….”

“그러시지요. 폐하. 제 목을 치시면 됩니다.”

“제가 어떻게 그럽니까.”

“하하.”

피식 웃으며 손을 놓아주자 녀석이 앓는 소리를 냈다.

“바리스 나는 형으로서 네가 자랑스럽다.”

“예?”

“왕의 자리는 고독하고 힘든 자리지.”

“…….”

“솔직히 난 네가 왕이 된 걸 후회하고 있다. 네게 그런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게 맞는지 몇 번이고 다시 생각했다.”

아무리 그 자리가 싫었다고 하지만 동생에게 나라를 떠넘긴 꼴이니 말이다.

“그건 형님이 주기적으로 저를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아니. 이건 네가 노력한 결과다. 비록 선왕 폐하와 내 조력이 있었다고 해도, 왕의 자리는 그렇게 무르지 않아. 넌 네 스스로 그 자리에서 선왕 폐하보다 더 나은 것을 만들어냈다. 시간이 지나면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나는 말 없이 바리스의 옆에 한쪽 무릎을 꿇어 예를 표했다.

“형님…….”

“맹세하마. 네가 정말로 힘들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널 도와주마. 그게 네게 그 무거운 자리를 넘긴 형의 속죄다.”

“이러지 마세요. 형님. 제가 왕위에 올랐기에 가능했던 것들이 있습니다. 힘들긴 해도 저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국왕 자리. 폼나잖아요? 역사책에 제 이름이 기록되는 겁니다. 후손들은 그리 칭할 거에요. 바리스 올 라운 국왕이라고.”

“…….”

“그리고, 정계에 간섭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형님 덕분에 위기를 넘기고 있다는 걸 제가 모를 것 같습니까?”

바리스는 내 어깨를 잡아 일으켜 세웠다.

“저는 형님과 형제였기에 세상 그 누구보다 든든한 아군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 절대 그 일로 고개 숙이지 마십시오.”

바리스의 마음 씀씀이에 고마움을 느꼈다.

“가시는 겁니까?”

“내가 왕성에 오래 남아있을수록 분위기가 냉각될 수밖에 없어.”

적대하던 귀족들을 죄다 쳐낸 건 사실이지만 라운의 역사책에서도 내 존재는 피의 숙청을 이루어낸 존재로 기록될 정도로 많은 일을 했으니 말이다.

“그럼 피의 숙청을 진행했던 악마인 나는 가보마.”

“형님. 역사책에 형님이 피의 독재자라는 언급을 받게 하지 않을 겁니다. 형님은, 피의 숙청을 이룬 악마가 아닙니다. 자랑스러운 라운의 왕족이며 영웅이고 성자니까요.”

뒤에서 그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지만 낯간지럽게 괜히 돌아보진 않았다.

나오가 남겨놓은 선물이나 가지러 가야지.

* * *

“브리칭!!”

콰아앙!!

사방에서 벽이 동시에 날아가 버리기가 무섭게 진입한 비화가 손에든 샷건으로 적을 갈아 마셔버렸다.

“으악! 저 미친년!”

“뭐 저렇게 앞뒤가 없이 밀고 들어…… 꾸에엑!”

뒤이어 자신들의 진영이 개박살난 것을 깨달은 일부 상대 유저들이 다급히 각을 좁히며 포위해 들어왔지만…….

“어? 거기 그렇게 들어오게?”

쾅!! 쾅!! 쾅!!

미리 준비해둔 급조 폭발물들이 모조리 터져나가며 순식간에 목숨을 앗아간다.

삐익! WIN!

승리 신호가 울리기가 무섭게 비화는 느긋하게 샷건을 한 손으로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어휴 스트레스 확 날아가네.”

“저게 여신님이라니…… 에휴…….”

데이비에게 혼난 뒤 대전모드를 이용해 학살을 자행하고 다니며 스트레스를 푸는 비화를 보며 에반젤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꼭 그렇게 벽을 싹 다 날려버려야 해?”

“에린아. 네가 아직 어려서, 잘 모르는 모양인데…….”

“브리칭은 낭만이라고?”

“잘 아네.”

“……그래. 아니 웃기네? 언니는 뭐 얼마나 살았다고 그런 말을 해?”

“너보단 나이가 많아. 정신 나이까지 치면…….”

“웃기네! 알로 지내던 시기까지 합치며 내가 언니보다 수백 수천 배는 더 살았거든!”

“뭐래. 쥐방울만 한 게.”

“아악!”

저러다가 현실에서도 브리칭 타령하면서 주먹으로 벽을 날려버리는 건 아닐까.

뭐, 그렇다고 해도 비화가 날뛰는 건 가상공간 안이지 외부는 아니었으니 상관할 문제는 아니었다.

“후우…… 난 여기까지 할게.”

“그래? 오랜만이라 재미 좀 보려고 했더니.”

“난 오래 하면 지쳐서…….”

말은 그리하지만, 가상공간에서 빠져나온 에반젤린이 침대에 늘어지자 비화가 공간을 열고 나타나 무언가를 건넸다.

“에린아. 이거 보자.”

“응? 뭐야 그게?”

“영화래. 도우라고 해서, 스릴러 영화라는데. 반전도 있고 재밌다더라.”

“어? 그거 아빠가 절대 보지 말라고 했던 거 아니야?”

“필요 이상으로 유혈이 낭자해서 그렇다는데…… 솔직히 궁금하지?”

그 말에 에반젤린은 방송도 없겠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었던 만큼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 컴퓨터에 연결해서 보자.”

그리고는 익숙하게 세팅을 마쳤고, 영화를 틀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평범한 의사인 주인공이 어느 날 갑자기 온 택배 상자를 받아들면서 시작하는 이야기였다.

택배 상자를 개봉하기가 무섭게 수면 가스가 터져 나왔고 주인공은 그대로 기절. 정신을 차렸을 땐 그와 비슷한 처지의 인간 다수와 함께 정체 모를 방에 갇혀있었다.

그리고. 내용은 점차 정신없이 굴러갔다.

상상 이상의 잔인한 도구를 이용해 죽음의 게임을 하며 사람들을 극한으로 몰아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보기만 해도 무서워 보이는 장비에 끼인 채 목숨을 구걸하는 사람과 그 사람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단서를 찾아 퍼즐을 푸는 사람들까지…….

주조연들의 직업은 다양했고 갖은 방법으로 퍼즐을 풀거나 사람이 희생하거나 혹은 퍼즐을 풀지 못해 하나하나 죽어 나간다.

그 와중에도 여주인공은 필사적으로 살아남았고 마지막 방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를 반긴 것은 작은 택배 상자였다.

그녀는 질겁하지만, 천천히 다가가 그것을 열었고, 타이머가 있는 폭탄을 보며 질겁했다.

그리고, 방 안에 있던 한 송출기에 조금 전까지 함께 했던 피해자 중 하나가 나오는 것을 보며 경악한다.

-내가 이 게임의 주최자일세. 원래. 게임이라는 건 곁에서 보는 게 제일 재미있지 않나.

잔인한 장비로 죽어 나가는 사람을 보며 서로 손을 꼭 잡고 있던 에반젤린과 비화가 침을 꿀꺽 삼켰다.

영화는 기묘한 반전과 함께 주인공이 폭탄을 처리하지 못해 폭사하며 끝났다.

“어…… 음…….”

“엄청 무서웠지? 그치?”

비화가 공감을 종용하자 에반젤린은 한숨을 내쉬었다.

“반전도 어이가 없고, 내용도 순 잔인하기만 하고.”

“무서웠지??”

“애도 아니고 저건 영화잖아…….”

“안 무섭다 이거지?”

“솔직히 저런 거로 죽기나 해?”

“사람이란 건 말이야. 자기 힘으로 해결되지 않는 죽음의 공포 앞에서 무너지는 법이야. 이 기지배야. 너도 네 머리통을 한 번에 으깨버릴 수 있는 압착기에 끼어 있으면 그런 말 안 나올걸?”

“헹. 난 그럴 일 없거든요.”

비화는 두고 보자고 말하며 도망쳐버렸다.

저것도 언니라고…….

에반젤린은 한숨을 내쉬며 컴퓨터를 끄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러자 영화 속의 잔인한 기계들이 사람들을 죽이던 장면이 떠오른다.

에린이같이 어린 나이에 보기엔 과격한 영화였지만 직접 검을 휘두르다 보면 그것보다 더한 것들도 보기 마련인 법이니 새삼스러울 건 없었다.

“으으으.”

알 수 없는 오한에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던 찰나. 그녀는 자신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내려다보았다.

이 붉은 보석이 괜히 또 사라지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된다. 실제로 한번 탈주사례가 있는 만큼 괜히 더 신경이 쓰였다.

게다가 운이 좋았으니 망정이지 정말로 위험한 곳까지 떠밀려가지 않았던가.

“후우…… 넌 어떻게 매번 말썽이니…….”

보석을 툭툭 건드려본다. 뭔진 몰라도 블랙 슬라임 검둥이가 남긴 유품인 만큼 소중하게 다루고 싶은 건 사실이지만 이런 식이면 그녀도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비화의 말에 따르면 예상했던 총량 대부분을 먹어치웠다고 한다.

그럼 이걸 다 먹고 나면? 그땐 어떻게 되는 거지?

“대체 무슨 아티펙트이길래…….”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였다.

그녀의 레어로 이어지는 기묘한 에너지의 변화에 그녀가 벌떡 일어났다.

“뭐야…… 대체 누가?”

그녀의 레어는 엄연히 차원의 틈에 만들어진 독자적인 공간이다.

차원을 넘을 정도가 아니면 들어올 수 없다는 소리였다.

그런데 누가?

이곳은 그녀의 레어. 그렇기에 그녀에게 애착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장소라 할 수 있다.

곧바로 날개를 반현신시켜 날아오른 그녀는 섬의 외곽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침입자가 누군진 모르겠지만 이곳에 함부로 들어온 대가는 치러야 하리라.

물론, 레어에 놀러 오는 이들이야 없는 건 아니지만 지금 이 이상 현상은 그녀의 허락 없이 들어온 말 그대로 불법 침입이었다.

빠른 속도로 도달한 장소에는 옅은 균열이 열려있었다.

그리고, 그 균열의 앞에는…….

“……뭐야, 이건?”

그녀의 시야에 비친 것은 어디서 왔는지 모를 택배 박스였다.

더구나 박스를 뱉어낸 균열은 기다렸다는 듯 사라져버렸다.

“……잉?”

머릿속에 물음표만 수십 번을 띄워보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게 뭐야.”

천천히 택배 상자에 다가간 그녀는 천천히 택배 상자에 손을 뻗다 멈췄다.

“헉! 이거 영화에서 봤어!”

수상한 택배 상자. 호기심에 택배 상자를 여는 순간 모습을 드러내는…… 폭탄. 혹은 수면 가스!

“정신을 차리면 기이한 방에서…….”

그녀는 침을 꼴깍 삼켰다.

그리고.

조금 전 비화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네 머리통을 단번에 아작낼 수 있는 압착기에 끼이고도 그렇게 자신만만할 수 있어? 안될걸?

조금 다르긴 했지만 중요한 건 그것이었다.

비화가 했던 말이 그녀의 머릿속에 강하게 남아 빙빙 돌며 회전한다.

“으아아…… 어떻게 해……. 어떻게 해…….”

괜히 그 말을 듣고 나니 상자를 열기가 두려워지는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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